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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인생의 영화 [와이키키 브라더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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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꿈은 누구도 빼앗아 갈 수 없는 것   한 달이 지나가도록 포스트 한 편을 쓰지 못하는 분주한 일상을 산다. 그러니 차분히 나를 돌아볼 수 있는 시간은커녕 세상에 무슨 일들이 일어나고 있는지조차 알기 어렵다. 그런데 내 인생의 책, 내 인생의 영화라니……. 예스 24의 블로그 축제에 계속 초대를 받은 내 입장에서 갚지 못한 채무를 지고 있는 것 같은 개운치 않은 뒷맛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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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꿈은 누구도 빼앗아 갈 수 없는 것

 


한 달이 지나가도록 포스트 한 편을 쓰지 못하는 분주한 일상을 산다. 그러니 차분히 나를 돌아볼 수 있는 시간은커녕 세상에 무슨 일들이 일어나고 있는지조차 알기 어렵다. 그런데 내 인생의 책, 내 인생의 영화라니……. 예스 24의 블로그 축제에 계속 초대를 받은 내 입장에서 갚지 못한 채무를 지고 있는 것 같은 개운치 않은 뒷맛에 연일 끙끙거렸다. 영화며 책이며 다 나름의 의미와 그 순간의 감정상 울림이 있었을 것이라 생각하면 딱히 떠오르는 제목이 있을 리 없다. 겨우 자판을 마주할 수 있는 지금 한 편의 영화를 기억 속에서 재생시킨다.

 

내 삶에서 오래도록 잊지 못할 영화로 남은 임순례의 <와이키키 브라더스>가 그것이다. 2002년, 참 많은 일들이 일어났고 누구에게나 기억할 것이 많은 해였다. 여름의 초입에선 광장이든 어디든 사람의 발길이 닿는 곳이면 어디서나 붉은 악마의 함성이 메아리쳤다. ‘빨갱이가 되자!(Be the Red)’는 저 섬뜩한 구호가 국가보안법의 서슬이 여전한 대한민국에 요동쳤다. 나라와 국민은 모두 월드컵의 마법에 취해 모처럼 해방의 기쁨을 만끽했다.

 

그 뿐인가. 정국은 술렁였다. 바보 노무현, 일개 낙선 전문 정치인에 불과했던 그가 내일의 리더십으로 떠오르며 세상에 노란 바람을 불러 일으켰다. 노풍이라 불린 그 바람은 움츠러들고 고개 떨구며 살던 소시민의 가슴에 희망이라는 생기를 불어넣었다. 심장의 박동은 빨라졌고 우리들의 핏줄에서는 힘이 불끈 솟았다. 남도로부터 불어온 바람은 분단과 이념의 장막을 무참히 무너뜨리는 또 다른 해방의 향연이었다. 그것은 새로운 꿈이었고 잃어버리고 산 희원의 물줄기 같은 것이었다. 마침내 가면은 벗겨질 것이란 가슴 벅찬 감동에 살갗에는 소름이 돋았고 가끔씩은 몸서리를 치기도 했다.

 

꿈을 빼앗긴 세상에서 부르는 맑은 영혼의 찬가

 

태풍 ‘루사’가 무덥던 2002년의 한복판을 무참히 할퀴고 간 밤에 나는 <와이키키 브라더스>의 청춘들과 만났다. 그리고 그들을 보면서 나는 시종 울었다. 눈으로 흘리는 눈물이 아니라 가슴에서 철철 흘러내리는 눈물을 나는 주체할 수 없었다. 주연배우의 이름도 기억하지 못하면서 나는 성우인가 하는 주인공에게 빨려 들어갔고 그의 기타소리 전자 오르간소리에 나의 영혼은 사로잡혔다.

 

그가 부르는 노래는 그대로 내 안에서 들려오는 지나간 시간의 절규였고 여기저기 옮겨 다니며 서는 싸구려 밤무대는 그대로 토막토막난 내 삶의 흔적이었다. 스크린 속의 성우는 삼류 악사 성우일 수 없었다. 그는 그 시대를 함께 살았던 우리들의 슬픈 자화상이었고 여전히 울고 있는 나의 그림자였다. 우리는 그렇게 살았다.

