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전

리뷰 (69)

한줄평
평점 분포
  • 리뷰 총점10 26%
  • 리뷰 총점8 52%
  • 리뷰 총점6 19%
  • 리뷰 총점4 3%
  • 리뷰 총점2 0%
연령대별 평균 점수
  • 10대 0.0
  • 20대 0.0
  • 30대 9.0
  • 40대 7.0
  • 50대 8.0

포토/동영상 (2)

리뷰 총점 종이책
폴 오스터가 빵을 구워 우리를 먹여살리리라
"폴 오스터가 빵을 구워 우리를 먹여살리리라" 내용보기
폴과의 만남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소위 명문 예술대 지식인이라는 사회적 페르소나를 가지고있는 대학생들과의 엠티에서. 조금은 가슴 떨리고 우월감과 열등감이 스물스물 기어오르며 안주는 소세지와 술은 맥주가 습기찬 방에 놓여진 젊은 날의 일상이었다. '디비디비딥'같은 초딩적 놀이보다 그날은 어쩐지 '내 인생의 책'이라는 다소 어울리지 않는 주제로 시간을 축내고 있었다. 그
"폴 오스터가 빵을 구워 우리를 먹여살리리라" 내용보기
폴과의 만남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소위 명문 예술대 지식인이라는 사회적 페르소나를 가지고있는 대학생들과의 엠티에서. 조금은 가슴 떨리고 우월감과 열등감이 스물스물 기어오르며 안주는 소세지와 술은 맥주가 습기찬 방에 놓여진 젊은 날의 일상이었다. '디비디비딥'같은 초딩적 놀이보다 그날은 어쩐지 '내 인생의 책'이라는 다소 어울리지 않는 주제로 시간을 축내고 있었다. 그러던 중 더운 여름날임에도 불구하고 당시 최고 유행하던 비니를 쓰고 있던 뿔테안경의 한 소년이 말을 꺼냈다. '니네 폴 오스터 아냐?' 신트림이 나올 즈음 그리고 졸음이 와 꾸벅꾸벅 졸때 난 그 이름을 듣고, 화들짝 놀랐다. 폴 오스터는... 내가 읽으려고 읽으려고 하다가 실패한 4차원적 작가였기 때문이다. 황량한 도서관에 폴 오스터와 내가 가만히 앉아있는 가운데 폴 오스터는 말했다. '너 내가 말하려는 것 다 이해할 수 있냐?' 그는 날카로운 다크서클과 꼬질꼬질한 스웨터, 타자습관으로 인해 굳은 살이 박힌 세번째 손가락마디를 내놓으며 물었다. 나는 고개를 숙인체 '아니요.'라고 말할 수 밖에 없었다. 왠지 그의 소설들을 보고있자면 오줌이 마려울 것같기도 한 긴장감이 탱천했다. 내 삶의 8할을 차지했던 지적 허영심은 그의 소설에서 발휘되지 않았다. 내게 폴 오스터는 콤플렉스였다. 마호가니 테이블에 진한 에스프레소를 탄 후, 배경음악은 쇼팽을 들어며 잔뜩 어깨에는 힘을 주고 내려오는 안경을 치켜올리며 읽었던 대부분의 한국문학, 고전문학에의 독서법은 무용지물이었으니까. 뇌 속의 나사가 흔들흔들할때까지 풀려있고 편한 상태에 파자마 차림으로 책을 읽기가 두려웠다. 이런 그와의 독대가 필수불가결해진 것은 주변에서 독버섯처럼 피어오르고 있는 <폴 오스터 추앙 독자군>의 징집명령이 나에게도 다다랐기 때문이다. 스노우캣, 온갖 인터넷 서점, 오프라인 서점, 헌책방, 교수, 친구들...그들의 세력은 점차 확대되었다. 나는 무서웠다. 4차원에 빠져들기가. 그러던 나는 예전에 선물받은 검은 양장의 <폐허의 도시>를 꺼내들었다. 이상하게 폴 오스터 책을 선물로 주는 사람도 많아졌다. 아마 '그들'의 전략일테다. 읽었다. 이상하게 나는 마법처럼 빠져들기 시작했다. 결코 매력적인 소재라고 볼 수 없는, 이제는 너무 많이 쓰여져버린 세계종말이라는 주제가 그 낡은 화두가 멋지게 현대적인 감각으로 재생되고 있었다. 등장인물에 자신을 대입시키는 것이 뻔히 다 보이는, 그래서 고집세 보이고 귀여운 작가의 타자치는 손가락이 상상되었다. 다음은 웨인 왕 감독의 <스모크>. 기실 이 영화보고 폴 오스터에 관심이 안간다면 정말 인간 아니다. 생전 처음 들어보는 일상생활의 희귀한 에피소드가 참 따뜻하게 전해온다. 너무 평범한 일상들이 너무 특별해진다. 세번째 읽은 것이 바로 이 <빵굽는 타자기_젊은 날 닥치는대로 글쓰기>다. 정말 폴, 작가되기 위해 고생 마이 했다. 프랑스어 번역에 영화 시나리오 작업에 출판일에 멕시코 찍고 파리 돌고 뉴욕까지. 존 레논도 만나고 마피아 같은 제작자도 만나고 아이도 낳고 배에 승선해 음식도 만들고 카드게임 팔기위해 장난감박람회가고. 정말 종횡무진 열나게 뛴다. 그리고 열나게 쓴다. 닥치는 대로 쓴다. 90만원에 소설을 팔고 몇 일 견딜 수 있는 무명작가의 눈물어린 경험담이라고 볼 수 있겠다. 어쩌면 이런 사람들이 한국에도 아니 미국에도 중국에도 세계에 수십만 수백만이 있겠지. 아마 지금쯤 나처럼 서평을 쓰거나 시나리오를 쓰거나 교정을 보면서 눈물 젖은 글을 쓰면서 언젠가는 언젠가는...을 유행가처럼 읖조리고 있겠다. 그래서 <빵굽는 타자기>는 그들에게 바치는 오마주다. 열나게 쓰면 된다. 닥치는 대로 쓰면된다. 그럼 폴 오스터가 된다. 글을 쓸 수 밖에 없는 인간은 그 길로 가라. <폴 오스터 교>는 그렇게 오늘도 말씀을 전파하고 계시다. 이 책은 그렇기 때문에 작가의 길을 가려는 우리들의 타자기를 치켜세워주고 있다. 어두운 방 한구석에서 엄마의 눈치를 보며 겨드랑이에 땀날정도로 글을 쓰고 있는 동지여, 힘내라. 우리에겐 폴 오스터가 있다.

[인상깊은구절]
'조, 괜찮아요?' 그가 고개를 들었다. 그의 눈에는 슬픔과 고통과 낭패감이 가득 차 있었다. '아니, 괜찮지 않아. 조금도 괜찮지 않아.' '제가 도와드릴 일이 있을까요? 꼴이 말이 아니군요.' '그래, 자네가 먼저 말을 꺼냈으니 말인데, 자네가 해줄 수 있는 일이 하나 있다네.' 이렇게 말하고는 느닷없이 내 손을 잡았다. 그리고는 내 눈을 들여다보면서 감정에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나를 자네 집으로 데려다주게, 그리고 침대에 누워서 자네와 사랑을 나눌 수 있게 해주게.' 너무나 뜻밖의 요구여서 나는 깜짝 놀랐다, 기껏해야 커피 한잔이나 수프 한 그릇 정도를 예상하고 있었다. '안돼요. 그건. 내가 좋아하는 건 여자지 남자가 아니라고요. 미안하지만 그런 짓은 안해요.' 그가 다음에 꺼낸 말은 내가 이제껏 들은 말 중에 가장 훌륭핟고도 재치있는 말로 아직도 내 마음에 남아있다. 그는 1초도 낭비하지 않고, 낙담하거나 섭섭해하는 기색은 털끝만큼도 보이지 않고, 어깨만 한번 으쓱하는 것으로 내 대답을 받아넘기고는, 쾌활하고 낭랑한 목소리로 말했다. '자네가 물었고, 그래서 대답한 걸세.'
y****3 2005.07.06. 신고 공감 17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글 쓰면서 먹고 살기의 고달픔 - 빵굽는 타자기
"글 쓰면서 먹고 살기의 고달픔 - 빵굽는 타자기" 내용보기
얼마 전 영화시나리오 작가의 죽음이 사회적으로 이슈화된 적이 있다. 그녀가 죽기 전에 남긴 “남은 밥이 있으면 좀 주오”라는 메모 때문에 그녀의 죽음이 더욱 안타까웠다. 이전부터 우리나라에서는 시인이나 작가, 예술가는 배고픈 직업이라고 여겨져 왔다. 하지만 지금과 같은 물질 풍족시대의 그늘에서 싱그러운 젊음을 꽃피워야 할 재능있는 작가가 그것도 한창의 나이에 자신의
"글 쓰면서 먹고 살기의 고달픔 - 빵굽는 타자기" 내용보기

