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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이라는, 유럽이라는 지역적 특성이 있어서 가능한 시도였을 것 같기도 하고, 저자의 무대뽀 정신이 낳은 결과물이기도 한 이 책은, 대량생산과 대량소비를 근간으로 하는 자본주의가 영원히 지속되지 않을 거라는 사실로부터 그 붕괴가 당장 내일 눈 앞에 닥치면 당신은 어떻게 할 것인가? 라는 물음과 저자가 찾아낸 답을 동시에 던지고 있습니다. 시스템 안에 갇혀 있을 때에는 보이지 않던 수 많은 사람들이 이미 시스템 밖에서 그 대안들을 찾기 위해 애쓰고 있고, 탈자본주의적 삶을 살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됩니다. 한편으론, 우리보다 나은 사회복지를 갖추고 있어서 최소한 이 시스템에서 탈출한다고 해도 나락으로 떨어지지 않을 것이란 믿음이 있기에 저지를 수 있는 행동들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이 사회에선 시스템에서 떨어져 나가는 순간, 삶의 밑바닥으로 떨어질 수 있다는 불안과 생존의 위협까지도 넘어서야 가능한 일이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저자가 1년 간 소비파업을 통해서 얻은 경험들은 이 시스템에서 탈출을 꿈꾸는 저같은 사람들에겐 큰 힘이 됩니다. 체제가 유지될 수 있도록 자본주의가 감추고 있는 게 몇 가지 있습니다. 사람들 눈에 띄지 않게 어둠 속에 가리고 있는 것들... 보이면 불편해 하는 것들... 매주 아파트 단지에서 재활용쓰레기를 수거합니다. 일주일 동안 쌓여 있는 플라스틱, 유리병, 스티로폼, 종이 등등 종류별로 분류해서 치워집니다만, 이게 그 다음, 또 다음 단계에서 어떻게 처리가 되는지 우리 눈에 보이지 않습니다. 매일 음식물 쓰레기를 따로 모아서 분리 배출을 하고, 음식물 처리용 차량이 와서 싣고 갑니다. 하지만 우리 눈에 보이는 건 가져가는 장면까지입니다. 분리수거를 하라고 해서 따로 가져가는 것이니 당연히 재활용을 하거나 적절하게 재처리를 해서 재사용을 할 것이라고 예상을 해 볼 수 있겠습니다만, 우리 눈에 띄지 않는 어느 곳에서는 그것들이 한꺼번에 모아져서 우리가 알지 못하는(눈에 안 띄는) 곳에 버려지는 게 아닌가 하는 의구심을 버릴 수 없습니다. 대표적인 게 해양투기입니다. 매년 수 천톤의 쓰레기가 정해진 바다 어느 곳에 버려지고 있다고 합니다. 그렇게 버려진 쓰레기가 해양을 오염시키고, 바닷속 생명을 병들게 하고 돌고 돌아 다시 우리 몸으로 들어옵니다. 만일, 내가 쓰고 버리는 쓰레기들이 어떻게 처리되고 순환되는지를 내 눈으로 볼 수 있다면 내 삶의 방식은 지금과 달라지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공장에서 쉼없이 찍어내는 물건들이 매일 산더미처럼 많습니다. 그 물건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 누구인지 알지 못한 채 무한정 만들어지는 생산품들, 그리고 주기적으로 새로운 기능으로 다시 만들어지는 물건들을 소비하기 위해 우리 마음 속에 심어진 프로그램이 작동합니다. 바로 '욕망'이라는 코드로 이름지어진 것에 의해, 우리는 필요해서라기보다 욕망을 채우기 위해 물건을 구매합니다. 우리의 필요를 넘어서 욕망을 창출하는 것을 세련된 용어로, '광고' 혹은 '마케팅'이라는 말로 불립니다. 그리고, 우리 스스로 무엇인가를 만들어 내거나 소비를 줄일 수 없도록 끊임없이 우리 내부의 욕망을 부채질합니다. 능동적으로 물건을 만들어내는 창조자가 아닌 늘 주는대로, 수동적으로 삶을 영위하는 '소비자'가 이 시스템의 목적입니다. 그러면서 이 시스템은 절대 멈추지 않는다라고 최면을 겁니다. 대량생산-대량소비-대량폐기의 순환이 완성되어, 끊임없이 이 지구를 수탈하며 돌고 있는 자본주의 시스템의 정체입니다. 자원이 고갈되거나 재난이 닥치거나 해서 이 시스템이 정상적으로 동작하지 못할 경우에 어떻게 살아가지? 