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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 주머니에서 나온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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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렐 차페크의 단편 소설집 "왼쪽 주머니에서 나온 이야기"는 카렐 차페크가 주로 신문에 실었던 짤막짤막한 소설들을 모아 놓은 것입니다. 내용은 다들 범죄와 관련 있는 이야기인데, 책 뒤표지에 실려 있는대로, 추리 소설 같은 느낌의 읽을 거리에 환상적인 느낌으로 펼쳐내는 실존주의 소설 같은 분위기가 서려 있는 것들이 인상적으로 몇몇 있었습니다.그 외에는 평이한 구식 추리
"왼쪽 주머니에서 나온 이야기" 내용보기

카렐 차페크의 단편 소설집 "왼쪽 주머니에서 나온 이야기"는 카렐 차페크가 주로 신문에 실었던 짤막짤막한 소설들을 모아 놓은 것입니다. 내용은 다들 범죄와 관련 있는 이야기인데, 책 뒤표지에 실려 있는대로, 추리 소설 같은 느낌의 읽을 거리에 환상적인 느낌으로 펼쳐내는 실존주의 소설 같은 분위기가 서려 있는 것들이 인상적으로 몇몇 있었습니다.


그 외에는 평이한 구식 추리 소설 형태의 이야기이지만, 서술에 사람들의 어쩔 수 없는 모자란 면을 드러내거난 세상을 비웃는 농담조가 서려 있어서 재미를 더하는 것들이 많았고, 몇몇 소설들은 이야기로서 약간 떨어지는 면은 있었습니다만 소재만은 그런대로 흥미있는 것들도 있었습니다.


한편으로는 이 소설이 나온 1920년대, 그러니까 20세기 초의 유럽 분위기가 아주 생생하게 잘 느껴진다는 것도 지금 책을 읽을 때는 또 한가지 즐거운 점이었습니다.


실린 이야기들을 대강 분류해 보자면, 아래와 같습니다.


1) 환상적인 실존주의 소설과 결합된 형식의 이야기: 9편

2) 옛날식 범죄 이야기: 9편

3) 이야기로서는 부족한 삽화 형태의 글: 6편


저는 이 세 가지 중에서 첫번째 유형 9편이 재미있었고, 두번째 유형은 평균적인 수준, 세번째 유형은 약간은 재미없지 않나 싶은 것들이 많았습니다. 이제부터 전체 소설들의 줄거리, 결말과 함께 이야기 각각에 대해서 이야기해 보겠습니다.




1. 늙은 죄수의 이야기

1) 도둑이 주인을 찾아다니는 기이한 상황을 소개한다면서, 소설가가 자기 이야기가 다른 것과 비슷한 것 같은데 뭘 표절한 것으로 보일지 고민하는 이야기를 언급한다.


2) 한 남자가 자기가 살인범이라고 자수하는데, 살인 사건의 상세에 대해서는 절대 말할 수 없다며 함구한다. 결국 남자는 살인죄로 복역을 하는데, 자세한 사연은 누구도 모르지만 매우 모범적으로 반성하며 형기를 마친다. 이후 남자가 복역하던 방은 죄수들을 회개하는 신비한 기운이 서린 곳 취급을 받는데, 망나니 같은 주인공이 그 방에 갔다온 이후에 그 기운이 사라졌다고 다들 투덜거린다는 이야기.


* 첫번째 이야기는 이야기로서 재미를 갖춘 느낌은 없었지만, "도둑이 주인을 찾아다닌다"는 괴상한 소재와 거기에 잘 들어 맞는 해답을 달고 있다는 점은 눈길을 끌었습니다.


두번째 이야기는 도대체 남자가 무슨 죄를 저질렀는지는 결코 안가르쳐 주면서 이야기를 펼쳐 나가는데, 결말은 약한 느낌이지만, 그 신비로운 느낌은 오히려 상상을 더 돋구어 재미를 깊게 해 주는 맛이 있었다고 생각 합니다.



2. 도둑맞은 선인장

희귀종 선인장을 도둑 맞는데, 도둑을 찾을 길이 없자 그 선인장은 지금 병들었고, 치료하려면 특수한 약을 줘야 한다는 소문을 낸다. 그러자 선인장을 아끼는 도둑은 서둘러 약을 사려고 하고, 그 약을 사간 사람을 추적하여 도둑을 잡는다는 이야기. 나중에 선인장의 아름다움을 숭고히 여기는 도둑에 감격하여 주인은 도둑을 용서해 주고 대신에 멕시코에 선인장 수집 탐험을 보내는데, 도둑은 거대한 선인장에게 접근하다가 쓰러진 선인장 가시에 찔려 인생의 최후를 맞는다.


* 모범적인 구식 추리 소설 다운 이야기가 잘 잡혀 있었고, 여기에 선인장에서 인생의 의미를 찾는 듯한 도둑에 대한 묘사가 "도대체 그러면 인생의 진짜 의미가 무엇인가"하는 질문과도 살짝 연결되는 느낌도 주고 있었습니다. 특히 시적 정의라고도 할 수 있는 결말 장면이 이런 느낌을 자연스럽게 살렸다고 생각 합니다.



3.히르쉬의 실종

히르쉬라는 사람이 갑자기 실종되는데, 싸구려 카펫에 둘둘 말아 운반될 때 카펫의 색깔이 묻어 난 것이 단서가 되어 범인이 잡힌다는 이야기.


* 역시 전통적인 추리 소설 다운 이야기로, 웃음기 서린 서술이 재미를 주는 이야기였습니다.



4. 여의주와 새

카펫에 대해 일가견이 있는 주인공은 최고급 희귀 카펫이 어느 집에서 개가 깔고 자는 보잘 것 없는 물건 취급을 받고 있는 것을 알게 된다. 주인공은 헐값이 그것을 사들이려고 하지만 주인은 무심하게 여기며 팔지 않는다. 결국 주인공은 애가 타서 그것을 훔치려고 하는데, 개가 절대 자리를 비켜 주지 않고 주인공을 핥으며 엉겨 붙기만 하는 통에 실패한다. 아직도 그 어마어마하게 값비싼 카펫은 알아 주는 이 없이 그 개가 깔고 있을 뿐이라는 이야기.