얼마 전 영화시나리오 작가의 죽음이 사회적으로 이슈화된 적이 있다. 그녀가 죽기 전에 남긴 남은 밥이 있으면 좀 주오라는 메모 때문에 그녀의 죽음이 더욱 안타까웠다. 이전부터 우리나라에서는 시인이나 작가, 예술가는 배고픈 직업이라고 여겨져 왔다. 하지만 지금과 같은 물질 풍족시대의 그늘에서 싱그러운 젊음을 꽃피워야 할 재능있는 작가가 그것도 한창의 나이에 자신의 방에서 홀로 죽어가다니이 자리를 빌어서 그녀의 명복을 빈다. 부디 천국에서는 배고프지 않고 맘껏 자신의 재능을 펼치기를그런데 이러한 실정은 비단 우리나라만의 문제가 아닌 것 같다. 소위 선진국이라고 불리는 미국에서도 역시 유명해지기 전까지는 작가로써 먹고 살기가 힘든 일인가 보다. 폴 오스터는 자신의 자서전적 소설인 이 책에서 젊은 시절 글을 써서 먹고 살기 위해 고군분투했던 자신의 경험을 쓰고 있다.

 

20대 후반과 30대 초반에 나는 손대는 일마다 실패하는 참담한 시기를 겪었다. 결혼은 이혼으로 끝났고, 글쓰는 일은 수렁에 빠졌으며, 특히 돈 문제에 짓눌려 허덕였다. 이따금 돈이 떨어지거나 어쩌다 한번 허리띠를 졸라맨 정도가 아니라, 돈이 없어서 노상 쩔쩔맸고, 거의 숨막힐 지경이었다. 영혼까지 더럽히는 이 궁핍 때문에 나는 끝없는 공황상태에 빠져 있었다.(5)

 

이렇게 서두를 쓰고 있는 폴 오스터는 자신의 꿈은 처음부터 오직 작가가 되는 것이었다고 당당하게 밝히고 있다. 자신은 열예닐곱 살 때 이미 이 사실을 알고 있었노라고 말이다. 작가가 되는 것이 그에겐 필연이었는가 보다.

 

의사나 정치인이 되는 것은 하나의 진로 결정이지만, 작가가 되는 것은 다르다. 그것은 선택하는 것이기보다 선택되는 것이다. 글쓰는 것 말고는 어떤 일도 자기한테 어울리지 않는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면, 평생 동안 멀고도 험한 길을 걸어갈 각오를 해야 한다. 신들의 호의를 얻지 못하면(거기에만 매달려 살아가는 자들에게 재앙이 있을진저), 글만 써서는 입에 풀칠하기도 어렵다. 비바람을 막아 줄 방 한 칸 없이 떠돌다가 굶어 죽지 않으려면, 일찌감치 작가가 되기를 포기하고 다른 길을 찾아야 한다.(6)

 

열예닐곱에 자신이 무엇이 되어야겠다고 확신할 수 있는 사람은 얼마나 될 것인가. 지금 우리 사회에서는 고3이 되어서도 자신이 무엇을 해야 할 지 갈팡질팡하다가 결국 수능이나 내신 점수에 맞추어 자신의 전공을 정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 혹은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은 분명하더라도 점수가 안되어 포기하게 되는 경우도 있다. 작가의 말처럼 작가는 선택되는 것이므로 자신의 진로를 결정해야 하는 혼돈의 시간을 갖지 않는다 하더라도 자신의 글이 인정받기 위해서는 길고 긴 인내의 시간이 필요하다. 폴 오스터의 말을 빌리자면 신의 호의를 얻는운 좋은 사람들은 그리 많지가 않은 것이다. 작가에게 자유는 어떤 영감을 주는 것이 아닐까. 하긴 이건 작가뿐 아니라 모든 예술가와 같이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사람들에게 필수 요소인 것 같다. 폴 오스터도 글을 쓰면서 먹고 살기 위하여, 정규직원이 될 수 있는 기회를 마다하고 시간제로 일하게 되는데 이는 순전히 글쓰는 자유 시간을 가지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이렇게 토막으로 일하다 보니 살아가는데 필요한 돈이 항상 부족하고, 돈이 부족하니 또 다른 아르바이트 자리를 구하고 결국 아르바이트에 치여서 글 쓸 수 있는 시간은 줄어들게 되는 빈곤의 악순환에 허덕이게 된다. 그나마 아르바이트는 주로 번역 일이었으니 다행이면 다행이랄까. 글 쓰는 일과 그리 멀리 떨어진 일은 아니니깐 말이다.

 

이 책의 뒤에는 자서전적 이야기를 증명이라도 하듯이, 자신이 힘든 시절에 썼던 세 편의 희곡로렐과 하디, 천국에 가다>, <정전>, <숨바꼭질과 자신이 먹고 살기 위해 개발했으나 아무도 지원해주지 않아 사장되어 버린 카드게임인액션 베이스 볼에 대해서 덧붙여 있다.

 

폴 오스터는 이 책을 통하여 이렇게 작가가 되는 일은 힘든 것인데도 작가가 될 텐가? 매일 배고프고 가난에 허덕이고, 결혼한 아내와 아이는 이 가난을 견디지 못해 떠나고, 혹시나 글을 쓰더라도 헐값에 팔아 치워야 한다네. 이 고생이 평생 갈지도 모른다네. ? 그래도 작가를 하겠다고? 정말 각오는 된 건가?”라고 재차 확인하는 것 같다. 운이 좋다면 폴 오스터처럼 유명해져서 많은 작품을 남기면서도 돈도 벌 수 있겠지만, 그런 그에게도 유명해지기까지 이렇게 많은 힘든 기간이 있었다는 것을 명심하기 바란다. 그나마 작가가 살아있는 동시대에 사람들로부터 작품으로 인정받는 것도 행운이라고 할 것이다. 그렇지 않고 작가가 죽고 나서야 혹은 한 세기 정도 지난 후에야 주옥 같은 글을 인정받는 작가도 있으니깐 말이다. 하긴 우리 같은 일반인들이 후대에 이름을 남기기는 어렵지만, 적어도 작가는 작품을 통해서 자신의 이름은 남길 수 있으니 이 사실만으로도 만족을 해야 하는 것인가?

