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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러누운 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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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이 책은 중단편이 수록된 선집이다. 15개의 작품 중, 가장 인상 깊은 작품은 '맞물린 공원'이다. '드러누운 밤'이나 '어머니의 편지'등도 좋아하지만, '맞물린 공원'을 이길 순 없다. 나는 '맞물린 공원'을 보자마자 푹 빠져들었다. '맞물린 공원'은 아주 짧은 단편 소설이다. A4 한 장에 다 들어오며, 다 읽는 데 5분도 채 걸리지 않는다. 하지만 책을 다 읽고 오는 감동은 꽤 오래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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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이 책은 중단편이 수록된 선집이다. 15개의 작품 중, 가장 인상 깊은 작품은 '맞물린 공원'이다. '드러누운 밤'이나 '어머니의 편지'등도 좋아하지만, '맞물린 공원'을 이길 순 없다. 나는 '맞물린 공원'을 보자마자 푹 빠져들었다. '맞물린 공원'은 아주 짧은 단편 소설이다. A4 한 장에 다 들어오며, 다 읽는 데 5분도 채 걸리지 않는다. 하지만 책을 다 읽고 오는 감동은 꽤 오래간다. 이 단편 소설을 처음 접한 지 벌써 5년도 더 넘은 것 같은데, 아직도 나는 '맞물린 공원'에 취해 있다. 그래서 이 책을 갖고 싶었고, 결국에는 갖게 됐다. 기쁘다. 


2. '맞물린 공원'은 너무 짧다. 그렇기 때문에 소설의 구조와 내용을 함부로 적을 수 없다. 아직 읽지 않은 사람들에게 예의가 아니다. 몇 자 적을 수 없어 답답하고, 표현할 수 없는 내 무능에 화가 난다. 최선을 다해 몇 자 적어보자면, 소설과 현실의 경계가 모호해진다는 표현만 적을 수 있을 것 같다. 이 선집은 정말 모호한 것 투성이다. 몇몇 소설은 뒤에 나온 해설을 읽어보아도 온전히 나의 것으로 소화할 수 없었다. 


3. '드러누운 밤'을 읽고 난 다음에 오는 감동도 꽤 오래 지속된다. 이 책의 저자 '훌리오 꼬르따사르'는 정말 천재라 불려도 손색이 없다. 어떻게 하면 이런 작품을 쓸 수 있는지 정말 궁금하다. 슬쩍 말을 흘려보자면, 이 단편은 '꿈'과 관련이 있다. 구운몽? 호접지몽? 궁금하시다면 읽어보시라. 이번 연휴에 책 한 권 읽는 것도 나쁘진 않다. 중단편 선집이라 부담도 적다. 

YES마니아 : 플래티넘 h**********n 2017.05.04.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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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소설의 대가, 꼬르따사르의 환상문학을 접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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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소설의 대가, 꼬르따사르의 환상문학을 접하다.    중남미 문학의 대표 소설을 꼽으라고 하면  많은 사람들이 세르반테스의 <돈키호테>나 마르케스의 <백년 동안의 고독>을 떠올리지만 처음으로 맛본 중남미 문학은 마리오 바르가스 요사의 <판탈레온과 특별 봉사대>(문학동네, 2009)였다. 영미문학이나 일본, 중국, 프랑스, 독일 문학과 다른 매력이 온 몸을 휘감았고 책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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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소설의 대가, 꼬르따사르의 환상문학을 접하다.

 

 중남미 문학의 대표 소설을 꼽으라고 하면  많은 사람들이 세르반테스의 <돈키호테>나 마르케스의 <백년 동안의 고독>을 떠올리지만 처음으로 맛본 중남미 문학은 마리오 바르가스 요사의 <판탈레온과 특별 봉사대>(문학동네, 2009)였다. 영미문학이나 일본, 중국, 프랑스, 독일 문학과 다른 매력이 온 몸을 휘감았고 책을 덮고 나서 마리오 바르가스 요사가 쓴 다른 작품들을 찾아가며 읽었다. 그 후 남미 문학은 우리가 알고 있는 대표적인 작가는 물론이고 대가의 작품임에도 소개되지 않았던 볼라뇨의 문학도 속속 번역되고 있다. 이처럼 장편, 단편 할 것없이 다양한 작품이 번역되고 있어 그 어느 때보다 중남미 문학을 다채롭게 즐길 수 있다.

 

<드러누운 밤>은 창비 세계문학 서른 아홉번째의 책으로, 훌리오 꼬르따사르 탄생 100주년 기념으로 우리나라에 처음으로 번역되는 작품이다. 온라인에서 보는 것 보다 실제 표지가 더 예쁘다. 진한 갈색이 빈티지하게 칠해져 있고, 까슬까슬한 표지가 촉감이 좋아 책이 쉬이 읽힐 것만 같다. 아무튼 처음으로 접한 훌리오 꼬르따사르의 책은 생각만큼 쉬이 접할 수 있는 단편이 아니다. 단편소설의 대가이지만 그의 글쓰기는 굉장히 불친절하다. 모호한 느낌과 어디서 이야기가 끝이 날지 모르는 불안감을 고조 시킨다. 15편의 단편 중 중편소설은 '추적자'가 유일하다. 유일한 이 중편 소설은 미국의 재즈 음악가 찰리 파커의 전기적 사실을 영감을 얻어 썼다고 한다. 14편의 단편은 짧고도 묵직하며, 그가 무엇을 드러내는지 알 길이 없다.

 

현실적이면서도 때로는 무엇 때문에 주인공들이 집을 점거 당하며 사는지 그는 소설을 통해 말하지 않는다. 점점 좁아지는 공간 아래서 펼쳐지는 이야기들. 그가 말하고자 하는 의식 사이에서 보여지는 불안감과 합당한 의식을 통해 우리는 훌리오 꼬르따사르의 글에 모호함을 느끼며 그의 문학에 젖어 간다.

 

훌리오 꼬르따사르는 위에 언급된 마르케스와 마리오 바르가스 요사와 함께 아메리카 소설 붐을 주도한 대가다. 그럼에도 우리에게 많이 낯선 이유는 아직 그의 책들이 번역되지 않아 다른 이들과 달리 그의 명성을 알리가 없었던 것 같다. 그는 벨기에 브뤼셀에서 아르헨티나 부모 사이에서 태어나 성장했고, 4살이 되던 해 아르헨티나로 돌아와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정착하며 살았다.<현존>(1938)을 첫 시작으로 작품활동을 시작했으며, 38살에 첫 환상문학 단편집인 <동물 우화집>을 펴내고 프랑스 정부 장학금을 받아 유네스코 번역사로 일하며 평생을 보냈다. 그 후 만년에는 쿠바 혁명을 지지하며 적극적인 정치 활동에 참여했다고 한다. 현재 그는 1984년에 사망하여 몽파르나스 묘역에 안치되어 있다고 하는데 그래서 그런지 그의 단편 곳곳에는 아르헨티나의 정치적인 면면이 곳곳에 드러난다.

 

그의 중단편을 보고 뭐라고 평하기에는 그의 문학은 이전까지 볼 수 없는 비현실적인 문제와 현실적인 문제가 부각되지 않으며 서술 조차도 언급되는 면이 없다. 그의 탄생 100주년 기념으로 처음으로 소개된 것처럼 이제부터라도 그의 언어를 어떻게 이해하고, 받아들여야 하는지 차츰 이해하면 될 것이다. 우선, 14편의 단편과 1편의 중편 그리고 40페이지가 넘는 작품 해설을 통해 있는 그대로의 꼬르따사르의 문학을 접하면 될 것이다.