* 인물의 우스운 모습들과 재미있는 개가 등장하는 내용의 결합이 이런 부류의 웃음을 깔고 나가는 풍자적인 범죄물의 정통이라 할 만한 내용이었습니다. 이야기 구조나 서술은 20세기 중반에 활약한 로알드 달 단편 소설 같은 느낌을 몇 십년 앞서서 펼쳐 보이는 흥취도 있었습니다.



5. 금고털이범과 방화범

1) 매우 주도 면밀한 금고털이범이 있는데, 허무하게도 무심코 틀니를 뽑아 두어 놓고 가는 바람에 잡혀 버린다. 게다가 도둑들처럼 도둑질한 자리에 지저분한 짓을 하고 가는 미신을 따르지 않는 냉철한 성격 때문에 그 개성을 더 알아 보기 쉬웠다는 이야기.


2) 범인이 접근하지도 않았는데, 갑자기 집이 방화를 당하자 매우 놀란다. 수사 끝에 밝혀진 범행 수법은 절묘하게 태양의 각도를 계산하여 작은 렌즈를 배치해 놓아서 태양빛이 렌즈에 집중되어 불이 붙게 꾸며 두었다는 것이다. 그렇게 정교한 계산을 해 놓은 소년은 좋은 쪽으로 재능을 썼다면 뉴턴 같이 될있지 않았을까 싶기도 하다는 이야기.


* 첫번째 이야기는 풍자적인 범죄물로, 두번째 이야기는 전통적인 추리 소설의 전형을 잘 따르는 이야기였다고 느꼈습니다.



6. 도난당한 살인 사건

별볼일 없는 거리에 살인사건이 일어나 경찰이 몰려 들고 떠들석해지자, 거리의 상인들과 주민들은 그 이야기를 나누며 많은 관심을 보인다. 그런데, 그 소식이 많이 알려지거나 경찰 수사가 확대되지는 않아서 주민들은 매우 실망한다. 너무 의아하고 불만스러운 나머지 알아 보니, 경찰에게 정식으로 사건 접수도 되어 있지 않은 상태라 놀라는데, 사실은 살인을 저지른 범인들이 경찰에 신고가 늦어지게 하기 위해 한 패인 가짜 경찰로 수사를 벌이는 척 했던 것. 범인들은 러시아인 정치 암살단으로 추정 된다고 한다.


* 끔찍한 사건이 일어나면 싫어하면서도, 그것을 호기심을 갖고 소비하려 달려드는 사람들과 대중 매체의 특징을 잡아낸 점이 시대를 확 앞서 가는 예리함이 있었다고 생각 합니다. 게다가 그런 소재가 이야기의 절정과 결말에도 딱 들어 맞게 연결되어 있어서, 소재, 줄거리, 분위기가 잘 어울려서 더욱 뛰어난 이야기가 되었다고 생각 합니다.



7. 영아 납치 사건

어린 아기가 납치 되는 일이 발생하자, 아기들은 모두 비슷비슷하게 생겼기에 납치된 아이의 인상착의를 구분하기 어려워 수사에 난항을 겪는다. 심지어 친어머니조차도 아기를 잘 구분하지 못하는 상황. 비슷한 아기를 자주 대하는 사람들과 이야기한 끝에, 아기에게 관심을 보이며 칭찬을 했을 때, 기뻐하며 아기 이야기를 늘어 놓는 것이 엄마들의 특성이라는 점에 착안, 온 시내의 아기에게 경관들이 칭찬을 하게 하고 그때 불안한 기색을 보인 사람을 조사해 범인을 찾는다.


* 간단하고 현실적인 사건이지만 풀기 어려운 문제를 제시하는 도입부가 좋은 이야기였습니다. 수수께끼에 비해 해결은 약한편인 점은 아쉬웠습니다.



8. 어린 백작 아가씨

1) 한 여자 스파이가 붙잡히는데, 이 사람은 스파이나 이념에 대해서 전혀 모르는 그냥 아가씨였다. 조사 끝에, 이 아가씨는 투철한 정치 의식을 가진 한 남자의 이목을 끌기 위해 스파이인척 하다가 진짜 스파이 혐의를 받아 몰리게 되었다는 것이 밝혀지는데, 끝까지 여자는 자신의 본모습을 숨기려 든다.


2) 한 범인을 붙잡아 조사하던 중 범인이 도망치다가 위험하게 뛰어내린다. 경찰들은 범인을 "꾸짖는데", 법정에서 너무 강하게 꾸짖었던지 범인의 갈비대가 부러지는 등 부상당한 흔적이 나타났음을 변호인이 지적하며 반발한다.


* 이야기 형태를 충분히 갖추고 있는 것은 첫번째 것입니다. 수수께끼와 꼬인 관계, 선명한 인물이 재미인 이야기로, 추리물 같은 파헤치는 재미와 극적인 갈등에서 나오는 애절함 둘 다 재미가 되는 내용이었습니다. 아쉬웠던 점은 줄거리 전달 위주의 서술이라서, 이러한 감정이 충분히 살지는 못했다는 점이었습니다.



9. 오케스트라 지휘자의 이야기

1) 주인공은 우연히 뼈를 살짝 다친 뒤에 온몸을 움직이기 힘들게 되어 그저 누워만 있으면서 쉬는데, 어느날 새벽 한 사람을 여러 사람이 때리는 소리를 듣고 너무 심하다는 생각에 화가 치밀어 벌떡 내려가서 분노에 찬 나머지 자기도 모르게 온몸을 온힘을 다해 움직여 한 사람을 지팡이로 흠씬 두들겨 패는데, 그 다음날 문득 몸이 말짱해졌다는 이야기.


2) 주인공은 리버풀에 갔다가 우연히 살인이 날 것 같은 장면을 보는데, 영어로 내용을 잘 설명할 수가 없어서 매우 답답해 하기만 한다. 그리고 그 다음날 신문 기사에서 자기가 본 사건에 대한 기사를 보는데, 거기에 찍힌 "MURDER"라는 단어가 바로 살인이라는 뜻임을 알아 본다.


* 첫번째 이야기는 우화에 가까운 환상적인 짧은 삽화 풍의 이야기 정도였습니다. 두번째 이야기는 별것 아닌 사건이고 있을 법한 일이지만 절제되어 있으면서도 점층적인 서술이 흥미를 더하고 있었고, 내용도 알 수 없는 세상에 나와 어떻게든 헤치고 살아 가야 하는 삶의 모습을 신비롭게 들추는 듯한 느낌이 있었습니다. 어두우면서도 신비로운 느낌이 그야말로 카프카 소설 같은 점도 있었다고 생각 합니다.



