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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시(童詩)를 어떻게 읽으면 좋을까 - 어른이 바라보는 아이 마음 동시는 말 그대로 아이들의 마음을 표현한 시입니다. 동시에는 아이들 마음만 있는 게 아닙니다. 아이들을 바라보는 어른들 마음이 동시에는 잘 나타납니다. 아이가 자기 마음을 표현한 것만이 동시라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는 얘기죠. 어른들이 아이들 시선으로 사물이나 상황을 표현한 작품도 동시가 될 수 있습니다. 어른들 마음과 아이들 마음은 어떻게 다를까요? 어른들이 상황을 분석하는 성향이 강하다면, 아이들은 상황을 그대로 보려고 합니다. 어른들은 어떤 상황이 일어난 원인을 중시하죠. 이런 원인이 있어 이런 상황이 일어난 거라고 어른들은 생각합니다. 시적인 감성과는 한참이나 멉니다. 아이들은 어떨까요? 아이들은 원인과 결과를 생각하기 이전에 상황 자체를 그대로 받아들입니다. 어른들에게는 통하지 않는 장난이 아이들에게 통하는 경우가 많잖아요? 아이들은 꾸밈없이 상황을 보기 때문입니다. 꾸밈없는 마음에서 시가 나옵니다. 시인들이 아이 마음으로 세상으로 보려는 이유는 여기에 있는 거죠. 엄마야 누나야 강변 살자. 뜰에는 반짝이는 금모래빛, 뒷문 밖에는 갈잎의 노래, 엄마야 누나야 강변 살자. - 김소월, 「엄마야 누나야」 동요(童謠)로도 잘 알려진 시입니다. 아이에게 엄마와 누나는 어떤 존재일까요? 모성을 지닌 존재들입니다. 이 시에는 아빠와 형이 나오지 않습니다. 엄마와 누나를 아빠와 형으로 바꾸면 분위기가 달라지죠? 이유가 무엇일까요? 시인은 엄마와 누나를 의지할 사람으로 생각합니다. 아빠에게서는 얻기 힘든 마음을 시인은 엄마와 누나를 통해 얻으려고 하는 거예요. 이 시에 나오는 아이(화자)는 엄마와 누나에게 강변에 가서 살자고 말합니다. ‘강변’은 아이가 가고 싶은 세상입니다. 아이는 왜 강변으로 가고 싶은 걸까요? 지금 이곳에서 사는 삶이 만족스럽지 않아서겠죠. 물론 이 시에는 지금 아이가 어떻게 살고 있는지 나와 있지 않습니다. 다만 아이를 괴롭히는 무언가가 현실에 있다는 정도는 추측할 수 있어요.
아이가 상상하는 강변은 어떤 모습일까요? 우선 “뜰에는 반짝이는 금모래빛”이 있네요. 강변이 집이니까 뜰에는 당연히 금빛을 띤 모래밭이 있어야겠죠. 뒷문 밖에서는 갈잎이 노래하는 소리가 들립니다. 갈대가 뒷문 밖에서 흔들리는 모양이죠. 바람에 일렁이는 갈잎이 노래를 부릅니다. 아이는 엄마나 누나 품에 안겨 금빛으로 빛나는 모래를 보고, 갈잎이 부르는 노래를 듣고 있습니다. 말 그대로 아름다운 세상입니다. 우리가 사는 세상에서는 이룰 수 없는 세계라고요? 그럴 수도 있겠죠. 하지만 중요한 건 그게 아닙니다. 아이가 엄마, 누나와 더불어 이룰 세상을 꿈꾸고 있다는 게 중요한 겁니다. 아이는 엄마와 누나와 더불어 자연 속에서 살려고 합니다. 물론 이 시에 나오는 엄마와 누나는 아이(정확히는 어른인 시인일 겁니다)가 상상하는 세계 속에서만 존재합니다. 우리가 현실에서 보는 그 엄마와 누나는 아니라는 얘기입니다.
