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 내 실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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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17세기는 동서양 간 향신료 무역이 융성했던 시기였고 고려와 조선은 향 문화가 발달한 나라였다 한다. 그리하여 17세기 향장 정수연이라는 모델을 조선에 탄생시켰고, '조선에 술을 증류하여 얻은 주정으로 알코올 향수를 만든 여성 장인이 있었다면?'이란 아이디어에서 이야기는 출발했다. 때는 병자호란을 기점으로 하여 조선의 16대왕인 인조부터 북벌을 국시로 내세운 효종에 이르기까지의 역사적 사실을 바탕으로 한 드라마틱한 이야기다. 주인공 수연은 오누이와 같았던 단과의 사랑을 백단향으로, 봉림대군(이정연)이었던 효종과의 사랑은 알싸한 측백나무 향으로 들려준다. 수연은 상당히 매력적인 인물이다. 조선이라는 폐쇄적인 사회에서 미천한 신분으로 태어났지만 자신이 원하는 바를 추구하며 능동적으로 살아가는 인물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여성미까지 갖춰 각기 다른 시간과 공간에서 만나게 된 두 남자와의 로맨스는 잠들었던 연애 세포를 되살려준다. 수연이 그토록 갈망했던 향장이 되고 예기치 않게 종4품 숙원의 첩지까지 받는 등 그녀를 둘러싼 사랑과 증오와 질투의 드라마는 읽는 내내 온갖 향기에 흠뻑 취하게 만든다.
산딸기의 꽃말은 애정, 잎과 꽃이 때가 달라 서로 만나지 못한다 하는 상사화, 좋은 곳에 다녀오세요 감꽃, 탄생을 축복하는 호랑가시나무, 등나무의 꽃말은 환영, 동백의 꽃말은 고결한 이성, 초조함과 불안감을 잠재우는 치자꽃 향기, 진하면서도 맑은 자단향, 우울증에 효과가 좋은 붉은 장미의 꽃말은 욕망 등 꽃말에 얽힌 다양한 이야기도 함께 소개하고 있다. 이렇듯 상징적인 의미를 꽃에 부여하여 로맨스 소설과도 잘 매칭이 된다.
사람은 누가 얼마큼 알아주느냐에 따라 다르게 쓰이는 법이다. -p261
병자호란을 계기로 강화도가 함락되면서 청나라가 소현세자와 봉림대군을 볼모로 요구했고, 청국은 수연을 포함한 육십만에 달하는 조선 포로들을 그들의 나라로 끌고 갔다. 청국 심양관에 머물면서 수연은 세자빈을 도와 경제적 자립을 도모했는데 수연이 만든 향유는 귀족들을 상대로 고가에 팔렸다. 강화도 함락과 삼전도, 청국 역관 정명수의 암살 작전, 인조의 총애를 등에 업은 소용 조씨의 만행, 효종의 죽음과 함께 교수형을 받았던 신가귀는 단의 또다른 이름으로 불리고 효종의 행적 역시 사실과는 다르게 귀결된다. 북벌 계획을 도모했던 봉림대군의 스승 우암 송시열의 야심, 병자호란의 후유증으로 사흘 밤낮 동안 홍제천에서 몸을 씻은 후에야 남편 곁으로 돌아갈 수 있었던 여인들(화냥년)에 얽힌 사연 등 지난했던 시대와 함께 상상 속의 인물 수연을 풀어나갔다.
냄새에 관한 천재적인 능력을 타고난 한 남자가 향기로 사람들을 지배하게 되는 과정을 그린 파트리크 쥐스킨트의 소설 <향수>를 기억한다. 그 책을 다 읽고난 뒤 내 후각이 예민해졌음을 경험한 바 있다. 그때의 향수가 물리적이고 자극적인 알콜성 향이었다면, 박소정의 『모란꽃이 모랑모랑 피어서』는 가공하지 않은 자연 본래의 향을 담은 맑은 물빛이다. 그녀가 조선의 향장이기 때문일까? 물과 바람, 빛과 소리가 흐르는 한 폭의 풍경화가 절로 연상이 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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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세의 대학생이 이런 스케일의 조선을 무대로 한 소설을 써냈다는 사실에 조금은 무력해진다. 이 나이 먹도록 뭘했나 그렇다고 되돌아가 다시 살 수도 없는 일이고. 상상력의 차원을 따지면야 젊고 신선한 감각에 기댈 수 있는 잇점이 분명 존재하지만 그 상상이 하나의 소설로서의 긴 호흡을 가진 이야기가 되기 위해서는 이야기에 생명을 불어 넣는 디테일이 필요하다. 그리고 그 디테일은 전적으로 상상에서만 나올 수는 없다. 한 번도 보지 않은 것 전혀 지식이 없는 곳에서 나올 수 있는 건 고작 감정의 정도 변화 뿐이므로 그걸로 긴 에세이는 쓸 수 있을 지언정 소설을 쓰기는 어렵다. 