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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 뒤의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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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삶을 다시 살 수 있다면 이 소설은 이 불가능하지만 누구라도 염원하는 삶을 보여준다. 주인공 어슐라는 태어나다 탯줄에 걸려 죽지만, 어떤 다른 극적인 상황으로 살아날 수 있었다. 어릴 적 익사하지만, 또 극적으로 살아나 새로운 삶을 살아간다. 추락사하지만, 역시 상황은 바뀌어 살아남고, 독감으로 죽지만, 상황이 달랐다면 살아남아서 어떤 삶을 살았을 지를 보여준다. 그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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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삶을 다시 살 수 있다면 

이 소설은 이 불가능하지만 누구라도 염원하는 삶을 보여준다주인공 어슐라는 태어나다 탯줄에 걸려 죽지만어떤 다른 극적인 상황으로 살아날 수 있었다어릴 적 익사하지만또 극적으로 살아나 새로운 삶을 살아간다추락사하지만역시 상황은 바뀌어 살아남고독감으로 죽지만상황이 달랐다면 살아남아서 어떤 삶을 살았을 지를 보여준다그런 죽음 말고도 어떤 이를 만나 결혼을 하고불행한 삶을 살아가지만그녀에게는 또 다른 삶을 살아갈 기회가 주어진다독일에 갔다가 발이 묶여 버리는 삶도 가능했지만영국으로 돌아와 2차 세계대전 때 구조대원으로 활약하는 삶도 가능했다전투기 조종사였던 아끼는 동생은 독일 상공에서 비행기 폭발로 사망했지만살아남아 놀라움을 선사하기도 한다그래서 제대로 삶의 꽃을 피워보지도 못한 그녀의 삶을 동정하다 다시 살아나 다른 삶을 살아가는 그녀를 보면서 안도의 숨을 쉬기도 하고폭력적인 남편과의 결혼으로 불행한 삶을 살아가는 어슐라를 보면서 연민을 느끼다가 다음 장에선 주체적인 여성으로 성장해가는 그녀를 보면 또 다행스럽다 여긴다.

 

이렇듯 이 소설은 수많은 대체되는 삶이 어떠할 지에 대해서 반복적으로 보여준다말하자면 삶의 다른 버전이다엄격히 얘기하자면 다른 얘기지만, ‘다중 우주(멀티버스)’와도 비슷하다한참 전 TV에서 최고의 인기를 구가하던 이휘재의 코미디 그래 결심했어!”도 비슷하다또 얼마 되지 않은 영국 영화 <어바웃 타임도 비슷한 상상력이다금방 생각나는 그런 것 말고도 수많은 대체할 수 있는 삶달리 살았을 수도 있는 삶에 대한 염원은 정말 유구하고도 보편적이다.

 

그런데 그런 유구하고도 보편적인 염원을 소설로 쓰고삶에 대해서 진지하게 고민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들어 낸다는 것은 다른 얘기다이 소설의 제대로 살 수 있을 때까지 다시 살 수 있다면정말 세상은 좋아질까다시 삶을 살아간다면 정말로 바르고 훌륭한 삶을 살아갈 수 있는 보장이 있을까그렇게 살아가는 것을 정말로 바랄 수 있을까 

 

결국 이 소설은 판타지다우리는 누구도 어슐라처럼 한번 살았던 삶을 지우고 새로운 삶을 살아갈 수가 없다지금까지 살아온 궤적에서 출발해서 덧붙이고더 나가가는 삶을 살아갈 수 있을 뿐이다그래서 지금 살아가는 삶이 소중하다다시 살 수 없는 삶이니이 삶을 무효로 할 수 없는 운명이니 지금 잘 살아야 하며최선을 다해야 한다물론 개인의 삶이나역사나 만약이라는 가정은 필요하다그런 것이 없다면 지금까지 살아온 삶을 되돌아볼 수 없으며반성 없이 살아가는 삶이 될 수 밖에 없다그때 그러지 않았다면 나의 모습은 어떻게 달라졌을까를 상상하는 것은 현재에 바탕을 두고 미래의 삶을 어떻게 살아가야 할 것인지 확인하고다짐하는 태도이지현재의 삶을 부정하고아무렇게나 살아가기 위한 변명이 되어서는 안 된다.

