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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리적,수학적인,...2차원과 3차원을 넘나드는 관념의세계.사람이기에 이것은 견디기 힘들만큼,건조했고, 슬펐고, 아픈...
이 드라이 플라워 같은 부자연 스러운 세계는 이제 닫힐 때가 됐어
유지하는 자... 닫는자....
받아들이기 쉽지 않지만..그렇기에..더욱 참신하게 빛을 발하는...온 만큼이나 좋아하는 유시진 선생님의 작 품입니다... 아직, 젊은작품 특유의 칼날이 서 있는 그림체도 완,소..!
갖고 있음이 소중하지만, 페이퍼 백이란 것은...,어딘가 부족스런 기분,하드커버 소장 판을 갖고 싶다는 소망을 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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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개 유시진의 만화는 건조하다. 하지만 단순히 건조하지만은 않은 그 속에 깊숙히 숨어있는 주인공들의 격정이 있다. 이 만화도 그렇다. 무척 건조한 듯한 느낌이지만 주인공들은 감정을 가지고 있고 그것때문에 상처받기도 구속하기도, 심지어 세계를 닫아버리기도 한다. 세계를 유지하고 닫을 수 있는 키퍼이자 클로저인 쿤. 그는 연인인 샨카의 죽음을 목격하고 그녀가 살던 세계를, 그녀를 죽게만든 세계를 닫아버린다. 그리고 키퍼의 자리에서 도망친다. 하지만 영원히 도망칠 수는 없었다. 그를 사랑하는(혹은 그에게 집착하는?) 히이사에 의해 조작된 기억을 가지고 여러 세계를 돌아다니지만 결국 키퍼이자 클로저인 자신으로부터 도망칠 수 없다는 것을 알게된 그는 죽음을 택한다..(혹은 완전한 소멸.) 거미줄, 활공, 그리고 앰버, 키퍼, 클로저. 이렇게 독특한 설정을 가지고 독특한 이야기를 만들어낸 것이 놀랍기만 하다. 주인공들의 고독, 혹은 격정적인 감정에 어느생 울고 있는 나를 보게되었다. 건조한 가운데 이렇게나 슬프고 아름다운 이야기를 담아낼 수 있는 작가의 놀라운 능력 덕분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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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는 두 종류의 사람이 존재한다. 작가 유시진을 아는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 나는 내가 좀 더 일찍 유시진을 아는 사람들이 되지 못한 게 안타깝다. 나는 고등학교 이학년 때 그녀의 작품 쿨핫를 읽었다. 그 때의 신신한 느낌은 하나의 충격이라 부를 수 있을 것이다. 뻔한 스토리에 비 현실적인 그림들로 표현되는 학원물 중에서 이런 보석같은 작품이 있다는 걸 비로소 알게 되었던 것이다.
쿨핫과 신명기를 연재하는 도중 작가의 잠깐의 휴식(?)처럼 만들어진 작품이 이 <폐쇄자>이다. 두 권이라는 길지 않은 분량이지만 이 책은 사랑에 관한 거의 모든 것을 말하고 있다. ‘엠버’라는 신의 세계를 유지하는 자인 키퍼. 키퍼는 사람으로 치면 절대군주와 비슷한 신 인데 그는 ‘힘’에 의해 정해지며 그 운명을 거부 할 수 없다. 그가 가진 표식이 그를 상징하며 그는 그 표식을 이양해 주고 죽어야 한다. 표식이 사라질 때 엠버가 닫히므로…
화이트 라인의 히이사는 자는 키퍼인 쿤을 사랑한다. 그리고 키퍼가 샨카라는 다른 영역의 신을 사랑하게 되자 그녀를 죽인다. 샨카는 빛나는 오렌지 색의 날게를 가졌다. 그녀를 보는 순간 쿤은 그녀를 사랑하게 된다. 샨카는 키퍼를 쿤이라 불러주는 자이며 그래서 쿤인 키퍼는 그녀에게 마음을 연다. 늘 딱딱했던 키퍼는 그녀 앞에서는 쿤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그리고 그는 ‘노웨이’로 쿤을 데려가 그에게 기억을 만들어준다. 키퍼가 아닌 인간의 세계에서 살았던 기억을. 그들은 인간세계에서 잘 살아가지만 쿤은 옛일을 생각나게 하는 사물을 보면 금방 자신의 존재를 기억하게 된다. 그리고 그가 기억을 되살릴 때 마다 히이사는 그에게 다른 기억을 만들어 준다…
히이사의 사랑은 어떻게 보면 절대적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 그리고 영원한 것이라고도. 어는 누가 히이사처럼 쿤을 사랑할 수 있을까. 자기가 샨카의 세계를 닫았다고 믿는 쿤에게 그것은 바로 히이사의 짓이었음을 밝히면서도 히이사는 괴로워 하지 않는다. 그는 쿤을 누구보다 사랑하고 있었기 때문에…
마지막 장면의 바닷가에서 둘의 사라짐은 잊지 못할 슬픔을 안겨준다. 유시진의 작품을 이렇게 몇 자로 말한다는 것은 어쩌면 불가능 할 것이다. 그녀의 작품은 그 아름다운(나의 눈에는...)그림과 가슴을 파고드는 언어를 동시에 보았을 때만 느낄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한 번 그녀의 그림에 빠진 사람은 다른 순정만화체를 마음에 들어하지 않게 될 것이다. 마지막으로 나는 죽을 때 까지 그녀의 작품을 사랑할 것 같다는 말만은 하고 싶다.
