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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댈러웨이 부인은 꽃은 자기가 사 오겠다고 말했다.” 내가 문학 작품을 고르는 하나의 기준 중 하나는 첫 문장이다. 댈러웨이 부인의 첫 문장도 영문학 사상 가장 유명한 문장 중 하나로 꼽힌다. 사실 첫 문장으로 유명한 작품인줄은 특별히 알지 못하고 들추어 봤지만, 감이 왔다. 댈러웨이 부인 100주년을 기념해 각종 출판사에서 번역본을 쏟아내고 있는 지금, 첫 문장 번역을 가장 자연스러우면서 임팩트 있게 번역한 판을 골라내고 싶었다. 그렇게 미리보기를 들추어가며 골라낸 책이 바로 이 을유문화사판 댈러웨이 부인이다. 특히나 의식의 흐름이나, 모더니즘 서술 기법으로 읽기가 난해하다는 소문을 접했던 터라 기왕이면 번역이 내게 잘 맞았으면 하는 생각도 있었다. 그렇게 고심해서 고른 덕분인지, 과연 읽는 내내 문장이 거슬린다는 느낌이 없었다. 댈러웨이 부인이 파티를 준비하며 외출하는 동안의 경쾌함, 발랄함이 자연스럽게 느껴지는 즐거운 독서를 할 수 있었다. 그냥 의식이 흐른다면 사실 몽환적인 문체도 즐겨 읽는 나로서는 익숙한 영역이기도 했다. 그럼에도 댈러웨이 부인이 어렵게 느껴진 이유라면 따옴표도 없이 생각과 말, 행동이 빡빡하게 어우러져 있다는 점, 두 주인공이라고 할 수 있는 댈러웨이와 셉티머스의 시점이 예고도 없이 마구 오고간다는 점이다. 1923년의 어느 날, 정치가의 아내로서 파티를 준비하는 댈러웨이와 1차 세계대전의 후유증으로 ptsd를 앓고 있는 셉티머스의 시점이 교차하는 것은 생뚱맞게 느껴지기도 했다. 왜 두 사람은 연결되어 있는걸까? 그런 의문을 중심에 두고 읽어나갔더니 혼잡하게 느껴질 수 있는 문장의 파도 속에서 끝을 볼 각오를 세워볼 수 있었다. 기법이나 사조에 의미를 두고 울프를 도식적으로 공부하고 넘어갈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버지니아 울프 소설의 진가는 작품 전체를 경험하는 것에서 의미를 찾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울프가 이 소설을 쓰면서 남겼다는 말도 비슷한 취지다. 기법 보다는 작품이 전체적으로 독자의 마음에 남기는 효과에 주목해보라는 것. 100주년에 때맞춰 나온 좋은 번역본으로 댈러웨이 부인을 읽어보는 분들이 많아졌으면 좋겠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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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후기입니다. 제1차 세계 대전이 끝난 지 약 4년이 지난 1923년 6월의 어느 날, 파티를 준비하기 위해 꽃을 사러 나가는 여성 ‘댈러웨이 부인’의 모습으로 이 책은 시작한다. 그녀의 발걸음을 따라 ‘의식의 흐름대로’ 진행되는 이 이야기는, 빅 벤의 종소리를 기점으로 수시로 화자가 바뀌며 수많은 사람들의 과거와 현재를 되짚는다. 각 인물이 가진 내면의 갈등과 존재의 의미에 대한 고민이 이어진다. 일반적인 소설처럼 특정 인물의 시점으로만 전개되지 않고, 어떤 부분에서는 주인공의 독백을 통해 인물의 내면을 직접 체험하는 듯한 몰입감을 주다가도 순식간에 제3자의 시선으로 거리를 두고 바라보는 듯한 느낌을 준다. 수시로 변하는 시점은 때로는 멀미가 느껴지는 듯한 혼란을 주기도 했다. 거기에 중심 인물뿐 아니라 핵심적이지 않은 주변 인물들의 내면까지 풀어내는 서술 방식은 신선하면서도 꽤 어렵게 느껴졌다. 주인공 클라리사는 결혼을 하며 자신의 이름을 잃고 ‘댈러웨이 부인’으로서 매일을 살아간다. 파티를 준비하는 고상하고 여유로운 모습 속에서 겉으로는 사회적 역할에 충실하고 완벽한 삶을 살아가는 듯 보이지만, 이는 사회적인 가면일 뿐, 그 안에서는 과거의 선택과 잃어버린 사랑, 그리고 현재의 공허감 속에서 고독과 존재의 불안을 끊임없이 느낀다. 죽음에 대한 두려움과 동시에 삶의 아름다움을 붙잡으려는 욕망을 가진 클라리사가 여는 파티는 사회와 연결되려는 시도이자 삶을 긍정하려는 의식적인 행위로 비친다. 