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작가는 이 작품에 여러 가지 레이어를 겹쳐놓았다고 했는데 내가 이 작품을 통해 가장 강하게 느낀 것은 히이사와 쿤을 사로잡았던 절대적 숙명, 본성에 관한 것이다. 예전에 ‘크라잉 게임’이란 영화에서 이런 얘기가 있었다. 전갈과 개구리의 이야기. (개구리가 아닐 수도 있다. 하도 오래 전이라 기억이 가물가물하네. 이야기가 각색되었을 수도 있으니 혹시 틀린 내용이 있더라도 부디 용서를…) 전갈은 강을 건너고 싶었다. 하지만 헤엄칠 수가 없었단 전갈은 개구리에게 강을 건너줄 것을 부탁하기로 했다. 전갈의 부탁을 받은 개구리는 ‘만약 내가 널 태우고 가다가 네가 날 물면 어떡해?’라며 거절했다. 전갈은 ‘걱정 마. 만약 내가 널 물면 나도 물에 빠져 죽을 테니까.’ 라고 대답했다. 이에 안심한 개구리는 전갈을 태우고 강을 건너기 시작했다. 강을 건너가던 그들은 중간에 급한 물살을 만났다. 둘은 매우 당황했고 전갈은 개구리를 물고 말았다. 전갈에게 물린 개구리는 죽어가며 전갈에게 그 이유를 물었다. 날 물면 너도 죽게 되는데 왜 물었냐고 외쳤다. 그러자 전갈이 슬픈 얼굴로 이렇게 대답했다. “물론 나도 알고 있다. 하지만 이것은 내 본성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었다.” 알면서도 어쩔 수 없는 것. 설사 그로 인해 타인 뿐만 아니라 자신도 파멸에 이를 수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에 따를 수 밖에 없는 것. 본성 혹은 절대적 숙명이라 이름 지을 수 있는 것. 이 작품에서 쿤은 자신의 힘의 본성에 따라 한 세계를 닫았고 히이사 역시 자신의 내부의 명령에 따라 샨카를 죽이고 만다. 하지만 이 둘이 본성에 대응하는 방식은 판이하게 다르게 나타난다. 쿤은 자신의 힘의 본성에 따른 결과에, 예상치 못한 참혹한 결과에 괴로워하며 애써 자신을 부정하려고 한다. 그리고 히이사의 도움을 받아 그 괴로운 기억으로부터 도피하고자 한다. 즉, 그는 한 세계를 닫기 전까지는 그 자신의 본성을 정확히 깨닫지 못하고 있었으며 깨달은 뒤에도 엄청난 결과를 감당하지 못해 자신의 본성을, 자신을 부정한다. 그에 비해 히이사는 어떤가. 소름끼칠 정도로 무표정한 얼굴. 혹은 만들어진 것 같은 미소를 항상 머금고 다니는 이 남자는 그 자신의 숙명뿐만 아니라 그에 따른 결과도 정확하게 직시하고 있다. 보통 사람이라면 자신의 본성, 숙명을 깨닫는 것 만해도 대단한 일인데 말이다. 그래서 쿤과 같은 유형의 인간이 자신의 본성에 따른 결과를 감당 못해 괴로워하면서 자신이기를 거부할 때, 간신히 숙명을 깨달았던 이들이 슬프게 웃으며 그것을 담담하게 받아들일 때, 히이사는 그 결과를 담담하게 받아들이다 못해 즐기고 있는 듯 보이기까지 한다. 숙명이 마련해 놓은 단 하나의 길, 파멸로 굴러 떨어지고 있다고 해도 그 길을 어떤 식으로 내려갈까 하는 것은 자신의 몫이라는 여유까지 있어 보인다. 천천히 혹은 굴러 떨어지듯이… 그러다가 조금 옆으로…? 하지만 언제까지 미룰 수 없다는 사실은 그 자신도 알고 있다. 결국 그는 파멸에 이르고 말았지만(쿤을 잃고 말았지만) 그 또한 예상한 결과였으므로 특별히 불행해야 할 이유도 없다. 물론 그 순간만큼은 언제나 무표정 혹은 웃고 있을 것만 같은 그의 눈에 눈물이 흐르긴 했지만. 그는 파멸의 순간을 어떤 식으로 맞이했던가. 여기에서도 그의 비범한 기질은 잘 나타난다. 그는 쿤을 잃는다는 더 이상 나빠질 것이 없는 상황에서 쿤과 함께 소멸할 것을 택함으로써 마지막 파멸의 순간을 ‘사랑하는 이와 죽음을 함께하는’ 행복한 순간으로 바꾸었던 것이다. 하지만… 마지막 죽는 순간 쿤이 읊조렸듯이, 그 무엇으로도 ‘구원’은 없었다. 결국 인간은 스스로의 본성에서 벗어날 수 없고 어떻게 하든 구원될 수도 없다는 말인가? 너무나 공허하고도 슬픈 이야기이다. |
