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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관내 여행자-되기 -글쓴이 : 백가경, 황유지 -업체명 : 열린책들 -후기내용 : 백가경, 황유지 두 사람의 관이라는 관은 원래는 죽은 사람을 묻는 관이라는 의미도 있지만 하나의 연결된 관, 사후세계와 연결된 관이기도 하고 현재 세계의 장소로서의 이어지는 관의 의미이기도 하다고 생각되어진다 장소, 즉 관을 이어가다보면 그 장소만의 사건적인, 그 이전의 사건이 나기전에의 그때의 공감관, 사건 이후의 달라진 공감관 등이 느껴지기도 한다 이태원 사건의 경우에는 우리가 흔히 생각했던 평범했던 곳이 이태원 사건 이후에 특별하게 추모적이면서 안타까우면서 시간이 지나면서 다시금 원래의 이태원의 모습을 되찾아가고있지만 아직까지 우리의 뇌리에는 사라지지 않으면서 시간이 지나면 망각될 것 같아 잊혀지는 모습이 되지 않을까 서글픈 여러가지 복잡미묘한 생각이 드는 곳이기도 하다 옛날에는 여자들의 인권이 정말 상당히 열악했고 근로자의 인권 또한 이에 못지 않았으니 지금의 노동법과 인권의 토대가 되는 초창기의 시대상을 볼 수 있는 앞으로의 미 래가 그분들의 노력과 산실이였으며 지금이나 최근 과거사에서도 불합리하게 이어지거나 잘못된 부분들에 있어서 우리가 어떻게 대처해야되는지를 새삼 알 수 있게 해주는 책의 내용이 참 마음에 들었다 일제강점기 때 조선의 여자들의 일제치하 억압, 유교문화, 가부장제로 인한 하등했던 인격, 권리가 얼마나 처참했으며 그 당시 기독교의 옛날 말인 야소교에서는 특별하게 평등함이 느껴졌다는 문구는 시대상과 종교상의 그 당시의 아이러니함을 알 수 있는 내용이기도 했다 이야기들이 하나같이 다 연결되는 관의 실, 실 하나로 묶여있는듯한 인생의 관과 공간의 관과 시간의 관이 맞물려 두 사람의 생각의 관으로 펼쳐지는 본 책을 통해 마음의 문과 미래의 문을 여는데 많은 도움이 될 책으로서 적극 추천드리는 바이다!!!
본 포스팅은 네이버 카페 문화충전200%의 서평으로 제공 받아 솔직하게 작성한 리뷰입니다- #관내여행자되기 #백가경 #황유지 #열린책들 #책 #책추천 #추천책 #철학책 #에세이책 #문학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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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내 여행자 되기" 책 제목에서 내가 미루어 짐작한 것은 한 지역내를 여행하며 적은 기행문쯤으로 생각했던 것 같다. 그래서 책을 펴고 읽기 시작했을때 조금 많이 당황스러웠다. 단순한 여행기가 아닌 우리의 아픔과 과거의 상처를 찾아 나서는 여행이었다. 잊고 지내고 싶었던 그 과거의 아픔과 우울을 궂이 다시 후펴파는 거지.. 좀처럼 책의 진도는 나아가지 않았다. 과거의 역사를 되짚어 본다는 것은 간과해서는 안되는 일이다. 그것이 우리의 아픔일 경우에는 더더구나 자세히 살펴볼 용기와 의미가 필요한 것이다. 어쩌면 좋은 것만 보고 나와 관련없는 슬픔에 눈돌릴려고 하지 않았던 나약함이 작가와 함께 떠나는 관내 여행이 두려웠던 지도 모르겠다. 마음을 가다듬고 천천히 떠나보는 여행에서 나는 인천의 성냥공장 아가씨들을 만나고 의정부의 뺏벌에서 양공주라며 손가락질 당했던 여성들의 고단한 삶을 들여다보았다. 지금도 배만 보면 가슴이 두근거리고 먹먹해지게 만드는 세월호 사건. 그 아픔이 고스란히 남아 있는 안산 단원고. 서양 귀신들을 불러들이는 축제에 왜 가서 그 난리인지 모르겠다며 혀를 찼던 사람들이 짐승같아 보였던 이태원의 사건. 시인 백가경과 문학평론가 황유지가 찾아나선 그곳엔 아직도 많은 이들의 눈물이 마르지 않은채 축축히 젖어 있는 느낌이 들었다. 아무도 책임지려하지 않았고, 무시하고 외곡했던 사회적 약자들을 대하는 우리들의 어줍잖은 시선에 일침을 가하는 책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조차도 어쩌면 방관자였는지도 모르겠다. 무지했던 것이다. 열약한 노동 환경 속에서도 모질게 삶을 이어나가야했던 그들의 가난을 비아냥거렸고, 자식 잃은 부모의 참척의 눈물을 한푼이다도 더 합의금을 받아낼려는 재스쳐로 비난하고, 뒤로는 외화 벌이라며 좋아했지만 앞으로는 몸을 파는 매춘부라며 업신여기며 이중 잣대로 그들을 몰아세웠던 사람들과 정부.. '우리를 통과하고 관통한 것들을 기억하기 위한 일으킴으로 써내려간 이야기"라고 말한 작가의 말을 다시 되새겨 본다. 많은 아픔을 겪고 살고 있는 현시대에.. 당신은 안녕한가.. 라는 안부의 메세지를 전하고 싶었다는 작가의 말에 왜인지 가슴이 뭉클해지는 이유는 서로가 관심을 가지고 있는 "관"을 통해 아픔을 나누고 이해하는 "통"을 거쳐 서로가 서로를 이해하고 감싸않을 수 있기 때문일것이다. 가장 아픈곳을 지나 치유의 길로 나가는 길. 