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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재미있는 소설을 읽었다 그의여자는 읽기가 편하다 문장이 짧고 현란한 미사여구나 문장을 늘리는 형용사가 거의 없어서 담백하고 명확하고 간결하다 서른살 여의사 클레르의 건조한 생활처럼 문체도 건조하고 단순하다 불륜을 저지르는 사람들의 치밀함을 엿볼수 있어 재미있다 예를 들어 클레르가 향수를 뿌린날은 토마스는 클레르와 가까이 있지 않는다 클레르의 향기가 몸에 밸까봐 조심하는 것이다 클레르와 함께 있는 시간은 정확히 1시간 15분이며 밖에서 데이트를 하지도 않는다 이런 토마스에게 클레르는 어떤 불만도 표시하지 않고 토마스의 아내와 아이들을 상상하고 집에서는 어떤 남편이고 아빠일지를 궁금해 한다. 클레르는 소유할수 없는 토마스와의 비밀스런 관계를 즐기고 있고 그런 관계에 만족한다. 그러나 토마스에게 반전이 있었으니 그는 유부남이 아니다. 토마스의 고백을 들은 클레르는 기뻐할까?? 클레르에게도 반전은 있다 짧은 소설이지만 반전에 반전이 있는 흥미로운 소설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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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디치상에 빛나는 새롭고 독특한 문체 '그의 여자'
주인공과 속마음을 털어놓고 지내는 결혼한 친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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엠마뉘엘 베르네임의 책들을 읽으며 ‘아 이렇게도 글을 쓸 수 있구나.’ 생각을 해봤다. 간결한 문체이지만, 오히려 더 힘이 있음이 느껴진다. 간결하면서도 어쩜 그렇게 주인공들의 심리 상태를 잘 묘사할까 라는 생각이 든다. 그럼에도 우린 미사여구가 덕지덕지 붙여야 한다는 강박관념으로 글을 쓰고 있진 않은지 돌아보게 된다.
100페이지의 작가라는 말을 들을 정도로 20년 동안 100페이지 남짓의 소설만을 5편 썼다는 엠마뉘엘 베르네임, 그녀의 진면목을 잘 보여주는 소설, 『그의 여자』는 메디치상을 수상한 작품이라고 한다. 메디치상은 ‘새롭고 독특한 문체’로 쓰인 작품에 수여하는 작품이라고 한다. 그만큼 엠마뉘엘 베르네임의 작품들은 독특한 문체를 그 특징으로 한다. 결코 꾸미지 않는 문체, 하지만, 가장 효과적으로 독자에게 전달해주는 문체, 참 매력적이다.
『그의 여자』는 왠지 제목을 “그녀의 남자”라고 해야 맞을 듯하다. 개업의사인 클레르는 스텐드바에서 아침을 먹다 핸드백을 잃어버린다. 이 일로 알게 된 집 앞 공사장 현장의 건축가 토마스와 클레르는 사랑에 빠진다. 아내가 있는 남편이자, 아이들의 아빠인 토마스는 퇴근 후 클레르의 집을 찾고, 한 시간 15분을 머물다 돌아간다. 시계를 감춰 봐도 토마스는 정확히 한 시간 15분을 머물다 돌아간다. 이는 가정이 있는 남자로서 가정에 돌아가야만 하는 당위성을 표현하고 있는 시간이다.
결코 소유할 수 없는 남자, 토마스. 하지만, 클레르는 그 토마스 대신에 그와 함께 했던 사소한 물건들을 소유하기 시작한다. 토마스가 먹고 남긴 각설탕, 그가 사용한 빨대, 토마스의 음성이 담긴 자동응답기 테잎, 그리고 함께 한 시간만큼 계속하여 늘어나는 콘돔봉지들. 이처럼 토마스의 흔적들에 집착하는 클레르에게는 또 하나의 취미(?)가 있는데, 그것은 가정에서 한 남편으로, 아버지로서의 토마스의 모습들을 상상하곤 하는 것이다.