 

하지만 영화 시나리오 작가의 죽음과 같이, 재능을 다 꽃피우기도 전에 죽어가는 일과 같은 비극이 더 이상 있어서는 안될 일이다. 이들을 죽음으로 몬 것은 이 사회의 일원인 우리 모두의 책임이다. 이들을 위한 개인 혹은 기업의 후원이나 문화재단 설립 등을 통하여 지원해주고 후원해 주는 장치가 필요할 것 같다. 자유로운 분위기에서 먹고 살기의 걱정 없이 마음껏 창작할 수 있는 그런 사회를 꿈꾸어 본다.      

m*******4 2011.02.13. 신고 공감 12 댓글 27
리뷰 총점 종이책 주간우수작
인생의 바닥을 아는 자의 글쓰기
"인생의 바닥을 아는 자의 글쓰기" 내용보기
눈을 감고 과거의 시간속으로 시간 여행을 떠나보는 일이 가끔 있다. 이제 삼십대 초반을 넘어 꺽어지는 나이로 막 진입을 눈앞에 두고 있는 요즘, 부쩍 그러한 날이 많아졌다. 놀라운 것은 과거의 특정 시점으로 되돌아가는건 단 1초도 걸리지 않는다는 것이다.  나름 고난의 시절이라 부르던 과거의 시간들도, 지금와선 대수롭지 않게 기억된다는 것은 이채롭다.  현재의 위치에서 과
"인생의 바닥을 아는 자의 글쓰기" 내용보기

눈을 감고 과거의 시간속으로 시간 여행을 떠나보는 일이 가끔 있다. 이제 삼십대 초반을 넘어 꺽어지는 나이로 막 진입을 눈앞에 두고 있는 요즘, 부쩍 그러한 날이 많아졌다. 놀라운 것은 과거의 특정 시점으로 되돌아가는건 단 1초도 걸리지 않는다는 것이다.  나름 고난의 시절이라 부르던 과거의 시간들도, 지금와선 대수롭지 않게 기억된다는 것은 이채롭다.  현재의 위치에서 과거를 바라보면, 과거란 시답잖은 것들을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쩔쩔매느라 낭비된 시간들의 연속같다. 

 

그럴때 회상속에서 얻는 하나의 힌트가 있다. 그건 과거의 실수를 되풀이 하지 않게 현재 삶에 대범한 자세를 가져야 한다는 점이다.  달리 말해, 삶에 자신감을 갖는 일인 것이다.  그러나 현재에서 미래를 설계하고, 현재를 헤쳐 나가는 일은 생각만큼 쉽지 않다.  인생 전체의 그림이란 한눈에 들어오질 않고,  인생이란 본래 상수가 아니라 변수들의 연속이기에 말이다.  그래서 중요한 것이 삶을 대하는 우리의 자세다. 그것은 인생관 혹은 간단히 소신이라 불러도 될 것이다.

 

평범한 삶이란 무엇인가 ?  학교를 졸업하고 직장을 잡고 결혼을 하고 그리고 아이를 낳고 또 평범하게 늙어가는 것일까?   아이의 양육이나 돈을 모아 집을 사고, 그리고 노후가 걱정되지 않게 든든한 예금 통장을 갖는 일이 정말 우리 인생의 사명일까?  그러나 애초부터 이러한 평범한 인생을 거부하는 사람들이 있다.  평범한 삶이란 자유를 돈과 맞바꾸는 삶이다.  독일 철학자 쇼펜하워는 돈은 자유와 같다고 했다.  부자가 된다는 것은 가난한 사람들에 비해, 그가 가진 것만큼 시간을 소유한다는 말이며 이 말은 그가 오늘 하루, 아니 미래까지도 자유롭다는 의미다.  그러나 작가가 되고 싶은 사람은 영혼을 팔고 시간을 헌납해 돈과 맞바꿀 가치를 느끼지 못하는 사람들이다. 나쁘게 말하면 현실 부적응자 좋게 말하면 이상주의자, 다르게 말하자면 글을 써서 생계를 잇고자 하는 작가다.

 

미국 작가 폴 오스터의 <빵굽는 타자기>는 작가가 되고 싶어했던 미숙한 한 젊은 영혼의 일대기를 짧게 다루고 있는 자서전이다. 이제 갓 작가로 걸음마를 떼는 단계에 있던 폴 오스터의 젊은 날의 초상 쯤이라 불러도 될 것이다.  이 책에서 오스터는 자신의 젊은날을 뼛속까지 파고드는 리얼함으로 생생히 풀어내고 있다.  그러나 자서전이라 이름붙이기에 어색한 면도 있다. 왜냐하면, 이 책은 폴 오스터 자신의 이야기이긴 하지만 오직 삶 가운데 20대의 어느 한 시점에 한정되어 있기 때문이다. 삶 전체를 포괄하진 못하지만 현재 세계적인 작가로 인정받는 폴 오스터의 습작시절의 생의 기록이기에, 평소 작가들의 삶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이 읽는 내내 지적인 흥미로움을 얻기에 충분하다.

 

책 뒷 부분의 희곡을 제외하면 170여 페이지에 지나지 않은 짧은 글이지만, <빵굽는 타지기>속에는 젊은날을 살아보았고, 현재 살고 있는 사람들이 공감할만한 이야기들로 가득하다. 사연없는 인생이 없다지만, 젊은이라면 없는 사연도 만들어 내야 하는 진취성을 갖고 있어야 한다. 그러한 면에서,  폴 오스터는 부러운 사람이다.  지나온 젊은 시절을 회상하면서 우리는 자신의 미숙함과 서투름에 대해, 혹은 인생에 대한 근본적인 오해와 편견, 그리고 잘못된 선택에 대해 그 누가 안타까움과 아쉬움이 없이 회상할 수 있겠는가?   더군다나 가진 것 하나없고,  그 누구도 인정해주지 않는 이제 갓 대학을 졸업한 애송이가 위대한 작가의 반열에 오르고자 오직 타자기 하나로 생계를 잇겠다는 포부를 갖고 고군분투하는 경우라면, 매일 그는 실패와 맞닥뜨릴 운명에 처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학교를 졸업하고 변변치 못한 일로 몇년간 시간을 허비하고, 세상의 냉혹함을 경험하면서 결국엔 돈 한푼 모으지 못했던 시간들이 폴 오스터처럼 내게도 있었다. 그러나 내겐 뭔가 가슴 깊이 열정이란게 숨쉬고 있었는데, 지금 되돌아보면 그 열정이 나를 살리게 했던 것 같다. 폴 오스터에게 그 열정은 오직 작가가 되겠다는 것, 즉 빵을 타자기 하나로 굽겠다는 것이었다.  폴 오스터의 <빵굽는 타자기>는 이렇게 시작된다.

 

"20대 후반과 30대 초반에 나는 손대는 일마다 실패하는 참담한 시기를 겪었다. 결혼은 이혼으로 끝났고 글쓰는 일은 수렁에 빠졌으며, 특히 돈 문제에 짓눌려 허덕였다. 이따금 돈이 떨어지거나 어쩌다 한번 허리띠를 졸라맨 정도가 아니라, 돈이 없어서 노상 쩔쩔맸고, 거의 숨막힐 지경이었다. 영혼까지 더럽히는 이 궁핍 때문에 나는 끝없는 공황 상태에 빠져 있었다." p.5  <빵굽는 타자기>, 폴 오스터

 

폴 오스터는 1960년대 대학 생활을 했다. 그 시기 미국은 베트남전에 수많은 젊은이를 무작위로 보내던 시절이다.  더불어 대학은 학내 분규로 몸살을 앓고 있었고, 그는 군대에 끌려가는 것을 죽는것보다 싫어했다. 애초부터 베트남전은 모든 미국 젊은이들의 지지를 받지 못했으니까.  이 모든 것을 회피하고 파리라는 도시에 끌려 그는 프랑스로 교내 연수를 떠났다.  이 새로운 도시에서  그의 파란만장한 젊은날의 습작기를 보낸다. 7년 가까이 파리에 살면서, 그는 리뷰 잡지에 서평을 기고하고, 시를 몇편 지어낸 것을 제외하면 프랑스어 번역일로 생계를 유지한다. 그는 세상과 자신의 가능성을 시험해 보기 위해, 유조선을 타고 대양을 항해 하기도 했고, 영화 제작자의 시나리오를 다듬는 일이나 대필 작가의 경험도 쌓아본다.  결혼을 하고부터 아내와 함께 번역 잡일을 같이하고,  유명한 개인 소장가의 1인 사원으로 파트타임 일을 해 보기도 한다.