파티를 준비하고 오래전의 연인을 마주하며 그녀는 짧은 하루라는 시간 속에서 과거의 기억과 현재의 순간을 수없이 오가며 시간의 상대성과 인간 존재의 덧없음을 깨닫게 된다. 극의 또 다른 주인공으로, 댈러웨이 부인과 정반대의 캐릭터인 전쟁을 겪은 뒤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를 앓는 셉티머스가 등장한다. 남성다움을 강요하는 사회 분위기에 떠밀려 전쟁에 참전했지만, 그 이후 환각과 환청, 불면에 시달리는 후유증을 앓게 되고 부적응자로 분류되어 사회와의 격리를 앞둔 그는 불합리한 세상 속에서 죽음을 선택한다. 상반된 두 주인공의 모습을 통해 버지니아 울프는 사회가 요구하는 삶을 살아가는 것이 진실한가, 아니면 내면의 진실을 지키기 위해 죽음을 선택하는 것이 진실한가라는 묵직한 질문을 던진다. 삶과 죽음, 사회와 자아, 외면과 내면이라는 이중 구조 속에서 서로를 비추는 거울처럼 존재하는 클라리사와 셉티머스를 통해 서로 다른 인생을 살아가는 두 인물이 같은 질문 앞에서 잠시 마주치며 소통하고 공감하는 순간을 만날 수 있었다. 개인적인 욕망과 사회적 기대 사이에서 끊임없이 흔들리던 클라리사는 파티에서 셉티머스의 자살 소식을 들은 뒤 그 죽음을 통해 삶의 본질을 되묻게 된다. 그녀는 그의 죽음을 단순한 비극이 아닌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게 하는 거울로 삼아 삶의 방향을 다시 정립하려는 의지를 보인다. 사회적 역할에 순응하면서도 내면의 공허함과 자아의 갈망을 느끼는 이 여성의 복합적인 정체성은 시대를 넘어 현대의 우리에게도 나는 누구이며,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라는 존재론적 탐색을 제안한다. 단 하루의 이야기 속에 삶과 죽음, 사회와 자아, 시간과 기억이라는 거대한 주제를 담아내며 존재에 대한 깊은 질문과 사람이 갖는 감정의 복잡성을 마주할 수 있었다는 점에서도 무척 특별한 경험이었다. 긴 시간이 지나 새로운 시대를 맞이했지만, 여성에 국한되지 않더라도 우리 모두는 여전히 댈러웨이 부인처럼 사회적 역할에 충실하면서도 내면에서는 다른 삶을 꿈꾸곤 한다. 사회가 요구하는 여성상에 맞춰 자신을 조율하면서도 내면은 자유와 진정성에 대한 갈망으로 가득 찬, 단순히 설명할 수 없는 복잡한 감정선을 가진 그녀를 따라가며 어려움을 느꼈듯, 타인과 그 내면을 이해한다는 것에는 얼마나 많은 상상과 공감의 노력이 필요한가 새삼 깨달을 수 있는 시간이기도 했다. 사회가 규정한 정상과 비정상의 경계 속 부적응자로 분류된 셉티머스에게 ‘자신과 닮았다’는 공감을 느끼고, 그가 죽음을 통해 표현한 순수함과 저항에 감동하며 그 죽음마저 저항과 소통의 시도로 여기며 포용하는 클라리사의 삶을 바라보는 태도는 작가가 꿈꾸는 어떤 이상향이랄까, 삶과 죽음에 대한 사유를 엿볼 수 있게 했다. 억압된 사회의 이름으로만 살았던 그녀가 셉티머스의 죽음을 통해 같지만 다른 모습으로 한걸음 내디디는 모습은 커다란 변화이자 울림 있는 행동으로 느껴지게 되리라 생각한다. 다른 시대 속에서 살고 있지만, 두 인물의 삶을 교차로 들여다보며 자꾸만 지금의 내 삶을 되돌아보게 만드는 계기가 되었다. 응접실로 나온 그녀가 앞으로 어떤 삶을 살지, 자신을 위해 어떤 선택을 하게 될지 극에 드러나지 않는 결말이 더 궁금해지는 작품이었다. 각 인물들의 내면을 관통하며 독자에게 자신의 삶과 시간의 관계를 되돌아보게 하는 《댈러웨이 부인》은 여전히 불합리한 세상, 매일을 살고 있는 우리들에게 존재의 유한함과 삶의 무상함을 환기하며 각기 다른 자극점이 되어주리라 생각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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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당 리뷰는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책을 읽기 전에 항상 책 뒷면을 먼저 살펴보곤 한다. 