 

그리고 이 소설은 전쟁의 잔혹함에 대한 고발이기도 하다그래서 소설의 첫머리와 마지막에서 어슐라는 용사가 되어 아직 독일을 지배하기 전의 총통을 향하여 총을 쏜다다시 사는 삶이 정말로 성공적일 지 확신할 수 없다는 말은 맞지만소설과 같이 그녀가 성공했다면 적어도 그 수많은 죽음은 막을 수 있었을 것이다시스템이 막지 못했다면 미래를 들여다본 누군가 용사가 되어 역사의 흐름을 바꿀 수 있었다면 어땠을까하는 작가의 진한 바램을 읽는다그래서 소설은 조금 허무하기도 하다.

YES마니아 : 로얄 n*****m 2020.01.27. 신고 공감 7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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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mor fat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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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모르파티' 니체는 내내 이에 대해 썼지. 난 뭔지도 몰랐어. '어모어 패티'인 줄 알았다니까...." "'운명애'라는 뜻이지?" "받아들이라는 의미야. 당인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든 수용하라. 좋은 일이든 나쁜 일이든 상관없이. 죽음은 수용하는 것 이상의 일인 것 같아."   "결국 인생은 한 번뿐이니까 우린 노력하고 최선을 다해야 해. 결코 '옳게' 살 수는 없겠지만 '노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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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모르파티' 니체는 내내 이에 대해 썼지. 난 뭔지도 몰랐어. '어모어 패티'인 줄 알았다니까...."

"'운명애'라는 뜻이지?"

"받아들이라는 의미야. 당인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든 수용하라. 좋은 일이든 나쁜 일이든 상관없이. 죽음은 수용하는 것 이상의 일인 것 같아."

 

"결국 인생은 한 번뿐이니까 우린 노력하고 최선을 다해야 해. 결코 '옳게' 살 수는 없겠지만 '노력'은 해야 하지."

"계속 반복할 수 있는 기회가 있다면 어떨까? 결국 옳게 해낼 때까지 말이야. 그럼 멋지지 않을까?"

 

책을 읽는 내내 '아모르파티'를 중얼 거렸는데 주인공인 어슐라에게 어울리는 단어라고 생각해서이다. 어쩌면 지루한 삶을 살고 있는 나에게도.

시간여행을 다룬 여러 책을 읽어본 나에게도 '라이프 애프터 라이프'는 참 흥미로운 책이었다. 주인공 어슐라의 죽음으로 인해 그녀 인생이 나아지기도 했지만, 또 다른 삶은 다시 생각만 해도 공포로 몸서리처질 만큼 끔찍하기도 했다.

 

어슐라가 살아온 인생의 정 한가운데는 '전쟁'이 있었다. 어렸을 때는 1차 세계대전이, 한창 꿈을 펼칠 나이에는 2차 세계대전이 노려보고 있었으니까. 그녀는 여러 가지 삶을 살아가면서 고향인 영국-폭스 코너에서 전쟁을 경험하기도 했고, 2차 세계대전 때는 독일에서 삶을 이어가기도 했다. 고향이든, 독일이든 혹은 유럽 어디서든 전쟁속의 삶은 비참한 것이었다. 그녀 자신이 죽기도 했고 혹은 사랑하는 사람이 죽기도 했으며, 자기 자신이 죽지 않았을 때는 죽은 사람들의 시체조각을 건져내야 했으니 말이다.

 

그래도 그녀가 비참하다고 할 수도 있고, 혹은 아름답다고 할 수도 있는 삶을 거쳐 가며 떠오른 건 정신과 의사와 상담하며 알게 된 '아모르파티'였다. 어떻게 보면 수동적으로 그저 인생을 받아들이라는 뜻일 테지만, 어슐라도 그렇고 나도 그렇고 아모르파티를 'move on'으로 받아들였다.

 

앞으로 나아가는 것. 한 사람의 되풀이되는 인생을 내내 들여다보며 느낀 건 그것이었다. 아무리 아프고 슬프고 처참해도 나아가는 것-그것이야말로 한 번뿐인 우리 인생에 주어진 황금열쇠가 아닐는지. 몇 번이고 되풀이해서 '옳게' 살아가지 못할 바에는 과거를 가슴속에 쥐어 잡고 미래를 향해 나아가는 것이 우리에게 주어진 아모르파티가 아닐까.

p******0 2015.06.10.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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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생의 잘못을 다음 생에서 만회할 수 있다면..
"이번 생의 잘못을 다음 생에서 만회할 수 있다면.." 내용보기
What if you had the chance to live your life again and again, until you finally got it right? 책 표지에 쓰여 있는 문구가 눈길을 잡아챈다. ‘제대로 된 삶을 살때까지 계속 해서 살 기회가 있다면’ 정도로 해석될 이 문장이 소설의 컨셉이다. 그리고 제목이 말해주듯 이 소설은 반복되는 삶에 대한 얘기다.  주인공 어슐라 (소설 속에서 어슐라에는 작은 암곰이라는 의미가 조금
"이번 생의 잘못을 다음 생에서 만회할 수 있다면.." 내용보기

What if you had the chance to live your life again and again, until you finally got it right?

