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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로부터 미래를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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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행복한가? 얼마나, 왜 행복한가? 편리한 기계를 쓰고 있다고 해서, 안락한 집에서 살고 있다고 해서 24시간을 분단위로 쪼개서 생활하면서도 시간에 쫓기며 스트레스에서 잠시도 벗어날 수 없는 이 생활을 과연 행복하다고 할 수 있을까. . 라다크에 대한 몇 자의 글을 읽어 내려감과 동시에 이 영화가 떠올랐다. 브레드 피트가 열연하는 프로 산악가 하인리히 하러. 그는 자기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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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행복한가? 얼마나, 왜 행복한가? 편리한 기계를 쓰고 있다고 해서, 안락한 집에서 살고 있다고 해서 24시간을 분단위로 쪼개서 생활하면서도 시간에 쫓기며 스트레스에서 잠시도 벗어날 수 없는 이 생활을 과연 행복하다고 할 수 있을까. <티벳에서의 7년>. 라다크에 대한 몇 자의 글을 읽어 내려감과 동시에 이 영화가 떠올랐다. 브레드 피트가 열연하는 프로 산악가 하인리히 하러. 그는 자기중심적이고 이기적인 면 때문에 친구도 없고, 자신도 친구를 만들려 하지 않는다. 그는 제 2차 세계대전의 소용돌이를 피해서 7년 동안 티벳에서 지내게 된다. 하인리히는 티벳에서 달라이 라마를 만나면서 그와 보낸 7년 동안 자신의 삶이 부질없고 덧없는 것이었음을 깨닫고 불교에 빠지게 된다. 그는 달라이 라마에게 서방문물을 가르쳐 주며 그와의 우정을 쌓아간다. 그는 달라이 라마와의 만남을 통해 자신을 존중하는 마음을 깨닫게 되고 그가 진정한 스승임을 깨닫는다. 티벳에서 남은 생을 보내기로 결심하고 전혀 다른 사람으로 태어나 살고 있는데, 중국은 티벳을 합병하려 하고 인민해방군이 티벳으로 진격해 온다. 차차 티벳이 외침을 받고 예전의 순수함을 잃어가는 모습을 보았다. <오래된 미래>의 라다크는 실제로 ‘작은 티벳’이라고 불리기도 하며 영화 속의 티벳과 매우 유사한 진통을 겪는다. 오래된 미래. 이 책은 나의 호기심을 자극하기에 충분했다. 중고등학교 수업 시간에 몇몇의 선생님들로부터 여러 번 들어 본 도서였는가 하면 이 책의 표지는 또 어떠한가. 스웨덴 출신 여성학자 헬레나 노르베리¬호지가 쓴 「오래된 미래 - 라다크로부터 배운다」는 인문학, 생태학 분야에 있어서는 전설적인 바이블이 아니던가. 나는 은연중에 무언가 두껍고 세련된 표지와 디자인을 기대했다. 하지만 얇은 건 고사하고 흰 바탕에 흑백 사진 한 장과 검은 글씨로 디자인된 표지와 누런 재생지를 사용한 내지는 진부하다기보다는 오히려 신선하게 다가왔다. 책표지를 장식하고 있는 아기와 할머니의 미소가 보면 볼수록 닮았다. 가만히 보고 있으면 나도 비슷한 웃음을 ‘흉내’내게끔 만든다. 세상 풍파의 흔적은 찾을래야 찾을 수 없는 깨끗하고 맑은 미소. 그 때묻지 않은 미소가 아기에게도, 할머니에게도 함께 발견되는 것은 라다크의 전통사회가 현대의 산업사회에 비해 그만큼 덜 찌들었다는 것을 말해주는 것은 아닐까? 1975년 언어학자로서 라다크의 토속 언어를 연구하기 위해 라다크에 온 저자는 그들의 삶 속 깊이 배어있는 전통에서 생태학적 지혜와 공동체 중심의 세계관을 발견하고 그에 매료된다. 이 한 묶음의 재생지에는 서부 히말라야 고원에 자리잡은 황량하지만 아름다운 공동체 라다크에 대한 이십여 년에 걸친 감동 깊은 현장보고서가 들어있다. 제 1부 ‘전통’을 알아갈 때는 활자를 읽는 것 만으로도 내 마음이 정화됨을 느꼈다. 라다크의 그들은 야크와 염소, 양의 털로 옷과 신발을 만들어 입고, 신었다. 수행행위처럼 시간이 날때마다 실을 짰으며 그 행위는 마치 마음을 평온하게 해 주는 역할을 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진흙으로 빚은 벽돌로 직접 집을 짓고, 스스로 농사지은 보리와 통밀을 주식으로 자급 하였으며, 산에서 기른 염소나 야크의 젖으로 버터를 만들었다. 또한, 동물과 사람의 똥을 주워 말려서 뗄감으로 사용했다. 이렇게 생활에 필요한 모든 것이 주변에 있었고, 또 주변에 있는 그것들을 적절히 사용할 줄 아는 지혜를 가지고 있었다. 삶을 영위하는 모든 과정이 자연 친화적이었다. 기운 옷을 또 기워 입으면서도 그들은 자신들이 가난하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오히려 모든 것이 풍요롭다고 말한다. 서로 끈끈한 유대관계를 맺고 있는 이웃들은 언제든지 생계에 필요한 노동력을 원조해주었다. 자연은 뿌린 대로 거둘 수 있게 해 주었고, 겨울의 축제에는 춤과 노래가 넘쳤다. 이 모든 것이 부처의 자비로운 은총 덕분이었기에 그들에겐 늘 감사할 일밖에 없었다. 언쟁이나 경쟁은 라다크의 생활과는 너무나 동떨어진 일이었던 것이다. 그들은 객체성에 대해 잘 이해하지 못했다. 함께 살아감에 대한 공생의 정신이 생활 깊이 박혀있다. 흔히 ‘문명화’되었다고 하는 곳에서는 개인주의가 팽배하다. 하지만 이들은 ‘나’를 따로 떼어내 생각하는 것에 익숙치 않았다. 불교의 연기설의 가르침에 의하면 모든 것은, 심지어 무생물까지도, 관계를 맺고 있다. 사람은 자연과 별개의 것이어서 마음대로 사용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사람은 자연의 일부이며 자연은 우주의 일부라고 인식한다. 이러한 맥락에서 설거지 물의 음식조각을 작은 동물들에게 주기 위해 버리지 않는다. 돈보다는 이웃과의 관계가 더 중요했고, 의견 충돌이 있을 때는 자발적 중재자가 일을 해결했다. “당신들은 언쟁을 하지 않습니까? 어떻게 그럴 수 있죠?” “참 우스운 질문이네요. 우리는 그저 함께 사는 거예요. 그 뿐이죠.” 라다크 사람들은 운좋게도 개인의 이익과 전체 공동체의 이익이 상충하지 않는 사회를 물려 받았다. <오래된 미래>라는 제목처럼 그곳에서 과거와 미래를 함께 느낄 수 있었다. 부족하다고 해서 헐벗고 굶주려 고통 속에 사는 과거가 아니라 부족함 속에서도 상부상조하는 따뜻함과 순수함, 그들의 ‘무소유정신’이 라다크라는 고요함과 일치하는 듯 했다. 특히 그런 폐쇄적인 사회에서 가지기 쉬운 여성에 대한 학대나 고된 노동과는 전혀 다른 여성존중에 대한 전통과 풍습은 놀랍기까지 했다. 요즘 들어 우리 사회에서 패미니즘이 많이 확산되고 보편화 되기는 했지만 일상생활에서 우러나오는 그들의 여성 역할에 대한 이해와 관심은 '우리의 미래'라 이름짓기에 부족함이 없다. 후회 없는 표정으로 죽어가기란 참으로 어려운 것이다. 그러나 라다크인들은 죽음을 특별한 고통으로 보지 않는다. 그저 아침에 일어나 웃는 얼굴로 집안일을 하고 저녁 때 죽어도 여한이 없는 그런 것이 그들의 삶이자, 인생관이다. 윤회설에 따라 그들에게 있어서 죽음은 곧 새로운 삶의 시작을 나타냈다. 그러나 코카콜라와 청바지는 라다크의 모든 것을 앗아갔다. 젊은이들은 청바지와 코카콜라의 매혹에 도취되어 마을을 떠났고, 서부극을 상영하는 영화관은 젊은이들의 광장이 되어 버렸다. 그들의 자급자족적인 삶, 욕심이란 것도 없고, 서로간의 갈등조차 없는 그들의 삶이, 허무하게도 코카콜라 병 하나에 넉다운이 되고 말았다. 상쾌한 이 맛, 언제나 코카콜라~♪ 허무한 것은 이것만이 아니다. 중앙아시아 교통의 요충지인 라다크는 결국 외부에 노출되었고, 이에 따른 변화는 빠르게 일어났다. 라다크에 침입한 관광객들은 돈을 뿌리고 다녔다. 사람들은 '풍요와 여유로 보이는' 외부 문물에 비해 자신들의 것들은 낙후되었다고 느끼기 시작했다. 그들은 자신들의 생활방식의 한계점은 알고 있으면서 외부 문물의 어두운 면은 알지 못했다. 오로지 장밋빛 생활만이 눈에 보였고, 이제 라다크의 중심거리는 세계 어디서나 볼 수 있는 흔한 풍경들로 채워졌으며, 사람들은 새로운 문물을 접하기 위해 고향을 등지고 떠났다. 노부모와 아이들은 함께 하는 시간이 짧아졌고 공동체는 서서히 붕괴되어 갔다. 그들의 자기 존중도 사라졌으며, 자신감도 상실했다. "여기는 가난 같은 건 없어요" 라다크인 조차도 대부분 모르고 그냥 지나치는 '삶의 행복'들은 그것이 파괴되고 나서야 더 뚜렷해 졌다. 현재의 라다크에서 벌어지는 '해체'의 과정을 저자는 안타까워한다. 그러나 그에 대해 뭐라 말할 수 없음에 더욱 괴로워한다. 돈이 모든 것을 대신한다. 그 전에는 필요도 없었던 돈이 최고다. 개발의 논리가 전통적 삶을 파괴한 결과 두 가지 방식의 삶을 뚜렷하게 비교할 수 있는 목록이 생겨난다. 라디오에서 나오는 '표준적인' 노래들이 노동을 하며, 놀이를 하며 즐기던 노래를 대신하고, 문명의 획일성이 저마다 존중 받던 개성을 말살하고, 돈을 놓고 벌이는 기만적인 흥정이 직접적인 인간 관계에서 이루어지는 중재를 몰아 내고, 부유함이 오히려 삶의 여유를 앗아간다. 비료와 가스가 똥을 대신하고 똥은 쓰레기로 처리된다. 개발의 낙후지역이라는 열등감이 스스로에 대한 존중을 잊게 한다. GNP로 평가되는 순간 라다크인들은 가장 열등한 인간으로 전락한다. "당신들이 우리 라다크 사람들을 도와줄 수 있으면 좋겠어요. 우린 너무나 가난해요." 이와 같이 헬레나 노르베리호지는 극명하게 대비되는 두 가지 모습을 통해 '개발' 이전과 이후의 라다크를 생생하게 그리고 있다. 척박한 자연환경 속에서도 천년이 넘게 독자적인 언어와 불교문화를 지키며 자급자족의 삶을 꾸려오던 공동체가 ‘세계화’라는 이름 아래 쓰러지고 물들어가는 과정을 담은 뼈아픈 다큐멘터리인 셈이다. 이 안타까운 보고서는 이미 세계의 많은 사람들을 감화시켰고, 라다크를 세계화의 시험장으로서 주목받게끔 만들었다. 이 책은 주로 환경문제를 이야기할 때 거론되곤 하지만, 그것에만 한정시키기는 어렵다. 작게는 '행복의 조건'에 관한 책이면서, 크게는 '세계의 사회경제체제'를 이야기하고, 그와 동시에 '세계의 사회경제체제'가 나의 '행복의 조건'을 어떻게 규정하는가를 보여주는 책이기 때문이다. 결국 개인이 생각하는 행복의 조건이란 보다 거시적인 구조의 굴레를 벗어나지 못한다는 점을 상기시키며, 그렇기 때문에 역으로 삶의 태도로부터 구조가 변화하는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는 희망을 던져주고 있다. 하지만 전혀 다른 삶의 태도가 전혀 다른 행복을 만들어 낼 수 있다는 것을 믿지 못하는 이들은 이렇게 반문할지도 모르겠다. '라다크의 평화와 안정이란 사실 다른 세계의 존재를 알지 못하는 데서 나온 무지의 소산이 아닌가?', '세계는 다양성을 추구한다고 하지만, 그들 공동체 구성원의 생활 양식은 오히려 획일적이지 않을까?', '한번도 가져본 적 없는 그 '복된 마음의 평화'를 위해 지금 내가 누리는 문명의 이기를 포기하는 것이 가능한가?' 충분히 의미 있는 질문이지만, 책이 전하려는 메시지를 제대로 이해한 것은 아니다. 인간이 이룩한 모든 문명을 허물어뜨리고 과거의 '무지'와 '가난'으로 돌아가자고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 이 책이 말하고자 하는 것은 오래된 것으로부터 미래의 이상향을 설계하는 것, 그리고 그 미래로부터 다시 현재에 유용한 생각들을 이끌어내야 한다는 점일 것이다. 그렇게 우리는 과거에서 미래를 보고, 배우며 현재에 적용해야 한다. 그리고, 그것만이 이 세계를 '지속가능함'으로 이끌 수 있는 대안이 될 것이다. 그래서 이 책의 제목이 '오래된 미래'가 아닐까. 