책을 읽을 때 도움이 되는 경우가 종종 있기 때문인데, <댈러웨이 부인>의 경우에는 가장 눈에 띄는 단어가 "의식의 흐름 기법"이었다. 문학 시간에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을 읽은 이후로는 단 한 번도 읽어본 적이 없었다. 당시에는 재미있게 읽었던 기억이 있었으므로 기대하며 책을 읽기 시작했다. 전체적인 책의 줄거리를 요약하자면 1923년 6월의 어느 날, 댈러웨이 부인이 주최하는 파티가 열리는 하루 동안에 벌어지는 일이다. 간단하게 요약하긴 했으나 정말 큰 줄기는 이것이 전부다. 댈러웨이 부인이 파티를 위해 꽃을 사러 나가면서 책이 시작되는데, "의식의 흐름 기법"답게 클라리사 댈러웨이 부인이 꽃을 사러 나가면서 하는 생각들과 함께 수많은 인물이 나온다. 그리고 그 인물들로 시점이 바뀌기도 하고, 과거의 이야기가 나오는 등 다소 정신없다고 생각될 정도다. 시점이 명확하지 않고, 인물이 자주 바뀌어서 한 서술자로 일관된 서술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재미를 느끼기 어려울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의식의 흐름 기법"을 좋아했다고 생각했었는데, 그게 아닌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하게 될 정도였다. 하지만 이런 기법은 책의 중반부를 넘어가기 시작하면서 큰 매력으로 다가온다. 서술자는 크게 두 분류로 나눌 수 있다. 이 소설의 제목이기도 한 "클라리사 댈러웨이 부인"과 그 지인들이 첫 번째 부류다. 클라리사의 지인, 남편, 남편의 지인 등 클라리사와 연관이 되어있는 사람들로 이들은 몇 다리만 건너면 모두 클라리사와 연관되어 있다. 그러다 보니 읽다 보면 이 사람이 누구더라 하는 생각이 들 때 조금만 더 참고 읽다 보면 이전 서술에서 언급된 사람과 함께 있다는 걸 알 수 있다. 그러나 이 부류에 전혀 속하지 않는 서술자가 나오는데 그게 바로 두 번째 부류인 "셉티머스 워런 스미스"와 그의 아내 루크레치아다. 책의 초입부터 나오는 데다가 읽다 보면 전혀 클라리사와 관련이 없어 보여 그의 이야기만 붕 떠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전쟁에 참전한 뒤 친구를 읽고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를 앓는 그는 정신과 진료를 받고 있다. 이 두 부류가 서술자가 바뀌어가며 나오는데 읽다 보면 이 두 부류가 왜 한 책에 같은 이야기로 담기게 되는지 의문스럽다. 그러나 그 의문은 책의 마지막 부분, 파티가 시작되는 부분에 다다르면 해소된다. "클라리사"가 주최하는 파티에 초대되는 부부가 놀랍게도 "셉티머스"를 진료하던 의사였고, 그가 결국에는 비극적인 결말을 맞았다는 사실을 클라리사가 전해 듣게 되면서 두 인물이 등장하는 이유를 알 수 있게 된다. "클라리사"는 그의 결말을 듣고는 그와 자신이 비슷한 사람이라는 것을 직감적으로 깨닫는다. 놀랍게도 두 사람은 만난 적이 단 한 번도 없음에도 불구하고 클라리사는 직감적으로 깨닫는다. 셉티머스의 독백이나 클라리사의 대사를 통해 간접적으로 독자만이 알 수 있는 두 사람의 닮은 점을 클라리사가 직감적으로 깨닫고 그를 이해하는 장면에서 이어지는, 파티로 다시 돌아가는 클라리사를 보여주며 삶으로 나아가는 긍정적인 결말을 보여준다. 책을 읽으며 가장 감명 깊었던 부분은 책의 마지막 부분으로, 파티장으로 돌아가는 클라리사의 모습을 보여주는 부분이다. 클라리사가 다시 파티로 되돌아갔다,처럼 평범한 서술이 아니라 클라리사를 짝사랑했던 피터의 시점으로 보여주는 서술로, 방랑하고 후회하는 삶을 사는 피터가 다시금 삶을 살아갈 것이라고 보여주는 듯한 희망찬 서술로 느껴진다. 해설에서 버지니아 울프는 이 책을 읽을 때 어떠한 해석을 강요하고 싶지 않다고 했다고 한다. 감정적인 부분을 받아들여주었으면 좋겠다고 했다는데, 나 또한 이 책은 감정적인 흐름을 강조해서 읽어야 가장 재미있게 읽을 수 있을 것 같다. 이 책에는 수많은 인물들이 나오고 그 인물들은 모두 제각기 다른 삶을 살고 있다. 