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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과 더불어 배우며 살아간다는 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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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후감 쓴 시간: 독후감 쓴 시간: 독후감 쓴 시간: (책과 더불어 배우며 살아가다 / 이 권우 지음 / 해토) 자: 지: 웃음이 나온다. 처음엔 아니꼬운 눈으로 삐딱하게 바라보려고 작정을 하고 책을 읽어 나갔으나 뒤로 갈수록 고개를 끄덕이며 미소를 짓지 않을 수 없었다. 동 시대를 살면서 비판의 눈으로 세상을 질타하고프니 그가 내가 되고 내가 그가 되는 느낌이다. 고백하자면 여기 이 책에서 그가 읽고 소개한 55권의 책 중 내가 읽은 책은 단 한 권도 없었다. 참괴하다는 심정일 수도 있으나 나는 오히려 기쁘다. 내가 읽으며 즐거움을 누릴 수 있는 책이 그만큼 많아졌으니깐 말이다. 이 많은 책을 읽은 그를 나는 읽었다. 단언컨데 그는 남은 인생 함께 가면서 어깨동무도 하고 술잔을 기울이고픈 친구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아니다. 이 책을 읽기 전에 윤** 사장님의 소개로 맨 마지막에 소개된 ‘뼛속까지 내려가 써라’ 라는 책을 읽었다. 그것도 이 책을 읽기 전에 바로 읽었다. 마지막에 소개된 책을 읽었으면 다 읽은 것이 아닌가? ^.^ 어쩌면 그가 영향력을 행사해 세상에 나왔다는 만화책 서유기는 내가 일전에 헌책방에서 사와 읽은 그 만화책이 아닐까 싶다. (그 책이 아니었음을 확인했다~!) 이제 그를 마저 읽어야겠다. 김 선 욱 / 오늘 이 책의 독후감을 쓰면 나는 착잡한 마음을 금할 수 없다. 지난 며칠 전부터 오늘까지의 일이 많은 것을 생각나게 했다. 이 모든 일이 나에게 어떤 깨달음을 주는 것 같다. 방금 전에 DVD로 영화를 보기를 마쳤다. 딸 예지와 아들 성준이와 함께 「무인 곽원갑」을 보았다. 몇 번째일까. 3번째? 아이들에게 벌로 무인 곽원갑을 보게 하면서 같이 본 것이다. 오늘 아침에 아이들이 TV를 보다가 싸웠다. 자리 때문에 티격태격하더니 급기야 서로 때리고 난리를 쳤다. 그 동안 그렇게 다투지 말라고 야단도 치고 말로 타일렀지만 소용이 없었다. 마음을 다스리는 데 가장 적합한 영화라고 생각해서 이 영화를 보게도 했던 것이다. 오늘 아침에도 매를 댈까 하다가 차마 때릴 수가 없어서 매를 맞던지, 영화보고 영화평을 쓰던지 선택하라고 했다. 왜 사람들은 그렇게 마음을 다스리지 못하는 것일까. 어른이나 아이들이나 똑 같다. 물론 부모가 제대로 모습을 보이지 못해서 아이들이 자기들도 모르는 사이에 다라 배웠을 수도 있다. 그런 면에서 보면 나의 잘못도 적지 않음을 고백할 수 밖에 없다. 하지만 전적으로 다른 사람을 따라 배우는 것만은 아닌 것 같다. 나는 그것이 인간의 배움에 있어서의 한계가 아닌가 생각을 한다. 사람은 평생 머리로 배운다. 하지만 머리로 배우는 지식은 아무런 가치가 없다. 느낌은 갖지 못하기 때문이다. 느낌이 없으면 행동으로, 삶으로 이어지지 않는다. 머리로 배우는 지식의 한계다. 우리는 보통 사랑이라는 말을 머리로 배운다. 그러나 머리로 이해를 하더라도 절대 가슴으로 느껴서 사랑하는 삶을 살지는 못한다. 가슴으로 느끼고, 몸으로 느껴야 하는데 그게 안 된다. 그래서 서로 사랑하라는 성인의 말을 사람들은 말로 이해를 하지만 사랑하는 마음이 생기기 않기 때문에 이웃을 사랑하지 못한다. 그 외침은 수 천년 동안 공허하게 메아리만 칠 뿐이다. 사람들 가슴 속으로 스며들지 못하고… 며칠 전에 좋은 소식과 나쁜 소식을 들었다. 정확하게 엊그제 저녁 무렵이다. *비님께서 수련을 하기 시작했는데 내가 써놓은 글을 읽으며 제대로 가고 있다는 것을 확인하고 있다면서 기뻐서 전화를 한 것이다. *비님과는 5년 전부터 구*님 싸이트에서부터 인연을 맺게 되어 지금껏 만나고 있다. 