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책의 제목처럼 [가장 멍청한 세대]는 누구를 뜻하는 것일까-? 바로 지금의 청소년들을 지목하고 있다. 풍요로움 속에서 그 넘쳐나는 생활로 인해 요즘의 청소년들은 부족한 것이 거의 없는 생활 속에서 아주 편하게 지내고 있다.(분명 그렇지 못한 이들도 존재하지만) 미디어를 다루는 솜씨는 기가막히며, 스마트한 시대에 걸맞게 멀티스태킹 하다. 이런 청소년들을 보며 윗세대인 부모들은 당연히 그들의 지능이 자신들보다 더 뛰어날 거란 착각과 기대를 가지고 있다. 하지만 이 책에선 그러한 착각들을 과감없이 속시원하게 날려 주고 있다. 다소 아쉬웠던 부분은 이 책이 원래 2008년도 작품이란 것이었지만 몇 년이 흐른 지금의 상황을 이 책의 내용에서 충분히 유추해 볼 수는 있으리라 생각되어 졌다. 가장 멍청한 세대의 이전 세대를 나는 가장 어리석은 세대라고 칭하고 싶다. 자녀를 둔 부모들의 최고의 관심사는 오로지 아이의 성적이며 오로지 내 아이의 성공과 내 아이의 행복만을 추구하고 있다. 이러한 것들이 그대로 자녀에게 전해지고 있는데 그로인해 그들이 더욱 멍청한 세대로 한걸음씩 나아가는데 크나큰 일조를 하고 있는 듯 하다. 저자도 얘기했듯이 가장 멍청한 세대의 특성은 학교에서 시작되었다고 보기 보단 가정, 사회, 여가생활에서 비롯되었음을 알려준다. 생활습관의 변화가 지식의 결핍을 불러온 결과를 초래했다. 물질적 풍요로움과 청소년들의 자율적 생활을 존중해 주는 가정 분위기는 결코 그들에게 도움이 되지 못한 듯 하다. 오히려 지성인으로 거듭나는데 방해적인 요소로 자리잡아 버린 것 같다. 학생이 가족사, 박물관, 유적지, 영화, 텔레비전 등에서 축적한 생각과 정체성을 지니고 역사적인 맥략에서 생각하는 법을 배우는 삶의 과정에 동참할 수 있도록 이끌어 줘야하며, 지금의 성인세대들이 학생들에게 지식을 활용하는 법을 가르쳐야 함을 알려 일깨워 주고 있다. 하지만 요즘의 아이들의 여가생활은 뻔하다. 공부 아니면 게임으로 나눠진다고 보는데 울 아이들만 봐도 게임때분에 야외활동을 참 싫어하며 특히나 박물관은 어찌나 싫어하는지 모른다. 그리고 진정 무식하다. 엄마인 내가 놀라울 정도로....... 많은 연구결과에서 지식과 기술은 속도에 발맞추지 못하고 있으며, 이를 보완할 지적 습관이 사라짐도 얘기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고하고 요즘 어른들은 왜 요즘 아이들이 더 똑똑하다고 생각하는지 모르겠다. 아마도 자신들은 미흡한 기기를 잘 다루기 때문이 아닐까-...나만 해도 스마트폰 활용에 있어 많이 미흡한데 아이들은 나보단 더 잘 다루니 말이다. 하지만 이러한 현상들이 아이들의 지적 수준이 높다는 증거가 될 수 없음을 많은 연구자료의 결과를 토대로 분명히 전달해 주고 있다. -가장 멍청한 세대가 무지를 극복하려면 자신들이 몰두하는 문화가 사소한 갈등으로 이루어진 하급한 영역이며, 성인기야말로 시민적. 역사적. 문화적인 인식의 영역이자 영속적인 사상과 투쟁의 영역이라는 것을 인정해야 할 것이다. p 273 다소 자극적인 제목의 이유를 객관적인 연구자료의 검증 결과를 통해 낱낱이 파헤치고 있으며 우리에게 각성의 기회를 주고 있다. 더불어 지금 현재 우리의 사회가 청소년들에게 강조하고 있는 잘못된 흐름에 대한 부분도 조명하고 있다. 진정 이대로 가다간 계속적인 멍청한 세대들만 양산될 것 같은데 다른 한편으로 생각해보니 그것은 곧 소수의 사람들이 다수의 사람들을 지배하기 좋은 결과를 창출해 내는 것이 아닐까 싶은 우려도 든다. 청소년 자녀와 부모가 함께 읽기에 정말 좋은 도서이며, 이 시대를 살아감에 있어 지금 이 시점에서 제대로 된 인식의 변화를 주는 책이다. |
|
가장 멍청한 세대는 디지털의 위험성을 알려주는 내용입니다. 원작자가 외국인이어서 외국의 사례를 통해 설명한 내용이지만 나에게도 상당히 공감된 내용이었습니다. 아날로그에서 디지털로 전환되면서 많은 기술적인 면에나 생활의 편리함 등등 여러 가지 발전이 있었지만 정작 우리가 놓치고 간 부분들이 있다는 것을 실감하게 되었습니다. 제목에서 본 것처럼 참 아이러니컬 하게도 우리 선조들보다 더 고급 기술을 가지고 현대 문명의 이기 속에서 살아가고 있지만 멍청하는 표현이 좀 과격해 보일지 몰라도 책을 읽으면서 생각해 보니 나부터도 안다고 하지만 아는 것이 없는 멍청한(?) 세대인 꼴이 되었습니다. 문제는 앞으로가 더 큰 일인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디지털이 없이는 살 수 없는데 그럼 그 다음 세대는 더 멍청한 세대가 될 것인가라는 질문을 가지게 됩니다. 디지털로 인해 지식은 풍부한데 감성이 메말라서 결국 인본주의 사회가 아닌 물질만능이 더욱 심화된 사회가 되었다는 것을 이제 인간미를 찾아 볼 수 없는 사회가 된 것입니다. 그래서 최근 불어오는 인문학 열풍도 이제 사람들이 자각하고 이대로는 안되겠구나 해서 이런 현상들도 일어나고 있는 것 같습니다. 하루에서 수많은 정보의 홍수 속에서 살아가고 있는데 과연 우리에게 이로운 정보들은 무엇일까요? 많은 정보를 다 습득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정보 중에서 유익한 것들을 골라내는 것도 상당히 중요한 부분입니다. 가장 공감되는 부분이 독서입니다. 