라는 불안에서 시작한 저자의 도전을 따라가면, 이 시스템에서 한 걸음 혹은 두 걸음 경우에 따라서는 완전히 떨어져 생활하는 사람들을 만나게 됩니다. 그리고, 그들의 삶으로부터 가능성을 보게 됩니다. 자본주의가 끝장이 나더라도 충분히 삶을 영위할 수 있는 가능성 말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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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가 예전 같지 않다는 건 이미 오래전부터 대다수의 사람들이 느끼고 있다. 대학만 졸업하면 제깍 기업에서 모셔가던 시대는 끝났다. 높은 학점은 기본이요, 어학연수에 해외 인턴십, 자원봉사, 극한 체험까지,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해보지만 들을 수 있는 말이라곤 “눈을 낮추라”가 전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텔레비전을 틀면, 인터넷을 켜면, 심지어 스마트폰으로 게임을 즐겨도 무언가를 사라는 메시지라 끊임없이 쏟아진다. 물건을 판매해 수익을 창출해야 하는 기업의 입장에선 이 또한 생존을 위한 몸부림이라고 할 수 있지만 아껴도 힘겨운 삶이 소비로 인해 더 힘들어진다면 대체 누가 책임을 져 줄지 알 길 없다. 필요치 않은 것들을 지금껏 얼마나 많이 구입해왔는지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필요하다’ 일컬어지는 건 나날이 증가하고 있다. 후회할 줄 알면서도 지금 당장 무언가를 구입하지 않으면 큰일이라도 날 것 같은 감정에 사로잡힐 때가 많다. 숱한 유혹들을 단칼에 베어버릴 수 있으면 좋겠는데 자신이 없다. 여기 단호하게 결심하고 실천을 한 젊은이가 하나 있다. 이제 서른다섯이라는 그녀는 비교적 젊은 축에 속한다. 독일 사회가 원래부터 염세적인 것인지 의외로 많은 이들이 위기의식을 공유하고 있었다. 우리처럼 살기 힘들다 수준이 아니라 지금과 같은 막강한 소비의 시대가 끝난 이후에 대한 고민이 제법 널리 퍼져 있는 듯했다. 위기에 빠졌을 때 우리를 구해준다거나 우리의 삶을 대신 살아줄 슈퍼맨은 없다. 그렇다고 국가나 자본이 국민, 소비자를 위한다며 나서는 것도 상상이 안 된다. 결국 내 생존 전략은 내가 세워야만 한다. 소비 사회로부터 탈출해보는 시도는 삶을 도모하는 과정에서 출발했다. 역설적이게도 문명을 거부함으로써 종말에 대한 두려움을 떨쳐내려 들었는데 성공인지 실패인지 판단은 어려웠다. 우선적으로 저자가 부닥친 문제점은 먹거리였다. 지금에야 돈만 주면 원하는 모든 것을 구할 수 있는 시대고, 이는 먹거리에 관해서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세상이 망했다고 가정한다면 지금처럼 마켓을 방문하는 것만으로도 필요로 하는 모든 걸 구하는 일은 불가능해진다. 직접 길러 먹는 것도 하나의 방법일 것이다. 다행이도(?) 우리 또한 몇 해 전부터 도시농업 붐이 일었다. 문제는 여기서는 종말을 가정해야만 한다는 점이다. 작물의 성장을 돕고자 각종 화학비료를 살포하는 일은 있어선 안 된다. 굳이 무언가를 뿌려야만 한다면 인간이 배출할 수 있는 소변이나 대변이 되어야만 한다. 농약이나 기타 등등 해충을 제거하는 일 또한 손으로 일일이 잡아주는 것 외에는 불가다. 너무 번거로워 안 되겠다 싶다면 다른 방법을 모색해야 하는데, 이 경우에는 더욱 비참해진다. 저자가 행했던 방법 중 하나는 쓰레기통을 뒤지는 것이었다. 온갖 오물 속에서 일종의 보석을 발견하는 보물찾기. 달가울 리 없다. 이미 부패가 진행돼 먹어도 괜찮은가 의심스러운 것들도 꽤 여럿일 것이다. 위생 측면을 고려하면 피해야만 할 거 같은데, 아이러니 하게도 자연에 파묻혀 지낸다 하여 오염물질을 피할 수 있는 건 아니었다. 숲에서 인위적인 모든 것을 거부하면서 살아도 이미 냇물 따위는 오염이 돼 있다. 머지않은 곳에 위치한 공장에서 알게 모르게 버리는 폐수가 내 청정 생활을 망쳐버릴 수도 있음을 감안한다면 차라리 쓰레기통에서의 자연부패가 안전할 수도 있다. 지금은 불특정 다수와의 얕고 넓은 관계가 지배적이다. 