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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다 읽고도 종이들을 붙잡고 읽는 척했다. 생각을 정리할 시간이 필요해서였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단 한 순간도 엄마에게서 하나밖에 없는 친구의 애정을 갈구하는 외롭고 어린 소녀의 모습을 본 적이 없다. 엄마에 대한 호기심이 전혀 없었다는 사실을 깨닫자 한 가지 의문이 떠올랐다. 내가 우리 부모님을 알기는 아는 걸까?
당신은 자신의 부모, 혹은 형제 혹은 자식에 대해서 얼마나 제대로 알고 있는가? 가족이란 세상에서 나와 가장 가까운 위치에 있는 존재이다. 거의 무조건 믿어야 하는, 유일한 존재. 믿음과 의심 사이의 그 조그만 간격은 사실 종이의 양면과도 같다. 사소한 행동, 말투들이 쌓여 오해를 만들고, 견고하게 쌓인 세월을 넘어 믿음을 깨트린다. 그리고 부모와 닮은 아이들은 점점 자라면서 낯선 타인처럼 이질적이고 불가해한 존재로 변해간다. 외모는 점점 부모를 닮아가더라도, 어느 순간 아이는 친근하기도 하고 낯설기도 한 존재가 되어 버린다. 부모 또한 자식에게 모든 상황에 대해 전부 솔직할 수만은 없다. 그러니 과연 내가 알고 있는 아이의 모습이, 내가 알고 있는 부모의 모습이 진짜인지는 의문이 드는 순간이 오게 마련이다. 어느 날, 한동안 왕래가 없었던 아버지에게서 연락이 온다. "네 엄마가..... 엄마가 좀 안 좋다." 아버지는 엄마가 아주 끔찍한 망상에 빠졌다고, 의사 말로는 정신병을 앓고 있다며 병원에 입원했다고 말한다. 혼란스러운 마음을 가라앉히고 다니엘은 자신이 그 동안 뭔가 놓친 게 있는지, 지난 5개월간 엄마 가 보낸 이메일 들을 살펴본다. 당시에는 무심코 지나쳤지만 의심스러운 것은 엄마가 마지막으로 보낸 이메일 한 통. 다른 내용은 하나도 없이 그저 다니엘의 이름과 느낌표 하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 외에는 근사한 농장 생활, 따뜻한 동네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로 전혀 이상할 만한 것이 없었다. 다니엘은 자신이 뭘 간과했을까 불안하면서, 그 동안 농장 방문을 미뤘던 것에 대한 자책감을 느낀다. 다음날 급하게 여권과 티켓을 챙겨 공항으로 가지만, 엄마가 이미 병원에서 퇴원했다는 아버지의 전화에 이어, 엄마에게 전화가 걸려온다. "그 인간 말은 다 거짓말이야. 난 미치지 않았다." 사랑하는 나의 아버지와 어머니가 서로를 의심하고 있는 상황에, 자식이라면 누구 편을 들어야 하는 걸까? 아버지는 어머니가 망상에 사로잡혀 있다고 말하고, 어머니는 아버지가 무서운 범죄에 연루되어 있다고 말한다.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우리 부모님은 내가 도저히 알아볼 수 없는 부부처럼 행동하고 있었다. 두 분 이서 서로를 대하는 모든 방식이 여름을 나면서 바뀐 것만 같았다.
이 작품은 삼백 페이지가 넘는 동안 어머니가 아들에게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다. 다니엘의 어머니는 처음부터 어떤 일이 있었는지 단계별로 말을 해야한다면서, 정작 중요한 부분은 쉽사리 설명을 하지 않는다. 이야기를 듣는 다니엘만큼이나 독자인 나도 조바심이 날만큼. 그래서 결국 실제로 스웨덴의 농장에서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에 대해 다니엘이 직접 조사하는 것은 후반부 잠깐이고, 엄마가 일기, 편지를 통해 당시의 상황에 대해 들려주는 것이 작품의 거의 전부이다. 하지만 신기하게도 이야기는 전혀 지루할 틈이 없게 진행되고 있다. 다니엘은 아버지, 어머니 어느 한 쪽의 말만 믿을 수 없기에 아버지 몰래 어머니의 얘기를 들어주고, 어머니 몰래 아버지와 연락을 한다. 모자간의 대화 장면은 마치 무슨 첩보전이라도 되는 것처럼 손에 땀을 쥐게 하는 긴장감을 주고 있는데, 솔직히 작가가 대단하다는 생각이 읽는 내내 들었다. 독자인 내 입장에서 듣더라도, 다니엘의 어머니가 하는 말들은 망상처럼 느껴지는 부분이 상당수이다. 하지만 어느 정도 이야기가 진행되다 보면 진실을 파헤치려는 그녀의 망상처럼 보이는 집념이 진짜 '진실'인 것처럼 느껴지는 순간이 온다. 하지만 그렇더라도, 그녀가 말하는 이야기는 한 쪽의 입장만을 알려줄 뿐이다. 진실을 파악하려면 양쪽의 입장을 모두 듣고, 제3의 인물을 통해 상황을 파악해서 객관성을 유지해야 하니 말이다. 가족이란 사랑을 매개체로 만들어진 공동체이고, 그 사랑을 위한 첫 번째 조건이 바로 믿음이다. 내가 어떤 상황에 처해 있더라도, 논리적으로 인과관계를 따지기 전에 무조건 신뢰하는 그것. 믿음에는 그렇게 조건이 붙지 않아야 하는 것이다. 믿음에 관한 무시무시한 진실은 바로 '무조건'이라는 건데, 사실 어디 우리 삶이 그렇게 되던가 말이다. 누구나 가끔 자기 옆에 누워 있는 사람의 진짜 모습을 의심하게 되는 경우가 생길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 사람이 당신에게 소중하다면 무조건 믿어야 한다. 설사 그가 당신에게 무언가를 감추고 있더라도, 진실한 믿음은 결국 상대방에게 전해 전해질 것이다. 이 작품은 지극히 주관적인 시선으로 이야기가 진행되기 때문에 진실인지, 망상인지 모호하게 느껴질 수밖에 없도록 쓰여졌다. 그래서 작품의 후반부에 다니엘이 스웨덴에 직접 가서 부딪히는 진실은 사실 좀 충격적이다. 표면적으로 보여지는 갈등의 주요 플롯을 넘어서는 무언가가 숨겨져 있었기 때문이다. 우리가 진실이라고 믿고 있는 것들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 보아야 할 것 같다. <차일드 44>로 엄청난 폭풍을 몰고 왔던 톰 롭 스미스의 이번 작품은 전작과는 전혀 다른 분위기로 스릴과 긴장을 만들어내 역시! 라는 감탄사를 뱉어내게 만든다. 게다가 내년에는 <차일드 44>를 잇는 3부작 <시크릿 스피치>와 <에이전트 6>가 출간될 예정이라고 하니 벌써부터 내년이 기다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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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일드 44'란 강렬한 임팩트가 있는 데뷔작을 가지고 우리 앞에 나온 작가 톰 롭 스미스의 신작이 나왔다. '얼음 속의 소녀들' 제목부터 심상치가 않다. 도입부부터 예사롭지 않은 시작을 보여주는 작품으로 이 부분은 사실 저자의 개인적인 비극을 토대로 이루어져 있다.