종이 책을 읽는 독서보다 요즘 전자책이 많이 나와서 디지털 기기를 이용한 독서양이 증가하고 있습니다. 두꺼운 책을 얇은 스마트폰에서도 자유롭게 읽는 편리함과 저렴한 가격이 장점이기도 하지만 돌이켜보니 종이 책으로 읽었던 내용들이 더 기억에 남기도 감동을 주기도 합니다. 그래서 전자책이 아무리 발전해가도 종이 책은 없어지지 않을 것이고 다만 전자책은 하나의 대안이 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전자책이든 종이 책이든 많은 양의 독서는 정서 발달에 도움이 됩니다. 특히나 어릴 때 책을 많이 읽어야 되는 것도 그 이유이기도 합니다. 요즘은 어린 유아기때부터 스마트폰을 접하게 됩니다. 아이가 좋아서 접하기 보다는 부모나 어른들의 강요(?)에 의해서 단지 육아의 편리만을 위한 것입니다. 아이는 스마트폰의 만화보다는 부모가 읽어 주는 책 한 권이 더욱 정서 발달에 이롭다는 것을 알지만 정작 현실에서는 어려운 부분이기도 합니다. 진정 다음 세대를 위한다면 약간의 불편은 있겠지만 하나 하나 바꿔나가야 하겠다는 생각이듭니다. 나부터가 디지털 사용을 조금씩 주려나가고 다시 감성을 회복하기 위한 방법들을 모색해 보고 실천해 봐야 될 것 같습니다. 이 책은 현상에 대한 자료와 통계가 정확하게 분석되어 있지만 그에 대한 대안, 대책에 대한 부분의 서술이 미흡합니다. 그것은 각자 생각해 볼 몫입니다. |
|
이 책의 주인공격인 10~20대, 그 모습이 낯설지 않은 이유는 나도 그 또래에 정말 무식하게 살았기 때문이다. 책은 대학교 1학년이 되어서야 읽기 시작했으니 무식하려면 옛 청소년이나 지금의 청소년이나 다름은 없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최근에는 그 경향이 헤어날 수 없는 방향으로 치닫기 시작했다. 나는 노는 게 지겹고, 대학교 친구들과 퀴즈 대회 문제를 풀며 심히 지식이 부족하다는 걸 깨달았기 때문에 독서를 시작하게 되었고, 그 계기는 막강해 Y대 도서관에서 죽치고 살 정도로 책을 끼고 살았다. 그간 읽지 못했던 모든 고전을 다 읽어버리겠다는 기조로 마구마구 읽어댔다. 군입대 후에도 동생 대학교에서(당시에는 휴학생은 도서대출이 안됐다) 책을 빌려 2주마다 다량으로 읽어댔는데, 전혀 지루하지 않고 즐거웠다. 그리고 그런 모습을 장교부터 원사,상사 모두가 이해해주었다. 책에 미친 놈이라 생각한 듯하다. 게다가 정훈실에서 마침 도서관을 운영하기 시작해 죽기살기로 읽었는데 그게 모두 재산이 되긴 했다. 다만, 고전을 읽고 나니 어지간한 소설에는 손이 안가서 대부분의 독서가 전문서적과 외국어에 편중되는 부작용도 생겼지만, 가장 멍청한 세대가 안된 것에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지금까지 독서는 삶의 일부로 영향을 미치고 있다. 고시 공부하며 읽지 못한 책이 현재도 통한으로 남아있다. 청소년들이 책을 많이 안 읽는다는 지적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 그대로다. 명문대학교 학생들도 책을 읽는 부류와 그렇지 않은 부류가 명확히 갈린다. 갑자기 안 읽기 시작한 원인이 디지털 때문이라고 보기에는 무리가 있지만, 스마트폰이 독서 시간을 갉아먹는 건 맞다. 상식을 알아야 할 필요를 못 느끼는 시대가 온건가. 책에 등장하는 지독히 상식적인 내용을 모르는 청소년이 한국에도 적지 않다. 인문 열풍이 부는 게 그나마 다행이다. 책에서는 인문, 역사, 종교에 대한 무지를 걱정했는데, 종교는 미국 사회라서 편입한 것 같다. 한국에서는 미래지향적인 사고를 펼치기 위해서도 종교는 빼도 좋다고 생각한다. 그저 인문과 역사만이라도 알고자 하는 마음이 청소년들에게 생기길 바랄 뿐이다. 디지털이 상식을 채우고, 독서로 회귀하는 사회 분위기를 조성하기 위해서는 과연 어떤 인센티브가 필요할까. 한국 입시에는 논술 고사가 포함되며 책 읽기를 권하는 시스템을 구축했다. 물론 이로 인한 부작용도 만만치 않다.그러나 시도마저 부정적 잣대로 훼손할 필요까지는 없다. 가장 멍청한 세대가 다음 세대에게 미칠 영향을 떠올려보자.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구글해봐로 압축될 자녀의 질문에 우리는 그저 뇌는 어디다 쓰라고 있는 거냐고 반문이나 하면 다행이다 싶을 정도로 심각한 상황이다. 한국의 교육도 점차 느슨해지고 있다. 입시 과목도 대량 축소되고, 선택의 폭도 늘어 공부량과 동시에 범위도 대폭 감소했다. 이를 만회하기 위해서는 역시 대학의 교육이 중요한데, 언제나 그렇듯 한국의 대학은 여전히 노는 곳 같다. 그저 취업을 위해 토익점수를 취득하고 교환학생을 다녀오는 게 전부인 대학생활에 변화가 필요하다. 멍청한 세대로 이끄는 주요 원인은 많지만, 토익이 공부라고 생각하는 풍토가 우스울 정도로 기가 막히다. 한국어 능력시험처럼 색다른 어휘와 문어형 문법을 묻는 시험이라면 공부라 할만 하다. 토익은 지나치게 쉬운 어휘와 전혀 도움이 안되는 듣기와 독해로 가득하다. 980점을 맞고 해냈다는 느낌을 받게 만든 현 국면이 언제나 아쉬웠다. 토익 광고를 볼 때마다 바보 같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는데, 이에 대한 변화를 이끌어 낼 책임은 나에게도 주어진 게 아닐까. 저자의 무식함 꼬집기를 엄청나게 동감하며 흥미롭게 읽었다.