10. 간다라 남작의 죽음

리버풀에서 간다라 남작이라는 사람이 죽는 일이 발생한다. 주인공 형사는 평범한 강도 살인으로 처리하려고 하지만, 신참 형사인 메이즈리크는 남작이 국제 스파이 음모, 내연 관계, 협박 등으로 어지럽게 엮인 사람이기 때문에 화려한 미스터리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며 자기에게 맡겨 달라고 한다. 그러나 주인공 형사는 자기는 어려운 사건은 못 푼다며 전형적인 사건으로 수사한 결과, 흔한 강도 살인이었음을 밝혀 낸다. 얄궂게도 메이즈리크가 얼마전 해결했던 평범한 사건과 같은 형식의 사건이라서, 주인공은 메이즈리크를 두고 "상상력 부족"이라고 생각한다는 이야기.


* 추리소설들에 대한 패러디로도 볼 수 있는 이야기로, 역시 풍자적인 서술이 재미인 간결한 이야기였습니다.



11. 결혼 사기꾼

결혼을 빙자하여 선물과 돈을 뜯어내는 사기꾼을 붙잡는데, 붙잡힌 후에도 여자들이 선처를 호소하여 작은 처벌만 받고 풀려 난다. 이후 이 사기꾼은 같은 사기 목적으로 접근하는 여자를 만났다가 경찰에게 다시 잡힌다는 이야기. 경찰에게 잡힐 때 사기꾼은 자기가 사기를 칠 때 여자에게 썼던 돈은 철저하게 차근차근 계산하여 피해액수에서 빼는 설명을 하는 것이 이 사기꾼의 특징으로 나온다.


* 정형화된 범죄물로, 부드럽게 읽히는 풍자적인 서술과 사기꾼의 개성이 눈에 뜨이게 묘사된 점은 기억에 남습니다.



12. 유라이 쿠프의 발라드

한 마을에 유라이 쿠프라는 사람이 나타나 자신이 살인을 저질렀다고 자수 한다. 유라이 쿠프는 신의 뜻으로 살인을 했다고 하며, 신의 뜻으로 자수를 하라고 했기 때문에 혹독한 환경을 헤치고 자수를 하러 왔다고 한다. 찾아 가보니, 경건하고 신실하게 종교를 믿는 사람들이 사는 마을이고, 유라이 쿠프도 그 중 독실한 일원이었다. 주인공 형사는 이후 평범하게 사건을 처리하고 유라이 쿠프는 사형을 당하는데, 자수를 하기 위해 극도로 험한 길을 기적적으로 헤치고 온 것에 대한 기억은 오래 남아 있다는 이야기.


* 결론을 보면 짧은 삽화풍의 이야기입니다만, 도입부의 신비로운 느낌은 재밌었던 내용이었습니다.



13. 실종된 다리

1) 전쟁 중 주인공은 탈영 해 집으로 돌아 온다. 부인은 주인공을 퇴비 두는 곳에 숨겨 둔다. 나중에 주인공은 검거되는데, 재판관은 사형시키려고 하다가, 그 냄새나는 주인공을 두고 부인이 정기적으로 사랑을 나누었다는 사실을 듣고 그 부부애에 감탄하여 그를 징역형으로 감면해 준다.


2) 주인공은 병역 기피를 위해서 한쪽 다리를 못쓰는 척하며 세상을 속이는데, 그 이후로 정말로 점점 그 다리가 없어지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결국 주인공은 자수를 하지만 다리가 많이 못쓰게 되어 이번에는 징병 검사에 합격하기 쉽지 않다. 가까스로 노력한 끝에 주인공은 병역을 이행하게 되고, 점차 다시 다리가 있는 느낌이 생긴다.


* 첫번째 이야기는 풍자적인 서술로 되어 있지만 어두운 사회 현실을 밝히는 이야기에 가까웠습니다. 두번째 이야기는 깔끔한 결말을 가진 환상적인 이야기로 시종 흥미진진하게 전개되는데, 그 과정에서 당시의 세태 묘사, 사회 풍자가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어서 두 가지 요소가 어울린 맛이 좋았습니다.



14. 현기증

한 남자가 신혼여행으로 이탈리아의 한 탑에 올랐다가 심한 현기증을 느낀 뒤에 이후 계속 현기증으로 괴로워하게 된다. 남자는 마침내 한 탁월한 정신분석학자를 만나게 되는데, 그는 탑에 올랐을 때 갑자기 자신의 사랑하는 부인을 이유 없이 밀어 떨어뜨리고 싶다는 충동을 마음 속 깊은 곳에서 강렬하게 느꼈기 때문에 그에 대한 혼란스러운 마음을 느낀 것이 현기증의 원인임을 지적한다. 남자가 그것을 받아들이자, 현기증은 낫는데, 남자는 바로 높은 곳에서 뛰어내려 자살한다.


* 20세기 중반까지 유행했던 정신분석을 소재로한 이야기의 정통이라 할 만한 내용이었습니다. 이국적인 풍경으로 시작해서 점점 더 흥미를 더해 가는 이야기 구성 또한 모범적이었다고 생각 합니다.



15. 고해

한 신부에게 어떤 범죄자가 끔찍하고 역겨운 자신의 죄를 고해한다. 그러나 회개하지는 않았으며, 단지 그 사실을 누군가에게 말하고 싶었을 뿐이라고 말한다. 그는 변호사를 찾아 가서 소송과는 아무 관계 없이, 그저 비밀이 보장되는 관계에서 자신이 저지른 일을 실토하고 싶어서 돈을 내고 그 죄를 이야기한다. 그리고 그 남자는 나중에는 의사에게도 죽기전에 그 죄에 대해 들려 주었다는 이야기.


* 맥거핀을 이용하는 솜씨를 죽 밀어 붙여서 신비로운 맛과 재미를 이끌어낸 느낌이었습니다.