이 책은 우리로 하여금 진정 소중한 가치가 무엇인지를 생각하게끔 만든다. 클릭 한 번으로 지구 반대편과 네트워킹이 가능한 이 시대에 발전된 문명을 받아들이고, 접하지 않는 것은 실로 불가능하다. 하지만 외부 문명을 ‘어떠한 방식으로’ 받아들이느냐는 그 사회 구성원들의 역량에 달려있다. 자신의 것을 부끄러워하기 시작하면 ‘나’의 주체는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만다. 옛 것은 지키되 발전된 것은 받아들이는 우리네의 ‘온고지신’적 자세가 필요하다. 분명 라다크에서 주는 메시지는 강하게 와 닿는다. 그리고 무시할 수 없으며, 무시해서도 안된다. 현대 문명 문제점의 탈출구가 여기에 있을지도 모른다. 특히 인간성의 회복은 그네들의 공동체 문화에서 답을 찾아낼 수 있다. 라마승이 기술자가 되고, 젊은이들은 전통적 가치를 저급한 것으로 간주한다. 그러나 아직 희망은 있다. ‘작은 것이 아름답다’는 슬로건 아래 [반개발운동]이 라다크에도 뿌리 내리고 있다고 한다. 반개발은 자립을 증진시키고 다양성을 존중하는 지속가능한 발전이다. 이것은 라다크 전통사회의 가르침과 일맥상통한다. 태양열을 이용한 연료공급, 중력을 이용한 수압 펌프 등이 그것이다. <오래된 미래>는 라다크의 이야기지만 그것이 시사하는 바는 비단 히말라야의 작은 고장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세계화라는 미화된 논리 아래 사회적, 생태적 위기에 봉착한 현 인류가 나아가야 할 미래의 방향을 보여준다. 거대 기업의 자본이 세계 시장을 장악하고, 신자유주의가 세계의 주류를 이루고 있다. 라다크의 변화를 보고 안타까움을 느꼈다면 획일적 모습만 강요하다시피 하는 현 사회의 주소에 문제가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2004년 우리의 모습은 어떠한가, 아직까지 개발의 유혹에서 허덕이고 있는 것은 아닐까. 이 책을 읽은 후 확실히 나는 변했다. 아니, 읽는 도중에 변해갔다는 표현이 더 맞을 것이다. 그 변화가 외적으로 드러나지 않을지는 몰라도 나는 느낄 수 있다. 이제 갓 대학에 입학하여 인생 설계를 시작한 나. 앞으로의 대학 생활을 잃어버린 소중한 가치들을 발견하고, 지켜나가는 것으로 채워나가야 할 것 같다.
l******e 2004.06.07. 신고 공감 42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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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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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래 된 미래. 사실은 ‘시장은 정말 우리를 행복하게 하는가’라는 책을 읽고 있었다. 일전에 개봉한 슈렉2의 OST를 들으면서 'Holding out for a hero.', froufrou라는 묘한 이름의 가수가 부른 노래를 흥얼거리며 책장을 넘겼다. 그런데 한참을 읽다가 나는 100페이지 부근에서 문득 답답해졌다. 시장. 행복. 시장. 행복. 그러다가 꺼내든 것이 책장 저 위에 꽂혀 있던 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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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래 된 미래. 사실은 ‘시장은 정말 우리를 행복하게 하는가’라는 책을 읽고 있었다. 일전에 개봉한 슈렉2의 OST를 들으면서 'Holding out for a hero.', froufrou라는 묘한 이름의 가수가 부른 노래를 흥얼거리며 책장을 넘겼다. 그런데 한참을 읽다가 나는 100페이지 부근에서 문득 답답해졌다. 시장. 행복. 시장. 행복. 그러다가 꺼내든 것이 책장 저 위에 꽂혀 있던 이 ‘오래된 미래’이다. 작년 여름 방학 때 있었던 독서모임 때문에서 사서 읽고는 다시 꺼내들지는 않았었다. 이제야 다시 읽을 마음이 들었던 거다. ‘찌푸린 웃음’을 지어본 적이 있는지. ‘오래된 미래’를 읽으면서 내 안면이 줄곧 취했던 행태이다. 코끝이 찡해지기도 하고, 안타깝기도 하면서도, 또 왠지 라다크의 옛날을 살았던 사람들이 부러워서 그런 묘한 얼굴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욕심 없이 사는 사람들 혹은 개발에 의해 파괴된 사람들에 관한 이야기는 너무도 흔하다. 혹은 개발로 인해 그런 삶이 파괴되었다는 이야기는 더욱 흔하다. 내가 이 책을 읽고 들었던 기분은 그런 것만은 아니다. 오히려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은 사람의 ‘손’에 관한 것일 따름이다. 사람의 ‘손’. ‘오래된 미래’에는 사람의 ‘손’에 관해서 여러 가지 이야기가 들어있지만, 내게 기억에 남는 이야기는 두 가지이다. 하나는 라다크의 어머니들이 아이를 키울 때 들이는 정성이다. 현대의 어머니들이 아이를 기르는 모습에 기겁하면서 라다크의 어머니인 돌마는 이렇게 말했다. “제발, 헬레나, 당신이 아이를 갖거든 무슨 일이 있어도 그렇게 하지 마세요. 행복한 아기를 원한다면 우리처럼 하세요.” 두 번째는 풍요로움에 관한 것이다. 세상의 풍요로움이 증가했다고 말한다. 굶주리는 사람도 없고, 많은 사람들이 예전에 비하여 번듯한 집에 살고 있다. 그러나 지금도 부유한 사람은 적다. 왜냐하면 부의 기준으로 남는 것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 중 하나가, 사람의 ‘손’을 사는 일인 탓이다. 휴대폰이 대중화 된 이후 다시 부유층들은 비서를 더 많이 쓰기 시작했다. 옛날의 부자와 지금의 부자가 똑같은 것 중의 하나가 많은 사람의 ‘손’을 사서 부릴 수 있다는 것이다. 이렇게 두 가지의 이야기를 생각하고 나면 ‘오래된 미래’를 읽다가 맑스가 생각난다고 해도 무리는 아닐 것이다. 맑스는, 아니 어쩌면 후대의 공산주의 국가의 공산주의자들은 개발의 폐해는 알지 못한 것 같지만 중요한 것을 내게 알려 주었다. 사람의 ‘손’이 간 것만이 가치를 지닌다는 무서운 진실이다. 세상의 많은 것들이 여러 가지 방법으로 만들어지지만, 사람의 ‘손’이 가지 않고 만들어지는 것은 없다. 아무리 땅에 곡괭이를 쌓아두어도 저절로 농사가 되는 것은 아니다. 땅을 농작물로 바꾸는 마법은 사람의 ‘손’에 의해서 이루어지는 것이다. 설사 그것이 공장 스위치를 살짝 누르는 정도의 일로 바뀐다고 해도 마찬가지이다. 일에 있어서 기계가 생산에 개입하게 되어 생산성이 높아져 사람의 ‘손’이 덜 가게 된다고 해도 말이다. 그저 그 물건은 가치가 줄어들 뿐, 마법은 언제나 사람의 ‘손’에 의해서 일어나는 것이다. 여기서 가치가 없다는 말은 기계가 만들어서 그 농산물은 맛이 없거나 사람들의 배를 부르게 할 수 없다는 것이 아니다. 다만 사람의 ‘손’이라는 것은 이상한 것이어서, 그것이 하는 일에는 시간이 들기 마련이고 수명이 달려 있는 인간에게, 사람의 ‘손’이 들어갈 수 있는 일은 한정될 수밖에 없다는 것. 그렇기 때문에 이제 한정된 사람의 ‘정성’과 ‘시간’을 많이 빼앗지 않는, 소위 기계의 스위치를 누르는 정도의 일에 의해 만들어진 농산물은 사람의 ‘노력’이라는 자원을 적게 먹는다는 것. 이런 의미에서 가치가 줄어들었다는 말을 하는 것이다. 그러나 여기서 어설픈 노동가치설을 이야기 하려는 것은 아니다. 다만 또 하나 생각이 드는 것은 맑스도 이야기 하지 않았던 사람의 ‘손’이 갖는 다른 마법. 뻔히 모든 사람들이 이야기를 하지만, 너무 많이 이야기해서 흔하게 되어버린 ‘정성’, ‘노력’에 관한 것이다. 아이를 기르는 일을 도맡아서 해주는 로봇이 생겨나면 우리는 남는 사람의 ‘손’을 다른 곳에 쓸 수 있게 될 것이다. 이것이 소위 말하는 생산성의 발전이 낳는 꿀물이다. 그러나 사람의 ‘손’이, 혹은 ‘시간’만이 만들어내는 것들이 있다. 라다크의 어머니가 말하는 ‘행복한 아이’일 수도 있고, 책의 페이지마다 묻은 손 떼일 수도 있을 것이다. 기계로도 페이지마다 접혀진 책을 만들 수는 있지만, 손 떼 묻은 책을 만드는 것은 적잖이 그 책에 공과 시간을 들게 한다. 다른 것이 대신할 수 없는, 사람의 ‘손’과 ‘시간’이 합작해서 만들어내는 것만이 ‘가치’를 만든다. 이 가치는 다른 것이 대신해서 만들 수 없기 때문에 ‘가치’라고 말해지는 것이다. ‘정성’과 ‘시간’이 들어가는 일, 즉 사람의 ‘손’이 가는 일만이 가치를 만들어낸다고 감히 내가 말하는 것은 이러한 것이다. 물론 세상에는 천재라는 종류의 사람도 있다. 남들보다 더 많은 성과를 더 빠르고, 더 훌륭하게 만들어내는 사람들. 이런 종류의 사람들에게 내가 드는 생각이란 두 가지이다. 하나는 이런 종류의 사람들이 생각만큼 많지 않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결여된 정성과 시간은 보이지 않는 곳에서 분명한 결여를 나타낼 것이라는 점이다. 완벽한 성분의 분유가 행복한 아이를 담보하지 못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말이다. 예전에 아는 사람이 그렇게 물어본 적이 있다. ‘내가 아무렇게나 그린 그림은 노동은 들어갔지만, 사람들이 가치 있다고 하지는 않잖아요.’ 몇 가지 문제가 있다. 하나는 정성과 시간의 문제이고, 하나는 사람들이 가치 있다고 하는 것은 돈으로 얼마냐의 문제이다. 기계나 다른 것으로 대신할 수 없는 사람의 ‘손’이 들어갔다면 그것은 ‘가치’있다. 가격의 문제가 아니다. 나는 이것이 개념 정의라고 생각한다. 맙소사. 나는 이 잡문을 쓰다가 중간에야 내가 왜 사람의 ‘손’이라는 어구를 썼는지를 깨달았다. 우리는 보통 ‘손이 많이 간다.’라는 말을 쓴다. 여기에는 두 가지 뉘앙스가 있다. 하나는 ‘정성’이고, 하나는 ‘시간’이다. 책을 읽는다는 것이 아직 가치가 있는 것은 무엇일까. 그것은 아직도 그런 부분은 기계로 대신할 수 없다는 말을 이야기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아직도 독서는 ‘손’이 많이 가는 일이다. 요새 드는 생각은 열을 다하여만 읽는다면, 독서의 시간은 오래 걸려도 괜찮다는 기분이다. 아직도 세상에는 시간을 벌충하지 못하는 일들이 많은 것 같다. 시간이 걸리지 않으면 채우지 못하는 것들이 있고, 그런 것들마저 돈으로 사려고 하면 너무 비싸다. 이 책을 읽는 동안 라다크의 사람들이 나에게 가르쳤던 것은 그것이다. 반개발주의도, 목가적인 삶도 아닌 그러한 것들을 내게 말해주었다. 산다는 것은 사람의 손이 많이 가야 한다. # 여담 1 나는 내가 문득 오래된 미래를 읽었다고 생각했는데, 다시 ‘시장은 정말 우리를 행복하게 하는가.’란 책을 폈더니 49페이지의 위에 이런 글이 적혀 있다. “수도에 살고 있는 나의 언니는 일을 더 빨리 해주는 온갖 것을 가지고 있어요. 옷은 상점에서 사기만 하면 되고, 지프차, 전화, 가스쿠커를 가지고 있어요. 이 모든 것들이 그토록 시간을 절약해주는데도 언니를 만나러 가면 나하고 이야기할 시간도 없대요.” *헬레나 노르베리-호지의 『오래된 미래』에서 세상 많은 것들이 의외로 심모원려하게 일어난다. # 여담 2 라다크의 어머니들이 아이를 키우는 데 들이는 정성을 강조하다 보면, 왠지 현대의 어머니들에게 그 책임을 지우게 될까봐 걱정이 된다. 요지는 그것이 아니다. 아이를 키울 때 정성이 드는 것은 당연한 것이고, 이것을 꼭 어머니가 해야 하는지는 생각해보아야 할 것이다. 또 그 일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에 대해서의 생각도 분명해야 한다.