|
|
불과 50년전을 생각해보면, 우리 나라는 전쟁의 위기에 놓여있는 상태였고 사람들은 하루 하루 먹을 것을 걱정하던 때였다. 근데 직금은 어떤가? 엄청난 발전을 이루었고, 또한 교육 수준도 많이 높아졌다. 예전에 7남매가 있으면 한둘은 공부시키고 나머지는 그들을 공부시키기 위해서 희생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요새는 그렇지도 않다. 모두가 교육을 받을 기회가 있고 , 능력이 있다면 자신의 능력을 이어나갈 수 있는 기회가 분명히 존재한다. 그런데 가장 멍청한 세대라니? 유치원에 한달에 100만원씩 바치면서, 온갖 해외 연수를 받고, 올림피아드에서 상을 받아오는 다재다능한 세대가 왜 가장 멍청한 세대일까? 저자는 그것을 디지털 때문이라고 말하고 있다. 심지어 20살이 안된 애들이랑은 이제 대화를 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니 도대체 무엇이 그들 세대를 그렇게 만들었을까? 가장 풍요롭게 누리고 즐기는 세대라고 생각했고, IQ도 우리보단 높아져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정반대의 이론이 뭘까 궁금했다.
이 책은 그들의 문제점을 6장의 주제를 거쳐서 찾고 있다. 그들이 지식에 어떤 문제가 있는지, 독서과 영상에, 학습, 전통, 미래에 어떤 문제가 있는지 말한다. 전통적인 지식을 습득하는 것을 거의 하지 않고 상식도 없다는 것을 타박하면서 책은 시작된다.최초로 전구를 만든 사람이 누구인지 모른다는 것...? 가장 간단한 정치적인 지도자의 이름도 모른다는 것? 저자는 그들을 대상으로 태도와 적성, 관심, 대학과 직장 준비 같은 누구나 갖추길 기대하는 기본적인 소양에 대해서 측정을 한다. 그리고 평가 결과에 대해서 최근 젊은이들의 지적 수준에 대해 많은 걱정을 하고 있었다. 그들은 고등교육을 받았지만, 사회에 관심이 없고, 오락 활동에 빠져서 목적이 없는 삶에 익숙해져 있다고 비판적으로 말하고 있다. 그들이 블로그와 게임을 사랑하고, 어렸을 때 부터 아이팟을 끼고 들으면서 안정감을 얻었기 때문에 책에 할애할 시간을 줄였기 때문이라고 문제점을 찾기도 한다.
역사적으로 봤을 때 시민은 스스로 지식을 키움으로서 교회와 지주들로부터 자유로움과 독립을 얻을 수 있었다. 그 수많은 피나는 과정을 거쳐 이룩해놓은 현실을 그들은 아무 노력 없이 댓가 없이 얻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것을 진실로 이해해야 더 노력하는 삶을 살텐데, 그들은 이마저 관심이 없어 보인다. 이것은 비단 이 세대만의 문제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어느 세대에나 앞서 나가는 지식인은 있고, 끌려 오는 무리들도 있다. 하지만 디지털 기계에만 관심을 쏟아도 친구들간에 대화가 잘되는 10대를 거쳐온 이들은 분명 역사나 전통, 그리고 미래에 대한 토론을 즐기는 것을 50년전 세대들만큼 하지는 않을 것이다. 저자는 이를 우려하고 왜 아직도 그런 주제들이 중요한지 10대에게 자신의 의견을 전하고 있다. 지적인 풍요 속에서 수많은 책을 읽고 정보를 접할 수 있는 좋은 시대에 살고 있으니, 그 수많은 정보를 흡수해서 자신만의 것으로 만들 생각은 없는가? 젊은이들이여 깨어나라!! 고 인생의 선배로서 진지한 조언을 해준다.