조향사라는 직업이 실제로 조선에 존재했다는 기록은 없는 것 같다. 개항 이후에도 한국에 조향사가 생긴 지는 그리 오래된 것 같지 않다. 대형 화장품 회사 연구소의 한 부서 정도나 될까. 그런데 이 젊은 친구는 향을 매개로 향만드는 일을 추구하는 여자의 사랑을 창조해냈다. 문학만 공부했더라도 아직 장편 한 권을 마무리할 만한 소양을 갖추기 어려울 나이에 그 책을 끌고 가는 매개를 향으로 할 만큼의 향에 대한 지식을 쌓고 빈 곳은 상상력으로 메웠다는 사실이 참으로 기특하고 대견할 뿐 아니라 존경스럽다. 로맨스 소설을 읽을 나이가 아니라서 후루룩 만화책 읽듯 읽어버릴 요량으로 주말 차에 가지고 다니다가 어제 저녁 단숨에 읽었다. 퍼플 로맨스 소설상 공모작 대상이라기에 달달하고 닭살돋는 허황된 현실성 없는 사랑 얘기에 한 번 빠져볼 마음의 준비를 하고 읽기 시작했는데 기대를 조금 엇나갔다. 대학생이 썼다고는 믿기지 않을만큼, 다소 평이하지만 잔잔하고 서정적이고 안정적인 문체, 감정의 절제, 전통 혹은 자연의 향과 약제에 대한 전문지식,역사 소설에 필요한 자잘한 디테일과 어휘들.. 아마도 심사 과정에서는 그런 것들이 높이 평가되지 않았나 싶다. 고전이지만 문체와 대화체는 완전하 현대어로 되어 있고 주인공의 사고 방식과 말과 행동도 당시 배경이 되는 사뢰에 만연되어 있던 유교적 전통을 따르지 않는다. 오래전에 이영애가 주인공을 맡았던 티브이 드라마 대장금의 장금이처럼 사랑을 내던지고 스스로 궁에 들어와 차근차근 조향사의 길을 걷는 독립적이고 당찬 여성이다. 신분이 높은 양반집 규수의 뺨을 때리기도 하고 대군에게 뜨거운 목욕물을 끼앉고 쫒아가 놀다가 도포까지 빼앗아가기도 한다. 이런 설정들은 우리가 그동안 티브이에서 보았던 유교적 관습과 너무 동떨어져 조금 황당해 보이기도 하지만 여자가 남자에게 먼저 꺼안고 입맞추고 집앞으로 찾으러 가 서성이는 모습은 사랑에 있어서는 수동적으로만 여성을 그려내던 기존 사극에서는 볼 수 없던 모습이라 매우 신선하게 다가왔다. 그런데 내가 나이가 먹어 순수한 마음이 사라져서 그런가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 있다. 그녀의 남자 단과는 어릴 때부터 정혼한 사이이고 단은 그녀와 함께 살기 위해 그녀를 데려와 초가 삼간에 살림을 차리고 누이와 셋이서 살아가는데 함께 잠을 자지 않는 것 같다. 뽀뽀만 해도 부끄러워하며 피한다. 스무살이나 된 여자와 그보다 나이가 많은 남자가 서로 사랑하고 한 방을 쓰고 부모도 없는데 둘이 잠자리를 같이 안한다? 헐~~~ 그럴리가. 그때 조선이라면 스무살이면 과년했고 그보다 남자가 나이가 많다면 상투를 틀지 않고서는 어디 나가 남자 대접도 받기 어려웠던 시대인데 둘이 왜 서로를 힘들어했는지 그 부분이 이해불가의 영역이다. 뭐 그렇다고 정혼까지 한 상태에서 그리 알콩달콩 서로를 보담고 아끼며 살면서도 소위 요즘말로 케미가 없어서라고 말한다면 할 말은 없다. 병자 호란에 청으로 끌려가 향을 더 잘 배우고 봉림대군과 친해지는 계기를 만들며 극적 진전이 계속되다가 끝에 가서는 너무 많은 이야기를 한꺼번에 끌어들인다. 그동안 별로 궁금하지도 않은 비밀들이 쏟아져 나오는 동시에. 로미오와 줄리엣적인 죽었다 살았다 죽은척 살은척 시체 바꿔치기 신공 단순한 사건으로 인한 오해 등 각종 진부한 방법의 미스테리적 사건들을 통해 사랑의 운명이 길을 찾으니 말이다. 그러니까 이야기에 너무 많은 욕심을 부리다보니 갑작스레 막장 코드로 정신없이 극을 몰아 막을 내리게 된 것 같은 아쉬움이 있었다. 그냥 아쉽게 끝난 사랑이었더라도 그 향을 간직하는 방법으로 잔잔한 톤으로 서정적 마무리를 했더라면 조금 더 격조 높은 소설이 되지 않았을까 라는 생각을 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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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교롭게도 새해 들어 읽은 책들이 모두 역사에 관한 책이거나 역사 인식을 새롭게 할 수 있는 책들이 주를 이루었다. 클래식 음악에 대해 이야기 한 무라카미의 책 한 권을 빼고는. 역사를 읽는다는 것은 우리의 과거를 통해 현재를 알아가는 일이라는 것. 그래서 올해는 역사 관련 서적에 더 집중을 해보자 마음먹고 있었고, 또 읽고 싶은 책이었다.
