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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리뷰는 '책과 콩나무'를 통해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직접 읽고 작성한 리뷰입니다.' 단순히 성경 속 한 권을 소설화한 시도가 아니라, 이미 익숙한 성경의 이야기를 전혀 새로운 감각으로 체험하게 만드는 작품이다. 보통 성경은 사건 중심의 기록이나 교리적 해설로 읽히기 쉽지만, 제자 요한의 시선을 빌려, 예수를 따르며 겪었던 체험을 서술형 소설로 풀어내고 있다. 따라서 독자는 성경 속 이야기를 멀찍이서 바라보는 독자가 아니라, 요한의 내면과 눈길을 따라 직접 현장에 참여하는 듯한 몰입을 경험하게 된다. 마치 예수의 발자취를 곁에서 지켜보며, 그와 제자들의 숨결을 듣는 듯한 생생함이 느껴지고 있다.
저자는 성경 본문을 무리하게 각색하지 않는다. 기록에 충실하면서도 인물들의 감정과 관계를 세밀하게 묘사하여 성경에서 쉽게 드러나지 않았던 인간적인 결을 덧입히고 있다. 요한이 아내와 함께 살아가는 장면, 제자들 사이의 경쟁심과 연대감, 그리고 유다가 점차 변해가는 모습 같은 이야기는, 복음서에 암시적으로만 남아 있던 인간적 긴장을 드러내고 있다. 이를 통해 예수를 따르는 삶이 추상적이고 신비적인 영역에만 머무는 것이 아니라, 일상과 긴밀히 맞닿아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신앙은 곧 삶의 태도이며, 가족과의 관계, 공동체 속의 갈등, 사회적 압박 속에서 드러나는 실천이라는 점을 소설적 서술을 통해 더욱 구체적으로 느낄 수 있다.
이 책의 중심에는 ‘깨달음’이라는 주제가 있다. 저자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곧 자신을 사랑하는 것이라는 메시지를 강조한다. 신앙이 단순히 교회 안에서의 의식이나 형식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존재 전체를 관통하는 힘이라는 점을 드러내고 있다. 예수의 말씀은 단순히 도덕적 권면으로 다가오지 않는다. 그것은 존재의 의미를 되묻고, 죽음과 삶의 경계를 넘나들며, 율법과 자유의 긴장을 사유하게 만드는 철학적 물음으로 확장되고 있다. 독자는 요한의 체험을 따라가며, 예수의 가르침이 과거의 사건을 넘어 지금 여기의 삶에 여전히 울림을 주는 메시지임을 느끼게 된다.
성경을 낯설게 다시 읽게 하는 힘을 지니고 있다. 단순히 기록된 사건을 복습하는 것이 아니라, 요한이라는 인물을 매개로 그의 내면에 새겨진 깨달음을 마주하게 한다. 이를 통해 독자는 성경을 문자로만 이해하는 데서 벗어나, 마치 처음 읽는 듯한 생경한 감각을 얻게 된다. 하나님이 인간을 먼저 신뢰하고 있다는 관점, 사랑이 인간 본성이라는 선언은, 신앙을 머리로만 이해하려는 태도를 넘어 몸과 마음으로 체화해야 할 과제로 다가오고 있다. 성경을 문학의 형식으로 새롭게 해석한 실험이자, 동시에 신앙을 일상의 지혜로 끌어내는 성찰의 장이다. 예수는 단순한 역사적 인물이나 추상적 교리의 상징이 아니라, 지금 여기서 만나는 스승으로 그려지고 있다. 따라서 독자는 신앙을 교리적 지식으로만 다루는 데서 벗어나, 삶의 방식과 태도로 받아들일 수 있게 된다. 신앙을 새롭게 묻고 싶은 이들에게, 그리고 삶의 근원적 의미를 탐구하는 모든 이들에게 깊은 울림과 사유의 길을 열어주는 책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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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주관적인 리뷰입니다. 최근에 넷플릭스에서 〈더 초즌 : 선택받은 자〉를 보았었는데, 여기서 요한복음을 일게 되어서 얼마나 반가운지 모르겠다. 시즌 5까지만 나왔지만 예수의 제자 유다에게 배신당한 예수가 끌려간 이야기에서 끝난다. 뒷이야기가 궁금해져 버렸다. 성경 책을 또다시 읽기에는 벌써부터 답답함이 올라와서, 나는 창세기 이전을 좋아하지 이후는 좋아하지 않았다. 그런 나에게 <소설 요한복음>을 봤을 때 너무 반가웠다.