그 동안 함께 하면서 공부를 한 결과 진정한 깨달음의 길에 들어서게 되신 것이다. 함께 진리의 길을 걸어가게 된 것이다. 사랑의 길이라는… 나쁜 소식은 98년부터 피시통신을 통해서 알게 된 구*님이 패망을 길을 걷게 되었다는 소식이었다. 그 분은 무불통지였다. 정치, 군사, 경제, 종교, 수련 등 모든 분야에서 전문가 못지 않았다. 토론에서는 당해낼 사람이 없었다. 그야말로 천하무적이었다. 수 많은 고수가 나가 떨어졌다. 도올 나는 지식을 다투는 사람을 참으로 어리석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혼내주고 싶다. 아직 아무 것도 모르는 수준에 지나지 않는데, 머리로 습득한 얄팍한 지식으로 무장을 하여 세상을 혼란스럽게 한다. 이런 면에서 보면 책은 독이다. 그분이 그것을 여실히 증명해 준다. 그 분과 헤어진 2002년 말 이후로 나는 계속해서 마음 공부를 해 왔다. 그러는 가운데 훌륭한 분들을 많이 만났다. 그분들과 함께 하면서 계속 깨달음의 길을 걷고 있다. 사랑의 삶을 영위하고 있는 것이다. 나는 마음 공부를 먼저 했다. 세상의 원리가 사랑이라는 깨달음을 먼저 얻었다. 그리고 나서 책을 읽고 있다. 책은 나름의 길을 보여준다. 그리고 좋은 책도 많다. 사람들은 그런 좋은 책을 읽지만, 책이 가리키고 있는 진리를 보지 못한다. 또 솔직히 말하면 쓰레기 같은 책도 많다. 쓰레기 같은 책을 많이 읽고 많은 지식을 쌓았다고 착각한다. 그러한 지식을 많이 쌓으면 우월감이 생긴다. 그런 책에서 얻은 지식을 기준으로 한 잣대를 세워 세상을 평가하고 재단한다. 그러니 세상이 얼마나 혼란스러워지겠는가. 이것이 지식이 걷게 되는 멸망의 길이다. 인류의 역사가 지속될수록 더 많은 지식이 쌓이게 된다. 각종 이론과 원리가 난무한다. 그러니 지식으로 쌓을 것은 더 많아진다. 지식을 추구하는 사람들에게는 머리 속에 집어 넣어 뽐내고 자랑할 게 더 많아졌으니 얼마나 좋겠는가. 별별 이론이 다 많다. 하지만 인간 존재를 제대로 규명하는 참된 책은 하나도 없다. 기본적으로 서양에서 시작된 모든 지식과 철학은 반쪽 밖에 안 되는 불구 지식이라고 보면 된다. 인간의 주인인 정신이나 마음을 다루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모든 것을 분석하고 나눌 수 있다고 하는 기계론적 환원주의로는 영원히 인간 존재를 파악할 수 없다. 인간게놈프로젝트로 모든 DNA의 비밀을 밝혀냈어도 부족하다. 왜냐하면 인간은 정신의 산물이기 때문이다. 아무리 서양과학으로는 지구의 역사가 천만번을 반복해도 완전한 지식을 이룰 수가 없다. 이것을 알아야만 한다. 모든 것은 동양에서 시작되었다. 결국 인간을 제대로 규명할 수 있는 것은 동양학이다. 서양학을 아우르는 동양학일 것이다. 즉 두 개가 만나야겠지만 어디까지는 주는 동양학이다. 왜냐하면 동양학이 정신이라면, 서양학은 몸이기 때문이다. ~ 며칠 전에 새로운 구*님을 만났다. 그 분을 만난 지 약 10년 정도의 세월을 두고 젊은 구*님을 만났으니 참으로 착잡한 마음 금할 수 없다. 얼마나 책을 많이 읽고 얼마만한 지식을 쌓았는지 모르지만 자신만이 옳다고 생각하는 위험한 지식의 구렁텅이에 빠져 있다. 자신이 똑똑하다고 하는 병에 걸리면 약이 없다. 지식과 동귀어진하는 수밖에 달리 치료할 방법이 없다. 그러나 지식으로 완전 무장한 사람은 결코 자신의 잘못을 깨달을 수가 없다. 결국엔 패망의 길을 걸어갈 수 박에 없다. 지식은은 혼자 죽지 않는다. 지식에 경도된 그의 앞 길을 가로막는 자는 누구든 그가 휘두르는 정의의 칼에 무참히 쓰러질 것이다. 천박한 지식에 자신만이 옳다는 치명적인 독이 묻혀져 있다. 결국 세상에 많은 상처를 남기고 자신도 깊은 상처를 입고 만다. 우리 선조들이 정신을 수양하고 수신을 하는 이유가 바로 이런 위험에 빠지지 않기 위함이었다. 그런데 신지식 시대니 어쩌니 해서 지식을 강조하는 시대가 되고 보니 위험한 지식이 쌓는 일을 더욱 탄력을 받게 된다. 