관내 여행은 그런 깊은 의미를 가진 여행이었다. *본 포스팅은 문화충전과 제휴업체와의 협약으로 제공 받아 솔직하게 작성한 리뷰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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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경향신문 신춘문예에서 만난 시인과 문학평론가의 만남은 우연처럼 보이지만, 이 책을 읽고 나면 필연적인 것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건축물에 관심을 갖는 시인의 공간적 감수성과 "발아래 축적된 것"에 골몰하는 평론가의 역사적 사유가 만날 때, 단순한 답사나 기행문을 넘어선 깊이 있는 성찰이 가능해진다. 두 저자가 설정한 '관(管)'이라는 키워드는 이 책의 독특한 지점을 보여준다. 관은 단순히 공간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 연결되는 지점이자 공간/현장"을 뜻하며, '관통'은 "사회와 개인이라는 공동의 기억을 중심으로 서로 연결되고 관계된 것"을 의미한다. 특히 '통(通)'에 담긴 중첩된 의미—"담아냄으로써(桶) 연결되는(通) 아픔(痛)들"—는 이들의 여행이 단순한 기록이 아닌 아픔의 연대임을 보여준다. 제목에 붙은 '-되기'는 들뢰즈 철학에서 차용한 개념으로, "너의 처지에서 생각하는 것이 아닌 오롯이 그 자리에 놓이는 이해의 지향"을 뜻한다고 저자들은 설명한다. 이는 타자의 고통에 대한 섣부른 감정이입이나 동정을 경계하는 윤리적 태도를 보여준다. 온전한 이해가 불가능함을 인정하면서도 "가장 적극적이면서도 조심스러운 태도"로 그 자리에 서려는 시도는 이 책의 가장 중요한 미덕이다. 인천 성냥박물관에서 황유지가 어린 여공들의 삶에서 친척 언니의 삶을 겹쳐 보는 장면, 백가경이 동일방직 공장 터에서 여성 노동자들의 항쟁을 되새기는 대목에서 우리는 개인적 기억과 집단적 기억이 만나는 지점을 목격한다. 이들은 역사의 증언자도 연구자도 아닌 "백치의 상태"로 그 공간에 서서, 그곳에 스며든 아픔을 자신의 몸으로 통과시킨다. 의정부 '뺏벌', 안산 단원고, 이태원 골목, 광주 5·18 현장, 서대문형무소, 이들이 찾아간 공간들은 모두 한국 현대사의 상처를 간직한 곳들이다. 그러나 이 책이 단순한 추모나 애도의 글쓰기에 머무르지 않는 것은 이들이 사회적·역사적 공간뿐만 아니라 개인적 공간인 고향, 일터, 등단의 길까지 동일한 관점으로 바라보기 때문이다. 특히 성매매 여성들이 살았던 '뺏벌'을 다룬 부분에서 드러나는 시선은 주목할 만하다. 저자들은 그곳을 그곳밖에 살 수 없었던 여성들의 공간으로 인식하며, 단순한 도덕적 판단을 유보하고 그들의 삶의 조건을 이해하려 한다. 이는 사회적 약자에 대한 온정주의적 시혜가 아닌, 구조적 폭력에 대한 깊이 있는 성찰을 보여준다. 둘이서 손을 잡고 길고 긴 관을 걸어서 결국 나온 것이 책의 핵심을 읽을 수 있다. 혼자서는 감당하기 어려운 무게의 현실을 함께 걸으며 나누는 것, 그리고 그 과정에서 "통을 하나하나 두드려 가며 어떤 일이 있었는지 안부를 묻는 것"—이것이 바로 이들이 실천하는 글쓰기의 윤리다. 두 저자는 각자의 전문 영역(시와 비평)에서 나름의 성취를 이룬 작가들이지만, 이 책에서는 오히려 전문가적 권위를 내려놓고 평범한 시민으로서, 아니 "백치의 상태"로 현실과 마주한다. 이러한 자세는 고통받는 타자에 대한 글쓰기가 어떠해야 하는지에 대한 하나의 모범을 제시한다. 물론 이 책에도 한계는 있다. 때로는 감상적 서정에 기대는 대목들이 있고, 들뢰즈의 '-되기' 개념을 차용했음에도 불구하고 그에 대한 철학적 논의가 충분히 전개되지 않은 아쉬움도 있다. 또한 개인적 경험과 사회적 참사를 병치하는 구성이 자칫 사적 영역의 과잉으로 읽힐 수도 있다. 그러나 이러한 한계를 감안하더라도 『관내 여행자-되기』는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무엇보다 이 책은 망각의 속도가 가속화되는 시대에 기억의 현장을 직접 찾아가 그곳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려 한다는 점에서 가치가 있다. 또한 타자의 고통에 대한 글쓰기가 어떻게 가능한지, 연대의 글쓰기가 무엇인지에 대한 진지한 탐구를 보여준다. 세월호 참사와 이태원 참사를 생각한다면 지금, 이들의 여행은 계속되어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관내 여행자-되기는 한 번의 체험으로 완성되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지속되어야 하는 윤리적 실천이기 때문이다. 백가경과 황유지가 보여준 것은 바로 그러한 실천의 한 가지 가능성이다. 백가경·황유지, 『관내 여행자-되기』(열린책들, 2024) 서평 * 위 글은 문화충전 서평단으로 출판사에서 무상제공한 책을 읽고 주관적 견해로 작성한 서평입니다.* #문화충전 #열린책들 #관내여행자-되기 # 백가경 #황유지 #둘이서 #관내여행 #서대문형무소 #세월호참사 #이태원참사 #타자의고통 #문화충전서평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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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포스팅은 네이버 카페 문화충전200%의 서평으로 제공 받아 솔직하게 작성한 리뷰입니다.