[인상깊은구절]
“수도에 살고 있는 나의 언니는 일을 더 빨리 해주는 온갖 것을 가지고 있어요. 옷은 상점에서 사기만 하면 되고, 지프차, 전화, 가스쿠커를 가지고 있어요. 이 모든 것들이 그토록 시간을 절약해주는데도 언니를 만나러 가면 나하고 이야기할 시간도 없대요.”
k*****4 2004.08.01. 신고 공감 8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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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결국 이상은 현실의 씨앗이다.
"그래도 결국 이상은 현실의 씨앗이다." 내용보기
1부는 전통적인 라다크인들의 삶에 관한 이야기다. 그들이 옛 전통으로부터 지혜를 얻어 삶 속에서 적용해 나가는 모습을 그리고 있다. 필요한 것 이상은 얻으려 하지 않고 항상 이웃과 나눔을 베풀며 공동체 내에 만족하며 사는 모습을 통해 현재 문명이라고 하는 사회 살고 있는 우리에게 배워야 할 점이 무엇인지에 대해 이야기 한다. 또 불교의 영향 때문인지는 삶과 운명을 하나로
"그래도 결국 이상은 현실의 씨앗이다." 내용보기

1부는 전통적인 라다크인들의 삶에 관한 이야기다. 그들이 옛 전통으로부터 지혜를 얻어 삶 속에서 적용해 나가는 모습을 그리고 있다. 필요한 것 이상은 얻으려 하지 않고 항상 이웃과 나눔을 베풀며 공동체 내에 만족하며 사는 모습을 통해 현재 문명이라고 하는 사회 살고 있는 우리에게 배워야 할 점이 무엇인지에 대해 이야기 한다. 또 불교의 영향 때문인지는 삶과 운명을 하나로 보며 생사고락을 거부감 없이 받아드리는 그들의 모습은 일반 우리 같은 사람에게는 없는 무언가 경지에 이른 모습이었다. 누구나 한 번쯤은 머릿속에 꿈꾸며 상상하던 자연과 더불어 사는 삶을 현실에게 실현하고 사는 이들이 바로 이들이여 보였다. 2부는 변화하는 라다크 사회를 보여준다.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파괴적인 문명이 그들 삶에 침투해 젊은이들은 오래된 그들의 터전인 고향을 떠나 현대의 문물을 배우고 남아 있는 자들 전통적 문화가 조금씩 버리며 그전보다 편리하고 도시적인 삶을 추구하고자 하는 그들의 모습을 그리고 있다. 저자는 그들이 변해가는 모습을 안타까운 눈으로 바라보며 현대 문명의 환상에 빠져있는 그들의 잘못된 생각을 깨워 주려고 노력한다.