얼마나 쉬운가. 책을 많이 읽고 지식을 쌓는 일은 그야말로 가장 쉬운 일이다. 그것을 깊이 사색하고 자신의 것으로 만들어 단 한마디 금언이라도 완전한 느낌으로 인식하고 절절하게 몸으로 체득했을 때 진정한 자기 것이 되는 것을 모른다. 지혜를 얻고 깨달음을 얻어야만 한다. 그렇게 될 때 책의 목적이 완성되는 것을 모른다. 세치 혀를 휘두르고 손가락을 놀리는 일은 너무나 쉬운 일이다. 특히 인터넷 토론에서 지식으로 무장한 사람들은 탁월한 능력을 발휘할 수 있다. 머리 회전이 좋고, 손가락이 빠르면 수많은 쓰레기 같은 글을 마음껏 배설해 낼 수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갖은 전략을 동원할 수도 있다. 눈앞에 아무 거도 보이지 않기 때문에 거리낄 것이 없다. 거기 이성이 설 자리는 없다. 감정만이 춤출 뿐이다. 감정이 폭발하면 죽음밖에 없다. 감정의 파고가 가라앉고 나야 이성이 싹튼다. 비로소 합리적으로 생각하고 논리적으로 대화하게 된다. 이쯤 되야 지식이 제대로 작동할 수 있게 된다. 인류의 역사가 오래되었지만, 정신 세계의 발전은 멈춘 것 같다. 세상을 제대로 인식하고 자신의 감정을 제대로 다스린 사람은 많지 않은 걸 보면 말이다. 오래 전부터 예수는 사랑을 설파하고, 부처는 대자대비를 웅변하였지만 그들의 가르침을 제대로 실천하는 사람이 얼마나 되는가.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오늘날 지식만 강조되는 시대고 보니 사람들은 정신세계는 빈약하기 그지 없다. 자신 자신을 알지 못한다. 자기의 마음을 다스릴 줄도 모른다. 자기를 알고 자신을 이기는 자는 행복하다. 스스로 잘났다고 몸을 함부로 천박하게 굴리지 않는다. 마음 공부를 통하여 고통을 겪지 않는다. 우리는 최소한 자기 자신을 알고 자신을 이길 정도로 공부는 해야만 한다. 그래야 인간다운 인간이라고 할 수 있다. 지식 너머에 지혜가 있고, 그 뒤엔 사랑이라는 궁극의 세계가 있다. 물론 초월의 세계가 있고 말이다. 지식이 초등학교라면, 지혜는 대학이다. 초등학교를 지나 중.고등학교의 실력을 갖게 되었다고 잘난 체를 하면 안 된다. 책 만권을 읽었다면 가히 많은 지식을 쌓았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지식을 아무리 많이 쌓았다고 해도 지혜만은 못하다. 지혜롭기 위해서는 인생을 포괄적으로 볼 수 있는 통찰력, 사물의 깊이를 제대로 이해하는 인식의 힘, 인간의 한계를 알고 겸손할 수 있는 마음, 우주의 원리에 조화롭게 순응하는 인생 철학 등을 두루 갖춰야 한다. 이렇게 공부를 해야 제대로 공부를 했다고 할 수 있다. 누구든 한번 깊이 생각해 보길 바란다. 지혜롭다고 해도 공부를 멈추면 안 된다. 지혜는 경험을 쌓고 경륜이 높아질수록 얻을 수 있는 것이다. 나아가 세상이 사랑이라는 것을 깨닫고, 우리 모두가 하나라는 것을 깨치지 않으면 안 된다. 과연 자신이 어느 위치에 있는지를 말이다. 이를 기준으로 자신의 나아갈 바를 밝혀야 한다. 오늘 아침 아이들이 싸운 이유를 보면 너무나 사소한 일이다. TV를 보면서 좁은 자리에 둘이 누우려다 보니 서로 조금 옆으로 비키라고 하고 안 간다고 버티면서 니가 옳고 내가 옳으니 하는 시비(是非)에 걸려 넘어져 싸운 것이다. 이해와 사랑으로 단계로 넘어가지 못한 것이다. 이런 다툼은 어른이라도 해서 자유롭지 못하다. 어른들의 모든 다툼도 이렇게 사소한 것으로부터 감정 싸움으로 변질되는 것이다. 그 기저에는 내가 옳다는 생각이 자리하고 있다. 한번 가만히 자신을 돌아보라. 그러면 알게 될 것이다. 이 원리 하나 모르면서 뭘 배웠다고 하는지 모른다. 아이들을 불러서 무릎 꿇고 앉아 손을 들라고 벌을 주었다. 그런데도 서로가 자기 잘못이 없다고 우긴다. 아들 성준이는 억울하다고 생각이 들었는지 눈물을 흘린다. 나는 알고 있다. 