짝사랑에 실패하기도 했고, 자신의 의견을 당당히 피력하는 사람으로 살기도 하고, 이제는 옛 모습과는 다르게 살아가기도 하고, 사람들의 이기적인 모습에 실망하기도 하고, 심지어는 세상 모든 것으로부터 도망치기는 사람도 나온다. 그렇지만 이 책은 그 모든 사람들이 이해갈 수 있게 각각의 시선으로 서술해 준다. 도대체 왜 저러는 걸까 싶은 사람도 그의 서술을 읽다 보면 이런 사람이기 때문에 그렇구나, 하고 이해할 수 있게 해준다. 끝내 비극적인 결말을 맞이한 사람에게도 클라리사만은 이해해 준다. 사람에 대한 따뜻한 시선이 느껴진다. 읽기 난해한 부분이 있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따스한 시선을 느낄 수 있으니 일독을 권하고 싶다. 그리고 만약 읽어보기로 했다면 마지막 해설까지 읽는 것을 추천한다. 미처 알지 못했던 시대 상황까지 알 수 있어서 책을 다 읽고 부족했던 부분을 채워주기 때문에 더욱 깊은 이해가 가능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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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낙 오래된 책이라 그런지 솔직히 처음 책을 펼쳤을 땐 조금 낯설었어요. 문장이 흐르듯 이어지다 보니 집중이 필요했죠. 하지만 역시나 사랑받는 문학전집은 이유가 있죠. 어느 순간, 런던 거리를 거니는 사람들의 발걸음과 종소리가 제 일상과 겹쳐지면서 “아, 이게 삶을 사랑한다는 거구나” 싶더라고요. 목차 중 특히 해설 - 삶을 위한 사투 부분이 인상 깊었어요. 단순히 소설을 정리하는 게 아니라, 오늘 우리가 왜 댈러웨이 부인을 읽어야 하는지 콕 집어줍니다. 억압된 이름으로 살아가는 클라리사의 모습이 우리의 과거 경험과 닮아 있어서 더 와닿았던것 같아요. #댈러웨이부인 #버지니아울프 #을유문화사 #을유세계문학전집 #세계문학 #고전문학 #모더니즘문학 #영미문학 #페미니즘문학 #의식의흐름 #클라리사댈러웨이 #책추천 #독서기록 #문학서평 #책블로그 #서평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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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지니아 울프(1882~1941)는 영국 모더니즘을 대표하는 작가로, “댈러웨이 부인” “등대로” “올란도” “자기만의 방” 등을 통해 인간 내면을 세밀하게 묘사하고 ‘의식의 흐름’ 기법을 발전시켰다. 그녀의 실험적인 서술 방식은 제임스 조이스, 윌리엄 포크너 같은 동시대 작가들과 함께 현대 소설의 형식을 새롭게 정의했으며, 특히 여성의 글쓰기와 독립적인 지적 공간을 강조한 “자기만의 방”은 이후 페미니스트 작가들과 비평가들에게 큰 영감을 주었다. 한편 일기와 글에서 드러난 인종·계급적 시선으로 비판도 받았지만, 여전히 울프는 현대 문학의 흐름을 바꾼 인물로 평가된다. “댈러웨이 부인”은 런던 상류 사회의 여성 클라리사 댈러웨이가 파티를 준비하는 하루 동안의 이야기를 따라가며, 그녀의 기억과 현재의 경험이 교차하는 방식으로 전개된다. 소설은 클라리사의 내면 독백을 통해 젊은 시절의 선택, 결혼과 사랑에 대한 회상, 그리고 삶과 죽음에 대한 사색을 보여준다. 동시에 전쟁 후유증에 시달리다 끝내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참전 군인 셉티머스의 이야기를 병치시켜, 겉으로는 화려해 보이는 사회 속에서 개인이 느끼는 고독과 불안을 더욱 선명하게 드러낸다. 이 책은 출간 이후 문학계에서 모더니즘 소설의 대표작으로 꼽히며 높은 평가를 받았다. 울프가 보여준 ‘의식의 흐름’ 기법과 세밀한 내면 묘사는 인간의 의식과 감정을 기존 소설보다 훨씬 깊이 있게 포착했다는 찬사를 받았고, 단 하루라는 짧은 시간을 통해 삶 전체를 비추는 독창적인 구성이 실험적이면서도 아름답다는 평가를 받았다. 그러나 이 작품은 비판도 적지 않았다. 당대 일부 평론가들은 지나치게 인물의 내면에만 집중해 사건 전개가 느리고 산만하다는 점을 지적했으며, 상류층 인물의 시각에서만 이야기를 풀어내 계급적 편향이 있다는 비난도 있었다. 