며칠전에 『왕의 한의학』을 읽었다. 「조선왕조실록」과 「승정원일기」를 참고하여 조선의 왕에 대해 처방된 약제로 질병을 알아보고 질병이 생길수 밖에 없었던 역사적 비밀들을 이야기한 책으로 꽤 흥미롭게 읽었었다. 책 안에 있었던 봉림대군 즉 소현세자의 동생인 효종에 대한 이야기도 관심있게 읽은 부분이었는데 박소정 작가의 『모란꽃이 모랑모랑 피어서』에서도 봉림대군이 나와 반가운 마음이 들었다.
이 책은 조선의 조향사에 대한 이야기이다. 조선의 궁궐에 조향사가 있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해본적이 없었는데 막상 조향사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자 의복을 관장하는 상의원 소속과 내의원 소속으로 향기를 관리하는 사람이 있을수도 있었겠다는 생각을 했다. 궁궐의 여인들이든, 양반집 아녀자들이든, 기생들이든, 남자들에게 사랑을 받기 위해서 혹은 유혹하기 위해서 사향주머니를 허리춤에 차고 다녔다는 이야기는 종종 들었다. 작가가 소설에서 말한 것처럼 약재를 관리하는 사람이 향에 대해서도 더 알 수 있었을 것이란 생각도 해본다.
주인공의 이름은 정수연. 조선시대 최고의 향장을 꿈꾸고 있다. 기생인 어머니를 두고 있었지만 어머니를 잃고, 어렸을때 정혼한 단과 단의 누이동생 은이와 함께 살아가고 있다. 단은 의원이 되고 싶어하고 수연은 최고의 조향사가 되고 싶다. 사랑하는 사람의 향을 만들어 그리워하고, 사랑하는 이를 위해 향을 만들어주는 수연의 이야기는 로맨틱했다. 수연의 마음을 사로잡은 단과 수연이 세자빈의 궁녀로 살아가면서 소현세자와 세자빈을 따라 심양으로 향하며 알게된 봉림대군과의 사랑은 애틋하였다.
사랑하는 이에게서 맡고 싶은 향기, 그 향기를 맡을때마다 사랑하는 이가 떠오르게 만드는 효과를 만드는 향수를 만드는 작업은 사랑하는 사람을 그리는 일이기도 한것 같다. 사람에게는 그 사람만의 고유한 향기가 있는 것 같다. 꼭 향수를 사용해서가 아니라 그 사람의 고유한 체취가 있다. 딸아이에게서 나는 백단향, 봉림대군에게서 나는 측백나무향, 은이가 머물렀던 은방울꽃밭.
기분이 우울할때 향수를 뿌리는데 내가 뿌리는 향수는 머스크향이 진하지 않다. 풀내음과 꽃향이 어우러진 향을 좋아해 그 향수를 오래도록 쓰고 있다. 달콤한 향수보다는 싱그런 향이 더 좋다. 엊그제 보니 발코니에 천리향 꽃망울이 머물고 있는 걸 보았다. 곧 있으면 꽃이 피겠구나. 소설속에서 나온 치자꽃도 올해는 꽃을 피워 달콤한 향을 뿜어내려나.
봉림대군이 왕이 되어 봉림대군을 치료한 신가귀의 존재가 좀 뜬금없긴 했지만, 소설이란게 상상의 산물이니 그러려니 했다. 여성으로서 향장이 되어 향기를 만들어내는 일을 하고,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그 사람만의 향기를 만들어내는 이야기가 달콤했다. 나이가 어린 작가라고 알고 있는데 소설을 위해 준비를 많이 한것 같았다. 향을 만드는 작업과 역사속 인물들과 조합이 괜찮았다. 약간 아쉬운 부분도 있었지만 이 책을 읽는 시간이 모처럼 즐거웠다. |
모란꽃이 모랑모랑 피어서 제2회 퍼플로맨스 대상 수상작 저자 박소정 | 다산책방 | 2014.12.01 | 페이지 272 | ISBN9791130604275
폭풍 눈물을 흘리게 만든 로맨스소설 <모란꽃이 모랑모랑 피어서>는 제2회 교보문고 퍼플로맨스 대상 수상작이에요. 17세기 병자호란 전후 효종 시대 조선을 배경으로 한 역사로맨스 소설입니다.
향 만드는 일을 하는 장인 '향장'을 (요즘으로 치면 조향사) 꿈꾸는 소녀 수연이를 중심으로 첫사랑 단이, 봉림대군 정연과의 인연이 어우러져 가슴 설레면서도 아련한 스토리네요.
『 석가님이 또 한 번 더하지 너와 나와 한 방에 누워서 모란꽃이 모랑모랑 피어서 내 무릎에 올라오면 내 세월이요 너 무릎에 올라오면 너 세월이라 』 - p13
향장이 되고 싶은 수연이 덕분에 수많은 꽃이 등장합니다. 수연이 맡는 공기 냄새도 꽃향기에 비유하며 낭만적인 느낌이 가득하네요. 겨울 공기는 바다색 층꽃풀 향기 같기도, 하얀 수선화 향기와 닮았을 것 같다는 식으로요. 이런 문장이 나올 때마다 그 향기를 직접 느끼고 싶어 코가 움찔거립니다.