이 시에는 왜 아빠나 형이 나오지 않는 걸까요? 이 시에 나오는 화자(話者)가 여자아이라면 아마도 아빠나 오빠가 나올 수 있겠지요. 아빠나 오빠를 기다리는 여자아이를 묘사하는 노래가 동요에는 많습니다. ‘뜸북 뜸북 뜸북새/ 논에서 울고/ 뻐꾹 뻐꾹 뻐꾹새/ 숲에서 울 제’로 시작하는 동요를 아나요? 1925년 당시 12세였던 최순애가 쓴 동시입니다. 서울 간 오빠가 돌아오길 기다리는 여자아이 마음을 그린 작품입니다. 참고로 「엄마야 누나야」는 김소월이 1922년에 발표한 작품이지요. (남자)아이는 엄마와 누나와 함께 있는 아름다운 세상을 상상합니다. 그 세상은 감각이 넘치는 세계입니다. 금모래빛이 보이고, 갈잎이 부르는 노래가 들리잖아요. 안과 밖이 구분되지 않고 하나로 통합된 세계라는 말입니다. 돌려 말하면 아이는 현실에서 엄마, 누나와 하나 된 마음을 느끼지 못하는 거겠지요. 아이가 상상 속에서 꿈꾸는 걸 어른이 된 시인은 동시로 꿈꿉니다. 아이가 된 시인이라고 표현할 수도 있겠네요. 어른이 된 시인은 고통에 빠질 때마다 엄마와 누나가 만든 강변으로 들어가 마음을 편안하게 하려고 합니다. 어른들이 동시를 읽고 쓰는 이유는 여기에 있는 겁니다. 방공호 문 옆에 따슨 볕 보고 민들레 노오란 꽃이 피었네. 문 밖에 나와서 볕 쬐던 애가 노란 꽃 가만히 만지어 보네. 저 아이 살던 곳은 일본이던가 독립 만세 물결 속에 돌아왔겠지. 바라보면 서울엔 집도 많건만 내 나라 찾아와서 방공호 살이. “봄이나 왔으면” 기다린 듯이 노란 꽃이 가만히 만지어 보네. - 이원수, 「민들레」 이원수가 1947년 ≪주간 소학생≫에 발표한 시입니다. 1947년이면 해방된 지 2년이 흐른 시간이네요. 동시에 나오는 아이들이 꼭이 이상 세계만 꿈꾸는 건 아닙니다. 아이들이 현실을 살아가는 사람인 건 분명하잖아요. 이 시에는 방공호에 사는 아이가 나옵니다. 방공호는 폭격에 대비해 땅속이나 산속에 파놓은 굴이나 구덩이를 말합니다. 이 아이는 왜 방공호에 사는 걸까요? 예, 맞아요. 살 집이 없는 겁니다. “저 아이 살던 곳은 일본이던가?/ 독립 만세 물결 속에 돌아왔겠지.”라는 구절에 아이가 처한 상황이 드러나 있습니다. 아이는 다른 나라에서 살다가 우리가 일제로부터 해방되면서 다시 고향으로 돌아온 모양입니다. 하지만 가난한 사람들이 해방된 나라에 돌아온다고 무엇이 달라질까요? 당장 살 집이 없으니 아이 가족은 방공호를 집 삼아 살고 있는 겁니다. 나라 밖에서도 삶은 참 힘들고, 나라 안에서도 삶은 참 힘드네요.
어느 날 아이는 방공호 문 옆에 핀 노란 민들레꽃을 발견합니다. 햇볕이 참 따스하게 민들레꽃을 비추고 있네요. 볕을 쬐러 나온 아이가 노란 꽃을 가만히 만져봅니다. 이런 부분을 읽을 때는 상상을 해야 합니다. 민들레꽃을 만지는 감각으로 읽어야 한다는 얘기예요. 눈을 감고 손으로 민들레꽃을 만진다고 상상하면 됩니다. 상상을 하며 읽으면 시 읽을 맛이 납니다. 시가 어렵다고만 생각하지 말고 화자가 처한 상황 속으로 들어가 상상을 해보세요. 그러면 보이지 않던 게 보이고, 들리지 않던 게 들리는 경험을 합니다. 서울에는 참 집도 많습니다. 하지만 그 많은 집 가운데 아이가 발을 들여놓을 곳은 하나도 없습니다. 어두운 방공호 안에서 하루 종일 지내야 하는 아이는 얼마나 힘들겠어요. 그런 아이가 따뜻한 볕을 받고 피어난 민들레꽃을 봅니다. 민들레꽃은 집이 있는 걸까요, 아니면 없는 걸까요? 방공호 문 옆에 피었으니 민들레꽃은 집이 방공호 옆이 되는 거네요. 아이와 민들레꽃은 같은 신세인 겁니다. 민들레 노란 꽃잎을 만지면서 아이는 무엇을 생각할까요? 집이 없는 신세가 같다는 걸 알고 눈물을 흘릴까요?