 

단편소설을 많이 접하지 않았지만 헤밍웨이의 단편집을 보면 단편은 장편을 쓰기 위한 하나의 밑그림으로도 보여지기도 하고, 장편에서 쓸 수 없는 실험적인 글들을 과감하게 보여주기도 한다. 장편이 긴 호흡의 문장이라면, 단편은 짤막하면서 작가의 생각을 과감없이 보여주는 좋은 좋은 예라고 할 수 있다. 환상문학의 밑그림을 통해 그가 보여주고자 하는 그 짤막하고 생경한 모습을 다음 작품을 통해 더 깊이 알아보고 싶은 작품이었다.

l****9 2014.12.25.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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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러누운 밤 [La noche boca arriba (1951~1966)] - 훌리오 꼬르따사르 저 / 박병규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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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이도 : ★★★1. 중요한 것. 내면의 눈이 가리키는 현실확실하게 말할 수 있는 것은 꼬르따사르 형님의 작품은 다름을 말하는 작품이라는 거다. 개인적으로는 이 작품을 읽는 순간 세계를 바라보는 눈이 한 단계 진보한다는 느낌을 받게 될 것이라고 말하고 싶다. 일반적으로 작가는 작품을 통해서 세상의 모순과 그것이 어떻게 작용하는지. 그리고 더 나아가서 그것을 바로잡기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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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이도 : ★


1. 중요한 것. 내면의 눈이 가리키는 현실


확실하게 말할 수 있는 것은 꼬르따사르 형님의 작품은 다름을 말하는 작품이라는 거다. 개인적으로는 이 작품을 읽는 순간 세계를 바라보는 눈이 한 단계 진보한다는 느낌을 받게 될 것이라고 말하고 싶다. 


일반적으로 작가는 작품을 통해서 세상의 모순과 그것이 어떻게 작용하는지. 그리고 더 나아가서 그것을 바로잡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하는지를 그려낸다. 그런데 꼬르따사르 형님은 그런 것들보다 훨씬 더 근원적인 차원으로 진입하려는 노력을 기울인다. 꼬르따사르의 세계에 선과 악은 존재하지 않았다. 그저 개개인의 현실감각만이 강하게 진동하고 있었다. 마치 잔향이 긴 향수같다고나 할까? 


163, 이상하게도 사람들은 침대 정리는 그저 침대 정리일 뿐이라고 생각하고, 악수는 언제나 같은 악수라고 생각하며, 정어리 통조림 한개를 따는 것은 그와 동일한 정어리 통조림을 무수히 따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그꼬르따사르 형님이 제기한 163페이지의 의문은 작가가 품은 세계에 대한 의문이다. 단편집 <드러누운 밤>은 그것을 해결하려는 노력을 담은 작품이다. 해결하는 방식은 시를 쓰는 방식과 유사하다. 


예를 들면, 그의 단편 <빠리의 아가씨에게 보내는 편지>의 22. 어떤 여자가 자기 아파트에 세심한 질서를 수립해놓았는데, 이를 순순히 받아들이지 않고 어질럽히기란 무척 어려운 일입니다. 라는 어려움에 직면하여 주인공이 받는 부담감을 토끼를 토해내는 방식으로 표현한다는 점이 그러했다. 남과는 다른 존재이기 때문에 빚어지는 흔적들의 당위성을 말하려는 것이다. 


개인의 내면속의 다양한 얼굴로 자리하고 있는 현실감각. 이 감각은 내 주변을 둘러싼 의식이 나를 변형시켜 또 다른 현실을 만들어내는. 인식론적인 측면에서의 추상적인 현실이다. 이 현실에 들어서면 우리는 그의 말처럼 모든 행위에 의미가 부여됨을 알 수 있었다. 그것이 자의적인 의도이건 무의식적인 의도건 간에 어떤 행위. 그리고 물체에는 다양한 의미를 내포하게 된다. 


쉽게 말해서, 각각의 사람들의 의식에는 물체 A는 A와 같은 A (A=A)가 성립하는 것이 아니라 물체 A는 A에 묻은 어마어마하게 함축된 경험과 지식을 포함한  각기 다른 A를 말하는 것이다. (A = (개인의 기억과 경험을 품은A))


145. 미첼은 사진사의 작업이란 주관적인 눈으로 세상을 보는 것 같지만 결국에는 사진기가 은근히 요구하는 방법으로 세상을 보는 것임을 알고 있었다. 


146. 보는 것은 거짓을 드러내는 것이다. 왜냐하면 보는 것은 우리를 우리 바깥으로 무작정 내던지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반면에 냄새라든가...(미쳇은 걸핏하면 옆길로 빠지므로 마음대로 말하게 해서는 안된다.) 아무튼 거짓이라는 예감이 들면 보는 것이 가능해진다. 아마도 보는 것과 보이는 것 중에서 잘 선택해서 사물의 외피를 벗기면 충분할 것이다. 


151. 사진기를 들고 다른 곳에 초점을 맞추는 척하며 기회를 노리고 있었다. 그리고 결국에는 모든 것을 종합적으로 드러내는 몸짓을 포착할 것이라고 믿었다. 연속적인 동작으로 이루어져 있으나 시간을 분절하면 고착된 이지미로 나타나는 삶을 포착할 것이라고 확신했다. 


이처럼 개인적인 A는 우리의 눈을 거쳐가는 모든 것들. 예를 들면 단편 <악마의 침>에서 사진사의 눈이 되는 사진기를 통해서도 매우 주관적으로 표현되고 해석된다. 그것은 아주 커다란 틀에서 보면 거짓일지도 모르나 한 개인이 느끼기에는 진실로 느낄만한 감정들. 그것으로부터 진실과 거짓 중에 무엇이 우리와 가까운지 생각해보기를 위의 세 단락으로 보여주고 있다. 


마지막 중단편 <추적자>의 창작자 조니와 평론가 브루노가 내면에서 몸부림치는 것은 새로운 창조와 그것을 해석하는 작업. 그리고 대중에게 이해시키려는 노력이 포함된 예술작품에게 숙명적으로 부여되는 모든 현상을 함축한 이야기였다.


265. 나(조니)는 무엇을 생각해본 적이 없어. 전에 생각한 것을 문득 의식할 뿐이야. 신기한 일은 아니야, 그렇지? 자기가 생각한 것을 의식하게 됐다고 신기하게 여길 사람이 있겠어? 자네나 혹은 다른 사람이 생각한 거나 다를 바 없으니까 말이야. 나는 내가 아니야. 단지 내가 생각한 것에서 쓸만한 것을 끄집어낼 뿐이지. 그것도 항상 때늦게 말이야. 이제 내가 견딜 수 없는 일이야. 그래, 어려워, 아주 어려운 거야... 벌써 바닥났어? 


276. 나(브루노)는 재즈 비평가이며, 과민하다 싶을 정도로 나 자신의 한계를 잘 아는 사람이다. 내 사고는 저 불쌍한 조니가 밑도 끝도 없는 말과 한숨을 느닷없는 분노와 흐느낌으로 뛰어넘고자 하는 것보다 한 차원 아래다. 


그가 선두에 서서 쎅소폰을 연주하면, 나는 마지막에 가서 뒷북이나 쳐주며 살 수밖에 없다는 씁쓸한 생각이 든다. 그가 입이라면 나는 귀다. 그가 입이고 내가 뭣이라는 표현보다는 낫기에 하는 말이지만... 그래, 비평은 그가 씹는 쾌락을 느끼며 맛있게 먹은 것의 서글픈 종장이다.  