각종 향재도 곳곳에 등장하는데 따라 하고 싶은 것들이 많았어요. 등꽃은 바람 잘 부는 그늘에 나흘간 말리면 찻감이 된다 하고, 호박꽃을 데쳐 고기와 나물을 넣어 쌈으로 먹을 수도 있다니... 이 책을 읽다 보면 꽃차를 마셔보고 싶거나 꽃을 말려 포푸리 만들고 싶은 생각이 간절해집니다.
고아 출신으로 궁에 들어가 향장이 되고 숙원의 자리까지 올라가는 수연의 사랑 이야기는 조선 시대 병자호란의 아픔과 함께합니다. 볼모로 청국에서 지내게 되는 몇 년의 세월 속에서 싹튼 봉림대군과의 사랑은 파란만장한 시간을 예견하고 있죠. 궁에 들어가기 전에는 함께 지내던 단이와 가족애 같은 첫사랑을 겪기도 했고요. 단이와의 정도 그렇고 봉림대군과의 사랑도 그렇고... 아픔이 함께하지만 그 아픔에 얽매인 모습을 보이지 않는 수연이의 꼿꼿함을 보며 오히려 제 마음이 더 애절해지더라고요.
『 의식하는 순간 사랑은 시작되는 거예요. 』 - p138
겉으로만 괜찮은 척할 때도 분명 있었지만, 조선의 조향사 타이틀을 쥔 수연이에게는 그래도 향기라는 것이 삶의 치유제 역할을 하고 있었습니다. "향장의 의무는 향기로 사람들의 기분을 즐겁게 하고, 잊지 못할 감동을 주는 것"이라고 말한 수연이의 마음처럼 그녀 자신뿐만 아니라 주변 사람들까지 치유합니다.
『 내게로 와요. 고단했던 시간 다 이기고. 』 - p252
오래도록 남아 사라질 듯 사라지지 않는 단이와 대군의 향기를 끌어안고 사는 수연의 이야기는 정말 담백했어요. 그러다 이 소설의 클라이맥스 부분에서 작가 원망 엄청했네요. 폭풍 눈물 쏟아가며 이럴 줄 알았어~~~하면서. 하지만 독자 뒤통수를 두 번이나 때리며 반전의 반전을 거듭하는 스토리 덕분에 책을 덮는 순간에는 가슴이 벅차오를 정도로 묘한 감정만 남더라고요.
한때 향수를 즐겨 썼던 시절이 있었는데 지금도 그 당시 좋아했던 향은 제 가슴 속에 남아 있답니다. 그 향수에는 나름의 추억이 있었거든요. 그 향을 떠올리면 자연스럽게 그 시절 추억도 함께하게 됩니다. 수연이도 그래요. 수연이가 맡은 단이의 치자꽃 향과 대군의 알싸한 측백나무 향. 향은 사라져도 그 향을 느꼈던 감정은 고스란히 남게 되지요. 사랑하는 이를 위해 바친 수연, 단, 대군 정연... 그들의 삶이 향기와 어우러져 정말 멋진 소설이 탄생했어요. 담백한 사랑이야기, 질질 끌지 않고 제법 빠른 전개, 반전의 반전... 읽는 재미를 겸비한 탄탄한 작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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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이 어려운 건 ‘너’보단 ‘나’를 더 사랑하기 때문이다. ‘나’보단 ‘너’를 먼저 생각하는 마음이 마주 볼 때 사랑은 이루어진다. 『모란꽃이 모랑모랑 피어서』는 제2회 퍼플로맨스 대상 수상작으로 역사적 사실에 작가의 상상력이 덧붙여진 팩션이다. 효종은 조선의 17대 왕으로 재위 기간은 10년 남짓이었다. 역사는 그가 10년만 더 살았더라면 조선의 역사가 달라졌을 거라며 안타까운 왕으로 기억했다. 소설은 이름만 지어주고 떠난 양반 아버지와 기생인 엄마 사이에 태어난 수연이 조선의 조향사가 되는 과정과 훗날 효종이 된 봉림대군 정연과 수연의 애틋한 사랑을 그렸다. 작가 박소정에 의하면 수연은 효종의 두 번째 후궁 숙원 정씨에게서 빌려 왔다고 한다. “저…… 어떤 찬거리를 좋아하시나요? 자주 찾으시는 것이 있으시거든 혼인날까지 익혀보겠습니다.” 민아가 물었다. 손재주가 필요한 것은 뭐든지 솜씨가 형편없어, 부러 하려고도 하지 않았지만 그를 위해서 손수 근사한 밥상을 지어주고 싶었다. “생선구이를 좋아합니다.” 성원이 말했다. 그가 가장 즐기는 음식은 잡뼈를 푼 곤 곰국이었지만 제대로 끓이려면 얼마나 많은 시간과 정성이 들어가야 하는지 알고 있었다. 그래서 떠올린 음식이 생선구이였다. 딱히 간을 할 것도 없고 적당히 굽기만 하면 되는. “소박하시네요, 저도 생선이 좋아요.” 작은 목소리로 뒷말을 덧붙인 민아가 배시시 웃었다. 