해방된 나라에 와서도 방공호에서 살아야 하는 아픔을 시인은 아이 시선으로 그리고 있습니다. 겨울 내내 방공호 안에만 있던 아이는 오랜만에 따뜻한 볕을 쬐러 밖으로 나왔을 겁니다. 밥도 제대로 먹지 못했으니 얼굴도 누렇겠지요. 봄볕이 눈을 찔러 아이는 손으로 눈을 가렸을지도 모릅니다. 그런 아이 눈에 볕을 받아 샛노란 민들레꽃이 보입니다. 아이는 얼마나 황홀했을까요? 아이들은 상황이나 대상을 있는 그대로 본다고 했습니다. 방공호 안에서 아이는 추위에 떨며 “봄이나 왔으면” 하고 바랐을 겁니다. 봄이 오면 날씨가 따뜻해질 테니까요. 봄을 기다리는 그 마음으로 아이는 민들레꽃을 봅니다. 노란 꽃을 만지는 그 손길이 얼마나 떨렸겠어요. 아이의 누런 얼굴에도 미소가 떠올랐겠지요?
시인은 민들레꽃과 아이를 같은 맥락에서 생각하고 있습니다. 민들레꽃은 생명력이 아주 강한 꽃이네요. 절벽 틈새에 먼지가 쌓이면 어김없이 그곳에서도 민들레꽃이 피어납니다. 시인은 방공호에 사는 아이에게 어떤 고난도 이겨내며 꽃을 피우는 민들레꽃을 보여주고 싶었던 건 아닐까요? 겨울이 지나고 봄이 오면 사방에 민들레꽃은 피어납니다. 민들레꽃은 좋고 나쁜 땅을 구분하지 않습니다. 흙만 있으면 뿌리를 내리고 꽃을 피웁니다. 오죽하면 민들레꽃에 어떤 고난도 이겨내는 억척스러움이라는 의미를 부여했겠어요. 시인은 방공호에 사는 아이도 민들레꽃처럼 억척스럽게 고난을 극복해 나갈 거라고 말합니다. 노란 민들레꽃을 가만히 만지며 아이는 민들레꽃으로 피어날 어떤 순간을 생각하지 않을까요? 이 시에는 방공호에 갇혀 어렵게 사는 아이가 나오지만, 그 아이는 민들레꽃을 보며 살며시 미소 짓고 있습니다. 시인은 삶이 힘든 아이들에게 민들레꽃으로 비유되는 마음을 선물하는 겁니다.
할아버지가 담뱃대를 물고 들에 나가시니, 궂은 날도 곱게 개이고, 할아버지가 도롱이를 입고 들에 나가시니, 가문 날도 비가 오시네. - 정지용, 「할아버지」 아이들은 호기심이 강합니다. 모르는 게 있으면 아이들은 하나가 됐든 열 개가 됐든 물어봅니다. 이것저것 자꾸만 물어보는 아이들을 대하면 어른들은 좋다가도 이내 질려 버리죠. 아주 자질구레한 문제부터 거창한 인생(?) 문제까지 아이들은 질문을 멈추지 않습니다. 아이들은 왜 이리 질문이 많을 걸까요? 보이는 것마다 새롭기 때문입니다. 어른들은 질문이 별로 없습니다. 안다고 생각하는 거죠. 설사 모른다고 해도 어른들은 질문을 하지 않습니다. 창피한 겁니다. 남들은 다 아는 걸 자신만 모를까 해서 어른들은 몰라도 질문을 하지 않습니다. 스스로 모든 걸 해결하려고 하다 보니 어른들은 쓸데없는 곳에 시간을 낭비합니다. 서로 오해도 하지요. 말 한 마디면 해결될 걸 말 한 마디가 하기 싫어 의심을 키웁니다. 자존심을 세우려다 보니 그런 겁니다. 자존심이 강한 사람일수록 질문을 잘 안 합니다. 자존심(自尊心)은 자기를 존경하는 마음으로 풀이할 수 있지만, 사실은 자기 고집을 지키려는 마음입니다. 자존심은 자존감(自尊感)과 다릅니다. 자존심이 고집이라면 자존감은 자기 고집을 버리고 다른 사람과 기꺼이 어울리는 마음입니다.
