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전

리뷰 (13)

한줄평
평점 분포
  • 리뷰 총점10 77%
  • 리뷰 총점8 23%
  • 리뷰 총점6 0%
  • 리뷰 총점4 0%
  • 리뷰 총점2 0%
연령대별 평균 점수
  • 10대 0.0
  • 20대 0.0
  • 30대 0.0
  • 40대 9.0
  • 50대 9.0

포토/동영상 (6)

리뷰 총점 종이책
지식인의 눈에 비친 더 넓고 새로운 세상
"지식인의 눈에 비친 더 넓고 새로운 세상" 내용보기
1930년대라고 하면 아득한 옛날 돌아가신 내  할머니가 열다섯 꽃같던 시절 연지곤지 찍고 자기보다 더 어린 철부지 열세살 꼬마  신랑헌테 시집가던 시절이었다. 형제끼리 애틋하게 서로 아끼며 보듬던 점잖은 이씨 집안에서 태어나 초등학교에 입학했으나 여자가 어딜 점잖치 못하게 남녀 섞인 공간에서 공부를 하냐는 종가 어른들의 불같은 호령으로 초등학교마저 포기해야 했던 할머
"지식인의 눈에 비친 더 넓고 새로운 세상" 내용보기

1930년대라고 하면 아득한 옛날 돌아가신 내  할머니가 열다섯 꽃같던 시절 연지곤지 찍고 자기보다 더 어린 철부지 열세살 꼬마  신랑헌테 시집가던 시절이었다. 형제끼리 애틋하게 서로 아끼며 보듬던 점잖은 이씨 집안에서 태어나 초등학교에 입학했으나 여자가 어딜 점잖치 못하게 남녀 섞인 공간에서 공부를 하냐는 종가 어른들의 불같은 호령으로 초등학교마저 포기해야 했던 할머니는 열다섯 그 곱디 고운 고사리같은 손으로 얼음을 깨서 빨래를 하고 여섯 시누를 포함한 집안 식구들의 밥을  하고 피곤에 쩌든 몸을 밤에도 뉘어보지 못하고 물레를 돌리며 호된 시집살이를 견뎌야 했으나, 소년에서 남자가 되어 가던 신랑은 만주 유학길에서 하라는 공부는 안하고 신여성을 끼고 돌아왔다. 할머니는 할아버지가 양산을 쓰고 양장을 입은 신여성과 함께 팔짱을 끼고 논둑길을 지나 당당하게 본가로 들어오던 순간을 죽을때까지 잊지 못했다. 살다가 살다가 견디다 견디다 두 아들을 데리고 집을 나왔으나 호적에 할아버지의 서자 대여섯을 받아들여야 했고, 할아버지는 벌을 받아 첩을 둔 공무원이라는 점이 문제시되어 직업을 잃고 한량이 되었다. 나는 버린 자식도 내 자식이라듯 내 아빠에게 용돈을 타러 꼬박꼬박 한달에 한번씩 방문하던 할아버지를 죽은 후에도 용서하지 않았지만 할머니는 늘 내게 말했다. 나는 막 대해도 되지만 넌 그러면 안돼. 네 아빠를 낳은 사람이야. 그런 시절이었다. 관습과 윤리가 혼동되고 일제 강점기가 극에 달해 민족적 주체성이  뿌리채 흔들려가고 있던, 그 구체적 모습이 상상이 되지 않는 시절.  그 시절에 자랐던 사람은, 그 시절에 청년을 지냈던 사람은, 조국에 대한 기억이 거의 없는 사람들의 마음 속에는 무엇이 또 있었을까. 정신 깊은 곳 뿌리 밑를 흐르는 정체성의 원천은 무엇이어야 했을까. 나는 일본 사람이야. 우리는 황국 신민이야. 그냥 그렇게 교육받으면서 그렇게 살아가는 일의 저 깊은 바닥에서 쪼그라지던 자존심은 어떻게 했을까. 식민지 시대에 우리 민족의 자존심을 송두리째 짓밟은 나라의 국왕을 향해 절하고 받들어야 했던 지식인들의 머리속에 밀물처럼 들어왔던 서구 문화와 넓은 세상을 보고자 했던 욕구는 어떤 식으로 표출되었을까. 