|
|
책을 덮을때까지 시종일관 내가 한 것은 고개 끄덕임과 '음...' 정도의 말이 다 였다. 뭔가 이의를 제기하기엔 '그래 맞다...' 하는 공감이 더 커서였을 것이다. 그나마 다행인 건 난 이 가장 멍청한 세대는 벗어나 있구나 하는 것 정도랄까? 그러나 이것도 읽다보니 30대인 나도 그나물의 그밥이었다는게 안타까운 현실이다--;; 심지어 작가는 30세 이하는 아무도 믿지 말라고 한다. 왜냐하면 그들은 과거 어떤 또래집단이던간에 상상도 할 수 없을 만큼의 일류 문화와 필수 정보를 누리고 살고 있지만, 이전 세대와 비교했을때 실제로 그 어떤 이전 세대보다 무지한 점 때문에 한 말이다. 더 많은 지식을 습득할 기회가 있고, 취향을 높일 수 있는 기회가 있어도 그들은 외면한다. 아니 아예 신경조차 쓰지 않고 산다. 그 결과는 점점 더 몽매한 지식인(?)을 산출하고 있을 뿐이다. 그래서 작가는 '가장 멍청한 세대'에 대해 진지하고 냉철하게 되돌아볼 것을 제안하고, 교실과 도서관, 쇼핑몰과 아이의 침실을 휩쓸며 급속히 퍼져가는 테크노 열풍을 식펴보고자 한다. 우리 사회에서 성인이 부여받은 책임 중 하나는 다음 세대를 사회 시민으로 육성하고, 문화적 유산을 이어갈 수 있도록 가르치는 것이라는 사실에 모두 동의할 것이다. 윗세대는 나이를 먹으면서 젊은이가 지니지 못한 경험과 균형감을 얻는다. 하지만 청소년은 지금 여기에서 일어나는 일에만 초점을 두고 살아간다. ...중략...아이에게는 유예와 은둔의 시간이 필요하다. 사려 깊은 시민으로, 안목 있는 소비자로 자라려면 청소년은 반드시 이런 식의 패거리 문화와 학교 담장을 벗어난 세계에 대해 생각해보어야한다. 그러나 자기 혼자 그렇게 할 수는 없다. 또래 집단의 압력이 너무 강력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어른이 아이가 그 속에서 빠져나올 수 있게 도와주어야 한다. .....중략...청소년은 서로 강렬하게 의식하고 사회적 압력을 느낀다. 10대에게 또래로부터 따돌림 당하는 것보다 나쁜 일이 있을까? 이는 상상할 수 없을 만큼 큰 위험이기 때문에 10대는 이런 사회적 압력을 당연하게 여기며 흐름을 따라가게 된다. ...중략...부모와 교사가 이런 끊임없는 커뮤니케이션을 대체할 방안을 마련해주지 않는다면 상황은 점점 나빠질 뿐이다. 우리는 과연 성인으로 이 책임을 다하고 있는가? 이제 아이들은 책에서 필요한 정보를 찾기보다는 인터넷 접속을 통해서 보다 쉽게 클릭 한번으로 정보를 얻을 뿐이다. 그리고 또래 집단에 휩쓸려 트윗터나 페이스북, 카톡으로 모든얘기를 주고받을뿐이며 짧고 간결한 언어파괴와 생각파괴를 계속적으로 이어가고 있다. 책이나 실제 박물관같은 곳을 다녀와서 정보를 얻는 것이 아니라 누군가가 만들어놓은 간단한 지식을 답습할뿐이고, 거기에서 더 발전된 무언가가 생겨나는 것이 아니다. 값싼 정보의 양만 늘뿐이지 양질의 정보를 찾기 힘든것이 현실이다. 1980년대 말부터 24시간 케이블 뉴스가 주된 뉴스 채널이 되고, 인터넷의 폭발적인 성장이 일반 대중들의 뉴스 습관을 바꾸어 놓았음에도 불구하고, 실제 설문 조사에서 봤을 때 이런 디지털 혁명이나 시청자의 습관이나 주요 채널변화가 실제로 국내외 시사 지식에는 거의 영향을 끼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 이런 사례의 반례라고 할 수 있겠다. 단편적이긴 하지만 우리 프로그램중에 올 해 많은 인기를 끓은 썰전같은 프로그램도 물론 정보전달이나 문제에 대한 시각 제시에서는 신선하고, 변화를 이끌었다 볼 수 는 있지만 실제로 이 프로그램이 그 인기만큼 시청자들의 시사지식에 대해 얼마나 많은 영향을 미쳤는지는 미지수며, 위와 같은 설문조사에 비춰봤을땐 거의 차의가 없을 가능성이 높다. '읽고 쓰는 웹'이라며 기술과 인간의 관계를 바꾸어놓고 있으며, 사물이 어떻게 작용하는지 구 패러다임의 시대를 새로 쓰고 있다. 이것을 가능하게 만든 도구는 월드와이드웹www이다. 수백만 사람의 사소한 참여를 한데 모으게 해주는 도구이며 그들의 기여를 중요하게 만들어주는 것이다. 청소년은 교실 안에서, 가장에서 홀로 이런 열정을 받아들인다. 이런 분위기는 청소년이 전자 기기를 만지작거리면 보내는 시간이 올바른 학습 습관인 양 착각하게 만들고 그들에게 관용적인 태도를 취하게 한다. 그뿐만이 아니라 '세서미 스트리스'효과(사전 사후 평가 결과 세서미 스트리트를 자주 시청하는 아동은 글자, 수 , 기하학적 형태 같은 상징적 표상, 문제 해결, 이유 말하기 등 제작 목표에서 의도한 기술 습득에 효과가 있음이 밝혀짐)를 강화한다. 즉, 학습이 재미있지 않다면 아무 소용이 없다는 주장이다. 도대체 왜 애서가들과 전통주의자들은 웹을 이토록 비난하는 것일까? 영광스럽고 젊은 지성이 탄생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웹은 쉴 틈 없이 확장되고, 할 수 있는 한 모든 것을 흡수하고, 매시간 더 많은 지식과 미가 쌓여가지만, 웹을 창의적으로 사용하는 디지털 원주민에게 이런 마법은 일어나지 않았다. 여기에는 어떤 호혜적인 효과도 없었다. 디지털 열성주의자들은 디지털의 기적적인 진화를 목도했으며 소비자에게 동일한 발전이 일어나리라 추측했지만, 이를 뒷받침해주는 어떤 증거도 없었다. 이런 디지털 미디어의 확산과 sns 활동들이 우리 아이들에게는 어떤 영향을 주고 있을까? 