또한 울프 특유의 문체와 복잡한 심리 묘사가 대중 독자에게는 난해하게 다가온다는 지적이 이어졌다. 그럼에도 이 책은 이후 현대 문학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인물의 내면 세계를 중심으로 서사를 풀어가는 방식은 윌리엄 포크너, 제임스 조이스, 토니 모리슨 같은 작가들에게도 중요한 자극이 되었고, 특히 전후 사회의 불안과 개인의 고독을 교차시킨 방식은 현대 소설이 인간의 내면과 사회 현실을 함께 탐구하는 길을 여는 데 기여했다. 오늘날에도 이 작품은 모더니즘 문학의 정점이자 여성 문학의 중요한 이정표로 읽히며 여전히 많은 연구와 해석을 낳고 있다. “댈러웨이 부인”은 출간 이후 문학계에서 모더니즘 소설의 대표작으로 꼽히며 높은 평가를 받았다. 울프가 보여준 ‘의식의 흐름’ 기법과 세밀한 내면 묘사는 인간의 의식과 감정을 기존 소설보다 훨씬 깊이 있게 포착했다는 찬사를 받았고, 단 하루라는 짧은 시간을 통해 삶 전체를 비추는 독창적인 구성이 실험적이면서도 아름답다는 평가를 받았다. 그러나 이 작품은 비판도 적지 않았다. 당대 일부 평론가들은 지나치게 인물의 내면에만 집중해 사건 전개가 느리고 산만하다고 지적했으며, 상류층 인물의 시각에서만 이야기를 풀어내 계급적 편향이 있다는 비난도 있었다. 또한 울프 특유의 문체와 복잡한 심리 묘사가 대중 독자에게는 난해하게 다가온다는 평가가 이어졌다. 나 역시 책을 읽으면서 서사와 사고가 이리저리 퍼져 나가는 소설의 흐름을 따라가기가 쉽지 않아 조금 힘들게 느껴지기도 했다. 그럼에도 이 책은 이후 현대 문학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인물의 내면 세계를 중심으로 서사를 풀어가는 방식은 많은 작가들에게도 중요한 자극이 되었고, 특히 전후 사회의 불안과 개인의 고독을 교차시킨 방식은 현대 소설이 인간의 내면과 사회 현실을 함께 탐구하는 길을 여는 데 기여했다. 오늘날에도 이 작품은 모더니즘 문학의 정점이자 여성 문학의 중요한 이정표로 읽히며 여전히 많은 연구와 해석을 낳고 있다. 버지니아 울프의 “자기만의 방”도 꼭 읽어보야 겠다고 생각해본다. 읽고 싶었던 책이었는데 좋은 기회에 읽게되어 다 읽고 나서 뿌듯했다. 책을 읽을 때는 혼란스럽고 힘들었지만 책 마지막 부분에 서울대학교 영어영문학과 손영주 교수님이 쓴 해설 ‘출간 1백 주년을 기념하며’가 이 책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많이 됐다. . .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완독 후 솔직하게 서평작성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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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루라는 시간 속에 담긴 삶의 모든 것>⠀ ⠀ 이 이야기는 1920년대 런던을 배경으로 한 아침부터 파티가 열리는 밤까지,⠀ 단 하루 동안 일어난 일들을 담고 있다. ⠀ (이렇게 짧은 시간이었다니!)⠀ ⠀ ⠀ 파티 준비를 위해 꽃을 사러 간 클라리사 댈러웨이와 전쟁 트라우마에 시달리는 셉티머스, 클라리사의 옛사랑 피터 월시를 중심으로 이야기가 펼쳐진다. 하지만 여러 인물이 등장할 때마다 시점이 바뀌기 때문에 잠시라도 흐름을 놓치면 '응? 누구 이야기지?' 하며 헷갈리기 쉽다. 그래서 정신을 바짝 차리고 읽어야 한다. (몇 번 뒤돌아갔음😅)⠀ ⠀ ⠀ 버지니아 울프는 일상의 소소한 순간들 속에서 전쟁의 상처를 이야기했고, 죽음에 대한 공포, 사랑과 고독, 사회적 관습, 계급 구조... 삶의 모든 것을 담아냈다.⠀ ⠀ ⠀ ㅡㅡㅡ⠀ ⠀ ⠀ ✔️ '의식의 흐름' 이렇게 읽어보기⠀ ⠀ ▫️ 줄거리보다는 분위기와 감정에 집중하기⠀ -전체적인 분위기와 등장인물의 감정 흐름을 따라가는 것이 핵심⠀ ⠀ ▫️ 인물 전환에 주의하기⠀ -챕터 구분이 없으니 화자가 바뀌는 순간을 놓치지 말 것⠀ ⠀ ▫️ 시제와 장소 변화 의식하기⠀ -갑자기 시제가 바뀌거나 장소가 전환될 때를 의식해서 과거와 현재 구분하기⠀ ⠀ ▫️ 음악처럼 읽기⠀ -완벽하게 이해하려 하지 말고, 리듬감을 살려 자연스럽게 읽어보기⠀ ⠀ ⠀ ㅡㅡㅡ⠀ ⠀ 💛⠀ 이 책을 읽는 동안 나는 새였고 바람이었다.