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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어른들이 싸움을 벌이면 힘 없는 아이들과 아낙네들만 살기가 어렵다. 제2차 세계대전에서 도이칠란트는 히틀러의 미친 짓 탓으로 쑥밭이 되어버렸다. 싸움은 끝났지만 서울인 베를린도 폭탄을 맞아 여기저기 건물들이 무너지고 엉망이 되었다.
이런 베를린을 바탕으로 어른들의 잘못으로 아이가 사람답게 살지 못하게 되는 모습을 그린 흑백 영화는 로베르토 로셀리니 감독이 1948년에 만든 <독일 영년 Germania anno zero / Germany Year Zero>다.
2. 아픈 아버지를 돌보려 술집에서 미국 군인들과 춤을 추면서 돈을 버는 누나 에바(잉게트라우드 하인즈), 막일이라도 하면서 돈을 받으려고 나이를 속여보지만 어른들이 끼워주지 않자 나중에는 훔치는 일에도 끼어드는 에드문트 쾰러(에드문드 모슈케). 누가 이들을 잘못 산다고 나무랄 수 있으랴?
아직은 배움터에 다니고 동무들과 어울려 놀아야 할 나이인 열두 살 짜리 에드문트의 삶은 어른들 탓에 어린양을 부려보지도 못하고 배배 꼬였다.
350만이 살아가는 베를린이지만 싸움에서 졌고 도시는 부서질대로 부서져 보기에 안쓰럽다. 사람들은 나라에서 주는 먹을거리를 타서 먹고 살아야 하는데, 에드문트 집은 하인츠가 나치 군대에 있었기 때문에 집에 숨어 살다보니 아버지를 더해서 모두 네 사람이지만, 세 사람 몫의 배급만 받을 수 밖에 없다.
입은 넷인데 셋이 먹을 끼니밖에 얻을 수 없으니 누가 벌어야 할까? 아버지는 아파서 늘 누워 있고, 큰 아들 칼 하인츠는 숨어있으니 밖으로 나갈 수 없다. 그러니 멀쩡한 누나 에바와 어린 에드문트가 나갈 수 밖에.
이 일로 아버지와 하인츠는 늘 다툰다. "나는 있는 것 없는 것을 다 팔아서 이제껏 버텼다. 너는 뭐 하는거냐? 날마다 숨기나 하고..." "아버지는 제가 끌려가길 바라세요. 저도 이러고 싶지 않아요..."
밤마다 입술을 붉게 칠하고 나가는 누나 에바를 보는 에드문트는 뭔가가 잘못 되었다고 생각한다. "누나, 왜 밤에 나가? 그냥 집에 있어..." "다른 생각 하지 말고 집에서 자. 누나는 나갔다 올테니..." 에바가 할 수 있는 말은 이것 뿐이다.
3. 그런데 어른들은 힘겨운 삶에 지쳤는지 애보다 못한 모습을 보여준다. 감자를 얻어 돌아오느라 밤을 새운 탓에 아침에 들어온 에드문트한테 아버지는 따귀를 때린다. 집 임자는 전기를 더 쓰려고 몰래 끌어다 쓰고, 나중에 들키자 에드문트네 잘못이라고 우긴다. 또 에드문트를 가르쳤던 선생은 히틀러가 연설하는 레코드판을 미국 군인들한테 팔아 오라고 시킨다. 아무리 먹을 게 없고 힘들다 하더라도 어른이 할 짓이 아니다. 모두 나이 값을 못한다.
먹을 입을 하나 덜자고 아픈 아버지한테 약을 먹이려는 에드문트. 누가 이 아이에게 짐승의 마음을 주었는가? 나중에 제가 한 짓을 생각해보면 어찌 살려고...
또래 아이들은 같이 놀아주지 않고, 어른들은 힘든 일만 시키면서 괴롭히니, 에드문트는 어디 몸 둘 데가 없다. 아니 마음을 둘 자리가 안 보인다. 이럴 때 에드문트를 감싸 안아주고 보살펴주는 엄마가 있었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무방비 도시 Roma, città aperta / Open City>를 만들었던 로베르토 로셀리니 감독의 눈길은 있는 그대로를 보여주지만, 어른들의 잘못 때문에 아이들이 아픔을 겪는 모습을 드러내 보인다.
에드문트를 맡은 에드문드 모슈케의 아이답지 않는 연기가 소름을 돋게 한다. 보고나면 발길이 안 떨어진다. 아이를 저렇게 만든 어른들이 밉다. 오갈데 없는 불쌍한 에드문트...
디브이디는 오래된 탓에 화면이나 소리가 좋지 않다. 볼만한 보너스도 없다. 그냥 텔리비전에서 해주는 영화로 생각하고 보아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