청소년들은 디지털 기기에 접속해서 기분 전환을 하는 대가로 지불하고 있는 기회비용은 사실 어마어마할지도 모르다. 우리의 인생을 통틀어 가장 중요한 지적 성장을 이룰 수 있는 시기인 10대 후반에서 20대 초반의 시간, 이 시기는 초중고등학교에서 기본적인 기술을 터득하고 훌륭한 시민이자 양식 있는 소비자가 되기 위한 수준 높은 지식과 교양을 쌓아야 하는 그 시기를 잃어버리기 때문이다. 가령 양서를 읽고, 위대한 사상을 논하고, 역사를 논평하고, 도덕적인 양심을 형성하는 시기로 악시를 연습하거나, 외국어를 배우거나, 정치 방송을 볼 시간들이 그러니까 자신을 발전할 수 있는 시간이 아니라 그냥 흘려보내는 시간이 되어 사라져버리게 된다는 것이다. 나만해도 얼마나 많은 시간을 스마트폰에 붙들려 사는가. 그렇다고 해서 내가 지금 청소년들보다 좀 더 낫다고 어떻게 자부할 수 있을까. 갑자기 어깨가 무겁고, 부끄러워졌다. 의지가 있다면 꾸준한 노력과 기민한 지도를 통해 무지를 극복할 수 있다. 책을 더 읽고, 박물관을 방문하고, 수업을 들으면 지식은 얻을 수 있으니까. 그러나 의지 없는 마음은 지식을 얻을 수 없다. 이미 알 만큼 안다고 역사, 철학, 문학을 적용해서 만족할 만한 결론을 얻기란 쉽지 않다. 그래서 수많은 젊은이가 스스로에 대한 기대와 능력의 부조화라는 문제에 봉착하게 된다. 이들은 이를 인식조차 하지 못하고 의기소침해 할 뿐이다. 좀 전에도 말했지만 그냥 끄덕임으로 동조할 수 밖에 없다. 충분한 시간동안 나를 발전시키고 가꾸어야하는데 그걸 가꾸고 나서도 보다 완전한 상태, 보다 높은 수준의 상태가 되기 위해서 더 많은 노력이 필요로한다. 그러나 지금의 우리는 너무 손쉽게 포기해버리고 만다. 지식과 민주주의는 불가분 관계이다. 민주주의 위해서는 충분한 정보를 지닌 유권자가 있어야 하며 지식의 결핍은 곧 시민의 쇠퇴와 같다. 이는 민주주의가 시민의 참정을 강요하지 않는 다는 점에서 문제를 낳는다. 자유 사회를 위협하는 것 중 하나는 개인적인 이익이 적다는 이유로 시민이 공공의 사건에 관심을 보이지 않는 것이다. 지식은 대가 없는 헌신처럼 도덕심을 높여준다. 지식은 사람들이 자기 자신과 현재에서 시야를 돌려 순간의 만족감보다 폭넓은 사회 속에서 자신들의 필요성을 확립하게 만들어준다. 신념을 심어주고, 개인의 이익보다 시민으로서의 책임을 우선하게 해준다. 종교, 정치, 문학 등 모든 분야에서 일상적 활동을 넘어서게 해준다. 전통은 또한 수준 높은 지도자를 지속적으로 양성하게 해준다. 시민이 과거에 모범을 보여준 이들을 경시하면 편하적이고 물질적인 기반에서 현재 지도자들을 판단하게 되고 지도자들도 이런 가치에 따라 행동하게 된다. 왜 투표를 해야하는가에 대한 답변이다. 실제 오늘날의 낮은 투표율이 현재 우리 정치에 미친 영향을 생각해볼때 얼마나 중요한 문제인지 알 수있을 것이다. 잘못된 한표 행사가, 또는 행사하지 않은 한표가 만들어낸 결과 말이다. 앞에서 말한 과도한 디지털 노출이 실제로 필요한 지식, 지성을 쌓는데는 도움이 되지 않고, 해야하는 그런 부분들에 대한 무지를 만들고 그 무지는 점점 정치에 대한 무관심으로 이어지게 만들었다. 물론 그것이 100% 연관이 있는 필요충분조건은 아닐지라도 적어도 그 연관성이 사슬처럼 이어져 있는 것은 사실이다. 이 사실을 점점 부정할 수 없다는 게 안타깝다. 지식인들은 당면한 문제를 직시해야 마땅하지만, 이와 별개로 사상과 사건 속에서 호흡하고 살아나가야 한다. ...중략...건전한 사회에는 지식인들의 파이프라인이 필요하다. 단, 유명한 지식인에 그쳐서는 안된다. 사색과 토론을 지속하는 분위기가 정치에 관심있고 재능 있는 학생뿐 아니라 훨씬 많은 이에게 영향을 줄 수 있어야 한다. 민주주의는 사상가와 이론가로 이루어진 엘리트 집단이 아니라 지식을 갖춘 시민에 의해 번영한다. 그리고 더욱 광범위한 지식이 대중에 확산될 떄 더 많은 지식인이 양성될 것이다. 청소년들이 왜 공부를 하냐고 물으면 어쩔수 없으니 그냥 한다고 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더욱이 지금 당장에도 특별히 필요없고, 살아가는데도 지금 배우는 것들이 뭐가 필요하냐 한다. 그러나 그때 배우는 지식들은 단순이 지식, 즐기기 위한 지식이 아니다. 살아가는 동안에 더 나은 판단을 하고, 더 나은 선택을 할 수 있는 밑걸음이 되어 줄 것이고 이것이 개인의 일뿐만이 아니라 속해 있는 공동체, 사회, 국가에 다 영향을 미치는 것이다. 그래서 청소년들은 당장의 지금만을 생각해서가 아니라 미래에 대해 생각할 필요가 있다. 청소년은 더 이상 쿨 한 생각을 하거나 옳은 행동을 하지 않으며 도덕적 버팀목을 바꾸어야 한다. 진실을 말하자. 가장 멍청한 세대가 무지를 극복하려면 자신들이 몰두하는 문화가 사소한 갈등으로 이루어진 하급한 영역이며, 성인기야말로 시민적 역사적 문화적인 인식의 영역이자 영속적인 사상과 투쟁의 영역이라는 것을 인정해야 할 것이다. 청소년은 다른 모든 세대가 그랬던 것처럼 역사의 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으며 그들의 시간도 곧 끝날 것이다. 그러나 그들이 남긴 습관은 계속될 것이다. 변화가 일어나지 않는다면 그들은 자신들이 상속받은 특권을 누릴 자격이 없는 세대로 기억될 것이다. 어쩌면 그들은 위대한 유산을 영원히 잃어버린 세대로 기억될지도 모릅니다. 작가의 결론이지만, 나와 같은 생각이라 옮겨본다. 생각하는 어른으로써 꼭 한번은 읽어봐야할 책 같다.