대면을 하지 않을지라도 각종 SNS나 포털 사이트를 통한 교류가 가능하다. 물건을 구입하는 경우라면 관계맺기 자체가 아예 불필요하기도 하다. 내가 지금 먹고 있는 돼지고기를 어느 농장의 누가 생산했는지 아는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되겠는가! 하지만 생존을 도모한다면 지금까지 맺어온 이런 형태의 관계는 정리가 필요하다. 반대로 소수일지라도 같은 지역에 거주하는 이들과의 깊은 연대가 필수다. 자연적으로 피어나 자라고 있는 버섯은 우리에게 훌륭한 식량이 돼 줄 수 있다. 근데 무엇이 독버섯이고 식용 가능한 버섯인지를 판단하기 위해선 도움이 필요하다. 버섯에 관한 지식을 가진 이라면 또 다른 측면에서 다른 이의 도움을 구해야 할 일이 존재한다. 서로가 지닌 강점이 나를 생존케 하고, 나아가 상대의 생존에도 절대적 힘을 발휘하는 셈이다. 그 과정에서 각종 시도가 행해질 수도 있다. 지역 화폐의 유통은 하나의 예가 될 것이다. 소유 아닌 공유를 시도하는 것 역시 이 과정에서 필요할지 모른다. 돈에 민감한 우리로서는 다소 힘들지 않을까 싶지만, 공동기금을 마련해 형편이 닿는 만큼 납부하고 필요한 만큼 사용하는 게 마냥 나쁘다고 할 순 없다. 다만 상대의 저축과 소비에 대한 무한 신뢰가 바탕이 되어야 한다. 지금처럼 마을이 부서지고 불신이 기본 정서인 상황이라면 십지가 않을 것 같다. 꼭 1년을 소비 사회로부터 거리를 둔 채 생활한 저자가 깨달은 게 있다면 인간이 지닌 능력이 무궁무진하다는 점이 아닐까 한다. 사실 나 혼자 모든 것을 행하려고 하면 불가능하다. 아무리 팔방미인이라 하여도 하나 정도는 약점이 존재할 텐데, 그 약점이 결정적인 순간에 생사를 좌우할지도 모른다. 우리는 저마다 조금씩의 부족함을 지녔다. 모두가 하나 이상의 모난 측면을 지녔기에 마치 톱니바퀴가 맞물려 돌아가듯 도움을 주고받을 수 있다. 오로지 돈만을 부르짖느라 이미 오래전 체득한 협동의 가치를 오늘날의 인류는 잊었다. 하지만 복잡하다 싶은 순간엔 언제나 기본이 빛을 발하는 법이다. 돈이 없어도, 화려한 물질문명이 없어도 인간은 살아남을 수 있다. 내가 당신을 믿고 당신이 나를 믿는다면 우린 ‘우리’로서 끝끝내 살아남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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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비 사회 탈출기 /저자 그레타 타우베르트/출판 아비요/발매 2014.12.08.
극단적인 생식 생활을 준비하기 위해 나는 먼저 집에서 5일간 글자 그대로 '오물'을 먹어야 했다. 식용 황토와 물 외에는 아무것도 먹지 않았다. 이렇게 해서 30년간 먹어왔던 슈퍼마켓에서 파는 안 좋은 가공식품의 찌꺼기를 모조리 몸 밖으로 배출해야 했다. 브리기테의 하루는 늦어도 새벽 5시에 시작된다. '원시적 수면' 시간은 짧아서 그녀는 여섯 시간 이상 자는 법이 없다. 생식가들은 모두 생명 유지에 필요한 물질들을 파괴하지 않으려고 음식을 42도 이상으로는 가열하지 않는다.
농장에서 채소는 인공 비료나 기계의 도움을 받지 않고 자연적으로 재배한다. 파종용 씨앗은 자가 채종한다. 이론이 아니라 실제적으로 생활하는데 필요한 것만 재배하여 생산하려는 의도로 농원을 운영한다. 살아가면서 우리는 끊임없이 자신이 누구인지,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 그리고 그것이 어떻게 공동체와 조화를 이루는지 알아야 한다. 집에서 자급하는 공간을 만들고, 자급자족하는 다른 이들과 사귀고, 내 소비 형태를 연구하고, 나 자신을 쓸모 있는 사람으로 만들려는 시도들이 지속되고 있다.
저는 오늘부터 소비 파업에 들어갑니다.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만 살 겁니다. 새 옷도, 새 액세서리도, 새 구두도, 새 책도, 새 기기도, 새 가구도 안 살 겁니다. 1년 동안 꼭 필요한 것만 살 겁니다. 담배하고 포도주하고 커피하고 먹을 것 조금만. 이걸 해내면 다른 것도 다 해낼 수 있습니다.