어릴 적부터 기독교를 다녔지만, 기독교를 다닌 신자들 중에 친구 여럿이 몰려다니면서 자기보다 나약한 사람을 괴롭히고 악랄하게 구는 걸 보고, 어느 순간부터는 그러한 모습들이 보기 질려서 교회를 안 나가게 되었다. 엄마 말로는 우리가 4대째 기독교 집안이고, 내 남동생이 목사이기 때문에 교회를 가야 한다느니 강요를 끊임없이 해와서 더욱더 내 마음은 거절과 불신, 불만으로 가득 차 믿음이 사라졌었다. 잘 못을 한 사람은 회계를 하면 하느님이 용서해 주신다는 말에, 나는 그럼 범죄자들도 살인 지르면서 기도하면 용서해 주겠네? 또 범죄 일으키고. 무한 반복이라고 엄마한테 비아냥 거리기까지 했다. 어릴 때부터 폭력으로 맞고 자라서, 아빠와 엄마가 이혼해달라고, 고통 좀 끝내게 해달라고 기도하며 빌며 울었으나 몇 년이 지나도 그 문제는 지나지 않았다. 그래서 아빠나 엄마와의 관계에 있어 꼬인 실타래처럼, 얽히고설켜 남은 건 언제나 상처뿐이었다. 그런데 엄마도 회개의 뜻을 잘 못 알고 있던 것이다. 정말 아이러니하지 않나. 성경 책을 그리 열심히 들여다보고 하시는 분이 그 참된 뜻을 모른다는 것이다. 엄마는 내가 애를 낳고 성인이 되었는데도 교회 가라고 질리도록 말하고, 기독교 여한 다고 다른 종교는 안돼라는 무조건적 강요에 내가 미쳐버리는 줄 알았다. 기독교는 나에게 그런 불편함의 대상이 되었다. 저 말에 반박할 말은 반박할 수 있는 건 오로지 성경 책을 과학으로 풀어서 신랄하게 비판해 줘야 하는 생각이 들었다. 교회 가서 기도하라는 말에, 예를 들어서 청소년기의 나의 답변은 이러했다. “엄마가 하는 건 강요야. 누굴 위해서 자꾸 강요하는 거야? 나를 위해서가 아니라 엄마 욕심 채우고자 강요하는 거잖아. 강요에 의해 교회 가서 기도하면 달라지는 건 하나도 없어. 교회는 자꾸 강요하고 불필요하게 간섭하는데 누가 가고 싶겠어? 엄마나 많이 가세요.” 최근 들어서는 엄마한테 하나하나 따져댔다. “지금 엄마가 하는 건 바리새인들이나 하는 거야. 자기 욕심 채우고자. 예수님이 그러는데 장소는 어디든 상관없다고 했어. 성경 책 읽으라 할 때 제대로 안 읽었지? 불필요하게 감정 낭비하고 싶지 않아. 엄마가 자꾸 그러면 난 절에 갈 거야. 아니면 귀신을 믿던 할 거라고.” 난 하면 한다는 성격이라서 그런가, 최근 들어 기독교 이야기는 잘 안 하신다. 내가 교회에 ‘교’ 짜만 들어도 발작 증세까지 왔으니까 더는 날 건드리지 않는다. 믿음이라는 것은 그냥 생기지 않는다. 그저 어느 순간에 눈에 가고, 가고 싶고 그럴듯한 마음이 생긴다고 생각한다. 예수님도 그러하지 않았는가. 기도는 장소가 어디든 상관없다고. 꼭 교회 안이 아니어도 된다고. 이 책에서도 그런 이야기가 나왔다.