이 소설은 결코 소유할 수 없는 금지된 사랑을 즐기는 한 여인의 모습을 잘 묘사하고 있다. 하지만, 소설엔 반전이 있다. 토마스가 총각이라는. 그리고 클레르는 토마스를 소유하게 됨으로 그동안 집착하던 잡다한 것들을 커내 쓰레기통에 버린다. 하지만, 이제 그 자리엔 다른 남성이 흘린 성냥갑을 집어넣으며 소설은 끝난다. 마치 또 다른 금지된 사랑을 예고하듯이.
클레르는 소유할 수 없는 남성들을 소유하고자 하는 여성일까? 이미 소유한 것에는 흥미를 가질 수 없는. 왠지 작가는 통상적인 남성의 여성편력을 도리어 클레르에게 대입하고 있지 않나 여겨지기도 하다. 현재 소유한 사랑에 만족하지 못하고 끊임없이 새로운 사랑을 꿈꾸는 여인 클레르. 작가는 이 모습을 고발하려는 것일까? 아니면, 이 모습을 흠모하는 것일까? 모를 일이다. 그저 독자의 입장에서 읽고, 어느 편이든 붙잡으면 그만이다. 소설의 몰입도는 대단히 좋다. 물론, 길지 않는 분량 역시 한 몫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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엠마뉘엘 베르네임 작가의 책 <커플>을 다 읽고서, 다음엔 이 책을 읽어야지 라고 줄서서 기다리고 있던 자기계발서를 깡그리 무시하고 엠마뉘엘 작가의 이 책을 손에 들고 읽어 내려가기 시작했다. 첫번째 책에서 느꼈던 그 신비하고 매력적인 느낌을 이 책에서도 고스란히 느낄수 있었고, 다시 한번 이 작가의 책을 모두 읽어봐야 겠구나. 라고 생각했다. <커플>의 내용에서 느낀 것들보다 글에서 묻어나오는 무언의 매력을 외면하기가 너무도 힘들었다. 이런 것이 글의 힘이고 매력인 것이었던가? 이십년동안 백페이지 남짓한 소설 다섯 편을 발표했다고 하니, 내가 아직 읽지 못한 건 세 편의 작품이 남았다. 긴 추리소설보다, 유쾌한 재미가 있는 소설보다 더 강렬했다.
"그녀는 핸드백을 도둑맞았다." 로 이 책은 시작된다. 내과의사 클레르는 핸드백을 잃어버렸고, 어느날 병원에 한 남자가 그녀의 핸드백을 들고 찾아온다. 그는 클레르가 일하는 근처 공사장에서 일하는 건축가 토마스 코바크라는 이름의 남자였다. 이 두사람의 만남은 이렇게 평범하게 시작된다. 남자친구 미셸과는 헤어지고 클레르는 토마스에게 빠져든다. 하지만 토마스는 그녀에게 자신은 미혼이라고 고백한다. 하지만 클레르는 아내와 아이들이 있다는 그의 고백에도 그에 대한 마음은 그대로였고 토마스와의 관계를 계속 이어간다.
주말을 제외한 평일 1시간 15분. 토머스와 함께하는 시간이다. 클레르는 그와의 시간속에서 추억을 남길 물건 한가지들을 수집하기 시작한다. 그와 처음 카페에 갔던날 그가 넣었던 각설탕, 칵테일을 저었던 노란색 막대, 토마스가 건넨 장미, 그와 마신 샴페인 마개, 콘돔껍질, 토마스가 남긴 전화기 자동 응답기의 테이프. 등.. 자신의 병원 서랍속에 그와 함께한 물건들을 간직하며 토마스와의 관계를 이어간다. 그리고 그와 함께하지 않을 때 클레르는 상상한다. 그의 아내와 아이들에 대해서. 절대로 그를 구속하는 행동을 하지도 않고, 그에게 질투를 자아내게 하는 말을 하지 않는 클레르. 어떻게 보면 이런 여자가 있을까? 라는 생각도 해보게 된다.