|
|
이런때 디지털이 미래를 위태롭게 만든다고 설파하는 책을 만났다.[가장 멍청한 세대 : 디지털은 어떻게 미래를 위태롭게 만드는가] 책 제목이 상당히 강렬하다. 최근 미래 전망에 관한 두권의 책을 만났다. 한권은 디지털 기기들의 발전으로 인해 단순 노농뿐만이 아니라 감성이 필요한 수많은 일에도 기계들로 인해 일자리가 사라질 것이라는 책과, 감성이 필요한 일엔 아직 기계가 대체 되긴 힘들것이며 기계와 인간이 공존하는 미래가 될 것이라는 책이다. 두권다 기술 발전의 우려를 표하기는 했지만 [가장 멍청한 세대] 처럼 강하게 우려를 표하지는 않았다.
물질과 지적 풍요가 넘치는 요즘, 과거 어느 때보다 지적 성장을 이루기 좋은 시대를 살고 있는 청소년들이지만, 아이러니 하게 과거 어느 때보다 가장 멍청한 세대가 되어 버린 청소년들, 이렇게 까지 심했던 적은 없다고 하는데,과연 그들을 이렇게 멍청하게 만든 건 무엇인가? 지적이고 충분한 정보를 지닌 사려 깊은 시민을 키울 조건이 갖추어져 있지만 그렇지 못한 요즘.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시기인 청소년기에 지적 성장이 이루어 지지 않는다면 미래가 암담하다고 하는데 가장 멍청한 세대를 만든 환경은 무엇이며, 가장 멍청한 세대에게 생기를 불어 넣을 수 있는 방법은 어떤것이 있는지를 생각해볼 수 있게 하는 [가장 멍청한 세대]
이 책이 출간 된 해는 2008년이다. 당시 상당히 우려했던 저자지만, 그런 우려에도 불구하고 가장 멍청한 세대는 줄어들지 않고 오히려 늘고 있는 듯 하다. 이 책은 가장 멍청한 세대가 아닌 가장 똑똑한 세대를 살아가야 할 청소년들에게 꼭 필요한 책이다. |
|
“교황은 어디에 사나요?” “영국이요.” “영국 어디죠?” “음……. 파리.” 위의 이야기를 누군가 만들어 낸 우스갯소리로 여길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이 대화는 미국의 텔레비전 프로그램인 <투나잇 쇼>의 ‘제이 워킹’ 코너에서 실제로 등장했던 대화다. 이처럼 ‘제이 워킹’은 상식적인 사실을 몰라 당황하는 출연자들의 모습을 적나라하게 내보냄으로써 시청자들에게 재미를 선사하는 코너다. 『가장 멍청한 세대』의 저자인 마크 바우어라인은 바로 이 우스꽝스러운 쇼에 주목한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마크 바우어라인은 쇼의 익살스러움이 아니라 디지털 문명이 초래한 ‘불편한 진실’에 초점을 맞춘다. 미국의 에모리 대학 영문과 교수인 마크 바우어라인은 하나의 종교가 되어버린 디지털 광풍과 테크노 광풍에 반기를 든다. 바우어라인의 『가장 멍청한 세대』는 기술이 발달했음에도 불구하고 미국 청소년들의 지적 수준은 떨어졌다는 사실을 소리 높여 말한다. 바우어라인은 각종 실증적인 자료들을 바탕으로, 소중했던 과거의 습관과 유산을 잃어가고 있는 청소년들의 삶을 보여주고 있다. 프롤로그에서 바우어라인은 청소년들의 특성에 주목하는데, 바우어라인에 따르면 청소년은 친구들이 소속되어 있는 패거리 문화 혹은 또래 문화의 압력을 매우 강하게 받는다. 이와 관련해 바우어라인은 청소년들이 또래 집단에서 벗어나 넓은 시야를 가지기 위해서 어른들의 도움이 필수적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의 상태와 형편은 그렇지 못하다. 새롭게 등장한 테크놀로지는 또래 집단의 결속을 공고히 하였고, 삶에 있어서 모든 조건 및 습관들을 뒤바꾸어 놓았다. 바우어라인은 이러한 상황으로 인해 청소년들의 지적 및 정신 수준이 과거에 비해 심각하게 저하되었다고 주장하면서, 이 문제가 민주주의의 종언으로까지 이어질 수도 있는 심각한 사태라고 지적한다. 바우어라인은 이러한 “가장 멍청한 세대”의 특징을 지식, 독서, 영상, 학습, 전통, 미래 등 총 6장에 걸쳐 상세히 기술하고 있다. 