> 이 에세이집 『관내 여행자-되기』는 출판사 〈열린책들〉의 '두 사람이 함께 쓰는 새로운 에세이 시리즈-「둘이서」'의 세 번째 책이다. 시인 백가경과 문학평론가 황유지가 함께했다. 이 책은 사회적, 역사적, 그리고 개인적 의미가 있는 공간을 찾아가 그곳에서 그들을/우리를 관통한 것에 대해 풀어내는 이야기다. 백가경과 황유지의 인연은 2022년 「경향신문』 신춘문예에 각각 당선되며 작품 활동을 시작한 것에서 출발한다. 당시 두 사람은 시인으로, 또 문학평론가로 첫발을 떼게 된 시기였고, 신춘문예는 서로에게 좋은 동료이자 속 깊은 친구로 나아가게 된 계기가 되었다고 한다. 두 공동저자는 「둘이서」 시리즈에 이토록 제격인 두 사람으로서 무엇보다 사회 역사적인 「기억」과 개인의 「기억」을 에세이로 풀어보기로 생각하고, 「관/관통」을 키워드로 정한 듯하다. 여기에서 「관」은 서로 연결되는 지점이자 공간/현장을 의미한다. 또한 「관통」은 사회와 개인이라는 공동의 기억을 중심으로 서로 연결되고 관계된 것을 말한다. 무엇보다 「통」은 「담아냄으로써(桶) 연결되는(通) 아픔(痛)들」이라는 중첩된 의미를 담는다. 저자 황유지는 「통: 담아냄으로써[桶] 연결되는[通] 아픔[痛]들」이라는 제목의 〈서문〉에서 「둘이서」시리즈 제안에 곧장 떠오른 단어는 '관통'이었다. 나는 어딜 가든 그 아래 축적된 것에 관심이 있다. 내가 자란 곳에서는 발아래를 파면 얼마든지 무엇이 나왔는데, 까닭에 우리 동네에서는 무슨 공사를 하든 중단되기 십상이었다. 건물을 세우려고 땅을 파면 옥구슬이나 장신구가 쏟아지고, 비가 내려 땅이 헐거워지면 도자기 파편이나 화살촉이 나왔다."고 회고한다. 팽창하는 도시는 지속적으로 땅을 요구했지만 거기에는 아무것도 세울 수 없었다. 그 일대는 가야 왕족의 무덤이었기 때문이라고 밝힌다. 저자 황유지는 이때 느꼈다. "쌓아 올리기 전에 확인하고 지켜내야 할 것들이 있다. 그전까지 말이 없던 가야의 역사는 제 무덤이 품은 유품을 스스로 토해 냄으로써 기록화되기 시작한 참이다. 그건 평평하고 좁은 역사를 좀 더 환히 들여다볼 기회로서의 발굴, 그 지평을 넓히고 연장하는 파헤침인 셈이다. 2천 년 전 흔적과의 조우는 층층이 쌓아 올린 레이어드 케이크의 단면처럼 내게 어디를 딛는 텅 빈 발아래는 없으리라는 심상함을 이미지와 함께 새기께끔 했다. 「도시-관통」을 두루 주제로 삼자는 데 쉽게 동의해준 가경과는 어떤 지점을 향한 공통의 관심이 이미 있었던 게다. 서로 그것을 미리 안 것도 아니건만 그는 도시의 건축물에 유달리 관심이 있었다. 그럴 때 그가 바라보는 건축물과 내가 바라보는 건축물의 땅 아래는 분리 불가의 연결성을 가진다."(p.9) 이처럼 한뜻으로 통과된 공동의 관심사는 「관」이고, 우리는 많은 관으로 삶을 지탱한다. 그러한 관은 상자(棺)일 때도 있고 건물(館)일 때도 있으며 수로나 지하도(管)의 형태이기도 하다고 황유지는 사유한다. 관이 연결의 공간적 감각이라면 통(通)은 시간적 감각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단층이 품은 오래전의 이야기들은 발아래 무수히 뻗어 나간 뿌리, 식물성을 닮은 리좀(rhizome)*의 육체적 감각이랄 수 있겠다. * 리좀은 ‘근경(根莖)’, 뿌리줄기 등으로 번역되는데, 줄기가 마치 뿌리처럼 땅 속으로 파고들어 난맥을 이룬 것으로, 뿌리와 줄기의 구별이 사실상 모호해진 상태를 의미한다. 들뢰즈와 가타리는 수목(arbre)형(arborescence)과 대비시켜 리좀 개념을 제기한다. 수목이 계통화하고 위계화하는 방식임에 비하여, 리좀을 제기하는 것은 욕망의 흐름이 지닌 통일되거나 위계화되지 않은 복수성과 이질발생, 그리고 새로운 접속과 창조의 무한한 가능성을 보여주려고 한다.(철학사전, 2009) 저자 백가경은 「같이 관 걷기」란 제목의 이어쓴 〈서문〉에서 "「관」을 가지고 두 편의 시를 쓴 적 있다. 한 편은 시체를 담는 관에 대한 내용이며, 다른 한 편은 박물관, 미술관 등 공공을 위한 시설물, 하부 구조 따위를 배경으로 쓴 것이었다."고 말문을 연다. 며칠 전 '유령을 보았다'는 저자는 을지로 3가의 허름한 건축물 안에서 희고 얇은, 하늘하늘한 천을 뒤집어쓴 세 명의 연극인이 〈유령-씨앗〉(창작집단 파라란)이라는 연극를 무대에 올렸다. 연극이 아니라 제(祭)인 이유는 그들의 표현대로라면 우리 주위에서 유령이 된 사람, 동물, 지역을 기리는 자리였기 때문이다. 그들은 좁은 무대 가운데를 걷고 말하고 다시 걷고 말하는 식으로 극을 이어 갔다. 그들의 이름은 마리, 명, 구다. 살처분당한 동물 몇 마리, 참사 현장에서 숨을 거둔 희생자 몇 명, 바다에서 되돌아온 시체 몇 구에서 따온 이름이다. (중략) 그곳에서 유령에 대한 인상적인 표현이 나온다. '그들은 살아생전 큰 고통을 당해서 죽은 뒤에 그들의 고통은 운동 에너지로 바뀌고 미립자가 되어 그공간을 떠도는" 존재라고 표현된다. 유령 주변에 사는 사람들은 미립자의 영향을 받아 우울감을 겪는데, 이를 막기 위해 낭만이라는 벽을 쌓아 올린다는 내용의 연극을 백가경은 인용한다. "미립자가 즐비한 이곳은 결국 내가 사는 곳이기도 하다. 누군가 아무리 단단하고 두꺼운 벽으로 고통의 미립자를 막는다고 해도 벽은 언젠가 허물어질 테고, 그 뒤로 켜켜이 얽힌 이야기의 수관은 감당할 수 없을 만큼 자라났을 테다. 