그런데 말이다. 어느 날 토머스가 자신이 미혼이라고 말했던 것은 거짓말이라고 고백한다. 고백의 고백이다. 평범한 여자들이었다면, 처음 토머스가 미혼이라고 말했을때, 그리고 미혼이 아니라고 다시 말했을때 여자들은 분노하거나 화를 냈을 것이다. 하지만, 클레르는 그렇지 않았다. 처음 고백때는 조금 놀랐을 뿐이고, 그것은 아무것도 문제되지 않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두번째 고백에는 안도했다. 그와 함께 할 수 있는 것에 대하여.
이런 여자가 있을까? 클레르는 분노하지 않았다. 다만 토머스를 사랑하는 몸짓만 보여주었을 뿐이다. 남자들이 바라는 여자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 남자에 대한 사랑의 모든 것을 보여주는 여자에 대한 소설. 하지만 <커플>에서 받았던 글의 느낌이 이 책에서도 오롯이 느껴진다. 그것은 깔끔함이었고, 달콤한 것은 낮춘 차가움이었다. 간결하고 퍼석한 건조함이 느껴지는 글이라고 하면 이해가 갈수 있을지 모르겠으나, 아마도 직접 책을 읽어봐야 그 느낌을 받을 수 있을 것 같다. 이것이 작가만의 매력적인 요소라고 생각된다. 독특한 매력. 반해버렸다.
다음 날, 클레르는 손가락들이 서랍 안에 가지런히 놓인 각설탕을 만지작거렸다. 그 순간 토마스의 환한 미소와 설탕이 녹아 있는 커피를 마지막 한 방울까지 마시려고 고개를 젖힐 때의 목이 떠올랐다. 그가 시간을 확인하려고 그녀의 손목을 잡았을 때 전해지던 손의 열기가 아직도 느껴졌다. 그리고 지난 금요일, 마지막으로 만났을 때 그의 밤색 머리는 허옇게 먼지를 뒤집어쓰고 있었다. 클레르는 각설탕들을 집어서 휴지통에 던졌다. 이걸 간직하면 뭘 해? 다시는 토마스 코바크를 만나지 못할 텐데. (p.31)
그녀는 잠이 잘 올 것 같았다. 그는 '올여름', 그리고 '우리'라고 말했다. 일월, 이월, 삼월, 사월, 오월, 유월. 적어도 여섯 달 동안은 그들은 헤어지지 않을 것이다. 그녀는 '우리'를 되뇌었다. 토마스와 그녀는 이제부터 '우리'가 되는 것이다. 그녀는 눈을 감았다. '올여름에는 우리 정원에서 저녁을 먹읍시다.' 따뜻한 날씨, 정원에 놓인 하얀 플라스틱 테이블과 의자들. 의자의 수는 내 개. 토마스의 아내가 주방에서 나온다. 클레르는 머리맡 램프의 스위치를 찾았다. 이제 더는 토마스의 아내를 생각하지 말아야 하는데. 토마스에게 아내는 없다. (p.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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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여류 작가 엠마뉘엘 베르네임은 특유의 간결한 문체로 <그의 여자>, <잭 나이프>, <커플>, <금요일 저녁>을 출간하였고, 그 중 <그의 여자>는 독특한 문체가 호평을 받아 '메디치 상'을 수상하기도 하였다. <그의 여자>의 시점은 여 주인공 '클레르'에게 맞추어져 있다. 작은 개인 병원을 운영하는 클레르는 근처 공사장 건축가인 '토마스'를 알게 되고 만남을 이어가는데, 관계가 깊어지려하는 시점에서 토마스는 밝힌다. 자신은 유부남이라고.