눈먼 자의 눈을 고치고, 다리를 고쳐주고, 다양한 사람들을 치료하면서 다니는 예수가 유다에게 배신당하는 걸 알면서도, 제자의 발을 씻겨주어 가슴이 먹먹했다. 어떤 마음으로, 어떤 심정으로 제자의 발을 닦았을까. 예수에게는 엄청난 갈등도 많았을 것 같은데, 어떻게 한결같을까. 싶은 마음도 있었다. 솔직히 책을 읽으면서 지금의 나의 과정은 하나님이 주신 선택의 시련 아닐까 하는 것. 과거의 여러 과정이 있었고 늘 의심하고 경계하면서 이겨나갔기에, 성경 책을 읽을 수 있었고, 지금 아이를 혼자서 잘 키울 수 있었고, 사람을 이해할 수 있었으며, 알 수 있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이렇게 든든하게 살 수 있었던 아니었을까. 아직도 기억난다. 주기도문과 사도신경. 그동안 바쁘게 살아갔으며 교회에 나간 적도 없는데 어떻게 이것만큼은 잊지 않고 기억하는지 모르겠다. 소설 요한복음은 나에게 많은 생각을 갖게 해주는 책이며, 무언가를 얻을 수 있는 조언이 되어버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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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제공 책에 쓴 주관적 서평입니다] 심히 쇼킹한 구성의 플롯을 가진 소설이다. 거기에 어지간하면 이 책을 읽기 전 이미 스토리는 다 알고 읽게 될 가능성도 크다. 왜냐면 성경을 그대로 원작처럼 삼았으니까. 책을 딱 피자마자 깜짝 놀랐던게 있다. "예수형..." 내가 잘못봤나, 아님 프롤로그에 저자가 그리 불러 본게 내 눈에 들어왔을 뿐인가? 내가 읽기 시작한 첫페이지부터 바로 소설의 시작이 맞았고, 예수형이란 호칭도 이 책에서 주인공이 예수를 일컫는 계속되는 작중 호칭인 맞았다. 그렇게 테스형처럼 부르는 예수형이라는 날 놀라게 한 이 호칭은, 책을 읽기 시작하고 그냥 조금만 지나면 하나 둘 익숨함으로 변해갔다. 예수도 예수형, 요한도 요한형, 베드로도 베드로형이니까. 막달라 마리아는 상대를 '오빠'라고도 부르니... 베드로... 배신자의 아이콘처럼 회자되는 그는 예수의 첫 대면때 개명을 시켜준 이름이 바로 이 이름 베드로였다. 근데 이걸 작중에선 암시적으로 반석이라는 뜻을 가졌다고 은유적으로 설명하는 부분이 있다. 예수의 등장부터 십자가에 못박히기까지 흐름을 어느정도 아는 사람이라면 책 자체가 가진 스토리는 특별할게 없지만, 저자가 작중 화자의 시각을 빌려 현재화 된 문체를 사용했고 실제경험과 목격자로써의 화법도 구사하기에 저자의 생각이 투영된 예수의 행적을 따라 걸었던 주인공은 생동감을 느끼게 해주는 장치같다. 5년... 저자는 실제 5년을 이 책 주인공이 된듯 기독교 교리에서 살았다고 말미에 적었다. 책속 주인공은 3년간 요한을 따라다니다가 요한으로부터 예수로의 바톤 터치식 인계로 주인공이 자신의 선생님을 요한에서 예수형으로 바꾼 인물인데 그에게는 예수를 만나기 전까진 요한 이상의 선생님은 없었으나 요한이 예수를 기다렸고 선생님으로 모시기에 자신 또한 선생님이 선생님으로써 큰 거부감없이 갈아타게 됐고. 성경이 주는 종교색 자체는 크지 않다. 그보다는 선생님을 갈구한 주인공의 애착이 예수의 기적과 성품을 바라보며 오히려 부각되는 느낌이 컸다. 선생님... 책은 살아가는 모두가 원한다는 인생의 길잡이로써 선생님이란 호칭을 쓴다. 난 이 선생님을 따르고 싶고 찾고 싶은 주인공의 마음을 마치 환상소설처럼 느꼈다. 