유시진이여 영원하라... [인상깊은구절] 숙명…? 그럴지도 모르지. 구원받을 수 없어. 네가 나를 사랑하고 그리고 아마도 나 역시 널 사랑함에도 불구하고. 사랑으로도, 그 무엇으로도 구원은 없다. 왜냐하면... 인간이란 자기 자신에게서 벗어날 수가 없으므로. 그걸 뛰어넘는 것은 그토록이나 불능한 것이므로. 눈을감고, 전혀다른 인간인 척 스스로를 속여봤자 눈을 뜬 순간, 무섭도록 정확히 로 그자리에 돌아와 있다. 그래서... 이것이 종말이다. “난 너와 같이 있고 싶었던걸까... 아니면 같이 죽고 싶었던걸까...아마도 같이 살고 싶은 이상으로 함께 죽고 싶었을 거야. 그러니, 이 상황은 내겐 꽤 행복한 거지. 응....아주 좋아. 이제 마침내 뭔가 결말이 나는 거라구. 나의 유지자... 나의 폐쇄자...나의.엠버의 것도 샨카의 것도 아닌.” ‘키퍼인 나와 쿤인 나. 이 두개가 점점 반대방향으로 나아간다. 다시는 이 둘을 같은 것이라고...뭉뚱그려진 하나라고 생각할 수는 없겠지.’ 폐쇄자> |
| 개인적으로 작가 유시진의 팬입니다. 모두가 인정하듯이 그녀는 심리묘사에 뛰어나며 작품의 소재에 있어서도 신화와 설화 등의 판타지적 요소가 많죠. 시공을 뛰어 넘으며 전개되는 그녀의 작품들은 입체적이고도 독특하죠. 그런면에서 그녀의 2000년도 작품 '폐쇄자'는 저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더군요. 세상의 정점에서 세계를 거미줄처럼 짜는 자, 혹은 세상을 닫는 자, 키퍼 혹은 폐쇄자 라 불리는 쿤! 쿤의 세계로 자유를 달고날아온 골드 브레이즈 샨카! 그리고 쿤과 함께 구원의 딜레마에 빠져드는 히이사! 이들 3명의 주인공은 이기적이고도 판타지적인 그리고 서로를 파괴하는 사랑을 하게 됩니다. 셋의 관계를 통해 작가는 인간의 구원에 대한 다소 신학적인 담론을 풀어 놓습니다. 물론 인간구원이라는 지적유희는 독자의 몫으로 마지막에 남겨 놓죠. 쿤과 히이사는 구원받을 수 있을까요? 마지막 장면에서 쿤과 히이사는 한줌의 모래로 변해가면서 사랑을 가슴에 품고 갑니다. 한줌의 모래로 변한 그들에게 사랑은 구원이 아니었을까요? |
| 유시진의 [폐쇄자]의 설정은 상당부분 유아론적이다. 자신의 생명이 세계의 생명과 동일시 되는 상황. 따라서 내가 죽으면 나의 세계도 멸망해버린다. '내'가 '세계'의 절대자인 셈이다. 유시진의 전작들을 읽었다면 이런 설정은 그럴싸한 귀결처럼 여겨질 것이다. 그의 여태까지의 주인공들은 자아가 굉장히 강했다. 자신의 세계를 통제하고픈 욕구가 너무나 강렬해서 때로는 파괴적이었다. 그러나 쿤처럼 진짜 세계를 통제할 수 있게 되면? 엠버는 쿤을 절대적으로 필요로 하고 그건 엠버가 그를 통제하려 한다는 뜻이 된다. 결국 쿤은 자기자신조차 맘대로 할 수 없다는 요상한 아이러니에 괴로워하게 된다. 하나의 자아가 세계 전체로 확대되는 건, 바깥세계가 자아 깊숙히 침투해 오는 것과 똑같다. 자아는 깊이 깊이 밀려나 존재조차 잊혀지고... 엠버의 영원한 '삶'을 위해 쿤은 '죽은' 상태나 마찬가지. 그러다 다른 세계에서 날아온 샨카를 만나면서 죽어있던 자아가 눈을 뜬다. 쿤은 변한다. 처음으로 욕망을 느낀 것이다. 샨카를 원하는 자신은 한 젊은 남자로서의 쿤이었던 거다... 그런데 잠깐. 사랑 때문에 껍질을 깨부수려는 인물, 기시감이 느껴지지 않는가? 바로 [마니]의 해루다. 해루는 자신의 완결성을 타인의 어떤 무엇보다 중시하는 사람이다. 그런 그가 마니 때문에 은둔자의 망토를 벗어 던진다. 