어쩌면 아이들이 우리 부부가 다투는 것을 보고 배웠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근본적인 원인은인간은 자신이 옳고, 남은 그르다고 생각하게 되면, 그 생각은 분하고 억울하다는 등의 감정을 일으키게 된다. 그러면서 설전을 치르게 된다. 그러다 결국 몸으로 치고 받으며 행동을 하게 된다. 이런 일련의 과정을 겪게 되는 것이 인간의 사고.행동 원리인 것이다. 어른이나 아이나, 무식한자나 유식한 자나, 남자나 여자나, 한국인이나 미국인이나 모두에게 적용된다. 이러한 원리를 깨치고 마음을 다스리는 자만이 이런 비참한 굴레에서 벗어날 수 있는 것이다. 개인과 개인의 다툼, 국가간의 분쟁, 개인과 조직의 싸움 등에 숨어있는 근본적인 원이다. 아이들이 아직 이런 깨달음을 얻기에는 어리다. 생각하는 힘이 없기 때문이다. 아무리 잔소리를 하고 야단을 쳐도 소용이 없는 일이다. 해서 나는 이런 상황을 어떻게 다뤄야할 지 알고 있다. 정말 너무나 고통스러웠다고 느낄 정도로 심하게 매질을 하는 것이 한 방법이다. 그 때 엄청난 두려움을 느끼게 되면 기억하게 된다. 각인을 하게 된다. 만일 싸울 일이 생기더라도 맞을까 두려워 그만두게 될 것이다. 아이들이 자연스럽게 부모들의 모습을 보고 배워서 조금 더 가슴적인 삶을 살아 배려하고 사랑할 줄 안다면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그건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그래서 위에서 언급한 원리를 깨달아야만 한다. 아이들을 때려서는 고통스러울 것이라 생각하고, 회초리로 매를 10대씩 맞거나 무인 곽원갑 영화를 보고 영화평 1장을 쓰던지 결정을 하라고 했다. 아들 성준이가 어떻게 때릴 것이냐고 물어서 크게 휘두르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그러자 영화를 보겠다고 한다. 다음엔 예지도 영화를 본다고 대답을 한다. ~ 18:40 휴식 18:47~ 무인 곽원갑은 재작년에 개봉한 영화다. 개인적으로는 최고의 영화로 꼽는다. 영화관에서도 보았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안타까운 마음이 든다. 우연하게 만원에 4장 하는 dvd를 사서 보았는데, 너무 좋아서 DVD 원본을 구입했다. 처음부터 아이들과 함께 보았다. 영화를 보고 많은 얘기를 해 주었다. 그 뒤로 말을 할 때마다 무인 곽원갑이 얘기를 했다. 아주 입에 뱄다. 아이들이 다툴 때마다 보게 했는데 이번에 또 보게 된 것이다. 만일 이 영화를 보지 못했으면 꼭 dvd를 사서 보라고 권하고 싶다. 단순히 영화라고 생각하지 말고 인생공부라고 생각하고 보면 좋겠다. 단순하게 재미를 추구하는 일반 영화를 보듯 보지 말고, 인간의 심리 상태와 행동과의 관계를 잘 살펴보기를 바란다. 중요 장면이 대사 하나 하나가 많은 깨달음을 준다. 마음 공부라는 측면에서 영화 감상을 얘기해 본다.
이 영화는 무인 곽원갑의 일대기를 그린 영화다. 곽원갑은 영화 정무문에 나오는 이소룡의 스승으로 중국 청조 말 정무체조회를 설립한 무술인이다. 영화의 내용은 간단하다. 상대를 이기고 최고의 무인이 되고 싶어하던 무인이 참 무도를 깨달아가는 과정을 그린 것이다. 결국 최고는 상대를 이기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이기는 것이라는 가르침을 준다. 무술 뿐만 아니라 우리의 인생도 그와 같지 않은가. 많은 것을 느낄 수 있는 영화다. (중략) – 영화 내용 줄거리는 아래 덧글을 참조 바란다. 이 영화를 보면 마음 작용의 관점에서 살펴보면 많은 장면에서 사람들이 마음을 다스리지 못해 자신을 망치고 타인까지 망치게 되는 것을 보게 된다. 참으로 많은 부분에 그런 장치가 숨어있다. 제자의 불찰을 제대로 살피지 못하고 화를 참지 못하고 진대인을 찾아가 결투로 상대를 죽게 하는 장면이 극단적인 경우를 보여준다. 눈에 보이는 현상 너머에 있는 진실을 살펴볼 수 있었다면 그런 치명적인 실수를 저지르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예정된 일이었다. 