297. 빵은 고체야. 부정할 수 없지. 색깔도 예쁘고 냄새도 좋아, 그 빵은 내가 아닌 무엇, 다른 무엇, 내 외부에 있는 무엇이야. 그런데 내가 빵을 만지면, 손을 뻗어 빵을 쥐면 그때는 무언가가 변해, 그렇지 않아? 빵은 내 외부에 있지만 손가락으로 만지면 느껴져. 세계라는 것이 느껴져. 그런데 내가 빵을 만지고 느낄 수 있다면, 빵이 다른 것이라고는 말할 수 없지. 자네는 그렇게 얘기할 수 있어?


k*******7 2014.12.31.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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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상, 현실낙하 _ 드러누운 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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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상 , 현실낙하 _훌리오 꼬르따사르 [드러누운 밤], 2014 창비 [드러누운 밤] 이라는 책을 처음 알게 됐을때부터 마지막 장을 덮던 순간까지 내 머릿속을 지배하던 단어는 '환상' 이었다. 환상문학의 대가라는 카피 문구를 봤기 때문에 먼저 생긴 '이미지'겠지만, 설령 그렇지 않았다 하더라도 마지막 장을 덮었을때 남았을 느낌은 같았으리라. 책 말미의 해설에도 언급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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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상 , 현실낙하

_훌리오 꼬르따사르 [드러누운 밤], 2014 창비

[드러누운 밤] 이라는 책을 처음 알게 됐을때부터 마지막 장을 덮던 순간까지 내 머릿속을 지배하던 단어는 '환상' 이었다. 환상문학의 대가라는 카피 문구를 봤기 때문에 먼저 생긴 '이미지'겠지만, 설령 그렇지 않았다 하더라도 마지막 장을 덮었을때 남았을 느낌은 같았으리라.

책 말미의 해설에도 언급되어 있지만, 현실과 비현실의 간극에서 발생하는 개념이 환상이다. 즉 환상이란 현실에 기반해서 바라보는 비현실이 환상이며 이는 마치 지평선의 신기루를 보는것과도 비슷한, 감각이 일그러지는 느낌과도 같다.
그러니까, 환상 문학이라 하면 흔히 말하는 판타지 소설을, 혹은 무협지를 먼저 떠올렸던 나는 완전히 틀렸던 것이다. 판타지 소설은 그 어떤 현실도 담보하고 있지 않다. (거대한 도끼를 휘두르는 난쟁이를 보면서 그 어떤 '일그러짐'도 느낄 수 없다. 해리포터의 대 성공에는 마치 9와 3/4 승강장이 실제로 어딘가에 있을것 같은, 현실을 잠시나마 왜곡시키는 환상이 적절히 조화가 되었기 때문이다.)

환상은 보통 illusion과 fantasy 두 가지로 번역이 되는데, 한국에서의 관용적인 쓰임 상, fantasy보다는 illusion에 더 가까운 인상이다. 이렇게 까지 이야기 하면 낯선 개념의 소설이 아닐까 싶은데, 너무나 유명한 하루키나 파울로 코엘료의 대표작들, 김애란의 [비행운]같은 작품들이 환상문학의 특성을 일부 갖고있다. 이런 작품들의 공통적인 특징은 체험의 단계를 비물질적인 차원으로 급격히 끌어올림으로써 현실에서 갑자기 내동댕이쳐지는듯한 느낌을 준다는 것이다. 꼬르따사르의 작품들이 본격적인 환상 문학으로 불리는 이유는, 환상문학의 대표적인 특징들을 고스란히 드러내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단지 환상문학적인 특징을 나타낼 뿐만 아니라 '환상' 그 자체에 대단히 집착을 하고 시도했던 다양한 실험들이 각 작품마다 뚜렷하게 드러난다. 아래는 단편중 하나인 [맞물린 공원] 초반에 등장하는 내용으로, 마치 책을 읽고있는 나에 대해 다시 3인칭으로 이야기 하는듯한 묘한 환상을 노골적으로 드러낸다.

"왼손으로 안락의자의 초록색 벨벳 천을 한두차례 쓰다듬어보는 사이에 어느덧 소설의 마지막 부분에 이르렀다. 별다른 노력을 하지 않았는데도 등장인물의 이름과 이미지가 뇌리에서 맴돌고 있었다. 이내 소설적 환상에 사로잡혔던 것이다. 그는 한줄 한줄 읽어감에 따라 주변 현실이 산산조각 나는 야릇한 희열을 맛보고 있었다. 69p"

[드러누운 밤] 은 꼬르따사르 100주기를 기해 만들어진 단편집으로 책 제목은 수록된 단편중 한 편의 제목이다. 380 페이지의 분량에 15개의 적지 않은 수의 중단편이 수록되어있는데 뇌리에 깊이 내려 꽂히는 작품도 있었고 몰입을 못하고 훑듯이 지나쳤던 작품도 있었다. 개인적으로 꼬르따사르의 글들은 한 번 흐름을 놓치면 따라가기가 무척 힘들었는데, 짧은 문장들 여러개가 연결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큰 덩어리로 압축 되어있기 때문이기도 하고, 구성상 대부분의 작품들이 초중반에 지금 딛고 선 현실로부터 출발을 하기 때문에 그 기반을 놓치고 읽어나가다 보면 아무런 단서가 없는 후반부의 환상들에 대해서 이해하기란 거의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전반부가 친절한것도 아니다)하지만 흐름을 잘 따라갔던 대부분의 작품들은 앞서 이야기 했던, 마치 한 순간에 급 하강하는 놀이기구를 탄것과 같은 섬뜩함을 선사한다.

하지만 이 책에 처음으로 매료됐던 부분은 작가의 눈으로 보이는 구체적인 환상들이었다. 이를테면 가장 첫 번째의 점거당한 집 에는 실타래를 묘사하는 부분이 있는데

"가끔 완성된 조끼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단번에 풀어버렸는데, 불과 얼마 전의 모습을 잊지 못하겠다는 듯이 꼬불꼬불하니 바구니에 쌓여 있는 실이 재미있었다. (중략) 나는 뜨개바늘을 쥐고 은빛 고슴도치처럼 움직이는 이레네의 손놀림과 바닥에 놓인 바구니에서 끊임없이 요동치는 실타래를 몇시간이고 바라보았다. 아름다운 장면이었다. 12-13p"

그의 문장을 읽고 나면 신기하게도 그냥 실타래 였던 것이 살아 움직이는, 주술적인 힘이 깃든 어떤 것으로 변모한다. 그리고 이것이 꼬르따사르의 소설 세계를 지탱해주는 가장 강력한 기저가 아닌가 싶다.

여러 이야기를 읽다보면 공통적으로 드러나는 특징은 어느 순간부터 환상속이었는지 명확하지 않다는 점이다. 이건 마치 사고처럼 불현듯 찾아온다. 처음엔 현실을 딛고 서있었다 생각하지만 뒤로 갈수록 어느 부분부터 비현실이었는지, 처음부터 현실이라 착각했던 것은 아닌지 하는 생각들이 뒤섞여 혼란스럽다. 어떻게 보면 꿈을 꾸는것과도 비슷해서, 이게 꿈이었다는 것을 어떤 시점에 자각하는것과도 같다. 걔중에는 호접지몽이라는 제목을 붙여도 어색하지 않을 정도로 존재론적인 사유로 빠지게 만드는 작품들도 여럿이다. 그는 여러 단편에서 다양한 시점으로 존재를 조명하는데, 1인칭과 3인칭의 구분을 넘어 단숨에 시점의 도약이 이루어 지는 것은 그의 문학을 '환상적'으로 만들어주는 주요한 장치이자 그의 특기라고 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강한 흡입력을 발휘하는 부분이다.

