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수필집 트라우마에서 벗어나다
1. 이 책으로 극복한 수필집 트라우마
'내가 어느새 수필 읽는 재미에 빠졌나 보다.'
이 책을 스스럼 없이 들고 있는 나를 보면서 든 생각이다. 시도 때도 없이 책을 냈노라며 보내오는 수필집들, 이게 종이의 낭비 아닌가? 애꿎게 나무에게 피해를 입히는 것이 아닐까 하는 정도로, 깜냥이 못되는 수필집이 시중에 차고 넘치는데, 그래서 내가 그런 책을 기피하는 습관이 저절로 들었었는데, 이 책은 예외임에 틀림없다.
그런 책들은 보내준 성의를 생각해서 열심히 읽고나면 남는 것은 씁쓸한 감정의 무더기뿐이다. 이거 자기 자랑 아닌가? 이제 먹고 살만하다고, 여고 시절 이야기를 주절주절 늘어놓으면서 수필인척 하네 하는 생각이 절로 든다. 또한 빠지지 않는 것이 다른 동창들은 다 속물로 늙어가는데 자기만은 교양있게 늙어가고 있다는 자화자찬을 끝내면, 이제 남편 출세했다는 이야기로 방향을 옮기며 아들 자랑에 며느리까지 더하며, 더하여 자기는 이해심 많은 시어머니 노릇을 하고 있다는 국화빵들을 열심히 찍어낸다. 또 추천사를 보면 어떤가? 문화교실의 지도교사쯤으로 보이는 수필가가 이 책이야말로 수필의 정수를 보여준다며 너스레를 떨어대는 책들을 두 권쯤 읽고나면, 그것도 일종의 트라우마가 되어 내 머리에 남게 된다. 그래서 다른 수필집을 대하면 이 책도 그런 종류의 것이 아닐까, 하는 자라보고 놀란 토끼모양이 되는 것일까? 미사여구만 잔뜩 모아다 짜깁기 하는 것이 수필인줄 아는 유한마담의 책이 아닐까, 하며 지레 겁을 먹게 하는 그런 트라우마 말이다.
그래서 나에게 수필집이란 저만치 밀어 놓았다가, 목차를 훑어본 후 그 중에 몇 개 읽어보고는 팽개치는 그러한 장르의 문학이었다. 해서 수필이라면 손을 휘휘 내저을 정도가 되었는데, 어느 새인가 수필을 읽는 재미에 빠졌으니, 그것은 김서령의 <참외는 참 외롭다>를 읽고 난 후부터다. (http://blog.yes24.com/document/7792325) 그 책을 읽고나서 수필도 작가 나름이구나, 하며 수필집 트라우마에서 회복e되는 기미가 보였는데, 이 책 <반집>, 이 책을 읽는 동안에 그 트라우마가 말끔히 고쳐졌음을 알게 되었다.
2. 글이 아름다운 무늬를 이룬다.
일단 이 책의 글은 아름답다. 그냥 아름다운 길을 따라가며 작자가 그려내고 있는 아름다운 경치를 감상하는 기분으로 읽으면 된다. 경치를 완상하고 음미하듯, 저자가 그려내고 있는 생각과 상황들을 그저 따라가며 즐기면 된다. 그만큼 이 안에 들어있는 글들이 편안하고, 아름답기까지 하다. 더하여 글들이 잘 짜여 있다. 노련한 솜씨로 베틀에 앉아 옷감을 짜내는 솜씨를 여기에서 볼 수 있다. 그래서 작자가 그려내는 글의 무늬는 굳이 덧붙여 설명하거나, 뺄 것도 없는 완벽한 이루어짐(完成)이다. 그만큼 매력적이다.
3. 문장 공부하려거든 이 책을 읽어라
그런데 이 책에 실린 수필들을 이루고 있는 문장들이 어쩌면 하나같이 명문장이다. 그런 문장들을 읽다보면, 나도 모르게 문장을 입 밖으로 소리내어 읽고 싶은 욕망이 생기게 된다. 운율도 어느 사이에 문장 사이에 생겨난 것을 알게 된다.
예컨대 이런 문장이다.
읽어보시라. 두 번 정도 읽으면 저절로 운율이 입에 따라오지 않는가 이 문장의 형식을 패러디 해서 설명해보자면 이렇다.
그런 글들을 몇 편만 읽어가노라면 내가 서두에 수필 트라우마에서 빠져나왔다는 말이 결코 과장이 아님을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러니 그의 수필을 읽으면서 문장공부를 하게 되는 셈이다.
4. 엄마로서, 아니 부모로서 생각 좀 하고 살려면 이 책을 읽어라
이 저자의 생각은 결코 평범하지 않다. 글은 글쓴이의 인격과 생각을 보여준다는데, 이 책을 읽다보면 저자의 생각이 얼마나 올곧고 바른 길을 가는지를 알게 된다. 그가 아들에게 보여주는 모습- 바둑을 하겠다고 나선 아들에게 대하는 태도 - 은 한 아이의 어머니로서가 아니라, 인간의 부모가 무릇 어찌해야 하는가를 보여주는 모범적인 사례이다. 모든 어머니가 그랬으면 좋을테지만, 그래도 이런 어머니가 있다는 자체가 이 사회에 희망을 보여주는 것 같아, 흐믓했다.