무인 정신을 제대로 배우지 못했고, 마음 공부를 하지 못해 마음을 다스리지 못했기 때문에 일어난 일이었다. 진정한 무도를 깨우치고 나서야 개인적인 경쟁의식에서 벗어나고 나라를 위한 죽음도 불사한다. 그리고 마지막 순간까지 무도를 발휘하여 상대의 생명을 살려준다. 참으로 아름다운 모습이 아닐 수 없다. 우리 중에 누가 있어 진정한 도를 깨우치고 그 도에 따라 사는 사람이 있겠는가. 참으로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하는 영화다. 많은 것을 생각하며 영화를 보았다. 과연 책은 어떤가. 무인이 무술을 통해 무도를 깨우치듯 우리는 책을 통해서 책의 정신을 배울 수 있는가. 책을 통해서 배울 수 있는 것이 무엇인가. 한낱 쓰레기와 같은 지식을 쌓는 것인가. 우리는 과연 무엇을 배우기 위해 책을 읽는가. 나는 이번에 책을 제돈을 주고 사서 읽는다는 것을 이유로 다른 많은 사람들을 옳지 않다고 설치는 이를 보면서 참으로 아연실색하지 않을 수가 없다. 제 돈 주고 책 사 읽는 것이 무에 그리 자랑할 일이라고 큰소리를 치며 다른 사람들을 옳지 않다고 힐난하는지 알 수가 없다. 시비를 가리는 작은 관점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허물을 드러내는 것이다. 그가 만일 책을 많이 읽고 많은 지식을 쌓은 사람이라면 책의 독(毒)을 보여주는 아주 좋은 사례가 아닌가. 제 자신의 옳음을 기준으로 타인을 핍박한다면 그 옳음은 옳지 않다는 것을 명확하게 보여주는 것이다. 성인은 말하지 않았는가. 남의 눈에 티를 보려 하지 말고 자기 눈에 들보를 찾아내라고 말이다. 자신을 마음을 살피려 하지 못하고 남의 허물을 탓하면 그게 바로 자신이 어리석다는 것을 드러내는 것이다. 책을 어떤 마음으로 읽어야 하는가를 배울 수 있는 좋은 기회이다. 겨우 지식을 쌓거나 즐거움만을 추구하며 책을 읽어서는 안 된다는 반면교사로 삼아야 한다. 무인이 무도를 추구하듯 책을 읽는 사람이라면 인간의 도를 깨달아 나가야 한다. 책을 통해서 말이다. 여기 책과 더불어 배우며 살아가는 사람이 쓴 책이 있다. 우리는 그가 과연 책을 통해서 무엇을 배웠는지 알아보자. 책을 제대로 읽는 것을 배울 수 있는지 여행을 떠나보자. 이 여행을 통해 배움을 지나 깨달음으로 나갈 수 있다면 좋겠다. … (책과 더불어 배우며 살아가다 / 이 권우 지음 / 해토) … <책 읽은 시간> 자: 지: <책 읽은 계기> 윤 사장님의 소개로 저자 이 책을 읽고 있던 중에 한 인터넷 서점의 모 블로거님이 자신의 터무니 없는 주장을 사람들에게 강요하는 글을 읽고 토론을 시작하게 되었다. 정말 책을 얼마나 읽고 어느 정도의 지식을 쌓았는지 모르지만 책을 통해서 배웠기 때문에 그런 비논리적이기도 한 주장을 하게 된 것이라면 정말 책을 어떻게 읽어야 하는가에 관해서 진지하게 고민해 보지 않을 수가 없다. 독서를 통해서 무엇을 배워야 하는가? 과연 우리는 책을 어떻게 읽어야 하는가? 이 책의 저자에게는 참으로 죄송하지만, 이 책을 읽은 독후감은 이런 문제 제기로 갈음해야겠다. 그 동안 많은 사람들이 책을 읽기를 통해 성장하고 발전해야 한다고 독서를 전도하면서 책 선물을 하기도 하여왔는데, 과연 그런 내 행위가 과연 잘 한 짓인지를 생각해 보게 되었다. 오호 애재라, 오호 통재라~! 참으로 가슴이 아픈 고서 덧글) 무인 곽원갑 영화 줄거리 – 더 자세히 정리를 하면서 마음 공부와 연관지어 무인 곽원갑 영화 뜯어보기란 시리즈 글을 써 보아야겠다. 곽원갑은 무술을 하는 집안에서 자랐으나 공부를 하라고 하는 아버지의 가르침에 때문에 몰래 아버지의 무술을 훔쳐보며 하라는 공부는 안하고 무술만을 배운다. 아버지가 생사를 건 비무대회에서 무도를 발휘하여 상대를 봐준 것이 패하게 되었는데, 몰래 그 모습을 지켜보던 곽원갑은 아버지가 진 것을 무척 분해한다. 화가 나서 상대방의 아들과 대결을 벌였으나 실컷 얻어터지고 만다. 앞으로는 절대로 지지 않겠다고 맹세를 한다. ~ 분해서 집으로 돌아와 글쓰기를 하는데 마구 써버린다. 