아이 마음을 지닌 시인은 자존심으로 세상을 바라보지 않습니다. 시인은 상황을 그대로 보려고 노력을 합니다. 상황에 자기 생각을 붙여 과장하지 않는다는 얘기입니다. 자존심이 강한 어른일수록 상황을 마음대로 조정하려고 합니다. 이런 어른은 자기 생각을 바꾸지 않죠. 아이들은 어른 말을 무조건 들어야 한다는 투로 훈계를 늘어놓는 어른들이 여기에 해당됩니다. 아이들은 어떤 어른을 좋아할까요? 그냥 하고 싶은 대로 내버려두는 어른을 좋아할까요? 아닙니다. 아이들은 자기 삶을 이해해주는 어른들을 좋아합니다. 아이들에게도 삶이 있느냐고요? 삶은 누구에게나 있습니다. 어른들이 생각하는 걸 아이들도 다 생각합니다. 다만 살아온 시간이 다를 뿐입니다. 어른들도 아이 시절을 겪었잖아요. 할아버지라고 처음부터 할아버지였을까요? 어린 시절을 겪지 않은 어른은 할아버지가 될 수 없습니다.
정지용은 위 시에서 호기심 어린 눈으로 할아버지를 바라보는 아이 시선을 내보이고 있습니다. 날이 궂은데 할아버지가 담뱃대를 물고 들에 나갑니다. 순간 궂은 날이 곱게 갭니다. 이번엔 할아버지가 도롱이를 입고 들에 나갑니다. 도롱이는 짚이나 띠풀로 만든 비옷이에요. 가문 날에 도롱이 입는 할아버지를 아이는 이해할 수 없는 눈으로 바라봅니다. 그런데, 정말로 가문 날에 비가 옵니다. 참 신기합니다. 할아버지는 날씨가 바뀔 거라는 걸 미리 안 것 같습니다. 농부로서 살아올 세월로 할아버지가 이런 능력을 보인다는 걸 아이는 좀 더 시간이 지나야 알게 되겠죠. 아마도 이 아이는 할아버지에게 여러 가지 질문을 했을 겁니다. 어떻게 하면 할아버지처럼 금방금방 날씨 변화를 알 수 있는 거냐고 질문했을지도 모르지요. 농경사회와 산업사회를 같은 맥락으로 생각하면 안 된다고 누군가 말합니다. 맞습니다. 농경사회와 산업사회는 분명히 다릅니다.
하지만 사회가 달라진다고 해도 아이들 마음은 여전합니다. 농경사회에서도 아이들은 어른들을 보며 세상을 알고, 산업사회에서도 아이들은 어른들을 보며 세상을 압니다. 요즘 아이들을 두고 말이 많습니다. 우리 어릴 때와는 달리 영악하다는 말을 서슴지 않고 하는 어른들을 많이 보았습니다. 집 평수로 친구를 나누는 걸 보면 그래 보이기도 합니다. 아이들은 왜 집 평수로 친구를 평가하는 걸까요? 어른들이 집에서 그런 말을 자주 하기 때문입니다. 할아버지가 비옷을 입고 나가면 비가 올 거라는 걸 지금 아이들이라고 알아채지 못할까요? 아이들은 어른들이 닦은 길을 갑니다. 어른들이 닦지 않은 길을 개척하려면 시간이 많이 걸리기 때문입니다. 자존심으로 똘똘 뭉친 어른들을 보고 아이들 또한 자존심으로 똘똘 뭉칩니다. 자존감이 아닙니다. 자존심입니다. 아이들은 집 평수로 자존심을 세우려고 합니다. 그런 아이들이 어른이 되면 어떤 세상을 만들까요? 그때에도 동시를 읽고 쓰는 어른들이 남아 있을까요?
아기가 잠드는 걸 보고 가려고 아빠는 머리맡에 앉아 계시고. 아빠가 가시는 걸 보고 자려고 아기는 말똥말똥 잠을 안 자고. - 윤석중, 「먼 길」 제목을 보면 아빠는 먼 길 떠나야 하는 모양입니다. 아빠는 아기가 눈에 밟힙니다. 오늘 떠나면 언제나 볼 수 있을는지. 아빠는 아기 잠드는 걸 보고 가려고 아기 머리맡에 앉아 있습니다. 아빠 마음을 아는 걸까요? 아기는 아빠가 먼 길 떠나는 걸 보고 자려고 말똥말똥 눈을 뜨고 있습니다. 시인은 아빠와 아기 사이를 흐르는 애틋한 정서를 아이 마음으로 표현합니다. 물론 어른이 된 시인이 상상하는 아이 마음입니다. 동시를 읽는 이들은 간혹 시인이 아이 마음을 낭만화한다고 비판합니다. 어른들이 상상하는 아이를 동시에 드러낸다는 겁니다. 시인이 아이가 아닌 건 분명하죠. 시인은 어린 시절을 거쳐 온 것이지, 어린 시절을 사는 건 아니라는 얘기입니다. 당연히 시인은 어린 시절을 회상하며 아이 마음을 언어로 표현하기 마련입니다. 아이 마음과 어른 마음이 뒤섞여 동시에 표현될 수 있는 겁니다.