| 엠버라는 나라. 그 속에 살고 있는 블랙라인,화이트라인 두 집단의 메이지들. 그리고 그들이 사는 세계 엠버와 다른 세계를 존재.폐쇄 할 수 있는 메이지 중에 우수한 단 한 자 키퍼. 새로운 세대의 키퍼가 된 쿤. 쿤. 오랜기간 줄곧 키퍼를 배출했던 블랙라인의 메이지(이런! 새로운 세상인 엠버라는 만화속에서도 연줄이 존재하다니... 슬프도다.), 그리고 거기에 더해 어린 시절부터 뛰어 났던 자질로 인해 전 키퍼로부터 키퍼만이 지니고 있는 존.폐 능력의 표식을 건네 받으면 새로운 키퍼가 된다. 무료하면서도 덤덤히 키퍼로써의 책임을 행하던 쿤 앞에 새로운 세계에서 몰래 빠져나온 날개를 가진 산카가 날아 온다. 그들에게 사랑이 찾아왔다. 그러던 어느날 산카가 살아져 버리고... 일생에 단 한 번 뿐인 절대교감의 맹세를 산카가 갇힌 그녀의 고향 방에서 하는 그들. 다음날 산카의 시체가 쿤 앞에 보인다. 분노한 쿤은 키퍼의 능력 중 하나인 폐쇄로써 그녀의 나라를 닫아 버린다. 키퍼의 능력인 세계의 존재.폐쇄 중 항상 생명들을 유지케하는 존재를 위해 힘을 쓰고 싶었던 쿤이었다. 그런데 산카의 죽음으로 자신에게는 생명을 사라지게 하는 폐쇄자로써 마음도 있다는 것을 깨닫고 자신에게 회의를 느끼며 노웨어에 감각이 닫힌 체 유영하게 된다. 그런 쿤을 발견한, 화이트라인에서 몇 십년 만에 배출한 우수한 인재 히이사. 그는 쿤을 지구라는 세계로 유영시켜 와 쿤은 아들, 자신은 아버지인 부자로써 생활한다. 그리고 키퍼가 살아진 엠버에서 다른 메이지들이 쿤을 찾으로 나타나고... 영재였던 어린 시절의 히이사는, 그들 집단의 어른들이 블랙라인의 또 다른 뛰어난 아이. 쿤을 경쟁자로 보라는 가르침에 그를 쳐다보다 쿤의 매력에 사로 잡힌다. 그 후로 쿤에게 끈임없는 신경이 가는 히이사. 그런 그가 노웨어에서 쿤을 발견 했던 것이다. 자신이 생각하던 자신의 평소 성향과 반대의 성향을 발견하게 되면서 오는 자괴감. '나라는 존재가 결국 이것 밖에 안됐나?'를 느끼게 되는. 사랑에 눈 뜨는 개인으로써의 자신과 집단의 존.폐를 결정하는 수장으로써의 자신. 따로 또 같이에서 오는 괴리감. 그리고 사랑이라는 것이 단 두 사람만이 만나는 것이 아닌 다각관계에서 오는 이루어 질 수 없는 슬픔들을 이야기 하고 있다. *엠버에서의 힘은 거미줄을 잘 이용하는 것이다. 주인공들이 주변공간에서 거미줄을 뽑아 겨루는 장면들은 심각했지만 웃음이 나왔다. 골격이 잡힌 사람들이 거미줄을 뽑으면 싸우는 것은 기존 사회에 익숙한 나에게는 동화되기에 아직은 무리인 듯 싶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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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방에 매일 그자리에 놓여있었고 나도 매번 손길 한번 주지 않았습니다.
