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람은 누구나 현실을 탈출하고 싶을 때가 있다. 사회, 직장, 가족 등으로부터 잠시나마 벗어나고픈 자유. 프란치스 카프카의 『변신』은 첫 문장부터 인간이 다른 개체로 변한 상태에서 시작된다. ‘어느 날 아침 그레고르 잠자가 불안한 꿈에서 깨어났을 때 그는 침대 속에서 한 마리의 흉측한 갑충으로 변해 있는 자신의 모습을 발견했다.’(p.7) 갑충이 인간사회에서 왜 흉측하다 했을까. ‘문학동네’에서 펼쳐낸 책은 루이스 스카파티의 삽화로 표지부터 강하게 시선을 잡아당긴다. 뾰족한 얼굴에 서로 다른 눈동자는 무언가를 뚫어지게 응시하고 있다. 곤충의 가늘고 긴 다리들이 나열된 숫자에 걸쳐 있다. 숫자판 사이사이 빼곡히 적힌 글자배열이 머리카락을 쭈뼛 세운다.
그레고르는 나이 든 아버지와 병약한 어머니, 어린 여동생을 돌봐야 하는 집안의 가장이다. 자신이 처한 상황에 굴복해야 하는 운명을 지녔다. 의지와 상관없이 매일 새벽에 일찍 일어나 기차를 타고 일터로 가야만 한다. 때로는 편하게 쉬고 싶지만, 현실은 그를 외면한다. 가기 싫은 곳, 피하고 싶은 고객을 만나 상담해야 한다. 그는 그 일을 ‘여행’이라고 표현했다. ‘아아, 세상에! 나는 어쩌다 이런 고달픈 직업을 택했단 말인가. 허구한 날 여행만 다녀야 하다니’(P.8) ‘저는 여행하지 않고는 아마 살 수 없을 겁니다.’(p.33) 그에 따른 소득을 ‘집으로 돌아와 그 돈을 식탁 위에 올려놓으면 식구들은 모두 행복해서 입이 벌어졌다.’(p.56) 그들의 행동에 그레고르는 길든다. 사랑하는 가족은 그가 입었을 힘든 과정 따윈 아랑곳없다.
집안의 경제력이 상실된 아들이 벌레로 변하자 가족의 반응은 제각각이다. 5년째 아무 일도 하지 않는 아버지는 그를 학대하고, 천식을 앓는 어머니 또한 아들을 보기만 해도 기절한다. 열일곱 살 여동생 그레타만이 안쓰러움에 한동안 먹을 것과 청소 등을 한다. 점차 시간이 길어지자 가족들의 태도가 돌변한다. 소득의 원천이었을 땐 귀했으나 한 마리 벌레에 불과하여지자 더는 가족 구성원이 아니다. 소중했던 것도 효용 가치가 사라지면 가차 없다. 아버지가 일부러 던진 사과는 아들에겐 치명타다. ‘그것은 그레고르의 등을 그대로 맞추어 깊숙이 들어가 박혔다.’(p.86) 억눌리고 버겁기만 하던 아들이 숨을 거두자 ‘자아, 이제 하느님께 감사를 드려야겠다. 잠자 씨가 성호를 긋자 세 여자도 따라 했다.’(p.120) 인간은 변화에 얼마나 민감한가. 사람이 가진 본질의 기능과 상실, 그 생과 사의 교차점이 극명하게 드러난다.