 

그들의 모습이 사실 색다르게 느껴지진 않는다. 차이는 있지만 아직 현대 문명이라고 하는 것이 들어가 있지 않은 곳은 어디나 인간 본연의 따뜻한 면이 남아 있는 곳이 많기 때문이다. 얼마 전 방송에서 보여 준 아마존 부족들의 삶은 순수하다 못해 순진한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까지 들 정도였다. 우리나라 역시 마찬가지다. 생활 방식의 차이는 있지만 공동체적인 삶의 모습이라든지 타인을 생각하는 모습은 우리 전통에도 많이 있지 않았나 싶다. 물론 내가 살고 있는 나라는 국가의 체제가 이른 시기부터 형성되고 또 사람의 숫자 또한 비교할 수 없는 차이가 있어 라다크와는 다른 점이 있지만 우리 전통 속에도 충분히 함께하고 공동체의 문화가 있었다. 가령 내가 어렸을 때까지만 해도 시골 지역에서는 이런 문화가 많이 남아 있었다. 봄철에 모내기를 할 때면 마을 사람들이 함께 모를 심고 어느 집에 상을 당하면 마치 내일처럼 다들 상이 끝나기까지 일처리를 함께 했다. 또 정월대보름 같은 전통 명절에는 마을 잔치가 벌려지기도 했다. 하지만 지금은 우리나라 시골에서도 그런 모습을 찾아보기 힘들다. 기계가 들어와 함께 했던 일을 혼자하기 시작했다. 젊은이들은 대부분 도시로 떠나며 노인들만 남아 전체적인 균형을 잃어 버렸다. 전통 농촌의 미래를 생각하면 암담하기 그지없다. 나는 끝물에 있던 시골 세대다. 유일하게 그 모습을 마지막에 본 세대가 아닐까 한다. 이미 그 당시에도 우리나라는 현대 문명화가 거의 정착되었던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난 이들이 현대 이기주의의 결산인 문명이라는 것으로 변해가는 모습을 보며 옛날 모습이 그리워지기도 하면서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저자는 단지 국한적인 라다크의 모습을 통해 그곳만을 바꾸자는 것이 아니다. 바로 우리 모습을 되돌아보자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 라다크는 그가 경험했던 하나의 예일 뿐 다른 지역에서의 특성을 최대할 살리며 현대 문명과 함께 공존할 수 있는 법을 찾아 나가자는 것이다. 그 대안으로 몇 가지 예시를 보여줬다. 하지만 그것이 분명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하지만 안타까운 마음이 든다. 라다크 같은 경우 규모도 작은 공동체일뿐더러, 아직 완벽하게 서구 문명이 들어와 있는 상태가 아니기 때문에 저자가 추구하는 방향이 성공할 수 있지만, 과연 현대 문명이 완벽하게 구조화가 되어 버린 기존 나라들에도 답이 될 수 있을까? 인간의 욕망이란 것이 어떤 것인지는 이 라다크인을 통해서도 배울 수 있다. 세상 욕심 하나 없을 것 같던 사람들이 물질의 맛을 보며 변하는 모습을 통해 나는 순자의 성악설과 기독교의 원죄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결국 인간이라 기회만 닿으면 좀 더 편한 방법으로 바뀌는 것이 본능인 것 같다. 그나마 라다크인들은 아직 옛 전통에 대한 체험의 기억이 남아 있기라도 하지만 일반 우리처럼 문명에 쪄든 사람들에게는 그저 책 속에나 나올 법한 이야기로 밖에 들리지 않는다. 아주 먼 이야기, 옛날이야기와 같은 종류로 말이다.