세상에 영원한 내편이라고 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아마도 가족이 그나마 가장 가깝지 않을까 싶다. 안정적인 유난시절을 보냈기에 부모님을 떠올리면 의지가 되는 주인공 다니엘... 그에게 한 통의 전화가 걸려온다. 전화를 건 사람은 아버지로 어머니가 상당히 아프다는 이야기를 꺼낸다. 어머니를 정신병원에 입원시켰다고.... 스웨덴 외딴 시골마을에서 행복한 노후를 보내고 있을 거란 생각을 가지고 있는 다니엘에게 날아든 엄마에 대한 이야기에 혼란스럽기만 하다. 자신의 성정체성과 애인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기 어려워 그동안 부모님 뵙기를 차일피일 미룬 다니엘은 어머니를 만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부모님이 계신 스웨덴 비행기 티켓을 끊는다. 탑승 직전 아버지의 전화가 다시 오고 어머니가 정신병원에서 퇴원하여 지금 너에게 가고 있을 거라고...
다급한 목소리의 어머니의 전화가 걸려오고 두 시간 후 도착한다는 말을 남기며 전화는 끊어지는데... 너무나 마르고 핼쑥한 어머니를 모시고 애인의 집으로 온 다니엘... 어머니는 아버지가 한 이야기는 모두 거짓말이라며 자신은 미치지도 않았고 남편은 악당의 조종을 받아 타락했고 자신을 미친 사람으로 취급한다는 것이다. 도대체 누구의 말을 믿어야 할지 다니엘은 헷갈린다. 어머니의 모습을 보면서 어머니가 진짜 정신에 이상이 있는 것인지 아님 부모님을 중심으로 스웨덴에서 끔찍한 일이 일어난 것은 아닌지... 진실이 어느 쪽인지 분간하기 어렵다.
사람은 고립됐다는 사실이 의식 속에 스며들기 시작하면 변하게 된다. 처음엔 안 그렇지만 서서히, 단계적으로, 그러다 어느새 그걸 당연하게 받아들이게 돼. 그러고는 하루하루 국가도 없고, 바깥세상에 치이는 일도 없고, 서로에게 각자의 의무를 일깨워주는 존재 없이, 지나가는 낯선 사람들이나 근처에 이웃도 없이, 아무도 우리를 들여다보지 않은 채, 영원히 우리를 보는 눈이 하나도 없는 상태로 살아가는 거지. 그렇게 되면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가, 어떤 행동이 받아들일 수 있는 것인가,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으로 어떤 죄를 짓고도 빠져나갈 수 있는가에 대한 관념이 바뀌게 된단다. -p69-
편안한 노후를 위해 이주한 스웨덴에서 어머니 틸데는 자신이 보고, 듣고, 느낀 이상하고 수상한 점들을 기록한 것을 보여준다. 기록들이 전하는 생생한 이야기는 어머니가 미쳤다고 볼 수없다. 그 동안 전혀 몰랐던 어머니의 어릴 적 시절과 친구의 등장, 스웨덴의 생활까지... 진실은 무엇인지 나는 누구를 믿어야하는지 헷갈리는 가운데 아버지 또한 어머니를 만나기 위해 다니엘에게 향하는데...
옮긴이의 글에서처럼 어린 시절 누구나 들었을 너무나 익숙한 질문 중 하나가 엄마가 좋아, 아빠가 좋아란 질문이 아닐까 싶다. 어린 시절과 달리 성인으로 성장한 다음에 엄마를 믿니? 아빠를 믿니?는 그 의미부터 차원이 다르다. 주인공 다니엘이 겪는 혼란은 그래서 더 크고 깊다. 자신이 아는 한 평생을 화목한 가정을 이끌어 온 부모님이 서로를 향해 내뱉는 말은 자신이 아는 아버지, 어머니의 모습과는 상반되기에 더욱 받아들이기 힘들다. 이제 판단을 내려야 한다. 스웨덴 부모님의 농장과 그 주변 인물들을 둘러싼 이야기는 충분히 어머니가 가진 의심과 짐작이 맞는다는 생각이 든다. 헌데 아버지는 어머니의 정신이 이상하니 믿지 말라고 하니...
스토리는 풀어가는 상당부분은 어머니와 다니엘, 그리고 어머니가 적은 글들에 대한 이야기로 불안하고, 불편하며 긴박감을 느끼게 하는 심리묘사에 중점을 둔 작품이다. 다니엘은 진실이 무엇인지 알아내기 위해 끊임없이 반문하고 자신이 느끼는 어머니에 대한 이중적인 감정에 대한 죄송함과 혼란, 결단을 내린 후에는 진실을 알기 위해 직접 스웨덴으로 향한다. 진실을 밝히는 부분은 적은 분량이지만 세상에 이런 인물은 최고형에 처해야 되지 않을까 싶은 이야기로 현실은 전혀 다른 모습이니 안타깝기만 하다.