아이들을 대상으로 하는 동시나 동화, 청소년 소설에는 흔히 교훈성이 넘쳐납니다. 아이 마음을 표현한다고 하면서 실제로는 아이를 바라보는 어른 마음을 아이 마음으로 표현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아이들 이야기에 어른들 삶이 투영된 셈이죠. 윤석중이 쓴 위 시만 해도 어른이 상상하는 아기가 나옵니다. 아빠와 아기를 같은 맥락에 두고 시를 전개하고 있잖아요. 시인은 먼 길 떠나는 아빠와 잠들지 않는 아기를 하나로 연결하여 동시를 읽는 아이들에게 가족에 대한 정을 알려주려고 하는지도 모릅니다. 말똥말똥 눈을 뜬 아기에게 어른 생각을 투영한 겁니다. 우리가 이 시를 읽으며 느끼는 애틋한 정서는 먼 길 떠나는 아빠의 마음을 이해하는 데서 비롯됩니다. 정확히 어른들 마음인 거죠. 이 시를 읽는 아이들은 아빠와 아기 중 누구 마음으로 이 시를 들여다볼까요? 아기 마음일까요? 아빠 마음일까요? 동시를 쓰고 읽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새삼 알게 되는 대목입니다.
동시는 아이들의 마음을 표현합니다. 문제는 아이들이 어떤 마음을 지니고 이 세상을 살아가는가 하는 점입니다. 어른이 된 시인은 아이 시선으로 사물을 보려고 합니다. 아이 시선은 현실이 아니라 상상 속에서 펼쳐집니다. 시인은 자신이 만든 세계에 아이 시선을 가진 또 다른 어른을 들여놓는 겁니다. 아이들은 현실을 꿈처럼 생각한다고 하죠. 꿈속 세상은 하나로 고정되어 있지 않고 끊임없이 변하잖아요. 요컨대 아이들은 고정된 세계에 안주하지 않고 상상으로 새로운 세계를 자꾸만 펼치려고 합니다. 어른들이 상상할 수 없는 세계에서 마음껏 노는 아이들을 상상해 보면 어떨까요? 우리나라 동시에는 아이들이 뛰어놀 수 있는 이 세계가 부족해 보입니다. 어른들이 틀을 짠 세상에서 보호받으며 노는 아이들만 보인다고 할까요? 상상 세계마저도 이렇다면 현실 세계는 과연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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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 중에서 읽고 이해하고, 쓰고 표현하는 것이 가장 어려운 장르가 시에요.
여러 상황과 이야기, 장면들을 자세히 풀어 쓸 수 있는 단어와 문장이 아닌 함축적인 단어로 표현해야하기 때문이죠. 그래서 시에 나와 있는 그 어떤 단어 하나라도 결코 쉽게 넘겨 볼 수 없습니다.
이런 시의 중요성을 익히 알고 있던 터라 저도 아이들에게 동시와 동요를 많이 접하도록 노력하고 있어요. 시중에 나온 동시집을 사서 아이들에게 읽어주기도 하고, 집의 벽 한 켠에 동시를 프린트해 붙여놓기도 했지요. 또 동요가 담겨있는 CD도 구매해 자주 들려주기도 했어요.
그런데 요즘에 나온 동시나 동요들을 보면 말놀이나 아이들의 흥미와 재미를 느끼게 해주는 것들이 참 많아요. 저 또한 그런 동시, 동요들을 골라 아이들에게 보여준 것도 사실이고요. 그래야 아이들이 동시와 동요를 관심 있게 보고 들을 수 있을 거라 생각했지요.