16. 서정적인 도둑

한 도둑이 도둑질한 장소에 시를 남겨 두고 그 시가 신문에 실려 유명해진다. 시는 좋은 평가를 받는다. 도둑은 계속 시를 남기는데, 그다음에는 시가 신문에 실리지 않자 나중에는 속이 터져서 따지러 왔다가 "시의 신선함이 떨어지고 진부해졌다"는 평을 듣고 감옥에 갇힌다. 교도소에서 끔찍한 감옥 생활을 소재로 한 글을 쓰라는 충고를 듣고 그에 대한 글을 쓰기 시작하는데, 막상 찾아가 보니 감옥은 모범적으로 운영되는 평화로운 것이어서 글과 완전히 달랐다. 이후, 도둑에 대한 소식은 범죄에 대해서도, 문예에 대해서도 전혀 알 길이 없다는 이야기.


* 이야기가 꼬여 가면서 점점 더 풍자로 흘러 가는 재미가 즐거웠던 이야기였습니다. 힘차게 진행되던 중반까지에 비해, 절정과 결말은 나쁘지는 않지만 앞부분 보다는 모자랐던 느낌이었다고 생각 합니다.



17. 하브레나의 판결

하브레나라는 고시생이 있는데, 기자들이 기사 거리가 떨어지면 푼돈을 받고 법률적으로 그럴싸한 기괴한 사건 이야기를 지어내 주는 사람이다. 하브레나는 한 번은 앵무새에게 욕을 훈련시켜 남에게 욕을 한 죄인에 대한 기사를 지어내 주는데, 기사가 실린 후 법률가들로부터, 그것은 무죄라는 이야기를 듣는다. 이에 흥분한 하브레나는 자신이 지어낸 논리가 맞으며 유죄라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집작한다. 결국 하브레나는 자기가 직접 같은 수법으로 실제로 그런 행동을 했다가 붙잡혀서 재판을 받으려고도 한다. 그러나 결국 실제로도 무죄를 받고 말고, 이후로도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가끔 그때 그 재판은 잘못되었고 자신은 유죄를 받아야 한다고 진정서를 내며 산다는 이야기.


* 우스꽝스러운 일로 먹고 사는 신비로운 사람을 등장시키는 출발부터, 일이 점점 꼬여 가는 중반과 사법 제도에 대한 풍자를 토대로 가짜와 진짜가 교차하는 기묘한 이야기를 박진감 있게 밀고 나가는 것까지, 사건도 재미있고 인물도 또렷한 걸작이라고 생각 합니다. 이런 이야기는 현대를 배경으로 개작해서 TV 단막극 각본으로 만들기도 좋을 거라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18. 바늘

1) 빵에 바늘이 들어간 것이 발견 되어 빵 제조 업자가 죄를 받을 위기인데, 경찰에서는 철저히 조사를 하고 실제로 빵을 구워 보면서 공정을 잘 따져 본 끝에, 빵에 바늘을 넣은 범인이 배달원이라는 것을 밝혀 낸다. 그런데, 그러다보니 예상치 못하게 그 경찰들이 빵 굽는 데 재미를 붙여 부업을 하게 되었다는 것.


2) 많고 많은 회계장부를 정리하는 것에서 묘한 쾌감과 성취감을 느끼는 주인공의 취향에 대해 설명하는데, 단 3센트가 안맞는 것을 맞추기 위해 산더미 같은 자료를 밤새도록 철저히 뒤져서 딱 3센트를 맞아 떨어지게 했던 일과 그 쾌감을 돌아 보며 즐거워 한다는 이야기.


* 두번째 이야기는 집착에 관한 내용을 어느 정도는 공감도 갈만하게 농담으로 펼쳐내는 삽화 형태의 이야기였습니다. 첫번째 이야기는 차곡차곡 진행되는 현실감 있는 이야기 끝에 가볍게 웃을만한 내용을 덧붙인 것도 어울렸다고 생각합니다.



19. 전보

프랑스에 사는 딸로부터 알 수 없는 암호처럼 보이는 전보를 받은 집안은 발칵 뒤집힌다. 딸이 납치라도 된 것 아닌가 걱정하며 괴로워하다가 정보요원이라는 남자에게 해독을 부탁하는데, 남자는 딸이 횡설수설해서 그런 말을 보냈을 뿐, 딸이 돈부쳐 달라고 한 것일 뿐이라고 말한다. 집안 사람들은 안심하면서도 한심한 딸에 대해 푸념하고, 한편으로 정보요원 남자에 대해 묘한 혐오감을 느낀다.


* 간단한 삽화라고 할 수 있는 내용으로, 사랑하는 사람으로부터 알 수 없는 전보가 날아 온다는 시작은 재미난 소재였다고 생각합니다.



20. 잠 못 이루는 남자

1) 주인공은 글씨가 매우 악필인 남자가 심심풀이로 남긴 메모를 암호 해독을 좋아하는 사람에게 재미로 넘겨 준다. 남자는 암호 해독에 집착한 탓에 경치 좋은 곳에 휴가를 떠나서는 휴가 내내 다른 것은 안하고 방 안에 틀어 박혀 암호 해독만 한다. 마침내 남자는 시시껍절한 메모 내용을 다 알게 되는데, 남자는 그러면서도 암호를 해독해 내는 즐거움은 무엇보다 좋은 것이라면서 오히려 기뻐한다.


2) 주인공은 밤새도록 암호를 풀기 위해 애쓴 사람에 대해 생각하면서, 자기가 불면증으로 괴로워하면서 밤새 이 생각 저 생각했던 고통에 대해 이야기 한다.


* 둘 가 간단한 삽화에 해당하는 이야기로, 모르는 수수께끼의 답에 대한 집착과 불면증에 대한 소재 자체가 재미난 부분이었고 이야기는 부족했다고 생각합니다.



21. 우표 수집

주인공을 어린 시절 우표 수집에 빠져 있었다. 그런데 가장 친한 친구에게 수집한 우표들을 보여 준 후에, 우표가 사라진 것을 알고, 친구가 도둑질을 했다고 생각하여 친구를 미워하고 우표 수집에 대해서도 박탈감을 느끼며 세상을 온통 부정적으로 보게 된다. 이후 수십년이 지난 후에, 아버지가 돌아 가셨을 때, 아버지가 주인공을 공부하게 하려고 수집한 우표를 숨겨 두었다는 것을 알게 되어, 주인공은 지난 세월고 오해한 친구를 생각하며 충격을 받는다. 이야기를 다 들은 신부는 주인공에게 다 지나간 일 부질 없는 것이라고 하는데, 그러자 주인공은 "그래도 저는 최소한 우표 수집은 다시 시작했습니다"라고 말한다.