어쩐지 그에게 저는 이것이 좋아야, 저것이 좋아요, 라고 선뜻 말하기가 어려웠다. 생선은 잡내 때문에 민아가 꺼리는 식재료 중 하나였다. 비린내를 어떻게 없앤담. 눌어붙지 않게 구워야 할 텐데. 내장은 또 어떻게 분리하고? 살아 있는 생선의 배를 가를 생각을 하지 정신이 아찔해진 민아는 당장 돌아가는 길에 생선부터 사가야겠다고 다짐했다.(37-38쪽) 소설에는 수연과 정연, 수연과 단의 사랑 외에도 다양한 사랑이 등장한다. 그중에서 민아와 성원의 사랑에 끌렸던 건 우리들의 사랑을 가장 많이 닮았기 때문이다. 사랑의 초기 싫어하는 생선구이도 좋다고 말하던 민아는 결혼 후 성원과 수연의 사이를 오해해 성원과 헤어졌다. 자존심이 상한 그녀는 성원에게 자초지종을 물을 생각은 하지 않았다. 뒤늦게 성원의 진심을 알게 되지만 그는 이미 세상을 떠난 후였다.
소설을 읽기 전 질투가 조금 이는, 예쁘고 달달한 사랑 이야기이길 바랐다. 현실처럼 달달하지만은 않은 사랑이었다. 쓸쓸하고 아픈 시간은 있었지만 씁쓸한 사랑은 아니었다. 정연과 수연의 사랑이 목숨을 내놓아야 하는 사랑이라면, 은이와 신호인의 사랑은 혹독한 시간을 묵묵히 견딘 사랑이었다. 단이 수연을 향한, 서향이 단을 향한 사랑은 외롭지만 기다리는 사랑이었고, 정연의 친구 박서의 사랑은 신의였다. 박서는 신의를 지킨 덕에 미인을 얻었다. 이들의 사랑은 다른 듯 보이지만 같았다. 바탕에는 믿음이 있었다. 사랑한다면 믿고 기다려야 한다.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을 향하더라도. 아주 힘들고 쓸쓸할지라도. 나의 믿음을 그가 배반할지라도. 현실에서라면 빨리 정리하고 새로운 사랑을 찾는 것이 현명하지만 말이다. 답을 내려 하지 마세요.(117쪽) 수연의 뜻은 물처럼 아무 곳에서 스며들어 연을 맺으며 살라, 였다. 그녀는 단과 은이를 시작으로 여러 사람과 연을 맺었다. 일본에서 온 공주로 비구니 행색으로 살았던 아시타는 수연에게 향을 기억하는 법을 알려주었고 청국 부호상인의 아내 공사정은 수연의 삶에 관심을 기울임으로써 그녀가 조향사가 되도록 도와주었다. 그녀들은 모두 자신의 삶을 사랑하는 사람들이었고 타인의 삶에 관심을 기울이는 사람들이었다. 살면서 자신을 알아주는 이를 만나는 일은 행운이다. 인연의 끝은 언제나 이별이라 할지라도. 수연은 향을 만들었고 향으로 사람을 기억했다. 치자 향도 측백나무 향도 알지 못한다. 길에서 꽃을 보면 향기를 맡기보단 모습과 이름을 기억했다. 사람도 다르지 않았다. 눈으로 기억했다. 모습이 떠오르지 않을 땐 슬펐다. 이 책 덕에 사람을 기억하는 방법을 한 가지 더 알게 됐다. 눈의 기억과 향의 기억, 어느 기억이 더 오래 머물까. 꽃의 향기가 그리운 계절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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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적 인물을 지금의 상상력으로 새롭게 만들어 내는 일. 작가가 가진 멋진 능력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나는 역사와 지금의 시선이 만나는 퓨전 같은 이야기를 좋아한다. 조선시대를 배경으로 하는 최고의 향장이 되고픈 여자의 이야기. 부모를 잃고 고아로 자란 소녀(수연)는 신분도 낮고 가진 것이 없다. 하지만 그녀는 손에 닿는 무엇이든 아름답게 만드는 재주가 있다. 그녀는 전쟁으로 인해 소현 세자와 봉림 대군과 함께 청의 볼모로 끌려가고 그곳에서 향수를 만드는 재주를 발전시킨다. 그리고 사랑하게 된 봉림 대군 정연. 조선으로 돌아간 소현 세자가 갑자기 죽자 봉림 대군은 형의 적장자 대신 왕위에 올라 효종이 된다. 자신을 사랑하는 남자가 왕이 되었지만 수연은 행복하지 않은데.... 소재도 그렇고 이야기의 출발도 그렇고 나쁘지 않다. 덕분에 소현세자, 강빈, 봉림대군이란 인물을 모두 찾아보았고, 봉림대군의 비와 후궁도 찾아보았다. 