우리는 외면하지 않고 마리, 명, 구의 얼굴을 마주하며 길게 이어진 관을 걸을 것이다.인간이 인간을 위해 세운 관 건축, 지하 아래로 흐르는 지하철도 관, 수도관, 가스관, 마지막으로는 이미 세상을 떠난 이를 위한 관들이있는 곳까지 걸으며 공기 속에 흩어진 고통의 미립자를 들이마시고 내쉬며 살아간다."(p.17) 이렇게 도시의 건축물에 유달리 관심이 있는 시인과 발아래 축적된 것에 골똘한 문학평론가는 〈도시-관통〉을 주제로 삼고, 서로가 관심을 가진 것들이 연결되어 있기에 이 모든 것을 〈관〉으로 여기고 〈관내〉를 여행하기로 한다. 출판사 소개글에 따르면 표제어 가운데 「-되기」라는 단어를 붙인 것은 철학자 들뢰즈의 사유*를 빌려온 것으로, 너의 처지에서 생각하는 것이 아닌 오롯이 그 자리에 놓이는 이해의 지향을 뜻한다. 누군가를 향한 온전한 이해란 불가능에 가깝기에 「-되기」는 할 수 있는 가장 적극적이면서도 조심스러운 태도를 포함한다. 두 사람이 공간을 걷고, 사유하고, 글을 쓴 것은 그들이 겪은 경험을 토대로 진정한 관내 여행자-되기를 보여 주는 것이다. 유유자적한 낭만적인 여행이 아니다. 황유지는 인천 성냥 박물관에서 일했던 어린 여공들의 삶에서 친척 언니의 삶을 겹쳐 보며, 우리 이전의 소녀들이 자신보다 훨씬 크고 무거운 짐을 졌던 시간을 떠올린다. 함께 인천을 찾았던 백가경은 동일방직 공장의 터로 이동하여 최소한의 노동 인권을 위해 항쟁하던 여성 노동자들의 역경을 되새긴다. 의정부에서는 미군 부대 앞 성매매 여성들이 살았던, 아니 그곳밖에 살 수 없었던 〈뺏벌〉이라는 곳을 찾아가 역사와 슬픔의 거주지인 언니들의 방을 목격한다. *들뢰즈의 사유: 헤겔은 동물을 비웃는다. 동물은 존재하는 직접적인 상태를 자기 힘으로 벗어날 수 없고 다른 동물에 의해서만 벗어난다. 그렇게 벗어나는 일이란 만신창이가 되어 죽음을 맞이하는 일이다. 개가 더 큰 개에게 물려 죽는 방식으로만 자기 자신을 벗어나듯. 반면 인간은 ‘내적 부정’을 통해 직접적인 자기 상태를 지속적으로 벗어난다. 인간은 자기 자신을 극복해야 할 장애로 여기고, 이 장애를 부정함으로써 발전한다. 난 이보다 더 잘 할 수 있어! 다음 목표는 수학에서 50점 받는 거다! 이렇게 나날이 장애물 같은 자기 자신을 지양하고 자신의 상태에서 벗어나는 과정이다. 바로 이런 사상의 정반대 편에 스피노자의 제자로서 질 들뢰즈(Gilles Deleuze, 1925~1995)가 있다. 들뢰즈는 동물을 이렇게 찬양한다. “동물들은, 비록 필연적으로 서로 죽이기는 하지만, 죽음을 자신 속에 품고 있지는 않다.” 동물은 직접적으로 주어진 자신의 존재를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고 존재를 즐길 줄만 안다. 오로지 버려야만 하는 인간의 어떤 악습만이 내면에서 자신을 부정하고, 니체가 말하듯 자기 존재를 ‘가책’의 대상으로 여긴다. 이 가책은 후에 프로이트에 와서는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라는 ‘죄의식’이 된다. 삶은 내면에서 죽음을 선고하는 일, 자기 자신을 부정하는 일과는 거리가 멀며 주어진 존재에 대한 긍정과 기쁨으로 차 있다. 이런 삶에 대한 찬가가 들뢰즈의 철학이다.(생활 속의 철학, 서동욱) 두 저자는 또 안산과 이태원, 광주와 서대문으로 상처를 마주하러 걸어간다. 두 사람은 사회적, 역사적 공간만 찾아간 것은 아니다. 그들을 지금까지 만들어 온 고향과 일터, 그리고 둘을 이어 주게 된 「등단」의 길도 다시 한번 찾아가 결국 그 관을 모두 통과하여 밖으로 나온다. 함께 그곳으로 걸어 들어가 기어이 통을 하나하나 두드려 가며 어떤 일이 있었는지 안부를 묻고, 역사학자도 연구자도 아니지만 백치의 상태로 둘이서 손을 잡고 길고 긴 관을 걸어서 결국 나온 것이다. 이처럼 이 책은 사회적 참사나 재난의 현장, 우리가 잊고 살던 아픔의 공간을 찾아가 우리가 모두 느낄 수밖에 없는 공동체적 슬픔뿐 아니라 개인적 경험을 함께 들려준다. 우리 역시 지금도 기억하고 있지 않은가. 2014년 4월 16일 TV 화면으로 목격한 참사를, 그리고 2022년 10월 29일 이태원 골목에서 일어난 참사를. 그뿐인가 해마다 5월이면 가슴속에 울려 퍼지는 진혼곡과 '광주의 눈물'을. 그렇기에 두 사람은 잊지 않고 그곳들을 다녀와 그 아픔을 되새기듯 꾹꾹 눌러쓴 글로 공간을 기록하고 사람을 위로한다. 이 책은 〈서문〉과 〈에필로그〉를 제외하면 모두 10관으로 이루어져 있다. 1관 「인천」, 2관 「의정부」, 3관 「삶터」, 4관 「안산」, 5관 「이태원」, 6관 「일터」, 7관 「광주」, 8관 「서대문」, 9관 「고향」, 10관 「등단길」 등이다. 각 관에서는 주로 사회적, 역사적 참사가 일어난 장소 위주로 다루고 있다. 주제가 다소 무겁긴 하지만 참사의 현장이나 역사적 사건은 결코 가볍게 처리할 일은 아니라는 점에서 이 책을 더욱 읽고자 하는 독자들에게는 카타르시스를 제공할 수도 있겠다는 것이 독자의 판단이다. 역사적인, 사회적 참사는 우리의 기억 속에 남아 있는 한 결코 지워질 수 없으면 시대를 관통해 기억과 기억이 연결되며 이어진다. 그것이 역사 기록의 의미이기도 하고, 더 나은 사회를 이루기 위한 시대적 사명을 가진 시민들의 몫이다. 나의 작은 투쟁은 이런 것이다. 하나의 진실에 다가가는 공부를 일상적으로 꾸준히 하기. 진실을 가려내는 눈을 기르기. 