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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 못 이루고 방황하는 자식을 위한 아버지의 충고
"잠 못 이루고 방황하는 자식을 위한 아버지의 충고 " 내용보기
'어른 말씀을 잘 들으면 자다가도 떡이 생긴다.' 라는 우리 옛말이 있다. 어릴 때에는 이 말을 믿지 않았다. 보수적인 기성세대가 자신들의 권위에 도전하는 신세대의 반항을 누르기 위해 사용하는 명제라는 생각을 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십대 후반이 되기까지 짧게나마 사회생활을 하면서, 나는 그 말의 효력을 차차 실감하는 경우가 많다. 내가 대수롭지 않게 넘겨 버렸던 어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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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 말씀을 잘 들으면 자다가도 떡이 생긴다.' 라는 우리 옛말이 있다. 어릴 때에는 이 말을 믿지 않았다. 보수적인 기성세대가 자신들의 권위에 도전하는 신세대의 반항을 누르기 위해 사용하는 명제라는 생각을 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십대 후반이 되기까지 짧게나마 사회생활을 하면서, 나는 그 말의 효력을 차차 실감하는 경우가 많다. 내가 대수롭지 않게 넘겨 버렸던 어른들의 생활 지침이 하나의 알찬 가르침이었음을 깨닫게 된 것이다. 어른들은 단순히 보수적인 기성세대가 아니라 거친 세상을 미리 경험한 '선배' 였다. <내가 다른 사람이라면 좋겠어>는 바로 이렇게 지극히 도덕적인 교훈을, 지루한 설교 한 마디 없이, 쉽고 재미있는 이야기, 레온세와 레나라는 문제적인 캐릭터를 통해 생생히 느끼게 해 주는 걸작이다. 주인공 레온세 왕자는 자신의 고귀한 신분도, 그 권위를 확인시켜 주는 행렬의식도, 왕관도, 모든 것이 귀찮은 어린애이다. 그는 모든 것을 마다하고 어릴 때 들어가 놀던 모래 상자에 들어가 누워있다. 그는 자신이 뭘 해야 행복할지 몰라서 고민한다. 그러나 그의 아버지는 다르다. 그의 아버지는 자신의 나라가 너무 작아서 사람들이 몰라볼 지경이 될까바 고민을 거듭하는 왕이다. 그는 자신의 뒤를 이을 아들에게 행렬의식을 보게 하고 이웃나라 공주 레나와 혼례식까지 준비해 준다. 아들은 그런 아버지가 못내 부담스럽다. 마침내 그는 친구 발레리오의 뒤를 따라 정처없이 궁을 빠져나간다. 중요한 것은 아들의 이런 방황에 아버지가 그 어떤 간섭이나 억압을 가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는 아들이 치러야 할 의무를 일러주고 갈 뿐이다. 아들을 걱정하지만, 결코 아들을 억누르지는 않는다. (원작 희곡에서는 어떠한지 모르겠다.) 그러나 아들에게는 아버지가 일러 주는 의무가 부담스러워 견딜 수 없다. 지루하기 짝이 없는 행렬 의식을 보고 생전 보지도 못한 여자와 결혼을 해야 하며 나중에는 왕이 되어야 한다니, 이렇게 황당할 수가! 궁궐을 빠져나간 왕자는 어두운 숲에서 자신이 왔던 길을 몇 번이고 다시 오가면서 방황을 거듭한다. 그 곳에서 그는 자신처럼 결혼이 싫고 꼭 맞는 결혼예복이 싫어서 뛰쳐나온 공주 레나가 마찬가지로 숲을 헤매게 된다. 둘은 만나게 되고 사랑에 빠진다. 