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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우리는 르네상스를 이야기 하면서, 천재들의 시대라고 이야기 합니다. 미켈란젤로, 라파엘로, 레오나르도 다 빈치... 한분야 만이 아니라 여러 분야에서 기존의 오래된 관념을 깨고 인류 역사상 새로운 문화를 불러일으킨 시대의 천재들이었습니다. 이러한 다양한 분야에서의 천재가 우리나라에도 있었다는 것을 이번에 알게 되었습니다. 이번에 읽은 <나비 박사 평전 석주명>... 그는 우리나라의 르네상스형 천재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나비의 날갯짓으로 시대를 가로지른 학자의 초상이라 할 수 있는 석주명 선생의 삶과 정신을 잘 알 수 있는 책이었습니다. 생각해 보면, 차가운 붓 대신 따스한 햇살 아래 피어나는 꽃처럼, 단단한 흙 대신 유연한 날갯짓으로 하늘을 유영하는 나비처럼, 어떤 이들은 짧은 생애에도 불구하고 영원히 기억될 아름다운 궤적을 남깁니다. 그중 한 분이 바로 우리가 '나비 박사'라 부르는 석주명 선생님이다. 박사 학위를 받지 않았음에도, 그의 이름 앞에 붙은 '박사'라는 칭호는 한 분야에 대한 그의 절대적인 헌신과 열정, 그리고 시대를 초월한 통찰력을 상징하는 듯합니다. 나비 한 마리의 날갯짓이 거대한 태풍을 일으킬 수 있다는 '나비 효과'처럼, 한 인간의 순수한 열정이 어 떻게 한 시대의 지평을 넓히고 후대에 깊은 울림을 줄 수 있는지를 깨닫게 되었습니다. 오늘날 우리는 인공지능과 첨단 과학기술의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그러나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말했듯이, "인간의 창의성으로 다양한 발명품을 만들어 낼 수는 있지만, 자연보다 더 아름다운 발명품은 결코 생각해 낼 수 없을 것이다." 석주명 선생님의 삶은 바로 이 진리를 온몸으로 보여준 증거입니다. 그의 나비 연구는 자연과의 깊은 교감, 생명의 존엄성, 그리고 학문적 독립을 향한 열망을 담고 있었습니다. 석주명 선생님의 삶은 단지 '나비 박사'의 이야기로만 기억되어서는 안 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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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 제공받아 작성한 주관적인 리뷰입니다”
석주명은 한국 나비의 가짓수를 정하고 그 이름을 지은 나비 분류학자이다. 그의 가장 큰 업적은 ,외국인들이 그보다 50년 앞서 한국 나비를 연구하면서 범한 오류를 바로잡은 일이다. 그는 외국인들이 같은 종인데 형질이 조금 다르다고 해서 전혀 다른 종으로 분류한 동종 이명 921개 가운데 844개를 말소했다. 그는 60만 마리가 넘는 나비의 형질을 일일이 측정하고 통계를 내어 '개체 변이에 다른 분포곡선'이론을 창안함으로써 동조이명을 말소하고 한국 나비를 250종으로 최초 분류했다. (-26-) 석주명에 의해 이룩된 <조선산접류 목록>은 지금까지 이 분야의 어떤 제작물보다 이해하기 쉽고, 누구에게나 추천할 만한 채이다. 저자는 지난 10여 년간 쏟은 지칠 줄 모르는 노력에 대해 높은 찬사와 평가를 받아 마땅하다. (-28-) 1951년 1월 4일 밤 신당동 어느 한옥 안방, 희미한 등잔불 아래서 석주선은 일손을 놓고 깊은 생각에 잠겨 있었다. 옆에서는 시어머니와 시누이가 초조한 낯빛으로 그녀의 눈치만 살피고 있을 뿐 역시 말이 없었다. 