웹(web)구조로 이루어진 인터넷은 애초에 교육적 목적으로 만들어진 매체가 아니며, 순차구조(sequence)로 이루어진 책과 같은 매체에 비해 관여도가 매우 낮은 매체다. 한 마디로 영상 매체나 전자 매체는 순차구조로 이루어진 책과 비교했을 때, 누적적인 교육효과를 불러오기는 적합한 매체가 아니라고 할까... 실제로 손톱 깎으면서 TV는 봐도, 책은 못 읽지 않는가? 이런 점에서 멀티태스킹이란 것은 사실 하나의 환상일지도 모른다. 우리는 그저 '주의산만'을 멀티태스킹이라고 부르 것일지도. |
|
올해 들어 두 번씩이나 폰을 분실,파손해서 기기변경 및 번호까지 바뀌는 일을 접하고 단통법 후폭풍에도 어쩔 수 없는 선택을 해야만 했기에 결국엔 새로운 폰으로 다시 하고야 말았다.생각해 보면 스마트폰이 굳이 필요 이상은 아닌데 반해 누구나 사용하고 있기에 그 흐름을 타는 나도 별 수 없는 사람였던 것이다.흔히 길거리를 걷더라도 대중교통이나 신호대기 중 서 있는 사람들의 모습엔 하나같이 스마트폰을 매만지고 있는 진풍경이 보인다.이미 전 세대에 걸쳐 스마트폰 중독인게다.그 중에서도 10대 청소년들의 스마트폰 중독은 가히 심각 수준에 이르러 학교에서조차 통제하고 있으며 그 세상에서 하루의 시작과 끝을 맺는 수가 상당수에 이르고 있기에 가정이나 학교에서 관심을 가져야 한다는 사실에 외면해선 안 될 듯 하다.인터넷을 비롯하여 스마트폰등 디지털 도구는 이젠 명실공이 없어서는 안 될 일상 속 필수 불가결한 존재로 자리잡고 있기에 그 이면엔 어두운 미래가 기다리고 있음을 지각해야 하는지도 모를 일이다.
이때,'디지털은 어떻게 미래를 위태롭게 만드는가'란 부제 아래 디지털 시대에 살고 있는 디지털 세력이 바로 '청소년'이고 그들에게 진짜 지적성장 및 바람직한 미래를 바라보는 전반적인 제동을 걸어주는 진솔한 내용을 담고 있는 '가장 멍청한 세대'란 책을 만났다.읽고,읽기를 거듭해서 동이 텄는데도 불구하고 내 시야,머릿속은 아직도 무지의 긴 터널을 헤매는 기분을 맛 보았다.마치 광속으로 달려오다 지나간 끝은 더 큰 역풍이 되어 오늘날 청소년을 인류의 기술로 인해 누리는 동시에 곤욕을 호되게 치루는 자승자박의 형국인 듯 하니 깜깜하고 답답하기 그지없기 때문이다.'가장 멍청한 세대'는 디지털 세대가 지식/독서/영상/학습/전통/미래등 관점에서 진화가 아닌 이탈을 하며 그 속에서 소중한 자산과 습관을 잃어가는 것과 디지털 도구의 사용과 목적에 비판적인 의견을 가감없이 솔직하게 말하고 있다.인터넷의 편리함이 길들여 놓은 현대사회의 병폐가 성인을 넘어 이젠 청소년의 성장기를 좌지우지하고 있기에 그들이 누리는 모습에 속된 것들을 바로잡지 않는다면 저자가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들을 잃고 진짜 똑똑할 세대가 멍청한 세대가 되어가는 것이다.가장 좋은 시기인 그때 다른 중독이 아닌 디지털 중독으로 인해 의지력 부족이나 정신적인 문제 그리고 신체 시스템까지 엉망진창이 되어가는 악영향을 볼때 나 역시도 저자가 강조하는 이 시대를 잠식하는 무지와 무관심에 맞서고 싶고,학생들을 가르치는 입장에서 진정 읽는내내 생각해 볼 문제들과 그것을 풀어나갈 날카로운 식견과 그들이 뇌의 쾌락에 집착하는 행동에 대해 벗어날 수 있는 다른 즐거움의 통로를 통해 얻는 보상이 얼마나 값진가에 대해 알려주고자 한다.
마지막으로 20세 이하의 자녀를 둔 부모라면 반드시 읽어야 하는 한 권의 책이 '가장 멍청한 세대'이면서,흔들리는 교단,가장 위험한 최악의 아이들이 아닌 올바르게 일어서고 자리 잡을 수 있도록 이 책을 부모,교사 뿐 아닌 모두가 일독했으면 하는 바람이다.더이상 달콤한 유혹,위험한 중독이 아닌 더 뛰어난 도구를,더 뛰어난 지성을 바꿀 수 있는 그런 날이 오기를 희망한다.
