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전

리뷰 (1)

한줄평
평점 분포
  • 리뷰 총점10 0%
  • 리뷰 총점8 100%
  • 리뷰 총점6 0%
  • 리뷰 총점4 0%
  • 리뷰 총점2 0%
연령대별 평균 점수
  • 10대 0.0
  • 20대 0.0
  • 30대 0.0
  • 40대 0.0
  • 50대 8.0
리뷰 총점 종이책
지극히 학자적 입장에서 바라본 '성서'
"지극히 학자적 입장에서 바라본 '성서'" 내용보기
성경은 전 세계와 전 역사를 관통하는 가장 위대한 책이다. 또 어느 판타지보다 가장 신비로우며 모험과 긴장 그리고 사랑이 충만한 책이다. 또 가장 잔인하며 잔혹하고 슬픈 책이다. 그러나 태초 이래로 가장 많은 사람들에게 읽힌 책이지만 책이 아닌 바로 성경이다. 주관적인 관점일수도 있지만 성경에 관한 통계는 그 어느 책이나 경전에 비교해서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아니 비교
"지극히 학자적 입장에서 바라본 '성서'" 내용보기

성경은 전 세계와 전 역사를 관통하는 가장 위대한 책이다. 또 어느 판타지보다 가장 신비로우며 모험과 긴장 그리고 사랑이 충만한 책이다. 또 가장 잔인하며 잔혹하고 슬픈 책이다. 그러나 태초 이래로 가장 많은 사람들에게 읽힌 책이지만 책이 아닌 바로 성경이다. 주관적인 관점일수도 있지만 성경에 관한 통계는 그 어느 책이나 경전에 비교해서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아니 비교할 가치조차도 희박하다. 최근의 통계를 따르면 중년이 되어갈수록 성경을 읽는 비율이 더욱 높아진다. 중년에서 노년으로 넘어갈수록 다른 책보다도 성경을 선택하는 비율이 높아지는데 이는 삶과 인생의 경륜이 쌓일수록 더욱 더 인간의 유한성을 깨닫고 자신을 창조한 창조주에게로 돌아가려는 회귀본능적 마음이 있음을 보여준다.

 

누구에게나 필요하며 누구나 읽을 수 있지만 생각보다 쉽지 않은 성경. 게다가 먼 이스라엘 역사를 시시콜콜 사람 이름까지 나열하며 적어내려간 성경을 끈기 있게 읽는 것에는 인내가 필요하다. 시대적 상황과 문화적 상황을 알아야 하고 이스라엘 민족성과 그들의 신본주의 사상을 알아야만 성경을 더 잘 이해할 수 있다. 더군다가 성경이 한 권의 책이 아니라, 구약시대 39권, 신약시대 27권을 합하여 66권의 책을 합한 것이니 그러한 실타래를 맞추어가며 읽는 것 또한 쉽지 않은 일이다. 더 나아가 소설이거나 시문학이거나 역사서이거나, 한 장르만 읽어도 쉽지 않은 일인데 성경은 법률서, 역사서, 시가서, 서신서, 예언서 등 다양한 장르가 혼합되어 있어서 더욱 읽기가 쉽지 않은 책이다.

 

그런 면에서 이원우 교수의 ‘성서’는 시기적절한 책이다. 이원우 교수의 “성서”는 읽어야 하지만 너무나 읽기 어려운 고전을 당대 최고 학자들의 통찰력으로 쉽고 흥미진진하게 쓴 살림 출판사에서 시리즈물로 내는 우리 시대의 고전 총서로서 열 번째에 해당되는 저작물이다. 부제로는 “이 시대의 절대사상”이라는 타이틀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이 부제는 ‘성서’에만 붙는 부제가 아니라 기획물로서의 부제이다. 그러니까 성서가 이 시대의 절대사상이 아니라 이 시대의 절대사상이라고 불리우는 여러 사상 가운데 하나에 해당된다는 의미이다. 이것은 출판사의 명백한 불찰이다. 그런 부제, 그런 의도에서 기획을 시작했다면 당연히 “성경”은 그 첫 번째 자리에 놓였어야 한다. 그러나 아쉽게도 기획서답지 않게 ‘성서’는 열 번째에 그 모습을 드러내었다.“예수 그리스도”가 4대 성인 가운데 하나로 인식되는 바로 그 상황이라면 이러한 처사가 충분히 이해될 수 있다. 어쩌면 “성경”을 ‘이 시대의 절대사상’의 첫머리에 놓았다면 출판사는 안티기독교인들에게 꽤나 시달림을 당해야 했을지도 모른다. 적어도 최근의 인터넷 문화를 보면 그러한 우려는 가볍게 보아 넘길 수가 없다.