봉림대군에게는 4명의 아내가 있었는데 그중 정씨 성을 가진 숙원 정씨를 이 책의 주인공으로 삼았다. 실제 인물들이 이런 사랑을 했고 이런 직업(?)을 가진 것은 아니겠지만 역사적 사실과 허구를 넘나드는 이야기는 나쁘지 않다. 실제 고려와 조선은 향 문화가 발달했다고 하지만 기록에 남겨진 게 많지는 않다고 한다. 때문에 이 책에서 수연은 전통적인 향장보다는 현대의 조향사에 더 가깝다고 말한다. 그 시대에 동서양간의 향신료 무역이 융성했기 때문에... 눈과 귀, 그리고 촉각과 후각. 인간의 감을 자극하는 것은 묘한 매력을 발휘한다. 한 가지가 아니기에 더욱 가슴 뛰는 일이기도 하다. 아름다운 한복과 자신만이 가진 향기를 가지는 것. 거기에 사랑하는 사람의 향기를 만드는 것. 정말 로맨틱하지 않을까? 하지만 왜 조금은 아쉬웠을까? 사랑하는 사람이 왕이 아니었다면, 아니 사랑하는 사람이 실제 인물이 아니었다면 보다 폭 넓게 그리고 더 다양한 이야기를 만들지 않았을까? 조선이 아니라 가상의 나라를 만들어 보다 적극적이고 전문적인 수연으로 창조했다면 좋지 않았을까? 기록된 역사가 있으니 그 틀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때문에 마지막이 억지스러운 부분이 생겨버린 것 같다. 로맨스 소설의 결론은 언제나 해피엔딩. 그 해피엔딩을 끌어내기 위해 만든 결론이 좀 아쉽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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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에 이런 일이 있었지 않았을까 하는 작가적 상상을 무한하게 펼쳐낼 수 있는 공간이 역사 속에 널려 있다고 하겠습니다. 얼마 전에 읽은 <한복을 입은 남자>에서도 작가는 측우기와 자격루와 같이 당대로서는 획기적인 발명품을 만들어 세종의 총애를 받았던 장영실이 어느 시점부터는 역사의 기록에서 사라져 흔적조차 남아 있지 않은데 착안해서 장영실이 정화함대에 동승하여 로마에까지 흘러가 레오나르도 다빈치에게 자신의 과학적 업적을 이어가게 했을 것이라는 가정을 세우고 있습니다.
젊고 감성이 넘치는 박소정 작가님은 약재를 관리하는 내의원과 궁궐의 의복을 제조하고 재물과 장신구를 관리하는 상의원에 향장(香匠)이라는 직책이 있었다는 점에 착안하여 그들 중 누군가 조향사(調香士)를 꿈꾸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소설로 엮어냈다고 합니다. 후각에 천부적인 자질을 타고난 주인공 수연이 꿈을 펼칠 수 있도록 하기 위하여 병자호란을 거쳐 연경에 볼모로 잡혀가는 세자와 봉림대군의 일행에 포함되어 조향에 눈을 뜨게 될 뿐 아니라 봉림대군과 자연스럽게 인연을 맺을 수 있도록 안배하고 있는 점도 돋보입니다.
하지만 작가적 상상력이 지나치다 싶은 점도 없지 않은데, 봉림대군과의 우연한 첫 만남이 나주의 어느 객주에서 이루어진다는 설정은 당시 대군이 지방까지 자유롭게 왕래할 수 있었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습니다. 또한 수연이 동래에서 나주로 그리고 한성으로 사는 곳을 옮기고 있는데, 상민이 거처를 이토록 쉽게 옮길 수 있었는지도 의문이 남는 부분입니다. 물론 이야기가 물 흐르듯 하도록 설정을 그리한 것이라면 그만이지만, 역사물의 경우 고증에도 신경을 써야 하는 것 아닌가 싶습니다. 게다가 궁안에서 죽은 후궁이나 군왕의 시신을 궐 밖으로 빼돌리는 일은 전혀 불가능한 일이었을 것이라는 생각입니다.
시대적 배경은 조선 인조에서 효종에 이르는 시기이지만, 이야기 내용은 지극히 현대적이라는 느낌이 듭니다. 기생인 어머니를 두고 떠난 얼굴도 모르는 아버지가 밉다고 칭얼거리는 수연에게 어머니가 해준 말입니다. “사랑은 종잡을 수 없는 거야. 그러니 눈을 감고 귀를 닫고 마음의 소리만을 듣거라(19쪽)” 어린 수연이 사랑의 의미를 이해할 수 있었을까요? 그래서 ‘코는 안 막아?’라고 다시 물었다는 것입니다.
