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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각을 예술로 승화시킨 선구적 시인
"감각을 예술로 승화시킨 선구적 시인" 내용보기
이장희의 시는 감각을 뛰어나게 언어로 살릴 수 있는 시인이다. 그리고 30년대의 일부 모더니스트와는 달리 작위성이 별로 드러나지 않는다. '낯설게하기'보다는 평이한 언어로서 독자들의 가슴을 시 안으로 빨아들이기 때문이다. 그리로 이런 특성에서 그의 선구성 및 독창성이 있는 것 같다. 평자들도 지적하듯이 1920년대 당대의 시로서는 놀라울 만치 이장희의 시는 선명한 색조와 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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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장희의 시는 감각을 뛰어나게 언어로 살릴 수 있는 시인이다. 그리고 30년대의 일부 모더니스트와는 달리 작위성이 별로 드러나지 않는다. '낯설게하기'보다는 평이한 언어로서 독자들의 가슴을 시 안으로 빨아들이기 때문이다. 그리로 이런 특성에서 그의 선구성 및 독창성이 있는 것 같다. 평자들도 지적하듯이 1920년대 당대의 시로서는 놀라울 만치 이장희의 시는 선명한 색조와 감각을 살려놓고 있다. 평자들은 소위 사물의 객관화를 통해 주관을 드러낸다는 것을 이구동성으로 지적한다. 당시의 시들이 주관의 토로에 치우쳐져 있음을 볼 때 그의 시는 획기적인 것이었다. 고월 이장희는 감탄할 만큼 시어를 감각화한다. 가령, 봄을 고양이의 신체 중 네 군데로 표현하여 선명하게 봄에서 느끼는 감성을 보여준다. 그의 예리한 감각과 언어 사용의 탁월성은 여러 평자들이 이구동성으로 지적하고 있다. 내 생각에 그의 시에서 문제되고 있는 것은 다음과 같은 것들이다. 1) 세계와 시인 자신을 이어줄 수 있는 미적 감수성과 푸른빛의 관계, 2) 작가가 원했던 세계의 의미(마더 컴플렉스?), 3) 그의 감각적인 시와 30년대 모더니즘 시의 관련성, 그리고 독자성, 4) 그의 시와 20년대 낭만주의 시와의 관련성과 그 극복 유무, 5) 그의 시에 나타난 도시적 감수성과 서구적 감각의 세계(모더니즘과 관련), 6) 그의 시 자체의 변천에 대해 - 초기시의 객관적 감각성과 후기 시의 주관성이 앞선 경향에 대하여. 그러나 이장희 시의 미덕은 감각성에만 머물지 않는 데에 있다. 그의 시는 차갑지 않다. 자신의 고독과 쓸쓸함이 모더니즘적 감각과 어우러져 있는 것이다. 그래서 그의 시를 보면 볼수록 정다움을 느끼게 된다. 고월은 불행한 삶을 살았다. 그는 자살했다. 그의 시어에서 보이는 쓸쓸함, 어떤 막연한 상태에 용해되려는 욕망 등은 그가 현실과 화해할 수 없음을 보여준다. 그러나 그가 봄에서 느끼던 적적함, 고즈넉함은 삶의 권태에서 나온 것으로 볼 수는 없다. 그는 그 아스라한 감각을 자신이 원하던 '유방의 세계' 또는 '푸른빛의 세계'가 보여주는 매력에서 그 원류를 찾고 있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그의 시에서의 여성의 의미에 대해 흥미를 가지게 된다. 그에게서 여성은, 환상 속에 존재하는, '청천의 유방'과 같이 젖을 줄 수 있는 여성이다. 그래서 아무리 빼어난 미모의 여성이 나타나더라도 고월의 눈엔 슬픔만 안겨온다. 나로서는 고월의 시 중 이러한 부분을 가장 주목하게 된다. 그의 여성관-현실적이지 못하면서도 항상 몽롱한, 미래의 형체 없는 모습을 가지면서 현재의 고월을 끌어내주는 그런 여성-에 대해 사실, 내심 큰 공감을 느끼는 바이었기에 그렇다. 나에게 여성의 이상향이란 보들레르의 연은 쟌느 뒤발과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의 롯데와 같은 여성이 이중적으로 결합되어 있는 모습이었다. 고월이 자신의 여성상을 만들었듯이 나도 내심으로 그 대상을 만들었던 것이다. 하지만 나는 베르테르나 보들레르가 될 수 없었다. 나의 대상 - 내가 작위적으로 그 여성을 어떤 틀에 끼워 맞추었더라도-은 나와 어울릴 수 없었다. 베르테르나 보들레르의 일화는 나에게 하나의 모형이었을 뿐, 나에게 생의 질서(나의 생을 그것에 흡입시킬 수 입는)는 아니었던 것이다. 그(이장희)의 생과 시를 보면서 나는 나의 생에 대해(특히 여성과 관련된)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지만, 그는 무언가 결론을 내려주지 못했다. 그러나 당연한 일이다. 누가 생에서 어던 결론을 내릴 수 있단 말인가. 그래서 난 그에게 감사 드리고 싶은 마음이 있다. 어떤 깊은 비밀이 숨겨진 곳에 그가 나를 데려다 주었기 때문이다.
YES마니아 : 로얄 r*******1 2000.08.06. 신고 공감 1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