나는 거의 아무것도 사지 않았고 많은 것들을 스스로 만들면서 포기하는 법을 배웠다. 돈이 없는 우리는 자진해서 기피하는 대상이 되었다. 돈은 사람을 자유롭게 만들고 자신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모든 것을 당장 가질 수 있게 한다. 물론 우리는 우리가 정말로 무엇을 원하는지 정확히 알지 못했다. 그리고 이것은 돈에 기반한 사회의 문제이기도 하다. 10년 이내에 교환하고 소유하고 적응하는 디지털 문화가 현실 공간으로 이동할 것이다. 이제는 누구나 모든 것을 소유할 필요 없이 가장 필요한 것만 가지게 될 것이다.
환경과 경제의 종말을 향해 가지 않으려면 지금부터라도 적은 것으로 살아가는 법을 배워야 한다. 더 많이 가지려는 욕심을 버려야 한다. 나는 허리띠를 졸라매기로 했다. 1년 동안 쇼핑은 절대 하지 않기로 작정했다. 옷, 신발, 보석, 화장품, 액세서리, 가방, 가구, 스포츠용품, 놀이기구, 살림용품, 전자기기 등 백화점에서 구입할 수 있는 물건들은 이제부터 모드 내게 금기다. 12개월 동안 나는 상품 시장에서 수요자 노릇은 하지 않기로 했다. 이 기간 동안에는 최소한 나 때문에 나무가 벌목되거나 강이 오염되거나 아시아 여성 노동자가 착취당하거나 목화 농장이 물에 잠기는 일은 없을 것이다. 내가 돈을 쓰는 대상은 생필품, 위생용품 그리고 교통수단으로 한정할 것이다. 게다가 집세, 수도와 전기와 전화 요금은 계속 나간다.
《소비 사회 탈출기(그레타 타우 베르트 저)》에서 일부분 발췌하여 필사하면서 초서 독서법으로 공부한 내용에 개인적 의견을 덧붙인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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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씩 우리사회가 제대로 구동을 못할 때 어떻게 될까 생각을 해본다. 예를들어, 집에 아무것도 먹을 것이 없이 혼자 있는 명절인 경우 마트도 시장도 문을 닫으면 먹을거라곤 편의점 음식밖에 남지 않게 된다. 만약 편의점마저 없다면? 정말 하루를 그대로 굶어야할 수도 있다. 그런 일에 대한 두려움과 비슷한 두려움으로 시작한 저자의 체험생활은 여러가지로 의미가 있었다. 다만 역시 우리가 사는 사회공동체에서 완전한 해소법은 어디서 찾을 수 있을까? 확실한건 우리가 너무 많이 낭비를 하고 있고, 낭비와 함께 버려지고 있다는 것이다. 이런 현실을 깨닫고 스스로 고쳐가는 마음을 가지는 것이 저자가 바라는 하나의 시작 아닐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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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비사회탈출기: 익숙해진 것에서 해방되기의 어려움 그레타 타우베르트/ 이기숙 옮김 / 아비요 자급자족시대는 아주 먼 옛날이 아니었다. 불과 40여 년 전 시골 살이는 의복이나 최소의 도구류를 제외한 어떤 것도 소비의 필요성이 적었다. 그러나 아주 짧은 기간 어떤 곳, 어떤 사람도 시나브로 소비생활의 노예가 되어갔다. 봉건시대 농노들이나 아메리카 대륙의 노예들이 해방되기 위해선 엄청난 유혈 투쟁들이 있었다. 노예상태를 벗어난다는 것은 그만큼 힘들고 어렵다. 그렇다면 부지불식간의 소비사회의 노예가 되어버린 현대인들은 거미줄처럼 우리를 엮고 있는 소비재들로부터 해방될 수 있을까? 해방되기 위한 방법은 무엇일까? 아니 그보다 더 근본적인 문제인 왜 해방을 꿈꿔야 하는가? 라는 문제들에 대해 고민해 본다. 결코 쉽지 않은 난제임이 분명한 의문들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는 것은 결국 소비사회에서의 해방을 꿈꾸는 이유가 세상과 물질문명으로 부터의 자유, 아니 정확히는 ‘도피’ 라는 것이다. ‘아비요’에서 펴낸 「소비생활탈출기」는 독일 저널리스트 그레타 타우베르트가 돈에 기반을 둔 소비생활 없이 살아보겠다며 1년간의 생존연습을 한 기록이다. 