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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숫자는 어떻게 진실을 말하는가』에서도 그랬는데, 바츨라프 스밀의 책은 현란하단 생각이 든다. 단지 그가 언급하는 숫자들 때문만은 아니다. 그의 사고의 엄밀성이 뻗어 나오고, 뻗어가는, 그 가지들은 저절로 그의 생각에 빠져들게 한다. 물론 숫자가 중요한 역할을 한다. 그의 모든 사고의 근거는 숫자에서 나오니까 말이다. 그의 숫자는 통계 속에 등장하는 그 숫자 그대로이기도 하지만, 엄밀하게 계산된 숫자이기도 하고, 엄정하게 추론에 의해 추산된 숫자이기도 하다. 사실은 그의 숫자 역시 선택된 숫자일 가능성이 매우 높고(가능성이 아니라 실제로 그럴 것이다), 그런 숫자에서 계산되어 나오고, 다시 추산된 숫자들은 그의 생각을 뒷받침하기 위한, 하나의 도구로 철저히, 적절히 작동하고 있을 것이다. 그걸 우리는 객관적이라 부를 수도 있고, 주관적이라 부를 수도 있다.
중요한 것은 그게 객관적인 것인지, 주관적인 것인지가 아니다. 주관적이라면 편협한 것이라 여기고, 객관적이란 것이라면 그의 생각이 아니라고 비아냥거릴 수 있는 게 아니다. 그의 과거에 대한 인식과 그에 근거한 현재에 대한 판단, 그리고 미래에 대한 이야기는 모두 그 객관성과 주관성이 아슬아슬하게 엮여 있거나, 객관성과 주관성의 경계에 놓여 있거나, 혹은 그 둘을 넘어선 지점에 있다. 우리는 어쩌면 그런 현란함에 현혹되는지 모르지만, 그의 근거에 설득되는 경향이 있다.
바츨라프 스밀이 이 책을 쓰는 방식은 다음과 같다. 우선 에너지가 무엇인지에 대해 쓰고 있다. 이는 (그의 개념이 거의 그렇듯) 물리학적인 의미이기도 하고, 산업적인 의미이기도 하며, 또한 식품영양학적이기도 하다. 그 다양한 분야에서의 의미를 하나로 통합하고, 앞으로 그 개념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전개할 것이라고 선언한다.
다음으로는 과거에서 현대에 이르기까지 인간의 생존과 삶에 대해 쓰고 있다. 무엇을 먹어 왔는지, 그 먹을 것을 어떻게 마련해왔는지, 그것을 에너지의 측면에서 쓴다. 그리고 ’현대 문명의 네 기둥‘에 대해 쓴다. 어쩔 수 없이 이 부분이 나중에 기억하고 인용하기 좋은 부분이기도 한데, 그 현대 문명을 뒷받침하는, 아니 결정적으로 유지시키는 4개의 물질은 바로 ’콘크리트, 강철, 플라스틱, 암모니아‘다. 콘크리트, 강철, 플라스틱은 충분히 이해가 가지만 암모니아에서는 고개를 가웃하는 이가 많을 것이다(나도 그랬으니까). 그러나 다시 기억해보자. 앞에서 무엇에 대해 이야기했는지. 그는 식량 생산에 대해 이야기했다. 현대의 80억 인구를 먹여 살릴 수 있는 그 능력이 기저에는 수소와 질소가 1:3으로 결합되어 있는 암모니아가 있다. 물론 지금도 기아 선상에서 허덕이는 이들이 적지 않지만, 공기 중의 질소를 식물이 이용 가능한 형태로 만들 수 있는 방법을, 지금으로부터 100여 년 전에 발명해내지 못했다면 지금 인구의 절반 이상이 사실상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스밀은 명확하게 이야기한다. ’인공지능, 애플리케이션, 전자 문서‘? 물론 대단한 것이지만 우리의 현대는 이런 것에 기본적으로 의존하지 않는다라고. 그리고 이야기한다. 앞의 현대 문명의 네 기둥을 생산하는 데 필수적인 게 바로 ’화석 연료‘이며, 이것은 앞으로도 당분간 변하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그리고는 좀 딴 이야기 같은 이야기를 한다. 세계화에 관해서. 세계화가 네 단계로 이루어졌다고, 마치 세계사 같은 이야기를 하고 있다. 짐작할 수 있다시피 그것은 다음의 이야기로 넘어가기 위한 밑밥 같은 것이다. 세계화가 필연적인 것이 아니라고, 앞으로도 어떨 것인지는 알 수 없는 것이라는 결론은 그의 불가지론이라는 지론을 의미하기도 한다.