이런 사례는 굳이 여기에서 열거할 필요조차 없다. 이 수필집의 1 부, <몰래 나선 여행>에 포함된 10편의 글이 모두다 여기에 해당된다. 이 땅에서 살아가는 부모로서, 생각 좀 하려고 한다면 이정도 되어야 하고, 그러면 이런 글쯤은 읽어야 하지 않을까
5. 기억 이야기 하나 - 기억을 꺼내는 법
저자는 기억을 꺼내는 법을 알고 있다. 그것도 아주 세련되게. 그가 어떻게 기억을 내어 우리에게 보여주는지, 이런 기억을 보자. 98쪽부터 시작되는 <돈쓰기>라는 제목의 글이다.
저자는 먼저, ‘이십여년 만에 만난 친구는 여전히 돈 없다는 타령을 해 댔습니다’라고 운을 뗀다. 학창시절에 같이 지내던 친구, 이제 이십 여년만에 만난 것이다. 그런데 그 친구는 학창시절에 매점에 가면 언제나 빵 값을 내지 않고 그냥 저자가 내는 것이 당연한 양 먹던 친구다. 그 친구를 이십여년 만에 만났는데, 여전히 지갑을 열 생각을 하지 않는다. 거기까지 이야기한 저자는 다음과 같이 말을 이어간다. “할머니도 그랬습니다.”
여기에서 “ ~~ 도”의 문장이 바로 기억을 꺼내는 방법이다. 그 말 한마디로 기억은 자연스럽게 할머니로 옮아간다. 그리고 할머니를 따라 저자의 기억을 자연스럽게 꺼내놓는다.
“할머니도 그랬습니다.”라는 말에 기대어, 나도 “(내가 아는) 누구도 그랬습니다”라는 말을 시작으로 내 이야기도 하나쯤 해보고 싶은 마음이 드는 것은 어찌된 일일까
6. 기억 이야기 둘 - 기억을 닦아 윤내기
이번 역시 기억에 관한 글을 읽어보자. 86쪽의 <기억닦기>다. 잔잔하고 애잔하다. 이글을 읽고 있노라면 내 기억도 한번 꺼집어 내어 닦아 보고 싶은 마음이 들 정도이다. 애잔한 가족사를 꺼집어 내어 현재의 생활을 관조하는데, 그 방법이 바로 기억을 닦는 것이다.
아까 문장 공부가 저절로 된다며 예를 들었던 부분, “동생네 화장실 수도꼭지는 빛이 난다. 스텐 손잡이에 물방울 자국이 하나 없다. 깨끗이 씻어 닦은 변기와 가지런히 걸린 수건까지, 볼 때마다 깨끗하다.”(86쪽)로 시작되는 한편의 애잔한 드라마같은 수필이다.
읽고나면 그 기억이 얼마나 깨끗하고 예쁘게 보이는지, 정말 기억을 잘도 닦았다는 탄성이 절로 나온다. 그런 글중에 웃음이 나오게 만드는 저자의 숨겨놓은 위트 한 조각도 음미할 만하다.
어린 시절, ‘꿈에서조차 어수선한 집’에서 살았기에 걸레를 빨아 수없이 닦아도 늘 쌓이는 먼지들로 닦으나 안닦으나 그게 그거였던 집에서 살았던 기억들, 그런데 고모가 집에 다니러 올때에는 그런다고 자매는 혼이 난다. 애쓴 보람이, 수고한 보람이 없이 그게 그거니까, 혼이 나는 것은 당연지사. 그런 안타까운 시절을 보내고, 이제 각자 살림을 하게 된 자매는 닦기에 열심이다. 그런 닦음에 대한 기억을 저자는 잘 닦아 내놓고 있다.