카프카의 생애에 아버지의 존재는 많은 영향을 끼쳤다. 엄격하고 가부장적이었다. 자식은 무조건 손아귀에서 휘두를 수 있다고 생각했다. 아들에게 하고 싶지 않은 법 공부를 시켰다. 그는 거부했다. 보험회사 직원으로 일하며 글을 쓰다 41세의 생애를 마쳤다. 가족에게 끊임없이 사랑하는 마음을 간직하기란 쉽지 않다. 불가항력으로 자신에게 벌어진 참상을 부정하고자 무진 애를 써도 그것은 현실에선 어렵다. 그러나 문학은 가능하다. 카프카는 작품을 통해 보여주었다. 인간은 치열한 경쟁 속에서 한두 번쯤 아니 여러 번 ‘변신’을 꿈꾼다. 삶에 변화를 주고 싶을 때 이 책을 권한다. 문학 하는 사람이나 독자들의 입에 자주 오르내려서 읽지 않았어도 읽은 것 같은 착각을 불러온다. 책을 넘길 때마다 불쑥불쑥 나타나는 흑백 그림은 오싹하지만 오히려 몰입하게 한다. 어쩌면 그곳에 자신의 모습이 숨어있는지 모른다. |
|
체코 출생, 유대계 독일어 소설가. 20세기를 대표하는 작가이자 현대 실존주의 문학의 선구자. 유대계 독일 작가. 현대 사회 속 인간의 존재와 소외, 허무를 다룬 소설가 프란츠 카프카의 변신을 구매했다. 내용은 대충 알고 있었지만 루이스 스카파티의 삽화와 함께 보니 시작적인 충격이 더해졌다. 문학동네에서 이번에 출판한 변신은 삽화를 좋아하는 독자라면 추천한다. |
|
한 가정의 가장 노릇을 하며 생계를 책임 지던 그레고르 잠자는 어느 날 아침 눈을 뜨자 벌레로 변해있었다. 자신이 벌레가 되어버린 황당한 상황에도 회사에 얽매여 안절부절못하는 그레고르 잠자의 모습을 보니 그가 짊어진 무게가 느껴져 슬퍼졌다. 가족들 중 여동생은 처음엔 벌레가 되어버린 그레고르에게 밥까지 챙겨주며 보살피지만 일을 해서 돈은 벌어올 수 없는 그레고르는 시간이 지남에 따라 쓸데없는 짐짝이 되어버리고 말고, 가족들도 서서히 그의 죽음을 바라게 된다. 자본주의 사회에 일의 노예가 되어 살아가는 사람들. 그레고르는 그 노예의 길을 인간이 아니게 됨으로써야 벗어났다. 어렸을 때 읽은 것보다 지금 읽어서 더 와닿는 것처럼 왠지 나중에 다시 읽으면 더 슬프고 충격적일 것 같다.
|
|
카프카의 대표적인 소설 딱딱하기 쉬운 고전을 삽화와 함께 새롭게 발행한 신간이다.
어느날 아침 눈을 떠 보니 내가 벌레로 변신이 되어있다 (그 가정부가 말하기를 말똥구리라나) 여기서의 변신은 많은 의미를 담고 있는 듯 하다 그당시의 현대를 살아가던 평범한 샐러리맨이었던 잠자 어찌보면 식구들의 생계를 책임지고 자신의 생활은 없고 상사의 눈치와 고단한 일상 하지만 가족은 그것을 너무도 당연히 생각한다
지금도 그리 다르지는 않은 듯 현실을 도피하고 싶은 변신인지 아니면 현실을 대변하는 변신인지 그보다 중요한 것은 무의식적으로 그날을 살아가고 관계를 맺고 있는 가족들과 함께 나 자신 또 그들을 바라보게 된다,
|
|
내용도 들어서 알고 있었지만 워낙 유명한 책이고 얇으니까 한번은 읽어봐야지 하는 마음으로 도서관에서 대여를 했다. 처음에는 그림 때문에 읽기가 망설여졌다. 읽고 나니 소장해야겠구나 아이들에게 꼭 읽혀야겠구나 싶어서 구매를 했다. 인간의 가치는 무엇으로 설명할 수 있을까?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이 없거나, 돈을 벌 수 없는 인간은 존중받지 못한다는 현실을 보면 인간의 가치란 돈으로 환산되는 것만 같아 씁쓸할 때가 많다. 인간이 아니라 쓸모없는 벌레라니. 정말이지 충격적인 비유다. 나 또한 언제든지 벌레가 될 수 있음을 알기에 책을 읽는 내내 고통스럽다. 갑작스러운 실업, 불의의 사고나 질병으로 인한 장애 등등 위험은 언제 닥쳐올지 모르기 때문이다. 아니, 이미 나는 벌레인가? 오래 전 맘충이라는 말을 처음 들었을 때가 떠오른다. '자고 일어났더니 내가 벌레가 되어 있었다.'고 생각하는 순간 이 책이 떠올라 읽어보려고 도서관에 갔었다. 이미 나는 벌레고 각종 벌레로 가득한 사회에 살고 있구나... 혐오로 가득한, 물질만능주의 한국사회에서 벌레가 아닌 인간으로 살려면 인간의 가치를 어떻게 정의해야할까? 아직 어린 우리 아이들에게 인간의 가치를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한가득 고민을 안겨주는 책이다. |
|
카프카의 변신이라는 책은 너무나도 유명하여 제목은 예전부터 알고 있었고 왠지 내가 읽어 본 것 같다는 느낌이 있었는데 왠지 모르지만 지금 다 읽고 나서도 데자뷰가 있다. 이책은 글뿐만 아니라 그림도 있는데 왠지 차갑고 쓸쓸한 느낌이 있어 더 슬프다.