그는, 그리고 위험에 대해, 환경에 대해, 그리고 미래에 대해 쓴다. 이것들은 모두 하나로 연결될 수밖에 없는 이야기다. 뻔한디 뻔했던 코로나-19 팬데믹을 제대로 대처하지 못하고 허둥댄 강대국과 강대국의 지도자들의 행태를 비아냥 거리고 있으면서, 그런 상황이 환경, 즉 지구온난화에도 그대로 적용된다고 지적한다. 비관주의자와 기술만능주의자 모두를 배격하고 있다. 비관주의자들이 이야기하듯이 지구가 금방 말하지는 않을 것이며, 기술만능주의자들이 이야기하듯 인간이 가진 기술로 금세 이 절체절명의 위기를 해결해 내지도 못한다는 것이다. 각국의 정상들이 모여서 논의를 하고 선언을 하더라도 무엇이 달라졌느냐고, 그것 하러 모이면서 쓴 이산화탄소가 더 문제라며 역시 조롱한다. 그런 방식으로는 해결할 수 없단 얘기. 그럼 무엇인가? 라는 의문이 들고 질문을 할 수밖에 없는데, 스밀은 앞에서부터 종종 해오던 이야기를 다시 한다. 바로 지금 수준으로도 할 수 있는 일들이 많다는 것. 소비 수준을 줄이고, 지금의 기술로 할 수 있는 것들을 하면서 새로운 기술을 개발해 나가는 것. 말은 쉽지만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읽을 때는 그의 현란함에 빠져 모두 동의하는 것 같았지만, 정신 차리고 생각해보면 그의 진단과 해결책에 모두 동의할 수는 없다. 그는 지구 온난화의 문제를 진짜 절체절명의 지구 위기라고까지는 생각하지 않는 듯하며, 어떤 뚜렷한 해결책을 내놓는 것 같은 느낌도 들지 않는다. 그러나 이것 하나만은 분명하다. 그는 적어도 숫자 하나 제대로 내놓지 못하면서 비관적인 전망을 잔뜩 늘어놓으며 협박하거나, 근거 없이 무책임하게 희망 사항만 읊는 사람은 아니라는 것이다. 그는 최소한 근거를 가지고 이야기한다. 그런 사람들끼리야 대화가 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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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세상 말세다.", "기분 나쁘다고 사람을 때리고 죽이다니 말이 돼?", "세상에 어떻게 저렇게 끔찍한 일이 일어날 수 있어?", "예전에는 저런 일이 없었는데..."
우리는 살면서 점점 자극적이고, 여태껏 상상치도 못한 끔찍한 폭력의 장면과 소식을 마주하주 하고 있으며, 그것을 때로는 겪기도 목격하기도 한다. 지금 사람들에게 물어본다면 단언컨데 열에 아홉은 과거보다 폭력성이 더 늘었다고 응답할 것이다. 빠른 현대화, 도시화, 개인주의화, 공격성의 증가 등과 같이 직접적인 영향과 이런 외생적인 변수가 대부분 대중들과 학자들의 논리 근거가 될 것이다. 그러나, 이런 다수 지배적인 인식과 생각을 전면으로 반박하고 아직은 그래도 인류는 선하다 라는 논리를 주장한 책이 있다. 스티븐 핑거 라는 사람이 쓴 "우리 본성의 선한 천사" 이다. 코웃음 치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당장 내 눈앞에 보이진 않더라도 세계화 정보화 시대 세계, 전국 각지에서 들려오는 사사건건의 폭력의 현장들을 점점 더 접하는 마당에 무슨 논리와 팩트로 주장하냐며. 첫장을 보는 순간 당신의 생각은 바뀔 것이다. 이 책 자체는 사회과학적 분석보다 온갖 자연과학적 분석으로 객관성과 팩트 중심으로 내용이 전개되고 있다.
우리가 과거보다 폭력에 많이 노출되어 있다곤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폭력의 정보를 자극적이고, 많은 사람들이 접할 수 있도록 의도된 것이며, 통계적으로 살펴보더라도 역사적 과거에 비해 현저히 폭력 현상은 줄어들었다는 것이다. 한가지 본인이 예를 들어볼까? 당신이 굶어죽기 직전에 처해있다고 해서 옆집에 쳐들어가 그 사람을 죽이고 약탈하는 것보다는 지인에게 도움을 요청하거나 정부기관에 도움을 받는 것이 정상적인 방법이다. 그러나 과거에는 단순히 먹을 것이 부족하다고 하여 옆 이웃 동네를 침범해서 사람들을 살육하고 여자과 아이들은 노예를 취하는 집단적 살인이 공공연하게 일어났다. 적어도 내 이웃에 가난한 사람이 있다고 해도 목 따일 걱정은 크게 안해도 되는 것이다.