그날은 내게 정말 행운이었던 것 같습니다 이 책을 집어 가슴에 묻고 집에 돌아와 조용한 오후에 읽었습니다. 아랫분이 말한 것처럼 이 시대에, 이 한국에, 태어난 것이 다행이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런 생각이 드는 책이라고 나는 말하고 싶습니다. 책에 대한 다른 말은 하고 싶지 않습니다 내가 그 만큼이나 소중하기에 그것이 난도질 당하는 것을 보고싶지 않기 때문입니다 내가 느낀 것을 당신도 느낄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당신이 매일 스쳐지나는 곳에 이 책이 꼿혀 있다면 주저 없이 가슴에 안아주세요] [인상깊은구절] 마지막 자신에 죽음보다 그의 목소리가 희미해지는 것을 아쉬워 하던 쿤의 모습. 그들이 바람에 흩어지듯 조용히 물결치는 바다의 모습. |
| 나는 이런거 쓰는거 사실 귀찮아하는 편이다. 그래서 내가 제일 좋아하는 작품인데도 불구하고 이제서야 리뷰를 쓰게된다. 내용과 느낌에 대한건 다른 독자리뷰와 똑같을 것이다. 난 이 만화를 칭찬하고 싶다. 유시진의 특징이라면 내용이 건조하면서도 공감하는 사람들은 매니아가 되게 만드는건데, 대부분의 사람들이 만화책인데도 불구하고 그림은 그냥 넘어가게 되는 경우가 많다. 내용은 당연히 훌륭하다. 그렇지만, 그걸 표현해준 그림 역시 훌륭하다. 그림이 예쁘다, 아름답다를 떠나서, 이 엄청난 만화에 일반적으로 눈치채지 못할만큼의 세세함까지 신경써서 그림을 그렸다.(솔직히 나도 이걸 몇번씩이나 읽고서야 알았다.) 특히 쿤을 표현할때.... 그가 키퍼임으로써 강요받을때는 표식이 있는 얼굴이 주로 나온다. 그러나 그가 샨카와 있을때, 샨카를 선택했을때는 쿤으로써의 맨얼굴이 자주 나온다. 그리고, "하권"의 뒤에 있는 그림들! 나중에 그 그림들이 의미하는 걸 알고서는 숨이 막혔다. 셋이 있는 그 단 한장의 그림만으로도 그들의 관계를 말할 수 있다니.....!!! 난 유시진 "만화"를 좋아한다. |
| 유시진씨가 그리는 만화 속의 주인공들은 모두 자기만의 세계를 가지고 있다. 쿨 핫의 동경이만 해도, 그녀는 그 어린 나이에 이미 자기 세계를 완결시켜 놓고 그 속에서 세상을 내다볼 뿐이다. 때문에 유시진씨의 만화 주인공들은 모두 어느 정도 고독하고 불행하다. 쿤은 유지자-keeper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다. 모든 사물이 이면을 가지듯이 유지자의 뒷면은 폐쇄자-closer다. 쿤은 유지자로 살아가도록 지정된 자신의 삶을 '약한 것을 지키는 것' 이라고 이해하고 받아들인다. 그가 받아들인 소명은 그의 생각보다 강한 것이었으며, 엠버는 그에게 키퍼로서의 역할만을 강조하고 강요할뿐 실상 '키퍼이자 쿤'이라는 사실을 철저히 무시한다. 엠버라는 사회 전체가 쿤이라는 개인을 말살하도록 강요하며 일종의 폭력을 휘두르고 있는 것이다. 그 속에서 쿤은 질식사하기 직전이었다. 그런 쿤을 숨쉬게 해준 것이 샨카였고, 때문에 그녀의 의미는 쿤에게 매우 컸다. 키퍼가 아닌 쿤을 바라봐주고 이름을 불러주는 샨카의 존재는 쿤에게는 빛이자 키퍼와의 분열의 틈이었다. 