하정우, 전지현 주연의 영화 '베를린'이 '차일드 44'와 너무나 닮았다는 이야기를 들은 기억이 있다. 그 만큼 화제성을 몰고 올 정도로 '차일드 44'가 강렬하였는데 실제로 영화로 만들어지고 있고 곧 우리나라에도 상영되지 않을까 싶다. 얼음 속의 소녀들은 차일드 44의 후속편을 기다리고 있던 독자들에게 단물 같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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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개의 상처 이야기 이 책에는 여러 개의 이야기가 있다. 옮긴이는 ‘옮긴이의 말’에서 이 속에는 크게 두 개의 이야기가 있다(413쪽)고 했다. 물론 그런 큰 이야기도 중요하지만, 등장 인물마다 모두 이야기를 담고 있으니, 그런 작은 이야기도 중요하다. 아니 어찌 보면 그 이야기들이 더 중요할지 모르겠다. 그런 이야기들이 날줄과 씨줄로 엮어지며 흥미로운 큰 이야기를 만들어내고 있으니 말이다. 1. 절대로 서두르지 말 것! 혹시 이런 책을 읽으면서 결과에 조급해 하지는 않는지? 그런 독자에게는 이런 말을 하고 싶다. 결코 서두르고 말라고. 특히 이 소설은 더더욱 그렇다. 저자의 그 신기한(?) 스토리 텔링 기법에 빠져든 나머지, 독자들은 어서 빨리 그 결과를 알고 싶어할 것이다. 그래서 책의 앞부분에서 아버지로부터 전화가 오고, 어머니가 등장하는 장면, 그리고 어머니로부터 이야기를 듣기 시작하는 그 시점부터 독자들은 애가 탈 것이다. 결과를 알고 싶어서. 과연 진실은 무엇인지? 아버지의 말처럼, 어머니는 정말 미친 것일까 그래서 혹자는 마지막 페이지를 살짝 엿보고 싶은 생각조차 들지 모르겠다. 그러나 그것은 금물이다. 이 책의 묘미는 어머니가 아들 다니엘에게 누차 말하고 있는 것처럼 차분히 순서를 기다리며 읽는 데에 있다.
어서 결론을 듣기 원하며 채근하는 아들의 눈빛을 읽은 어머니는 이렇게 말한다. “앞 뒤 잘라먹고 결론만 내면 억지를 부리는 것처럼 들리지. 그래서 내가 성급하게 결론을 내지 말라고 부탁했던 거야. 내 식대로 이야기를 할 수 있게 해 주렴.”(290쪽) “난 결론부터 시작해서 그 사건을 요약해서 말했지. 자세한 내용도 없고, 전 후 사정도 없이 말이다. 그런 실수를 저지르면서 나도 배운 게 있다. 그래서 너에게는 좀 더 철저하게 말한 거야.”(306쪽) 그래서 결국 아들이 어머니의 이야기를 차분히 듣게 된 것처럼, 독자들도 그렇게 읽어간다면, 책 읽는 재미를 열배 정도는 느낄 수 있을 것이다. 공자 말씀하시기를 ‘삼인행 필유아사’(三人行 必有我師)라 했으니, 여기서 이 책 읽으면서 그러한 것도 배워보자. 차분히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 말이다. 그렇게 하면, 설령 미친(?) 사람에게서라도 우리는 배울 게 있다. 분명히! 2. 상처를 안고 살아가는게 인생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톨스토이의 작품 <안나 카레니나>의 첫 문장이 떠올랐다. <행복한 가정은 서로 닮았지만, 불행한 가정은 모두 저마다의 이유로 불행하다.> 비단, 가정뿐만 아니라 사람에 대해서도 이 말은 맞지 않을까 <행복한 ‘사람’은 서로 닮았지만, 불행한 ‘사람’은 모두 저마다의 이유로 불행하다.> 여기 등장하는 사람들은 모두다 저마다의 이유로 불행한 삶을 살아가고 있다. 저마다의 이유? 바로 그들이 받았던 상처들로 인해서 저마다의 이유를 간직한 채, 서로 서로 상처를 주고받게 되니, 결국은 이 이야기를 끌고 가는 숨은 원인이 바로 상처인 셈이다. 따라서 이 소설의 주제는 사람들은 그렇게 주고받은 상처로 인하여 생긴 상흔(傷痕)들을 가지고 불행한 삶을 살아가는데, 그 상처를 어떻게 하면 치유할 수 있는가 하는 것이다. 3. 상처, 치유해야 제대로 살 수 있다! 그러면 저자는 이 소설속에서 어떻게 그 상처들을 치료하고 있는가 먼저는 만남이다. 어머니와 아들은 만난다. 오랫동안 헤어졌던, 그래서 각자의 삶이 어떻게 이루어지고 있는가 관심 밖에 있어 상황을 전혀 모르고 지내던 모자가 만나는 것으로 상처의 치유는 첫발을 딛게 된다. 그 무지는 아들, 다니엘이 “어떻게 부모님 형편에 대해 이토록 무지할 수 있었을까?”(49쪽)라는 탄식 속에서 고스란히 드러난다. 그 무지에 대한 자각은 이런 깨달음으로 아들을 몰고 간다. <문득 내가 부모님의 재정상황에 대해 하나도 모르고 있다면, 모르는 게 또 뭐가 있을까, 라는 의문이 들었다.>(55쪽) 그렇게 만남으로 해서 각자의 상황을 보게 되고, 듣게 되고 , 그런 가운에 서서히 이해의 길이 열리고 이해의 폭이 넓어져 간다. 그래서 이 소설의 대미는 이렇게 끝이 난다. “어머님이 이야기를 하고 싶어 하십니다.”(411쪽)
재차 병원에 수용되어 가족과 만나기를 거부했던 어머니가 아들을 포함한 가족을 만나는 것으로 이 이야기는 끝이 난다. 그렇게 만남은 치유의 시작이며, 또한 끝맺음인 것이다. 두 번째는 열린 마음으로 상대방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이다. 오랜만에 만난 아들이 자기를 믿지 못하는 것을 알게 된 어머니는 아들에게 당부한다. <내가 하는 모든 말을 열린 마음으로 듣겠다고 약속해라.>( 32쪽) 세 번째는 상처를 그대로 방치하지 않고 직면(直面)하여 싸매주는 것이다. 그 직면은 어떻게 이루어지는가? 약간의 모험이 필요하다. 그냥 앉아서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이 소설에서는 바로 아들이 스웨덴으로 날아가 어머니가 대면했던 그 현실을 되짚어 보는 것이다. 그래서 결국 아들은 어머니가 겪었던 그 아픔의 현장에서 어머니의 상처를 대면(對面)하게 되고, 어머니의 상처가 어디에서 비롯되었는지를 알게 되는 것이다. 