특정 집단이 시간을 끌며 대중의 망각을 유도한다면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음을 끝끝내 증명하기. 계속 말하기. 계속 쓰기. 작든 크든 계속 투쟁할 수 있는 위로와 에너지를 얻으러 여기저기 다니기.(p.153) 계엄과 백골단이, 무장한 경찰이 죽지도 않고 돌아온 것을 이번 겨울 12·3 비상계엄 사태를 지나며 우리는 똑똑히 보았다. 우리는 어떻게 어른이 되어 가고 있는 걸까. 우리 사회는 얼마나 성숙했는가. 민주화도 성인도 되지 않은 채 이 사회가 얼렁뚱땅 나이만 먹어 가고 있지는 않나.(p.196) 저자 : 백가경 시인. 2022년 『경향신문』 신춘문예를 통해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2025년 시집 『하이퍼큐비클』을 펴냈다. 저자 : 황유지(황혜경) 문학평론가. 2022년 『경향신문』 신춘문예 당선으로 비평 활동을 시작했다. 2024년 대산창작기금을 수혜했다. 대학에서 문학과 글쓰기를 강의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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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이 쉬운데 어렵다. '관내'라고 하면 무슨 관을 얘기하는 것일까. 저자들의 해설을 보면 '도시를 관통하는'정도라고 이해하면 될 듯하다. 책을 좋아하고 외출시에는 가능하면 가방에 들어갈 정도의 책을 가지고 다니는 편이다. 그래서 아주 두툼한 책은 좀 부담스럽다고 여기는 편인데 이 책을 읽으면서 문득 책 한권의 무게는 얼마나 될까 생각해보았다. 독자들이 종이의 무게를 달아 사주는 고물상도 아니고 대개 책들은 페이지수로 가늠을 하기 때문에 무게를 생각해본 적은 없다. 하지만 이 책은 생각보다 너무 무거워서 가슴이 눌리는 느낌이 들었다. 그냥 가볍게 여기저기 돌아보는 정도의 여행기라고 생각했던 모양이다. 하나같이 주제가 너무 무거워서 가뜩이나 요즘 우울증으로 고생중인 나에게는 무겁게 다가왔다.
인천은 중국에서 건너온 사람들이 많이 살고 있고 여전히 차이나타운이 있고 맥아더 동상이 있다는 것 정도로만 알고 있던 나로서는 그 곳에 성냥공장이니 방직공장 같은 것들이 있었음을 이 책을 통해서 알았다. 가난한 조국의 상당 부분 우리의 가난한 '여공'들이 짊어졌다는 것을 알고 있었는데 누군가는 차이나타운의 중국요리보다 그런 곳들이 더 마음에 들어온다는 걸 알았다. 몇 년전 '미투'의 바람이 휘몰아치면서 많은 이들의 폭로가 이어지고 유명인들의 민낯이 드러나면서 우리 사회에 성에 대한 인식이 이렇게 빈약했었나 하는 두려움이 몰려왔었다. 미군부대가 있던 도시에서는 성매매가 버젓이 이루어졌고 그 돈이 가난한 조국의 양식이 되었음을 안다. 하지만 그 사실을 넘어서 우리는 성매매, 성폭력, 성추행같은 것에 너무 아무렇지도 않게 관대해왔던 사실에 부끄러움을 느껴야 한다. 맞다. 여성이 몸으로만 평가되는 시대는 여전히 끝나지 않고 있음을 우리는 인정해야 한다. 그리고 우리의 딸들이, 손녀들이 살아갈 시대에는 옛말로나 존재하기를 바라고 그 책임은 과거 어른들, 지금의 우리들에게 있음을 직시해야한다. 보광동에서 태어나 이태원소재의 국민학교에 다녔던 나는 얼마 전 읽었던 책에서 그 동네가 공동묘지터였다는 것을 알았다. 하긴 사대문안으로만 묘지가 없지 그 밖으로는 온통 묘지가 즐비하던 시절 이야기일터다. 암튼 어려서 무슨 클럽이니 양공주니 하는 말들을 일상으로 들었다. 미군부대에서 흘러나오는 물건들을 웃돈을 주면서 사던 시절이었다. 그리고 참사가 일어났던 그 호텔은 내가 결혼을 한 곳이기도 하다. 어려서는 그닥 친하지 않았던 친구가 이태원에 고깃집을 내어 성공해서 돈을 무척 벌었다. 아주 오랫만이 그 집을 찾아가 잠깐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참사의 그 날 그 현장에 있었다고 한다. 실제 위기에 처한 사람들을 구하기도 하고 죽어가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심한 트라우마를 겪고 있고 요즘도 정신과 치료를 받는다고 했다. 얼마 전 그 현장에 구호활동을 하던 소방관의 자살 소식이 들리기도 했다. 우리는 무수한 사고를 겪고 보고 듣고 살아간다. 그리고 흥분하고 성토하고 때로는 현장에 찾아가 시위도 한다. 그럼에도 우리 사회는 달라졌을까. 인간의 아주 탁월한 능력인 '잊기'에 익숙해지고 나면 냄비에 물이 급격히 끓어오르다가 또 그만큼 식어가듯 잊혀지기 마련이다. 그래야만 복잡한 머리속을 비워내고 살아낼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때로 잊혀질뻔했던 일들을 이렇게 다시 끌어내야 하기도 한다. 그래야만, 어쩌면 그런 일들이 반복되지 않을 수 있다는 희망이라도 끌어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나는 '관내 방관자'로 남았다는게 많이 미안해졌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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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책과 콩나무를 통해 도서를 제공 받아 작성했습니다> 좀 더 어른스러운 여행기가 읽고 싶었다. 