이유는? '마니와 함께있고 싶은 욕망'이 그를 변화시킨 것이다. [폐쇄자]는 여러모로 [마니]랑 비교된다. 흑발 남자는 대단한 능력자다. 흰머리 남자는 그에 버금가는 능력자다. 흑발은 자기 안에 틀어박힌 놈인데 빨간머리 여자와 사랑에 빠진다. 흰머리 남자는 이유는 각각 다르지만 빨간머리 여자를 살해(하려고)한다. 여기까지는 두 만화가 똑같다... 근데 [마니]는 해피엔딩이다. 흑발 해루와 빨강머리 마니는 과거를 버리고 자기들만의 세계(인간계)로 도망와 오래오래 잘산다. [폐쇄자]에서도 빨강머리 샨카와 흑발 쿤은 둘만의 세계로 도망치려 하기는 했다. 그러나 빨강머리를 흰머리가 살해한다! 이제부터 비극이다. 기억을 잃은 흑발 쿤은 흰머리 히이사와 함께 그들만의 세계로 끊임없이 도망치나, 기억이 되살아 나는 순간 그 세계들은 모두 모래성 같은 허상이 된다. 해루와 쿤은 비슷한 성격의 인물들이다. 그런데도 두 흑발의 결말은 극단으로 나뉜다. 빨강머리의 사랑을 얻느냐, 못 얻느냐에 따라 갈린 운명인 것이다. 강한 자아를 가졌던 해루는 자신을 감싼 성벽을 마니를 위해 부순다. 존재감 없는 약한 자아를 가졌던 쿤은 샨카 덕에 그걸 발견하지만, 샨카를 잃자 약한 자아 자체를 부숴버리고 싶어한다. 비슷한 구조로 시작한 이야기가 왜 이렇게 극단적으로 달라진 걸까. 유시진이 그동안 더 염세적으로 변한 걸까? 왜 유시진은, 해루에겐 마니를 살릴 기회를 줬으면서 쿤에겐 샨카를 살려주지 않았나? 왜 이야기를 파국으로 몰고 간 것인가! 아마 부자연스럽게 세계 전체로까지 확장된 자아가 원인일 것이다. 똑같은 자폐아이되, 해루와 쿤은 근본적으로 달랐다. 살겠다는 의지가 강한 해루의 자폐성은 자신을 지키기 위한 것이었다. 그는 사랑하는 마니를 위해 생존에 대한 집착을 누르고 위험한 행동에 나선다. 반대로 처참하게 침범당하기에 자아가 없었던 쿤은 말그대로 자폐, 세계를 향해 '자신을 닫아'버리고 싶어했다.샨카를 사랑함으로써 겨우 발견한 자아는 너무 약했다. 샨카의 죽음이란 충격으로 그 갓난아기 같은 자아는 세계로 부터의 도망 또는 '자기폐쇄'의 마지막 방법인 죽음을 갈망하게 된다. 결국 [폐쇄자]는 쿤의 죽음, 세계의 멸망이라는 암울한 결과로 끝난다. 사족이지만 이유를 하나 추가해볼까? 샨카가 살았으면 [마니2]가 되어버린다(하하;). 그리고 [마니]의 주인공은 자폐아를 성 밖으로 끌어내는 빨강머리니까, 주인공을 중간에 죽일 이유가 없겠지? [폐쇄자]는 자폐아가 주인공이니까 걔를 비극으로 몰아넣기 위해 연인을 죽여버리는 게 드라마가 생길 테고. 하여간 이걸로 추정하자면 빨강머리-흑발에 이어 다음은 백발차례다! 언젠간 유시진이 질투에 눈이 먼 흰머리가 주인공인 만화를 그릴지 모른다고 진지하게 예측해본다... 그건 그렇고, 이뿐만이 아니다. 이 작품은 매우 중의적이다. 독자따라, 그리고 읽을 때마다 보이는 게 달라질 것이다. 나만 해도 처음 완결된 걸 봤을 땐 히이사에 대한 증오로 몸이 부르르 떨렸고, 작품 전체의 자폐성 때문에 숨이 막힐 것 같았다. 말 그대로 출구가 없는 폐쇄공간에 갇힌 느낌이었다. 성벽 안의 자아에 대한 심리학적 우화... 대단한 작품이라 생각했지만, 자폐적인 주인공과 대안이 없는 꽉막힌 내용전개를 좋아할 순 없었다. 그러나 나중엔 읽을 때마다 다른게 보이기 시작했다. 얼마전에 읽었을 땐 (유시진의) 세계에 대한 불교적 인식이 주제가 아니라고는 생각할 수도 없었다!! 따져 보면 정말 불교철학에서 튀어나온 듯한 테마들이다. 