7. “사족이다!!!!” - 이 말이 사족이기를
이 책에서 발견할 수 있는 딱 한 가지 흠이라면? 바로 책의 말미에 붙어있는 <송영화론>이다. 문학평론가 김종환이 쓴 일종의 서평인데, 이게 문제다. 차라리 이것이 없었으면 그냥 아름다운 글, 어머니이며 수필가인 송영화의 수필을 아주 개운한 마음으로 읽었다 싶을 것인데, 이 평론이 붙는 바람에 입맛을 버려버렸다. 왜 꼭 이런 것을 덧붙인다는 말인가? 그야말로 사족이 아닌가? 왜 굳이 수필을 읽으면서 ‘작가 자신의 성격연구’(273쪽)를 해야 한단 말인가? 그렇지 못한 것이 ‘수필의 문학세계가 심층화되지 못한 가장 큰 이유’인가? 꼭 문학이 개인 구원(274쪽)에 역할을 해야 한단 말인가? 더해서 저자의 글에 꼭 ‘사회의식’(284쪽)을 드러내야 한다는 말인가
해서, 이 책이 훌륭하게 수필집 트라우마를 해소시키는 역할을 해 주었는데 이 평론으로 또다시 트라우마에 빠지는 것은 아닌지? 이번에는 ‘수필집 끝부분 평론 트라우마’! 일종의 ‘사족 트라우마’다. 다른 분들에게는? 제발, 이 덧붙임 말이 사족이기를..... |
|
자식의 성장을 바라보는 부모의 마음이 애틋하고 정감적이라는 것은 모두가 알고 있는 사실이리라. 우리는 흔히 자식을 키워봐야 부모의 마음을 안다고 한다. 그것은 자식에게 향하는 마음의 일면을 자신이 느껴보았을 때, 부모의 그것을 이해할 수가 있다는 말일 게다. 자식을 가져본 사람이라면 그들이 사랑스럽고 분신처럼 느껴지면서 무엇을 줘도 아깝지 않는 관계가 되는 것을 공감하리라. 어릴 때는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듯한 느낌으로 아이들을 만난다. 그리고 성장하면서 조금이라도 어려운 환경에 놓일까 노심초사하면서 지킨다. 그것이 불면의 밤을 가져오기도 하고, 가슴 아리는 시간을 만들기도 한다. 이 책은 이러한 내용을 적나라하게 그려내 보여주는 글이다. 이 책에는 프로바둑 기사를 만든 어머니의 가슴 조리는 이야기가 가득 들어있다. 아이가 바둑을 두게 된 사연으로부터 바둑을 공부하면서 겪은 애환이 들어 있다. 그리고 프로가사가 될 때까지 가진 많은 대국들 때마다 좌불안석하면서 결과를 기다리는 어머니의 모습이 잘 그려져 있다. 그 모습은 세상의 어느 어머니와 다를 바가 없이 애간장을 태우는 모습이다. 매 문장마다 실려 있는 마음의 골이 커다란 무게가 되어 어머니의 몸과 마음을 이끌고 있는 것이 보인다. 정말 많은 결과를 만들어내어야 했던 아들을 둔 어머니의 그 마음의 무게는 어느 것보다 무겁게 느껴질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물론 좋은 결과를 내었을 때는 그 무게만큼이나 행복함을 느낌도 보여준다. 프로기사가 되는 것은 하늘의 별따기라 한다. 어린 시절부터 바둑에 뜻을 두고 공부를 한 연구생들이 만 19세까지 입단 대회에서 우승해야 입단을 하게 된다. 바둑만을 공부하고, 기재를 가진 많은 사람들 중에서 1등을 하기란 정말 쉽지 않다. 다음의 글은 저자가 입단 대회를 지켜보면서 느꼈던 단상을 기록해 둔 내용이다. <하지만 작년 8강전에서, 같은 도장에서 공부하던 동생에게 패하고 나서는 불현 듯 어쩌면 아들이 꿈을 이루지 못할 지 모른다는 생각에 사로잡혔다. 마지막 한 사람의 승자로 살아남는다는 것이 어려울 것만 같았다.(p 82 )> 저자의 아픈 마음이 잘 드러나는 글귀다. 이처럼 프로바둑에 뜻을 두고 공부를 하지만 프로가 되는 관문을 통과하는 것은 그리 쉽지 않다. 많은 사람들이 능력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뜻을 꺾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다. 경쟁과 그로인한 아픔이 잘 드러나는 대목이다. 바둑은 대국으로 말을 한다. 한 사람의 바둑인이 성장하기 위해서 많은 대국이 이루어지고 승부가 난다. 승패의 상황은 늘 기쁨과 아픔을 동반한다. 이처럼 많은 승부가 이루어지는 상황에서 그것을 지켜보고 있는 부모의 마음이 어떨지 우리는 쉽게 짐작할 수가 있다. 온통 마음이 그 승부에 가 있음을 쉽게 이해할 수가 있으리라. 이 책은 부모가 그렇게 아이 곁으로 무작정 차를 몰고 떠나는 이야기로 시작된다. 그 목적지는 아이가 바둑 대회에 참가하고 있는 곳 주변이 되고 있다. 직접 승부를 하는 곳에 들어갈 수는 없지만 주변에서 응원을 하기 위해 조금이라도 아이의 가까이에 머물고자 하는 것이다. 그리고 아이의 결과 하나하나에 반색을 하면서 귀가를 하거나 하루 더 그곳에 머물거나 하는 일정으로 이루어진다. 아이의 결과에 따라 부모들의 생활이 결정되는 모습이다. 아이를 향한 부모의 정성과 사랑을 여실히 알 수 있는 일이다. 이 책에는 바둑 관계만 아니고 일상 속에서 이루어진 사소한 이야기도 많이 실려 있다. 