스스로도 '내연녀'라는 사실에 고민하는 주제에 왜 토마스를 향한 마음을 거두질 못하는 클레르의 모습을 보며 "친구였으면 한 대 치고 싶다."는 기분이 들었다. 이 소설에서는 토마스의 매력에 대한 객관적인 정보는 없이 오로지 클레르의 '상상'과 '기대'만이 계속해서 언급되고 있다. 환자의 몸을 진찰하면서도 토마스의 결점 없는 살결을 떠올리는 클레르. 재미있는 건 클레르가 토마스와 우연히 처음 만나는 그 시기에, 원래 남자친구인 미셸과 헤어지는 과정에 있다는 점이다. 미셸에 대해 더이상 애정을 느끼지 않는 클레르의 무미건조한 감정이 그녀의 행동에 그대로 묻어나고, 그걸 바라보는 미셸은 흐느낄 정도로 좌절한다. 클레르는 사실은 이전에는 지금 토마스에게서 느끼는 감정을 미셸에게 불태웠을 게 분명하다. 그리고 이렇게 변심하고 마는데. 지금 토마스를 향한 마음도 언젠간 그렇게 될지 모른다고 생각하면 그녀가 보이는 괴벽 행동들을 보고 쓴웃음 짓지 않을 수가 없는 것이다. 한편 <그의 여자>는 엠마뉘엘 베르네임의 다른 작품 <커플>의 결말과 비슷한 결말을 보여준다. <커플>때는 없었던 '반전'까지 곁들여 놓아 더욱 인상깊기도 하다. 결국 고민과 갈등으로 인해 일상생활까지 비합리적으로 위협을 받던 주인공은 어떻게든 '안도감'을 얻게 된다. 그리고 지금까지의 이상행동들이 한꺼번에 종결된고, 주인공은 미소 짓는다. 그런데 이 미소가 사람의 비합리적 행동의 '종결'을 찍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클레르를 논하는 데 있어서 토마스가 저지른 만행을 빼놓을 수가 없을텐데. 그것조차도 클레르는 미소로 무마시킨다. 마치 이런 상황이다. 병원에서 건강검진 결과, 암이 의심된다는 진단을 받은 환자. 환자는 너무나 괴로워하며 인생을 마감할 준비를 다 해놓는다. 그리고 병원에 가서 정밀검진을 받으러 왔다고 한다. 그러자 간호사가 뭔가 확인하더니 말한다. "죄송합니다, 진단서가 바뀌었어요. XXX님은 정상이세요." 이건 분명 소송감이다. 근데 당사자는 말한다. "제가 암이 아니라고요?! 어머나 고맙습니다 정말 고마워요! 너무 기분이 좋아서 화도 안 나요." 이런 것과 비슷한 비합리적인 행동이 그녀에게서 느껴진다. 그리고 이런 그녀의 행동은 그녀가 진찰하는 환자가 심각한 간염일지도 모르는 상황, 그리고 알고보니 단순 A형 간염인 것으로 밝혀지는 상황과 평형을 이루고 있다. 클레르의 관점에서 쓰여졌다는 걸 생각하면 제목의 <그녀의 남자> 이런 식으로 되는 게 어쩌면 맞는지도 모른다. 제목 <그의 여자>는 주인공 '클레르'와 토마스의 '아내'를 이중적으로 의미할 수도 있을 것 같다. '아내'를 떠올리며 질투하는 마음이 얼마나 클레르를 불안하게 하는지를 상기시키는 제목이란 느낌이 든다. 엠마뉘엘의 소설에 나오는 여자들이 사랑하는 모습은 외롭고 건조한 현대 여성들이 마주하는 현실적인 사랑을 그리고 있어서. 그 모습이 왠지 암울해 먹먹한 기분이 들기도 한다. <커플>을 읽었을 때도 그랬지만. 온연히 순수하고 즐겁기만 한 사랑에 대한 동경이 문득 생겨난다. 줄다리기라든가, 위험한 사랑이라든가... 그런 것, 클레르의 모습을 보면 너무 잔인해서 절대로 하고 싶어지지 않을 거란 생각이 든다. 그런 마음을 자극하기에 이 책이 많은 사람들에게 읽히고 여운을 남기지 않았을까 생각해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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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십 년 동안 백 쪽 남짓한 소설 다섯 편을 발표했다는 점이 독특한 작가이다. 그 다섯 편의 소설 중에 <그의 여자>는 '새롭고 독특한 문체'로 쓰인 작품에 수여하는 메디치상을 수상한 작품이라고 한다. 짧다면 짧을 수 있는 분량에 새로움을 담으려고 하면 뭔가 더 강렬한 것이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내과 의사 클레르는 핸드백을 도둑맞는다. 그리고 휘파람을 부는 정체불명의 남자가 두고 간 자신의 핸드백. 그것이 건축가인 토마스 코바크와의 첫 만남이었다. 혼자 살고 싶어서 이 년 전 미셸과 헤어졌지만 일주일에도 몇 차례씩 만나며 관계를 유지하고 있던 클레르는 자신에게 핸드백을 찾아 준 낯선 남자의 등장으로 뭔가의 다름을 느끼며 미셸과의 관계를 정리하려 한다.