* 헤르만 헤세의 "나비"와도 비슷한 성장 소설이자 인생에 대한 실존주의의 이야기 거리도 갈등 속에서 잘 뽑아내는 이야기였다고 생각 합니다. 마지막 결말도 단지 후련하지만은 않은 절묘한 데가 있엇다고 생각합니다.



22. 평범한 살인

주인공은 살해 당한 한 노파를 보는데, 전쟁터에서 죽은 수많은 죽음들에 대한 잊고 있던 기억이 다시 떠올라 겹쳐지면서 강렬한 충격을 받는다. 이후 노파를 살해한 살인범을 보는데, 잠깐 스쳐 본 것일 뿐이지만 너무나 평범한 인상과 강한 고통을 느끼는 것 같은 느낌 때문에 깊은 인상을 받는다.


* 전쟁터에서의 수많은 죽음과 살인사건을 대비하는 소재를 이용한 짧은 글로 역시 이야기는 부족했다고 생각합니다.



23. 배심원

폭력 남편과 못지 않게 방탕한 아내가 다투다가 아내가 남편을 권총으로 살해 한 뒤에 자수한 사건의 배심원이 된 주인공. 배심원들은 남녀로 나뉘어 남자는 죽은 남편에 감정적으로 이입하고 여자들은 죄지은 여자에 감정적으로 이입하게 된다. 주인공은 주인공의 부인이 사건에 크게 관심을 가진 것을 보고, 여자가 유죄 판결을 받은 사실을 전하면서 신경질적으로, "관자놀이를 쏘았다면 자살이라고 시치미 뗄 수도 있었다는 사실을 기억하라"고 부인에게 말한다.


* 범인에 대한 공감을 소재로 이용한 삽화였습니다. 분량은 아주 짧지는 않지만 이야기로서는 부족했다고 생각 합니다.



24. 인간 최후의 것들

1) 주인공은 인간 최후의 순간에 남는 것에 대해 이야기 하면서, 사형을 기다리는 죄수가 된 꿈에 대해 이야기한다. 주인공은 자신이 아버지로서 마지막 순간 자식 생각을 한다는 것을 느끼는데, 이후 사형 당하는 날은 일찍 일어나야 하므로 잠을 많이 못 잔다는 생각을 끝으로 하게 된다.


2) 신경에 질환이 생겨 극도의 고통을 느낀 나머지, 도저히 참을 수 없어 자결하게 된 사람이 있는데, 그는 마지막 순간 고통 자체가 삶의 증표라는 생각을 하게 되고 그 자체로 의미가 없는 것이라는 사실을 자각하게 되면서, 오히려 고통을 받아 들이고 이후로 버티면서 살게 되었다는 이야기.


* 첫번째 이야기는 사형 직전의 초조감을 소재로 한 짧은 글이었고, 두번째 이야기는 고통과 자아의 분리에 관한 인도 철학, 불교 철학에서도 볼 수 있는 내용을 소재로 한 짧은 글이었습니다. 둘다 이야기로 꾸민 것이라기 보다는 소재를 소개하는 정도였습니다.




1.저는 늙은 죄수의 이야기, 6.도난당한 살인 사건, 9.오케스트라 지휘자의 이야기, 13.실종된 다리, 14.현기증, 17.하브레나의 판결, 21.우표 수집, 7편 정도가 다른 이야기들에 비해 특별히 더 기억에 남습니다.

g******r 2015.05.09. 신고 공감 1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모순 덩어리 인간에 대한 유쾌한 성찰
"모순 덩어리 인간에 대한 유쾌한 성찰" 내용보기
책 읽기의 즐거움 중의 하나는 내가 살아 보지 못했던 장소와 시대를 살았던 세계 곳곳의 사람들을 만날 수 있다는 점이다. 카렐 차페크라는 작가가 바로 그 사람이다. 작가 소개를 보니 굉장히 유명한 사람이라서 문학을 좋아하는 사람들이라면 아마도 다들 알고 있었을 작가이겠지만 내게는 너무나 낯선 작가 카렐 차페크를 우연히 만났다. 전자 도서관에서 어떤 책을 읽을까 책 목록
"모순 덩어리 인간에 대한 유쾌한 성찰" 내용보기

  책 읽기의 즐거움 중의 하나는 내가 살아 보지 못했던 장소와 시대를 살았던 세계 곳곳의 사람들을 만날 수 있다는 점이다. 카렐 차페크라는 작가가 바로 그 사람이다. 작가 소개를 보니 굉장히 유명한 사람이라서 문학을 좋아하는 사람들이라면 아마도 다들 알고 있었을 작가이겠지만 내게는 너무나 낯선 작가 카렐 차페크를 우연히 만났다. 전자 도서관에서 어떤 책을 읽을까 책 목록을 살펴보다 오른쪽-왼쪽 주머니에서 나온 이야기라는 특이한 제목에 이끌렸다. 왠지 모르게 오른쪽보다는 왼쪽이 끌렸다. 이후 다른 도서 목록은 쳐다보지도 않고 왼쪽 주머니에서 나온 이야기라는 책을 다운 받아서 읽기 시작했다. 글의 호흡이 상당히 짧은 편이어서 생각보다 빠르게 읽혔다. 하지만 중간 중간 그가 쓴 주제들에 대해서, 혹은 그가 묘사한 등장인물들의 행동과 생각에 대해서 멈춰서 생각해보게 되는 그런 책이었다.

 

  자신이 사람을 죽였다고 자수했지만 그 이상은 말하지 않았던 죄수의 이야기에선 곤란한 상황을 맞이한 교도관들의 엉뚱한 선택에 웃음이 나왔다. 그를 처벌하려 하기보다는 오히려 증거 없는 귀찮은 사건을 어떻게 하든 처리하고픈 마음이 유쾌하게 그려져 있다. 그는 결국 죄를 지은 사람도 회개하면 구원을 받을 수 있다는 신부의 말에 회개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그 후 그가 지냈던 감방은 일종의 감화원이 되었다. 이상하게도 그 방에만 들어오면 죄수들이 죄를 뉘우치게 되었다고 한다. 하지만 지은 죄의 종류에 따라서 감화되는 시간이 달라졌다고 하는데, 그 중에서 돈과 관련된 죄를 지은 사람들의 감화시간이 가장 길었다고 한다. "엄청난 돈은 다른 어떤 것보다도 사람의 마음을 무디고 딱딱하게 만들기"때문이다. 정말 그런 것 같다.