저자가 어떻게 살아왔는가 여실히 살필 수 있는 내용들로 이루어져 있다. 딸과 관련되는 이야기, 어머니와 관련 되는 에피소드, 남편과 또 이웃들과의 얘기도 담겨져 있다. 한 편 한 편이 마음에 속속 다가든다. 그만큼 솔직함 속에 선한 마음들이 작용하고 있기 때문이리라 여겨진다. 문장도 순박한, 쉬운, 그러면서 거침이 없는 표현으로 다가가기가 용이하다. 이웃의 이야기로 함께 생각하고 느낄 수 있는 내용이 되어 공감을 준다. 저자가 살아오면서 느낀 소소한 내용들이 이야깃거리가 되어 우리 곁을 찾아와 우리들을 즐겁게 한다. 읽으면 그 내용들이 입가에 미소를 머물게 한다. 가슴 따뜻함이 함께 한다. 저자의 글을 읽으면서 부모의 마음을 다시 생각해 보는 시간을 가졌다. 가족이라는 울타리가 얼마나 소중한 것인가라는 생각도 해보았고, 부모의 자식을 향한 사람을 다시 한 번 느껴보았다. 사랑의 깊이를 느꼈고, 자식의 바른 성장을 위해서 온 마음을 다하는 부모의 마음이 조각조각 보석이 되어 언어로 화하고 있는 광경을 지켜보았다. 더구나 좋아하는 바둑이 소재가 되어 있는 글들이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읽음으로 행복해 지게 만드는 글이었다. |
|
좋은 글은 마음을 움직인다 글쓰기에 대한 열망이 있는 많은 사람들이 가장 쉽게 도전하는 분야가 수필이 아닌가 한다. 형식이나 내용에 구애됨이 없이 솔직한 자신의 경험을 글로 옮기면 된다는 생각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오로지 자신의 글을 써본 사람들은 알 것이다. 그것이 얼마나 어렵고 가슴 타게 하는 일인지 말이다. 만만하게 봤던 수필에 뜨거운 맛을 보고 나서야 비로소 글쓰기의 어려움을 실감하게 된다. 수필 쓰기의 어려움을 느끼게 하는 것이 하나 더 있다. 잘 써진 수필을 접하고 나서 그만큼 쓸 자신이 없을 때가 바로 그때다. 모든 글쓰기의 완성은 수필로 모아진다는 말이 있다. 이 말의 의미는 글쓴이의 솔직한 내면의 반영에 있다고 생각한다. 그만큼 자신의 은밀한 부분까지 진솔하게 그려낼 수 있을 때 그 글이 가지는 힘을 인정하는 것이 아닌가도 싶다. 짧지만 마음을 울리는 좋은 글 한편을 대하는 날 마치 그리웠던 님을 만나는 즐거움이 있는 것처럼 말리다. 송영화의 수필집 ‘반집’이 그렇다. 미사어구를 사용하거나 애써 꾸미지 않고서도 자신의 심정을 적절하게 전달하면서 읽는 이로 하여금 공감을 불러오는 글쓰기다. 몰래 나선 여행, 오월, 그 푸름, X맨 명단, 오늘도 인샬라, 수라니말을 탓하면서도 등 총 5부로 구성된 반집에는 엄마로 딸로 어엿한 한 사회의 구성원으로 그리고 문인으로써 자신이 일상에서 직접 겪고 느낀 일에 대한 감정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특히, 수필집의 제목을 선정하는데 주요한 글이 되는 ‘몰래 나선 여행’은 7살 어린 아들이 바둑에 입문하고 장장 12년 동안 바둑 안에서 생활하며 프로바둑기사에 입눈하게 되는 과정을 그려가고 있다. 나약하지만 한 아들이 어느 날 바둑을 배우고 싶다는 자신의 의견을 피력하는 것에 감동하여 바둑을 시작한 이래 입단하는 날까지 아들과 함께한 엄마의 마음이 담겨 있다. “야야, 백 집으로 이기나 반집으로 이기나 이기는 건 마찬가진데 뭐 할라고 자꾸 욕심을 부리노?” 철저히 승부를 가리는 것이 바둑이다. 그래서 반집이라는 말이 생겼을 것이다. 한집도 아니고 반집이라는 그 차이까지를 가르고 나서야 승부를 판가름할 수 있는 접전이었다면 이긴 자나 진 자나 실력은 거기서 거기일 것이지만 그 반집 때문이 승패가 갈리고 운명이 바뀐다. 그런 바둑의 세계에서 프로기사가 되기까지 바둑 하는 아이를 위해 이사도 하고 전국을 따라다니면서 뒷바라지 한 엄마의 마음은 그 반집 차이의 승부와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 마음이 고스란히 나타나고 있다. 이렇듯 송영화 수필집‘반집’에 담긴 이야기들은 그렇게 세상을 살아오는 동안 겪었던 일들에 대한 감회가 서려있다. 저자의 어린 시절을 엿볼 수 있는 할머니와의 생활부분 역시 마찬가지다. 골무에 담긴 할머니의 마음씀씀이를 훗날이 되어서야 짐작할 수 있는 것이 되듯 나이를 들어가며 세상과 자신을 바라보는 눈이 어떻게 달라져 오는가를 보여주기도 한다. |
|
수필은 마음의 표현이다. 그 글 들에는 각기 맛이 있다. 무슨맛?깊은 된장의맛,그리고 매콤 달콤한 고추장같은 맛이 있다. 반집은 우리에게 향수,그 이상의 의미를 부여한다. 수필을 읽고 쓰는 사람은 사람 사는 의미를 안다고 하였다. 세상을 풍자하며 살아왔던 많은 사람들이 삶의 언저리에서 맴도는 추억의 한자리를 매워주는 언어가 있다면 수필이다.