 

나 역시 지역 공동체가 이데올로기 중 공산주의는 무너지고 자본주의는 그 끝자락에 있는 가운데, 인류가 대안으로 삼을 수 있는 마지막 방법이라 생각하지만, 실현 가능성이 높아보이지는 않는다. 사람들이 그걸 모를까? 아니, 그렇게까지 바꾸고 싶지 않은 것이다. 가진 자는 지금 상태에서 바꿔야 할 필요성을 못 느끼며 없는 자는 그만한 시야를 돌릴 가능성이 없다. 이미 현대 문명이 그들을 앞가리개로 눈을 가린 경주용 말로 만들어 버렸기 때문이다. 결국 알면서도 낭떠러지로 떨어지는 상황은 막을 수 없을 것 같다. ‘오래된 미래’란 말은 현재 상황을 타개하기 위한 방법은 과거 전통에서 찾을 수 있다란 말을 의미하는데, 그 말에 동의를 하면서도 이루어지기 힘들다는 사실에 씁쓸함이 느껴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노력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아직 끝이 아니기 때문이다. 아무리 현재 가는 길이 암담한 벼랑 끝으로 가고 있다 하더라도 아직 떨어지지 않았다는 그 점을 명심하고 우리가 지금과는 다른 방향으로 갈 수 있도록 행동해야 한다. 결국 이상이라고 말하는 것은 현실의 씨앗이기 때문에 그 씨앗을 잘 심어 나갈 수 있도록 지금부터라도 시작해야 한다. 그것이 우리와 후손들을 위해 할 수 있는 미래를 위한 작업이다. 나는 아직 늦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한 사람 한 사람이 그렇게 변해 나간다면 우리 사는 세상이 지금과는 다른 세상으로 변할 수 있을 것이다.



l*****9 2010.07.12. 신고 공감 5 댓글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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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숙하고도 낯선 질문-우리는 행복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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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발과 발전이라는 용어 앞에서 우리는 무엇이 발전이고 진보인지 되물어야할 때가 왔다. 우리는 정신없이 새마을 운동을 했고 군부독재 정권의 휘둘림 속에서 기본적인 인간의 자유를 되찾기 위해 숨가쁘게 싸워왔으며 그러는 동안 정부가 추진하고 있던 경제개발과 세계화의 물결 속에 휩쓸리고 말았다. 개발이라는 것이 논밭을 덮고 산을 깎아 내려 도로를 내거나 건물을 짓는 것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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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발과 발전이라는 용어 앞에서 우리는 무엇이 발전이고 진보인지 되물어야할 때가 왔다. 우리는 정신없이 새마을 운동을 했고 군부독재 정권의 휘둘림 속에서 기본적인 인간의 자유를 되찾기 위해 숨가쁘게 싸워왔으며 그러는 동안 정부가 추진하고 있던 경제개발과 세계화의 물결 속에 휩쓸리고 말았다. 개발이라는 것이 논밭을 덮고 산을 깎아 내려 도로를 내거나 건물을 짓는 것으로 쉽게 받아 들여졌고 국가별 GNP가 높으면 높을 수록 국민의 생활수준이 높아지고 행복수준이 높아질 것이라는 개발의 속임수에 넘어가버린 것이다. 이러한 상황이 깊어지고 개발의 뒷면에서 고여있던 문제들이 고이다 못해 썩어서 악취를 풍기고 있는 상황에서 헬레나 호지의 라다크에서의 삶을 통해 개발의 의미를 짚어보며 삶에 대한 진지한 물음을 던저보게 해준다. 공동체적인 삶, 자존적인 삶 속에서 행복감과 평화로 충만한 라다크는 전통이 숨쉬고 있었고 생태적인 삶을 꾸려나가고 있었으며 인간과 자연의 상호교류 속에서 생을 이어가고 있었다. 반면에 현재 내가 살고 있는 대한민국이라는 국가는 이미 세계화의 물결 속에서 IMF위기를 경험하며 치열한 경쟁관계를 토대로 숨가쁘게 돌아가고 있다. 인간미 떨어지는 자본주의의 냉철함은 인간의 고유한 영역까지 상품으로 생산해 내고 있고 이것이 신기술이라는 이름으로 세계시장을 누비고 있다. 천년단위에서 백년단위로 이제는 몇 십 년 단위로 급격히 빨라지고 있는 과학기술의 속도를 감당해내지 못해 허덕이고 있으며 그 속에서 정보와 기술을 조직하고 창조하는 소수가 거대한 세계를 주무르고 있다. 중국산 알람시계의 알람소리에 눈을 비비고 미국기술제휴의 제트스프링 침대에서 일어나서 세수를 하고 프랑스제 화장품으로 치장을 한 후 프랑스풍의 빵에 뉴질랜드산 버터를 찍어발라 먹고 아파트단지를 나온다. 이것은 특권계층이 누릴 수 있는 삶의 부분이 아니라 이미 보편화 되어버린 일상의 한 조각이다. 청소년들은 세계적인 브랜드인 나이키나, 아디다스와 같은 메이커를 구입하는 것을 자랑스러워 하고 있으며 이것이 극에 치달아 브랜드병, 명품병을 앓고 있는 이들도 태반이다. 그러한 세계적인 브랜드를 생산하는 과정이 파키스탄의 어린이들의 손 품에 달려있고 중국의 어린 소년 소녀들, 저임금의 노동자들이 한국의 70년대 공순이들처럼 환기도 안돼는 공장에서 과로사에 숨지면서 만들어지고 있다는 것을 알지 못한 채 세계적인 명품이라는 허울에 속으며 그러한 소비활동을 선호하고 있는 것이다. 세계화의 거대자본은 이미 우리 삶 깊숙이 자리잡고 있으며 우리는 "이러한 현상이 세계화인가? 세계화의 참의미가 이런 것인가?" 하는 실로 기본적인 물음을 던지는 것을 망각한 채 오히려 그 속에서 국가별 순위를 매기며 상대적인 만족감을 느끼며 살아가고 있다. 세계화의 경제 구조 속에서 개발이라는 명분 앞에 거대자본 국가들은 현대판 식민지를 만들어가고 있으며 그에 더해 제3세계국가들로 하여금 개발대상국가라는 오명을 씌우며 열등감을 심고 있다. 경쟁을 토대로 하는 파괴적인 시스템은 경제구조에서 뿐만이 아니라 문화와 자연, 인간 삶에서도 잔혹한 속도로 퍼지고 있는 것이다. 산업화와 더불어 도시화바람이 불어닥쳤고 삼시세끼 끼니 걱정을 하며 지내던 보릿고개는 옛동화에나 나올법한 소리가 되어버렸다. 배는 부르고 얼굴은 더욱 고와지고 흙뭍지 않은 손으로 살아가면서 삶의 질이 향상되었다고 하지만, 인구 조밀로 인해 사람들 사이에 물리적 거리는 가까워졌다고는 하지만 사람들은 예전보다 개별화되었으며 익명성 속에서 자신의 존재를 찾기 위해 방황하고 있다. ''''人情''''과 ''''더불어 사는 삶'''' 에 대한 따스한 느낌의 광고는 존재할 뿐 실재 삶 속에는 결핍되어있다. 물론 개발이 가져오는 이기들을 무시한 채 맹목적으로 단점만을 싸잡아 비판하자는 것이 아니다. 인간생활에 미친 편리함과 안정성의 결과를 평가절하하자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우리는 발전과 개발의 토대가 무엇이며 무엇을 향한 개발이고 발전인지에 대한 진지한 물음을 던져보아야 한다. 지금의 개발후유증은 빈곤과 환경파괴의 악순환 속에서 골이 깊어가고 있으며 인간의 이기심이 촉매제가 되어 다수를 누르고 소수가 이익을 챙기려는 경쟁구조 속에 있다. 전통문화를 고수하며 삶을 살아가던 라다크 인들이 서구식 개발을 접하게 되면서 격었던 혼란과 자문화에 대한 열등감을 갖게 된 데에는 굴러온 돌(개발)의 본질이 어떠한 것인지 짐작하게 해준다. 행복에 이르는 다양한 길 중에서 신자유주의 열풍 속에서 세계화를 기치로 한 개발은 파괴를 바탕으로 한 서구식 발전을 한가지의 길로써 인정을 했고 이외의 다양한 길은 열등하고 미개발된 길이라고 규정을 지었다. 한정된 지구자원을 고갈시키며 비순환적인 구조 속에서 일구어가는 개발은 삶의 질 향상이라는 경제적 헛껍데기 지표를 올리고있지만 그것은 한시적인 결과일 뿐 지구를 위협하는 인간의 생존을 위협하는 일이 되어가고 있다. 라다크에서의 서구식 세계화의 물결에 휩싸인 개발이 그 지역을 얼마나 물질적으로 정신적으로 황폐화시켰는지는 중언부언하고 싶지는 않다. 하지만 그러한 개발을 소용돌이 속에서도 자연과 함께, 인간과 더불어 함께 살아가고자 하는 고민들은 움트고 있었으며 그러한 소수의 목소리들이 힘을 발휘하여 에콜로지의 개발을 모색하는 모습들을 보여주었다. 산업화 도시화로 소외되는 여성과 노인들 힘없는 어린이들에 대한 공존의 중요성을 재인식했고 전통적은 라다크의 생태적이며 자립적인이 얼마나 가치로운 일인지 깨닫기 시작하면서 서로를 살리는 개발을 논의하고 또 실천해 나간다. 인간의 행복이 경제발전과 물질적 부의 축척에서 올 것이라고 가정하고 시작되는 개발과 자연과 인간의 존중을 바탕으로 하는 개발의 차이가 무엇인지 이 책을 통해 알 수 있을 것이다. 대안적인 삶을 모색하는 소수의 목소리를 이상적이며 관념적이라고 비난하는 목소리가 있을지언정 우리는 라다크의 사례를 통해 힘을 얻는다. 서열화를 위한 경쟁적 구조의 발전이 아닌 공존을 위한 삶을 모색하는 발전이 어떻게 이루어지는 지 라다크가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s****9 2003.05.23. 신고 공감 3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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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태적,문화적 다양성의 추구
"생태적,문화적 다양성의 추구" 내용보기
“왜 세상은 하나의 위기에서 또 하나의 위기로 비틀거리며 나아가고 있는가?” “세계 전역에서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경쟁적이고 탐욕스럽고 자기중심적으로 되어감에 따라 이러한 성향이 인간본성 탓으로 돌려진다.” 그러나 저자는 서구사회의 지배적 관점을 기준으로 할 때의 인간에 대한 시선이라 주장한다. 서구 산업사회의 개발이라는 침략이 가해지자 ‘라다크’라는 인도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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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세상은 하나의 위기에서 또 하나의 위기로 비틀거리며 나아가고 있는가?”