어수선해진 뽀따리들이 널린 방 안 풍경과는 대조적으로 세사람 사이에는 꽤 오랫동안 무거운 침묵이 계속되었다. (-39-) 송도고보에 취임한 석주명은 곧 개성 지방을 중심으로 본격적인 나비 채집을 시작했다. 당장 참조할만한 나비 전문서적이 없었기 때문에 실제로 나비를 채집해서 일단 그것들의 학명을 알아본 뒤 개성 지방의 나비 분포 상태를 밝혀낼 속셈이었다. (-80-) 조선인이 기록한 시대로, 1929년 조복성이 '울릉도산 인시목'을 발표한 때부터 1939년까지다. 1932년 석주명이 첫 논문을 발표한 이래 '배추흰나비의 날개 길이 변이','굴뚝 나비의 뱀눈무늬 변이' 등 논문 70여 편을 발표한 전성기이다. (-145-) 석주명은 송도중학을 사직하고 1942년 7월부터 경성제국대학교 미생물학 교실에 촉탁 연구원으로 들어가 개성에 있는'생약 연구소'에서 근무했다. 아무리 일본 제국주의 시대였지만 대학에 소속된 신분은 비교적 자유로웠고, 게다가 학생을 가르치는 무거운 짐에서도 벗어나 홀가분해진 그는 더욱 정열적으로 활동할 수 있었다. (-171-) 작가 이병철은 1966년 고등학교 시절 국어 시간에, 황명 선생님이 , 석주명의 <제주도 수필>얘기를 꺼낸 이후였다. 우리나라에 세계 제일의 나비학자 석주명의 일화를 잠깐 소개한 이후, 그는 1950년부터, 1985년까지 대한민국에서 잊혀진 나비 박사 석주명의 삶을 들여다 보기로 하였고,그의 평전을 쓰기로 결심하였다. 나비 받사 석주명은 1908년 평양 이문리에서, 아버지 석승서와 어머니 김의식 사이에 , 3남 1녀 중 2남으로 태어났으며, 1917년 평양 공립 종로보통학교에 입학하였 다.이후 개성의 송도고등보통학교에 다녔으며, 1926년 일본 가고시마 고등농림학교 농학과에 입학하였다. 교내'에스페란토 연구회'에 참여하게 되는데, 대만으로 곤충 채집 여행을 떠난 계기를 발판삼아, 함흥 영생 고등학교에 박물교사로 취임하였다. 이후 모교 송도고보의 박물교사가 되었다. 우연과 필연이 석주명의 인생을 바꿔놓았다. 송도고보 박물교사로 일하던 당시 그곳에 외국인이 찾아왔으며, 송도고보 박물관의 놀라움을 목도하게 된다. 그는 나비 표본채집에 미쳐 있었고, 조수를 통해,대한민국 전역의 나비 표본을 수집하였다. 75만종의 나비 표본을 통해,일본의 곤충백과의 오류를 고쳐 나갔으며,한국의 고유의 나비 종을 250종으로 제한하였다. 그는 첫 논붐 '조선 구장지방산 접류 목록' 을 써서 <Zephyrus>을 게제하였으며, 10년 동안 학술 논문 100여 편을 써낸바 있다. 대한민국 곳곳에 희귀한 나비가 발견되었다면,당장 쫒아 갔던 그의 모습은 기찻길을 따라서,나비 채집에 열을 올리게 된다. 추운 겨울에도, 난방 시설 하나 의지하여, 나비 채집에 힘썼던 그가 1950년 10월, 누군가 쏜 총탄에 의해 사망하게 된다. 그는 곤충 연구 뿐만 아니라, 제주도 인구론 을 출판하였고, 조선 에스페란토학회 지도 및 강습회를 열었다.자신이 해왔던 일들 중에 제주도 방언을 수집하였고,그것이 학계에 알려지게 되었다.그의 사후 30여 년 동안 대한민국에는 그의 이름이 잊혀졌지만, 일본의 곤충학계에서는 나비 박사 석주명을 기억하였으며, '석주명 추도기'를 써서 ,일본 동물 분류학회 회원들과 함께 그의 죽음을 애도하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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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리뷰는 컬처블룸을 통해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 받아, 직접 읽고 작성한 리뷰입니다.' 나비박사 석주명은 우리 현대사 초창기의 몇 안되는 별입니다. 자연과학 분야에서 세계에 펼친 그의 업적은 일제 암흑기를 뚫고 환하게 빛을 낸 분입니다. 