그리고 다시 만나게 된 토마스와의 만남, 클레르는 그와의 만남을 기억하기 위해 그와 만날 때마다 각설탕을 모아 서랍 속에 넣어둔다. 생각하지 못 했던 아내와 두 아이가 있다는 토마스의 고백. 보통의 여자라면 가정이 있는 남자를 멀리할 것 같지만 클레르는 아무렇지 않게 그와의 만남을 지속한다.
그와의 시간을 오래 갖고 싶지만 항상 그녀의 진료가 끝난 뒤 한 시간 십오 분만 머무르는 토마스. 그를 조금이라도 오래 두려고 이것저것 노력해보지만 여전히 한 시간 십오분이라는 시간만 머무르는 그를 애써 잡으려고 하지는 않는다. 그리고 그녀는 그와의 만남을 기억하기 위해 그와의 추억이 있는 물건들을 서랍에 하나씩 모아둔다. 그와의 만남의 횟수를 기억하는 각설탕을 비롯해 노란 플라스틱 막대, 콘돔 포장지, 그가 남긴 메세지를 담은 응답기 녹음테이프까지... 그것도 모자라 서랍 속 물건을 사진을 찍어 지갑에까지 넣어 다닌다. 사랑하는 사람이 생기면 추억이 담긴 것을 모아두기도 하지만 클레르는 약간 정도를 지나치는 점이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드는 부분이다. 몇 십 개가 넘는 콘돔 포장지까지 모아두니 말이다.
클레르는 가정이 있다는 그를 질투하거나 자신 옆에 두려고 하지는 않지만 머릿속으로는 끊임없이 그가 아내와 두 아이와 함께 있는 모습을 상상한다. 토마스의 가정에 대해 온갖 상상을 멈추지 않는다. 그리고 이어지는 토마스의 진실의 고백. 그리고 그녀는 토마스와의 추억을 모으고 공허함을 달래기 위해 채워 놓던 서랍 속 물건을 버릴 수 있었다.