우리들의 진짜 자아는 감각기관에 속고 있다, 모든 것을 통제하는 자 아무것도 통제하지 못한다, 자아란 욕망과 동의어고 생명은 유한성과 동의어이며 영원한 생명은 죽음과 같다,,, 등등등. 실로 색즉시공이요 제행무상이요 제법무아로다. 모든 것이 무로 돌아갔으니 쿤과 히이사와 그들의 세계인 엠버 모두가 해탈하였노라....쿤은 자폐아가 아니라 번뇌에 시달리는 인간의 대표로 보였다. 완전히 다른 시선으로 작품을 보게 된 것이다. ...물론 다시 읽을 땐 또 다르게 볼 수도 있다;; 아직까진 몇번을 읽어도 나는 히이사에게는 초점이 안 맞춰졌었다(샨카를 죽인 미움이 너무 컸다). 그러나 내 동생은 히이사를 동정의 눈으로 보면서 그가 진정한 주인공이며, 실질적인 '폐쇄자'라고 주장하더라. 키퍼자리를 물려주려는 쿤을 거부하고 엠버가 닫히게 만든 것도, 샨카의 세계를 닫아버리게 만든 것도 모두 뒤에서 쿤을 조종한 히이사라면서... 듣고보니 이것도 설득력이 있었다. 이렇게, 보는 사람마다 다 달리 보는 게 유시진이 말한 겹겹의 layer인가보다. 다양한 해석을 향해 열려있는 걸작, 유시진이 그동안 보여왔던 세계관이 폭발하듯 터져나온 작품이다. Two thumbs up! |
| 유시진 특유의 심리묘사가 잘 드러나는 만화이다. 키퍼인 주인공은 쿤은 표식을 가지고 있는데 표식은 세상을 유지하다는 증거이다. 표식이 있는 자는 세상을 유지하는 것과 세상을 닫을 수도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는 말이 된다. 그리고 키퍼인 그는 키퍼인 자신과 쿤이라는 개인으로서의 자아 사이에서 고민하게 된다. 그리고 한 여자가 나타나서 사랑하게 되고, 그럼으로서 한 세상을 닫게 된다. 그를 쿤으로서 사랑한 히이사와 여러 세계에서 다른 기억으로 도피하던 그들은 결국 부자연스럽게 유지하고 있는 세계보다도 자신들의 삶을 선택하게 된다. 유시진 특유의 어법이 살아있는 만화로 꼭 한번 보라고 추천하고 싶은 작품이다. 그림또한 모래성이 무너지는 모습등으로 심리를 묘사하는 등의 심리표현을 효과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
| 유시진의 가장 최근 단편작 '폐쇄자'. '뒤의 앞', '앞의 뒤'라는 조금은 특이한 제목이 붙은 두 권의 단편. 작가는 이 만화에 대해, 굉장히 여러가지로 읽힐 수 있는 이야기라고 했는데, 확실히 그렇다. '뒤의 앞', '앞의 뒤'라고 1, 2권을 얘기해 놓은 것에서 알 수 있듯, 모든 것이 동전의 양면이라는 이야기도 선명하다. 이를테면, 지키는 것과 파괴하는 것, 사랑과 미움, 삶과 죽음, 상승과 파멸. 이 모든 것들이, 사실은 별반 다르지 않은 한 가지라는 것. 작가의 말을 빌리자면, '내리막길이든 오르막길이든 그건 아무 상관없다. 단지 서있는 방향이 다를 뿐...'이라는 거겠지. 폐쇄자는 굉장히 복잡한 구성으로 이루어져 있지만, 이야기의 틀은 의외로 단순하다. 마법을 사용하는 한 세계가 있다. 이 세계의 이름은 '엠버'. 엠버는 이미 소멸할 시기가 지난 세계다. 하지만, 엠버의 능력자들은, 자기네 세계의 소멸을 막기 위해, '힘'을 끌어들여 세상을 유지하고 있다. 우리의 주인공 '쿤'은 이 '힘의 표식'을 갖고 있다. 이것을 갖고 있는 사람은 '세계를 지키는 자', 즉 '키퍼'로 불리운다. 하지만, 키퍼에게는 또다른 이름이 있다. 바로 '클로저'. 즉, 세계를 닫아버리는 사람이다. '힘'의 양면성. 