맘가는데로 글가는데로 쓰다보면 기억이 다시 살아나고 먼 옛날의 우리네 친구들이 떠오른다.
나름의 기억속에 떠오르는 구절이 있다면 그것은 멋진 시가 되고 수필의 한 부분을 차지한다.반집의 매력은 스릴이 있다 결국 인생이란 잘살고 못살았다고 얘기하는 것의 종점은 반집 차이이다.반집은 그런 고향의 맛이 난다. 아름답고 평온한 시(詩)이기 보다는 내고향 누님의 지고 지순한 사랑 이야기에 흡사하다.그냥 형식없이 써 내려간 수필 같으나 의미가 부여하는 것은 깊고 오묘하다.
눈을 감고 시를 음미하면, 정신없이 살아왔던 객지의 짐을 놓고 고향 들판에서 바라보는 아버지,어머니의 모습이 눈에 들어오고 아리따운 누이의 모습도 보인다.어쩌면 흰종이 위에 이토록 아름다운 활자가 수놓을 수 있을지, 여기에는 사 계절의 향수와 일상의 모든 모습이 꾸밈없이 표현 되고있다.젊음의 시절은 저만큼 떠나가고 중년의 여인의 모습에서 처절 하리 만큼,생활의 달인이 된듯한 착각도 불러일으킨다.
캄캄한 도시에 실려 분간없는 마을을 가는데 자다 깨다 혼미한 하루가 있었네 이승인지 저승인지 모르는 하루 깊은 내면에 잠재되어 있는 본능을 일깨우는 표현이 남다르다. 자신의 생각을 여과없이 표현한다. 도시에서는 감히 경험할 수 없는 일상의 풍경화같다.인생에서 가장 아름다운 순간을 당신은 어떤 형식으로 표현하고 싶은가? 수필로 시(詩)로, 소설로 아름다움의 승화되는 표현은 당연히 시이다.
작가의 고향은 아지랭이 하늘거리고 소가 한가로이 풀을 뜯는 곳이다. 공해에 찌달리고 생존 경쟁이 치열한 삭막한 도시와는 비교도 할수없이 맑고 푸른 하늘과 청명한 공기가 뇌를 자극한다.참으로 인간이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를 모범답안처럼 우리에게 비쳐진다. 송글 송글 맺치는 이마의 땀을 훔치며 밭을 메는 아낙의 숨결을 느낄수 있는 표현력이 강하다.
작가는 자신이 만나온 사물과 풍경들에 대한 인상적 기억, 선명하게나타나는 자신을 이끌어온 충만하게 빛나는 순간들을 아름답게 재현하고 노래하고있다.그래서 우리는 그녀의 수필들을 통해, 시(詩)가 가장 깊은 곳에 묻혀 있던 기억들을 꺼내 언어로 그것을 재현하고 다시 그것을 빛나는 순간의 충만함으로 붙잡아두는 장르임을 경험하게 된다.