만약 이 과정이 없었더라면 결코 어머니의 상처는 회복되지 않고 그대로 묻혀 버렸을 것이다. 4. 오해의 근원 - 투사(投射) 그러면 왜 어머니는 자기에게 다가오는 상황을 그리 오해하며, 특히 미아에 대하여는 사건 아닌 사건을 만들게 되었을까 바로 어머니가 어릴 때에 겪었던 상처, 곧 그런 상황을 겪었던 그 과거가 미아에게 그대로 투사(投射)된 것이다. 저런 모습을 보니, 내 과거가 떠오른다. 저 아이의 저런 모습이 내가 겪었던 그 아픔일거야, 그러니 내가 그 아이를 구원해 주어야 한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결국은 그런 몽상 속으로 빠져 들게 된 것이다. 그것은 이렇게 묘사가 된다. “일련의 사건들을 보는 엄마의 시각에서 위험이 아주 큰 부분을 차지했다는 것이다.”(407쪽) 미아에게 어떤 위험도 없었는데, 과거의 상처로 인한 아픔 때문에 어머니는 미아 역시 그런 위험에 처해 있는 줄로 오해를 하게 된 것이다. 그런 잘못된 투사는 어떻게 해결이 될까 역시 만나서 이야기를 듣고 푸는 것이 가장 합당한 방법이다. 이 책에서 아들은 그 역할을 충실하게 감당하고 있다. 할아버지를 만나고, 미아를 만나고, 결국은 미아에게 투사된 것들이 허상에 근거한 것임을 파헤치게 된다. 아들 다니엘은 미아와 안데르스에게 런던으로 가서 어머니를 만나주기를 요청한다. 이때 미아의 대답은 가슴을 울리는 명대답이다. “틸데 아줌마(어머니)라면 저를 위해 그렇게 했겠죠.”(400쪽) 그렇게 상대방을 배려하고 안아준다면, 그 상처들은 쉽게 아물 것 같다. 미아의 그런 행동으로 결국 어머니는 오랜 고통에서 빠져 나오게 된다. 5. 끝으로 이 소설의 제목에 대하여 한글판 제목은 <얼음 속의 소녀들>이지만 원제는 <The Farm>이다. 따져 보자면, 주인공의 부모가 스웨덴으로 이주하여 정착한 농가쯤 되겠다. 거기에서, 그 곳을 기점으로 하여 벌어지는 사건들, 그 장소를 지칭하는 제목이 원제인 <The Farm>이다. 그런데 왜 한글판 제목은 <얼음 속의 소녀들>일까 그런 제목이 무언가 의미하는 바가 있다 생각했었다. 그러길래 이야기가 진행되는 동안 사건이 벌어지는 농장 근처 호수가 얼어붙은 것을 발견하고, 혹시 그 얼음 속에 행방불명된 미아가 숨져 있는 것은 아닌지? 하는 생각으로 그 시점부터 더 주의 깊게 읽어 보았다. 그러나 그게 아니었다.
결국 내가 내린 결론은 <얼음 속의 소녀>에서 ‘얼음’은 주변에서 냉대받는, 따돌림 받는 것의 은유이고, ‘소녀들’은 소녀 시절의 어머니이며, 또 한명의 소녀는 미아로 파악이 되었다. 그러니 그런 얼음(냉대, 따돌림) 속에서 살아온 어머니의 아픈 과거가 곧 제목으로 형상화 된 것이리라. 그러나, 비단 이 책의 주인공들만 그런 얼음 속에서 살아가고 있는 것은 아니다. 우리 모두 그런 아픔 속에서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그러니 이 책을 읽는 독자는 그런 얼음을 경험한 적이 있는지를 자문해 볼 일이다.
그러나 개개인의 상황 여부를 떠나 이 세상 자체가 얼음으로 꽉 채워져 있지 않은가? 그 얼음 속에서 과연 우리들은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가? 이 소설을 읽고나니 그런 생각이 짙게 여운으로 남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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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나 가장 무서운 건 귀신이나 유령이 아니라 사람이라는 것을’ (옮긴이의 말 중에서)
길을 잃었을 때 아는 얼굴을 만난다면 무조건 그를 믿고 따라갈 것이다. 의심 따윈 필요 없다. 우선은 그곳에서 벗어난 뒤 생각해도 늦지 않다. 불안이 사라진 후에야 그는 왜 그곳에 있었던 것일까 생각한다. 설령 그가 나와 가장 가까운 사이라도 말이다. 톰 롭 스미스 장편소설 『얼음 속의 소녀들』의 시작이 그랬다. 혼돈의 연속이었다.
엄마의 고향인 스웨덴으로 은퇴 이민을 간 부모님이 차례로 전화를 해서 상반된 이야기를 꺼낸다. 아버지는 엄마가 정신병원에 입원했다고 말한다. 스웨덴으로 출발하기 위해 공항에 도착한 다니엘에게 엄마의 전화가 걸려온다. 아버지의 말을 믿지 말라며 곧 영국에 도착할 거라고. 불안한 기색이 역력한 엄마는 다니엘에게 스웨덴에서 범죄가 일어나고 있다고 설명한다. 자신은 절대 미치지 않았으며 아버지도 범죄자들과 한패라고 강력하게 주장한다.
‘사람은 고립됐다는 사실이 의식 속에 스며들기 시작하면 변하게 된다. 처음엔 안 그렇지만 서서히, 단계적으로, 그러다 어느새 그걸 당연하게 받아들이게 돼. 그러고는 하루하루 국가도 없고, 바깥세상에 치이는 일도 없고, 서로에게 각자의 의무를 일깨워주는 존재 없이, 지나가는 낯선 사람들이나 근처에 이웃도 없이, 아무도 우리를 들여다보지 않은 채, 영원히 우리는 보는 눈이 하나도 없는 상태로 살아가는 거지.’ (69쪽)
다니엘이 알고 있던 엄마와는 달랐다. 많이 말랐고 초췌한 모습으로 환자처럼 보이기도 했다. 어쩌면 아버지 말대로 정신병원에 있어야 할지도 몰랐다. 엄마는 자신이 몰랐던 부모님의 경제 상황을 시작으로 스웨덴에서 시작한 농장 생활에 대해 상세히 들려준다. 엄마의 말이 거짓처럼 들리지는 않았다. 자신의 주장을 뒷받침할 증거를 모아 분신처럼 지니고 있었다. 사진 몇 장, 잘라진 종이와 서류, 불에 탄 흔적이 있는 자수 조각을 소중하게 다뤘다. 엄마는 뒤이어 도착한 아버지를 피해 호텔에 도착해서도 여전히 주변을 살핀다. 스웨덴의 작은 마을에서 입양아에 대한 폭행과 폭력이 이뤄지고 있으며 이를 모두 묵과하고 있다는 것이다. 사라진 흑인 소녀 미아를 찾아야 한다고 애원한다. 결국 다니엘이 스웨덴의 농장에서 직접 방문하여 그곳 사람들을 만나고 이야기를 듣고서야 모든 진실이 밝혀진다.