보다 깊이가 있는 에세이를 만나고 싶었다. 차를 놓쳤다느니, 짐을 잃어버렸다느니, 하는 우스깡스러운 실수담으로 점철된 여행기가 아닌, 개인적인 감정에 빠져 피상적인 느낌만 나열하고 감상에 빠지는 에세이가 아닌, 뭔가 다른 여행기와 에세이가 있었으면 했다. 그리고 끝내 그런 글을 만나게 되었다. 이 책은 평범한 소재에서 비범한 문장을 만들어내는 두 사람이 엮어낸 여행기이자 에세이이다 가장 인상적인 것은 극히 개인적인 글인 여행기와 에세이의 형식을 취하면서 두 사람이 협업을 했다는 것이다 왜 그들은 그런 협력의 포맷을 취했을까. 그것은 그 둘이 인간이라는 존재를 통시적인 존재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현재라는 제약된 시간과 여기라는 한정된 공간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지만, 항상 우리의 발 밑에는 축적된 시간이 있고, 우리의 양 옆에는 연결된 공간이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저자들은 그렇게 알게 모르게, 시공을 관통하고 있는 존재인 사람의 본질에 대해 서로 공감한다. 그것이 이 책이 시작되는 지점이 된다. 그들은 자신들이 거쳐왔던, 혹은 지나쳐왔던 시간과 공간에 대해 서로 이야기를 나누고, 그것을 다시 글로 변환한다. 즉 '둘이서' 해야만 그런 행동과 생각이 더욱 의미를 지니게 되고, 연결에 있어 필연적으로 발생하는 구멍과 간극을 메우는 해결책이라고 보는 것이다. 다음으로, '관'이라는 단어의 의미로부터 파생하는 두 저자의 단상과 문장이 흥미롭다는 것도 장점이다. 서두에서 밝히고 있듯이, 관이라는 말은 인간의 종말을 담는 상자이기도 하고, 미술관과 같은 아름다움을 모아둔 장소이기도 하다. 아울러 우리의 발 아래에 수없이 지나가는 수도관 등과 같은 문명적 맥락을 의미하기도 한다. 이런 삼각 구도적 다의성으로부터 이 관이라는 말의 매력이 발생한다 그리고 그 다의적 풍성함에서는 '관통'이라는 중심 제재가 떠오르고 그것은 다시 사적이고 공적인 고통과 연결된다. 그 관내를 여행하는 두 사람의 문학적이고 사색적인 여행기가 마음에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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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자유롭게 작성한 글입니다) 얼마전 짝꿍의 생일을 맞아 1박2일로 땅끝마을 쪽을 목표로 나들이를 다녀왔었다. 바다를 머금은 휴양림을 숙소로 하였더니 근처에 항이 하나있어 여기까지 온김에 볼 수 있는것은 다 봐야지!라는 마음으로 차를 몰았다. 새벽부터 오전 내내 비가 내리다 그치고 언제 그랬냐는듯 뜨거운 해가 바다 특유의 짜고 비릿한 습한 공기를 데워 끈적하게 몸에 달라붙었지만 구름 사이로 고개를 내미는 하늘은 절경이었다. 그렇게 귀여운 백구 가족상과, 항구 곳곳에 이정표처럼 남아있는 노란리본들은 마음먹먹한 웃음을 머금게했다. 안타깝다라는 말을 할 수 조차 없는 안타까움이 느껴져 맞잡은 두손만 꽉 쥘뿐 아무말도 하지않았다. 그래, 바로 팽목항이었다. 한글은 하나의 음에 여러가지의 한자가 대입되어 여러가지 뜻을 머금는다. #열린책들 의 두 작가가 하나의 책을 공동집필하는 #둘이서 시리즈 세번째 책 #관내여행자_되기 (#백가경 #황유지 씀)는 한글에서 ‘관’ 과 ‘통’에 대입되는 여러 의미들에 주목하여 하나의 이야기로 엮어간다. ‘관’은 서로 연결되는 지점이자 공간/현장을 의미하고 ‘통’은 무언가를 ’담아내고‘ ’연결’하고, ’통증‘의 의미를 담아냈다. 그렇게 두글자가 합쳐진 ‘관통’은 사회와 개인의 공통된 기억으로 서로 이어지고 관계맺는다는 의미를 담아냈다. 그렇게 여러장소를(도시를)함께 다니면서도 그 장소의 사회가 가진 기억, 개인이 가진 기억들에 주목하며 하나의 관내에서 두개의 글을 써낸다. 그런 도시들은 사회적으로 아픈사건을 지닌 곳이 많았다. 안산, 이태원, 광주, 서대문 같은 장소들이 그런 아픔의 예시이다. 마침 팽목항을 다녀오고 안산의 이야기를 읽으니 나 스스로도 사회적, 개인적 이야기가 연결되는 관내가 생겨나는 것이 명징하게 이해가 되었다. 수백명의 생명을 앗아간 장소이자, 우리 둘이 보낸 좋은 시간 속 한 장면으로 팽목항이 기억되는 것처럼, 살아가는 자들의 발아래 죽은자들의 삶이 남아 두발 디딜 곳이 되어준다는 시간을 아우르는 연결을 말하던 황유지 평론가의 말이 유독 기억에 남는다. 어떠한 낯선 장소를 향하게 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출장, 세미나 같은 어떠한 이벤트가 있어서 가야하는 경우도 있겠지만 아마 한번 가볼까? 하는 흥미를 느껴 여행지로 가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그 ‘흥미’의 이유는 무엇일까? 일단 지역, 관내, 도시의 이름을 한번이라도 들어봐서 익숙하게 받아들여져야 조금 더 매력적일 것이다. 