 

  카펫 가게 주인이 실종되어 죽음을 당했던 사건에선 작은 실마리에서부터 사건을 해결해 나가는 형사의 모습이 그려져 있다. 마치 셜록 홈즈 이야기를 축약해 놓은 듯했다. 범인들은 결국 체포되고 마는데 그 결정적 원인은 바로 카펫에 사용된 싸구려 염색약 때문이었다. 카펫 가게 주인의 시체에 묻었던 카펫의 염색약 자국이 결정적 증거가 된 것이었다. 이야기의 마지막엔 이야기의 교훈을 짧게 기술해 놓았는데, 이 것이 반전의 웃음을 준다. 카렐 차페크는 이야기의 교훈이 "상품의 품질이 사업에서 가장 중요하다는 사실이다"라고 썼다. 싸구려 염색약을 쓴 카펫 대신에 품질 좋은 카펫을 밀수했다면 카펫 가게 주인을 해치운 사실이 발각되지 않았을 것이라면서. "조잡한 물건을 팔면 조만간 그 대가를 치러야 하는 법이다"라고 마무리 한다. 하하.

 

  "사실 젊었을 때는 모험하기를 좋아한다. 그리고 알다시피 용기 하나만 있어도 많은 일들을 성공할 수 있다. 하지만 점점 모든 일을 심사숙고하기 시작하면 용기는 사라지고 신중함이 그 자리를 대신 메우게 된다." 언뜻 보면 굉장한 유명인이 한 말 같지만, 이건 이야기에 나오는 금고털이범이 한 말이다. 뭐랄까 차페크는 무슨 일이 되었든 곤조를 가지고 하는 것이 멋진 일이다라고 말하고 있는 것 같다. 그의 이야기엔 미스테리 소설의 속성이 강하다보니 도둑질 이야기가 참 많은데 그 안에서도 은근 곱씹어 볼 만한 경구 같은 말들이 출현한다. 내게는 그의 이런 점이 카렐 차페크라는 작가에게 매력을 느끼게 한다.

 

  "사람들은 아주 이상한 구석이 있다. 그들은 재앙을 보면 그것이 끝나지 않았으면 하고 바란다. 커다란 화재나 홍수일수록 그런 경향이 더 심해진다. 정확한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아마 자신이 살아 있음을 강렬하게 느낄 수 있기 때문이리라." 이건 뛰어난 한 마구 제조공이 겪은 화재 이야기에 나오는 부분이다. 차페크는 자신의 이야기 중간 중간에 이와 같이 사람들의 모습에 대한 자신의 통찰을 툭툭 던지든 이야기한다. 많은 부분 공감이 된다. 이야기의 스토리도 흥미롭고 재미있지만 중간 중간 이와 같은 말들도 이야기의 주된 스토리와는 상관없이 인간, 그리고 나의 모습에 대해 다시 한번 곰곰히 생각해 볼 수 있도록 해 준다.

 

  '도난당한 살인 사건'이라는 이야기에선 사람들이 주변의 일들에 얼마나 무관심한지에 대해서도 꼬집고 있다. 거리에서 일어난 살인 사건이 수 많은 목격자들이 있었음에도 경찰에 알려지지도 않고 범인에 대한 실마리도 잡을 수 없게 되는 일이 일어날 수 있다는 이야기를 하고 있는 듯 하다. 차페크가 살았던 시대도 그랬던 것일까? 지금 살아가는 내 모습도 이야기 속의 사람들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옆집에 누가 살고 있는지도 잘 모르고, 그들과 관계를 맺고 싶어하지도 않는다. 거리에서 누군가 쓰러져 있다고 해도 번잡스런 일에 말려들고 싶지 않아서 못 본척 지나치기도 한다. 언론 매체들을 통해서 보게 되는 멀리에서 고통 받는 사람들에게는 공감하고 도와줘야지 하면서도 실제 내 옆에서 고통 받는 이웃에게는 관심을 두려하지 않는 모순 덩어리 나를 발견한다.

 

  사랑을 하게 되면 사람이 어떻게 변할 수 있을까? '어린 백작 아가씨'라는 이야기에선 사랑이 사람을 얼마나 비이성적으로 만들 수 있는지를 말해 준다. 이 백작 아가씨는 한 군인과 사랑에 빠져 그를 위해 적국을 위해 스파이인 것 마냥 연기를 해 재판을 받고 감옥에까지 간다. 게다가 그 군인은 15년 전에 결혼해서 아이도 셋이나 있는 유부남이다. 그녀의 행동을 이해할 수 없었던 담당 경관은 투옥된 그녀에게 자신이 생각하는 그 남자에 대한 진실을 말해주며 백작 아가씨가 한 어리석은 행동을 돌이키기를 권한다. 하지만 그는 자신이 진실이라고 생각했던 것들은 위대한 진실의 한 단면에 지나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을 깨닫는다. 차페크는 말한다. "진실은 다양한 얼굴을 가지고 있다. 따라서 진실에 관해 이야기 할 때는 말을 잘 가려서 해야만 한다."고.

 

  때론 인간의 힘으로는 할 수 없을 것 같은 일들을 인간들이 하기도 한다. 20km가 넘는 산길에 눈보라를 뚫고 살인에 대한 자수를 하러 왔던 죄수의 이야기의 속 주인공 경찰은 바로 그것을 경험했다. 너무나도 단순하지만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살인사건과 범인의 자수 이야기에는 인간이 이해하지 못하는 어떤 신비의 세계가 우리가 사는 세계와 공존하고 있다고 말하는 것 같다. 우리 인간들은 인간들의 힘에 대해 많은 것을 알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때로는 인간이 이해할 수 없는 초월적인 신적 존재가 있다는 희미한 증거들을 마주하기도 한다. 자연도 그렇고 인간들의 사회도 그렇고 모든 일들을 우리가 이해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언제나 한계를 인정하게 되고 겸손해질 수 밖에 없는 것 같다.