“소모사의 이야기로는 시공간을 철폐하는 방법은 상황과 동작을 되풀이하는 것이다. 이렇게 집요하게 접근하다보면 언젠가는 초기 조각상과 자신이 동일해질 것인데, 이것은 중첩과 같은 이중성이 아니라 원초적인 접촉, 즉 합일이라고 확신하고 있었다. 79p"

“아숄로뜰의 눈은 나에게 다른 삶이 현존하며, 다르게 보는 방법이 있다는 것을 말하고 있었다. (중략) 그렇지만 아숄로뜰은 우리와 가까웠다. 나는 아숄로뜰이 되기 전에 이 사실을 알았다. 내가 처음으로 아숄로뜰에게 다가간 날 이 사실을 깨달은 것이다. 대다수 사람들의 믿음과 반대로, 원숭이의 인간적인 특성은 원숭이와 인간 사이의 거리를 드러낸다. 92p"

“경이로운 꿈은 바로 그 꿈, 꿈이란 게 그러하듯이, 터무니없는 그 꿈이라는 사실을 알 고 있었다. 그 꿈에서 놀라운 도시의 이상한 거리를 돌아다녓다. 적색과 녹색 불이 있었으나 불꽃도 없었고 연기도 없었다. 다리 사이에서 붕붕거리는 커다란 금속 곤충도 있었다. 109p"

“주 3회 정오에 시로스 섬 위를 비행하는 것은, 주 3회 정오에 시로스 섬 위를 비행하는 꿈을 꾸는 것과 마찬가지로 비현실적이었다. 이 모두는 부질없이 반복되는 광경이 만들어낸 허상이었다. (중략) 그리고 저 마을 어부들은 고개를 들고 이 비현실의 궤적을 좇고 있었을 것이다."

“즉, 조니는 천사들 가운데 있는 인간이며, 비현실 가운데 있는 (그 비현실은 우리이다) 현실이다. 299p"

“브루노, 재즈가 음악에 불과한 것이 아니듯이 나 또한 조니 카터에 불과한 것이 아니야. 322p"

쓰다보니 리뷰가 둔탁해진건 결과적으로 꼬르따사르라는 남미의 생소한 작가가 내 취향에 적절했기 때문일것이다. 더불어 지금까진 '롤러코스터를 타는 느낌이다' 정도로 표현을 하던 것들에 환상 문학이라는 프레임으로 정리 할 수 있었다는 점에서 개인적으로 많은 도움이 되었다.
앞서 환상 그 자체에 대한 이야기를 주로 했지만, 꿈의 종류가 다양하고 그 안엔 분명 어떤 실제의 원인이 되는 심리가 존재하듯이, 꼬르따사르의 작품들도 그 환상의 기저에 깔려있는 특정 주제에 대한 은유가 있다. 대부분 현대성에서 비롯된 사회적인 문제나 개인의 문제 등이 언뜻 보이지만 여기에다가는 자세히 적지 않으려 한다. 꿈, 혹은 환상은 해석없이 그 안에 들어가 즐길때 의의가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환상 문학들이 마냥 낭만적이지만은 않은 이유는 물리적인 세계에서 이격되는 경험이 본질적으로 낯설기 때문일 것이다.

마침 리뷰를 작성하는데 밴드 [OK GO]의 뮤직비디오가 나온다. 이들의 뮤직비디오는 언제나 '환상적' 이다. 비디오에서 보여지는 것이 비록 착시에 불과하더라도 여기서 환상에 대한 가지 힌트를 얻을 수 있는데, 환상은 현실에 내재되어 있다는 점이다. 환상이라 부르는 것들은 언제나 현실의 파편들을 딛고 서있다.

그 어떤 개연성도 없이 낙하하는 현실속에서 '제정신'을 유지할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심리의 흐름을 놓치지 않는 것이다.




Ps. 영화나 책 등에도 연이 있다고 생각해서 우연히 보고 접하게 되는 것들은 언제나 나를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이끄는 재미있는 경험을 제공한다. 마찬가지로 평생 알지 못하고 지나쳤을 재미를 알게 해준 이번 기회에 무척 감사한다.
문장들의 호흡이나 책의 내용등을 봐선 번역하기가 꽤 까다로웠을것 같은데 특별히 어색한 부분을 찾을 수 없이 완성도 높은 번역이 환상을 환상으로써 전달하는데 큰 역할을 했다.

*이 글은 [창비 책읽는당]의 일환으로 작성되었음을 밝힙니다.
x*********x 2014.12.26.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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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가 느끼는 자유 - [드러누운 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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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은 생각나지 않지만 어느 어두침침한 오후에 드러누워 본 영화가 떠올랐습니다. 시간에 관한 이야기였어요. 알 수 없는 곳, 낯선 산장에 떨어진 주인공이 악몽 같은 순간을 보내는데 어떤 경계를 지나면 다시 산장에 떨어진 처음 순간으로 되돌아갑니다. 되돌려진 시간은 다시 시작된 순간순간에 미세한 균열을 일으키고 앞서 했던 별 의미 없는 행위는 곧 어마어마한 결과를 낳습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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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은 생각나지 않지만 어느 어두침침한 오후에 드러누워 본 영화가 떠올랐습니다. 시간에 관한 이야기였어요. 알 수 없는 곳, 낯선 산장에 떨어진 주인공이 악몽 같은 순간을 보내는데 어떤 경계를 지나면 다시 산장에 떨어진 처음 순간으로 되돌아갑니다. 되돌려진 시간은 다시 시작된 순간순간에 미세한 균열을 일으키고 앞서 했던 별 의미 없는 행위는 곧 어마어마한 결과를 낳습니다. 무의미한 것 같아 보이지만 결코 무의미하지 않은 반복과 환상에 저는 두통을 느꼈었습니다. 만약 그보다 먼저 이 작가, 훌리오 꼬르따사르를 만났다면 혼란이 좀 덜했을까요? 


뫼비우스의 띠처럼, 끝없이 이어지는 숫자처럼, 규칙이 있는 것 같기도 혹은 완전히 불규칙한 것 같기도 한 작품들이 몰려옵니다. 작가가 들려주는 이야기는 나와 타자가 끝없이 교차되는 이야기이자 나와 타자의 경계를 완전히 허무는 이야기입니다. 정제되고 잘 짜인 이야기를 좋아하는 저는 혼란과 몰이해가 이토록 매력적일 수 있으리라고 미처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이건 정말 경이로운 발견이 아닐 수 없네요. 


만일 누군가에게 "좋은 건 알았어. 그래서, 대강 무슨 줄거리야?"라고 질문 받는다면 분명 쉽게 답하지 못할 겁니다. 사진 속 인물들이 이야기를 하고(<악마의 침>), 짐승이 화자로 변모(혹은 그 반대)하는(<아숄로뜰>) 이야기, 소설을 읽던 주인공이 어느 새 소설의 일부가 되는 이야기(<맞물린 공원>)들이니까요. 이 시점에서 띠지에 실린 문장, "말로는 표현할 수 없다. 적어도 우리가 사용하는 언어로는."을 읽어보게 됩니다(뒤에 언급할 <키클라데스 제도의 우상>의 한 구절입니다). 민망하긴 하지만 바로 이 문장이 소설을 접한 제 느낌과 무척 흡사하네요. 

그 중에서도 역시 <맞물린 공원>을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겠지요. 