향기가 중요한 주제가 되기 때문이겠지만, 다양한 화초를 비롯하여 향을 내는 물건들에 대하여 지금까지 모르고 있던 사실을 많이 깨닫게 된 것은 책읽기의 부수입이 되었습니다. 궁중이 무대가 되는 역사물에서는 권력싸움과 사랑이 복잡하게 엮여야 재미가 더한 것처럼 젊은 시절을 마음을 주었던 단과 새롭게 인연을 맺게 되는 봉림대군-나중에는 왕위에 오르게 되고, 효종으로 추존되는 정연 그리고 단을 마음에 두게 된 서향 등이 복잡하게 얽혀 수연이 죽음을 맞게 되고, 정연과 단 그리고 서향의 도움으로 죽음을 가장하여 궐을 빠져나가게 되고 나중에는 정연까지도 궐을 버린다는 설정입니다. 사실 삶의 목표를 북벌에 두었지만, 생각지도 못한 종기 때문에 안타깝게 생을 마감한 것으로 알고 있는 효종께서 사랑 때문에 왕위를 버린다는 설정이 쉽게 와닿지 않는다는 말씀도 빠트릴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이야기가 수연만을 뒤쫓고 있지 않기 때문에 마치 영화를 보듯 등장인물에 따라서 장면을 수시로 바꾸고 있는데, 상황의 변화를 속속들이 설명하지 않는 경우가 많고, 때로는 이어지는 상황을 단속적으로 설명하기도 해서 이야기의 흐름을 놓치기도 합니다. 사약의 부작용으로 실명한 수연이 조향을 위하여 들꽃을 꺽는 순간, 그녀를 끌어안는 누군가가 입은 측백향을 맡으면서 이야기가 마무리됩니다. 그리고 보니 서양에서는 향수를 뿌린다고 하지 않고 입는다고 표현한다는 생각이 문득 떠올랐습니다.
조선의 역사에서 향장(香匠)이라는 색다른 직업군을 발굴하여 이야기를 엮어낸 작가의 독특한 시각이 놀랍습니다. 앞서 말씀드린 대로 고증의 문제는 잠시 미루어둔다면 재미있게 읽히는 한 편의 사랑이야기라고 생각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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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란꽃이 모랑모랑 피어서' 참 좋은 어감을 가진 제목이다. 입 속에서 모랑모랑 이라는 단어를 되뇌일 때마다 굴러가는 느낌이 참 좋다. 모란꽃에 향기가 없기 때문에 다른 이의 향기를 더욱 부각시킬 수 있는 것일까? 이런 의미에서 수많은 향과 함께 인생을 살아가는 조향사 수연에게도 더없이 잘 어울리는 제목같다. 올 초에 교보문고 로맨스 공모전 본선 심사를 할 때 관심을 가지고 읽었던 '나는 조선의 조향사 입니다'가 이렇게 책으로 나오니 반갑고도 기쁘다. 표지와 제목이 주는 발랄한 느낌과는 다르게 이야기는 마냥 가볍지 않고 잔향처럼 남아 여운을 준다. 꽃말로 이루어진 소제목들도 아기자기했고 반전에 반전을 더하는 결말 또한 인상깊었다. 특히 문장이 소박하고 아름다워 로맨스 소설과 잘 어울리고 향을 표현하는 능력도 뛰어나다. 클라이막스를 이루는 장면들도 신선해서 영상으로 만들어지면 아름다운 장면이 탄생할 것 같다. 시간 구성에 미약한 부분이 몇 있지만 이것이 첫 소설이라 하니 앞으로의 작품이 더욱 기대된다. <책 속의 문장> '이 후원에서 그와 함께 첫눈이 내리는 걸 보고 싶었다. 어디에든 공평하게 눈이 쌓이고, 망을 보느라 자꾸만 구멍 밖으로 얼굴을 내미는 딱따구리 머리에도 한 자락, 두자락씩 눈이 쌓이는.' -p.198 '새의 깃털에 향수를 적신 수연이 결과물을 점쳐보았다. 아직은 조화롭지 못하다. 향유들이 저마다 나를 봐달라고 고개를 내미는 꼴이었다. 완전한 숙성을 위해선 적어도 석 달은 필요할 것이다. 완성되기 전까지는 결과물을 확인할 수 없다는 게 향의 매력 중 하나였다.' -p.176 '사랑도 이처럼 쉽게 감을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사랑은 제멋대로 눈을 떠서는 수연의 마음을 하나로 모으고, 흐트러뜨리고, 내팽개쳤다. 그리고 마침내, 사랑은 수연을 뿌리 깊은 고목처럼 만들어 움직이지 못하도록 했다.' -p.20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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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에도 향기가 있다>
책 제목이 너무나 아름답다. 제목 뿐 아니라 표지의 그림 또한 너무도 포근하다. <모란꽃이 모랑모랑 피어서>란다. 모란꽃이 어떻게 모랑모랑 필까만은 혀가 말리는 발음도 이쁘고 정말 모란꽃이 그렇게 모랑모랑 피어날 것만 같은 느낌이 든다. 교보문고 제2회 퍼플로맨스 대상작이라고 하는데 로맨스 작품이라는 것도 흥미롭지만 퍼플이라는 색채가 주는 느낌 때문에 다소 아름답지만 아픈 사랑일거라는 예상을 살짝 해보았다.