어머니가 어린 원갑을 달래고 인생에 대한 가르침을 주지만 그만이다. 그 뒤로 원갑은 무술 공부에 맹훈련을 한다. 어느덧 수많은 비무대회를 통해 무술의 수준이 점점 더 높아진다. 하지만 마음 속엔 최고가 되겠다는 일념뿐 만족할 줄 모른다. 무술의 수준만큼 수양이 따르지 않았다. 어려서 패했던 조가권을 이기고나자 제자들의 찾기 시작한다. 생사를 건 생사장을 쓰고 비무대회를 통해서 경쟁자들을 이길수록 교만해지고 거만해진다. 점점 더 많은 제자들이 찾아오지만 자격을 살펴보지 않고 무조건 형제도 받아들인다. 오합지졸 어중이 떠중이들의 모임이 된다. 그런 원갑에게 친구 경순은 충고를 자주 한다. 곽원갑이 승승장구하던 것을 시기의 눈으로 지켜보던 진 대인의 대자가 술을 마시고 있는 원갑에게 자신의 사부를 이기지 못할 것이라고 말해 화를 돋군다. 이에 화가 난 곽원갑은 마음 속에 꽁하고 있다. 그러다가 길거리에서 진대인을 만난다. 둘은 서로 길을 가면서 상대방을 힐난한다. 그런데 어느날 곽원갑의 제자가 진대인에게 흠씬 두들겨 맞아 들것에 실려 들어온다. 이에 격분한 곽원갑이 자초지종을 물어보지도 않고 진대인을 마침 진대인은 친구 경순의 술집을 통째로 빌려 생일 잔치를 벌이고 있다. 곽원갑이 대자를 불러내었는데 말을 듣지 않아 일격을 가한다. 마침 진대인 나와서 제자를 때린 것에 대해 무릎을 꿇고 사괴를 하라고 요구한다. 친구 경순이 나와 만류하지만 듣지 않는다. 둘 간에 감정이 섞이 대화가 오가가다 우정을 끊겠다며 나가라고 하자, 곽원갑은 분노하여 검으로 결투를 벌이겠다고 선언을 한다. 모든 사람들이 나가고 생사를 건 둘만의 결투가 시작되었다. 술집이 온통 부서질 정도로 서로 상처를 입을 정도로 격렬하게 싸운다. 마침내 진대인이 큰 상처를 입고 비틀거리는데, 곽원갑은 최후의 일격을 가한다. 무도를 깨쳤던 아버지지 거두어들였던 손속을 베풀지 못한다. 치명상을 입은 진대인은 결국 사망하고 만다. 제자들과 승리의 연회를 갖는다. 집으로 돌아와서 보니 불이 꺼져 있으며 이상스레 조용했다. 자리에 앉아 어둠을 응시해보니 어머니도, 딸아이도 칼을 맞아 죽어있는 것이 아닌가. 진대인 대자가 찾아와 복수를 한 것이다. 칼을 들고 진대인 집을 찾아가니 대자가 자기가 죽였다며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진대인의 아내와 딸을 죽이려고 높이 쳐들었던 칼을 내던지고 집으로 돌아간다. 집으로 돌아오니 지난번 진대인에게 맞아 들것에 실려 들어온 제자가 자기가 거짓말을 했다고 고백을 한다. 진대인의 첩과 통정을 하다가 들켜 두들겨 맞았는데 모든 제자들이 입을 맞추고 말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너무나도 어처구니가 없는 노릇이 아닌가. 비틀거리고 신음을 한다. 자신의 경솔함을 아무리 후회해도 이미 때는 늦었다. 돌이킬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 뒤로 집을 떠나 방황을 한다. 자학하며 삶을 포기한다. 깊은 물속에 빠져 죽음을 목전에 두었다. 딸아이와 어머니의 모습이 떠오른다. 얼마나 한스럽겠는가. 그런데 물에 떠내려온 것을 구했나 깊은 산골의 마을 사람들이 곽원갑을 살려낸다. 곽원갑은 산골 마을에서 다시 태어난다. 곽원갑은 맹인 처자의 사랑을 받으며 진정한 삶의 의미를 배운다. 무도를 깨우치게 된다. ~ 곽원갑은 부모님을 찾아 뵙기 위해 하산을 한다. 맹인 처자에게 되돌아오겠다고 철썩같이 약속을 한다. 곽원갑이 입산수도하고 있는 사이 중국은 외세의 침입으로 병들어 버리고 말았다. 병든 중국인들은 점점 정신이 나약해지고 있다. 외국 침략자들은 무술대련을 통해 중국 무술인을 제압해 나간다. 이에 곽원갑이 대결을 하고자 한다. 친구 경순을 찾아 무술대회에 나갈 돈을 빌려달라고 한다. 아직도 경순은 친구를 소인배로 여기고 도움을 거절한다. 하지만 그가 남기고 간 신문을 보고 자금을 보내준다. 외국 무술인과의 대결에서 상대방의 목숨을 구해주는 무도를 발휘한다. 