 

  '고해'라는 이야기에는 누구에게도 털어놓을 수 없는 비밀을 가진 사람들의 답답함과 그것을 해소하는 방법이 그려져 있다. 고해성사를 하기 위해 신부를 찾아온 한 남자는 신부에게 너무나 섬뜩하고 역겹고 짐승 같은 짓을 남김 없이 털어놓는다. 그리고는 회개도 없이 신부를 떠난다. 그는 아무것도 믿지 않으며 단지 자신의 이야기를 털어놓고 마음의 짐을 덜고 싶었을 뿐이었다고 말한다. 죄 사함에는 아무런 관심이 없는 그이기도 했지만, 자신이 저지른 끔찍한 일로 인해 무척이나 괴로웠던 것 같다. 여기서도 인간의 모순을 발견하게 된다. 서슴없이 잔인한 악행을 저지르기도 하지만, 한편으론 그 행위에 괴로워하는 모습이 인간에게 공존한다. 서로 공존할 수 없을 것만 같은 마음이 내 안에서도 이리저리 떠돌고 있는 것과 같이.

 

  도둑질을 한 후 한 편의 시를 남기던 도둑의 이야기도 참 재미 있다. 시를 쓰는 도둑과 그의 숨겨진 욕망, 그리고 그의 변화를 통해 인간의 마음에 담긴 보편적 욕구에 대해서도 생각해 보게 된다. 한 신문의 편집인이 이 도둑의 시를 훌륭한 평가와 함께 기사화했는데 그 이후 도둑의 범행이 증가했고 항상 범죄 현장에는 도둑이 쓴 시가 놓여 있었다. 도둑은 자신의 시를 알아주는 누군가의 독자를 원했던 것이다. 이후 도둑은 도둑질을 계속하면서 시를 쓰다가 이젠 자신의 시를 그 신문사에 보내기까지 한다. 하지만 그의 시를 마주한 편집인은 처음 도둑의 시에서의 감동을 느낄 수 없었다. 편집인이 말했다. "시인 도둑의 시는 늘 같은 것을 반복했고, 온갖 싸구려 감상주의와 터무니없는 생각들로 가득했다. 간단히 말해서, 그는 진짜 작가처럼 행동하기 시작한 것이다." 우리도 이런 작가들을 종종 보게 되지 않는가.

 

  "얼핏 불가능해 보이거나 가치 없어 보이는 일에 매달리는 사람들이 있다. 물론 그걸 옹고집이라고 부를 수도 있겠지만 나는 모험심이라고 부르고 싶다. 왜 있지 않은가. 자신의 최고 능력을 백 퍼센트 발휘하고 싶어 하는 욕망 말이다. 사람은 단지 결과만을 얻기 위해 온갖 수고를 아끼지 않는 게 아니다. 그것은 일종의 게임이기에, 자신의 자유의지로 선택한 가슴 뛰는 도전이기에 그렇게 하는 것이다." 빵에 든 바늘을 사 먹고 수사를 의뢰한 사건에 나오는 한 국립화학연구소의 연구원들이 빵을 만들어 팔게 된 어이없기도 하고 우습기도 한 모습에서 난 내 모습을 마주하기도 했다. 연구원으로서의 삶에 회의를 느낄 때가 종종 있는데 빵에 든 바늘의 출처를 조사하기 위한 그들의 태도에 나의 삶을 다시 돌아본다. 다른 사람들에게 옹고집으로 비칠 수 있겠지만 내가 선택한 가슴 뛰는 도전이라면 그 일에 매달려 보련다.

 

  딸에게서 온 알 수 없는 전보를 마주한 한 부부의 모습을 통해서 차페크는 평범한 사람들의 인상적인 변화와 특징에 대해 공감되는 이야기를 한다. "당연한 얘기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하루하루 평범하게 살아간다. 그들의 일상은 너무 평범해서 초라하기까지 하다. 하지만 애무 예외적이고 감정적인 상황에 처하면 그들은 백팔십도 딴사람으로 돌변한다. 먼저 그들의 말이 달라지기 시작한다. 목소리가 드라마틱하게 변하고, 평소에 쓰지 않던 말들을 사용하며, 논쟁도 서슴지 않는다. 뿐만 아니다. 일상생활에서는 경험하지 못했던 새로운 감정들이 그들을 찾아온다. 그리하여 열에 아홉은 자신도 미처 몰랐던 용감함과 고귀함, 희생심 같은 영웅적이며 고결한 품성을 불쑥 드러낸다. 마치 위대한 행동을 하게 만드는 어떤 공기를 마셨거나, 예외적이고 재앙적인 상황에서 어떤 비밀스러운 만족감을 맛본 사람처럼 말이다...(중략)...그러다가 드라마틱한 순간이 모두 지나고 나면 사람들은 다시 왜소한 일상인의 모습으로 돌아온다. 하지만 이후의 삶은 이전과는 다르다. 사람들은 이제 과거와 달리 일상에 환멸과 실망감을 느끼고 당혹해한다." 나 역시 이런 평범한 사람 중의 하나인 것 같다.

e*******7 2016.01.25. 신고 공감 0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추리와 미스터리의 형식으로 퍼올리는 철학적 함의 가득한 이야기들... 왼쪽 주머니에서 나온 이야기
"추리와 미스터리의 형식으로 퍼올리는 철학적 함의 가득한 이야기들... 왼쪽 주머니에서 나온 이야기" 내용보기
카렐 차페크는 체코 출신으로 프란츠 카프카, 밀란 쿤데라와 어깨를 나란히 한다고 하지만 두 작가만큼 알려져 있지는 않다. (오래전 《도룡뇽과의 전쟁》이라는 책을 산 적이 있는데, 읽지는 않았다. 읽기를 아꼈던 걸로 해두자...) 작가를 소개한 글을 읽어보자니 《R.U.R : 로숨의 유니버설 로봇》이라는 희곡 작품에서 ‘로봇’이라는 개념을 창시했다는 대목이 눈길을 끈다.
"추리와 미스터리의 형식으로 퍼올리는 철학적 함의 가득한 이야기들... 왼쪽 주머니에서 나온 이야기" 내용보기

  카렐 차페크는 체코 출신으로 프란츠 카프카, 밀란 쿤데라와 어깨를 나란히 한다고 하지만 두 작가만큼 알려져 있지는 않다. (오래전 《도룡뇽과의 전쟁》이라는 책을 산 적이 있는데, 읽지는 않았다. 읽기를 아꼈던 걸로 해두자...) 작가를 소개한 글을 읽어보자니 《R.U.R : 로숨의 유니버설 로봇》이라는 희곡 작품에서 ‘로봇’이라는 개념을 창시했다는 대목이 눈길을 끈다. (몇 페이지 들춰보았던 《도룡뇽과의 전쟁》이라는 책의 형식이 매우 독특했던 것만 기억하고 있다.)