아름다움을 표현하기란 그리 쉬운 일은 아니다.각고의 노력과 수고가 들어가야하고 본인의 무던한 노력이 있어야 한다. |
|
제목에서 풍겨져 나오는 바둑이야기의 냄새. 최근 인기를 끌고 있는 드라마 "미생"과 혹여 비슷한 이야기는 아닐까? 바둑에 관여된 수필들을 모아 놓은 것은 아닐까 하는 기대로 책을 펼치니 프로기사를 뒷바라지하는 어머니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프로기사가 되기까지의 이야기를 서사적으로 엮어놓은 수필들이다. 단순히 아이의 뒷바라지 하면서 겪는 이야기가 아니다. 아이의 대회를 아이 몰래 뒤따라 그저 좋은 성적을 기다리는 기다림의 여행 이야기, 무조건 이기는 것에만 집착하던 초기에서 바둑에서 집을 만들어가는 과정의 이야기, 이길수 있으면서도 귀찮아서 져주고 심지어 복귀과정에서 하수의 이야기를 듣기만 하여 재미없게 길어지는 시간을 줄이려했다는 아이의 이야기들이다. 단순히 자신의 이야기를 쓰고 있지만 아이와 엄마도 마음이 함께 성장해가는 것을 느낄수 있다. 잔잔하게 마음의 격동 없이 써내려간 글에서 편안함마저 느껴진다. 학력중심의 한국사회에서 중학교,고등학교마저 포기하고 오로지 일년에 한명 입단할수 있는 프로바둑기사를 뒷바라지 하는 부모의 마음에 어찌 걱정이 없겠는가? 그렇지만 그런 걱정 근심보다는 아이를 믿고 기다리는 평온함을 느낄수 있는 까닭은 자식에 대한 한없는 신뢰에서 생겨나는 것은 아닐까? 그런 강한 마음은 부모이기에 아니 엄마이기에 가능한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지나간 어린시절에 먹고 살기도 힘든 그 시절에 공부하는 아들을 위해서 성적에 연연해하지 않고 묵묵히 웃음으로 견디어 주던 그 주름진 모친의 얼굴이 떠오르게 해준다. 한숨을 돌려 바둑이야기가 마무리되고 나니 저자의 일상의 이야기들이 펼쳐진다. 시간 순서에 얽매이지 않고 어린시절의 이야기부터 현재의 이야기까지 일정한 순서로 짜 맞추어 놓았다기 보다는 누구나 삶을 살아가면서 한번쯤은 생각을 해봤을 이야기들을 풀어내고 있다. 때로는 정치적인 이야기며, 국제사회적인 이야기에서 일상생활의 가벼운 이야기까지 문득문득 떠오르는 생각을 잘도 포착해서 읽는 이로 하여금 입가에 슬그머니 미소짓게 만든다. 특히 햇살에 비친 먼지의 이야기는 청소보다는 내눈에 보이지 않기를 기다리는 일상의 게으름을 너무나 잘 표현한 것은 아닐까? "문" 이야기는 없어지는 우유의 범인 찾고자 하는 사람과 잡상인으로 생각하는 저자와의 의사소통으로 인해서 벌어지는 한편의 촌극이다. 그렇지만 일상의 삶에서 그런 오해가 얼마나 많이 생기는가? 자초지정을 이야기하고 나의 생각을 먼저 드러냈다면 그런 오해는 없었을 것인데, 처음부터 내 속을 먼저 드러내는 것이 상대에게 약점을 잡힐까봐 보여주지 않고 상대의 속을 먼저 들여다보려고 하는 욕심에서 나오는 것은 아닐까? 뻔히 알면서도 쉽사리 그리하지 못하는 것이 전쟁터와 같은 우리의 삶 때문일까? 그리 오래되지 않은 과거에는 이러한 일이 훨씬 더 적었을것 같은 이유는 뭘까? 비록 작은 이야기 하나이지만 현대의 치열한 삶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올바르게 살아가야 하는 것이 무엇인지 깊이 생각하게 해준다. 그저 촌극으로 미소지으며 웃어 넘길수도 있고, 다른 한편으로 여러가지 생각들을 해볼 수 있는 소소한 이야기들이 가득하다. 책 곳곳에서 독자들이 제각각 찾을수 있는 이야기가 가득하니 웃음지으며 읽을수도 깊은 생각을 더 해볼수도 있는 흥미진진한 책이다. 한판의 바둑을 두면서 즐거웠다 흥분되었다 슬펐다 하는 다양한 즐거움이 있는 책이니 펼쳐볼수 있는 기회를 가져보시기를... |
|
바둑을 두지 못하는 내가 ‘반집’이란 제목의 책을 읽는 것은 격에 맞지 않는 일일 수 있다. 나는 반집이 동률을 가리기 위해 만들어 놓은 계산상의 집이라는 사실을 책을 통해 비로소 알았을 정도로 바둑에 무지하다. 나는 바둑을 오락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지만 오락에 가깝게 수용되고 있다고 생각한다. 장담할 수 없지만 후에 바둑을 배운다 해도 이 생각은 변하지 않을 것이다. 송영화님의 ‘반집’은 프로 바둑 기사인 아들의 바둑 승부를 지켜본 어머니 저자의 단상이 담긴 책이다. 당연히 우리는 바둑보다 더 큰 계(界)인 삶에 대한 깨달음을 얻게 될 것이다. 