 

책 표지에 쓰여 있는 문구가 눈길을 잡아챈다. 

‘제대로 된 삶을 살때까지 계속 해서 살 기회가 있다면’ 정도로 해석될 이 문장이 소설의 컨셉이다. 그리고 제목이 말해주듯 이 소설은 반복되는 삶에 대한 얘기다. 

 

주인공 어슐라 (소설 속에서 어슐라에는 작은 암곰이라는 의미가 조금있다고 나온다)는 1910년 2월 11일 눈이 많이 오는 날, 영국의 중산층 집안에서 태어난다. 첫 번째 태어났을 때는 탯줄에 목이 감겨 태어나자 마자 죽지만, 그 다음 생부터는 이전 생의 잘못된 부분들을 고쳐나가며 조금씩 더 오래, 더 나은 삶을 산다는 것이 이 책의 줄거리이다.


언뜻 보면 불교의 윤회와 같다. 그러나 윤회가 다른 사람으로 태어나는 것과 다르게 주인공 어슐리는 모든 생에서 어슐라로 태어난다. 죽는 이유는 매번 다르다. 물에 빠져 죽기도 하고, 매 맞는 아내로 살다 남편에게 맞아 죽기도 한다. 전쟁 중 폭격으로는 여러 번 죽는다. 죽음의 원인이 다르기에 다른 삶을 산다. 그러다 또 죽는다. 죽어야 다시 태어날 수 있으니 죽음은 곧 새로운 시작이다. 어슐라는 탄생-죽음-탄생-죽음을 반복한다. 불교에서는 열반에 들면 윤회에서 벗어나지만 어슐라의 삶에는 열반은 없다. 그저 좀 더 나은 삶을 위해 다시 태어난다.


이러한 반복적 탄생-죽음은 축복일까, 저주일까? 어슐라는 매번 삶에서 기쁨과 슬픔을 함께 겪는다. 특히 가족을 잃거나 전쟁으로 인해 겪는 참담함은 산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가를 느끼게 한다. 어느 생에선가 어슐라는 백 년도 더 산 듯 하다며 피곤하다 한다. 이전 생의 기억을 몸에 새겨두고 있기에 의식은 느끼지 못할 지라도 삶의 노곤함은 축적되어 있으리라.


그러나 태어날 수록 더 좋은 삶을 산다면 다시 태어난다는 것은 축복일 수 있다. 우리가 다시 태어난다면 다른 선택, 다른 삶을 살고 싶다는 얘기를 종종 하는 걸 보면 다시 태어난다는 것에 대한 갈망이 있다는 방증 아니겠는가. 또한 삶의 오류를 수정하면서 점점 더 완벽해진다면 그것만큼 인간이 신에 다가갈 수 있는 기회가 어디 있을까. 작가 역시 반복되는 태어남에 의미를 부여하기 위해서인지 “연습은 완벽하게 만든다”라는 말을 소설 후반부에 반복적으로 배치함으로써 반복적 탄생은 완벽한 인생으로 가는 방법이라 말하는 듯 하다.


문제는 제대로 산다는 것의 의미일 것이다.  제대로 산다는 것은 어떻게 사는 걸까? 몇번을 태어나서 살면 제대로, 완벽하게 살까? 완벽한 삶이란 완벽한 인간이 되는 것일까? 완벽한 인간이란 무엇일까? 인간이 신이 되는 걸까? 


제대로 살때까지 다시 살 기회가 주어지고, 연습이 완벽을 만든다는 쉬운 말들이 결국 인간의 근본적 선택에 대한 질문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작가는 소설 시작 전에 니체의 <즐거운 학문>의 문구를 인용했나 보다.


어느 날 네가 가장 처절한 고독을 느끼고 있을 때

악마가 파고들어와 이렇게 말한다면 어떨까.

"네가 지금까지 살아왔고, 지금도 살아가는 이 인생을 다시 한 번,

그리고 무수히 많이 살아내야 한다."

그럼 벌렁 드러누워 이를 갈면서 그 악마에게 욕을 퍼붓겠는가?

아니면 이렇게 대답하는 엄청난 순간을 경험하겠는가?

"너는 신이며 나는 이보다 더 신성한 이야기를 들어본 적이 없다."


당신에게 다시 태어난다는 것은 축복인가, 저주인가?

j*****o 2016.09.26.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