 

이것저것 돈벌이를 위해 기웃거렸지만, 그가 하나 원칙으로 삼은게 있었다. 그것은 어떻게든 돈과 자신의 시간, 즉 영혼을 맞바꾸지 않겠다는 생각이다.  즉 평범한 직장인으로 하루 종일 어딘가에 매어 사는 것은 작가로서의 자살행위나 마찬가지라고 생각한 것이다.  아이까지 생겼지만 그는 여전히 가난했다. 돈이 되는 소설은 쓰지 못했고, 번역일은 애초 돈벌이가 되지 않았다.  그러나 시간과 영혼을 맞바꾸지 않겠다는 삶의 소신은 버리지 못했고, 곧이어 자신의 방식대로 살아가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이지도 깨닫게 된다. 그러나 그는 삶을 회피하려 한 것이 아니다. 그는 불성실한 인간이 아니다. 더불어 안락만을 추구하는 여름날의 베짱이가 되고 싶었던 것도 아니다. 그는 단지 글을 쓰는 작가가 되어 그것으로 생계를 잇고 싶었던 것 뿐이다.

 

폴 오스터의 그 치열한 젊은날을 바라보면, 작가란 되고자 해서 되는 것이 아니라 이미 되도록 숙명지워진게 아닌게 생각될 정도다. 

 

결국 그는 이혼을 했고, 궁핍함에서 벗어나기 위해 탐정소설을 직조해 냈지만 아무도 관심갖지 않는다.  그러던 어느날 한가지 아이디어가 떠올랐는데,  그건 어린 시절 아이들과 함께 카드 놀이를 하면서 익혔던 카드 베이스볼 게임이었다. 이 아이디어를 팔아보자는 생각에, 그는 전미장난감 페스티벌이 열린 행사장으로 이 아이디어를 사줄 사업자를 찾아 면접을 보러 찾아간다.  그 자리에서 카드 게임의 규칙을 한창 열심히 설명하고 있는 초라한 행색의 폴 오스터에게 사장은 손을 내밀며, 이렇게 말한다. "어쨌든 고맙소, 이젠 그만 가봐도 좋소"   그는 이 때의 경험을 먼 훗날 이 책에 이렇게 적었다.

 

"그리고는 (사장은) 돌아서서 내 곁을 떠났다. 카드는 여전히 테이블 위에 펼쳐져 있었다. 그것을 모두 시가 상자에 도로 집어넣는 데에는 1,2분이 걸렸고, 내가 밑바닥까지 내려간 것도 바로 그때였다.  나는 아직도 그렇게 생각한다. 그 1,2분 동안이 바로 내가 인생에서 가장 밑바닥에 도달한 순간이었다고."  p.154 <빵굽는 타자기>,  폴 오스터

 

이 책을 읽어내려가면서 저절로 `불행의 종합 선물세트' 같던 나의 20대가 필름처럼 돌아가는 듯 했다. 성실하고 열심히 앞을 보고 나아갔지만 내 앞을 가로막은 안개는 걷히지 않았고, 이제 막 들어선  터널은 어둡고 그 끝은 묘연했던 시기, 그게 바로 나의 이십대의 모습이었기에 말이다.  그러나 안개는 태양이 떠오르자 곧 걷혔고, 어둠만이 가득했던 터널의 끝에서 나는 눈부신 빛을 보고 말았다.

 

폴 오스터란 작가의 책은 처음이고, 현재 그가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 모른다.  작가 소개에 나타난 그의 대표작들을 보면, 밑바닥에 도달한 작가는 그 동안의 고난과 경험담을 재료로 뛰어난 작품들을 많이 써 낸 것 같다.  그리고 세계 수십개국어로 그의 소설이 번역돼 팔리고 있으니, 더이상 그는 가난하지 않을 것이다.  20대, 아니 젊은이에게 좌절과 실패 혹은 불안과 고통은 독이 아니라 약이 된다는 것을 폴 오스터는 이 책을 통해 가르쳐 주는 듯 했다. 20대 젊은 날, 내 소망은 나를 위한 근사한 서재를 갖는 것이었다.  그리고 수많은 책을 쌓아두고 어떤 방해도 받지 않으며,  미래의 어느날 한가로이 그 책을 읽기를 바랐다. 지금 나는 그 소망을 반쯤은 이뤘다.

 

근사한 서재와 수많은 책들 사이에 파묻히는 일은, 그러나 경제력을 필요로 한다.  그래서 나는 그 소망을 이루기 위해 시간과 영혼, 그리고 돈 사이의 거래를 허(許)했다. 나는 대한민국 직딩이다. 그러나, 나는 책을 읽는 직딩이다.  젊은 시절의 폴 오스터처럼 수지맞지 않게 살 용기란 애초 내게 없었고, 그러한 삶은 내겐 불가능했다.  나는 풍차만 보면 달려드는 돈키호테가 될 순 없었다. 그러나 폴 오스터처럼 작가라는 사람들은 어느정도 돈키호테의 기질을 갖질 않으면 안 된다. 그래서 작가란 되고 싶다고 될 수 없으며, 작가란 숙명처럼 태어나는 것이라 하질 않던가 ?

 

 

 

2008.11.30

s*****7 2008.12.01. 신고 공감 9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빵굽는 타자기
"빵굽는 타자기" 내용보기
읽은 책 중에도 다시 읽고 싶은 책들이 쌓였지만 (읽어도 너무 오래되어서 처음 읽는 책이나 다를 바 없는 책들도 많다) 새로운 책들이 유혹을 하는 경우가 많아 계속 뒤로 미뤄지고 있었다. 코로나 때문에 도서관에서 책을 거의 빌리지도 못하면서 드디어 다시 읽어야 할 책들에 눈길이 간다. 아무튼 10년도 더 된 책들을 꺼내들어 보았다.오늘의 책은 폴 오스터의 <빵굽는 타자기>.원
"빵굽는 타자기" 내용보기
읽은 책 중에도 다시 읽고 싶은 책들이 쌓였지만 (읽어도 너무 오래되어서 처음 읽는 책이나 다를 바 없는 책들도 많다) 새로운 책들이 유혹을 하는 경우가 많아 계속 뒤로 미뤄지고 있었다. 코로나 때문에 도서관에서 책을 거의 빌리지도 못하면서 드디어 다시 읽어야 할 책들에 눈길이 간다. 아무튼 10년도 더 된 책들을 꺼내들어 보았다.

오늘의 책은 폴 오스터의 <빵굽는 타자기>.
원제는 <Hnad to mouth>다.
폴 오스터의 소설들은 뭔가 반전이 강한 임팩트가 있었다.
이 책은 젊은 시절 어떻게 글쓰기를 해왔는지에 대한 에세이인데 마치 소설 같다. 뭔가 특이한 경험들이 많기도 하고 담담하지만 흡입력 있게 쓰여져 있어 소설같은 흥미진진함이 있다. 아마 처음 이 책을 읽게 된 계기는 글쓰기에 대한 노하우 이런 걸 기대하지 않았을까 싶지만 그런 류의 책은 아니다. 다만 생활감이 드러나는 글이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작가의 스타일이나 어떻게 습작했는지가 드러난다.