  《왼쪽 주머니에서 나온 이야기》는 이러한 내력의 체코 작가 카렐 차페크의 짧은 소설 모음집이다. 책에는 모두 스물 네 편의 소설 혹은 이야기가 실려 있다. ‘왼쪽 주머니’에서 나온 이야기가 있으니 당연히 ‘오른쪽 주머니’에서 나온 이야기도 있을 터이고, 《오른쪽 주머니에서 나온 이야기》라는 제목으로 출간되었다. 오른쪽 보다는 왼쪽, 이라는 이상한 편견에 사로잡혀서 둘 중 왼쪽을 먼저 읽었다. 이번 책에 실린 스물 네 개의 이야기의 제목은 아래와 같다.


  「늙은 죄수의 이야기」, 「도둑맞은 선인장」, 「히르쉬의 실종」, 「여의주와 새」, 「금고털이범과 방화범」, 「도난당한 살인 사건」, 「영아 납치 사건」, 「어린 백작 아가씨」, 「오케스트라 지휘자의 이야기」, 「간다라 남작의 죽음」, 「결혼 사기꾼」, 「유라이 쿠프의 발라드」, 「실종된 다리」, 「현기증」, 「고해」, 「서정적인 도둑」, 「하브레나의 판결」, 「바늘」, 「전보」, 「잠 못 이루는 남자」, 「우표 수집」, 「평범한 살인」, 「배심원」, 「인간 최후의 것들」.


  각각의 이야기들은 매우 짧지만 나름의 완결성을 갖는다. 어떠한 사건이 (주로 절도나 살인 사건) 발생하고, 그 사건이 해결되거나 혹은 해결된 것도 아니고 해결이 안 된 것도 아닌 어정쩡한 결말로 끝이 나기도 한다. 이러한 사건이 이야기의 중심에 있다 보니 형사와 도둑이 많이 등장한다. 사건의 해결 과정에 도움을 주기 위한 장치인 듯 의사가 전면에 나서기도 한다.
  “진실은 다양한 얼굴을 가지고 있다. 따라서 진실에 관해 이야기할 때는 말을 잘 가려서 해야만 한다.” (p.106)


  하지만 대체적으로 추리 혹은 미스터리의 형식을 띠고 있는 이 이야기들이 그 사건의 해결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것 같지는 않다. 이야기들은 사건의 발생과 해결보다는 그 사이 어디쯤에 자리를 잡고 있을 어떤 진실에 주목하는 것 같다. 작가는 눈앞에 여지없이 보여지는 사실들에 개의치 않는다. 그것들은 진실에 접근하기 위한 작은 부속들과도 같다. 그러니 그 부속들은 부실하거나 희미할 수밖에 없다. 게다가 그렇게 그러한 과정을 거쳐 도달한 진실들조차도 의심 없이는 받아들이지 말라고 너스레를 떠는 경우가 허다하다.


  “한 가지 더 말하고 싶은 것이 있다. 그것은 우리가 인생이라고 부르는 게 결코 우리가 경험한 것의 전부가 아니라는 사실이다. 그것은 단지 우리 경험의 일부분일 뿐이다. 우리가 이 순간 경험하고 있는 것들은 너무나 광범위하기에 우리가 그것을 모두 이해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래서 우리는 자신의 입맛에 맞게 혹은 편리한 대로 이런저런 경험만을 골라서 그것으로 하나의 단순한 플롯을 짠 뒤 인생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쓰레기 같은 부분은 잊어버리고, 이상하고 끔찍한 부분도 무의식적으로 생략해버린다. 맙소사, 우리가 경험한 일을 모두 알게 된다면! 하지만 우리는 단순한 하나의 인생을 살 능력밖에 없다. 그 이상은 우리가 감당할 수 있는 범위 밖이다. 살아가면서 인생의 많은 부분―더 큰 부분―을 버리지 않고서도 살아갈 수 있는 강인함이 우리에겐 없다.” (p.223)


  어쩌면 자극적이라고도 할 수 있는 이야기 속 사건들은 일종의 눈속임일 수도 있다. 그러니까 작가는 그러한 사건들 자체에는 별반 관심이 없는 것인지도 모른다. 대신 그러한 사건을 당할 확률이 높지 않은, 그러나 그러한 사건들이 품고 있는 철학적 함의가 끊임없이 발생하는 일상을 살아가는 (그러나 이를 인식하지 못하는) 우리들을 향하여 무엇인가 이야기를 하고 싶은 것이다. 그러니까 우리가 감당할 수 없어서 잊고 사는 어떤 부분에 대한 이야기를...

 


카렐 차페크 (Karel Capek) / 정찬형 역 / 왼쪽 주머니에서 나온 이야기 (Tales From The Other Pocket) / 모비딕 / 271쪽 / 2014 (1929)

YES마니아 : 플래티넘 k******i 2016.02.15.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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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 주머니에서 나온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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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을 신문에 발표하기 시작했는데, 온갖 종류의 희한한 미스터리를 담은 이 소설들이 바로 『오른쪽-왼쪽 주머니에서 나온 이야기』다. 이 미스터리 소설들은 그 이듬해 두 권의 책으로 출간되었습니다.무엇인가? 일상에서 왜 미스터리가 벌어지는가? 그 사이에는 어떤 차이들이 있는가? 차페크의 이런 질문에서 시작된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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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을 신문에 발표하기 시작했는데, 온갖 종류의 희한한 미스터리를 담은 이 소설들이 바로 『오른쪽-왼쪽 주머니에서 나온 이야기』다. 이 미스터리 소설들은 그 이듬해 두 권의 책으로 출간되었습니다.

무엇인가? 일상에서 왜 미스터리가 벌어지는가? 그 사이에는 어떤 차이들이 있는가? 차페크의 이런 질문에서 시작된 소설이다.

YES마니아 : 플래티넘 k*****l 2015.02.10.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