|
|
2008년에 저술된 책이다. 왜 이 표현을 서두에 썼냐면..IT기술의 총아 스마트폰이 득세하기 전이라는 말이다^^ 저자는 독서를 강조하는 에머리 대학 영문과 교수다. 그래서 제목에서부터 저자의 의도는 알 수 있다. 여섯 장의 제목인 "지식, 독서, 영상, 학습, 전통 그리고 미래"를 읽으며 내가 하고 싶었던 말을 교수답게 각종 리서치 데이타와 관찰 결과를 통해 풀어주는데 공감했다. 그리고 마지막 장 "미래"를 읽으며 단순히 그가 청소년의 독서부족만을 질타하고자 이 책을 저술한 것이 아님을 알았다. 아..그래서 인물과사상사에서 번역출판했구나. 그렇다. '미래'편 서두에 그는 이런 문장을 썼다. "립 밴 윙클의 이야기를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헉...내가 모르는 인물인데..이게 무슨... 인터넷으록 검색하니 이렇게 나온다. 1. 립 밴윙클: W. Irving 작의 The Sketch Book에 나오는 이야기, 또는 20년 동안 계속 잠자다가 깨어서 세상이 변한 데 놀란 그 주인공의 이름. 2. 시대에 뒤떨어진 사람; 잠만 자고 있는 사람. 윌리엄 어빙의 단편인데 (관심가진 이는 검색해서 읽어보기) 현대 어린 세대들이 현재만을 즐기는 패턴으로 학습하고 테크놀로지에 심취해 영악해보이고 이전세대보다 더 나아진 것 같아 보이지만 결국 왕조시대에 자유없이 살던 시대의 사람과 동일해져서 시민의식이나 민주주의사회에 적합한 인물로 자라지 못하여 퇴보하는 역사를 경험하게 될 것이라는 강한 경종을 울리고자 쓴 글이라는 사실이다. 그렇다. 아빠세대보다 훨씬 IT시대에 잘 적응하고 있는 이들에게 선거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고 정치는 그들에게만 맡겨두는 일이 당연시 될 때, 우리 사회가 어떻게 돌아갈 것인가는 예측불가능한 일이 아니다. 그래서 '가장 멍청한 세대'라는 표현이 다소 부정적이고 공격적으로 보여도 대단히 적합한 표현이라고 공감을 표시한다. 다소 딱딱한 부분이 있긴 하지만 꼭 읽어야 할 책이다. |
|
자극적인 제목이지만 내용은 더욱 자극적입니다. 제목 그대로 지금 어린 세대가 가장 멍청한 세대임을 천명하는 내용이지요. 그 이유는? 기술의 발달이 가장 멍청한 세대를 만들었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보면 기술 발전에 저항하는 꼰대의 한마디 같지요? 그렇지만 이 책은 제법 객관적인 데이터를 기반으로 '멍청한 세대'를 증명하고 있습니다. 컴퓨터가 각 가정에 도입되면서, 컴퓨터를 이용한 교육이 시작된지 벌써 한참이 지났습니다. 정확히 어느 시점부터냐라고 콕 집어서 이야기할 수는 없지만 시작을 90년대, 활성화를 2000년대로 잡아야겠지요. 그렇다면 당시 이야기했던 컴퓨터를 이용한 교육의 효과가 실제로 나타났냐? 저자는 단호히 없다고 말합니다. 오히려 각종 테스트의 결과 독해력들이 감소했다는 겁니다. 그렇다면 독해력 대신에 다른 창조적인 무언가가 보이는가? 그런 증거도 없다고 합니다. 10대때부터 특출난 재능을 보이는 아이들을 초점으로 보면 특별한 아이들이 보이지만, 특별한 아이들의 비율은 언제나 소수이고 전체의 평균을 보면 나빠지고 있다는 거죠. 가장 기초적인 '사용 단어수' 같은 것들이 감소하고, 역사나 국어에 대한 상식 자체가 파괴되고 있다는 겁니다. 그렇다면 어린 아이들이 너무 멍청해서 이런 선택을 하는 걸까요? 그런 의미는 아닙니다. 원래 10대 시절은 또래집단의 압력에 가장 약하고 어른들과 차별화하려는 마음이 언제나 있는 세대입니다. 그러나 그런 마인드가 기술 발전과 맞물려 지식 저하로 연결된다는 겁니다. 이전 세대에는 집으로 돌아가면 적어도 또래 집단과 차단되어 가정에 소속되어 있었습니다. 오늘날은 핸드폰과 PC를 통해 언제나 연결되어 있죠. 예전에는 공부를 하기 위해서는 이 책 저 책 보는 수 밖에 없었죠. 오늘날은 검색 엔진이 모두 찾아줍니다. 아이러니하게도 공부를 하기 위해서는 역사상 유래 없이 좋은 환경인데, 문제는 굳이 10대가 공부를 하고 싶은 생각 자체가 없다는 거죠. 전통을 보전해야 한다는 생각은 무척 고루하게 보이기 십상이지만, 한 세대만의 활력의 결과물만 살펴본다면 사실 더 큰 문제에 봉착합니다. 즉 지금 젊은 세대의 결과물은 다음 세대에는 다시 잊혀지는 것이거든요. 책을 통해서건 무엇을 통해서건, 과거 사람들이 했던 고민을 다시 살펴보는 것은 오히려 시간을 절약해주는 것인데도, 젊은 세대의 책을 멀리하는 유행과, 긴 글을 이해하지 못하는 독해력 부족이 세대간의 연결 가능성 자체를 지워간다는 슬픈 내용입니다. 그렇지만 사실 대안은 알 수 없죠! 지식을 강조하는 어른들이 멘토가 되어주려고 한다고 받아들일 십대는 아니구요. 웹페이지는 점점 이미지와 짧은 단문으로 무장하고, 이해 못하는 청소년들을 위해 좀더 이해하기 쉬운 방법을 간구합니다. 시장에서는 도저히 해결할 수 없는 문제입니다. 이건 이반 일리히의 책을 읽으면서도 생각했었던 단점이긴 합니다. 네트워크 방식의 교육은 의도가 충만한 사람들에게는 좋습니다. 그렇지만 대다수의 의욕 없는 사람은 어떻게 해야 하죠? 왠지 이로서, 문명의 멸망에 가까워지는 기분도 드는데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