평생 75만 마리가 넘는 나비를 채집하고 측정하여 생물 분류학상 새로운 학설을 제창했고 외국들이 독점했던 한국산 나비의 계통분류를 완성했습니다. 제주도 방언 연구로 국어학계에도 귀중한 자료를 남기셨습니다. 평화와 애국 운동으로 에스페란토 보급에 힘썼고 산악 활동을 통해 국토 구명과 녹화사업을 벌인 다재다능한 학자였던 석주명 박사님입니다. 그의 이야기를 담은 '평전 석주명'이 처음 출간된 해가 1985년이라고 하는데요. 이번 개정판은 출간 40주년을 맞이하여 저자의 ‘취재 뒷이야기’를 보태어 출간된 새 판이라고 합니다. 저자는 자연과학에 문외한인 국문학도로서 책을 쓰면서 어려움도 많았는데 전문 분야라는 어려움 때문에 기피하고 만다면 과학자의 얘기는 아무도 쓸 수 없으리라는 믿음으로 많은 노력으로 책을 완성했다고 합니다. 멋진 분들의 이야기ㅡ는 가슴에 오래 남습니다. 이 책을 만들어주신 분들께 감사ㅡ를 드립니다. #평전 석주명 #나비 박사 석주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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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 받아 정독 후 진솔하게 작성한 리뷰입니다. ‘일제 강점기에 몇 안되는 별’. 석주명 박사를 소개하는 글이다. 그는 학문적으로 암흑기와 같았던 일제 강점기부터 평생 75만 마리가 넘는 나비를 채집 측정하여 생물 분류학상 새로운 학설을 제창하고 당시 외국인들이 독점 했던 한국산 나비의 계통 분류를 완성했던 나비 연구가이자 언어학자, 역사학자이다. 시대의 조류에 편승하지 않고 세상 앞에 당당했던 6.25 전쟁의 비극 속에서 벌어진 그의 죽음은 너무도 젊은 나이여서 더욱 안타깝고 여전히 미스테리로 남아 있다. 저자는 석주명 박사의 ‘노력’에 집중한다. 학문과 연구에 쏟은 그의 노력은 서울서 평양이라는 거리가 무색할만큼 단숨에 이동하여 기어이 진귀한 나비를 채집하고야 말았다고 할 정도로 치열했다고 한다. 볼모지와 같았던 당시 나비 연구 자료 실태에서 나름의 나비 도감이나 변이의 연속성 등에 대한 연구는 그 분야의 학문을 사랑하지 않고서는 시도조차도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는 평생 국내에 서식하는 248종의 나비를 분류했고 대부분 그 이름을 직접지었고 그 이름들은 책의 뒤편 부록에 실려 있다. 비록 일제 강점기의 암울한 현실이지만 조국의 자연을 자신의 손으로 직접 기록하고 보존하고자 하는 민족의식의 발현이었다. 마흔 한 살이 되면서 부터 나이를 한살 씩 빼기로 한 그는 그의 인생의 계산대로 서른 여덟 이라는 너무도 이른 나이에 지고 말았다. 석주명 박사의 학문에 대한 열정은 1950년 ‘한국산 접류의 연구’에 쓴 글 처럼 늘 적당한 곳에서 마무리 되었고 그가 남긴 엄청난 유고 중 미완성인 채로 남겨진 원고가 없었던 것만 봐도 열일곱권의 저서와 128편의 논문의 성과는 놀랍다고 할 수 밖에 없다. ‘그러나 인명은 예측할 바가 못 되어 필자는 항상 적당한 곳에서 단락을 지어 소저(소저)를 거듭한 지 벌써 백여 차이고…’ 그렇게 그는 나비를 따라 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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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를 잘못 만난 천재를 다시 보게 되었다. 조선의 과학자로서 짧은 시간동안 많은 논문과 연구를 하고 인정 받았지만, 어이없는 사고로 횡사한 것은 너무나 안타까울 지경이다. 