 

그러나 설령 위와 같은 여러 가지 까닭들이 도처에 존재한다 하더라도 ‘절대사상’이라는 명제를 쓰면서 “성경”을 그 첫 번째 주인공으로 내세울 용기가 없었다는 것은 적어도 직무유기로 보여진다. 하지만 출판사나 저자가 “성경”을 굳이 “성서”로 이해하고 그 “성서”를 고전으로서 해석하려 시도했다면 굳이 그 저작의 순서를 따지는 게 그다지 의미가 없을지도 모르겠다.

 

저자는 1부를 시작하는 말머리에서 현대인들이 ‘성서’를 읽어야만 하는 까닭을 ‘성서’가 ‘서양 세계의 정체성을 수립하고 규정하는 데 절대적인 영향을 주었’기 때문이라고 했다. 서양의 어떤 사회제도, 국가, 정치, 문화, 예술, 삶에 성서의 원리가 적용되지 않는 곳은 없다고 했다. 그러나 그러한 이유로 인해 현대인들이 성서를 읽어야만 한다면 현대인들은 성서 말고도 읽어야 할 다양한 책들이 존재할 가능성이 있다. 동시에 아시아 국가의 사회제도, 국가, 정치, 문화, 예술, 삶에 영향을 끼친 불경도 마찬가지로 현대인들은 읽어야만 한다. 성경이 서양 국가의 다양한 영역에 성경의 원리가 적용되고 있기 때문에 읽어야 한다는 것은 너무 안이한 시각이다. 지극히 인본주의적인 시각이다. 그가 들어가는 글에서 ‘하나님과의 관계가 깨어져 소외된 상태로 전락한 이 세상을 향해 그 관계를 회복하고자 끊임없이 찾아오시는 하나님 이야기’라고 밝힌 그 대목을 주목한다면 성경은 철저히 신본주의 책일 수밖에 없다. 인간의 손에 의해 쓰여졌지만 하나님의 영이 기록한 책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성서’가 아닌 ‘성경’이 되어야 하는 것이다.

 

저자는 초반부에 성경의 다양한 접근방식의 관점을 넓혀준다. ‘The Bible'이 book의 헬라어인 ’biblia'에서 유래했다는 사실을 통해 ‘책’의 어원이 사실 ‘성경’임을 알려준다. 천지창조를 통해 세상의 기원을 밝힌 책이 책의 기원이 되지 않는다면 이 또한 이상한 일일 것이다. 그는 로마 카톨릭교회, 동방정교회 그리고 개신교의 성경을 꼼꼼히 분석하여 보여준다. 같은 뿌리에서 출발했지만 지금은 서로 달라져버린 다른 종교들의 ‘성경’ 내용을 함께 비교하는 것은 편협한 시각을 넓혀주는 좋은 지식이 될 수 있다.

 

책의 초반부는 저자가 학교에서 강의를 하면서 제자들에게 시험을 치르게 한 내용이 나온다. 더불어 학생이 써 낸 답안도 함께 제시한다. 이러한 내용들은 저자가 ‘성서’를 어떤 관점에서 접근하고 있는지를 간단하게 보여주는 대목이다. 처음에는 책을 읽으면서 ‘왜 이런 내용을 굳이 책의 초반부에 넣어야 했을까?’를 많이 의아해하면서 책을 읽었다. 여전히 그 부분은 풀리지 않았지만 마지막까지 읽으면서 나름대로 해석해볼 수 있는 여유는 생겼다. 그는 글머리에서 하나님의 이야기라고 말하면서 책을 풀어나갔지만, 책 내용은 하나님의 이야기라기보다는 하나님 관점에서 서술하는 이스라엘의 역사해설서라고 보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이다. 굳이 그 안에 사상이니 진리니 하는 말 따위를 굳이 갖다 붙일 필요가 없는, 조금 더 정직하게 말한다면 상당히 실망스러운 책이라고 말하고 싶다. 물론 여기에서 ‘실망’이라는 것은 필자의 ‘기대’에 미치지 못했기에 상대적인 개념으로 나온 것이다. 단지 점수를 주자면 지금까지 바라오던 이스라엘 역사에 대한 시각에 있어서 조금 더 신선한 내용들이 추가되었다는 정도일 것이다.