⠀ ⠀ 때론 투명인간이 되어 인물들의 옆을 따라다니며 시계탑 소리도 함께 듣고, 1920년대 런던의 풍경을 같이 바라보고, 그들의 속마음도 살며시 들여다보았다.⠀ ⠀ ⠀ 처음에는 '의식의 흐름 기법'이 낯설고 어렵게 느껴질 수 있으나, 버지니아 울프의 의도대로 등장인물들을 판단하지 않고 그들의 생각, 감정, 기억의 흐름을 따라가다 보니 책의 진정한 매력을 느낄 수 있었다.⠀ ⠀ ㅡㅡㅡ⠀ ⠀ 💛 버지니아 울프의 '의식의 흐름 기법'에 도전해 보시길!!⠀ ⠀ ⠀ #을유문화사_서평단⠀ ⠀ #세계문학전집 #의식의흐름⠀ #모더니즘문학 #고전 #책추천⠀ #북스타그램 #책스타그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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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소설 형식을 구사한 작품 <댈러웨이 부인>은 1차 세계대전이 끝난 영국의 어느 하루를 그리고 있다. 처음에는 의식에 흐름에 편승하지 못하고 헤매기만 해서 진도가 나가지 않았다. 그러다가 차츰 나는 주인공 클라리스가 되었다가 클라리스를 바라보는 행인이 되었다가 다시 클라리스로 돌아와 그녀와 얘기를 나누던 이가 되었다. 의식의 전환이 빠르게 진행되다가 갈수록 그 호흡이 길어져서 내용에 몰입하는데 어느새 적응하게 되니, 그제야 인물들간의 연계가 보이기 시작했다. 안정된 삶을 살아가며 논쟁을 즐겨했던 아름다운 중년의 댈러웨이 부인, 클라리스. 전쟁을 겪고 환청과 환영에 시달리다가 자살을 선택한 셉티머스. 클라리스와 병행 구조로 등장하는 셉티머스는 클라리스와 더불어 작가 버지니아 울프의 의식이 강하게 투영된 인물이다. 그들의 삶을 통해 당시 시대상과 사회 인식들도 알게되니 더욱 흥미롭다. 버지니아의 일대기를 알고 읽으면 소설의 분위기를 파악하는 데 도움이 되겠다 싶고, 거기에 회독을 더한다면 자유롭게 의식을 넘나들며 제대로 즐길 수 있을 거 같다. 🏷️ 본드 스트리트를 향해 걸으면서 그녀는 자문했다. 나는 결국 완전히 사라질 수 밖에 없다는 사실, 나 없이도 이 모든 것은 계속될 거라는 사실이 대수일까. 그것이 원망스러운 걸까? 아니면 죽음은 모든 것을 완전히 끝낸다고 믿는 편이 위로가 되는 건 아닐까? | p15 🏷️ 이제 모든 것이 끝나 휴전이 조인되고 전사자들도 묻혔는데, 그는 특히 저녁이 되면 천둥 같은 갑작스러운 공포에 사로잡히곤 했다. 그는 아무것도 느낄 수가 없었다. | p124 🏷️ 할리 스트리트의 시계들은 6월의 하루를 자르고 썰고 나누고 더 작게 나누며, 조금씩 갉아먹었다. 복종하라고 충고하고, 권위를 수호했으며, 균형 감각의 지대한 이점을 한목소리로 지적했다. | p146 🏷️ 사람들에겐 존엄성이란 게 있어. 고독이란 것이. 심지어 남편과 아내 사이에도 틈새라는 게 있는거야. 그건 존중해야 해. | p171 📌 본 게시물은 을유문화사( @eulyoo )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직접 읽고 작성하였습니다. #댈러웨이부인 #버지니아울프 #의식의흐름기법 #을유문화사 #세계문학전집 #을유문화사_서평단 #책리뷰 #북스타그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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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댈러웨이 부인』은 1923년 6월 어느 하루의 일상을 보여주는 지극히 단순한 소재로 이루어진다. 주인공 클라리사 댈러웨이는 항상 현재 시간에 대한 강박을 가진 인물이다. 현재의 시간이 가져다주는 감성적 고뇌와 슬픔, 그리고 누구에게나 다가올 죽음과 투쟁하면서 진정한 삶이란 어떤 것인지 삶의 실체를 추구한다. 저녁파티를 위해 꽃을 사러가고, 과거 연인이었며 현재도 여전히 클라리사에게 관심을 갖고있는 피터가 그녀의 집을 방문하기로 되어있다.