성경 원전은 어렵다고 생각하는 이들에게 쉽게라도 다 읽은듯한 효과를 줄수도 있을 소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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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 받고 작성한 리뷰입니다 소설 요한복음 장길섭 창해 저자분은 개척교회 목회를 하셨고, 참된 도를 찾아가는 수도자의 기운이 풍기는 외모를 하고 계셨다. 내가 아는 상식으론 이 요한복음은 성경 중 하나이다. 성경은 천주교에서는 73권을 개신교 기준으로는 66권을 정경으로 여긴다. 그 중 한권이 바로 요한복음이다. 요한복음은 성경에서 구약성서를 지나 27권의 신약성서 중 네번째 성경으로 4복음서라고 불리는 성서 중 하나이며 그외 마태복음 마가복음 누가복음 등이 있다. 4복음서의 공통점은 예수의 탄생과 죽음까지의 여정과 행적을 기록하고 있으며 네 사람이 기록했기에 큰 틀에서는 같지만 당시를 바라보는 관점이 제 각각 달라 기록자의 특성을 반영이 된 셈이다. 그 점에서 서로 내용이 보완이 되기도 하고 같은 사건을 다른 시각으로 보며 느꼈기에 그 또한 읽는 이에게 흥미로운 지점이 된다. 요한은 예수님의 열두 제자 중 한 명으로 기록한 성경 몇 권이 있는데 요한복음 외에 요한계시록과 요한일,이,삼서 등이 있다. 성서 제목 앞에 요한으로 시작되니 알아보기 쉽다. 요한복음 보여지는 것 뿐만 아닌 영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내용들이 많은 것이 특징이라서 다른 복음서들과 별개로 영적으로 깊은 부분들이 많이 있다. 최근에 발견된 도마복음은 성경에 포함되지 않지만 요한복음 못지 않게 도마복음도 영적으로 깊은 내용이 많이 있었다. 시중에 나온 해설집이 있으며 유투브에서도 전문을 보고 들을 수 있어서 그렇게 했다. 요한복음을 소설로 쓰셨기에 궁금하였다. 요새는 영적인 내용을 다루는 천국과 지옥을 20년이 훨씬 넘는 기간동안 지상에서 오가며 쓴 스베덴보리의 책들을 보는 중이기도 하여 더욱 그랬던 것이었다. 요한복음 1장부터 21장까지의 기록들을 그대로 판박이하듯 소설화하여 저자분의 상상력과 지식을보태어 구성하였다. 그럴 것이라고 예상은 안했는데 너무 생각이 앞섰던 것이구나 했다. 이 책의 장점을 말한다면 누군가가 성경 본문으로서 요한복음이 읽기 어렵다면 쉽게 풀어낸 소설 요한복음을 가볍게 읽는 것도 괜찮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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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 받아 작성한 주관적인 리뷰입니다.
소설 요한복음은 신약성경 요한복음을 토대로 하여, 단순한 성서 해설이나 교리적 설명을 넘어 사도요한의 시점에서 소설적 상상력과 영적 묵상을 결합한 작품이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며, 오래전부터 알고 있던 성경의 사건들을 전혀 다른 상상 속에서 새롭게 바라볼 수 있었다.
저자는 요한을 단순한 기록자가 아니라, 한 인간으로서의 고민과 성찰을 담아내는 인물로 그려냈다. 요한의 시선으로 바라본 예수의 삶과 가르침은 단순한 역사적 사건이 아니라, 우리 스스로에게 던지는 질문처럼 다가왔다. 요한은 예수와 함께했던 순간들을 회상하며 사건의 상황을 묘사하는 데 그치지 않고, 그 속에서 드러난 영적 의미와 자신이 느낀 내적 변화를 진솔하게 고백한다.