키퍼는 자신이 쿤이라는 사실을 자각하고 점점 자신을 죽이고 엠버를 지키는 일에서 멀어져간다. 그대로 단둘이 다른 세계로 숨어버렸다면 매우 행복했을 것이다. 어떤 것에도 책임지지 않는, 자유가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샨카가 죽고, 그 순간 가장 먼저 깨어난 것은 키퍼의 이면인 클로저였다. 스스로 한세계를 닫았다는 중압감을 못 이긴 쿤은 자신을 가둔다. 그것을 깨운 것이 히이사란 존재다. 히이사의 사랑-이라기보다 사랑에 가까운 무엇-은 극한에 가 있다. 가상세계를 만들어내며 그 속에서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한다. 결국, 쿤은 스스로의 존재를 참을 수 없어하며 자신을 죽이고 히이사는 어떤 식으로든 완결이 났다는 것에 대해 기뻐한다. 어떻게 하더라도 자기 속에서는 벗어날 수 없다. 어떤 현실을 만들어내더라도, 그 현실을 실제로 믿더라도 그건 눈속임이다. 눈을 뜨면, 정확하게 참을 수 없는 자신을 보게 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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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은 언제나 극으로 통하니 모든 것을 딱 중간쯤에 위치하도록 유지해야겠구나. 하고 생각했던 적이 있었는데... 그게 되는 일인가. 그럴 필요도 없고... 유시진의 것을 대부분 재미있게 봤지만 그 중 제일 마음에 들었다. 이렇게 탄탄한 이야기를 만들기 위해서 얼마나 오랫동안 생각하고 생각한 걸까. 아니면 천재거나. (사실 작가가 생각한 layer란 내가 받아들인 이야기보다 얼마나 많을지 모르는 일.)
나는 이 이야기가 좋고 또 여러 각도에서 가슴이 아팠다. 그럴 것도 없는데 지독하게도 공감한 모양이다. 그래도 한편으로는 주인공들이 부럽기도 하군. 짭~ 작가의 말처럼 각자가 보시고 각자의 개성만큼 느끼시길. [인상깊은구절] 왜냐면... 인간이란 자기 자신에게서 벗어 날 수가 없으므로. 그걸 뛰어 넘는 것은 그토록이나 불가능한 것이므로. 눈을 감고, 전혀 다른 인간인 척 스스로를 속여봤자- 눈을 뜬 순간, 무섭도록 정확히 바로 그 자리에 돌아 와 있다. 그래서... 이것이 종말이다. |
| 삼각관계, 동성애, 윤회, 세상의 양면성, 자신의 세계를 지키기 위해 필사적인 사람들. '폐쇄자'는 한 마디로 정의하기 힘든 만화다. 단조롭지만 나름대로 '행복하다고 느끼는' 소년 이명과 그의 아버지. 하지만 엠버에서 온 불청객들이 이명의 삶에 들어오고 '얄팍한 진실'이 밝혀진다. 그리고 잃었던 기억을 되찾는다. 이명이 살던 곳은 '엠버'라는 곳으로 이명은 원래 '쿤'이라는 이름의 성년이었다. 어릴 때부터 쿤은 세계를 열고 닫는 능력을 지닌 '키퍼'가 되기 위해 교육을 받았다. 그의 엄청난 능력은 축복이라기 보다는 부담스러운 짐에 가까웠다. 양면성. 세상을 유지해야 하는 자가 사랑하는 여자 때문에 하나의 세계를 파괴해버리고 만다. 