어떤 시대 어떤 배경의 사람들의 여행에 대한 기록은 실제 그 시대 그 사람들의 세계관을 가장 잘 보여주는 거울이기도 하다. 어떤 사람이 여행에서 무엇을 보는지를 읽는 것은 그 사람을 이해하는 단초가 되기도 한다. 이 책을 읽으면서 동시에 오래전에 읽다 두었던 발칙한 유럽 산책을 함께 읽었다. 두 권 다 나와는 한참 멀리 떨어진 사람들이 쓴 여행기이다. 이 책은 시간적으로 멀지만 빌브라이슨은 공간적으로 멀고 태생적 인종적 차이라는 극복 불가능한 거리가 존재한다. 빌 브라이슨의 글이 혼자서 유럽 대륙의 곳곳을 여행하는 것이라면 이 책은 당시대 최고 엘리트들이 각기 다른 목적을 가지고 다른 관점으로 본 다른 여러가지 세계의 모습들이 단편적으로 기록되어 있다. 그러나 매우 다른 성격의 두 책은 새로운 세계를 접한 이방인으로서 자기가 보고 자라고 소속된 환경과 다른 곳에 대한 기록을 다른 방식으로 남겼다.


나라의 운명은 이미 넘어가버렸지만 지식인들은 그 이전에는 알지 못했던 세계와 접했다. 나라는 빼앗겼을 지언정 대륙 횡단 기차가 하얼삔과 시베리아를 지나 사막을 거쳐 유럽에 닿을 수 있던 꿈같은 기차선로를 남북 분단의 사슬이 끊어 내기 전이었다. 멀고 먼 뱃길을 따라 몇달에 걸쳐 미국을 통해 유럽에 닿은 사람도 있었다. 


그들이 본 것. 그들이 느낀 것. 그들이 바란 것...

그 와중에도 세계 속에 족적을 남긴 위대한 한국인이 있었다. 마라톤 금메달리스트 손기정과 최초의 한류스타 무용수 최승희가 남긴 글은 당시 조선이 낳은 세계 스타가 일본이라는 간판을 달고 활동하면서 부딪혀야 했던 배일과 친일이라는 선택지에서의 갈등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따지고 보면 그들이 태어났을 때는 이미 조선은 사라지고 없었을 터 황국신민으로서 교육받고 자란 세대이기에 민족에 대한 자부심이나 정체성을 기대하기 어려웠을 세대였기에 일제 치하에서도 민족을 빼앗긴 설움보다는 예술을 향한 개인의 열정에 고스란히 몸과 마음을 헌신할 수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최초의 여성 서양화가 나혜석과 경제학사로 스웨덴 황실에서 일을하기까지 했던 또다른 여성 지식인 최영희의 여행기와 그들의 삶이 마음 아팠다.  아직 그들에게 드리울 여성으로서의 기구한 운명을 예측도 하지 못한 채 시대를 앞선 당찬 여성으로서 자신의 목소리를 내고 조선 여성이 처한 사회적 지위와 위치에 대해 도전하고 변화를 갈구했던 두 사람. 그러나 몇백년을 흘러왔던 유교적 관습이 남성과 동일 비율로 존재하는 여성을 어떤 식으로 취급해왔는지 우리는 근대화 이후 백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우리의 문화 사회와 생활 전반에 걸쳐 곳곳에 남아있는 부당한 편견과 차별을 통해 똑똑히 알고 있지 않은가.