하루 동안의 댈러웨이 부인이 경험하는 일상과 과거의 기억이 긴밀하게 드러나 버지니아 울프가 추구하는 내면적 인간의식의 활동을 가감없이 보여주는 작품이기도 했다. 현재와 과거는 따로 구분되는 것이 아니라 자유자재로 드나들며 인물의 의식작용에 따라 자연스러운 구조가 형성된다. 삶에 대한 무료함과 죽음을 직시하며 살아가는 댈러웨이 부인과는 반대의 하루를 전쟁이후 정신분열증에 시달리는 셉티머스를 통해 보여진다.
클라리사 댈러웨이는 자유와 독립성, 그리고 개인적 순결을 소중히 여기는 52세의 중년부인이다. 현재의 50대로서 인생의 황혼길은 빠른감이 있으나 소설이 쓰여진 시대는 죽음에 대한 위협을 느끼며 좀 더 의미있는 삶을 살아가고자 노력하는 우아한 여인으로 표현되어있다. 과거 연인이었던 피터는 매사 비판적이었으며 타인의 일에 간섭하는 스타일이라 피터와는 정반대의 성향인 리처드 댈러웨이와 결혼한다. 반면 전 연인 피터의 기억 속에 댈러웨이 부인은 소심하고 매정하며 거만하고 상상력 또한 바닥인 냉정한 인물로 기억된다.그렇다면 그다지 명석하지 못한 리처드를 남편으로 선택한 댈러웨이 부인은 행복한 것인가?생각하게 된다.
자신만의 고립된 세계를 구축한 클라리사는 이 세계안에서 외부의 어떤 방해도 침범 받지 않으며 인생에 대한 자기성찰을 한다. 버지니아 울프의 글은 참으로 감상적이다. 클라리사에게서 드러나는 인간 고유의 감수성이 마치 그녀를 대변하는 듯 하다. 전 연인 피터는 비현실적이며 추상적 진리만 추구하고 있다. 반면 이들과 대칭되는 세계에 존재하는 셉티머스는 클라리사로 하여금 삶의 진정한 의미를 깨닫게 하는 하나의 희생물로 등장한다. 애초에 버지니아 울프는 댈러웨이 부인을 죽는 인물로 설정했으나 셉티머스의 죽음을 통해 댈러웨이 부인이 삶에 대한 각성을 하게 한다고 들었다.
죽음의 이면에는 더 깊은 의미가 내포되어있으나 다르게 보면 인생의 종말이라는 단정보다는 죽음을 두려워 하기보다 파티를 통해 모든 고립된 사람들을 결합시키려는 시도가 돋보인다. 대담하고 생기발랄한 친구 샐리는 시간에 의해 찌들린 모습이고 피터 역시 불완전한 인간으로 보인다. 파티 중 듣게 된 한 번도 만난적 없는 셉티머스의 자살소식도 그녀를 더 불안하게 만든다. 파티가 끝나면 모든 하객들은 다시 자신만의 고립된 세계로 돌아가고 댈러웨이 부인은 현재에 자신이 존재하며 파티를 통해 삶을 회복하는 모습이 보인다. 과거, 현재, 미래를 쉬지 않고 오고가며 삶의 문제를 탐구하는 이 소설은 인간의 내면세계를 탐구하는 노력이 보여진다. 인간의 의식과 실존문제로 독자들을 시험하는 이 소설은 결국 인간은 어느 시간 속에서나 불안과 고뇌를 떨쳐 버릴수 없지만 그 시간을 이겨내고 자기 인생을 개척하려고 한다는 점이다. * 출판사 지원도서를 읽고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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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더니즘을 대표하는 버지니아 울프의 대표작 『댈러웨이 부인』은 전통적인 플롯을 거부하며 서사와 시점의 연속성 보다는 현실의 파편화된 재현으로 의식을 이끌어 간다. 이 소설에는 이 시기의 영국이 고스란히 재건되어 있어 전쟁 후의 경제 불황과 사회 불안, 그리고 제국의 균열, 새로운 민주주의의 확장 속에서 혼란과 전환을 겪던 시대의 분위기가 등장 인물들의 내면에 전도된 채 묘사된다. ⠀ 인상적인 부분은 ❛종소리❜에 대한 재현 방식이었다. 유일하게 연속되는 시간의 작동은 의식의 흐름을 타고 흐르다가 과거로의 회귀로 연결해주기도 하고, 현실의 복귀를 재촉하기도 하며 시간의 경계를 넘나드는 관념으로도 형상화된다. ⠀ ❛버턴❜이라는 장소 또한 상징성을 갖고 등장하는데 각 인물들에게 상호 작용되는 이 과거의 장소는 이들을 클라리사의 삶으로 끌어들이는 매개체이면서 젊음의 표상을 분출케하는 돌파구가 되기도 한다. ⠀ ⠀ 버지니아 울프는 ❛셉티머스❜라는 인물을 통해 영혼이 망가져가는 복잡한 고뇌의 흔적을 투영함으로써 그가 자신의 분신이었다고 고백하는데, 자살을 택한 셉티머스의 삶이 버지니아 울프의 마지막과 같이 닿아 있다는 점에선 서글프게 다가온다. ⠀ 그럼에도 불구하고 작품을 끌어가는 힘은 상실이나 비관이 아닌 삶의 생기를 향하고 있다.