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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의 주인공인 로캉탱은 부빌이라는 지방 도시에서 18세기 정치 인물인 롤르봉 후작의 전기를 집필하며 연금생활자로 고독하게 지내는 역사가이다. 로캉탱은 어느 날 돌멩이를 잡다가, 그리고 문 손잡이, 의자, 나무뿌리 등을 보거나 만질 때 일 수 없는 역겨움, 불쾌감, 현기증을 느낀다. 이 구토는 단순한 육체적 증상이 아니라 사물과 존재의 불필요하고 무의미하며 우연적인 본질을 깨달았을 때 오는 실존적인 불안과 깨달음을 상징한다. 그는 이 괴로운 감정의 원인을 찾기 위해 일기를 쓰기 시작하며 도서관, 카페, 거리 등을 전전하며 사람들을 관찰하고 자신을 돌아본다. 그는 자신의 연구 대상인 롤르봉 후작의 삶이 허상이며, 과거의 본질을 되살릴 수 없음을 깨닫고 집필을 포기한다. 그는 더 이상 과거를 통한 존재의 정당화를 찾지 못하게 된다. 도서관에서 만난 독서가는 인류애를 신봉하는 휴머니스트이지만 로랑탱은 그들의 삶의 본질이나 목적이 부여되었다고 믿는 태도를 기만의 형태로 비판하며 혐오감을 느낀다. 로캉탱에게 그들은 인간 존재를 합리화하고 진실을 외면하는 위선으로 보였다. 공원 벤치에 앉아 밤나무의 뿌리를 바라보던 로캉탱은 마침내 모든 존재는 이유 없이 그냥 거기 우연에 의해 존재해 있음을 깨닫는다. 사물과 마찬가지로 인간도 미리 정해진 본질이나 목적 없이 세상에 던져졌으며, 이 존재의 우연성이 구토의 근원이라는 것을 직시하게 된다. 로캉탱은 예전에 사귀었던 애니를 찾아가지만, 그녀 역시 완벽성을 추구하는 것을 포기하고 현실에 안주하는 모습을 보며 실명한다. 절망 속에서 그는 카페에서 흘러나오는 재즈 음악을 듣고 잠시의 희열을 느낀다. 로캉탱은 부빌 시를 떠나기로 결심하고, 자신에게 잠시 구원을 주었던 그 음악처럼 자신이 창조할 수 있는 소설을 창조함으로써 스스로 존재의 의미를 만들 수 있다는 희미한 희망을 품고 파리로 떠난다. 인생은 의미를 찾는 것이라고 생각해 온 이들에게 이 책은 혼란과 충격을 가져다준다. 샤르트르는 이런 의미를 관념이라고 말하며 구토를 유발한다고 말하고 있으니 대체 무슨 소린가? 기존의 인식이 흔들리게 된다. 로캉탱의 일기 형식으로 쓰여진 소설은 고독한 내면과 사회적 단절의 우울감이 전이되어 초반에는 소설이 암울하게 느껴졌다. 존재의 의미를 부여할 때, 존재의 무의미성은 더욱 강하게 드러나고 구토를 느끼게 된다. 소설은 본질이 먼저 정해진 후에 존재가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존재가 본질에 앞선다고 말하고 있다. 우리는 착한 사람, 훌륭한 부모, 성공한 직장인이라는 본질을 이루기 위해 살아가려 한다. 소설은 인간은 아무런 정해진 목적 없이 세상이 던져진 존재이며, 자신의 행동과 선택을 통해 비로소 스스로의 본질을 만들어 나가는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나무는 무엇이 되기 위해 존재하지 않는다. 세상에 그냥 아무런 이유 없이 거기 있기에 존재하는 것이다. 인간도 한 그루의 나무처럼 태어나 보니 어떤 환경에 존재하고 있다. 어떤 목적을 가지고 태어나지 않았다. 본질? 존재? 기존의 책들과는 역행하는 실존주의 사상은 큰 충격을 준다. 존재의 의미나 본질을 찾는 것이 아니라, 여기 존재하고 있으니 무엇을 창조할 것인가를 생각하라는 것이다. 우리는 어떤 역할을 부여받아 태어난 것이 아니고, 본질이란 없다. 다만 존재할 뿐이라고 말하고 있다. 중요한 것은 의미가 아니라 무엇을 선택하고 행동할 것인가?라고 실존주의적 질문을 던지고 있다. 《구토》가 난해하게 느껴지는 것은, 이 책이 독자에게 '당신의 삶의 의미는 무엇인가?'라고 묻는 대신, '당신은 여기 존재하고 있으니, 이제 무엇을 창조할 것인가? 당신의 모든 선택에는 책임이 따를 뿐이다'라는 더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기 때문아다. 우리가 "무엇이 되어야 한다"라고 고심하는 것은 부질없는 행위일지 모르겠다. 우리의 본질은 정해져 있지 않기 때문이다. 로캉탱의 여정을 통해 우리는 '되어야 할 나'를 찾는 것이 아니라, '존재하는 나'로 '무엇을 창조할지'를 선택해야 하며, 내 삶의 책임감과 내 안의 자유를 깨닫게 된다. 어쩌면 우리를 괴로움에 가두는 것은 '무언가가 되어야 한다'는 강박적인 행위일지 모른다. 그것이 '기만'인지까지는 모르겠으나, 잘나지도 못나지도 않은 나의 존재 자체를 그대로 받아들이고, 매 순간 내가 창조하고 싶은 것을 발견해 내는 실존적 질문이 필요하겠다. 난해하고 어렵기는 하지만 존재와 본질에 대한 재해석을 시도하고 싶은 분들께 추천드린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