이 책의 소개에 보면 "너무 간결하고, 너무 건조하고, 너무 강렬하다!"라고 되어 있다. 정말 간결하고 건조하다. 문장도 길지 않고 굉장히 짧은 문장들로 되어 있다. 어떤 미사여구도 없이 담담하고 건조한데 짧은 문장이 그런 느낌을 더욱 준다. 클레르가 온통 토마스의 생각으로 가득 차 있음에도 문체에서는 그런 열정적인 감정이 드러나지 않고 건조하다. 그가 가졌을 가정에 대해서도 생각하면서 끓어오르는 질투 같은 극한의 감정이 느껴지지 않는다. 보통은 싱글인 줄 알았던 남자가 아내와 아이가 있다는 고백을 한다면 화를 내고 실망하는 감정들을 표현할 텐데 이 책에는 그러한 감정도 보이지 않는다. "새롭고 독특한 문체"에 쓰인 작품에 수여하는 상을 수상한 작품이라고 하는데 아주 짧은 호흡이 눈에 띄었다. 또 처음에는 '그의 여자'가 아니라 '그의 남자'가 제목으로 어울리지 않는가 생각했었는데, 클레르가 끊임없이 상상했던 토마스의 아내, 아니면 토마스의 여자인 '그의 여자' 클레르를 말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강렬한 느낌보다는 담담한 느낌을 받았는데 다른 작품들도 100페이 남짓의 짧은 분량, 사랑에 대해 이야기 하고 있어 읽어보고 싶다는 궁금증이 들긴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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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이 마르거나 입술이 트면 우리는 몸이 건조하다는 것을 안다. 그런데 소설에도 같은 논리를 적용할 수 있을까?가령 소설의 문체가 건조하다는 것을 우리는 어떻게 판별하는가? 시점? 목소리? 줄거리, 등장인물의 성격…? 나는 평소부터 만연체가 간결체보다 더 건조하다고 여기는 선입견이 있었다. 아무래도 독일 철학서를 많이 읽은 탓일 게다. 가령 헤겔이나 하버마스의 글을 읽어보라. 그런데 엠마뉘엘 베르네임의 소설은 이런 내 선입견을 깼다.
프랑스 메디치상 수상작 『그의 여자』(작가정신, 2014)는 유부남과의 밀회와 그 밀회에 얽힌 괴상한 수집벽에 관한 이야기다. 여주인공은 서른 살의 내과의사 클레르이고, 클레르와 '자칭 유부남'인 토마스 코바크와의 밀회가 진척되면서 그녀의 괴벽스런 '추억 수집기'가 스릴러풍으로 전개되는 줄거리다. 토마스는 병원 옆 건설 현장의 건축업자이며, 아내와 두 아이가 있는 유부남이라고 한다. 두 사람의 불타는 밀회 시간은 주말을 제외한 평일 1시간 15분이다. 클레르는 밀회를 기념하는 잡스런 물건들을 책상 서랍에 수집하는 벽을 드러낸다. 가령 노란 플라스틱 막대, 각설탕, 샴페인 코르크 마개, 전화 응답기 테이프, 열두 송이의 마른 장미, 콘돔 봉지 등이 책상 첫번째 서랍에 고스란히 모셔져 있다. 이런 수집벽은 유부남과의 밀회를 은밀히 기념하고 회고하는 앨범을 제작하는 의례행위와 같다. 클레르는 때론 책상 서랍이나 수집품의 사진을 찍기도 한다.
이야기 초반에는 클레르가 정서 불안 유형이라는 사실을 알아차릴 수 없다. 전 남자친구 미셸과의 결별도 다만 혼자 살고 싶다는 이유에서였다고 밝히고 있지만 우리는 이런 단순한 결별 사유를 의심할 수 밖에 없다. 이야기가 후반부로 접어들면서 우리는 클레르가 유부남과의 불륜에 강박적인 욕망이 있는 정서적으로 매우 불안한 상태에 있다는 사실을 확신하게 된다. 특히 토마스가 유부남이 아니라는 사실을 고백한 이후, 토마스에 대한 사랑이 서서히 냉각되면서 다음 목표물로 코레이 씨라는 유부남 환자에게 빠져드는 클레르 모습을 지켜보면서 말이다. 클레르는 정상적인 사랑이 불가능한 여자인 것 같다. 강박적으로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에 빠지기 쉬운 유형의 여성이 있고,불륜이라는 감각적 즐거움을 통해 불안감을 피해보려는 그런 유형의 여성도 있다. 모든 비극 작품들이 한결같이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이나 불륜을 즐겨 묘사하는 것도 바로 이런 이유에서일 것이다. 책을 다 읽고 난 후에 나는 미셸-토마스-코레이 씨로 이어지는 불륜의 고리사슬을 연역하게 된다. 토마스처럼 미셸도 유부남이거나 본래 임자있던 몸이었을 가능성이 크다. 그리고 미셸과의 밀회도 클레르에게 분명 수집되었을 것이 분명하다.