만약 내가 다니엘이라면 엄마의 말을 무조건 믿을 수 있을까. 낯선 환경과 심리적 스트레스 때문에 엄마의 정신이 이상해졌다는 아버지의 말이 진실은 아닐까. 언제부턴가 서로에게 모든 걸 말하지 않고 살아온 부모와 자식 사이에 존재하는 믿음의 크기는 얼마나 될까. 다니엘이 단 한 번도 농장을 방문하지 않은 이유도 다르지 않았다. 여유로운 노년이 아니라 빈털터리가 된 상황에서 어쩔 수 없이 농장을 선택한 부모님과 일이 잘 풀리지 않는 동성애자라는 사실을 밝히지 못해 연락을 미룬 다니엘. 그랬다. 이 소설은 엄마가 말하는 범죄의 사실 여부에 대한 호기심으로 위장된 인간과 인간 사이의 불신이 가져오는 위험한 결과에 대한 이야기라 할 수 있다. 빽빽한 숲과 호수로 이어지는 아름다운 스웨덴의 풍경을 배경으로 그 안에서 펼쳐지는 인간의 불안한 심리 묘사가 압권이다. 신화 속 트롤 괴물에 대한 이야기까지 흥미롭다. 마지막 장을 덮을 때까지 팽팽한 긴장감을 놓을 수 없다. 추리와 심리라는 두 마리 토기를 잡은 소설이라 할 수 있다. 거기다 소설의 첫 상황은 작가가 직접 경험한 일이라니 더욱 놀랍지 않은가. 폭설이 계속되는 이 겨울 차가운 호수를 둘러싼 장엄한 숲으로의 초대에 응하지 않을 독자가 과연 몇이나 될까. 그만큼 겨울과 완벽하게 어울리는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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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일드 44>를 읽진 않았지만 충분했다. <얼음 속의 소녀들>은 한층 더 힘든 질문을 독자들에게 던져댄다. 어린시절, "엄마가 좋아?아빠가 좋아?"라고만 물어도 고개를 갸웃갸웃대던 우리들을 향해, "엄마가 진실일까? 아빠가 진실일까?"를 물으며 선택을 강요한다. 다 자란 성인 아들. 엄마도 아빠도 틀렸다고 믿고 싶지 않은 그 남자의 선택은 과연 어느쪽일까. 심각하게 고민할 수 밖에 없는 주제를 두고 독자에게 함께 묻는 [얼음 속의 소녀들]은 그래서 매우 흥미로운 작품이다.
p69 사람은 고립됐다는 사실이 의식 속에 스며들기 시작하면 변하게 된다
스웨덴으로 귀농하겠다던 어머니로부터 "니 아버지가 끔찍한 범죄를 저질렀다"는 연락을 받은 다니엘. 그는 부모에게 차마 사실대로 털어놓지 못했던 비밀을 감춘 채 가족과 멀리 떨어져 있었는데 비밀이란 바로 그의 연인이 남자라는 거다. 10살 정도 많은 이혼남인 마크의 집에 함께 살면서 곧 커밍아웃의 용기를 내어보리라 다짐하고 있을 무렵 어머니의 다급한 연락을 받았다.
"니 아버지가 나를 정신병원에 집어넣었다."라고.
새로 이주한 농장은 딱 며칠간만 근사했다. 동네 유지인 백인 부부의 흑인 딸을 발견하면서 어머니는 자신의 어린시절과 오버랩해 십대소녀의 불안한 오늘을 지켜보게 되었기 때문이다. 반항기에 있는 딸. 엄격한 남편과 아무소리하지 못하는 부인. 성적학대의 조짐이 있어보이는 소녀의 행동. 그리고 곧이은 실종. 어머니는 그 소녀를 찾기 위해 수소문하기 시작했고 곧 진실에 봉착할 수 있었다. 그녀의 진실 속에서 마을 남자 몇몇은 소녀를 범하고 죽인 용의자들이었고 그 가운데 자신의 남편과 소녀의 아버지가 서 있었다. 그래서 그녀는 도움을 요청했고 그 요청이 묵살당함과 동시에 병원에 갇히게 되었다.
어머니의 이야기를 다 듣고 성인인 아들은 아버지에게 그녀를 인계하고 정신병원에 넣어버린다. 부전자전인가. 아무리 사랑을 쏟아 길러내도 아들은 어머니를 이해하기 한없이 부족한 존재인가. 하지만 곧 그는 무언가 석연히 못한 사실과 마주하게 된다. 그리고 그 진실과 마주하기 위해 어머니아버지가 살던 스웨덴 땅으로 향하는데....
그곳에서 그가 마주한 것은 살아있는 흑인소녀 미아와 그녀의 사건을 조사하며 수면 위로 떠오른 어머니의 참혹했던 어린 시절이었다. 얼음이 녹자, 진실은 떠올랐다. 세상 위로-. 정말 범죄는 있었던 것이다. 그 범죄의 대상과 범위의 방향이 다를 뿐. "여자를 증오한 남자들"에서처럼 연쇄범죄가 아닐 뿐. 범죄는 일어났었고 진실은 감추어져 있었다.
p304 타인에게 욕망의 대상이 되는 것보다 더 위험한 건 없다
어머니의 이 말은 체험에서 온 진심이었다. 그리고 그녀는 이제 자신을 그 누구보다 따뜻하고 다정한 시선으로 감싸안아줄 가족들 곁으로 돌아왔다. 얼음을 제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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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만 봐도 끌리는 책이 있다. 제목으로부터 사람의 마음을 매혹시켜 버리는 책. 거기다 작가가 '차일드44'의 주인공인 톰 롭 스미스라면 더욱 끌릴수 밖에 없다. 더군다나 '옥토버리스트'의 작가인 제프리디버가 '혁신적인 구성과 마음 깊숙이 스며드는 문체'라고 했으니 볼 것도 없이 시작부터 잔뜩 기대감을 줄 수밖에 없다. 하지만 유의해야 할 것은 기대감이 크면 실망감도 크다는 법. 기대했던 것은 아주 스케일 큰 스릴러였으나 실제로 이 소설은 누가 죽거나 실종되거나 무언가 터지거나 하는 일 없이 차분하게 시종 일관 흘러가는 편이다. 실제 생활에서는 절대 그런 일이 없었으면 하고 바라는 바지만 내가 상상할 수 있는 소설 속에서의 사건들은 무언가 스펙타클할수록 신나는 법이다. 그렇다고 해서 이 책이 사건이 전혀 없이 밋밋하지는 않다. 중간중간 이어가는 소소한 문제들과 주인공의 엄마가 생각하는 음모들은 걷잡을 수 없이 큰 이야기를 생각해 낼 수 있다.