1930년대라고 하면 우리가 생각하는 것처럼 서구 세계가 처음보는 동물원 원숭이처럼 마냥 신기하기만 한 것은 아니었던가 보다. 무엇보다도 대륙 횡단 철도가 있어 우리나라를 섬처럼 고립시키지 않았고, 배를 통한 여행이 미국까지 약 이십일 걸리는 걸렸으며 책에 소개된 지식인들이 미국과 유럽 아시아 각국에 도착했을 땐 이미 한국 유학생들과 기업가들 이민자들이 그들을 위해 가이드도 해줄 수 있으리만큼 작지만 나름대로의 한인 커뮤니티가 곳곳에 존재했다는 사실 또한 현재를 살아가는 나에게는 신기하게 읽히는 사실들이었다. 한국전쟁 후 미국의 원조와 함께 1950년대 1960년대 미국에 편중된 이민과 유학 역사를 막연한 출발점으로 알았던 내게 유럽과 특히 인도 필리핀과의 활발한 교류와 여행 및 답사와 그곳으로부터 신생독립국의 표본을 얻으려했던 지도자들의 고군분투가 눈물겨웠다. 


(파블01_01)

g******1 2015.01.07. 신고 공감 8 댓글 13
리뷰 총점 종이책
8,90여년 전 식민지 조선 에리뜨의 세계기행-경성 에리뜨의 만국유람기
"8,90여년 전 식민지 조선 에리뜨의 세계기행-경성 에리뜨의 만국유람기" 내용보기
'경성 에리뜨의 만국 유람기'라는 제목에서 시대감이 물씬 배어나왔다. 지금이야 널리고 널린 게 해외여행기지만 식민치하였던 1920,30년대에 해외 여행 기행문은 상당한 희소성을 지녔음은 두말할 나위가 없을 것이다.     이 책에 기행문이 실려있는 필자를 보면  변호사 허현,무용가 최승희, 화가 나혜석, 교육가 박인덕, 의학도 정석태, 경제학자 최영숙, 마라토너 손기정,
"8,90여년 전 식민지 조선 에리뜨의 세계기행-경성 에리뜨의 만국유람기" 내용보기

'경성 에리뜨의 만국 유람기'라는 제목에서 시대감이 물씬 배어나왔다. 지금이야 널리고 널린 게 해외여행기지만 식민치하였던 1920,30년대에 해외 여행 기행문은 상당한 희소성을 지녔음은 두말할 나위가 없을 것이다.

 

 

이 책에 기행문이 실려있는 필자를 보면  변호사 허현,무용가 최승희, 화가 나혜석, 교육가 박인덕, 의학도 정석태, 경제학자 최영숙, 마라토너 손기정, 유학생 오영석, 안창호 등 제목처럼 당시 '에리뜨'라고 할 수 있는 인물들이었다. 이들은 기행문 속에서 자신의 사회적 위치와  뚜렷하게 드러내고 있는데, 대부분 아직도 피식민지 국민으로의 인식을 뼈저리게 느끼고 있다는 것이 글 속에서 배어나왔다.

 그리고 여성들의 기행문이 많았던 것은 의외였는데, 이들은 또 봉건사회 여성으로서의 질곡을 느끼며 여행지 여성 특히 서구여성들의 삶과 행동을 유심히 살피고 있었다. 또 공연을 위해 해외로 나온 최승희 같은 예술가들나 화가 나혜석같은 예술가에게는 여행은 예술가로서의 안목을 넓혀주는 기회였고, 새로운 예술적 경향과 감성을 받아들이는 통로로 작용하고 있다는 것이  한눈에 보였다.또 조선여성들의 권리와 교육에 대해 인식하고 있다는 것도 드러나고 있다.

 

제일 처음에 실려있는 글의 필자, 변호사 허현은 이 책을 통해서 처음 알게 된 인물이었는데, 그는 독립운동가의 변호를 맡기도 하고 식민지하 에리뜨답게 좌익운동에 앞장서고 투철한 항일의식의 소유자였다. 역시 좌익활동을 하고 있었던 딸과 함께 미국,유럽 등을 둘러 본 그의 여행기는 그가 투옥되면서 중단이 됐는데 그가 여행을 떠난 목적은 서구  헐리우드 스타에 대한 소감이 꽤나 인상에 남았다. 클라라 보우나 더글라스 페어뱅크스같은 무성영화시대의 스타이야기라니. 의외였고, 일본의 식민지였음에도 미국의 대중문화가 전세계적인 주류 문화로 부상하고 있었음을 실감할 수 있었다.

