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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리언 반스의 책을 꽤 읽었는데, 그의 이력에서 항상 중요하게 소개되는 《플로베르의 앵무새》를 이제야 펴들었다. 《플로베르의 앵무새》는 반스의 세 번째 장편소설이지만 이 작품으로 비로소 그는 유명 작가의 대열에 들어섰다고 한다. 이제는 그런 장르 구분이 무의미한 것 같지만, 이른바 포스트모더니즘의 전형으로 인정받고 있는 작품이 바로 《플로베르의 앵무새》이기도 하다. 하지만 줄리언 반스를 포스트모더니즘 작가로 가둘 수 없다는 것은 그의 폭넓은 작품 시도를 보면 알 수 있다. 《플로베르의 앵무새》는 제목에서 보듯이 귀스타브 플로베르에 관한 소설이다. 또는 평전이다. 귀스타브 플로베르. 《보바리 부인》으로 유명한 19세기 프랑스 사실주의 대가. 그런데 나는 《보바리 부인》은 읽지 않았고, 《감정 교육》을 읽었다(https://blog.naver.com/kwansooko/223487975229). 한 줏대없는 청년의 연애담 같은 소설이지만 곱씹으면 곱씹을수록 당대의 세태를 아주 꼼꼼하게 서술하고 있었다. 나는 주로 보통 인간의 우유부단함과 무기력을 읽었지만, 그보다 더 무거운 주제를 읽은 이들도 많으리라 본다. 《애서광 이야기》도 읽었다(https://blog.naver.com/kwansooko/223481278205). 그러나 이 책을 플로베르의 온전한 작품이라고 하기에는 그렇고, 이외에는 몇몇 단편소설을 읽었다. 그러니 내가 온전하게 읽은 플로베르의 작품은 《감정 교육》이 유일하다고 할 수 있다. 그런 이유로 줄리언 반스의 《플로베르의 앵무새》를 선뜻 집어들지 못했던 것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플로베르의 앵무새》에서 플로베르라는 작가, 바로 그 소설가가 중요한 것은 아니다. 오히려 (당연한 것이기도 하지만) 줄리언 반스의 목소리가 더 선명하게 들린다. 《플로베르의 앵무새》에서 우리는 귀스타브 플로베르라는 19세기 소설가를 읽는 것이 아니라 분명하게 줄리언 반스라는 20세기 영국의 소설가를 읽는다. 그가 생각하는 플로베르, 그가 생각하는 소설가라는 사람과 소설이라는 장르, 그가 생각하는 예술, 그가 생각하는 삶. 우리는 그것을 읽는다. 《플로베르의 앵무새》는 소설이기도 하지만, 사실은 평전에 더 가깝다는 느낌이 든다. 화자는 영국 출신의 은퇴한 의사 제프리 브레이스웨이트이지만, 그가 줄리언 반스가 빙의한 인물이라는 것을 모를 수는 없다. 브레이스웨이트는 플로베르에 지독하리만치 빠져 탐구한다. 아내의 부정(不貞)과 죽음에 대한 태도를 정리하고자 플로베르가 살았던 도시를 찾았다. 거기서 《순박한 마음》이라는 소설에서 플로베르가 영감을 받은 ’룰루‘라는 이름의 앵무새의 정체를 추적한다(“앵무새는 플로베르식 기괴함이 완벽하게 다음어진 전형이다.”, 23쪽). 그러나 이 방대한 플로베르에 대한 자료는 그가 평생을 그를 좇았음을 알 수 있다. 아내는 핑계다. 플로베르를 통해 예술과 삶의 관계를, 한 인간의 과거에 대해 어떻게 알 수 있고, 과연 평가할 수 있는지 여부를 끈질기게 짚어나가고 있는 게 바로 이 작품이다. 그건 분명하게 줄리언 반스의 탐구다. 그러니 도덕적 진보가 뒤따르지 않는 과학적 진보에 대해 회의적이었다는 플로베르에 대한 서술은 줄리언 반스의 것이라고밖에 할 수 없다(그것도 여러 차례 언급하고 있다. “그는 진보를 믿지 않았다. 이에 대해서는 20세기의 현실을 인용하여 그를 변호한다.”, 196쪽). 그래서 철도를 싫어했으면서도 철도의 혜택을 맘껏 누린 플로베르에 대한 언급은 아이러니인데, 그것 역시 자신에 대한, 인간 자체에 대한 비판적 고찰이다. 줄리언 반스는 다양한 형식을 실험하고 있다. 순수한 픽션은 아내의 죽음에 관한 내용뿐이고, 나머지는 평전의 형식을 취하고 있다. 그런데 그 평전의 형식도 어떤 데서는 플로베르의 생애에 대한 연보, 다른 데서는 편지, 소설론, 변호사의 변론문, 사전, 시험지 등등의 모습을 띠고 있다. 어찌 보면 현란하다고도 할 수 있는데, 그 하나하나의 형식이 전체적으로 어울리고 있다. 뒤로 갈수록 점점 빠져드는 것은, 아마 그런 형식 실험이 놀랍다기보다는 어떤 설득력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가장 인상깊은 부분은 제2장 <연보>. 세 부분으로 나눈 플로베르의 연보는, 첫 번째는 한 작가의 보통 연보다. 책 뒤에 실린 ’줄리안 반스‘의 연보와 다를 바 없다. 두 번째의 것은 플로베르에게 부정적인 상황만을 추린 연보다. 그리고 마지막의 것은 플로베르의 편지에서 가져온 것들이다. 비교해 보면, 이렇다. <1> 1836년. 독일의 음악 서적 출판업자 아내인 엘리사 슐레징거를 트루빌에서 만나 ’터무니없는‘ 애정을 품는다. 이 애정은 이후 그의 청년기를 밝게 한다. <2> 1836년. 엘리사 슐레징거와의 이루어질 수 없는 집요한 사랑이 시작되다. 이 사랑은 그의 마음을 마비시켜 그 후로 그는 다른 여인을 깊이 사랑할 수 없게 된다.
<1> 1869년. 《감정 교육》 출간. 플로베르는 항상 이 작품을 걸작이라고 단언한다. <2> 1869년. 《감정 교육》 출간. 비평가들에게서는 혹평을 받고 상업적으로는 실패한다. 그는 친구와 친지들에게 증정본 150부를 보내지만, 답례 편지는 겨우 30통에 지나지 않았다. 이러한 형식은 한 개인을 온전히 파악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것인지를 보여준다. 옮긴이는 이에 대해 ’과거는 포착되지 않는다‘라고 표현하고 있는데, 줄리언 반스는 이것을 다음과 같이 쓰고 있다. “한 인간의 삶이란 우리가 알고 있는 것이 전부는 아니다. 그렇다고 한 인간의 삶에서 성공적으로 숨겨진 것 또한 전부는 아니다. 한 인간의 삶에 대해 우리가 알고 있거나 성공적으로 숨겨진, 이제는 믿을 수 없는, 거짓들이 전부는 아니다. 실험되지 못한 것 또한 삶이다.” (183쪽) 그리고... 줄리언 반스는 다음과 같은 플로베르의 글을 역시 자주 인용하고 있다. 작가로서 공감이라고 여겨진다. “언어란 갈라진 주전자와 같아서 우리가 그것으로 연주를 하면 겨우 곰들이나 장단 맞춰 춤을 춘다. 그런데도 우리는 항상 그 언어로 별들의 공감을 불러일으키기를 갈망한다.” (24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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