그동안 인민군에게 총살당한 것으로 잘못 알고 있었으나, 이 책을 통해 취객들의 시비에 휘말렸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나라를 잃고 어수선한 상황에서도 과학자로서 아시아를 돌아다니면서 수많은 나비표본을 채집한 것부터 대단하다. 논문을 쓰기 위해 수만마리릐 나비를 모으고 연구하고 학회에 선보인 논문들은 일본인 학자들도 인정할 정도 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국내의 혼란스러운 상황에서 이런 천재를 품어주지 못하는 나라가 원망스러울 지경이다. 국내에서 에스페란토의 강의를 맡을 정도로 다방면에서 활발한 활동을 한 점도 알게 되었다. 지금의 대한민국이라면 세계적인 학자로 부상할 수 도 있었겠지만 시대를 잘못 타고 난 것이 안타깝다. 지금도 기초과학을 연구하는 국내의 많은 연구자들이 있다. 한동안 연구비가 삭감되어 많이 힘들었던 시절이 있었다. 앞으로는 이런 과오를 범하지 않고 그들이 안정적으로 연구에만 매진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었으면 좋겠다. 인공지능과 같은 유망한 분야는 외국으로 빠져나가는 것처럼, 국내의 기초과학에 대한 투자가 없다면 그들도 선진국으로 가서 외국의 과학 발전에 힘을 쓰게될지도 모를 일이다. [이 리뷰는 컬처블룸을 통해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 받아, 직접 읽고 작성한 리뷰입니다] #나비박사평전석주명 #이병철 #광문각출판미디어 #컬처블룸 #컬처블룸리뷰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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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오늘은 여러분과 함께 광문각출판미디어의 신간 <나비박사 평전 석주명>에 대해서 나눠 보려고 해요. 당시 일본학자들은 같은 종인데 형질의 작은 차이로 전혀 다른 종으로 여겼어요. 이 숫자가 무려 921개나 되더라고요. 놀랍게도 자의 노력으로 844개를 말소시켰더라고요. 저자는 이 과정을 밝히 위해서 무려 60만 마리의 나비를 하나부터 열까지 꼽꼽하게 관찰하고 통계를 내어 개체 변이에 따른 분포곡선이라는 이론을 창인했어요. 더 놀라운 것은 단지 나비만 연구한 학자라 아니라는 사실이예요. 그가 1943년에 경성제대 부속 생약연구소에 시험장 책임자로 부임하게 되었어요. 그는 2년 1개월 기간동안 제주도의 숲을 누비며 연구에 몰입했어요. 동시에 나비채집을 병행하며 제주어 7,000여 개의 어휘를 수집하고 마을에 사는 어르신들의 입말을 하나씩 꼽꼽하게 채록했어요. 그 결과 제주도 방언집과 제주도 총서 6권을 남겼어요. 지금도 그의 업적은 매우 유용한 자료로 평가받고 있어요. [이글은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 받아 작성했어요.] #나비박사평전석주명 #이병철 #광문각출판미디어 #컬처블룸, #컬처블룸서평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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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의 도서 지원을 받아 직접 읽고 작성했습니다.] 이병철이 쓴 <나비박사 평전 석주명>은 1985년에 출간한 평전에 취재 뒷이야기를 보태어 새로 출간한 개정판이다. 