가족이라는 중요한 명제는 언제나 동서양을 막론하고 최고의 가치이다. 주인공도 그렇게 생각하면 가족을 위해 최선을 다해서 살고 있었는데 어느날 잠에서 깨어나니 벌레의 모습을 하고 있다. 그모습을 글을 통해서 상상하는데 이 책에는 그림이 그려져 있어 상상력을 제한 하고 있다. 처음에는 주인공도 꿈이겠거니 생각하고 잠에서 깨어나면 모든게 정상으로 돌아올것이라고 생각하는데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벌레는 벌레인 것이다. 그후부터 모든 슬픈일들이 생기기 시작한다. 직장 상사는 처음부터 소스라치게 놀라 도망가고 그렇게 의지했던 가족들도 마찬가지 반응 이었다. 처음에는 그래도 주인공을 잘 대해주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벌레는 천덕꾸러기가 된다. 그 갈등의 폭발은 주인공이 어머니를 기절시켰다고 생각하는 아버지의 오해로 벌레의 등에 사과가 박힌 일이다. 여기서 어머니의 애처로운 만류가 없었다면 주인공은 아버지에의해 죽게 되는 비극적인 결말이 되었을 것이다. 결국 주인공이 죽기를 바라는 가족의 마음이 전해지자 더 이상 삶의 의미를 찾지못한 벌레는 서서히 죽는다. 그러나 가족들은 일말의 죄책감도 없이 마음이 홀가분 한듯 앞으로의 계획을 세우며 기뻐한다. 인간이 무엇인지 가족이 무엇인지 깊은 생각에 빠진다.
어쩌면 우리 인간은 모두 언제나 벌레의 처지가 될 수 있지 않을까? 라는 생각이 든다.
|
|
대학 영어 교재에 수록되어 있었던 변신 당시에도 굉장히 특이한 스토리여서 기억하고 있는 중에 다시 한번 읽기로 결심했습니다. 책 크기가 일반적이지 않아 아쉬웠지만 삽화가 굉장히 매력적이었습니다. 자고 일어나니 내가 아닌 동물이 된다는 이야기는 '소가 된 게으름뱅이'처럼 우리나라에도 있지만 결국 다시 사람으로 돌아와 부지런해진다는 해피엔딩으로 끝납니다. 하지만 변신에서는 가족들의 생계를 책임지는 주인공이 어느날 거대한 곤충으로 변하게 되며 그를 보살펴줄 가족들도 결국은 등을 돌려 아사하게 된다는 내용입니다. 알고보니 꿈이었다, 다시 사람으로 돌아와 가족들과 행복하게 산다 따위의 내용이 아닙니다. 작가인 카프카에 대해서도, 실존주의 철학도 잘은 모르지만 내가 나 자체로 의미가 있느냐 (사람이든지, 곤충이든지)를 말하고 싶은 소설인 것 같아요. 짧지만 인상 깊이 남은 소설이었습니다. |
| 옛날부터 읽고싶었던 책인데 어디껄로 살까 고르다가 이 책의 그림이 맘에 들어 이걸로 샀다. 우울하고 어두운 소설의 분위기와 참 잘어울리기도 하고 기괴함을 한층 더해주는.. 소설 자체도 좋았지만 정말 그림이 크게 한 몫 했다고 봄. 처음엔 단순히 가족들이 너무한거 아닌가 저걸 어떻게 모를수가 있을까 생각했지만 수록된 그림 덕에 구체적으로 상상해볼 수 있게되어 신중하게 생각해보니 나라고 곧바로 이 벌레는 우리 가족이 변한거라 생각할 수 있었겠나 싶기도 하고.. 소설이 의미하는 바같은건 이미 많은 사람들이 이야기해왔으니 내 리뷰는 여기서 끝 |
| 사두었던 책이라서 무심결에 들었다가 벼락처럼 충격을 준 책~ 난 과연 어떤 관계속에서 살고 있는가를 생각하게 했다. 충격이 심했는지 문장하나마다 떨리는 느낌에 몰입도 최상. 어떻게 이런 글이 써졌을까.톨스토이의 ' 이반 일리치의 죽음' 에서 느꼈던 서글픔을 느꼈다. 가족은 사랑이라는 단단한 끈으로 이어진 것이라는 것에 의문을 갖게된다. 많은 ?을 생각하게하는 아픈 책이다. 주인공의 세세한 활동을 묘사한 부분에는 전율까지 느끼면서 짧지만 긴 시간 힘들어야하는 책. |
|
책은 정말 얇지만 그 내용을 생각한다면 결코 얇다로 할 수는 없을것이다. 주인공이 어느날 갑자기 벌레로 변신하고 가족의 분위기 변화와 그 심리, 책의 도입과 결말을 비교해 본다면 얻어가는 것이 정말 많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뿐만 아니라 책 곳곳에서 나의 일상과 비교해서 읽으며 많은 생각을 할 수 도 있을것이다. 생각하건데, 이 책은 읽는데 그다지 많은 시간이 걸리지는 않지만 내용 해석에 있어서 많은 시간이 걸릴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