<20대 후반과 30대 초반에 나는 손대는 일마다 실패하는 참담한 시기를 겪었다. 결혼은 이혼으로 끝났고, 글쓰는 일은 수렁에 빠졌으며, 특히 돈 문제에 짓눌려 허덕였다. 이따금 돈이 떨어지거나 어쩌다 한번 허리띠를 졸라맨 정도가 아니라, 돈이 없어서 노상 쩔쩔맸고, 거의 숨막힐 지경이었다. 영혼까지 더럽히는 이 궁핍 때문에 나는 끝없는 공황 상태에 빠져 있었다.>
p.5

어느 책을 읽을까 이 책 저 책 뒤적이다가 첫 페이지의 첫 단락을 읽고 따로 선택이랄 것도 없이 쭉 읽어나갔다.
b*****7 2020.05.31. 신고 공감 6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시간과 돈의 시이소오
"시간과 돈의 시이소오" 내용보기
열심히 일해서 돈을 벌어 멋진 경험을 하겠다고 결심했다고 치자. 욕망을 충족할만큼 돈을 벌기 위해 시간은 절대적으로 부족하다. 돈을 많이 벌면 그 돈을 '제대로' 쓸 시간은 줄어드는 거다. 돈이 쌓여 있으면 뭘하나, 돈을 쓸 시간이 없는데. 그래서 바쁜 사회엔 유흥점들이 판을 치는 거다.  반대로 나만의 시간을 위해 내가 좋아하는 것만을 위해서 쓰겠다고 결심했다고 치자. 이번
"시간과 돈의 시이소오" 내용보기

열심히 일해서 돈을 벌어 멋진 경험을 하겠다고 결심했다고 치자. 욕망을 충족할만큼 돈을 벌기 위해 시간은 절대적으로 부족하다. 돈을 많이 벌면 그 돈을 '제대로' 쓸 시간은 줄어드는 거다. 돈이 쌓여 있으면 뭘하나, 돈을 쓸 시간이 없는데. 그래서 바쁜 사회엔 유흥점들이 판을 치는 거다.  


반대로 나만의 시간을 위해 내가 좋아하는 것만을 위해서 쓰겠다고 결심했다고 치자. 이번엔 돈이 없을 것이다. 뭔가를 '제대로' 할 수 있을만큼 충분한 시간이 주어진다는 건 돈을 버는데 그 시간을 쓰지 않았다는 소리인데, 이 경우 요행이 따르지 않는 한 인생을 즐길만한 돈은 없다. 


시간은 무한하지 않으며 아무리 큰 돈이 주어져도 시간을 살 수는 없다. 그러므로 시간을 돈과 바꾸는 건 손해보는 짓이다. 돈의 경우 요행이 따르거나 구조적으로 합법적으로 남을 약탈하는 방법으로 차고 넘칠만큼 벌 수 있기 때문인데, 이는 잘못된 생각이다. 그 요행은 일부 극소수에게만 주어지기 때문에 그들의 요행을 위해 나머지 불운한 자들은 자신의 모든 시간을 요행을 가진 자들을 위해 일하면서도 돈은 충분치 않게 번다. 이것이 폴의 오판이었다. 결과적으로 그는 세계적으로 성공한 소설가가 되어, 넉넉히 먹고 살며 여유 시간을 가질 수 있게 되었으니, 이 소설 밖으로 나온 이후의 긴 시간이 흐른 후에는 그 오판마저도 잘한 결정이라고 말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인생은 짧고, 그의 무명의 작가로서의 고생은 길었다. 


젊은 날, 돈 대신 자유로운 시간을 선택한 그는 그 자유가 글을 쓰는 시간이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글을 쓰는 일로 먹고 살기는 힘들었다. 먹고 살만큼 글을 쓰지만, 그렇게 하기 위해 그는 너무 많은 글을 써야 하고, 그렇게 글을 쓰는 일이 더 이상은 즐거운 일이 아닌  일이 되어버린다.


글을 써서 먹고 산다는 일은 과거에도 현재에도 한국에서도 외국 어느 곳에서도 어려운 일이다. 그렇다고 그걸 어디가서 개탄할 수도 없는 일이다. 어떤 사회에서는 교수들의 월급이 일용 노동자들의 월 급여만큼 짠 곳도 있다. 조용남이 자신의 이름으로 몇억에 팔 그림을 대신 그린 예술가는 딱 먹고 숨쉴수 있을만큼만의 돈을 벌기 위해 하루 종일 밤을 새며 그림을 그린 듯하다. 좋아하는 일을 하기 위해 미래가 보장되지 않은 길을 선택하여 사는 것의 그 상세한 실체를 경험하고 싶다면 이 책을 추천한다. 폴 오스터의 실제 경험인지 소설적으로 많이 극적인 부분이 가미된 것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말이다. 


좋아하는 일을 하기 위해서는 먼저 먹고 사는 일이 충족되어야 하고, 먹고 사는 일을 좋아하는 일을 해서 충당하기에는 좋아하는 일이 좋아하는 일이 아닌 피곤한 일이 되어야 한다. 그러는 동안 시간은, 가장 중요한 시기의 시간들은 서서히 내 삶에서 빠져나가고 남는 것이 무엇이 될 것인가를 고민하면서 다시 잃어버린 시간을 돌아보는 동안, 그 동안에도 삶은 계속되기에 계속 먹고 살아야 하고 시간을 잃어버려야 한다.


원제는 뭐라더라..조금 다른데, 한국책 제목이 빵굽는 타자기. 타자를 쳐서 빵을 구워 먹고 사는 이야기. 그런데 참 이상한 일이지. 폴 오스터의 이런 류의 이야기는 이상하게 힐링이 되는 부분이 있다. 이렇게 치열하게 먹고 사는 이야기임에도, 그는 사회 질서에 저항한다.  처참히 무너지고 깨지고 부서지고 비참해지지만, 그럼에도 남아있는 그 무언가. 타협하지 않고 버티는 어떤 힘 같은 것 때문인 것 같다.