얼마전 영화를 봤는데 조선 왕실의 의복을 다루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다룬 작품이었다. 과거 장금이가 궁궐의 소주방에서 음식 만들고 내의원에서 의술을 다루던 이야기였기에 그런 일을 하던 옛사람들에 대해서 관심이 생겼듯 영화를 보고도 마찬가지였는데 이 책에서는 또 다른 일을 하는 사람을 만나게 되었다. 조선시대의 향이라...우선 향이라고 하면 여인네들이 가지고 다니던 분첩이나 가장 좋다는 사향노루 향낭정도랄까? 그런데 조선시대에도 향장이라고 해서 향을 다루는 일을 하는 사람이 있었다고 한다 .이 소설의 주인공인 수연이 바로 조선시대 최고 향장을 꿈꾸는 조향사로 등장한다.
향에 관심이 있는 여인을 주인공으로 내세워서 그럴까? 이야기마다 모든 것이 향에 비유되는 것이 무척 인상적이었다. 사람마다 그 사람의 향이 있다는 것은 익히 알고 있지만 수연은 자신이 가지고 있는 추억데도 향을 부여하고 그리움에도 향을 부여한다. 모든 것이 향으로 귀결되는 그녀였기에 최고의 향장을 꿈꿀 수 있는 걸까?
시대적 배경도 참 재미있다. 우리나라 안에서 향을 연구하고 발전시킨다는게 어딘지 낯설게 느껴졌는데 조선 효종때를 배경으로 하면서 청에 볼모로 잡혀간 세자와 대군의 무리에 수연도 동행하게 되면서 자연스럽게 향이 발달한 중국의 문화와 접목되기 때문이다. 서양 문물이 많이 들어온 중국이기에 향에 대해서 더 많은 이야기를 하는 것이 자연스러워질 수 있었다.
수연이 궁으로 들어가게 된 계기나 그녀가 사랑했던 혹은 그녀를 사랑했던 두 남자들의 향을 표현하는 기법이 여성작가이기에 섬세하다고 할 수 있겠다. 그동안 생각해보지 못했는데 만약 내가 사랑하는 사람을 향기로 표현한다면, 혹은 나의 어린시절을 향기로 표현한다면?하는 생각을 문득문득 해본다.
시대적 배경이나 생각하지 못한 조선시대의 조향사를 등장인물로 한 것이 흥미로웠다. 마치 사극을 보는 듯한 느낌도 들고 이루어지지 않는 그렇지만 늘 그리워하는 그 향을 어디선가 만날 수 있을 듯한 느낌이 사뭇든다. 마지막 수연이 맡은 향의 주인공이 진정 그녀에게로 왔는지 혹은 그녀의 꿈인지 ...측백나무 향이 알싸하다는 마지막 대사가 기억에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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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운 겨울, 따뜻한 봄날의 꽃향기가 물씬 풍기는 달달한 로맨스 소설 한편 권해드릴까해요. 제 2회 퍼플로맨스 대상 수상작인《모란꽃이 모랑모랑 피어서》는 병자호란이라는 전시상황, 조선의 조향사라는 직업, 기구한 운명의 남녀의 사랑이 짧은 문장체 속에서 모랑모랑 피어서 긴여운을 남기는 독특한 소설입니다. 대중문화 전반에서 이제 '프로 여성'을 소재로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특히 사극의 여성상도 변하고 있는데요. 흔한 캐릭터 보다 조선이라는 나라의 열악한 여성의 지위를 불구하고 프로다운 면모로 이름을 남긴 사람들이 많습니다. 소설 《모란꽃이 모랑모랑 피어서》의 주인공 '정수연'은 가난하고 낮은 신분에도 불구하고 조선의 조향사가 되고 왕의 총애를 받기도 하는 여성으로 로맨스 소설임에도 불구하고 향기에 대한 수연의 탐독력과 실험정신이 곳곳에서 발견되어 매우 흥미롭게 읽어내려갔던 소설입니다. 책 표지부터 느껴지는 향긋한 꽃내음을 시작으로 짧은 호흡으로 써내려간 글들은 가독성과 뒷이야기의 흥미를 유발하는데 도움이 됩니다. 소제목들 조차 그 챕터의 내용을 축약한 듯 제목만 보고도 유추할 수 있을 정도로 축약해 놓아 좋았어요. 새삼, 이렇게나 많은 꽃들의 이름과 꽃말을 알 수 있었던 기회였네요. 프랑스에 '향수'를 만드는 장인이 있듯이 조선에도 조향사가 존재했다면 아마 이런 모습이 아니였을지 짐작해 보았습니다. 향수와는 다르게 아담하고 은은하게 퍼지는 '꽃의 향'들의 글을 읽어내려가면 내려갈 수록 맡을 수 있을 것같은 묘한 경험까지 가득합니다.
가끔 원인 모를 두통에는 향기롭고 은은히 입안에 퍼지는 허브티 한잔이 위안이 되듯이, 어지러운 마음으로 혼란스러운 분들에게 말랑말랑한 로맨스 소설로 작은 위안을 얻으셨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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