 

먹고 살기 위하여 꿈을 팔았고 철들며 고이 간직한 아름다운 희망들을 빼앗겼다. 우리는 늘 성우처럼 진실한 꿈을 꾸었으나 탈을 쓰고 둔갑한 가짜들의 농간으로 언제나 후진 뒷골목의 싸구려 밤무대를 전전해야 했다. 그는 사랑하여 노래할 뿐이었으나 세상은 그 노래를 들어 주지 않았고 제 맘껏 노래하는 것조차 허락하지 않았다.

 

그는 그가 사랑하고 좋아하는 노래를, 음악을 하고 싶었다. 그러나 그는 밀려나고 쫓겨나며 노래했다. 그의 노래는 울음이 되어 갔고, 그는 울기 위해서 노래하며 옷을 벗었다. 울지 못하면 그는 살 수 없음으로 울었다. 그의 곁에서 함께 노래하던 친구들은 자신들을 그렇게 만든 가짜 세상의 편에 서면서 노래를 버렸다. 그들은 가면무도회의 가짜들을 위하여 이제는 풍악을 울렸다. 그들은 노래할 수 없었다.

 

우리도 노래하지 못했다. 아니 육성으로 부르는 진실한 노래를 부르지 못했다. 배운 대로의 진실한 믿음과 선한 사랑을, 느낀 대로의 아름다운 마음을 담아 부르는 노래를 우리는 부르지 못했다. 빈 들판을 울리는 담대한 가슴으로 나설 용기가 없었다. 적당히 타협하고 포기하며 세상의 음률과 곡조에 나를 맡기며 흥얼댈 뿐이었다. 들리지 않는 작은 소리로 웅얼대거나 가성을 써가며 억지 옥타브를 높이는 것이 고작 우리가 부른 노래였다.

 

엄밀히 말해 그것은 노래가 아니었다. 지금도 우리는 자본의 정글 속에서 누군가 메모리칩에 입력해 놓은 정해진 박자와 템포와 리듬에 맞춰 노래할 뿐이다. 메커니즘에 가두어진 우리는 그 메커니즘이 부여한 번호의 곡만을 부를 수 있을 뿐이다. 모니터의 도움 없이는 가사조차 알 수 없는 메커니즘의 종속물이 되었다. 사람보다 물질이 우선되는 세상에서 꿈을 노래하는 따위는 제 정신으로는 할 수 없는 미친 짓이다. 우리는 어느새 왜 울어야 하는지조차 잊어버렸다.

 

적어도 영화 속의 성우는 울 줄 안다. 비록 노래인지 울음인지 알 수 없지만 그의 소리는 그래도 꿈같이 들린다. 기타 현의 날카로운 떨림에서 소리가 만들어지고 그 소리는 내 가슴에 송곳처럼 박힌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그의 노래는, 그러나 누구도 쉽게 부를 수 없는 맑은 영혼의 찬가요, 아름다운 청춘의 영원한 꿈이다. 때문에 그의 노래는 곧 낙원 ‘와이키키’가 되고, 그가 포기하지 않고 아직도 노래 부름으로 인하여 그의 곁에 있거나 떠나 있거나, 우리들은 그의 브라더스가 된다.

 

2006년 겨울 수안보에서, 2009년 봄 봉하에서

 

영화는 꿈이다. 희망이며 전망이다. 홍콩의 뒷골목을 비추는 조잡한 느와르(noir)도, 뉴욕 할렘가의 갱스터 무비도, 심지어 파괴된 지구의 암담한 미래를 투사하는 SF도 영화는 본질적으로 밝은 빛으로 만들어진다. 거장들의 필름이 아니더라도, 3류 재개봉관에 동시상영으로 걸리는 영화일지라도 모든 영화는 눈부신 빛으로 태어나는 꿈이며 동경이며 희망과 사랑이다.