문체는 건조하지만 이야기는 전혀 건조하지 않다. 이 책을 다 읽고 난 뒤의 느낌은 마른 흙을 계속 파내려가다가 무진장 튀어나오는 청개구리들을 손으로 잡은 느낌이다. 다소 말랑말랑하고 야릇한 기분이 드는 그런 감촉이 돋아난다. 그러다가 문득 젖어있는 황토위에 서 있는 자신의 발밑을 보게 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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잃어버린 핸드백을 가지고 온 남자. 그녀와의 만남을 가진 뒤 언제나 한 시간 십오 분만 머물다 가는 남자. 그 남자가 사용한 물건(각설탕, 콘돔, 칵테일을 저었던 노란색 플라스틱 막대, 샴페인 코르크 마개, 전화 응답기 테이프, 열두 송이 마른 장미 등)을 수집하는 여자. 이렇게 적어두고 보니 이상하다. 하지만 읽는 동안에는 이상하게 그(토마스 코바크)의 여자(클레르)에게 공감하게 된다. 158페이지의 짧은 분량안에서 우리는 한 여자의 사랑의 행동을 보게 된다. 우리말로 번역해서 이렇게 분량이 늘었지, 원서로는 100페이지 정도 일 것이다. 프랑스 메디치상을 받았다고 하는 작가 엠마뉘엘 베르네임은 '100페이지의 미학'을 보여주는 작가이다. 그녀의 다섯 작품 <잭나이프>, <커플>, <그의 여자>, <금요일 저녁>, <스탤론>이 모두 100페이지 내외의 짧고 건조한 문체의 독특한 작품세계를 표현하고 있다고 한다. 그녀의 작품 중 <그의 여자>만을 읽었지만, 이 작가가 내세우고 있는 이 독특한 주인공, 클레르는 현실에서 만나기는 어려운 인물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거리감을 느낀다거나 생뚱맞은 느낌이 드는 캐릭터는 아니었다. 왜 그럴까? 그것은 작가가 표현한 주인공의 섬세한 감각에 독자가 함께 호흡하면서 은연중에 '그럴 수 있겠다'하는 동의를 얻게 된 데 있는 듯하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들킬까 봐 몰래 하는 사랑, 특히 남에게 쉽게 동의 받지 못하는 물건에 대한 집착이 주는 쾌락을 표현하는 데 탁월하다. 그러나 그녀가 그 남자를 드디어 차지했을 때 어떤 일이 벌어질까? 그녀와 함께 딱 한 시간 십오 분의 시간만을 허용하던 토마스가, 그래서 유부남이라고 생각했고, 차지할 수 없다는 이유로 더욱 집착했던 그가 결혼을 하지 않았다는 것을 알게 된 후 클레르는 그녀가 모아 온 그의 물건을 모두 쓰레기통에 버린다. 그리고 마지막 반전. 그녀는 다른 남자의 성냥갑을 서랍에 넣고 열쇠를 잠근다. 남들에게 들키기 싫은 한 여자의 야릇한 쾌락은 비밀스럽게 이어진다. 이 책을 남자들에게 읽어보라고 한다면 어떤 반응을 할까? 그 점이 문득 궁금해졌다. 실제로 이런 성향의 여자를 만나는 일은 쉽지 않지만, 사랑을 완전히 소유할 수 없을 때 그의 흔적이라도 갖고 싶은 욕망이 있을 거라는 데 수긍할 수 있었다. 그렇지만 그가 완전히 나의 사람이 되었을 때 그의 물건을 버리고 또 다른 남자의 물건을 갖고자 하는 데에는 쉽게 공감하기 어려웠다. 거기에 일반 독자와 엠마뉘엘 베르네임이 그린 주인공 클레르의 간격이 느껴지는 것이다. 제목은 그의 여자이지만 결코 그녀는 그의 여자가 될 수 없는 존재이다. 