압도적으로 짧습니다. 이렇게 짧은 단편을 읽어본 기억조차 없습니다. 단 두 쪽으로 이루어진 소설이라니요. 이야기를 읽으면서도 한쪽에 곁눈으로 보이는 커다란 공백을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어째서 이렇게 짧단 말이냐? 하지만 소설이 끝나면 이해하게 됩니다. 이 두 쪽 안에 완벽하게 순환하는 이야기가 흐르고 있다는 사실을요. 소설은 끝났지만 이야기는 결코 끝나지 않을 것 같습니다. "그는 한줄 한줄 읽어감에 따라 주변 현실이 산산조각 나는 야릇한 희열을 맛보고 있었다.(69쪽, <맞물린 공원>)"는데 과연 제가 그랬습니다. 작가는 이 문장을 쓰면서 그런 희열을 맛보는 독자가 자신의 탄생 100년이 되는 시점, 그것도 크리스마스에 여기 한국에 있으리라고 생각이나 했을까요! 


앞서 '나와 타자가 끝없이 교차되는 이야기이자 나와 타자의 경계를 완전히 허무는 이야기'라고 한 이유에 대해서는 <키클라데스 제도의 우상>을 들어 설명하고 싶습니다. 저는 작가가 이 단편으로 본인이 지향하는 작품세계를 설명한 게 아닐까 하고까지 생각하는데요. 


소모사의 이야기로는 시공간을 철폐하는 방법은 상황과 동작을 되풀이하는 것이다. 이렇게 집요하게 접근하다보면 언젠가는 초기 조각상과 자신이 동일해질 것인데, 이것은 중첩과 같은 이중성이 아니라 원초적인 접촉, 즉 합일이라고 확신하고 있었다. -79쪽, <키클라데스 제도의 우상> 
우연히 어느 섬에서 발견한 유물과 두 친구의 이야기예요. 모랑은 유물을 발견한 이후 소모사의 변화를 이해하기 힘듭니다. 소모사는 유물을 통해 자신이 과거에 속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듯하고요. 끝내 모랑의 피를 바쳐 과거와 접촉하려고 합니다. '원초적인 접촉, 즉 합일'을 기원하는 것일 테죠. 그 계획은 실패로 돌아가지만 진짜 이야기는 소모사의 실패와 함께 시작됩니다. 소모사의 광기가 그대로 모랑에게 옮겨간 듯 모랑은 도끼를 쥐고 문 뒤에 숨어 도끼날을 핥습니다. 이제 모랑이냐 소모사냐는 중요하지 않아요. 집요한 광기와 피만 남았고 이야기는 끝나니까요.  


이야기가 지나치게 불친절하다는 생각도 듭니다. 하지만 그것이 이야기에 더욱 집중하게 하고 더욱 다양한 해석을 가능하게 합니다. 무수히 많은 상징과 비유가 오히려 독자를 자유롭게 만들어줘요. 소설을 읽는 시간, 장소, 각자의 처지에 따라 제각각 다른 이야기가 될 겁니다. 백 명이 읽으면 백 가지 이야기로 기억되겠지요. 그래서 이 이야기를 주변과 나누고 싶어지나 봅니다. 


마침 크리스마스에 환상적인 세상에서 신나게 놀다오니 드물게 즐겁습니다. 아마 두고두고 들춰볼 책이 되지 않을까 싶네요.  




습관이 된 것입니다. 앙드레, 습관이란 리듬이 구체화된 형식입니다. 리듬이 우리 삶을 도와주고 받는 요금입니다. -24~25쪽, <빠리의 아가씨에게 보내는 편지>


나는 아숄로뜰을 처음 보았을 때부터 조용한 모습에 반했다. 무심한 부동성으로 시간과 공간을 철폐하려는 아숄로뜰의 은밀한 의지를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92쪽, <아숄로뜰>


나는 보는 것이 무언지 안다. 내가 무언가를 안다면 말이다. 보는 것은 거짓을 드러내는 것이다. 왜냐하면 보는 것은 우리를 우리 바깥으로 무작정 내던지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146쪽, <악마의 침> 





YES마니아 : 로얄 j********8 2014.12.25.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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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러누운 밤ㅣ훌리오 꼬르따사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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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을 읽으며 스페인 영화감독 훌리오 메뎀1을 떠올린건 단지 이름의 유사성 때문만은 아니었다. 그렇다고 소재가 비슷하다거나 주제가 일맥상통한 것도 아니었다. 그럼 무엇때문에?? 한마디로 정의 할 순 없지만, 그것은 일종의 분위기, 흐름상의 문제라고 생각된다. 모호하게 흘러가는 흐름에서 디테일한 상황묘사, 결국 하나의 주제로 향해가는 몰입에 그 연관이 있지 않을까?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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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을 읽으며 스페인 영화감독 훌리오 메뎀1을 떠올린건 단지 이름의 유사성 때문만은 아니었다. 그렇다고 소재가 비슷하다거나 주제가 일맥상통한 것도 아니었다. 그럼 무엇때문에?? 한마디로 정의 할 순 없지만, 그것은 일종의 분위기, 흐름상의 문제라고 생각된다. 모호하게 흘러가는 흐름에서 디테일한 상황묘사, 결국 하나의 주제로 향해가는 몰입에 그 연관이 있지 않을까?

​소설 속 인물들은 하나같이 평범한 듯 하면서 그렇지 않다. 여기서 '평범'은 튀지 않는 조용함을 말하며, '그렇지 않음'은 평범 이상의 예민함, 날카로움, 민감함을 나타낸다. 그런 점에서 이야기가 만들어지고, 그 인물들의 일상을 방해하는 요소에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점거당한 집에서 '정체모를 기척', 어머니의 편지에서 '실수로 적힌 니꼬라는 이름' 등) 결국, 별것아닌 것에서 이야기는 시작되고 진행되며, 결국 마침표(사실 말 줄임표가 맞겠다)를 찍는데 그 과정이 매우 흥미롭다. ​
 
 세간의 평가에 의하면 그의 소설은'환상문학'의 범주에 든다. (단편소설의 대가, 라틴아메리카 붐 소설의 선두, 꼬르따사르의 환상문학을 망라한 중단편선!이라잖은가!!) 뭔가 애써 카테고리를 나눈다는 억지스러움과 함께 환상이라는 단어 자체가 주는 애매함이 불만이긴 하지만 어쨌든 소설 속 낱말들의 나열, 문장들의 맞물림은 모호한 분위기를 자아내는 건 사실이다. ​그리고 그러한 분위기는 인물들 간의 심리변화에 기인한다. 고로 여기서 말하는 '환상'은 '심리적 환상'에 가깝다는 결론이다.

 사람들이 말하길 꼬르따사르의 소설은 어렵다고 한다. ​명백하거나 명확하거나 명료하지 않다는 점에서 그의 소설은 그리 친철한 편은 아니다. 상황은 간단한데 표현은 모호하고 묘사는 장황하다. 그런 점에서 자칫 집중력을 잃을 수도 있지만, 그런 점에서 꼬르따사의 매력이 분명 존재한다.​

 그의 글을 읽고 있으면 머릿속으로 그림이 그려진다. 눈앞으로 어둠이 깔리고 희미한 불빛이 반짝이면 그 속에서 인물들이 살고 있다. 마치 최면에 걸린 듯 불안에 떠는 인간의 심리까지 영상으로 스친다. 이런 점에서 그의 소설은 분명 환상적이다.​
 
 불현듯 그 환상을 '떠올리는 영상'이 아닌 '펼쳐지는 영화'로 확인하고 싶다는 욕심이 생긴다. 내가 만약 영화를 공부하거나 그 분야 종사자라면 충분히 욕심낼 만한 스토리텔링이라고 생각한다. 모르긴 몰라도 세계의 많은 영화감독들도 꼬르따사르의 작품에서 적잖은 영향을 받지 않았을까? 소설을 읽는 내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던 감독 홀리오메뎀도 아마 그의 글을 읽었겠지...
 ​
현실과 비현실의 사이에서 모호한 상상의 나래에 빠지고 싶다면 훌리오 꼬르따사르의 환상소설집 [드러누운 밤]을 권한다. 
 