⠀ ⠀ 그는 셉티머스의 죽음이 아닌 ❛불굴의 활기❜를 지닌 클라리사를 통해 삶을 연결한다. 파티 한복판에 죽음이 왔을 지언정, 그 죽음마저 ’저항과 소통의 시도‘로 여기며 포옹해버리는 그녀의 삶으로. ⠀ 도서제공 @eulyoo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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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판사에서 제공한 도서로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을유세계문학전집_142
노벨연구소 100대 세계문학 타임 100대 영어 소설 가디언 역대 최고의 소설100선 뉴스위크 선정 세계 최고의 책 BBC 선정 위대한 영국 소설 100선
버지니아 울프는 20세기에 가장 혁신적이고 영향력 있는 여성 작가 중 한사람입니다. 을유세계문학 142 번째는 <댈러웨이 부인>입니다. 이번 작품은 탄생100주년을 기념하여 새로운 손영주 변역으로 선보이는 모더니즘 문학의 대표작입니다. 현대주의 문학을 시작으로 여성의 권리와 억압을 탐구하며 현대 영어 문학에 중요한 기여를 한 작가의 작품으로 기대가 됩니다.
이 소설은 단 하루 사이에 일어난 일들을 여러 사람의 시점으로 보여주고 흥미로습니다. 여러 사건들 중 인상적인 부분은 클라리사는 당시 사회적 인식에 따라 자신의 정견을 드러낼 수 없는 여성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남편 리터드 역시 클라리사는 장미 꽃다발이면 그저 만족하는 존재로 하찮게 여기고 있습니다. 50대 고관 부인으로 여유롭고 풍요로운 모습의 분위기와는 다른 그녀의 내면세계는 매우 복잡합니다. 그녀는 자신만의 공간과 시간을 갖기를 원하고 자신만의 은밀한 생각을 타인과 공유하기를 싫어합니다.
“일단 넘어지면, 인간 본성이 덮친다. 셉티머스는 거듭 되뇌였다. 홈스와 브래드쇼가 덮치고 있어. 그들은 사막을 뒤지고 다녀. 괴성을 지르며 황야로 날아가지. 고문대와 손가락을 죄는 도구를 쓰지. 인간 본성은 무자비해.”---p.140
이 소설의 중심이 되는 이야기 중 하나는 제1차 세계대전에 참전했다가 친구를 잃고 극심한 정신질환을 겪는 셉티머스의 이야기입니다. 셉터머스와 레치아는 주인공 클라리사와는 직접적인 연결고리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작가는 지속적으로 그들의 이야기를 등장시켜 독자를 혼란에 빠뜨립니다. 그는 아마추어 시인으로 활약하다 전쟁에 참전하여 전쟁의 휴우증으로 정신이상을 보이는데 부인 레치아의 눈물겨운 간호에도 불구하고 셉티머스는 비극적인 최후를 맞이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그의 죽음은 클라리사의 저녁 파티에서야 짧은 단신으로 클라리사에게 전해질 뿐입니다. 처음에 그녀는 남의 파티자리에서 죽은 이야기를 하는 의사 브래드쇼에게 불쾌한 감정을 가지는데 클라리사의 감정이 단순한 불쾌감에서 그치지 않는다는 점이 재미있었습니다. 그녀는 그 소식을 들으면서 순간적으로 인생과 죽음에 대해 생각하게 됩니다.
이 소설의 제목은 클라리사가 아니라 댈러웨이 부인이라는 점에서 그녀가 앞으로 어떤 삶을 살아갈지 유추해 봅니다. 이는 그녀가 어떤 선택을 하며 살아갈지를 잘 보여주는 제목입니다. 인간은 어쩌면 행복하기 위해서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가 한 선택 속에서 행복을 찾는 존재일지도 모릅니다. 작가 울프가 지금 21세기에 사는 작가였다면 댈러웨이 부인은 다르게 쓰였을 것으로 독자는 상상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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