g******1 2017.02.13. 신고 공감 6 댓글 8
리뷰 총점 종이책
초기 글쓰기 작업을 하는 사람과 초기 프리랜서를 하는 사람들을 위한 지침서...
"초기 글쓰기 작업을 하는 사람과 초기 프리랜서를 하는 사람들을 위한 지침서..." 내용보기
폴 오스터... 한 권으로 나를 사로잡은 작가다. 그의 이야기는 따라가다 보면 꽉 짜인 구성에 딱딱 맞게 들어앉은 퍼즐 같다. 문체는 화려하고 내용도 기가 막히다. 정신 없이 재밌다. 두껍고 분량의 복잡한 이야기도 술술 따라가게 하는 힘이 있다. 하지만 를 첫 작품으로 골랐다면 아마 다른 생각이 들었으리라. 폴 오스터를 처음 접하는 사람에겐 이 글을 추천하고
"초기 글쓰기 작업을 하는 사람과 초기 프리랜서를 하는 사람들을 위한 지침서..." 내용보기
폴 오스터... <환상의 책> 한 권으로 나를 사로잡은 작가다. 그의 이야기는 따라가다 보면 꽉 짜인 구성에 딱딱 맞게 들어앉은 퍼즐 같다. 문체는 화려하고 내용도 기가 막히다. 정신 없이 재밌다. 두껍고 분량의 복잡한 이야기도 술술 따라가게 하는 힘이 있다. 하지만 <빵굽는 타자기>를 첫 작품으로 골랐다면 아마 다른 생각이 들었으리라. 폴 오스터를 처음 접하는 사람에겐 이 글을 추천하고 싶지 않다. 누가 붙였는지, 정말 기가 막힌 한글 제목을 붙였다. 글을 쓰는 타자기에서 막 구운 빵 냄새가 고소하니 풍겨나오는 것 같았다. , 하루 벌어 하루 먹고산다는 뜻이고, 부제로 붙어있는 것이 <젊은 날 닥치는 대로 글쓰기>이다. 하나는 프리랜서의 삶이고 또 하나는 작가가 되기 위한 끊임없는 노력이었으니까. 작가의 젊은 시절에 대한 경험담이다. 어릴 적 돈에 관한 생각을 정리한 작가는 돈에 무관심하게 살기로 한다. 환경상 돈을 버는 삶보다는 시간을 잘 사용하는 삶이 더 나아보인 것이다. 젊은 시절에 그가 시간을 남겨서 한 일은 책을 읽고, 글을 쓰고, 인생의 갖가지 경험을 하는 것이다. 어느 정도 돈을 벌면 일을 쉬고, 여행을 하며 책을 읽고 글을 쓴다. 돈이 떨어지면 갖가지 육체노동을 한다. 그걸 그가 좋아하기도 하지만, 젊을 때 돈을 벌고자 할 때, 할 줄 아는 것이 노가다 빼놓고 뭐가 그리 많겠는가. 나이가 들고 결혼을 하면서는 이제 글을 기고하고,번역을 하고, 글을 써서 돈을 번다. 하지만 평범하게 직장을 다니는 사람보다, 그에게 그 일이 가져다 주는 수입이란 보잘 것 없다. 일이 늘 있는 것도 아니고. 이젠 돈을 벌기 위해서 글을 써야 하는 것이다. 하지만 그 길은 험난하기만 하다. 돈을 주면서 출판해 준다는 곳이 있어야지... 궁지에 몰린 작가는 야구를 소재로 한 게임을 발명한다. 그것도 시대에 뒤떨어진 게임이라고 거절만 당한다. 후원자가 생겨 희곡을 무대에 올려보지만, 운이 따르질 않는다. 결국 그가 이런저런 경험을 겪고 팔리는 글을 쓴다. 첫 작품을 팔고 나니 900달러가 그의 손에 쥐어졌다. 그는 씁쓸하게 한 마디를 남긴다. 물론 유명작가가 되기 전이니까. <돈을 벌기 위해 책을 쓴다는 건 그런 것이다. 헐값에 팔아치운다는 건 그런 것이다.> 내겐 정신적으로, 실제적으로 많은 도움이 되었다. 프리랜서도 했었고, 글에도 관심이 많기 때문이다. 나도 별로 알려지고, 적극적인 프리랜서가 아니었기에, 수입도 별로 없이 고생 많이 했다. 일 자체는 수입이 꽤 되지만, 늘 단발이니까. 오늘 하루 배불리 먹었다고 해서 내일 안 먹어도 되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프리랜서면 일을 하고 싶을 때, 하고 놀고 싶을 때 놀고, 여행가고 싶을 때 가니, 얼마나 좋으냐고 모르는 사람들은 말한다. 하지만 프리랜서, 더구나 초기에는, 몸이 아파도, 무슨 일이 떨어져도, 한번 거절하지 못하고, (한번 거절하면 그 다음엔 일이 안 들어오니까) 촉박한 시간 안에 끝내야 할 일이 많으니, 어떤 일은 매일 밤을 새야 하는 경우도 있다. 병아리 프리랜서는 그래서 늘 허기가 졌었다. 몸도 많이 나빠졌다. 규칙적인 직장 생활을 하고 월급을 꼬박꼬박 받는 게 얼마나 좋은지, 그냥 직장만 다니는 사람들은 잘 모른다. 하긴 프리랜서의 장점은 시간이 많다는 것이다. 돈도 없이 시간만 많으면 뭐 하나... 사람들 별로 없을 때 돌아다니고, 쿠폰이나 챙기는 매일매일... 돈과 시간은 양립할 수 없는 것인지. 물론 유명인이 되고, 단가가 비싼 사람이 되면 가능하지만, 그런 사람보다는 병아리 프리랜서가 더 많기 마련이다. 난 나중에 <밥 짓는 컴퓨터>란 제목으로 나의 젊은 시절 얘기를 쓸 수 있을까... <밥 짓는 연필>이 더 좋아 보인다. 연필심 냄새가 좋으니까... ^^ 뭐, 꿈은 이루어지지 않아도 꿈을 꾸는 동안 행복하니, 어쩌면 그것만으로 좋을지도 모른다.
g******i 2005.08.28. 신고 공감 4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마지막 한 번의 노력
"마지막 한 번의 노력" 내용보기
태어나서 처음으로 폴 오스터의 책을 재미있게 읽었다. 압도적이다. '젊은 날 닥치는 대로 글쓰기' 라는 부제가 달렸는데 그야말로 닥치는 대로 쓴 것 같다. 그냥 모든 소설을 이렇게 써줬으면 좋겠다. 확실히 모든 작가는 자기 체험을 얘기할 때 더 생생하고 더 진실되고 더 아름답다.<빵 굽는 타자기>가 왜 재미있는고 하면 소설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 주장의 근거로 책 뒤 쪽에 나
"마지막 한 번의 노력" 내용보기

태어나서 처음으로 폴 오스터의 책을 재미있게 읽었다. 압도적이다. '젊은 날 닥치는 대로 글쓰기' 라는 부제가 달렸는데 그야말로 닥치는 대로 쓴 것 같다. 그냥 모든 소설을 이렇게 써줬으면 좋겠다. 확실히 모든 작가는 자기 체험을 얘기할 때 더 생생하고 더 진실되고 더 아름답다.


<빵 굽는 타자기>가 왜 재미있는고 하면 소설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 주장의 근거로 책 뒤 쪽에 나오는 두 편의 희곡을(희곡이나 소설이나 어쨌든 극화된 글 이라는 차원에서 이해해 주시길) 제시한다. 나는 이 희곡들을 한 번에 10페이지 씩 넘겨서 봤는데 그건 나에게 속독술이나 투시술이 있었기 때문이 아니라 뭉텅이로 페이지를 넘겨 책을 뭉개버리고 싶을 정도로 두 희곡이 재미가 없었기 때문이다.


혹시 <빵 굽는 타자기>에도 극적 각색이 있는지 없는지(그러니까 이걸 소설이라고 간주할 만할), 뭐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지만, 사실 그런 건 알 바 아니고 알고 싶지도 않고 안다고 해서 딱히 대단한 이득이 생기는 것도 아니니까 패스하자. 그냥 내 주장이 틀린거지 뭐. 재밌으면 된 거 아냐!


나 같은 폴 오스터 혐오자가 왜 또 다시 폴 오스터의 책을 꺼내들었는지에 대해 얘기해 해주는 게 좋을 것 같다. 들어보라. 사실은 전혀 생각이 없었다. <환상의 책> 이후로 그와는 완전히 짜이찌엔, 굿 바이, 사요나라 해 버렸으니까. 도저히 그 지루함을 견딜 수가 없었어. 그런데 얼마전 <그림과 문장들>이란 책을 읽으며 어마어마한 문장 하나를 발견한 것이다.


"나는 기적같은 역전을 꿈꾸었다. 복권에 당첨되어 수백만 달러가 하늘에서 떨어지는 따위의 일확천금을 꿈꾸며 터무니 없는 계획을 세우기도 했다.(중략) 한쪽에는 시간이 있고, 다른 한쪽에는 돈이 있었다. 나는 이 두 가지를 다 잘 다룰 수 있다는 데 내기를 걸었지만, 처음에는 한 입, 다음에는 두 입, 다음에는 세 입을 먹여 살리려고 애쓰면서 몇 년을 지낸 뒤 결국 내기에 지고 말았다. 이유를 알기는 어렵지 않았다. 시간을 얻기에는 일을 너무 많이 했고, 돈을 벌기에는 일을 충분히 하지 않았다."(p.146)


이 말은 우리 우주에 사는, 소설가가 되기를 원하는 모든 생물들을 위한 잠언이다. 이 말 하나만 가슴에 품고 살면 당신의 삶에서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 수 있을 것이다. 이 말은 진리요 빛이요 바다를 집어 삼킨 캄캄한 폭풍우를 뚫고 들어오는 등대의 가르침이다. 명심하라. 누구나 돈을 갖진 못하지만 우리 모두는 시간을 갖고 있다. 폴 오스터는 시간을 얻기에는 일을 너무 많이 했고, 돈을 벌기에는 일을 충분히 하지 않은 탓에 인생의 중요한 시기에 이르러 결국 시간도 돈도 모두 잃고 말았다.