저자는 아들이 바둑을 두어 프로 기사가 된 것을 모두 필연적이라 말한다. 이는 아들이 바둑을 두며 맺은 인연들과 지금의 자리에 있게 되기까지 사람들을 만나고 사연들을 겪은 것이 모두 필연에 따른 것이라는 말이다. 아들은 차분하고 예의바르지만 프로 기사 유창혁과 일대다의 아홉 점 접바둑에서 아깝게 지고 나서 이길 수 있었다며 눈물을 흘릴 정도로 승부욕도 가졌다. 일곱살에 바둑을 시작해 초등학교 3학년에 유단자가 된 아들의 진로를 두고 신통력을 가진 스님을 찾은 자리에서 저자는 “하면 되겠네.”란 말과 함께 “아무리 운이 있어도 하면 되고, 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말을 들었다고 한다. 저자가 말했듯 바둑은 부모의 성화로 시킬 수 있는 분야가 아니라 상대의 수를 읽어야 하는 치열한 머리 싸움으로 스스로의 몰입 없이는 불가능한 분야이다. 저자는 아들의 바둑을 위해 부산에서 울산으로 이사도 했고 아들을 장기간 집을 떠나 홀로 바둑을 배우게도 했다. 아들은 여섯 번째 (1년에 한 명만을 뽑는 지역) 입단 대회에 도전하는 동안 매년 실패를 반복하면서도 희망을 잃지 않았다. 그 과정을 거쳐 성공한 아들의 바둑기를 전하는 저자의 글은 묘하게 가슴을 찡하게 한다. 바둑의 기원은 2500년 전 이상의 중국으로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바둑은 룰은 단순하지만 전개되는 게임의 경우의 수는 무궁무진하다. 반집(바둑에서, 네 집 반 또는 다섯 집 반의 덤을 주고 두어서, 종국 후 집계산을 할 때 생기는 계산상의 집), 공배(空排: 두 선수 누구의 집도 아닌 지역), 끝내기(대세가 거의 결정난 종반부에서 한 집이라도 더 내기 위하여 효과적인 지점을 찾아 바둑을 두는 것), 단수(單數: 한 수만 놓으면 상대의 돌을 따낼 수 있는 상태), 덤(먼저 두는 흑이 유리하므로 양쪽의 공평을 기하기 위해 흑에게서 일정 수의 집을 공제하는 제도), 빵때림(ponnuki: 돌 네 개로 상대편의 돌 하나을 둘러싸서 따내는 일), 접바둑(handicap game: 실력 차이가 있는 사람끼리 바둑을 둘 때 하수가 바둑돌 몇 개를 미리 놓고 두는 바둑을 말함. 접바둑의 반대어는 맞바둑이다.) 등 용어들도 흥미롭다. 위기십결(圍棋十訣)이라 하여 바둑 명언도 있는데 이 가운데 입계의완(入界誼緩: 경계를 넘어 들어갈 때는 천천히 행동하는 것이 당연함을 이르는 말), 공피고아(攻彼顧我: 공격하고자 할 때는 먼저 나 자신을 돌아보라는 말), 아생후 살타(我生後 殺他: 내가 살아갈 계책을 세운 뒤 상대를 공격하라는 말) 등이 재미 있다.(공피고아와 아생후 살타는 같은 차원의 말이다. 圍는 둘레 위, 棋는 바둑 기이다.) ‘반집’에서는 반집, 접바둑, 입계의완 등의 용어가 나온다.(본문에서 반집은 동률을 가리기 위해 만들어 놓은 계산상의 집으로 설명되었다.) 나는 본문을 통해 접바둑, 반집, 입계의완 등의 용어들을 처음 들었을 정도로 바둑에 문외한이지만 한 소설에서 읽은 바둑 명언에 깊은 인상을 받았었다. “내 청춘은 집 하나 넓히지 못하고 아생후 살타(我生後 殺他), 전투도 못하고 몇 수레의 책들과 함께 지나갔다.”(강규 지음 ‘베두윈 찻집’ 34 페이지)가 그것이다. 그 외 거론할 수 있는 책이 바둑에 관한 책은 아니지만 김영민 교수의 ‘공부론’을 들 수 있다. 무(武) 또는 검(劍)의 세계에 견주어 공부를 설명한 이 책에서 내 관심을 자극한 글은 “무사들이 정직한(!) 피를 뿌리면서 스스로의 무능을 자인하며 죽어가는 순간에도 문사들은 좀비처럼 끝없이 부활한다.... 칼과 펜의 이치 사이에 놓인 어떤 심연을 모른 체하려는 게 아니다. 다만 각자의 실력조차 제대로 점검할 수 없는 문사들의 제도화된 학술행사와 그 곤경을 더불어 성찰하려는 것이다.”(34, 35 페이지) 같은 글이다. 나도 가끔 바둑을 가르쳐주겠다는 제의를 받는다. 그럴 때마다 나는 “책 읽기만으로도 머리가 아프다.”는 말로 거절을 표한다. 바둑이 오락에 가깝게 수용되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엄격하고 객관적인 룰에 따라 진행되는 바둑에 뛰어난 실력을 보이는 사람도 또는 어떤 경우에는 그런 사람일수록 원칙이나 객관을 무시하고 제멋대로 생각하고 말을 하기 때문이다. 저자는 거의 12년 동안 바둑 공부를 해온 아들을 지켜보며 얻어 들은 풍월 중 백집으로 이기나 반집으로 이기나 마찬가지라는 말이 가장 선명히 기억난다고 말한다. 