이 책을 처음 집필하기 시작한 것은 1979년 6월, 한국 전쟁 때 유명을 달리하신 분들을 추모하는 월간지 특집 기사로 석주명 선생을 선정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한국전쟁 중 술에 취한 국군에 의해 불의에 사망한지 30년이 안된 때였기 때문에 그와 관계가 있고, 그를 기억하는 분들이 여전히 많았을 때여서 수많은 인터뷰를 통해서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나비 연구자이자 박물학자, 언어학자, 역사학자인 석주명 선생의 삶을 입체적으로 조명할 수 있었다고 한다. 실제로 석주명 선생의 연구자료, 학술 논문, 지인들과의 면담기록, 선생의 채집기와 일기 그리고 저자의 취재 뒷이야기가 어우러져 선생의 삶을 다각적으로 조명하고 있다. 우리 땅에서 살아가는 생물은 우리가 가장 잘 알아야 한다는 선생님의 말에 생물학자가 되기로 결심한 석주명은 가고시마 고등농림학교에서 일본 곤충학계의 실력자인 오카시마 긴지 선생 아래서 공부하였고, 선생님의 권유로 우리나라에 사는 나비 연구를 시작하였다. 1931년 송도고등보통학교의 생물교사였던 석주명은 늘 쉬는 날이면 개성지방을 중심으로 나비 수집에 나서 새까맣게 탄 얼굴로 학생들에게 까마귀 선생이라 불렸다고 한다. 그렇게 10년간 한반도 전역을 누비며 75만 마리의 나비를 채집하여 수집한 나비의 목록을 정리하였고, 이 과정에서 일본 학자들의 오류를 발견하여 844종으로 분류한 우리나라 나비의 종류를 248종으로 바로 잡았다. 1940년 영국 왕립 아시아 협회의 요청을 받아 <조선산 접류 목록:A Synonymic List of Butterflies of Korea>를 집필하여 우리나라 나비들에 대한 세계 최초의 동종이명 목록으로 석주명을 세계적인 나비학자로 인정받게 하였다. 1943년부터 2년간 경성제대 부속 생약 연구소 제주도 시험장에 근무하면서 디기탈리스, 목향, 피마자 등 약용식물을 시험 재배했다. 그리고 탱자나무 등 감귤류, 비파나무, 무화과나무, 올리브나무와 같은 아열대식물을 심었다. 또 열심히 나비를 채집하여 표본을 만들었다. 뿐만 아니라 그는 동네 제삿집을 즐겨 찾아다니며 제주 방언과 풍습에 대한 자료를 수집하였고, 그 결과 광복 이후 제주도 방언, 제주도 인구, 제주도 문헌, 제주도 곤충, 제주도의 자연과 인문 등 6권의 제주 총서가 간행되었다. 이렇게 훌륭한 학자가 한국전쟁 도중 미군의 폭격으로 전소된 국립과학관의 재건을 논의하는 회의에 참석하러 가던 중 술에 취한 국군에게 살해당해 시신이 가마니로 싸여 개천에 던져지는 비극적인 죽음을 당하게 되었다. 이 책은 그의 일생을 조명하며 그의 연구가 우리나라 생물학계에 미친 영향과 그가 남긴 유산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이병철 작가의 <나비박사 평전 석주명>은 과학에 관심 있는 독자뿐만 아니라 우리나라 현대사와 인물에 대해 관심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읽고 깊은 감명을 받을 수 있는 훌륭한 평전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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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에서 제공한 도서를 읽고 작성하였습니다.