그것은, 세계를 유지할 수도 있지만, 세계를 완전히 멸망시킬 수도 있다는 것이다. '키퍼'이자 '클로저'. 세계를 지키는 자이면서, 동시에 세계를 멸망시키는 자. '쿤'에게 주어진 이 두가지 숙명은, 말했듯, 동전의 양면이다. '쿤'은 자신이 약한 것을 지키는 신성한 소임을 위해 살고 있다고 믿었지만, 사실은 한 세계를 무참히 닫아버리는 것이 자기가 가진 힘의 본질이었음을 알아버렸다. 이 동전의 양면을 통해서 작가가 하고 싶었던 이야기는 무엇이었을까. 인간의 '선'과 '악'? 그럴지도 모른다. 혹은, '어쩔 수 없다'는 숙명의 지배? 그럴 수도 있다. 자기 자신에게 주어진 숙명을 거부하려고 애쓰지만, 결국은 그 숙명으로 돌아와 버리고 마는 것. 쿤의 세계도 소멸해야 할 숙명대로 소멸해가고, 쿤도 클로저로서의 숙명처럼 한 세계를 닫아버리고, '힘'도 원래의 상태대로 돌아가버리고.... 하지만, 이 만화를 읽은 후, 무엇보다도 내게 강렬하게 남은 단어는 '벗어날 수 없음'이다. 무엇으로부터? 물론, '자기 자신으로부터'. '눈을 감고 아무리 나 자신을 부정하려고 해도, 눈을 뜨는 순간, 무섭도록 바로 그 자리로 돌아오는 것'이라고 작가가 표현한 바로 그것. 우리 대부분은, 어쩌면 일생동안 자기 자신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발버둥을 치며 살아가는 건 아닌가...조금 더 나은 내가 되어야지, 라는 반성과 채찍질도, 사실은 자신으로부터 벗어나고 싶다는 소망이 아닐까. 그리고 그것이 되지 않을 때, 괴롭고 힘들고, 자기 자신을 인정하는게 그리도 힘이 들어서 우리는 어깨가 축 처진 하루하루를 살고 있는지도 모른다. 때때로 삶에서 가장 힘든 순간은, 내가 이만큼 부족하다는 걸, 나는 이정도다, 라는 걸 인정해야 할 때이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나의 약점, 안 좋은 점은 외면하고 눈 감아 버리고 싶다. 또다른 내가 되고 싶다는 욕망을 늘 가슴에 품고 산다... 하지만, 그렇게 눈 감았다, 눈 뜨면 다시 무섭도록 제자리로 돌아와 있는 나를 발견하고, 또다시 실망하고, 그러면서 다시 한번 도망가고.... 만화속에서 '쿤'이 '히이사'의 도움을 받아, '또다른 자기자신'으로 살아가고자 하지만, 매번 실패하는 것처럼 말이다. 사실 유시진의 만화를 보고 있으면, 감성보다는 이성이 많이 작동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게 된다. 그 이유가 뭘까 곰곰히 생각해 봤는데, 등장 인물들의 건조한 대사나 건조한 표정도 그 이유가 될 수 있겠지만, 무엇보다도 그녀의 주인공들이 너무나 세상을, 혹은 자기 자신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라는 결론에 도달했다. 특히, '히이사'같은 인물은, 자기 자신이 파멸로 치닫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결국 내리막길 뿐이란 것을. 그러면서도, 그는 기꺼이 그 길을 향한다. 웃으면서. 자신이 저지른 일에 대해 조금의 후회도 없다. 어쩜 그에겐, 그 욕망에 따르는 것이 바로 '숙명'이었는지도 모른다. '쿤'을 사랑하는 자신. '히이사'도 그런 자기자신으로부터는 도망칠 수 없었던 것이겠지. '히이사'처럼, 자기 자신의 욕망과 숙명을 정직하게 꿰뚫어보고, 그것에 충실하게 행동할 수 있는 사람은 현실엔 그렇게 많지 않다. 