먼 과거부터 현재까지의 문명과 역사, 사회적 현상을 살펴보면서 철저히 팩트를 근거로 하여 저자의 주장을 진행하기 때문에 분량이 너무 방대하다. 번역서 기준으로 1400페이지가 넘어간다. 이 책의 요지는 '그럼에도 인류의 폭력성은 감소되고 있다'라는 것이기 때문에 사람들의 지배적 생각을 바꿀려면 많은 논거 자료들이 필요하기 때문에 자료의 양이 장난이 아니리라 생각된다. 그래서 이 책은 술술 읽히는 책이 아니기 때문에 오랜 기간 마음잡고 읽어야할 책이다.
자로 재보니까 두께가 7.5cm가 넘어간다. 사진으로 보는게 와닿을 것이다. 읽다보면 유발하라리의 인류 3부작<호모데우스, 사피엔스, 21세기~>도 같이 읽으면 독서하는데 쉽게 이해되고 서로 참고할 수 있어서 상당히 도움된다. 아자가트의 <문명과 전쟁>을 현재 읽고 있는데 이 책 역시 병행독서를 하면 상당히 도움이 된다. 막장으로 치닫는 세상이지만, 인류의 폭력성은 점점 줄어든다니 아이러니하고, 인류의 본성은 선하나보다. 성선설이 맞는 것일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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꼭, 지금의 현실의 지배적 체계가 얼마만큼 잘못되어 돌아가고 있는 것인지에 대한 설명을 들으려한 것은 아니었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환경운동가, 기후정의활동가, 채식주의자 및 현대문명 비판자들에게 대놓고 불편하게 '당신들은 구체적이지 못한 근거에서 주장을 하고 있다'는 식의 이야기를 반복하는 이야기를 듣고자 했던 것도 아니다. 앞부분에서 빵과 토마토, 닭고기 1kg의 생산을 위해 필요한 화석연료량을 비교하는 부분에서, 토마토 평균과 닭고기 최대값을 비교하길 바란 건 아니었으나, 굳이 닭고기 최소값과 토마토 평균값이 별로 차이가 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꼬집어서 채식주의가 농업으로 인한 연료사용을 줄이는데 별로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주장을 끌어낼때, 이거 사이비 아닌가 하는 생각도 했었다. 그래도 읽어나가다보니 그냥 무대뽀 우파만은 아닌것 같다는 생각은 들더라. '무대뽀'라는 수식어의 엄밀한 정의는 못하겠지만, 그냥 현재의 경제시스템이 급격하게 바꾸는 것이 무리라는 생각을 강하게 가진, 원초적인 보수적인 입장을 가진 사람이라는 생각이 많이 든다. 그러다보니, 지난 2-3년간, 저자가 비판하는 그린뉴딜의 흐름으로 인해 규모의 경제에 조금 더 접근하고 있는 재생에너지나 전기자동차 섹터의 변화에 대해 뒤쳐진 모습도 보인다. 어쨌던, 염세주의도 기술맹신도 모두 비판하는 양비론적인 입장에 근거한 나름 탄탄한 현실주의자 분위기는 좀 풍긴다. 여러가지 한계와 가능성을 보면서도, 내 스스로 기후운동가들에게 '1.5도가 넘으면, 2도가 넘으면 혹은 3도가 넘으면 종말과 같은, 대재앙과 같은 것이 도래할 것이라고 말하는데, 도대체 당신들이 말하는 그 재앙 혹은 파국은 무엇인가? 1억이 죽는 것인가? 10억이 죽는 것인가? 정말 인류가 기후변화로 멸종할 것이라고 생각하는가? 좀 더 구체적으로 그 10억의 사망자의 비율이 어찌되면 좀 더 정의롭다? 혹은 덜 불공평하다고 할 것인가? 등에 대한 답을 준비하지 않으면 당장의 행동의 필요성에 대한 주장의 근거가 공허해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와 같은 질문을 하고 싶은게 사실이기 때문에, 이정도 현실주의적 입장을 가진 사람의 글도 참고할만 하다는 생각이다. "유럽연합 농경지에서는 헥타르당 연간 평균 160킬로그램의 비료를 살포하는 반면, 에티오피아에서는 20킬로그램에도 미치지 못한다." 저자 주장을 뒷받침하는 대표적인 근거수치다. 우리는 에티오피아에 유기농 농업의 전면화를 요구 혹은 지원할 수 있는가? 또 하나, "세계적인 탈탄소화 노력이 시작된 뒤에도 온도 상승은 25~30년 동안 계속되면, 과감한 대책을 수립하고 시행해야 한다는 중대한 과제가 대두할 것이다. 그러나 세계적으로 구속력을 갖고 수년 내에 폭넓게 채택할 만한 대첵이 현재로서는 없기 때문에, 최적의 정책이 순익분기 해와 측정할만한 수준으로 온도가 하락하기 시작하는 해는 더욱더 미래로 미루어질 수밖에 없다. 흔히 사용하는 기후-경제 모형에 따르면, 2020년에 배출 완화 노력을 시작하면 손익분기 해는 2080년 안팎이다." 여기서 말하는 대책이 정책차원에는 있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실효성을 가지기 위해서는 이행되엉 하는 것이니 '없다'는 말은 현실주의적으로는 맞는 것이고, 그 최적의 정책이라는 것이 저자보다 더 강한 것이 가능하다고 하더라도, 이미 2020년에서 3년이 지난 시점이니 2080년 이전에 현실에서 유지되는 경제시스템이 손익분기에 도달할 수 있게 된다고 기대하는 것도 그다지 낙관적인 전망은 아닌게 사실인 것 같다. 