이 책은 작가의 어머니의 증상으로부터 시작되었다. 스웨덴에 있던 아버지께로부터 어느날 전화를 받는다. 엄마가 미쳐서 정신병원에 입원을 시켰다는 것이다. 실제로 자신이 겪은 이야기를 그대로 이 책의 첫부분에 실어 놓는 강수를 행한다. 어느 누가 실제로 그런 일을 당해 보았겠는가. 역시 작가의 삶이란 파란만장한 것일까. 엄마가 무슨 음모론같은 것을 말하며 말도 되지 않는 소리를 해서 정신병원에 입원을 시켰다고 말하는 아버지. 그 소식은 들은 아들 다니엘. 영국에서 동성애인과 함께 살고 있는 그는 그 소식을 듣자마자 엄마를 만나기 위해 비행기표를 끊는다. 공항으로 도착해서 막 떠나려는 그에게 걸려온 한 통의 전화. 엄마였다. 엄마는 자신이 병원을 나왔다고 말하며 지금 스웨덴에서 영국으로 온다고 한다.
엄마가 미쳤다는 아버지와 아버지가 사건의 중심인물이라고 말하는 엄마. 그 어느 쪽을 믿어야 할지 하나뿐인 아들 다니엘은 혼란스럽기만 하다. 막상 이런 일이 나에게 닥친다면 나는 어느쪽을 믿어야 하나. 약간의 결정장애를 가지고 살아가는 현대인 중에 하나인 나는 내 옷을 고를 때도 선택을 잘못하는 편인데 이런 때는 정말 막막할 것 같다. 그런 결정은 다행히도 나에게는 있는 동생에게 미루기로 한다. 일단 엄마를 만난 대니얼은 엄마와 함께 아파트로 돌아간다. 엄마는 자신이 영국을 떠나서 스웨덴에 정착하게 된 이후의 이야기를 하면서 생각도 못 할 일이 벌어졌다고 말을 하고 있다.
자신의 이웃의 집에 입양된 딸이 실종되었고 그 딸은 살인을 당한 것이라 믿고 있는 엄마. 그리고 그 딸을 죽인 사람들의 용의자에 아빠도 포함되어 있다는 것이다. 물론 그 딸의 양아버지도 같이. 그 모든 일들을 시간 순으로 차례대로 증거를 내밀면서 이야기하는 엄마. 그걸 다 들어주는 다니엘의 인내심에 박수를 보내고 싶다. 이런 종류의 이야기를 만나게 되면 자꾸 감정이입이 된다. 나라면 어떠했을까. 내가 다니엘이라면 나는 저 모든 이야기를 들어줄 수 있었을까. 아니면 성질 급한 한국 사람답게 결론만 얘기하라고 엄마를 다그쳤을까. 아무리 생각해도 모를 일이다.
이야기는 딱 두 가지로 나누어진다. 엄마가 이때까지 있었던 모든 일들을 얘기하는 부분과 그 이후에 다니엘이 스웨덴으로 가서 엄마가 말한 모든 것을 확인하는 부분. 스웨덴의 눈이 시리도록 아름다운 풍경과 차가운 겨울 날씨는 지금의 한국 날씨와 맞물려 4D로 입체 영화를 보는 느낌을 주기도 한다. 앞의 엄마의 이야기에 진득하게 참고 기다린 보람을 아름다운 풍경으로 보상받는 느낌이라고나 할까. 다니엘이 나서서 모든 문제를 확인하고 풀어나가는 것은 보너스. 누구의 말이 사실인지는 읽어봐야지만 확인할 수 있는 법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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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일로 44를 읽고 나서 그의 필력과 상상력에 자극이 되어 그 다음 신작을 고대하던 중에 이제야 톰 롭 스미스의 신작을 만날 수 있게 되어 너무나 기대가 컸답니다. 차일드44의 소비에트 연방의 차가운 겨울이 아직도 기억에 생생한데 이번에는 스웨덴의 자작나무 숲이 꽤 중요한 배경으로 등장하는 모양입니다. 그의 작품을 기다려온 저를 포함한 독자들에겐 큰 선물이 되어줄 것 같습니다. 게다가, 작가가 실제로 겪었다고 하는 일이라고는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충격적인 일을 실제로 겪었다는 것이 정말 놀라운데, 거기다 이것을 토대로 소설을 써 냈다고 하는 것이 더 놀랍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충격적이고 흥미로운 도입부의 소설이라면 끝까지 재미있게 읽을 수 있을 것 같아 너무나 기대가 되었습니다. 표지와 제목이 주는 차가운 느낌은 미스터리적 흥미를 더 끌어올리는데 과연 어머니와 아버지의 말 중 누구의 말이 진실일지, 또 속이는 다른 한 쪽의 이유는 무엇일지 정말 궁금합니다. 어쩌면 단순히 한 사람의 거짓말이 아닌 더 깊은 음모가 숨어 있을 것 같다는 느낌도 드는데 이렇게 궁금중을 마구 주는 소설책 <얼음 속의 소녀들>을 읽기 시작했습니다.