그렇게 자기 자신을 잘 파악하면서, 내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순간순간 알면서 살 수 있다면, 어디로 가도... 그 길이 내리막이든 오르막이든 후회 같은 건 안 하면서 살 수도 있을텐데.... 자기 자신을 무섭도록 꿰뚫어볼 수 있다는 점에서, '히이사'는 보통 사람보다 강하고 '잘난 놈'이다. 자신의 한계를 끝까지 밀어부쳐 자기 발전을 이루는 것보다 더 힘든 것은, 자신의 한계를 있는 그대로 인정하는 것이라고 나는 믿고 있으니까. 그러고 보면, 폐쇄자는 이 '잘난 놈'의 조금은 기묘하고, 동시에 지독하게 이기적인 사랑 이야기이기도 하다. 그 지독한 사랑의 끝은? '사랑으로도, 그 무엇으로도, 구원은 없다'. |
| 격정을 건조하다, 라고 표현하는 것이 가능하다면 유시진을 그렇게 표현하고 싶다. 그녀의 만화들은 그 독특한, 속을 헤집는 듯한 심리묘사로 유명하고 또 그 판타지적인 설정으로 유명하다. 같은 심리묘사에 탁월하다, 라는 표현을 쓰지만 유시진을 향한 것과 강경옥을 향한 것은 꽤나 다르다. 둘은 다른 느낌이다. 폐쇄자. 제목부터 건조하다 못해 푸석푸석한 이 만화는 제일 처음, 다정한 부자 관계의 일상으로 시작하지만 그 '다정함'의 묘사마저 밀가루 알들처럼 푸석하게 흐트러진다. 손을 대면 가루가 묻어 올라오다 화악 날려버릴 듯 한.. 그런 건조함. 독자들은 세상을 짊어진 키퍼와, 그리고 그의 곁에 존재하는 존재들이 그에게 남긴 흔적들을 역시나 건조하게 바라볼 수 밖에 없다. 더없는 격정으로 샨카를 사랑하고 사랑받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키퍼의 세계가 재미없고 단조로운 톤으로 보이는 것은 작가의 독특한 솜씨 덕분일지도 모르지만... 건조해도. 격정은 격정. 아파도. 욕심처럼 보여도. 비뚤어져 비틀어지고 결국은 부러져 버리는 세상 속 에서라도 사랑은 사랑. 세계를 유지하는 자로서의 키퍼이며. 세계를 닫아버리는 자로서의 클로저이며. 그리고 샨카를 사랑하는 쿤으로서. 책장을 덮고나면 끈적끈적하던 주위의 것들, 축축한 일상마저도 모두 건조하게 흐트러져버리고 입 안은 바싹 가문다. 그리고 생각하게 된다. 지금, 나의 일상도 실은 꿈은 아닌가. 나는 이렇게 살아가다 어느날 문득 키퍼로서의 스스로를 깨닫고 이 세계를 닫아버리게 되는 것은 아닐까. 건조하고 또 건조해도. 그래도 격정은 격정. 사랑은 사랑. |
| 키퍼-클로저-쿤은 여러 차원의 세계의 존재근거가 되는 개인이다. 그는 자신의 의지에 따라 한 세계를 유지하거나 소멸시킬 수(이를 닫는다고 표현한다) 있으며 만약 그가 죽을 경우엔 의지와 상관없이 모든 세계가 닫힌다. 물론 이것은 쿤이라는 개인이 그토록 강한 능력을 가지고 있어서가 아니다. 실제로 세계를 유지하고 닫는 것은 '힘'이며 이 '힘'은 키퍼, 혹은 클로저에게 표식을 줌으로써 자신의 힘을 대행하게 한다. 이 강력한 권력을 위탁받은 키퍼-클로저는 당연히 그런 권력에 걸맞는 인격과 사상을 가지도록 교육받는다. 쿤은 어릴 적부터 '이 세계를 지키셔야 합니다'라는 말을 지겹도록 듣고 자랐다. 키퍼의 얼굴엔 세계를 유지하고 닫을 수 있는 권력의 상징, 혹은 권력 그 자체인 '표식'이 새겨진다. 산스크리트어에서 신성한 문자인 '옴'을 좌우 반전시켜 만들었다는 이 멋진 그림은 키퍼, 혹은 클로저의 오른쪽 눈을 감싸는 형태를 하고 있다. 즉, 얼굴의 반쪽에만 새겨져있다. 