진정한 무술인의 모습을 보여준 것이다. 외국들의 상인연합회는 음모를 꾸민다. 외국의 최고무인 4명과 곽원갑 1인의 대결을 추진하여 곽원갑의 쓰러뜨리고 정무체조회를 없애 중국인의 상무정신을 무너뜨리고자 한다. ~ 상하이 프랑스 관할 피에르 극장에서 무술대회가 시작된다. 곽원갑은 각 나라의 대술 고수를 하나하나 격파해나간다. 시합장에서 처음으로 4대1 시합이라는 것을 알고 격분한다. 곽원갑의 시합이 시작되기 전에 이 시합은 정당한 것이 아니니 다른 날에 다시 시작해도 좋다고 하지만 곽원갑은 그대로 계속하자고 한다. 드디어 다나까와 곽원갑의 시합이 시작된다. 처음에 무기를 갖고 대련을 하지만 비긴다. 1 라운드 시합 중 누군가가 다가가 곽원갑의 찻잔에 독을 탄다. 휴식시간에 차를 마시고 2라운드를 맞이한다. 독이 몸에 퍼져 곽원갑은 검은피를 토한다. 다나카는 시합을 계속할 수 없다고 멈춘다. 그래도 곽원갑은 계속하자고 한다. 빨리 죽여주는 것이 그를 고통에서 해방하는 것이라 생각한 다나카는 맹렬히 공격한다. 비틀비틀 뒤로 밀리던 곽원갑은 정신이 몽롱한 상태에서도 빈틈을 찾아내 다나카의 가슴을 향해 일격을 내지른다. 하지만 살수를 거둬드리고 바닥에 쓰러진다. 무도를 아는 다나까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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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책읽기로 이끌어 주려는 저자의 희망대로 , 모든 사람들이 독서를 생활화 하여 즐겁고 유익하게 삶의 질을 높이는 도구로 책을 많이 읽어서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들게 해주는 반가운 책이다.
책의 형식은, 도서 평론가로 저명한 저자가 직접 읽은 우수도서들의 독후감이자 서평 형식을 띄고 있어서 좋은 책을 소개 받는 즐거움과 , 겹쳐 읽기 방법을 사용하여 연관된 책들도 곁들여 읽게 해주는 매우 친절함도 느낄수 있었다
. 50 여 권의 모든 책들을 다 볼수는 없겠지만 , 소개 된 책들은 거의 추천 될만한 좋은내용의 인지도가 높은 책들로 짜여져 있어서 , 마치 추천 도서 목록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테니 눈여겨 두고 찾아 읽어 볼만한 책들로 여겨진다.
다방면의 책들로 구성된 책들은 , 청소년들의 독서 유도를 위해서 마련 한듯한 인상이 드는 듯도 한데, 쉬운 내용으로 쓰여진 것이 누구나 읽도록 할 수 있는 장점으로 보인다.
다만 , 책 제목처럼 "책과 더불어 배우며 살아가다 "에서 내가 기대했었던 바는 , 저자의 도서 평론가로서의 경험적인 유익한 사례나 재미있는 에피소드들을 기대 했었는데 좀 부족한 듯해서 약간 실망 이었다
. 예를 들면 , 저자가 주장하는 독서 운동의 하나인 "한도시 한책 읽기 운동" 등에 대해 관련 된 내용이 자세하게 소개 되었었으면 하는 욕심이 결국은 다음 책에나 기대를 가져 봐야 할듯한 책이 되였다.
그래도 , 저자의 책사랑과 우리출판계를 진정으로 아끼는 마음을 십분 이해할수있는 좋은 책으로 , 책을 좋아하는 한사람으로서 이런 책들이 많이 나와주었으면 하는 바램을 불러일으키는 매우 도움되는 책이다.
그런 뜻에서 이미 나온 "게으름 뱅이의 책읽기 " 나 "각주와 깊이의 책읽기 "를 다시한번 더 꺼내 읽게 만드는 충동을 주게 하는 뜻깊은 계기가 되었다 .
끝으로 , 이 책을 읽고 한사람이라도 더 책과 친구가 되어 책을 좋아하게 만드는 독서 저변화가 하루빨리 앞당겨 지도록 , 책 읽는 사회로 만드는 일에 한발자욱 전진하는 디딤돌이 되어주는 이책을 적극 추천하며 ,많은 사람들이 읽고 생각을 넓히는 책읽는 사회가 되기를 바라는 간절한 마음이 더욱 생기게 된다.
그러니, 좋은 책 읽기에 함께 참여하여 지혜의 등불을 켜는일에 적극 동참 함으로서 독서 강국의 깃발을 드높이게 하는데 앞장 서게 하도록 하는, 좋은책을 읽는일에 게으르지 말어야 겠다는 다짐을 하게 하는 책이다..