책에서는 인생의 가장 중요한 것은 도덕적 개선이나 사회적 성취가 아니라, 존재의 근본적인 변화라고 말하며 ‘거듭남’에 대해 강조한다. 갈릴리 가나의 혼인잔치에서 물이 포도주로 변하는 장면은 단순한 기적 이야기가 아니었다. 예수님은 자신의 때가 아직 이르지 않았다고 하시며 어머니의 요청을 단호히 거절하지만, 결국 사람들의 부족을 채워주시기 위해 기적을 베푸신다. 그 과정에서 드러난 것은 하나님의 능력 과시가 아니라, 믿음과 순종을 통해 이루어지는 ‘변화’였다. 물이 포도주로 변한 사건은 단순한 외적 변화가 아니라, 종교의 본질인 ‘거듭남’을 상징하는 것이었다. 나는 이 대목을 읽으며 “나는 과연 거듭난 삶을 살고 있는가?”라는 물음을 피할 수 없었다. 또한 저자는 참된 예배의 의미를 새롭게 풀어낸다. 예배란 단순히 시간과 장소에 매여 드리는 의식이 아니라, 삶 전체를 하나님께 드리는 것이라는 메시지를 전달한다. 예수님께서 사마리아 여인에게 하신 말씀, 그리고 멀리 떨어진 환자를 단번에 고치신 사건은 예배가 의식이나 형식에 머무르지 않고, 영과 진리로 드려져야 함을 보여준다. “삶 자체가 예배다”라는 저자의 메시지는 내 신앙생활을 되돌아보게 했다. 나는 예배를 주일 아침 교회에 가서 드리는 시간으로만 국한시키지 않았는지, 내 일상 속에서 하나님께 헌신하는 삶을 살고 있는지 스스로를 점검하게 되었다.
나 역시 신앙생활 속에서 ‘거듭난다’는 표현을 자주 들어왔지만, 이 책을 통해 그것이 단순히 종교적 언어가 아니라 실존적인 질문임을 새삼 깨달았다. ‘나는 정말 새로 태어난 삶을 살고 있는가?’, ‘예수를 따른다는 것은 내 삶을 어떻게 변화시키고 있는가?’라는 물음이 내 마음속에 오래 남았다.
또 하나 주목할 점은 ‘소설 요한복음’에서는 사건을 극적으로만 재현하지 않는다. 오히려 담담하고 차분하게 풀어내면서, 각 장면 뒤에는 영적인 통찰이 덧붙여진다. 때로는 소설 같고, 때로는 묵상집 같으며, 때로는 에세이 같은 느낌을 준다. 그래서 책장을 넘길수록 단순히 이야기 속 인물이 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자신이 예수의 말씀 앞에 서 있는 듯한 체험을 하게 된다. 나 역시 책을 읽으면서 어느 순간에는 요한의 자리에서, 또 어느 순간에는 군중 속 한 사람의 입장에서 이야기를 따라갔다.
책의 내용은 잘 알려진 성경 사건들, 물을 포도주로 바꾸신 기적, 오병이어의 기적, 나사로의 부활, 예수의 십자가와 부활 등 을 중심으로 전개된다. 그러나 익숙한 사건일지라도, 요한의 내적 독백과 해석이 더해지면서 그 의미가 새롭게 다가온다. 특히 십자가 사건 앞에서 요한이 느낀 두려움, 슬픔, 그리고 부활 이후의 희망은 단순히 종교적 교리를 넘어, 한 인간의 삶을 근본적으로 바꿔 놓는 체험으로 묘사된다.
특이한 점은 사도 요한이 결혼을 하였고, 그의 아내 이름이 ‘나라’라는 인물로 설정되어 등장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나라’라는 인물이 실제 역사적 존재라기보다, 하나님의 나라를 상징적으로 드러내는 장치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즉, 하나님의 나라는 먼 하늘이나 저 세상 어딘가에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 곁에, 일상의 가장 가까운 관계 속에서 경험될 수 있음을 보여주는 것 같다.
‘소설 요한복음’은 단순히 성경을 다시 읽게 하는 책이 아니다. 그것은 독자에게 자기 자신을 되돌아보게 한다. ‘나는 지금 어떤 삶을 살고 있는가?’, ‘내 삶은 참으로 새롭게 변화되었는가?’라는 질문은 책을 덮고 나서도 계속 이어졌다. 결국 저자가 전하려는 메시지, 즉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거듭남”이라는 말은 단순한 종교적 권면이 아니라, 모든 인간에게 던지는 근원적 물음처럼 느껴졌다.
나는 이 책을 통해 신앙의 본질이 무엇인지를 다시금 확인했다. 신앙은 단순한 지식이나 외적인 행위가 아니라, 내 존재가 새로워지는 체험이며, 삶의 뿌리부터 바뀌는 변화라는 사실이다. ‘소설 요한복음’은 그 사실을 잊지 않도록 일깨워 주었고, 내 삶 또한 다시금 돌아보게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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