그 때문에 괴로워하는 쿤을 히이사가 대한민국으로 데려와 거짓 기억을 심어주고 자신은 아버지 행세를 했던 것이다. 엠버에서 온 불청객(그들 입장에서 보면 엠버를 지키기 위한 사신쯤이 되겠지만)은 자신의 의무를 망각한 쿤을 데려가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히이사는 쿤을 지킨다. 여러세계를 돌아다니면서 알게 되는 또 다른 진실. 쿤의 슬픔은 산화된다. 유시진의 만화에는 여러가지 가상의 세계가 나온다. 다른 말로 하면 판타지가 풍부하다. 어쩜 저런 재미있는 세계관을 가질 수 있을까. 2권짜리 만화를 위해 그가 창조한 세계는 10권 짜리 만화를 그리기에도 부족함이 없어 보인다. 물론, 어떤 세계를 설명하기 위해서 만화를 그리는 건 아니다. 작가는 자신이 하고 싶은 말을 효과적으로 전달하기 위해 온갖 방법을 생각한다. '폐쇄자'는 등장인물 모두를 이해할 수 있는 걸로 봐서 한 마디로 정의하기 힘든 만화다. 하지만 나는 '양면성'에 힘을 실어주고 싶다. 열림과 닫힘, 기쁨과 슬픔, 사랑과 증오는 손바닥의 앞뒷면 같은 것이다. |
| 한국 순정만화계에서 유시진이 차지하는 위치는 가히 독보적이라 말할 수 있다. 서울대라는 만만치 않은 타이틀은 제하더라도, 말라 비틀어진 그녀 만화의 주인공들과 유달리 덤덤하고 집착이란 없어 보이는 그녀만의 화술. 또 판타스틱하고 비범한 소재를 사용해서 인간의 가장 내면적이고 남에게 알리고 싶어하지 않는 '프라이빗'한 심리를 이야기하는 것까지. 그녀의 만화는 참으로 남다르다. 그림은 전혀 닮지 않았지만 그런 의미에서 강경옥 만화와 일정 부분 맞아 들어가는 맥락이 있다고도 말하고 싶은데, 강경옥 만화가 동적인 느낌이라면 유시진 만화는 참으로 정적이다. 아무튼간에, 이 폐쇄자의 얘기를 하자면, 앞서 말한 유시진의 매력들이 유감없이 녹아내린 수작이라는 것부터 말해야 할 것이다. 신명기를 잠시 접고 보여준 이 만화는 신명기를 기다리는 아쉬움을 어느 정도 잠재워 줄 수 있을 정도로 상당히 매력적이었다. 이세계적인 어감이지만 입에 착착 붙는 히이사나 쿤, 샨카 같은 이름도 그렇고, 여러 개의 세계에 대한 개념이나 유영과도 같은 생소한 단어들도 그렇다. 또 거미줄을 다룬다는 표현도 그렇고. 곰곰 되짚어보면 우리의 일상을 판타지의 언어로 재해석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는 짠 평을 내릴 수도 있겠지만, 이 책의 탄탄한 구성이나 여러 독특한 배경을 보면 역시 그녀의 아이디어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다. 이 책을 본 사람들은 알겠지만, 히이사는 쿤을 사랑한다. 그리고 쿤은 샨카를 사랑했다. 그래서 히이사는 샨카를 죽여버렸고, 쿤은 샨카의 세계를 닫아버렸다. 이쯤 되면 그들의 사랑의 개념에 대해 상당히 고개를 갸웃거리지 않을 수 없다. 사랑은 언제나 오래참고, 사랑은 언제나 온유하며.. 라는 종교적인 사랑을 여기에서는 이야기하지 않는다. 사랑은 갖고싶고, 나만 소유하고 싶고, 그 사람의 모든 것이 되고 싶고, 그게 아니면.. 파괴해 버리는. 