이러한 비대칭의 형태는 일단 보기가 좋고, 작가가 적극 활용하듯이 키퍼-클로저-쿤이라는 인물의 양면성을 극명하게 상징한다. 하나의 얼굴에 '표식'이 새겨진 쪽과 새겨지지 않은 쪽이 있듯이 쿤이라는 한 인간의 인격 안에도 키퍼-클로저로서의 인격과 개인인 쿤으로서의 인격이 동시에 살아있는 것이다. 위의 문장에서 '인격'이라는 낱말은 모두 '역할', 혹은 '사회적 역할'로 바꾸어도 좋다. '개인'인 쿤으로서의 '사회적 역할'이라는 말이 어색하대도 괜찮다. 이에 대해서는 곧 이야기할 것이다. '표식'은 쿤에게 역할과 힘은 부여했지만, 그 역할과 힘에 어울리는 인격까지 부여해주지는 않았다. 키퍼-클로저로서의 쿤의 인격은 철저하게 사회화의 산물인 것이다. 이 만화는 쿤의 성장과정을 이야기할 때 거의 세뇌에 가까운 수준으로 그의 귀에 대고 '이 세계를 지키셔야 합니다'를 끊임없이 속삭이던 주변인물들의 모습을 그리는데 지면을 아끼지 않고 있다. 이들의 세계 보호에 대한 교육과 사회적인 기대의 결과 키퍼로서의 역할은 쿤에게 철저히 의식화되어 한 메이지(쿤이 살던 세계인 '엠버'의 주민을 가리키는 말)가 눈앞의 새에게 불을 붙이려는 순간 완전히 잊고 있던 자신의 메이지로서의 능력을 무의식적으로 되살려낼 수 있을 정도이다. 메이지들은 이러한 교육이 쿤을 오로지 키퍼-클로저로서의 쿤으로만 존재하게 해주기를 바랬다. 혹 다른 역할의 쿤이 존재하게 되더라도 쿤들끼리의 갈등이 발생할 경우 '표식'을 사용하는 데에 있어 키퍼-클로저로서의 쿤이 결정권을 갖게 되기를 바랬다. 하지만, 그 정도의 교육으로는 충분하지는 못했던 것일까? 혹은 너무 과했던 것일까? 아니면 '표식'이라는 짐이 근본적으로 너무나 무거운 것이라 한 개인이 제대로 감당할 수 없었던 것일까. 쿤은 자신이 사랑하던 여인인 샨카가 살해당한 모습을 발견하자 분노에 차 그 세계를 닫아버리고 만다. 키퍼-클로저로서의 쿤이 아닌 한 개인, 혹은 샨카의 연인(결국, '개인'인 쿤도 샨카와 쿤으로 이루어진 한 사회속의 역할이다)으로서의 쿤이 '표식'을 사용한 것이다. 이 일로 인해 쿤은 갈등과 혼란에 빠지고 마침내는 키퍼-클로저인 자신으로부터 도망치려 한다. 그리고, 쿤을 사랑하던 또다른 사람인 히이사가 이를 돕는다. 하지만 도망치려는 쿤의 의지와 이를 도우려는 히이사의 능력은 매우 긴 기간의 강력한 사회화과정으로 만들어진 키퍼-클로저로서의 쿤을 완전히 눌러버릴 수 없었다. 그리고 쿤은 계속해서 갈등하게 된다. 키퍼-클로저로서의 쿤과 샨카, 히이사(가)를 사랑하는 쿤의 대결. 전세계가 자신의 존재의 당위성을 부르짖으며 키퍼-클로저로서의 쿤을 응원하고 히이사와 샨카가 그들의 사랑과 쿤의 사랑으로 반대편의 쿤을 응원한다. 전세계와 한 사람의 사랑이 각각의 생존권을 놓고 대결한다(워쇼스키 형제가 <폐쇄자>를 본 적이 있나?). 우리는 어느 쪽을 응원해야 하는가? 어느 쪽을 응원해야 할지 결정하기 힘들다면 이 책, <폐쇄자>는 어느 쪽을 응원하고 있는지부터 살피는 편이 좋을 것 같다. 그리고, 살펴봐도 알 수가 없다. 키퍼-클로저를 응원하는 전세계의 대표인 세 명의 메이지 옌타, 누만, 시오람은 주인공에 반하는 역할을 하고는 있으나 결코 악역은 아니다. 표식을 지닌 채 죽으려는 쿤을 살리기 위해 몸을 던진 옌타는 도대체 당신에게 우리는 무엇이냐고 물으며 죽어가고 시오람은 그 앞에 눈물흘린다. 한 편, 이들(전세계)로부터 도망치는데 성공한 쿤과 히이사는 서로 사랑하며 행복한 삶과 죽음을 맞이한다. 