그녀는 기존의 생존방식을 버리고 자급자족을 원칙으로 하면서 가능한 소비생활에서 자유롭기 위한 실험을 했고, 그 다양한 체험 결과를 한 편의 소설처럼 흥미롭게 적고 있다. 따라서 이 책은 위기 상황에서 어떻게 대처해 나갈 것인가를 체험하고 적은 자기 기록인 동시에 새로운 모험을 한 후 그 과정을 소설처럼 재미있게 전개해 나간 문학작품이며, 세상이 종말을 맞는 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방향을 설정해 주는 교훈적인 지침서라 할 수 있다. 그녀가 생존실험을 하게 된 동기는 엉뚱한데서부터였다. 손녀를 위해 부족함이 없어 채워지던 할머니의 방수식탁보. 훗날 손자 손녀들과 식탁에 앉아 커피를 마실 때도 풍요와 과잉을 선사하는 시스템이 건재할까 의문을 품는다. 현실 세상의 복잡다단한 일들, 전쟁과 테러, 경제 위기, 기후 변화, 자원 부족, 환경오염 등등을 생각하며 불안감을 느끼고, 세상의 종말에 대한 생각이 무력감으로 다가 온다. ‘더 많이 더 많이’를 외치면 이 세상은 커다란 위기로 귀결될 것이고, 그래서 그는 현재 상태와 자본, 그리고 시스템에서 독립하는 꿈을 꾼다. 그녀는 1년이라는 시간에 세상 시스템 붕괴 후의 극복방안. 욕망의 수준을 낮출 수 있는 방법을 찾아 항해를 떠난다. 그가 체험하고 도전한 과제는 15가지이다. 시스템의 붕괴시 살아 남기위한 15가지의 과제. 그것은 무얼 먹고 살 것이며, 어디서 살 것이며, 어떻게 살 것이냐는 세 가지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다양한 방법들이다. ‘위기가 닥치면 무얼 먹고살까?’라는 의문을 풀기 위해 굶주림을 이겨내기 위한 비상 다이어트를 행하고, 원시 체험을 위해 자연식생활에 도전하고, 사회적 대재난에 효과적으로 대응하기 위해서는 극한 상황에서 식량을 구하는 것이란 생각에 버섯을 키워보고, 도시농장에 참여하여 공동체를 찾기도 하고, 고기를 얻기 위해 직접 사냥하는 방식을 익히며, 도시 유목민 집단에 들어가 다른 집단에 들어가 기생하는 방식을 배우기도 하고, 위기상황에 처했을 때 탈출방법을 얻기 위해 무전여행을 떠나기도 한다. 재앙후의 은신처로 택한 컨테이너에 살면서도 그곳이 종말에 살아남을 수 있는 공간인 것을 의심하기도 하고, 3리터에 불과한 물로 하루를 지내며 부분별한 소비 행태를 되돌아보며 덜 구입하고 덜 버리고 사는 지역에서 더 많이 구입해야 한다는 것을 느끼기도 한다. 대량생산의 홍수에서 벗어나는 길을 찾기 위해 종말 시대의 완벽한 피난처로 생각하는 집(Earth ship)을 짓기도 하고, 소유 대신 공유의 삶을 실천하기 위해 이웃과 물건을 함께 사용하고 나누기도 한다. 돈에 기반을 둔 소비 없이 살아가기 위해 상거래의 원형이자 동물과 구별되는 특징이라 할 수 있는 물물교환에 나서기도 하고, 마지막엔 아무도 아무것도 없는 오두막에서 베풂은 도덕철학의 최고의 미덕이며 고귀한 행동임을 깨닫는다. 그녀는 이러한 다양한 방법들이 이 세상으로부터 벗어나 생존하기 위한 체험이 아니라 풍요로운 서구사회의 종말에 대비하는 능력을 키우는 것이라 강조한다. 그러나 그녀가 다양한 체험에서 얻은 것은 결국 공동체적 삶의 필요성 아닐까? 소유의 삶, 그리고 대량소비사회의 특징이 개인주의적이라면 멸망의 위기에서 자신과 우리를 구해낼 유일한 수단은 ‘함께 엮어 가고 함께 이어가는 사회’ 이라는 것. 이것이 그녀가 생각하고 느낀 ‘새로운 사회’일 것이다. 혹시 부분별한 소비생활에서 탈출하고픈 꿈을 꾼다면, 관례화된 현실에서 잠시 벗어나고픈 생각이 있다면, ‘나’이외 ‘우리’에 관심이 더해간다면 그레타 타우베르타와 함께 소비사회로부터 탈출해 보시기를 권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