y******4 2014.12.23.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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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틴 아메리카 단편의 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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훌리오 코르타사르. 라틴 아메리카의 붐 문학을 일으킨 작가들 중 한 명으로 특히 그의 단편소설이 백미로 알려져 있었다. 하지만 국내엔 거의 번역되지 않고 생소한 작가이다. 이번 창비의 세계문학전집에 고마움을 느낀다.기존의 라틴 아메리카 문학이 갖는 환상 리얼리즘은 여기에서도 구현된다. 다만 조금 불편하고 몽롱하고 모호할 뿐이다. 특히 라틴 아메리카의 현실과 밀접한 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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훌리오 코르타사르. 라틴 아메리카의 붐 문학을 일으킨 작가들 중 한 명으로 특히 그의 단편소설이 백미로 알려져 있었다. 하지만 국내엔 거의 번역되지 않고 생소한 작가이다. 이번 창비의 세계문학전집에 고마움을 느낀다.

기존의 라틴 아메리카 문학이 갖는 환상 리얼리즘은 여기에서도 구현된다. 다만 조금 불편하고 몽롱하고 모호할 뿐이다. 특히 라틴 아메리카의 현실과 밀접한 관계에서 비유적으로 해석될 텍스트들이기에 짧은 글이라도 차분하게 읽어야 할 듯하다. 그렇지 않으면 허공을 헤매는 기분이 들 테니.

YES마니아 : 로얄 g********2 2016.12.26.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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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의 틈을 벌리고 밀어넣은 작가의 환상성 가득한 촉수가 가닿은... 훌리오 꼬르따사르, 드러누운 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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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가 추천해준 책이고 그 친구를 믿을만하니 서둘러 읽는다. 남미 붐 문학의 일원으로 처음 듣는 이름이다. 역자의 글을 읽으니 우리나라에는 처음 소개되는 작가이다. 전반부의 소설들을 읽으며 깜짝 놀란다. 현실의 틈바구니로 불쑥 밀어 넣는 비현실이 독자인 나를 긴장시키기에 충분하다. 마술적 리얼리즘이라 부르고는 했던 환상문학의 전형이다. 무엇보다 문장이 마음에 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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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친구가 추천해준 책이고 그 친구를 믿을만하니 서둘러 읽는다. 남미 붐 문학의 일원으로 처음 듣는 이름이다. 역자의 글을 읽으니 우리나라에는 처음 소개되는 작가이다. 전반부의 소설들을 읽으며 깜짝 놀란다. 현실의 틈바구니로 불쑥 밀어 넣는 비현실이 독자인 나를 긴장시키기에 충분하다. 마술적 리얼리즘이라 부르고는 했던 환상문학의 전형이다. 무엇보다 문장이 마음에 든다. (나는 이러한 문장의 맛을 배가 시킨 것은 번역가 덕분이라고 생각한다. 남미 소설을 내는 출판사도 운영하는 까페 여름의 선배에게 물었더니 남미 스페인어 번역에 일가견이 있는 번역가라고 이야기해준다) 차분하다 못해 냉담해 보이는 문장이 소설 속의 비현실적인 상황을 우리들 현실의 바로 옆에 있는 것 마냥 느끼도록 만들어준다. 하지만 후반부의 소설에 이르러서는 독서가 힘에 부치기 시작했다. 그것이 실제 실려 있는 소설이 주는 힘이 떨어졌기 때문인지, 독자인 내가 꽤 피곤한 한 주를 보냈기 때문인지는 정확히 모르겠으나 어쨌든...


  「점거당한 집」
  “내가 어떻게 그 집의 구조를 잊을 수 있겠는가. 식당, 태피스트리가 걸려 있는 응접실, 서재 그리고 커다란 침실 세 개가 집 안쪽, 다시 말해서 로드리게스뻬냐 거리 쪽에 자리 잡고 있었다. 복도에는 떡갈나무로 만든 견고한 문이 달려 있었다...” (p.13) 결혼도 하지 않은 남매가 평화롭게 살고 있는, 이 물려 받은 오래된 집에 점점 알 수 없는 존재가 들어차기 시작한다. 그리고 남매는 조금씩 밀려나고 그 무언가는 결국 집을 점거하고 결국 남매는 집을 버리고 나오게 되는 지경에 이른다.


  「빠리의 아가씨에게 보내는 편지」
  “... 당신 집에 도착하여 엘리베이터를 탔습니다. 일층과 이층 사이를 지나는 바로 그 순간에 토끼를 토할 것 같은 느낌이 들었습니다. 당신에게 이런 이야기를 하지 않았습니다만, 속이려는 뜻은 없었습니다. 가끔 토끼를 토한다고 떠벌리고 다닐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그런 일은 항상 나 혼자 있을 때만 일어나고, 또 흔히들 사소한 사생활을 감추듯이 나도 이야기하지 않았을 뿐입니다...” (p.23) 빠리로 떠난 여인을 대신해 그 집에서 살게 된 내가 빠리의 여인에게 보낸 편지글의 형식이다. 토끼를 토해내고 그 토끼를 어쩌지 못하여 그 여인의 집에 숨기고, 평소보다 더 자주 토하다보니 토끼가 늘어나고 그 토끼로 인하여 그 여인의 집이 망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마냥 숨길 수는 없어서, 이 남자는 지금 편지를 쓰고 있다.


  「먼 곳의 여자」
  ‘먼 곳의 여자’를 이곳에서 느끼고 있는 알리나 레예스의 일기이다. “때때로 나는 그 여자가 추워하고, 고생하고, 두들겨 맞는다는 것을 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그 여자를 미워하고, 그 여자를 땅바닥에 쓰러뜨리는 손을 미워하고, 그 손만큼 그 여자를 미워하는 것뿐이다. 아니, 그 여자를 더 미워한다. 맞기 때문이다. 그 여자가 나인데, 맞기 때문이다...” (p.39) 이러한 느낌을 간직한 채 결혼을 하게 된 나는 그 여자가 있는 곳인 헝가리의 부다뻬스뜨로 신혼 여행을 떠난다. 그리고 그곳에서 두 여자가 만나고 헤어진다.


  「시내버스」
  묘지를 통과하는 시내버스를 탄 끌라라는 같은 버스에 탄 승객들 그리고 버스기사와 그 조수의 따가운 눈총을 못견뎌한다. 다른 승객들은 꽃다발을 쥐고 있다는 점만 다르다. 그리고 마침 다른 정거장에서 끌라라처럼 꽃다발을 들고 있지 않은 남자 승객이 한 명 탄다. 그리고 이제 두 사람은 사람들의 눈총을 함께 공유하고 그 시내버스로부터의 탈출을 도모한다.


  「맞물린 공원」
  소설집에 실린 소설들 중 가장 마음에 든 소설이다. 세 페이지에 걸쳐 있지만 실제로는 두 페이지 정도인 엽편 소설이다. 소설의 안과 밖을 절묘하게 연결시키고 있다. 소설을 읽는 동안 소설을 읽고 있는 남자의 뒤편으로 등장하게 되는 소설 속의 인물이라니...

 
  「키클라데스 제도의 우상」
  키클라데스 제도의 한 섬을 함께 여행했던 소모사와 모랑과 떼레즈가 발견하고 그곳에서 가지고 온 조각상... 어쩌면 그 조각상에 깃들어 있다고 할 수 있는 어떤 광기가 발현되는 장면을 포착하고 있는 소설이다.