 

불문학자인 김화영교수의 영화이야기 ‘어두운 방안에서 내다본 밝은 세상’이란 책을 읽은 적이 있다. 우연히 들른 서점에서 오직 그 제목에 매료되어 사들고 온 책이다. 너무 그럴싸한 제목만으로 나는 감명 받았다. 내가 있는 어두운 방안, 밝은 세상을 내다볼 스크린이란 창마저 없다면, 우리는 그 고독과 어두움을 견디기 힘들리라.

 

어두운 내 안의 것들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영화처럼 밝은 창을 찾아야 했던 2006년 겨울, 사업상 <와이키키 브라더스>의 주무대가 되었던 수안보에서 두 달여간을 지낸 적이 있다. 그 때에 나는 다시 영화 속의 아름다운 청춘들과 재회했다. 우연히 들른 주점이 바로 주인공 성우가 깊은 울음으로 노래했던 그 무대였다. 거기에서 나 또한 노래했다. 성우처럼 ‘불놀이야’를 불렀고 세상만사 모든 일이 뜻대로야 되겠냐며 발악을 해댔다. 제 풀에 지친 나는 성우의 연인처럼 ‘사랑밖엔 난 몰라’를 부르고나서야 겨우 거친 호흡을 진정할 수 있었다.

 

그리고 생각했다. 아니 깨달았다. 꿈은 빼앗기는 것이 아니라 우리 스스로 버린 것임을 알았다. 우리 스스로가 신념과 의지의 푯대를 꺾지 않는 한 우리에게서 누구도 꿈을 빼앗아 갈 수 없는 것임을 진정 나는 알았다. 우리가 아름다운 꿈을 버리지 않는 한 그 꿈은 우리에게서 영원한 것임을 깨달았다. 빼앗긴 꿈이 아니라 비겁하게 꿈을 버린 한 사내가 거기에 있었다. 꿈은 이루어지기 어렵기에 더욱 소중한 것임을 그제야 깨달은 늙은 청춘이 서럽게 울고 있었다.

 

그리고 2009년 봄, 수안보의 사내는 꿈을 지키기 위해 자신을 던진 한 주검과 마주했다. 2002년 바람으로 내게 다가왔던 것처럼 그 바보는 다시 그렇게 훌쩍 떠나가고 말았다. 평생 자신이 의지했던 ‘사람 사는 세상’에 대한 꿈을 우리에게 깨우쳐주기 위해, 그 꿈을 절대 다시는 잃지도 잊지도 말라며 자신의 육신을 낭떠러지에 던졌다. 우리가 겁내야 할 것은 바위에 부서지고 뭉그러진 몸뚱이가 아니라 잃어버리고 포기한 우리들의 꿈이라고 그는 소리 없이 외치며 갔다.

 

한용운님의 노래처럼 푸른 산 빛을 깨치며 간 그 자리에 한 바보의 꿈은 우리 모두의 염원으로 자랄 것이다. 산 빛이 무수히 바뀐 어느 날엔가 푸르게 영글어 마침내 저 분단과 이념의 골을 메우고 지역과 지역의 자상을 꿰맬 것이다. 한 명의 농부가 되어 고향 봉하로 내려가기 전, 반세기 만에 남과 북을 가르던 노란 분계선을 걸어 넘은 것처럼 그로 인해 우리의 가슴에 새겨진 반목과 증오의 경계 역시 마침내는 지워질 것을 믿는다.

 

2002년에 운명처럼 만난 영화와 한 바보의 추억은 지금도 내게 노래하고 소리친다. 꿈을 잃지 말라고, 희망을 버려서는 안 되는 것이라고, 전망은 우리들의 실천과 수고로만 이루어질 수 있는 것이라고. 그래, 꿈은 영원한 것이다. 비록 남루한 일상에 치일망정 꿈이 있는 한 인생은 즐거운 것이지. <와이키키 브라더스>를 훗날 <즐거운 인생>으로 다시 만난 것처럼, 성큼 커버린 배우 박해일과 황정민을 다시 보는 것처럼 훌쩍 가버린 한 바보 역시 내 정신의 은막 위에서는 늘 살아 있을 것이다. 내 인생의 영화, 그것은 희망이며 꿈이며 전망이지 않던가.

 

e******1 2009.06.27. 신고 공감 0 댓글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