남자들은 그녀의 소유가 될 수 없을 때에만 그녀의 동경의 대상이 되며 그녀의 남자가 될 때 마음속에서는 버려질 수 있는 존재가 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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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다보면 작가가 도대체 무엇을 말하고 싶어하는 건지 잘 모를 때가 있다. 그리고 책을 덮고 나서야 와, 하는 놀라움을 받을 때가 종종 있다. 세상에서 가장 실험적인 작품에 수여되는 프랑스 메디상을 수상한 엠마뉘엘 베르네임의 「그의 여자」를 읽으면서 유독 그랬다. 200페이지도 안 되는 짧은 단편, 건조하고 짧은 문장들. 큰 대화나 상황없이이 주인공 클레르의 시선을 따라 평범한 일상을 스쳐지나갔다. 얼핏 보면 참 단순한, 조금은 묘한 상황에 놓인 한 여자에 대한 이야기다. 그러나 책의 끝부분에 오면 얼마나 적나라한 묘사가 있었는 지 알 수 있다. 남몰래 비밀스러운 사랑, 그 사랑의 공허함을 채우기 위해 상대의 소지품을 수집함으로써 사랑을 느끼고 희열에 빠지는 페티시스트를 대놓고 표현하고 있다. 조금의 숨김없이, 그게 마치 당연한 것처럼. 읽는 내내 큰 문제라는 생각이 들지 않을 정도였다. 「그의 여자」는 서른 살의 내과 의사 클레르가 어느 날 우연히 유부남이라는 건축가 토마스 코바크란 남자를 만나게 되면서 시작한다. 서로 사랑에 빠지지만 온전히 자신의 것이 될 수 없는 그 때문에 클레르는 그가 사용했던 다양하고 자질구레한 물건들을 수집함으로써 그와 함께 지낸 시간을 상기시키며 그 공허함을 사랑한다. 그녀가 수집하는 물건은 대개 코르크 마개, 장미, 콘돔, 각설탕 등 매우 소소하다. 생각해보면 스토커와도 같은 행동을 하고 있는 데, 책을 읽는 내내 도대체 무엇이 문제인건가 하는 느낌이 들지 않을 정도로 누군가의 감정이 투영될 만큼 건조하고 메마른 문체에 왠지 신이 되어 인간들을 방조하는 느낌까지 든다.
그러나 마지막 장을 넘기면서 클레르의 문제가 무엇인지 이 책에 등장하는 무심코 넘긴 행위들이 얼마나 도덕적이지 못한 지, 그것도 심지어 의사라는 성공한 여성을 가지고 만들어내었다는 점에서 소름끼친다. 심지어 「그의 여자」의 배경은 평범한 일상이다. 언뜻보면 단순한 불륜에 불과한 클레르와 토마스의 사랑이 '클레르'의 병적 증세 하나로 내용은 단박에 바뀌게 된다. 작가는 무엇을 말하고 싶었던 걸까. 여성의 은밀한 욕망과 괴벽을 적나라하게 보여줌으로써 불안전한 사랑에 대해 상처 입은 여자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것도 같은 데, 마지막 결말 부분을 보면 클레르의 그것을 과연 상처라고 할 수 있을까? 싶기도 하다. 현대 인간이 갖고 있는 병폐라고 보는 것이 그리 거창하지만은 않을 것이다. 다만 주인공을 성공한 여성으로 둠으로써 사랑과 욕망에 대한 더 적나라하고 깊은 이야기를 보여준 것 같다. 읽는 데도 그다지 오래 걸리지 않고, 매우 짧으며 겉 표지부터 차갑고 건조하기 짝이 없는 「그의 여자」는 몇 년이 지나 읽게 되더라도 무섭고 섬뜩하면서도 공감갈 것만 같은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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