[인상깊은구절] <구운몽>을 반드시 주제의 관점으로만 읽어야 할 이유는 없다. 비록 꿈속이었을지라도 불법을 어기고 세속적 쾌락을 추구한 성진의 삶은 지극히 신화적인 성격을 띤 방황이다. 예로부터 방황은 성장으로 이어졌다. 불행히도 우리 현실은 청소년들의 방황을 용납하지 않고 있다. 외려 단 한번의 일탈 때문에 '시민권'을 영영 얻지 못할 수도 있다고 으름장을 놓는다. 그래서 책을 읽어야 하는지도 모른다. 언어로 지어진 상상의 공간에서 주인공과 함께 마음껏 방황하고 일탈하고 저항하기 위해서다. 그러다 보면, 어느덧 성장하게 된 자신을 발견하게 되리라. 마치 꿈에서 깨어난 성진처럼 말이다. - 본문 184~185쪽에서구운몽> |
| 평소 ‘책에 관한 책’을 자주 읽게 된다. 마냥 길을 갔다. 후에 지도를 보고서야 내가 지나온 길을, 현재의 위치를 알 수 있었듯이, 책에 관한 책인 이 책을 통해 ‘책 읽기’에 관한 나름대로의 주관을 정리할 수 있게 되었다. ‘평론가’라 칭해지는 분들의 글을 잃으면 대상에 대한 나의 주관을 세우는 데 도움이 되는 경우가 많다. 나와 어떻게 같고 다른지, 특히 향후 책을 선택하는 데 귀한 방향을 설정해주는 고마움을 잊을 수 없다. 이 책을 읽으면서 인생의 목표라는 것을 생각해보았다. 결론은 “돈 많이 벌어야겠다”는 의식을 강하게 했다. 무슨 통속적인 목표냐구? 그러나 사실이다. 일상에서, 직장에서, 어려운 일들을 겪을 때면 그 일에 몰두하기보다는 오히려 얽힌 실타래는 던져버리고 한 발 물러서 책을 보거나 자연을 찾게 된다. 그런데 항상 책과 자연은 해결책을 알려 준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늘 책 읽는 시간을 벌기위해 아등바등댄다. 때로는 직장을 떠나 평생 책 속에 파묻혀 살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하다. 시간이 지날수록 읽고 싶은 책은 마치 예상못한 소나기처럼 늘어가기만 한다. 언젠가는 결단을 내리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그러기 위해 현재를 더욱 열심히 살지 않으면 안되고, 노후를 대비하기위한 자금을 축적하지 않으면 안된다. 정말 길지 않은 것이 인생이라 생각한다. 이런 인생을 마음껏 하고 푼 일을 하고 싶다. 그것이 바로 책과 여행... 이권우님의 책에서 오히려 빨리 돈을 벌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했다는 것은 참 재미있는 일이다... 더욱 진지하게 독서를 해야겠다. 더욱 현실에 충실해야겠다. 언젠가는 반드시 길이 나타날 것이다. 아니면, 내가 길을 만들어 가게 될 것이다.... 책이 있어, 인생은 한결 행복하다.... |
| 가끔 책을 읽고 나만의 서평을 남기다 보니 남의 서평이 궁금해졌다. 그러다 몇 주전 일요일밤 근무처인 서산으로 돌아오는 길에 이주향의 책마을 산책이란 라디오 프로그램을 듣다 이 책을 알게 되었다. 이 책을 쓴 이권우는 43세로 서산출신의 도서평론가라는 색다른 직업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다. 그래서 이 책을 읽게 되었다. 책의 구성은 이권우 평론가가 최근에 읽은 책을 중심으로 서평보다는 수필형식 빌어 자유롭게 그의 생각을 표현하고 있다. 읽으며, 책 내용보다는 본인의 생각이 더 많다는 느낌이 들었고, 애써 유식해 보이려 하는지 잘 사용하지 않는 문어체 표현(단어)가 가끔 등장했다. 물론 얻은 것도 있다. 내 책읽기를 위해 선택의 폭을 그많큼 줄여준 것이다. 이 책의 본문에 소개된 여러 책들중에 꼭 읽고 싶은 충동을 주는 책들도 간간히 등장하니 말이다. 타인의 서평아닌 서평을 읽으며 사람 사는 것은 대개가 비슷하다는 생각을 했다. 또한 타인을 모방할 것이 아니라 본인의 생각 그대로를 적으로 그것으로 족할것이라는 생각도 들게했다. 아침 새벽에 마지막 책장을 덮으며, 언제까지 이 독서의 습관을 갖고 있게 될 것인지 스스로에게 물어보기도 했다. 독서는 너무 정적이다. 동적이지 못하니 생각이 많아지게 되고 책상앞에 머무는 시간이 그 많큼 늘어난다. 낮 시간은 종일 컴퓨터 화면을 대하고, 밤시간엔 책보기에 눈을 혹사시키니 걱정이 되기도 하다. 책을 읽는 다는 것이 때론 행복하다 느낄때가 있다. 아니, 많다. 술을 마시는 것보다 책읽기의 유혹에 더 끌리는 것보니 책이 좋은가 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