- 석주명은 한국 나비의 가짓수를 정하고 그 이름을 지은 나비 분류학자이다. ... 그는 60만 마리가 넘는 나비의 형질을 일일이 측정하고 통계를 내어 '개체 변이에 따른 분포곡선' 이론을 창안함으로써 동종이명들을 말소하고 한국 나비를 250종으로 최종 분류했다. p 26 나비의 탄생 과정은 그 자체가 경이롭다. 평소 나비에 대해 큰 관심이 있는 건 아니었지만 우리나라에 이렇게나 훌륭한 나비 박사가 있다는 걸 알고 관심이 생겨 선택한 도서이다. 나의 나비에 대한 관심이라면 고작 함평엑스포 공원 나비곤충생태관에 가보고 싶다는 정도였는데 아직도 못 가봤네. 본격적으로 책을 읽기 전 사진으로 먼저 나비 박사 석주명 선생을 만나보았다. 그 시대에 찍은 사진도 너무 귀했지만 백두산으로 나비 채집 여행이라니, 시대와 별개로 사신 분이란 생각도 들었다. 1973년에 간행된 《한국산 접류 분포도》 속 지도는 선생의 채집 여행도로 전국방방 곳곳뿐만 아니라 일본, 사할린, 만주, 대만, 오키나와까지 다녀갔음을 알 수 있었다. 이 자료만 보더라도 선생의 열정이 얼마나 깊은지 짐작이 갔다. 선생이 탈고한 지 30년이 지나 겨우 출판된 책들에 얽힌 역사는 실로 안타까웠지만 뒤늦게나마 이렇게 출판되어 참으로 다행이란 생각이 들었다. 기타리스트를 꿈꾸던 도련님이었던 석주명 선생의 어린 시절부터 어떻게 나비 박사가 되었는지 그 과정을 흥미롭게 읽어나갔다. 수십 년의 꾸준한 열정은 참 힘든데 나비에 대한 선생의 긴 세월 동안의 열정은 실로 놀랍다. 엄청난 채집 양에 의존한 '석주명식' 분류학 연구는 그 과정만 읽어봐도 입이 다물어지지 않았다.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나비는 매우 한정적이다. 나는 기껏해야 색깔 정도로 분류하는데 이 책을 읽으면서 분류의 기준이 되는 다양한 것들에 대해 알 수 있었다. 겉으로 보이는 건 참 아름답지만 뭔가 딱 꼬집어 그 특징을 살펴보기엔 나비는 너무 팔랑거리고 빨리 이동해버린다. 책 앞쪽에는 '석주명이 처음 발견한 한국산 신아종 5종'의 사진이 실려 있다. 유심히 잘 봐두어 혹여 주변에서 보이면 바로 알아볼 수 있길 희망해 본다. 짧은 생애에 비해 엄청난 업적을 남긴 나비 박사 석주명 선생의 평전을 통해 그의 열정을 잘 엿볼 수 있었다. 책 속 부록에는 '나비 이름 유래기'도 있다. 하나씩 검색하며 사진을 통해 그 모습을 보는 재미도 쏠쏠했다. 사어인 라틴어 학명도 별도로 표기되어 있다. 생각지도 못한 귀한 책을 읽게 되어 뿌듯했다. 그 업적이 후대에 더욱 널리 꽃 피어나길 염원한다. 나비를 좋아하는 분들에게 추천한다. 강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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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협찬 도서를 읽고 쓴 주관적인 리뷰 이병철 지음/ 광문각출판미디어 광복 80주년이다. 100세 시대인 요즘 평균 수명으로 따지자면 한 인물이 태어나고 죽음까지의 시간이다. 혹은 더 긴 시간 일수 있다. 여전히 살아계신 위안부 생존자 할머니 이제 여섯 분이 계신다 ㅠㅠ 그중 한 분은 내가 직접 만나 뵌 1928년생 이용수 할머니 시다. 나는 지금도 할머니의 손을 잡았던 느낌이 잊히지 않는다. 단순히 생존자가 아니라 '살아계신 역사'의 손을 잡았다는 느낌이었다. 지나간 역사가 아니라는 말이다. 광복 80주년을 맞아 석주명 박사의 평전을 읽는 것은 정말 의미가 있다. 그것은 단순히 한 과학자의 전기를 읽는 게 아니다. 해방과 독립의 가치, 그리고 민족 과학의 뿌리를 다시 확인하는 일, 거룩한 작업이다. 이 땅의 자연과 학문은 우리 손으로 기록해야 한다는 신념!!! 나는 논문 한 줄을 쓰려고 나비 3만 마리를 만졌다. 석주명 박사는 일제강점기라는 지독히 불리한 환경 속에서도 나비 연구를 통해 그의 신념을 실천하신 분이다. 그가 75만 마리가 넘는 나비를 채집·분류하며 한국산 나비의 계통을 세계적으로 인정받게 한 일은 단순히 과학적인 성과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어떤 의미에서는 '주권 회복'에 다가가는 길이라고 생각한다. 