  「아숄로뜰」
  ‘암비스토마속 양서류의 일종으로 아가미가 달린 유생 형태의 동물’(찾아보니 도롱뇽)인 아숄로뜰을 우연히 빠리 식물원의 수족관에서 본 후에 빠져들게 된 나, “... 수족관 밖에서 내 얼굴이 다시 유리로 다가왔고, 나는 아숄로뜰을 이해하려는 결의로 굳게 다물어진 내 입을 바라보았다. 그런데 내가 아숄로뜰이었다. 그 순간 어떤 이해도 불가능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는 수족관 바깥에 있었고, 그의 생각은 수족관 밖의 생각이었다. 그를 알던 내가, 아니 그였던 내가 아숄로뜰이었다. 그리고 나는 내 세계에 있었다. 나는 아숄로뜰의 몸 안에 갇혔다는 사실을 알고 (그 순간에 깨달았다) 공포에 떨었다. 인간의 사고를 가진 채 아숄로뜰이 되어버린 나는, 아숄로뜰의 몸 안에 산 채로 매장당한 나는 무감각한 아숄로뜰 사이에서 명료한 의식을 지닌 채 살아가야 할 처지였다. 그러나 이런 생각도 잠시였다. 어떤 발이 내 얼굴을 스치려는 순간 가까스로 비껴나면서 바로 옆에서 나를 쳐다보는 아숄로뜰을 발견했을 때, 그 아숄로뜰 역시 알고 있다는 것을, 의사소통할 방법은 없었으나 분명히 알고 있다는 것을, 의사소통할 방법은 없었으나 분명히 알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나 역시 그 아숄로뜰의 생각 안에 있었다. 바꿔말해서, 우리 모두는 인간처럼 생각하고 있었으나 표현 능력이 없었다...” (p95) 는 결국 아숄로뜰이 되고 마는 것일까...


  「드러누운 밤」
  남미식의 호접몽이라고 불러야 할까... 모터사이클을 타고 가다가 사고를 당한 나는 꿈을 꾸기 시작한다. “... 그는 다시 한 번 눈을 감았지만 이제는 알고 있었다. 깨어나지 않을 것이며, 지금 깨어 있ㅇ며, 경이로운 꿈은 바로 그 꿈, 꿈이란 게 그러하듯이, 터무니없는 그 꿈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 꿈에서 놀라운 도시의 이상한 거리를 돌아다녔다...” (p.109) 어느 순간 꿈이라고 생각되던 원시 부족의 사냥터과 현실이라고 생각하던 현대의 도시가 스르르 자리를 바꾸게 되는데, 그게 참 절묘하다.


  「어머니의 편지」
  형 니꼬가 죽고 난 후 형과 결혼할 뻔 한 여인 라우라와 함께 빠리로 온 루이스는 종종 고향의 어머니로부터 편지를 받는다. 그러던 어느 날 도착한 어머니의 편지에서 형인 니꼬의 흔적을 발견한다. 니꼬가 살아 있는 것을 암시하는 편지 그리고 연이어 니꼬가 빠리로 오게 될 것을 암시하는 편지를 받은 루이스 그리고 라우라는 당황한다. 그리고 라우라는 니꼬가 도착할 것으로 예상되는 플랫폼으로 나가고, 루이스는 그런 라우라를 멀찌감치서 따라간다.


  「악마의 침」
  “미첼의 병은 문학이다. 다시 말해서, 비현실적인 이야기를 꾸며낸다는 것이다. 미첼은 예외적인 존재, 탈인간적인 존재, 항상 혐오스럽지만은 않은 괴물을 즐겨 상상한다...” (p.152) 소년과 여자 그리고 미첼 혹은 사진과 문학... ‘가을철 바람을 타고 이동하는 거미줄을 가리키’는 말이라는 ‘성모 마리아의 실’ 그리고 이를 부르는 다른 이름인 ‘악마의 침’...


  「비밀 병기」
  미셀과 삐에르의 사랑 이야기라고 생각되던 소설은 어느 순간 실은 ‘다른 세계’에 있는 것과 같은 두사람, 롤랑과 바베뜨의 이야기였던 것으로 뒤바뀐다. ‘저 두사람은 다른 세계에 있으며, 시간이라는 방파제로 보호받고 있다’ (p.186) 와 같은 문장, 그리고 “세계는 손에 쥐고 있는 고무 순잡이로 조종된다. 손잡이를 당기자마자 주변의 나무는 한그루의 거대한 나무가 되어 대로변에 펼쳐지고, 손잡이를 조금 놓으면 그 거대한 나무는 수많은 미루나무로 해체되어 디로 밀려나고, 고압선 철탑이 하나씩 천천히 지나간다... 하지만 더 이상 생각을 못한다. 모든 것은 기계이고, 기계에 붙은 몸이고, 망각처럼 얼굴에 부딪히는 바람이다...” (p.193) 와 같은 문장들 앞에서 독자인 나는 기계처럼 멀뚱히 멈춘다.


  「남부고속도로」
  빠리로 들어오는 남부고속도로의 채증이 그렇게 심할까... 시사주간지 기사에서 영감을 얻었다는 소설은 그러니까 이 고속도로의 채증이 심하여 그곳에 갇혀버린 일군의 사람들의 며칠을 다루고 있다. 자신의 근처 차의 사람들과 함께 그룹을 만들고 지도자를 뽑아서 그들이 물과 먹을 것을 구하러 다녀야 하고, 그 안에서 사랑을 하기도 하고, 누군가가 죽는 일이 벌어지기까지 하는 그 며칠의 이야기이다.


  「정오의 섬」
  항공기에서 기내 서비스를 하고 있는 마리니가 로마-테헤란 노선의 비행기를 타고 지나가면서만 바라보던 시로스 섬...  결국 마리니는 휴가를 얻어 직접 이 섬을 방문하게 되는데, 바로 그 때 그 섬의 근처로 비행기가 추락한다.


  「불 중의 불」
  아마도 로마 시대, 총독은 아내인 이레네가 마음에 두고 있는 검투사 마르코의 검투사 시합을 지켜보고 있다. 마르코의 상대는 아주 강하고 그는 오늘 죽게 될 것이다. 이러한 과거의 이야기와 함께 현재, 롤랑은 잔과 사귀는 사이이지만 잔의 친구인 쏘니아와 그렇고 그런 사이이기도 하다. 잔은 전화로 쏘니아가 롤랑의 집에 갈 것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그곳 로마의 경기장 위로 불똥이 튀어 날아오르고 (화산 폭발이리라), 현재의 롤랑과 쏘니아가 머물고 있는 건물에서는 불길이 피어오른다.


  「추적자」
  ‘알토색소폰 연주자이자 비밥 재즈의 창시자이며, 즉흥연주의 대가’인 찰리 파커를 추모하며 쓴 소설이다. 소설 속에서 찰리 파커는 조니, 라는 이름으로 등장하고 그는 데데라는 여인과 함께 지낸다. 그리고 이야기의 서술자인 브루노는 얼마전 조니에 대한 책을 낸 바 있는 음악 평론가이다. “... 조니는 만족할 수 없기 때문에 자신을 채찍질하고자 끊임없이 창작한다. 창작의 즐거움은 끝맺음에 있다기보다는 반복적인 탐구에 있다...” (p.288) 라거나 “... 조니를 희생자라고, 쫓기는 자라고 믿고 있으며, 나 또한 전기에서 그렇게 설명한 바 있으나... 이제는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조니는 추적당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추적하고 있으며, 곡절 많은 인생도 사냥꾼의 고난이지 쫓기는 동물의 고난이 아니다. 조니가 추적하는 것이 무엇인지는 아무도 모른다. 하지만 추적하고 있다...” (p.301) 라고 설명되는 조니, 재주 연주자 찰리 파커에 대한 일종의 헌사인 소설이다.