 

처음에 저자가 밝힌 것처럼 성경을 현대인들이 읽어야 하는 까닭으로 서양의 모든 것이 성경을 통해 헤쳐 나가고 모여든다는 것을 들었다. 그렇다면 성경을 바라보고 이해하고 설명하는 것도 그런 관점에서 접근이 되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저자는 ‘성경의 맥’과 같은 분위기로 이야기를 전개시켜 나간다. 절대사상으로서의 책이 아니라 하나의 역사교양서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지만 교양서로 보기에는 이 책의 무게가 만만치 않다. 즉, 성경에 대한 기초지식 없이 덤벼들기는 어려운 책이다. 그는 학자로서 ‘성서’를 파헤쳐 읽고 연구하고 분석하였기 때문이다. 학자 이전에 신앙인으로서 접근했다면 더 좋은 책이 나오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운 마음이 드는 것도 그 때문이다.

 

모태신앙으로 40년 이상을 평신도 기독교인으로 지내온 필자와 같은 경우, 이 책은 조금은 식상한 면이 있기도 하겠지만, 처음 이 책을 접하는 비기독교인의 입장이라면 오히려 좀 어려울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이 책의 장점은 66권의 성경을 각 낱권으로서의 접근이 아니라 한 권의 책으로 실타래를 풀어나갔다는데 있다. 성경들간의 상호 연관성을 바탕으로 그 책에서 담고 있는 숨겨져 있는 문화적 배경과 심리적 배경까지 나름대로 시원하게 훑고 지나간다. 그러함으로써 왜 성경이 하나님의 이야기인가를 나타내려고 시도한다. 지극히 학문적인 접근이다. 책의 주류를 이루는 2부 ‘하나님의 이야기 : 성서’는 일반적인 신학자들이 성경을 나누는 방식을 따라 나누고 이야기해간다. 천지만물을 창조하는 창조주로서의 하나님으로 시작하는 모세 오경의 토라,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에 정착하지만 끊임없는 불순종으로 실패를 거듭하는 이스라엘의 역사, 족장시대의 막을 내리고 사사시대를 거쳐 왕정시대로 넘어가는 이스라엘, 그러나 솔로몬의 타락으로 이스라엘은 남과 북으로 나뉘고 두 나라는 결국 앗수르와 바벨론에게 망함으로써 이 세상에서 사라지고 만다. 그러나 이스라엘의 역사는 끊임없이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을 예언하며 역사의 중심을 이어간다. 헬라에 망한 바벨론과 암흑시대.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는 이탈리아 로마의 세계통치 시대 속에서 이스라엘은 여전히 신음하고 있다. 예수 그리스도는 당시 식민지 생활을 청산할 새로운 왕으로도 나타났지만 궁극적으로는 구약의 예언을 성취하며 온 인류의 자유를 위해, 지금 이 글을 쓰는 미래의 모든 지구인들을 위한 메시야로 오신 것이다.

 

재미있고 흥미로운 책이었다. 좀더 다른 시각에서의 접근도 좋았고 또 몰랐던 많은 부분에 대한 새로운 지식도 다양하게 흡수되었다. 그러나 여전히 책을 다 읽고 나서도 뜨거운 감동이 찾아오지 않는 것은 책이 주는 무게 때문일까. 학자로서의 접근이 그렇게 느껴지고 다가왔는지도 모르겠다. 더 뜨거운 감동을 원한다면 ‘성경’을 직접 읽는 것이 더 좋은 방법이다. ‘성서’는 ‘성경’을 좀더 다른 시각에서, 다양한 프리즘으로 보여주는 보조 도구일 뿐이다. 그런 점에서 ‘성서’는 아주 훌륭한 책이다.

YES마니아 : 플래티넘 i*******n 2008.10.18. 신고 공감 1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