나는 너무 늦게서야 이 진리를 만났다. 돈은 애초에 없었으니 별로 원망할 것도 없다. 하지만 그 많던 시간은 모두 어디로 갔을까? 나는 일 초도 멈추지 않고 꼬박 꼬박 쌓이는 시간을 수십 년이나 모았다고 생각했지만 정신을 차리고 보니 그것을 담은 그릇은 밑 빠진 독이었고 시간은 빠진 밑을 따라 영영 돌아올 수 없는 과거로 도망을 치고 말았다. 시간은 헤어진 연인과 같고 제 때에 뒤집지 못해 까맣게 타버린 삼겹살과 같다. 떠나간 연인에게 전화를 걸거나 타버린 삼겹살을 먹는 건 자유지만, 자유란 결코 원하는 걸 얻을 수 있는 무적의 화폐가 아니란 걸 알아두시길. 어쩌면 그 놈의 자유가 우리를 궁지로 몰아 넣은 주인공 일지도 모른다. 자유는 쓰기는 쉽지만 길들이기란 죽을만큼 어려운 괴물이니까. 당신의 인생이 왜 이리 누추한지 알고 싶다면 이 괴물이 어디에서 뛰놀고 있는지를 보면 된다. 혹시 그 곤궁한 인생을 역전시키고 싶으면 괴물을 가장 놓고 싶지 않은 곳에 데려다 놓으라. 그리하면 고통과 함께 원하는 것을 얻을지니.


1947년에 태어난 폴 오스터는 1977년이 되서야 이 진리를 깨달았는데, 진리를 깨달은 후에도 한참이나 어두운 통로를 헤매다 1978년에는 파경을 맞았고 1981년이나 1982년, 혹은 1983년 쯤에 겨우 겨우 한 권의 소설을 출간했다. 그리고 소설은 한 권도 팔리지 않았다. 폴 오스터는 "여기까지 온 이상, 마지막으로 한 번만 더 노력해서, 결말이 어떻게 나는지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p.172) 정말 소름끼치게도, 


그 마지막 한 번의 노력이 나와 당신에게 폴 오스터란 이름을 기억하게 만든 것이다.

s*******r 2016.04.17. 신고 공감 3 댓글 4
리뷰 총점 종이책
밥 차리는 컴퓨터
"밥 차리는 컴퓨터" 내용보기
김탁환 작가의 추천 도서. 글쓰는 학생들에게 필독서로 읽히는 책. 뒤적뒤적, 끼적끼적에서 접했던 폴 오스터의 '빵굽는 타자기'. 제목부터가 정말 주제를 그대로 드러내는, 명쾌한 메타포다.   1960~70년대, 베트남 전쟁으로 어수선한 미국의 한 대학생. 평생 글쓰는 것이 자신의 업이라 생각하는 폴의 지난한 전업작가 일대기를 그린 책이다. 파리를 오가며, 번역에서부터 서평,
"밥 차리는 컴퓨터" 내용보기

김탁환 작가의 추천 도서. 글쓰는 학생들에게 필독서로 읽히는 책.

뒤적뒤적, 끼적끼적에서 접했던 폴 오스터의 '빵굽는 타자기'.

제목부터가 정말 주제를 그대로 드러내는, 명쾌한 메타포다.

 

1960~70년대, 베트남 전쟁으로 어수선한 미국의 한 대학생.

평생 글쓰는 것이 자신의 업이라 생각하는 폴의 지난한 전업작가 일대기를

그린 책이다. 파리를 오가며, 번역에서부터 서평, 닥치는대로 글을 쓰며

생계를 유지했던 폴에게 정작 자신만의 글쓰기는 늘 힘들었다.

 

이 땅의 모든 전업작가들의 영원한 딜레마가 아닐까?

부유한 집안의 자식이 아니라면, 자신의 힘으로 글을 써서 가정을 꾸리고

경제생활을 한다는 것 말이다.

오롯이 자신만의 책, 글을 쓰고 싶었지만, 경제 관념이란 전혀 없던 폴에게

하루하루가 치열한 삶의 현장으로 치환된다. 아르바이트란 아르바이트는

다 해보지만 하루살이 인생처럼 또 내일의 빵이 필요했던 그.

 

결국 마지막에서도 자신의 글이 채 1천 달러가 안되는 돈에 팔리는

수모로 끝이 난다. 이 책을 김탁환 작가가 추천한 이유는 바로 전업작가가

되기 위한 마음가짐 아닐까? 이 정도로 치열한 삶의 고통을 온몸으로 받아내는

것이 전업작가의 길임을... 문득 폴의 20~30대가 내 경험과 중첩된다.

 

대학교를 졸업하자마자, 어떻게든 살아지겠지 하며 입사한 잡지사.

사람을 만나고, 취재하고, 기획을 하고, 카피도 쓰고... 피튀기는

경쟁 프리젠테이션에도 나서지만... 10달이라는 급여 체불 앞에서

내 젊음은 끝간데 없는 나락으로 떨어졌었다. 허나 평생 내가 하고 싶고,

해야 할 일이 책 만드는 일이라 생각했기에, 2번째, 3번째 회사도

비슷한 회사로 옮기게 되었다.

 

그 사이에 결혼도 하고, 아이도 낳는 인생의 전환기를 맞이했지만,

여전히 글 쓰는 것과 먹고 사는 것의 괴리 속에서 힘겹기만 하다.

젊은 날 닥치는 대로 써내려갔던 폴의 타자기가 빵을 굽는 행위라면,

내내 취재를 하고 자판을 놀리는 내 컴퓨터는 밥을 차리는 행위라 할 수 있다.

 

문득 공지영 작가를 부러워하던 헵시바 님이 떠오른다.

편하게, 책보며, 부를 누리며, 자유롭게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는 전업작가.

아마도 우리나라에 채 0.1%도 안되는 사람만이 누릴 수 있는 자리다.

그 자리에 앉기까지 얼마나 많은, 피눈물나는 글쓰기가 있었는지 짐작이 간다.

폴 오스터의 '빵굽는 타자기'는 지난 날의 내 모습을 떠올리며,

작은 위안과 희망을 심어준다. 이제 마케팅이라는 새로운 분야에 발을

들여놓았지만, 끝까지 나만의 글쓰기를 멈추지 않을 생각이다.

 

뱀발) 이 책에 소개된 폴 오스터의 카드 야구 게임. 보드게임이 한물가긴

했지만, 상품화한다면 꽤나 인기를 끌 것 같다.^^ 내가 한 번 해볼까?  