하~ 이 책이 주는 힘과 암울함은, 기후운동가들 이상으로 인류, 각국의 지도자들에 대한 불신에 탄탄히 근거한 수치들을 제시하고 있다는 것이다. 너희들을 불신하니 당신들이 말하는 정책목표의 두배는 더 할 수 있는 것 아니냐?와 같은 주장이나, 너희들을 불신하니 당신들이 말하는 정책목표라도 제대로 할 수 있는지 두고보겠다!와 같은 주장이 현실적으로 어떠한 차이를 가질 수 있을지... 그것이 우울을 일으킨다. 좀 더 냉정함을 가져야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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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앞으로 인류애를 잃을 때마다 스티븐 핑거 선생의 우리 본성의 선한 천사에 의지하게 될 것 같다 점점 나아가고 있다고 믿는다 위로가 되었다
* 우리는 감정 이입의 범위를 충분히 넓힐 수 있다. 그러나 그 탄력성은 혈연, 우정, 유사성, 귀여움에 따라 제한된다. 감정 이입의 범위는 이성이 도덕적 관심의 대상으로 포괄하라고 지시하는 사람들을 다 담기도 전에 탄력성의 한계점에 다다라 파열할 수 있다. 또한 감정 이입은 시시한 감상주의로 여겨져 기각될 위험이 있다. 우리에게 감정 이입의 범위를 넓힐 기술을 알려 주는 것은 이성이고, 가엾은 타인에 대한 연민을 언제 어떻게 정책적 행동으로 바꿀지 알려주는 것도 이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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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리뷰는 사이언스북스에서 출판된 스티븐 핑커님의 우리 본성의 선한 천사에 관한 리뷰입니다. 개인적인 감상입니다.
회사에 요청 도서로 들어와서 읽어보게 됐는데 일단 그 두께에 놀라서 쉽사리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을 못 했었다. 양장본이어도 차라리 두 권으로 나눠서 나왔더라면 조금 더 읽기 쉽지 않았을까? 인간의 선한 본성은 알아서 천사의 행동을 하는 것이 아니며 이성의 끊임없는 노력의 결과이다 라는 말처럼 사람이 선함을 유지하려면 끝없는 노력이 필요하다는걸 느꼈다.
요즘 뉴스를 보면 사람들이 혐오를 거리낌없이 드러내고 있다는 생각이 드는데 이것도 조금 관련이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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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껍긴한데 어렵지않게 읽을 수 있는 교양서입니다. 한스로슬링 박사님이 아들, 며느리외 함께 다년간 연구한 자료. 오직 객관적인 데이터로 세상의 편견을 뒤집어 아직은 해볼만하단 생각을 갖게 해주는 삶의 지침서 같은 책입니다. 그동안 내가 잘못 알고있던 상식들이 얼마나 많은지 읽고 새로운 시각으로 세상을 바라볼수 있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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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존에 상식이라고 알고 있던것들에 대해 편견이 깨지는 경험을 할 수 있다. 그리고 어쨌든 세상은 더 나아지고 있다는 것에 대해 안심이 되고 다행이다 싶었다. 세상이 그렇게 극적이지도 단순하지도 않다는 게 위로가 되더라고... 작가의 단순한 예상이나 추측이 아닌 객관적 수치를 제시해주는 팩트 위주로 서술된 책이다. |
| 과학적 접근이 참 인상깊습니다. 주변 지인들에게 꼭 추천해보고 싶은 책인 것 같습니다. 저자의 다른 책들도 구매하여 읽고 싶습니다. 어려운 내용을 누구나 이해를 쉽게할 수 있습니다. 다음 신간이 언제 나올지 기대가 큽니다. 추천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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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직관적으로 현대사회가 옛날보다 더 폭력적이라 여겼다. 그러나 실질적 통계치로서 우리 인류는 폭력을 순화하면서 진화해 왔음을 스티븐 핑커는 보여주고 있다. 이 책은 인류의 일상 생활에서 뿐 아니라 특히나 전쟁에서 잔인성 정도가 약화되어 왔음을 수치로 확인 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