근대적인 학문의 계통은 서양 아니면 일본이 독점하던 우리 학문!! 나비에 대한 연구도 마찬가지였으나 선생의 노력 덕분에 세계에서 으뜸가는 나비 표본이 전당이 완성되었다. 당시 연구의 과정은 이 분야 문외한인 독자가 읽어도 놀라운 수준이다. 나비 연구 자료의 불모지였던 수준에서 석주명식의 나비 도감, 변이의 연속성 파악 등 그 과정이 놀랍고 또 놀랍다. 정말 사랑하지 않고는 할 수 없는 일이다. 평전 작가인 이병철 님은 세계 최초 휴대전화 박물관인 #폰 박물관 을 여신 분이다. 2014년 여주시에 오픈한 이 박물관을 오픈 당시에 가본 나로서는 정말 반가운 일이기도 하다!!!! 석주명 취재의 뒷이야기 그리고 책을 출간하기까지 여러 어려움이 서술되어 있다. 을유문화사 1947년 최초의 동물학 교과서를 낼 때 부결당한 사건. 당시 검인정 위원들에게 상례이던 돈 봉투 돌리는 상례를 무시해서 그렇게 되었다고 한다. 석주명은 당장 이 일을 바로잡았다. 석주명의 죽음은 미스터리하다. 저자가 수집한 생생한 목격담을 통해 유추할 뿐 100% 정확한 것은 아니다. 석주명 박사를 총으로 쏜 사람은 인파 속으로 유유히 사라졌다니 이런 일이 있을수가 ㅠㅠ 이 억울한 죽음을 밝혀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제한된 자원, 압박 속에서도 끝까지 연구를 이어간 그의 태도는 오늘날 도의적 책임 1도 없는 과학이, 과학자 배워야 한다. #나비박사석주명, #이병철지음, #광문각미디어, #과학자, #평전, #나비박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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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서평입니다.
석주명 박사는 일제강점기에 조선 나비 연구에 매달려 무려 75만 마리가 넘는 나비를 채집하고 분류한 생물학자입니다. 그는 조선 나비의 계통 분류 체계를 정립했으며 제주도 방언 연구, 에스페란토 보급, 산악 활동 등을 통해 다양한 분야에 기여했습니다. <나비박사 평전 석주명>은 그 올곧은 삶을 조명하며 잊혀진 그의 이야기를 다시 우리에게 전달해 줍니다. 석주명은 평생 약 75만 마리에 달하는 나비를 채집하고 측정하여 조선 나비 분류학의 기초를 완성한 곤충학자입니다. 그가 진행했던 ‘동종이명 말소 작업’은 당시 외국인 학자들이 같은 종을 다르게 분류했던 921개 항목 중 844개를 정정한 중요한 연구 성과였습니다. 그는 나비에 대한 학문적 열정만큼이나 다양한 활동을 펼쳤습니다. 제주도에 근무하면서 방언, 자연, 인문 자료를 조사해 ‘제주도 총서’ 6권을 남겼으며 에스페란토 보급 활동에도 힘썼습니다. 하지만 그는 1950년 술 취한 국군복을 입은 청년의 총에 희생당하며 42세라는 나이에 삶을 마감했습니다. 그의 죽음 이후 배경 자료와 지도 한 다발만 품고 역사 속으로 사라질 뻔한 원고들을 그의 누이는 자신이 평생을 모아왔던 옷을 버리고 지킨 덕분에 그의 생애와 연구 사례가 기록으로 남을 수 있었습니다. <나비박사 평전 석주명>은 1985년 초판 이후 꾸준히 재출간하며 기억 속에서 잊힌 학자를 다시 불러옵니다. 이번 개정판에는 저자의 ‘취재 뒷이야기’가 새롭게 추가되었다고 하는데 이를 읽다 보면 취재 과정의 어려움과 증언자의 증언이 함께 실려있기 때문에 평전으로서의 깊이를 더합니다. 이 책은 허망한 죽음 탓에 우리에게 잊혀진 석주명의 전기와 그의 분류학 이론, 채집 실험, 제주 연구, 국제 교류 등 그가 일한 구체적 장면과 성과를 우리에게 전달해 줍니다. 석주명과 그의 연구성과를 알고 싶은 분들께 이 책을 권해드리고 싶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