t******2 2009.08.20. 신고 공감 3 댓글 16
리뷰 총점 종이책
처음 접한 폴 오스터
"처음 접한 폴 오스터" 내용보기
이 책을 처음으로 폴 오스터란 소설가를 알게 되었고 이 책을 처음으로 폴 오스터란 소설가에 완전히 매료되게 되었다. 그뒤로 달리는 경제력에도 폴 오스터의 소설을 마구 읽어대며 점차 그의 팬이 되어갔던 것 같다. 그는 소설가이지만 이 책은 소설이 아니다. 그가 직접 겪은 일인데 이 책은 그가 말한대로 "닥치는 대로"쓰여진 글들이고 또 그렇기 때문에 폴 오스터의 다른 작품들,
"처음 접한 폴 오스터" 내용보기
이 책을 처음으로 폴 오스터란 소설가를 알게 되었고 이 책을 처음으로 폴 오스터란 소설가에 완전히 매료되게 되었다. 그뒤로 달리는 경제력에도 폴 오스터의 소설을 마구 읽어대며 점차 그의 팬이 되어갔던 것 같다. 그는 소설가이지만 이 책은 소설이 아니다. 그가 직접 겪은 일인데 이 책은 그가 말한대로 "닥치는 대로"쓰여진 글들이고 또 그렇기 때문에 폴 오스터의 다른 작품들, 가령 "고독의 발명"같은 류의 이야기들과는 분위기가 사뭇 다르지만 이 책 역시 나름의 재미를 가지고 있다. "닥치는 대로"쓰여지며 종횡무진하는 언어들과 명료한 묘사, 호흡이 꽤 김에도 불구하고 깔끔하게 마무리되는 문장들은 나로 하여금 폴 오스터란 사람이 대단한 글쟁이라는 생각을 하게 만들었다. 이후로 한동안 그의 문체를 모방해 보려고 노력했던 기억도 난다. 그는 매력적인 작가다. 이 책을 보는 사람이 누구든 난 그 사람이 이 책으로 인해 폴 오스터에 매료되거나 적어도 그의 소설을 즐겨 읽게는 될 것이라 확신한다. 그가 젊은 나이에도 불구하고 "다작 작가"이 관계로 아직 그의 소설을 다 읽지는 못하였지만 그의 글은 날 실망시키는 법이 없다. 난 폴 오스터를 당당히 치켜세운다.

[인상깊은구절]
20대 후반과 30대 초반에 나는 손대는 일마다 실패하는 참담한 시기를 겪었다. 결혼은 이혼으로 끝났고, 글쓰는 일은 수렁에 빠졌으며, 특히 돈 문제에 허덕였다. 이따금 돈이 떨어지거나 어쩌다 한번 허리띠를 졸라맨 정도가 아니라, 돈이 없어서 노상 쩔쩔맸고, 거의 숨막힐 지경이었다. 영혼까지 더럽히는 이 궁핍 때문에 나는 끝없는 공황 상태에 빠져 있었다.
s*********r 2004.08.05. 신고 공감 3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3 :삶을 굽는 글쓰기에서 사람을 보다
"3 :삶을 굽는 글쓰기에서 사람을 보다" 내용보기
비루하게 문학적 근황부터 시작해야겠다. 일단 나의 글쓰기는 독서가 전제되지 않은 상태에선 거의 불가능하다. (차선책인 음악 감상이 있긴 하지만) 쉽게들 말하는 몸이 열두 개라도 모자란 바쁜 일상으로 인해 한동안 독서완 담을 쌓고 지냈다는. 어렵사리 몇 권의 책을 읽긴 했지만, 그나마도 조금씩 나눠 읽기 일쑤여서 진도는 좀처럼 나가지 않았고, 자연스레 글쓰기와도 소원해져버
"3 :삶을 굽는 글쓰기에서 사람을 보다" 내용보기

비루하게 문학적 근황부터 시작해야겠다. 일단 나의 글쓰기는 독서가 전제되지 않은 상태에선 거의 불가능하다. (차선책인 음악 감상이 있긴 하지만) 쉽게들 말하는 몸이 열두 개라도 모자란 바쁜 일상으로 인해 한동안 독서완 담을 쌓고 지냈다는. 어렵사리 몇 권의 책을 읽긴 했지만, 그나마도 조금씩 나눠 읽기 일쑤여서 진도는 좀처럼 나가지 않았고, 자연스레 글쓰기와도 소원해져버렸다. 보람 없이 심신은 피폐해진데다 하고 싶은 것마저 못할 때의 스트레스는 어떤 식으로든 폭발하고 마는 법. 나는 직장을 때려치우고 무작정 쉬기로 했다. 일명 자체 휴가라고나 할까. 물론 휴가 계획은 밀린 독서와 글쓰기가 되시겠고.

 

독서리스트를 뽑다 문득 저명한 두 화가에 꽂혀 묵힌 파블 문화 적립금으로 서너 권의 책과 영화 DVD를 구매해서 곧바로 화가의 책을 읽던 중, 잠깐 딴 짓에 열중. 어느 블로거의 리뷰를 읽는데, 바로 그 리뷰의 작가가 내가 한때 무던히도 흠모했던 폴. 오.스.터. 그리하여 나의 독서행로는 번갯불에 콩 볶아먹듯 폴 오스터의 책으로 전환되고 마는데. 아! 이게 웬 운명의 거룩함이신가. 우연찮게 절판된 그의 초기작을, 그것도 마지막 권을 거머쥐는 행운 앞에서 당근 회심의 미소를 으하하하 한번 내지르고 휴가 첫날 친구를 만나러가는 차 안에서 「뉴욕 3부작」을 읽고 감탄감화 하시어 연달아 「빵 굽는 타자기」를 오독오독 씹어주셨으니 이만하면 휴가의 시작이 참으로 휘황찬란한지고.

 

역시 폴 오스터 오빠여~!를 남발하게 만드는 글담. 미치고 폴짝 뛰게 만드는 그의 문체에 다시 한 번 탄복하여 친구 만나길 잘 하였다는 것과 왠지 그 약속도 나와 폴 오스터의 재회를 위한 누군가의 계획된 각본인 것만 같은 것이라. 젊은 날 닥치는 대로 글쓰기란 주제 받침 문구부터가 범상치 않더니 살면서 폴이 만난 사람들의 개성을 살벌하게 톡톡 튀는 문체로 얼음마나님의 미소를 끄집어내는 그 역사하심이란.

 

번역, 서평가, 희곡 작가, 게임 발명가, 유조선에서의 잡역부 등 그가 거쳐 간 직업만도 다양 일색, 그의 파란만장한 삶을 구성한 사람들을 리얼하게 살려내는 걸 보노라면 그는 작가가 될 수밖에 없는 운명이었던 것. 부잣집 아들로 태어나 가세가 기울었음에도 씀씀이가 헤픈 어머니를 대신해 경제권을 쥐게 된 아버지, 오스터는 아버지는 아버지대로 어머니는 어머니대로 자신의 방식대로 두 분을 사랑했다. 이혼한 뒤 어머니와 재혼한 계부와도 잘 지냈지만, 무엇보다 젊은 시절의 그는 소신 대로 살면서 사회의 여러 루저 들과도 잘 어울려 지냈는데.. 한때는 그처럼 화려한 삶을 살았으나, 여러 가지 이유로 밑바닥을 전전하면서도 나름대로 철학과 인생관이 있는 이도 있는가하면 인격반동분자 같은 이들과도 오스터는 쉽게 친해졌다. 반면, 자신의 부가 부끄러워지기 시작한 때부터 온갖 고생을 자초하며 행했던 그의 별난 이력들 중엔 좀처럼 믿기 힘든 부분도 있었으니, 마치 픽션이 아닌 논픽션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한데 재밌다. 에세이 신분으로 꽉 찬 알맹이가 있으면서 재밌기까지는 참 힘든 법이거늘. 

 

제목 「빵 굽는 타자기」에서 느껴지듯이 오스터는 일찍이 미국자본주의 세계를 경멸했다. 빵은 우리의 쌀과 같은 의미로 먹고 살기 위해 수단이 되어야만 했던 글쓰기, 너무 빈궁하여 잠깐 일확천금을 노리고 발명한 야구 카드 게임이나 탐정소설을 쓴 것을 제하고 그는 줄곧 노동자의 길을 가면서도 결코 글쓰기를 멈추지 않았다. 한 번의 결혼 실패 후 재혼 그리고 다시 문학에의 투신으로 끝을 맺는 이 한 편의 에세이(사실 젊은 날의 자서전 느낌이 강함)로 작가가 아닌 인간 오스터를 더 많이 알게 되었으니, 어찌 기쁘지 아니할까. 

a*********9 2015.03.01. 신고 공감 2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