“세계 전역에서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경쟁적이고 탐욕스럽고 자기중심적으로 되어감에 따라 이러한 성향이 인간본성 탓으로 돌려진다.” 그러나 저자는 서구사회의 지배적 관점을 기준으로 할 때의 인간에 대한 시선이라 주장한다. 서구 산업사회의 개발이라는 침략이 가해지자 ‘라다크’라는 인도북부 티벳지역의 생태적, 사회적, 경제적 파괴를 목격하면서 인간이 탐욕스러워지고 이기적으로 변화하는 근인이 사람들을 서로에게서 갈라놓고, 땅에서 유리시키는 기술적, 경제적 압력에 더 많은 원인이 있음을 지적하고 있다.

시간은 “어두워진 다음 잘 때까지(공그로트)”, “해가 산꼭대기에(니체)”, 와 같은 느슨하고 아름다운 말들로 측정될 뿐인 지역, 자연과 화합하며 자급의 생활체제에 익숙한, 그래서 개인의 이익이 전체 공동체의 이익을 거스르지 않는 사회를 물려받은 ‘라다크’ 사람들의 미소와 행복을 소개하고 있다.

이들의 일처다부제와 종교적 일상 -권위와는 무관한 사람들의 삶에 내재하고 교류하는 -이 자연스럽게 그들의 인구의 자동적 조절역할을 수행하는 관습적 지혜와, 탐욕이 존재치 않는 지혜와 자비심은 하나라는 ‘셈바’의 정신은 긴밀한 사회적 유대와 상호의존의 그물을 제공하고 개인에게 정서적 지지를 보내는 대가족제도의 건강성을 이해하게 된다.

저자는 이와 같은 인간으로서의 풍요로운 만족감과 행복이 서구 산업경제의 침투가 급격하게 이루어지면서 걷잡을 수 없이 그들의 삶의 기반과 인간성이 유리되는 현상을 오늘의 서구화된 인류사회와 대비하여 대안을 모색하고 있다.

 

라다크 사람들은 새로운 경제가 의존성을 만들어낸다는 사실을 이해하지 못하고 자신들의 삶이 낙후된 부끄러운 문화라는 자격지심만을 야기한다. 개발과 선진문명의 도입이라는 달콤한 문명의 이기에 광범위한 파괴가 발생한다. 토지에서 유리된 사람들의 도시로의 소득확보를 위한 이행은 새로운 빈민을 만들어내고 존재치 않았던 빈민가의 탄생과 탐욕, 경쟁, 이기심, 자연의 황폐화, 가족의 해체, 공동체의 훼손을 야기한다.

서구중심의 이미 실패하고 끝이 보이는 물질문명이 자신(라다크)들 세계의 성장과 안정을 위한 발판으로 그들(서구사회)의 시장경제라는 사다리의 최하층에 끼워 넣고 단일화된 소비문화를 강요하는 세상이 기다리고 있음을 안타깝게 저자는 고발하며, ‘라다크’의 변화를 인류 사회학적 시각에서 인류의 미래에 대한 희망적 대안의 훌륭한 모델로서 그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

라다크와 같은 전통적 사회가 결함이 없는 완벽한 사회는 아니나 “사회적으로나 환경적으로 더 지속 가능한”사회라는 점이다. 1975년에 ‘라다크’ 사회속으로 들어가 서구 문화의 침입이 가속화된 후 16년 후의 그 사회를 묘사한 다음 글은 그 폐해가 어느 정도인지 깊은 공감을 갖게 된다.

 

“부자와 가난한자 사이의 간격이 커지는 것을 지켜보았다. 여자들이 자신감과 힘을 잃어버리는 것을 보았고, 실업과 인플레이션이 나타나고, 또 범죄가 극적으로 증가하는 것을 보았다. 다양한 심리적, 경제적 압력으로 인구가 증가하는 것을 보았고, 가족과 공동체가 와해되는 것을 지켜보았으며, 자급자족 대신에 외부세계에 대한 경제적 의존이 심화됨에 따라 사람들이 땅으로부터 유리되는 것을 지켜보았다.”

즉, 서구 물질문명과 산업화는 인간에게 ‘탐욕을 창조’하는 시발점이었다는 것이다. 현대화란 미명하에 지역적 다양성과 독립성이 하나의 단일문화와 경제체제로 대체되면서 삶의 질의 심각한 저하만을 초래 하였다는 것이다. 또한, ‘지구촌“이라는 관용과 상호교류처럼 보이는 허상과 ’‘하나의 시장’이란 공동체와 협력이라는 소리는 오히려 경제적 통일과 기술적 획일화로 실제에 있어서는 환경파괴와 공동체의 와해만을 야기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저자는 이러한 서구의 개발사상에 대한 인류사회의 노력으로 “반개발(反開發)”활동의 적극적인 추진과 행동을 설명하고 있다. “소비자 단일문화의 중지”, “기술적 획일성의 반대”를 기반으로 한 생태적, 문화적 다양성의 적극지지를 오늘날 우리 문제에 대한 지속적 해결책으로 제시하고 있다.

 