상당히 위험천만한 이 이야기를 히이사는 유시진의 표현대로라면 '평온한 얼굴로 술술 지껄'여댄다.(아웃사이드 중) 샨카의 죽음에 분노해 한 세계를 닫아버린 쿤도 쿤이지만, 이 책에서 쿤에 포커스가 맞춰져 있어 살짝 빗겨 보이는 히이사의 사랑은 참으로 극단적인 구석이 있다. 그리고 극단의 감정을 지닌 사람이 겉보기에는 여유롭고 느긋한 심성의 소유자인 것도 매우 아이러닉하고 말이다. 힘을 가졌다는 이유로 자신을 버려야 했던 쿤과 달리, 히이사는 그런 부분에서 상당히 비인간적이면서 또 인간적인 캐릭터이다. 집착 심한 아이의 감정을 쿤과는 달리 어른스럽게 보여주는(그러나 기실 행동에 대해서는 할 말이 없다;) 히이사. 마지막 신에서 작가는 히이사와 쿤 사이에 희망이라고 하기엔 뭐하지만 일종의 틈을 남겨둠으로써 완결되지 않은 이야기로 매듭짓는다. 반대쪽을 바라보고 있던 두 사람의 사랑이 서로 만나면 더 이상의 파괴는 없게 될까. 그것은 좀더 생각해 볼 문제인 것 같다. |
| 으앙 ㅠㅁㅜ 이 무심한 만화같으니. 한번 볼 때는 그냥 어라? 결말은 비극적 야오이? 이게 다였지만. 두번 세번 네번 보니 대사들을 읽으면서 그저 눈물이 줄줄줄이었습니다! 아 진짜. 특히 2권 후반부의 대사들이 막막 가슴을 찌릅니다. 꼭 보세요~ 강추 강추에요~ 이렇게만 쓰니까 300자가 넘어야 된다고 하네요; 그냥 무진장 찡한 만화고 좋은 만화고 꼭 봐라는 소리밖에 못하겠는데. 음냐. 이 만화가 할말이 없다는 소리가 아니라 저의 감상능력이 이거 밖에 안 되는데 |
| 고교시절 윙크에 연재됐던 <아웃사이드>를 통해 처음으로 유시진을 만났었다. 그때는 윙크를 챙겨보는 편이었기에 구석구석 빠짐없이 만화를 보느라 <아웃사이드>를 보긴 했지만, 나에게 그의 그림과 글투는 불편한 것이었다. 확실히 그의 초기작에서 그림은 완성된 그림체가 아니었던 데다가 그의 정서는 낯선 것이었다. 그런데.. <마니>, <쿨핫>에서 <폐쇄자>에 이르러 나는 느낌표!를 찍게 되었다. 한 작가가 성장해, 그의 세계를 완성한 것을 느낄 수 있었기 때문이다. 뒤의 앞, 앞의 뒤로 짝을 이루는 두 권을 <폐쇄자>는 예의 작가 특유의 불편(?)하고 메마른 분위기로 이미 소멸했을, 언젠가는 소멸할 세계를 보여준다. 그리고 그 세계 속에는 표식을 넘겨받음으로서 세계의 유지자가 됐지만, 자기 감정을 가둬버린 "쿤"과 그런 쿤에게 감정의 세계를 일깨우는 자유로움 자체, 불꽃같은 "샨카"와 자신의 유지자이며 폐쇄자인 쿤만이 절대적인 "하이사"가 있다. 이성과 감성, 그리고 본능의 세 가지 인간의 속성을 대표하는 듯한 세 인물의 이야기는 결국 유지자이자 폐쇄자인 쿤의 죽음 - 쿤은 자기 세계의 유지자/폐쇄자이며 또한 자기 자신의 유지자/폐쇄자이다 - 과 함께 닫혀진 세계로 사라진다. 파도치는 해변, 부서지는 파도와 함께 하나의 세계, 사랑과 미움의 기억들이 사라지는 엔딩은 잊지 못할 장면이다. ps. 아마도 이 세계를 살아가는 우리들 모두, 자기 자신의 유지자이며 동시에 자기 자신의 폐쇄자일거다.폐쇄자>폐쇄자>쿨핫>마니>아웃사이드>아웃사이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