그러던 중 보리출판사에서 나온 새로 찾고 가려 뽑은 겨레아동문학선집을 만났습니다. 그 중 9권과 10권은 1950년대부터 1950년대 까지 쓴 동시와 동요 98편이 담겨져 있어요. 여기에 나온 동시들은 아름다운 우리 자연의 모습이나 순수한 아이들, 고향의 향수 등을 잘 묘사하는 작품들이 많았어요. 뿐만 아니라 우리말을 순수하고 곱게 살려서 동요로 불리는 동시들도 많았지요.
9권 <엄마야 누나야>에는 우리가 익숙하게 알고 있는 김소월, 이원수, 정지용, 윤석중 등 여러 시인들의 동시와 동요가 담겨져 있어요.
김소월 시인의 유명한 시인 <엄마야 누나야>에요. 아직도 가끔씩 노래로 흥얼거리는 시인데 이 책에서 보니 참 반가웠어요.
이것 말고도 <설날>, <반달>, <고드름>, <오빠생각>, <고향의 봄> 처럼 동요로 불렀던 시들이 이 책에 많이 나와 있었어요. 아이들이 책을 보면서 이건 학교에서 배운 노래야, 이건 “쎄쎄쎄” 할 때 부르는 노래야 하며 재미있게 책을 읽었어요.
한편 전 이원수 시인의 <이삿길>이란 시가 참 인상 깊었어요. 셋방살이의 서러움을 안고 한 밤에 온 가족이 이사 가는 모습을 그린 시에요.
다글다글 구루마 바퀴 돌아가듯이 어려운 세상 어서어서 지나가거라
이 구절에서처럼 어려운 시절 살았던 우리네 모습이 떠올라 마음 한 켠이 아렸어요.
이 책을 보면서 우리의 정서를 잘 표현하고, 우리말의 아름다움을 제대로 알려주는 동시를 만날 수 있어서 정말 반가웠어요. 요즘처럼 재미와 흥미만을 주는 동시 보다는 순수하고 따뜻한 마음을 전해주는 동시를 아이들에게 접해주는 것이 동시를 읽는 진정한 목적을 이룰 수 있지 않나 새삼 깨닫게 되었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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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렸을때 한번쯤 보았을 동요, 동시가 실린 겨레아동문학선집 엄마야 누나야를 읽어보았어요.
어렸을때 동시 좋아서 책 사던 기억이 나네요...
초등학교 1학년 3학년 두아이와 함께 읽어 볼려구요....
초등학교 2학년 되면 동시도 배우고 직접 동시도 적어보니 미리 읽어보고 한번 아이와 동시를 적어보아도 좋을거 같더라구요.
엄마야 누나야 책을 한번 살펴 볼께요..
방정환, 김소월, 주요한, 김동한. 윤극영. 최순애, 이원수. 정지용 외 지은이가 있으시네요
여기서 김소월, 방정환, 이원수는 많이 아실거 같아요...
엄마야 누나야 젤 먼저 만난 동시는 귀뚜라미 소리 네요...
1924녀 10월이면... 정말 오래된 시죠?
이책은 글이 발표된 차례대로 엮었다고 하네요.
그리고 처음 발표한 글을 원본으로 삼고 표기느 되도록 오늘날의
맞춤법에 맞게 바로 잡았다고 하네요....
시를 읽다보면 요즘 아이들이 알아듣기 어려운 말이나 흔히 쓰지 않는 독특한 표현은 풀이말을 달았어요...
예를 들어 고양이를 옛날에는 괭이라고 쓰이고 말이죠~
아이 키우면서 동화책보고 했었는데 오랫만에 동시 보니 너무 좋더라구요.
학교 다닐때 생각도 나고 말이죠~
우리 아이들도 초등학교 들어가서 이제 동시. 동요에 대해 배우게 되는데
겨레아동문학선집 엄마야 누나야 보면서 이런 동요, 동시가 있구나
하는것을 알았으면 하네요.
책 보다가 키 대보기란 동시도 있네요..
한번 읇어보아요.
키 대보기
윤선중
누구 키가 더 큰가
어디 한번 대보자.
올라서면 안된다.
발을 들면 안 된다.
똑같구나 똑같애
내일 다시 대보자.
[윤석중 동요선 - 1939년] [날아라새들아 1983년]
이런 간단한 동요, 동시는 아이들에게 들려주면 좋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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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요즘 이 꽃은 잘 못보는데요 바로 바로 할미꽃이요~
전에 외할아버지 산소에 아이들 데리고 간적 있는데 그때 할미꽃을 아이들 처음 보여주었는데
이쁘다며 왜 할미꽃이냐구 물어보더라구요.