우리의 파괴력의 규모와 속도가 역사상 이처럼 빠르고 컸던 적이 없다. 우리 인류가 처한 현실은 유례가 없는 것이며 장기적 관점을 잃어버리고 점점 더 전문화되고 눈앞의 것에만 주의를 기울이고 있다. 시간은 우리 편이 아니다. 단순히 환경을 보전하자는 이야기가 아니다. 오만한 인류의 자기통제력 상실이 마지막을 향해 질주하고 있다. 이제 반개발은 물론 수백만년 각인된 범죄적 인간 본성의 유전자를 탈색할 때이다. 오래된 전통사회속에 우리 인류의 미래가 있었다. 헬레나 여사의 ‘에콜로지 및 문화를 위한 국제협회’, 라다크사회의 ‘라다크의 생태적 발전을 위한 그룹’의 성공적 활동에 지지와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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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세계를 돌아보게 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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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 "오래된 미래"는 책에 나오는 대로 현재 우리가 하고 있는 것, 고도의 산업화 사회 에서 먹거리 자체는 유기농을 선호하고, 옷 자체는 순면이나 양모등 천연의 섬유를 선호 하는 그런 것을 극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처음 책을 읽어 가면서는 단순히 한 학자가 라다크로의 여행을 통해서 감상적인 내용으 로 이루어 지지 않았을까 하고 생각을 하였지만 - 물론 그런 내용도 있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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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 "오래된 미래"는 책에 나오는 대로 현재 우리가 하고 있는 것, 고도의 산업화 사회 에서 먹거리 자체는 유기농을 선호하고, 옷 자체는 순면이나 양모등 천연의 섬유를 선호 하는 그런 것을 극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처음 책을 읽어 가면서는 단순히 한 학자가 라다크로의 여행을 통해서 감상적인 내용으 로 이루어 지지 않았을까 하고 생각을 하였지만 - 물론 그런 내용도 있었다 - 라다크라 는 시골 마을을 통해서 서구화되어 가고 있는 우리의 사회를 반대로 보여주고 있었다. 라다크는 우리나라의 예전 농촌사회와 마찬가지로 가족 중심적이고 마을 사람들끼리의 친밀도는 상당히 높다. 단지 차이점이 있었다면 결혼관계의 차이점 정도 - 그 사회의 주 변환경이 상당히 척박함을 보면 상당히 이해가 간다. - 이다. 그래서 이 책은 나에게 또 우리에게 상당히 많은 부분을 시사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그래 서 저자는 개발에 대한 다한으로 반개발이라는 것을 만들고 라다크 체제 않에서의 개발 - 즉 라다크의 사회체제나 문화를 기반으로 하고 서구의 장점들을 받아들이고 또 자체적으 로 좋은 점들을 개발하는 그런 단체도 만들고 서구 사회로 부터도 좋은 반응을 얻어 내 고 있다. 그녀가 라다크에서 보낸 16년이라는 시간은 그곳이 그녀의 조국인 스웨덴에 이어 제 2의 고향이라 할만 할 것이다. 그곳에서 그녀는 아마도 느림의 미학, 그리고 욕심이 없는 삶 에 대해서 상당히 감동받고, 현재의 서구문화가 결국은 사람들을 피폐하게 만들고 말것 이라는 것을 직감하고 이곳 라다크의 사회와 문화에서 강렬한 문화 충격을 받았을 것이 다. 결국 우리는 우리가 잊고 지냈던 느리게 사는 미학에 대해서 다시한번 생각해 보아야 하 고 빠르게 사는 삶은 결국 우리를 물질적으로는 부유하게 만들지 모르지만 그것이 결국 은 우리를 옥죄는 사슬이 되고 말것이라는 것을 그녀는 우리에게 이 책을 빌어 이야기 해 주고 있는 것이다.
b***e 2005.10.16. 신고 공감 2 댓글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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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문명의 지속불가능성을 웅변하는 멋진 책...
"현대문명의 지속불가능성을 웅변하는 멋진 책..." 내용보기
이책의 제목이 모든 것을 말해준다고 할 수 있을정도로 참 제목을 멋지게 지었다. (원제인 ‘Ancient Futures’ 도 멋지고 번역인 ‘오래된 미래’도 참 멋지다) 작은 티벳이라고 불리는 라다크는 티벳의 북쪽에 위치한 작은 나라(?)이다. 정신적, 문화적으로 티벳의 영향권아래 있는 이곳은 현재 공식적으로는 인도의 영역으로 되어 있다. 100% 자급공동체인 라다크의 1000년이 넘은 전
"현대문명의 지속불가능성을 웅변하는 멋진 책..." 내용보기
이책의 제목이 모든 것을 말해준다고 할 수 있을정도로 참 제목을 멋지게 지었다. (원제인 ‘Ancient Futures’ 도 멋지고 번역인 ‘오래된 미래’도 참 멋지다) 작은 티벳이라고 불리는 라다크는 티벳의 북쪽에 위치한 작은 나라(?)이다. 정신적, 문화적으로 티벳의 영향권아래 있는 이곳은 현재 공식적으로는 인도의 영역으로 되어 있다. 100% 자급공동체인 라다크의 1000년이 넘은 전통사회는 결국 자본집중, 에너지집중으로 대표되는 산업화, 개발..그리고 결국 세계화란 미명아래 파괴되고 황폐화 되고 있는 오늘의 자연, 문화, 사람들이 지향해야 할 사회라는 ,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유일한 대안이며 지속가능한 ‘미래’라는 것을 매우 설득력 있게 저자는 말하고 있다. 세계화란 구호아래 합법적인(?) 새로운 식민지 착취 제국주의를 강요하고 있는 서구의 ‘선진국들’의 이중성과 그들 논리의 허구성, 그리고 그들이 들이밀고 있는 시스템이 돌이 킬 수 없는 앤트로피의 누적에 불과하다는 것을 저자는 절규하듯 우리에게 이야기한다. 소외 된 제 3세계와 세계화 시스템의 변방을 겨우 면하고 있는 우리나라같은 나라들이 어떻게 힘을 합쳐 바람직한 미래를 만들어가야 할 것인가에 대한 해답이 이 책에 들어 있다. 그러나 이 책에 공감하는 진한 강도만큼이나 공감하는 방향으로 나아 갈 가능성이 참으로 희박한 현실에 깊은 좌절감이 들기도 한다. 새로운 에너지로 대두되고 있는 수소에너지가 가져올 수도 있는 에너지의 탈중심화와 (탈 집중화) 인터넷으로 인한 물리적 국가, 정부들의 영향력의 대대적인 축소와 다양한 개성들의 출현, 또 점차 소릴 높이고 있는 NGO 들의 영향력 증대가 혹시 이 ‘오래 된 미래’를 향해 나아갈 수 있는 모멘텀을 만들어 줄수도 있지 않을까 기대를 해본다. …아니면 역으로 보이지 않는 제국주의의 실제 소수 엘리트들이 네트웍을 장악하여 세계화의 완성이 단기간에 이루어 질지도 모르겠다. 1984년의 Big Brother 와 같은 가공할 세상이…후자의 가능성이 더 높다는 사실에 씁쓸함으로 마음 한켠이 서늘해온다…. 꼭 읽어야 할 필독서로 추천한다. 2003.12.16
YES마니아 : 골드 j****m 2005.03.01. 신고 공감 2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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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과 서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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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다크는 우리의 예전 전통적인 사회와 닮아 있다. 라다크 정도로 전통이 살아 있던 시대에 살아본 적은 없지만 아버지와 어머니의 고향이 전남의 바다가 인접한 농촌 이였기 때문에 유년기에는 방학을 주로 그곳에서 보냈다. 도시에서만 생활했던 친구들보다는 조금 더 라다크의 문화를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자만심도 가져본다. 라다크에 대해서 소개하는 저자의 논조는 상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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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다크는 우리의 예전 전통적인 사회와 닮아 있다. 라다크 정도로 전통이 살아 있던 시대에 살아본 적은 없지만 아버지와 어머니의 고향이 전남의 바다가 인접한 농촌 이였기 때문에 유년기에는 방학을 주로 그곳에서 보냈다. 도시에서만 생활했던 친구들보다는 조금 더 라다크의 문화를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자만심도 가져본다. 라다크에 대해서 소개하는 저자의 논조는 상당히 인상적이다. 1부의 전통에서 그녀는 “이렇게 멋진 라다크를 여러분께 소개할 수 있어 정말 기쁩니다”라는 그녀의 감정이 문체 속에서 느껴질 정도로 기쁨과 경이로움의 감정을 실었다. 그러나 2부의 라다크의 변화에 대해서 논할 때는 그의 문장 곳곳에서 분노를 느낄 수 있을 정도이다. 그녀는 정말로 라다크를 사랑하고 있다. 저 유명한 영화 JSA의 도입부에도 나왔던 ‘책상위의 인류학자’가 아니였던 것이다. 라다크에서 가장 인상적 이였던 부분은 어린이들과 노인들이 친밀감을 가지고 있다는 점이였다. 모두들 어린이를 하나의 인격체로써 존중을 해주고 어린이들은 5살만 되도 자신보다 더 어린 아동을 돌본다. 노인들도 서구와는 달리 죽는날 까지 계속 활동하며 일을 한다고 한다. 이건 같이 일을 한다는 위치에서 볼 때 어린이와 노인, 그리고 젊은 사람들까지 대등한 관계에 있다고도 볼 수 있겠다. 서구화 된 사회에서는 미성년자는 무조건적으로 부모의 보호를 받아야 한다고 생각하며 인격이 무시돼는 경우가 종종 있으며, 노인의 경우도 힘이없고 사회적으로도 약자층에 속하기 때문에 젊은이들에게 쉽사리 무시당한다. 지하철 노약자석은 언제나 젊은이들이 앉아 있거나 연인들이 부둥켜안고 있는 용도로 쓰이는걸 종종 본다. 한번은 지하철 속에서 두 노인분들께서 “난 절대 노약자석 근처로 얼씬도 안해”라고 자조적으로 말씀하시는 것도 들었다. 이미 우리나라조차도 ‘노약자 보호’같은 정신은 사라진지 오래고 ‘나 아니면 적’이라는 사상이 팽배해 있는 것 같다. 물론 라다크 식의 전통적인 생활이 무조건적으로 좋다는 것은 아니다. 그들의 사고방식이 현대인의 정신세계보다 우위에 있다는 것뿐이다. 그렇다면 현대의 생활에 라다크의 정신세계를 접목시키자는 말이 나올 듯도 한데... 그건 불가능하다고 생각된다. “見物生心”이라는 말이 있듯이 물질이 있으면 마음은 그걸 따라 갈 수밖에 없다. 그래서 그러한 마음을 정화하기 위해 종교에 몸을 의탁하는 사람들이 늘어나는 것 같다. 동양은 서양의 현재를 쫓고, 서양은 동양의 과거를 쫓고 있다. 그것이 어떠한 형태로 결말이 날지는 알 수 없지만 비극적이고 파괴적인 결말이 아닌 유토피아를 건설한다면 더 이상 바랄 것이 없겠다.
i***8 2005.01.15.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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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 된 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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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전통 문화를 보존하고 있던 라다크에 개발 바람이 불면서 단기간에 어떤 변화를 겪는가를 보여주고 있다. 부제인 [라다크로부터 배운다]라는 말의 뜻은, 라다크식 생활 방식에 매료되어 우리는 라다크 사람들처럼 전통적인 사회로 돌아가야 한다는 맹목적인 뜻이 아니었다. 요즈음 우리 사회에서도 많이 말해지는 "난개발"의 문제를 말하고 있는 책이다.평균 수명이 낮고 유아 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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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전통 문화를 보존하고 있던 라다크에 개발 바람이 불면서 단기간에 어떤 변화를 겪는가를 보여주고 있다. 부제인 [라다크로부터 배운다]라는 말의 뜻은, 라다크식 생활 방식에 매료되어 우리는 라다크 사람들처럼 전통적인 사회로 돌아가야 한다는 맹목적인 뜻이 아니었다. 요즈음 우리 사회에서도 많이 말해지는 "난개발"의 문제를 말하고 있는 책이다.평균 수명이 낮고 유아 사망률이 높은 문제는 개선의 여지가 있었다. 그러나, 좀 더 천천히 긍정적인 부분들과 부정적인 부분들에 대한 충분한 토론이 이루어지고, 나에게 다가오는 세상이 어떤 세상인가에 대하여 이해하고 스스로 나에게 필요 한 것을 선택 할 수 있어야했다. 개발 초기의 라다크인들은 서구 사회에 대한 아무런 사전 지식이 없이, 전혀 모르는 상태로 무분별하게 개발에 노출되었다. 그리하여 이런저런 무제를 발생시킨다.  서구에서는 이미 금지 된 화학비료를 마구 뿌려서 농사를 짓는 모습은 제 3세계를 돈벌이의 수단으로만 보는 서구식 사고 방식의 극단적인 측면이다.