그렇게 우리가 이름을 들어온 장소들은 그 장소에 어떤 대표적인 행사, 축제같은 도시의 대명사들이 유명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위에서 나열했던 장소들처럼 마음아픈 비극적 사건들이 발생했었을 수도 있다. 그런 사건들이 있으면 마음이 아파 선택하지 않을 수도 있으나 결국 그곳으로 발길을 향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지금도 그 곳에 두발 단단히 딛고 살아가는 멋진 사람들이 살고 있으니 말이다. 그래서 그렇게 한 장소에 사회가 응당 기억해야할 기억과, 그곳을 방문하거나 살아가며 각자가 걸었던 개인의 사유와 삶이라는 기억이 공존하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보통의 일상에서 안타깝게도 그 모든 것을 놓치고 살아간다. 눈을 뜨면 집을 나서고 해가지면 집에 들어오는 삶의 무게에 짓눌린 삶을 살다보면 어느것하나에도 신경을 여력이 없다. 그냥 빨리 침대에 몸을 누이고 싶은 것이 정상이다. 하지만 여기에서의 ‘정상’은 보편적, 일상적이라는 뜻이지 ‘특별한 변동이나 탈이 없이 제대로 된 상태’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내가 살아가는 삶을 곱씹어보고 사유하고 능동적으로 살아간다면 그것들을 기억으로 남긴다면, 자연스레 내 삶이 걸어가고 있는 그 장소, 도시, 관내가 기억될 것이다. 그렇게 개인적으로 장소에 기억과 애정을 가진다면 그 장소가 가진 히스토리에 저절로 관심이 가져질 것이다. 그렇게 개인과 사회의 기억은 유기적으로 얽히며 또 한번 살아진다. 그렇게 지난한 ‘관’을 지나며(‘통’) 우리는 또 살아간다. 서로의 개별의 기억을 공유하고 위로하고 안부를 물으며 두손을 잡고 말없이 잡은 손에 힘을 주며 그렇게 나아간다. 장소와, 기억과, 더불어 살아감과 잊지말아야 할 것들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는 또 다른 곳으로 걸어나갈 내 두발을 지지해줄 색다르고 참신한, 단단한 땅 같은 책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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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내여행자되기 #아무튼웨딩 #백가경 #황유지 #열린책들 #둘이서 #둘이서시리즈 둘이서 두 번째 시리즈 《우리 같은 방》을 읽고는 엄청난 감상을 토해냈다. 고등학생 때 출가하여 지금까지 머물던 방들을 떠올렸다. (우리)(같은 방)일 거라는 오해에 몽글몽글 나의 남은 일평생의 동거를 고민했지만, (우리 같은)(방)이라는 것을 알고는 나의 지금까지의 생을 쭉 생각할 수 있었다. https://brunch.co.kr/@jeolmeun-mschoi/67 '나'와 '우리'라는 것 사이에 대한 사유를 그리워하며 둘이서 세 번째 시리즈를 손에 쥐었다. 고백하자면 오랜만에 기한 내에 완독하지 못한 작품(ㅠ_ㅠ흑) 이번 《관내 여행자-되기》는 평생의 동거라는 것이 진짜로 시작되며 그로 인해... 물리적인 시간 자체가 너무도 부족해서 완독에 다다르지 못했다. 창피하군. 예상해보자면 두 번째 시리즈로 연속적인 지금까지의 시간을 돌아볼 수 있었다면 이번 세 번째 시리즈로는 앞으로의 종결과 말미를 예감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땅 아래의 관(棺)에 이어 땅 위의 관(館)의 등장으로 《정크스페이스|미래 도시》라던지 조르주 페렉의 《어느 미술애호가의 방》, 《공간의 종류들》, 《생각하기/분류하기》도 기억하게 되었다. 그리고 영화 《브루탈리스트》. 감명이 너무도 대단하면 써내야 할 것들이 그만치 많아서, 그리고 그 쓸 것들 사이 얽힘이 너무나도 복잡해서. 결국 방치하다가 모조리 잊고 만다. 나에게 그런 작품들이 연결되다니. <도시-관통>을 주제로 함께 걷고 따로 쓴 시인 백가경과 문학평론가 황유지 <관통> 이야기. 그 끝쪽으로 살아가는 우리네의 고통과 돌봄의 이야기. 서로 연결되는 지점이자 공간인 관, 사회와 개인이라는 공동의 기억을 중심으로 서로 연결되고 관계되는 관통 그리고 담아냄으로써 연결되는 통(痛). 아직 완독 전이지만, 특히 황유지 평론가님의 문장은 모두 정말 좋았다. 📌 그렇다, 우리는 많은 관으로 삶을 지탱한다. 그러한 관은 상자일 때도 있고 건물일 때도 있으며 수로나 지하도의 형태이기도 하다. 때로 어떤 이들의 영구 부재는 수도관의 메마름으로 신호를 보내기도 하지 않는가. 그런 관이 연결의 공간적 감각이라면 통은 시각적 감각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단층이 품은 오래전의 이야기들은 발아래 무수히 뻗어 난간 뿌리, 식물성을 닮은 리좀rhizome의 육체적 감각이랄 수 있겠다. 