온 밤을 꼬박 새우며 한치 앞도 보이지 않는 길을 헤매는 레온세의 모습은 세상의 숱한 젊은이들의 모습이다. 그 길고 긴 방황의 대가로 그는 드디어 사랑하는 여자를 만났으며 삶의 목표를 찾는다. 점심시간마다 배고픈 이들에게 고기 완자를 먹게 해 주고 구태의연한 행렬 의식을 없애는 것은 바로 제왕 레온세, 어른 레온세가 되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레온세는 아버지가 원하는 것을 모두 이뤘을 뿐만 아니라 그 이상의 일, 행렬 의식을 없애고 배고픈 사람들에게 고기 완자를 먹여 주는 뜻있는 일을 해 낸 것이다. 이는 레나 역시 마찬가지이다. 그녀의 몸에 꼭 맞는 결혼예복은 기성세대가 그녀에게 내려 준 사회적인 의무를 상징한다. 그게 싫었던 레나가 자신의 뜻으로 사랑하고 결혼했을 때, 그녀는 비로소 몸에 맞는 예복을 거추장스러워 하지 않게 된다. 그녀 역시 어른이 된 것이다. 중요한 것은, 아버지로 상징되는 기성세대가 내려 준 의무가 싫어서 방황하던 남녀가 자신의 뜻대로 택한 최선의 결과가 바로 기성세대의 뜻과 합치되는 방향으로 나아갔다는 점이다. 세상에 이런 일이~ㅇㅇ; 이 동화에서는 전혀 언급되지 않지만 나는 왠지 레온세가 고민을 거듭하다 궁궐을 빠져나가는 모습을 아버지가 몰래 지켜보고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한다. 방황하는 아들의 뒷모습을 지켜보는 아버지의 마음은 얼마나 찢어졌을까? 그러나 그는 아들이 스스로 자기 삶에 대한 답을 갖고 돌아올 때까지 묵묵히 기다렸고 결국 '어른'이 되어 돌아온 아들을 아침 햇살을 속에서 맞이한다. 더구나 자신이 생각했던 며느리감과 사랑에 빠진 아들의 모습에서 그는 아마도 자식으로 인해 고민해야 했던 지난날의 세월이 모두 보상받는 느낌이었을 것이다. 점심시간마다 배고픈 사람들에게 고기 완자를 마음껏 먹게 해주는 레온세의 결정은 아마그 작은 나라로 많은 사람들이 모여들게 하는 원동력이 될 것이고 많은 백성을 갖게 되는 나라의 이름이 세상에 알려지고 점점 커지게 될 것은 말할 것도 없다. 방황을 끝내고 어른이 된 아들은 아버지가 이루지 못한 숙원까지 해결하는 것이다. 이 동화가 단순한 이야기를 넘어서서 오랜 세월 동안 재창조되는 명작으로 남을 수 있었던 것에는 바로 이러한 깊은 뜻이 숨어 있었던 것이다!! 또한 레온세와 레나가 겪은 고민과 방황, 깨달음과 성숙을 미루어 보았을 때 이 동화는 성장동화로서의 값어치도 충분히 갖고 있다. 5살 때 이 동화를 읽고 15세가 될 때 다시 한번 읽고 25세가 되어서 다시 한번 읽어도 무리가 없다는 생각이 든다. 원작 희곡의 작가가 이 작품을 쓰고 23세로 요절했다는 것도 참으로 의미심장하다. 어떤 사람은 죽을 때까지 깨닫지 못하는 자기 삶의 의미와 그것을 찾기 위한 방황, 성숙의 기쁨, 기성 세대의 가르침이 갖는 참된 의미를 그 젊은 나이에 벌써 깨달았단 말인가? ㅇㅇ; 내 나이가 부끄럽다. 어린 자식이 말을 안 들어서 걱정인 부모들은 공연히 아이를 꾸짖지 말고 이 책을 말없이 권해 주는 것이 더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주인공 레온세의 아버지가 아들을 꾸짖지 않고 그의 방황을 말없이 지켜보고 돌아올 때까지 기다려 주었던 것처럼. 우리가 아무 말하지 않아도 아이들은 아마 자신들의 삶이 갖는 의미와 목표에 대한 방황을 스스로 끝내고 답을 찾아서 다시 돌아올 것이기 때문이다.
a******h 2005.08.12. 신고 공감 3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