결국 책은 어느 쪽도 비난하지 않고, 응원하지 않고 있다. 그리고 나도 마찬가지다. 세계의 존립과 사랑의 성립 사이에서 가치판단을 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어떤 독자들은 가치판단에 성공해 어느 한 쪽을 응원할 수 있을 지도 모르나 나는 그렇게 할 수 없다. 대신, 비난할 수 있는 녀석을 찾아내기로 했다. 녀석은 바로 '표식', 힘, 권력이다. 키퍼-클로저로서의 쿤, 세계의 수호자로 여겨지는 쿤, 스스로의 임무에 소명의식을 가지는 쿤만이 표식을 사용할수 있었다면 좋으련만, 안타깝게도 쿤의 이름을 한 모든 사회적 역할들이 이 힘을 사용할 수 있었다. 쿤의 말대로, 그런 막강한 힘 따위가 개인에게 주어져서는 안되는 것이었다. 난 나에게 그런 힘이 주어지지 않았음을 감사한다. 그리고 우리 세계가 누군가에게 그런 힘을 주고 있지 않음을 감사한다. 라고 말하고 싶다. 폐쇄자>폐쇄자> |
| 꽤 오래전에 나온 책이고 이미 그때 본 책인데 이제서야 겨우 구입했습니다. 그리고 다시 찬찬히 읽었습니다. 사실 3년 전에 읽었을 때는 이 책의 무거운 분위기가 조금 부담스러웠는데 이제는 그렇지 않더군요. 확실히 시간이 사람을 변화시키나 봅니다. 줄거리에 대한 이야기는 많은 분들의 리뷰에서 충분히 설명되고 있으니 따로 이야하지 않아도 되겠지요. 저는 이 책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쿤의 '자아'라고 생각합니다. 이 만화를 이끌어가는 원동력이자 스토리가 그렇게 진행될 수밖에 없게 하는 것은 다 쿤의 자아지요. 실제로 뒷권에는 누구도 스스로를 넘어설 수 없다는 식의 독백이 나옵니다. 그러고보니 이 부분은 다른 분의 말씀처럼 마니의 해루를 연상시키는군요. 해루 역시 마니의 감정과 자신의 감정을 알면서도 그것을 인정하면 스스로의 과거를 부정하게 되어 스스로의 존재자체가 부정된다고 하며 마니를 떠나지요. 그렇지만 개인적으로는 마니와 폐쇄자는 완전히 별개의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유시진님의 만화에 나오는 주인공들은 다들 유난히 자아가 강하고 그 자아 때문에 고민하는 존재들이니까요. 제가 보기에는 특별이 해루와 쿤을 연결시킬 필요는 없는 것 같습니다. 이런 자아에 대한 성찰은 어쩐지 강경옥님의 만화를 연상시키기도 하는군요. 물론 두 분의 만화는 추구하는 바나 그런 것이 완전히 다르지만 스토리가 진행되면서 주인공들이 끝없이 고민하고 생각한다는 면은 조금은(정말 조금. 거의 없다라고 해도 무방할 정도로) 비슷하지 않나...생각됩니다. 간단하게 말하자면 이 만화는 남여간의 3각관계에 대한 만화일지도 모릅니다. 쿤과 쿤이 사랑하는 샨카와 쿤을 짝사랑하는 하이사의 3각관계. 특이한 것이라면 쿤과 하이사가 둘 다 남자라는 정도일까... 작가의 말처럼 폐쇄자는 여러 관점에서 바라볼 수 있는 책입니다. 쿤의 입장에서 샨카의 입장에서 하이사의 입장에서, 엠버의 입장에서. 각각의 입장에서 보면 내용이 조금 다르게 보이겠지요. 물론 어떻게 해도 가장 이기적인 것은 하이사이고, 가장 나약한 것이 쿤인 것은 변할 수가 없겠지만. 하하. 유시진님의 팬이라면 누구나 재미있게 읽을 수 있을 것이고, 가벼운 만화보다 조금 깊이 있는 만화를 원하는 분이라도 재미있게 읽을 수 있을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