위로 부터의 개발을 진행하여 단기간에 경제 성장을 이룬 우리 사회의 모습은 라다크와 많이 닮았다. 짧은 시간에 경제 성장을 이루어 낸 것에 대하여서는 대부분 비판을 하기를 꺼린다. 그 혜택을 누리는 것이 지금의 세대들이기 때문이다. 갑론을박이 있을 수 있겠지만 우리는 이미 성장의 열매와 독을 함께 맛 본 세대이기 때문에 경제개발 자체에 대하여서는 사실상 이견이 많을 수 밖에 없다. 그렇지만, 지금의 우리 사회는 다르다. 웰빙을 넘어서 로하스를 얘기하는 마당에 단기적인 성과를 노리는 "난개발"에 대하여서는 이제 제동을 걸 때가 되었다.

개발이라는 것이 단순히, 산을 깍고 도로를 내는 것이 아니고 우리의 삶 전체와 관련이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오히려 가난하고 대부분이 농촌에 살았던 시대보다 지금의 세상이 훨씬 더 외부의 영향을 많이 받는다. 이미 우리는 더 이상 개인이 아니고, 거대한 경제 그물의 한 부분으로 살고 있기 때문이다.
l********t 2008.06.18.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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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바, 라다크 우리가 잃어버린 가난한 평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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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녹색평론에서 나온 책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쉽지 않은 내용에, 내 수준이 그렇지 뭐..관심없는 환경이나 보니, 내가 뭐 관심 있는 대상이 많기나 한가,,당연히 좋아하지 않게 되었다. 그런데 오래된 미래는 달랐다. 인도 북부 잠무카슈미르 자치주 ''라다크''는 "작은 티베트"라 불리는 곳이기 때문이다. 이미 젖어들 대로 젖어들어 말릴 새도 없이, 상습 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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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녹색평론에서 나온 책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쉽지 않은 내용에, 내 수준이 그렇지 뭐..관심없는 환경이나 보니, 내가 뭐 관심 있는 대상이 많기나 한가,,당연히 좋아하지 않게 되었다. 그런데 오래된 미래는 달랐다. 인도 북부 잠무카슈미르 자치주 ''라다크''는 "작은 티베트"라 불리는 곳이기 때문이다. 이미 젖어들 대로 젖어들어 말릴 새도 없이, 상습 침윤지역에 사는 우리는 절대로 예전의 라다크로 되돌릴 수 없음을 누구보다 우리 자신이 잘 알고 있다. 중간 전까지 글쓴이가 느꼈던 그 설렘처럼, 나도 그랬다. 분명 우리는 그렇게 살았으니까,, 오랜 옛날이 아니라, 산업 붐이 일기 전까지 우리는 그렇게 살았으니까,, 그렇다고 그 시절의 배고픔을 그리워한다거나 하는 말은 아니다. 카리브해 연안에 사는 어부는 고기를 잡는다. 고기를 잡아, 하루 먹거리를 마련하고, 하루치의 생활비를 번다. 남는 시간에는 한가로히 떠다니는 배를 보며, 그의 오두막에서 여가를 즐기고, 그 모습을 본 미국의 사업가가 말한다. "왜 대량으로 잡을 생각을 하지 않는 거죠?, " 그러자 그 어부가 묻는다. "많이 잡아서 뭐 하게요, 난 지금도 먹고 살 수 있어요" 사업가가 말을 잇는다."그러니까 고기를 대량으로 잡아서 팔고, 사업을 하고, 좋은 자동차도 사고, 많은 돈을 벌고 그러는 거죠" 어부는 "그러고 나서는 뭘하는데요?" 사업가 "그런 다음 노년을 이런 곳에 와서 편안히 보내는 거죠" 그 어부는 말한다."그런 거라면 지금도 난 충분히 그렇게 생활하고 있는 걸요, 그냥 이렇게 사는 게 좋아요" 잘 기억나지 않는 토막을 이어다 붙였다. 카리브해가 아니라 태평양이나 인도양일지도 모르고, 미국이 아니라 다른 곳일 지도 모른다. 하지만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많이 버는 일이 아니라는 점이다. 비교에서부터 불행이 시작된다고들 한다. 예전의 라다크 사람들은 모두 다 소규모 공동체 생활을 영위해 가면서 평화로웠을 터였다. 물론 나는 그 책에 써 있는 예전의 라다크 사람들의 생활방식을 다 이해할 수 있다고 말할 수는 없다. 그렇지만 하나는 이해하겠다. 비교가 없어지면, 편안해진다는 점이다. 그러나 여전히 비교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나, 행복은 늘 상대적이라, 절대적인 가치로는 판단할 수 없는 대상인가 행복의 절대가치가 절대적일 수는 없을까,,, 그럼에도 의심을 하기도 한다. 내가 주류에 편입한 소위 10%인생이었어도 이런 생각을 가지고 있을까,, ,그러나 한가지 분명한 점은 욕망은 마르지 않는 샘과 같고, 해수같아서 퍼 내고, 또 새어져 나오며 마셔도 마셔도 목이 마를 뿐, 갈증은 해소되지 않는 사실. 그러니 10%안에 들어 있든, 반대 10%안에 있든, 결국 나를 이끌고 가는 대상은 ''존재''자체라는 생각. 오래된 미래, 오래된 과거에서 미래를 발견할 수 있다는 뜻일까.. 아직도 고향이 좋은 이유는 가만히 후진해 오는 석유차가 있기 때문이다. "어디까지 가세요? 태워다 드릴께요"
d****4 2006.08.23. 신고 공감 1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