아마 이 동요를 보여준다면 재미있어 할거같죠?
그리고 여기서 허리곱장 할미꽃이라고 있는데
허리곱장 뜻은 허리가 꼬부장한 이라고 하네요....
오래만에 아이들하고 동요,동시를 겨레아동문학선집 엄마야 누나야 통해서 보았네요..
우리 삼형제에게 자주 자주 보여주고 동시도 지어보아야겠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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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리출판사>의 새로 찾고 가려 뽑은 10권의 겨레아동문학선집 중 9권과 10권은 동요와 동시집입니다. 9권에 실린 동요과 동시는 모두 96편입니다. 우리 겨레가 일본에 나라를 빼앗기고 고통스러운 삶을 살던 시절이나 해방기에 쓰여진 작품들이지요. 우리 겨레가 겪었던 아픔이 고스란히 배어 있는 작품도 많으며. 그 어려움 속에서도 어려움을 딛고 희망을 찾으려는 노력이 보이는 동요와 동시들도 많이 보인답니다. 동요와 동시는 동화나 소설과는 또 다른 느낌을 많이 주는 듯 싶습니다. 대부분 짧지만 그 속에 함축된 의미를 많이 담고 있어서 그 의미를 찾기가 더 어려울 수도 있고 그렇지만 그렇기에 더 많은 의미를 담을 수 있다는 것이 동요와 동시의 매력이 아닐까 싶네요. 6학년인 큰 아이는 동요나 동시보다는 소설 이야기를 훨씬 더 좋아한답니다. 그래서 9권과 10권은 잘 읽으려고 하지 않더라구요. 오히려 4학년인 작은 아이는 어려서부터 예쁜 말과 예쁜 그림이 담겨 있는 동요나 동시집을 좋아했답니다. 이 책은 예쁜 동요와 동시의 내용만 담긴 것은 아니지만 작은 아이는 9권과 10권을 동화보다도 먼저 읽었답니다. 동요와 동시 내용의 해석은 읽는 사람마다 참 다르게 해석된다는 것을 아이를 통해 느낄 수 있는 부분이었지요. 이 책은 본문 뒷 편에 이 책에 실린 이야기의 작가인 지은이의 이름과 년도 및 내용 및 주요 특징들을 모두 실어 놓았습니다. 그래서 해당 작가의 이야기나 궁금한 점이나 작품 등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는 장점이 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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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리출판사 겨레아동문학선집 10권중 5권을 읽어보았어요... 동화,소년소설 ,동요, 동시등 담겨져 있는데 아는 이야기도 있었으면 좋겠네요...
귀뚜라미와 나와, 어디만큼 왔냐 , 눈뜨는 시절 , 세발달린 황소 , 엄마야 누나야 이렇게 5권이랍니다.... 겨레아동문학선집은 누구에게는 추억이담겨져 있는 이야기가 담겨져 있고 아~ 옛날에는 이런 놀이도 있고 교통수단이나 먹거리등 알게되고 뭐든게 신기할수 있을거 같아요... 할머니 할아버지께 듣던 이야기 들을 책으로 만나보는 시간이 되는거 같네요 .. 책 읽다가 그림보고 하니 왜이렇게 정겨운지 모르겠어요... 갑자기 소나기 이야기 생각도 나고 말이죠... 겨레아동문학선집9 엄마야 누나야 동요. 동시도 한번 살펴보았어요... 동요. 동시 하면 학교 다닐때 배웠던게 나왔을까요? 차례를 한번 살펴보니 지은이 보시면 김소월, 방정환, 이원수 등 아는 분들 이름도 있네요.. 제목 보니 아는 동요 동시도 있네요..... 그중에 설날 동요도 있네요 까치까치 설날은~~~ 다 아시죠? 지금 까지도 아이들이 불르는 설날 동요죠... 김소월에 엄마야 누나야 시도 책속에 나와 있네요...
그리고 책을 보다보면 개아미란 말이 있는데 이말은 개미라고 하네요.. 이렇게 지금은 쓰지 않는 말들을 해석도 해주더라구요. 너무 재미있게 잘 보았답니다...
저도 오랫만에 재미있게 읽은 겨레아동문학선집이네요... 나중에 친정엄마께도 보여드리고 싶어요. 보시면 추억에 대한 이야기 많이 해주실거 같아요....
아이들과 함께 옛이야기 하며 읽어보시면 너무 좋을거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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