오래 전에 스웨덴의 남쪽 끝에 있는 외딴 농가로 은퇴 이민을 간 부모님에게서 무소식이 희속이라 생각하며 간혹 이메일로 연락을 하며 지내고 있던 다니엘에게 8p 상에 있는 "엄마가 망상에 빠졌다. 그것도 아주 끔직한 망상에"라는 아빠의 전화를 받게 됩니다. 그 깔끔하고 고상했던 엄마가 불안증세를 보이면서 "증거가 어떠니~ 수상한 점들이 어떠니~" 하며 이상한 이야기를 해서 결국 정신병원에 입원을 했다는 아버지의 다급한 전화를 받은 다니엘은 충격을 받고 당장 스웨덴으로 가기 위해 공항으로 달려가지만 또 다른 아빠의 전화 온 이번에 엄마가 병원에서 퇴원해 다니엘에게 가고 있을테니 엄마를 붙잡아 두라면서 다급하게 이야기를 합니다. 그런데 이게 왠일인지, 곧바로 엄마에게 전화가 왔는데, p23에 있는 "다니엘 내 말 잘 들어. 네 아버지가 분명 너에게 전화했겠지. 그 인간 말은 다 거짓말이야. 난 미치지 않았다. 내게 필요한 건 의사가 아니라 경찰이야."라면서 아빠가 무서운 범죄에 연루되어 공모자들과 함께 진실을 밝히려는 자신을 병원에 몰아 넣으려한다는 말에 다니엘은 혼란스럽게 되고 미궁에 빠져버려 갈피를 못잡게 됩니다. 누구의 말이 진실일까로 많은 고민을 하게 됩니다. 이렇게 다니앨은 부모님께 가게되고, 몇 개월만에 만난 엄마는 살이 빠지고 초췌해져 많이 변해버렸습니다. 집으로 가서 엄마가 꺼내놓는 가방속에 든 증거들 하나하나 순서대로 보면서 그동안 아들에게도 말하지 못했던 이민을 가게 된 배경과 이민 첫 날부터 그들 부부에게 일어났던 모든 일들과 그 지역 유지에게 입양된 아름다운 흑인소녀 미아의 실종에 이르기까지 시간 순서대로 차근차근 이야기를 듣게 됩니다. 객관적으로 엄마의 이야기들을 듣고자 최대한 열린 마음으로 엄마가 하는 말들에 경청을 하면서 듣는 다이엘이었습니다. 엄마의 이야기가 진실이 아니라는 어떤 헛 점이나 증거도 없지만, 또 사실로 증명하기에는 증거가 너무나 부족했습니다. 이 모든 것이 엄마의 망상으로 이해하고 놈어가기에는 엄마의 말이 너무나도 진실적이게 느껴졌고, 망상에 빠져있다는 결정적인 증거도 없었습니다. 스웨덴 시골 마을의 지역 정부들과 단체들, 정치가들과 경찰들, 정신병원 의사들까지 모두 공모자로 범죄와 관련된 이 이야기가 너무나 끔찍하게 느껴집니다. 심지어 자신의 아버지도 그 속에 공모되어 있는 이 이야기를 믿어야 할지 너무나 혼란 스럽기만 합니다. 흑인 미아의 실종은 빙산의 일각이고 어디까지 연루되어 있을지 흥미진진한 초반부의 이야기부터 시종일관 스릴러 특유의 긴장감을 유지하면서 스토리가 전개됩니다. 책의 대부분의 이야기는 엄마가 풀어놓은 스웨덴 농가에서 겪게 되었던 그 동안의 일과 또 그녀의 어린시절 과거의 15살 그 여름에 대한 진실이야기 입니다. 마지막 p80에서 다니엘은 엄마와 아빠 사이에 어떤 결론을 내리게 되는데, 저는 그 선택이 참 가슴 아팠습니다. 그러다 다니엘은 마침내 스웨덴의 그 농가로 뭔가 엄마를 이해할 증거를 찾아 떠나게 되고, 마지막 얼마 안남은 분량에 있어서 독자들에게 충격과 경악으로 몰고가는데 이것이 바로 스릴러의 묘미라고 느끼며 한껏 손바닥에 오래간만에 땀을 적셔거면서 흥분하게 만들 이야기들이 숨어 있는데, 모처럼 느끼는 충격과 반전이었습니다. 정말로 칭찬을 아끼지 않을 수 없게 만든 작가의 기상천외한 발상에 이런 마무리가 참 좋게 느껴집니다. 트롤 신화에 숨어있던 엄마의 사연이 참 가슴아프고 언제나 인간이 가장 잔인하고 무섭다는 생각이 들게 하는것 같습니다. 초반 이야기를 이끌어가던 아빠의 전화, 엄마의 전화와 만남은 작가의 실화이야기라니 너무나 사실적이라기에는 좀 섬뜩하기만 합니다. 여기까지가 작가의 실화로 나머지 이야기는 작가의 상상력으로 이 후 스릴러 소설다운 스토리를 완성했는데 참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면서 아주 재미있게 책을 잡자마자 놓지 않고 빠져서 읽었습니다. 제목이 상당히 호기심을 자극해서 미스터리 추리소설을 좋아하는 나로썬 도저히 아니 읽어볼수 없게 만들었던 <얼음 속의 소녀들>! 하지만 이 제목과는 전혀 관계가 없는 내용이었을 때는 이 책 제목에 낚였다는 기분이 들기는 했지만, 전혀 기분 나쁘지 않았습니다. 기대한 것보다도 훨씬 더 재미있게 충격과 경악으로 그리고 다행스러움과 안도감 이라는 마음으로 책장을 덮을 수 있어서 너무나 감명깊게 끝까지 다 읽었답니다. 그리고 다시 한번 왜 이 작가를 천재 작가라고 불리는지 그 이유를 알았답니다. 꼭 스릴러 소설의 진수를 맛보시길 기도하면서 다음 톰 롭 스미스의 신작이 벌써 기대가 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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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주인공 다니엘은 여느 날과 다를 바 없는 날을 보내고 있었다. 런던의 삶을 정리하고 스웨덴에 있는 작은 시골 농장으로 이주한 아버지로부터 전화가 오기 전까지 말이다. 갑자기 걸려온 전화 속 아버지의 목소리는 심상치 않았다. 어머니가 망상에 빠져 제정신이 아니라는 아버지의 말은 다니엘에게 큰 충격을 주었다. 아버지와 전화를 끊자 바로 어머니의 전화가 걸려온다. 자신은 미치지 않았고 아버지가 죄를 감추기 위해 꾸민 음모라며 그를 범죄자라고 주장했다. 상반된 주장. 그는 혼란스러웠다. 아버지 말을 믿으면 엄마는 제정신이 아닌 사람이 되고, 어머니를 믿으면 아버지가 범죄자가 된다. 다니엘은 누구의 말을 믿어야 할지 선택을 해야 하는 상황에 서 있게 되었다. 이 소설보다 더 소설 같은 이야기는 저자 톰 롭 스미스가 실제로 겪은 이야기라고 한다. 과연 우리는 가족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을까.
다니엘을 찾아온 어머니의 모습은 그가 알던 그녀의 모습과는 확실히 달랐다. 어머니의 행동은 분명 정상적인 범주에서 벗어나는 모습이었다. 하지만 침착하게 어머니의 이야기를 듣던 그는 조금씩 그녀의 이야기에 믿음이 생겼다. 시간이 흘러 아버지의 도착할 때쯤 두 사람은 다니엘의 연인 마크의 도움을 받아 택시를 타고 아버지가 도착하기를 기다렸다. 그리고 잠시 후 아버지와 함께 의문의 사내가 자신의 아파트로 찾아오는 것을 목격하는데….