아니 어떤 점에서는 제일 잘 둔 바둑이 반집으로 이긴 것일지도 모른다고 한다. 수필이기에 특별한 형식이나 의도에 따른 글이 아니지만 바둑 이야기인 1부에 이어 나오는 2부는 또 다른 분위기를 낸다. 열 다섯 살에 부모를 잃은 개인사도 그렇고 여러 문인들과 함께 도라산역에서 통일기원 시낭송을 하다가 수십년 전 자신의 집과 관련한 아픈 사연을 떠올리는 장면도 그렇다. 저자는 그것에 대해 할아버지를 떠나보낸 슬픔보다 부모 잃은 우리 자매가 흙더미와 함께 방치되었다는 사실이 더 서러웠다고 썼다. 저자는 입원해 작은 엄마의 간호를 받으며 부모가 없는 조카들을 거두는 것이 자식을 키우는 일보다 더 큰 인내를 필요로 한다는 것을 언니와 자신은 누구보다 더 잘 알고 있었다고 회상하며 멀어지지도 가까워지지도 않는 적당한 거리가 필요한 것인지도 모른다는 말을 한다. 바둑을 두는 것은 룰에 자신을 맞추는 과정이다. 바둑을 전문적으로 두지 않는 저자 역시 삶에 자신을 맞춘다. 적응하고 이해하느라 애쓰는 것이다. 그 이해의 일환으로 나온 말이 사람들 사이에 색깔이 다른 기(氣)가 흐르고 있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다는 말(176 페이지)이다. 저자는 누가 뭐래도 자신의 일을 충실히 하는 사람이 좋다고 말한다. 자신을 드러내지 않아도 인정하게 되는 사람, 묵묵히 들어주기만 하는데도 주장하는 것보다 강해 보이는 사람, 가르치려 하지 않아도 배우고 싶은 사람... 저자는 연륜이 쌓인다는 것은 한 방향으로 치닫는 무서운 신념의 무리들을 피해 가는 방법을 알아가는 과정인지도 모르겠다고 말한다.(180 페이지) 베푸는 일은 남을 위해서가 아니라 결국 나를 위하는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205 페이지) 말도 저자를 통해 우리가 배우는 바이다. 저자는 먼지는 가벼우나 그 존재는 때로 깊은 무게로 다가와 나를 에워싸곤 한다(220 페이지)는 말을 하며 파괴된 인간의 삶을 되돌리는 주체는 인간 자신일 수 밖에 없다는 메시지를 던진다. 저자가 말했듯 엘 고어는 ‘불편한 진실’에서 “세상에는 듣기 싫은 진실이 있다. 진실을 알게 되면 그 사실을 인정해야 하고 그 사실을 인정하면 자신이 변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것은 모두에게 꽤 불편한 일이다.”란 말을 했다. 미국발 금융 위기로 어려움에 처한 사람들을 걱정하며 저자는 마음에 부는 칼바람은 옷을 두껍게 입는다고 막아지질 않는다고 말한다.(239 페이지) ‘어머니의 문‘이란 글에서 우리는 신념은 이해심(공감)의 차원에서 설명될 수 없는가 보다는 저자의 말을 통해 또 배운다. 바둑 이야기가 앞 부분에 배치된 ’반집‘은 2부 이후 일상의 이야기를 본격적으로 전하는 구성의 책이다. 그러나 방일(放逸)하지 않고 무엇인가 생각하고 관찰하고 배우는 저자로부터 우리가 배우는 바는 바둑을 통해 배우는 것을 능가한다. 삶의 축소판인 바둑에서 우리가 배우는 것은 결국 삶을 대하는 자세를 더 깊고 여유있게 할 것이다. 그래야 바둑은 오락 이상의 진리가 될 것이다. |
|
아이가 원한다는 이유만으로 일곱살에 바둑에 입문해서 프로기사가 되게 했다. 학교도 포기하고말이다.
바둑에서 반집이란 동률을 가리기 위해 만들어 볺은 계산상의 집을 말한다. 그러니까 눈으로는 볼 수 없는
하나, 둘, 초세기가 시작되면 제한 시간 안에 돌을 바로 놓아야 하는 것이 바둑 경기다.
만 19세가 될때까지 두 어번의 기회만을 남긴 상태에서 긴장감을 떨쳐버리고 실력발휘를 잘 해낼 거라는 보장이 없었다.
낡은 옷 입고 헌 이불만 덮던 할머니는 자식들이 사준 새 옷을 장롱에 겹겹이 쌓아놓고 가셨습니다. 창고에는 한 번도
어머니의지극한 사랑은 김치 통에서 발효되는 김칫국물 같은 것이었다. 꾹꾹 눌러 담은 김치는 시간이 흐를수록 부풀어 올라서 결국 국물이 김치 통을 넘쳐 나오고 말았다.
같은 상황을 보아도 제각지 받아들이는 것이 다르다. 진실이란 지리멸렬하고 공허한 명제에 지나지 않는지도 모른다. 그 진실이 불편한 것이라면 더더구나 외면당하는 것이 너무도 당현한 일이 되었다. 사회가 개인화 되어가고 욕망이 우선 존중받는 시대의 가장 큰 오류지 싶다.
엘고어가 말한 문장이 떠오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