열린책들의 《관내 여행자-되기》 p.10 * 열린책들 @openbooks21 로부터 제공받은 책입니다. #책탑 #책장 #독서 #독후감 #서평 #에세이 #수필 #일기 #책스타그램 #북스타그램 #독서스타그램 #독서기록 #독서그램 #독서습관 #책추천 #책리뷰 #독후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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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서평은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작성하였습니다 * 열린책들 <둘이서> 시리즈는 단짝 친구들이 들려주는 이야기처럼 다정하다. 좋아하는 사람이 함께 쓰는 에세이. 교환편지를 엿보는 기분으로 김사월-이훤의 둘이서 1편 이야기를 재미있게 읽었던 기억이 있다. <관내 여행자-되기>를 마주하며 여행지에 대한 유쾌한 이야기를 기대했다. 그런데 이번 둘이서 시리즈는 단짝 친구의 직업이 예사롭지 않다. 백가경은시인으로 황유지는 문학평론가로 활동 중이다. 시인과 문학평론가의 만남은 <관통>이라는 주제로 무겁고 또 무겁다. <관통>이라는 단어에 주목한다. 연결할 관, 아플 통. 아픔을 연결하는 공간을 마주한다. 경기 의정부 미군부대 앞 마을은'언니들'에게 집이었을까? 성병 관리소 건물로 쓰인 방을 찾아 성매매 여성들의 이야기를 듣는다. 아마도 언니들에게 집이 아니라 감옥 그 자체였으리라. 사회적 차별과 폭력, 고통이 2025년에도 여전히 공존하고 있다.
경기 안산시 단원구, 서울 용산구 이태원. 사회적 참사를 목도한 공간이 주는 슬픔과 상처, 고통이 고스란히 느껴진다. 이태원에 다녀온 뒤, 진실에 다가가는 공부를 끊임없이 하겠다는 백가경의 언어가 나의 다짐이 되어 돌아온다. 다음으로 광주행 티켓을 끊은 그녀들의 행보는 어떤 이야기들을 담고 있을까? 매일 5시 18분마다 시계탑에서 <임을 위한 행진곡>이울려 퍼지는 5.18 민주광장. 백가경은 온통 먹먹한 마음으로 거대한 고통 앞으로 걸어온 자기 자신을 돌아본다. 어쩌자고이 거대한 고통 앞으로 걸어온 걸까? (p.215) 전남도청 앞에서 광주 학살을 지켜본 시계탑을 상상한다. 한강 작가의 <소년의 온다>의 일부를 인용하며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단 하나의 양심을 떠올린다. 각자의 양심이 반짝이는 순간을 목도한다. 제주를 여행하며 발아래 딛고 있는 제주라는 섬 전체가 제주 4.3사건으로 인한 피의 땅임을 깨닫았던 것과 같은 맥락이었을까!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발아래를 돌보는 일이야 말로 중요한 일이라는 사실을 종종 잊고 산다. 역사에 대해 공부하고 진실을 밝히는 노력보다는 그저 먹고 살기에 바쁜 나날들이었음을 고백한다. 백가경과 황유지의 <관내 여행자-되기>가 없었더라면 깨닫지 못했을 무지함에 대한 용서를 구한다. 우리는 과거를 통해 현재를 잇고 미래를 연결한다. 과거를 덮으려하지 말고 애써 나만의 작은 투쟁을 지속해나가자고 용기를 북돋아주는 책이다. #관내여행자되기 #백가경 #황유지 #열린책들 #둘이서 #관통 #에세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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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 9. 17. 관내 여행자-되기 - 백가경, 황유지 - 처음 이 책의 제목을 보고 '관내'가 과연 무엇을 뜻하는지 궁금했다. 표지의 '둘이서'라는 말도 낯설어서 표지 뒷날개를 보니 '둘이서'는 '좋아하는 사람 <둘이서> 함께 쓰는 열린책들의 새로운 에세이 시리즈'라는 설명이 있다. 아하!! 에세이 시리즈들이 출판사별로 있던데 <열린책들> 출판사의 이런 시리즈가 있구나 하는 마음으로 읽기 시작했다. 백가경이란 작가도 황유지라는 작가도 처음 들어보는 작가라 그들의 글의 스타일을 잘 몰라 처음에는 조금 버벅거리기는 했지만, 그들이 말하는 '관내'가 어느 특정 의미가 가득한 지역의 '장소'를 의미한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 장소들이 사뭇 무겁고 쉽게 설명할 수 없는 그런 곳들이라 읽으며 마음이 점점 가라앉았다. 인천의 산업화 초기 공장들에서 여직공들의 부당한 노동 현장들, 의정부의 미군부대 주변 기지촌의 흔적들, 안산의 교육지원청의 세월호 기억교실, 이태원 참사의 현장, 광주의 5.18민주광장, 서대문형무소역사관, 그리고 자신들의 삶터, 일터, 고향, 등단의 길까지.. 묵직한 사회적 문제를 가진 장소부터 개인적 공간까지, 다른듯 비슷한 두 저자의 여행길에서 그들의 과거와 현재의 이야기들이 '관내'와 연결되어 이어진다. 슬프고 무거운 이야기들이 많아 읽으며 많이 힘들었지만, 그래도 이렇게 직접 눈으로 보고 느낀 것들을 말하면서 절대 잊지 않겠다는 그들의 다짐을 간접경험하면서, 우리가 시간이 흐를수록 잊어버리고 마는 많은 사건들이 얼마나 많은지 한번 생각해본다. 사회적 문제를 바라보는 르포 같은 묵직함과 개인의 추억 속 이야기의 에세이적 요소가 잘 버무려져 가볍지 않은 읽을 것이 만들어진 것 같다. 친한 두 사람에 의해 1+1이 2가 아닌 그 이상의 읽을 것이 된 것이 아닐지.. 계속 써나가는 사람들이 있어 다행이고, 계속 읽을 수 있는 내가 있어서 안심이다. 다른 <둘이서>시리즈도 한번 읽어보고 싶어진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