저자의 경험을 바탕으로 쓴 작품이라서 그럴까? 주인공 다니엘의 심리 묘사는 내가 마치 다니엘이 된 듯한 기분을 맛보게 했다. 뿐만 아니라 쫓기고 있는 상황이 너무 긴박해 읽는 내내 초조하게 만들었다. 덕분에 다니엘 어머니의 진술로 전개되는 전반부를 그녀의 망상일까? 아니면 사실일까? 저울질해가며 흥미롭게 읽어나갈 수 있었다. 독서 끈이 1~2년밖에 안 되는 내게 톰 롭 스미스의 작품은 이번이 처음이다. 그런 나도 그의 작품인 <차일드 44>는 입소문을 통해 익히 들어 알고 있을 정도였다. 그래서인지 톰 롭 스미스의 <얼음 속의 소녀들>에 대한 기대가 클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책의 마지막 페이지를 넘기는 순간까지 차분하게 만족해하며 한 호흡에 읽을 수 있었고, 그의 작품 <차일드 44> 꼭 읽어봐야겠다고 생각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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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실과 거짓, 그 종이 한 장 차이 만약 멀리 떨어져 살던 부모님으로부터 서로를 믿지 말고 자신의 말을 믿으라는 전화를 받는다면 자식으로서 어떤 결정을 내려야 할 지 고민해 본 사람들은 드물 것이라고 생각한다. [차일드 44]라는 걸출한 데뷔작으로 장르 문학계에 신성으로 단박에 떠오른 영국 작가 톰 롭 스미스의 신간 [얼음 속의 소녀들]은 바로 이 질문을 독자들에게 던지며 사건의 문을 열고 있다. 어제와 다를 바 없는 오늘을 보내고 있던 주인공 다니엘에게 얼마 전 스웨덴으로 이주한 아버지로부터 전화가 걸려 온다. 좀처럼 국제 전화를 하지 않던 주인공의 아버지는 흐느끼며 어머니의 상태가 매우 안 좋다는 이야기를 전한다. 놀란 다니엘은 그 길로 공항으로 차를 몰았지만 그 순간, 아버지로부터 어머니가 정신병원에 입원해 있다 스스로 퇴원을 하고 사라졌다는 전화를 받게 된다. 그리고 어머니가 스웨덴에서 영국으로 오는 비행기 티켓을 샀다는 이야기를 듣고 아들과 엄마는 그렇게 몇 달 만에 공항에서 조우를 하게 된다. 하지만 진짜 이야기는 다니엘의 어머니인 틸데는 다니엘의 아파트에서 지난 5개월 간 스웨덴의 한 외딴 농장에서 일어난 일을 이야기해주며 시작되었다. 종묘상을 오랫동안 해오던 다니엘의 부모님은 사업이 기울어 가자 새로운 삶을 위해 스웨덴의 농장을 사서 이주를 하게 된다. 하지만 그곳에서 다니엘의 어머니는 수상한 이웃들을 하나 둘 씩 접하게 되고 급기야 이 곳에서 끔찍한 일이 일어나고 있음을 직감하게 된다. 처음에는 아버지나 어머니 그 누구의 말도 믿을 수 없었던 다니엘은 어머니가 자신에게 내놓는 증거품들을 보며 이야기를 진지하게 들으려고 한다. 그리고 마침내 영국의 한 병원에 어머니를 입원시키고 난 다니엘은 스스로 사건의 진상을 밝히기 위해 부모님이 이주한 그 농장으로 떠나게 된다.
5개월 전 타국으로 이주한 부모님에게 엄청난 일이 일어났다는 소식을 듣게 되는 이 작품의 도입부는 최근에 나온 스릴러 작품 중에서 가장 긴장도가 높았다고 말해주고 싶다. 한 눈에 봐도 껄끄러운 작품 속 부모와 자식 관계가 간접적으로 느껴져서 그런지 몰라도 다니엘과 틸데의 반복되는 대화 장면은 긴장감을 높이는데 큰 몫을 한다. 흩어진 퍼즐 조각들이 틸테의 회상으로 다시 모여지는 이 작품의 전개 구도는 독자들이 주인공 다니엘처럼 과연 누구의 말을 믿어야 할 지 고민하게 만든다. 실제로 이 작품의 거의 결말 직전까지 어머니의 진술이 조작된 것인지 아니면 단순한 망상인지 그것도 아니면 실제로 일어난 엽기적인 사건의 목격 증언인지가 감이 오지 않았다. 그리고 마침내 작품의 결말 부분에서 드러나는 진실은 과연 톰 롭 스미스의 스릴러라는 감탄이 저절로 흘러 나왔다. 스웨덴 출신의 어머니가 정신병을 잠시 앓았던 이 작가의 개인적인 경험이 도입부의 배경이 되었다고 하니, 자신에게 실제로 일어난 사건을 한 편의 훌륭한 서스펜스 스릴러로 탄생시켰다는 점이 매우 놀라웠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사랑하는 주변 사람들의 엇갈린 이야기를 들을 때가 많다. 그 사람들의 상반된 이야기는 '나'에게 있어서 선택을 하게 만드는 무언의 압박으로 다가오고, 그것이 새로운 관계의 변화를 불러 오기도 한다. 만약 다니엘이 이 작품에서 보여준 것과 다른 선택을 하였다면 이 작품의 결말을 사뭇 달라졌을 것이라고 여겨진다. 그만큼 우리의 인생이란 선택의 갈림길이고, 그 선택에 의해서 얻어진 결과에 대해서 온전히 책임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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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음 속의 소녀들 톰 롭 스미스 지음 노블마인
톰 롭 스미스의 장편소설이다. 도쿄여행길에 들고 떠난 것이 실수였다. 2시간이라는 짧은 비행 시간 중에도 기내식 틈틈이 읽어볼까? 했는데, 몇 장 읽지도 못했을 뿐더러 집중이 안된 탓에 초반의 상황 파악에 실패한 것 같다. 거의 마지막에 이르기까지 책의 제목조차 이해하지 못했다. 얼음 속의 소녀들이 누구인지 파악하게 되는 순간 책은 끝나버렸다. 차라리 동영상을 미리 보고 책을 읽었으면 보다 쉽게 이해할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iframe width="560" height="315" src="//www.youtube.com/embed/tW5cIOEzAmM" frameborder="0" allowfullscreen></iframe> http://www.youtube.com/watch?feature=player_detailpage&v=tW5cIOEzAmM '차일드 44 3부작'에서 벗어나 발표한 첫 작품으로, 자신의 어머니가 망상에 빠져 정신병원에 입원했다는 아버지의 전화를 받은 작가는, 자신의 체험에서 발상을 얻어서 그때의 혼란과 불안을 바탕으로 밀도 높은 심리 스릴러를 구상해냈다고 한다. 이렇게 탄생한 이 장편소설은 출간 즉시 영화화가 결정되었으며, 톰 롭 스미스는 이 작품으로 장르를 뛰어넘어 작가로서의 새로운 가능성을 입증해 보였다는 호평을 받았다고 한다.
2008년에 발표한 첫 장편소설 2014.12.24.(수) 지쳐버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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