  번역가인 박병규는 작품 해설에서 훌리오 꼬르따사르의 소설 특성을 세 가지로 정리하고 있다. ‘서술 간극과 모호성’, ‘현실과 비현실의 혼융’, ‘수직적 깊이에서 수평적 확장으로’가 그 특성들이다. 우리들 일상 안에서 벌어지는 사소한 사건들, 그 사건들의 틈바구니로 밀어 넣은 작가의 어떤 촉수가 가닿은 환상성을 읽어내기에 부족함이 없는 소설들이다. 어떤 원형이라고 할 소설들의 집합이라고도 볼 수 있지 않을까 싶다.



훌리오 꼬르따사르 / 박병규 역 / 드러누운 밤 (Lanoche boca arriba) / 창비 / 380쪽 / 2015 (1951, 1956, 1958, 1966) 

YES마니아 : 플래티넘 k******i 2016.02.15. 신고 공감 0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현실과 환상이 교차하는 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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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상 문학이라는 단어는 몇 번 들어봤는데, 실제로 읽어본 작품은 몇 안된다. 개인적으로 사실과 거짓이 명확하게 드러나는 추리소설이나 일반 소설, 인문학 서적을 주로 읽는터라 환상 문학은 생각보다 많이 접할 기회가 별로 없었다. 우연한 기회에 이 책을 알게 되었는데 환상 문학의 진수를 보여주는 책이 아닐까 싶다. 이 책을 처음 읽기 시작할 때는 몽환적인 분위기의 작품이 많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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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상 문학이라는 단어는 몇 번 들어봤는데, 실제로 읽어본 작품은 몇 안된다. 개인적으로 사실과 거짓이 명확하게 드러나는 추리소설이나 일반 소설, 인문학 서적을 주로 읽는터라 환상 문학은 생각보다 많이 접할 기회가 별로 없었다. 우연한 기회에 이 책을 알게 되었는데 환상 문학의 진수를 보여주는 책이 아닐까 싶다. 이 책을 처음 읽기 시작할 때는 몽환적인 분위기의 작품이 많지 않을까 싶었는데, 알고보니 현실과 상상을 오가는 내용이 많아서 꿈속을 걷는 느낌과는 또 다른 맛이 나는 작품들이 많다. 이 책은 스페인어 권 작가인 훌리오 꼬르따사르의 단편 소설을 모아놓은 소설집이다. 출판사 서평에 따르면 단편 소설의 대가라고 되어있는데, 짧은 이야기 속에서도 독자의 시선을 잡아끄는 포인트를 적절히 잡아내는 흐름을 보니 과연 그럴만도 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작품을 읽다보니 환상문학의 특징을 약간은 알게 되었는데, 생각보다 이 작품들은 정신을 차리고 꼼꼼하게 읽어야 한다. 일반적인 소설은 이야기의 흐름이 있어서 대충 읽어도 내용이 이해가 가는데, 환상 문학의 경우에는 어디까지가 현실이고, 어디가 상상인지 분간하기가 어렵기 때문에 작가가 숨겨놓은 복선을 찾기 위해서는 생각보다 차분하게 읽어야할 필요가 있다. 일반적으로 빨리 읽는 독서에 익숙하던 나에게는 약간은 어려운 독서법이기도 하다. 그래도 작가의 상상력이 무한대로 펼쳐지는 작품 세계를 보면서 색다른 장르의 문학에 푹 빠져드는 재미를 오랜만에 느꼈다. 말로는 표현하기 어려운 묘한 매력을 갖고 있는 것이 이 작품집의 특징이기도 하다.

 

여러 작품이 각자 나름대로의 매력을 지니고 있다. 물론 한 작가에게서 나온 작품이기 때문에 어느 정도 비슷한 느낌을 주기는 하나, 다루고 있는 주제가 광범위하고 어디로 튈지 모르는 공과도 같아서 상당히 흥미롭게 읽었다. 다만 조금 꼼꼼하게 읽어야 하는 탓에 다른 책보다 시간이 좀 더 걸리기는 했으나 다 읽고 나니 왠지 뿌듯한 기분이다. 이 책을 제대로 읽으려면 소설을 일단 다 읽고 나서 뒤에 실려있는 역자 해설을 꼭 읽을 것을 추천한다. 그냥 아무 생각없이 소설을 읽은 독자라면 역자 후기를 읽으면서 아 그렇구나 라는 느낌으로 차분하게 그동안 읽은 작품들을 마음속으로 정리할 수 있을 것이다.

 

통속 소설만 읽었던 독자라면 이번 기회에 자산의 독서 폭을 한 번 넓혀보는 것도 괜찮을 듯 하다. 환상 문학이라는 장르가 낯설면서도 매력이 느껴지는 이유는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실도 모든 것이 명확하지만은 않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날씨가 추울 때는 따뜻한 방안에서 자산이 좋아하는 책을 파고드는 것도 꽤나 괜찮은 방법이다. 초현실적인 세계를 느껴보고 싶다면 이 작품집을 강력히 추천한다. 그동안 미처 알지 못했던 새로운 세계가 펼쳐지는 기분을 제대로 느낄 수 있을 것이다. 

k******8 2014.12.23. 신고 공감 0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드러누운 밤을 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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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는 가르시아 마르께스, 바르가스 요사 등과 함께 라틴아메리카 계에서는 유명한 소설가로 전세계를 통틀어서 20세기의 가장 뛰어난  단편소설 작가의 하나로 손 꼽히고 있습니다. 남성작가이지만 그의 소설을 읽어보면 아주 작은 시간의 흐름동안이라도 그것을 묘사하고 설명하는 능력이 혀를 내두를 정도로 자세하고 구체적입니다. 소설을 읽는 것인지 영화를 보는 것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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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는 가르시아 마르께스, 바르가스 요사 등과 함께 라틴아메리카 계에서는

유명한 소설가로 전세계를 통틀어서 20세기의 가장 뛰어난 

단편소설 작가의 하나로 손 꼽히고 있습니다.


남성작가이지만 그의 소설을 읽어보면 아주 작은 시간의 흐름동안이라도

그것을 묘사하고 설명하는 능력이 혀를 내두를 정도로

자세하고 구체적입니다. 소설을 읽는 것인지 영화를 보는 것인지

분간이 안 갈정도로 말이죠. 

특히 '빠리의 아가씨에게 보내는 편지'에는

토끼가 수십 마리가 등장하는데, 토끼 하나를 가지고 

요리조리 상황과 주인공의 심리를 묘사하는 

수준은 가히 글의 유희라고 할 정도로

그 상상력과 언어구사력은 놀랍다고 할 수 있습니다. 

단편소설의 대가이지만 어떨 땐 마치 장편소설을

읽는 듯한 느낌을 줄 정도로 한 부분의 묘사와 설명은 

상당히 깊게 파고드는 면이 있습니다. 

15개의 단편으로 구성된 '드러누운 밤'을 추운 겨울에 

따듯한 방 안에서 시간을 잊고 지내기에 괜찮은

책으로 추천합니다.

꼬르따사르는  190이 넘는 장신에다가 애연가였는데요.

남성적인 그의 모습과는 다르게 작품세계는 여성적인 디테일이

돋보이는 작가입니다. 그래서 여성분들에게 더 적합한

소설이 될 수도 있을 것같네요.


 

o*****e 2014.12.20.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