그는 해외 교포단체를 방문하는가하면 당시 미국의 쿨리지 대통령도 만나고, 브뤼셀에서 열린 '세계 약소민족대회'에도 참가했다.  1년동안 12개국을 방문하며 정치적 활동도 함께 했다.

 

그리고 앞서도 말했지만 여성들의 기행에는 조선에서 상류 혹은 최고의 지식인이라 그런지 여성으로서의 자의식이 두드러져 보였다. 실제로 서구 여성들의 삶에서 조선 여인에게 씌여져있는 봉건적 굴레를 걱정하는 심정을 감추지 못하고 있었다.

나혜석은 미술관에서 그림을 감상하는 한편, 여성 참정권론자로 만났고, 주체로서의 여성에 대해 눈을 떴다. 기독교 활동가 교육자, 여성운동가였던 박인덕도 두번의 해외 방문을 통해 조선 여인의 여성해방을 부르짖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박인덕은 해외방문지에서도 능력을 인정받는 여류로 성장하지만,

공교롭게도 이 책에 등장한 나혜석, 최영숙과 함께 사생활이 구설수에 오르면서,이혼하거나 활동에 발목이 잡혔다. 그녀들이 해외에서 호흡했던 여성의 인권이란 조선에서는 여전히 꿈같은 이야기였던 것이다.

 

이 책에서는 당시 해외여행 기행문이 등장할 수 있었던 여러 배경들과 시대상을 담은 의미들을 담고 있었다. 개인적인 의미에서는 새로운 문물을 접하고, 학문이나 기술을 배우는 기회를 갖는 것이었고, 새로운 사상을 접하면서 개인의 정체성을 확인하고 자신을 확장하는 여행이라 할 수 있다. 타인의 시선에서 벗어난 해외, 익숙하지 않고 낯선 타지에서 새로운 경험과 가치를 접하게 되는 것은 그만큼 새로운 세계관을 받아들이고, 정체성을 재확인할 수 있는 길이기도 했다.
그리고 당시 해외여행을 할 수 있는 기회가 워낙 드물었던만큼 바깥 세상에 대한 정보와 함께 식민지 조선 사회에도 신선한 자극을 불어넣는데 이들의 여행이나 기행문은  일조를 했다.

 

 

'경성 에리뜨의 만국유람기'를 읽으면서 격세지감이 느껴졌다.불과 8,90 여년전의 일인데..

조선 최고의 에리뜨들이었음에도 우물 안 개구리였고, 미국이나 영국, 프랑스 서구 이외 필리핀이나 인도같이 식민지 경험을 공유한 나라 기행문도 기억에 남았다. 기행문에 실린 나라들이 생각보다 다양했고, 우리나라 교육열에 걸맞게 유학생들도 늘어났다.  

대양을 항해하는 도중 배에서 숨진 사람 수장하는 방식은 꽤 충격적이었는데, 지금은 사라졌겠지.

 

 

1920년,30년대를 살았던 조선 지식인들 그 여정을 더듬어가다보니 그들의 심정이 어땠을지 생각해보게 됐다.

이혼 뒤 다시 파리로 가고자 했던 그녀의 희망은 좌절되고 말았지만, 파리를 거닐며, 나혜석이 느꼈을 그 해방감이 어떤 것일지 그려졌다. 유럽과 미국에서 공연하며 반일로도 친일로도 보이지 않게 그 어느쪽에도 치우지지 않게 처신해야했던 최승희의 고심도 읽혀졌다.  

남미의 리우항, 프랑스의 마르세유항 방문기를 쓴 마도로스 홍운봉, 그의 눈에는 항구란 늘  분방하고, 성이 넘쳐나는 곳으로 비춰졌을 것이다.

 

지금은 휴가삼아 해외로 떠나는 시대가 됐지만,이 당시에는 해외여행은 선택받은 소수만이 누릴 수 있었던 기회였다. 그런만큼 떠나는 이들이 결연해보였고, 하나라도 더 눈에 담아오려는 의지가 느껴졌다. 귀국후 이들의 삶은 해외여행 전과는 분명 달라졌을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세상 보는 눈을 텄고, 생각이 달라진 사람은 자신의 운명을 바꾸게 된다. 더 나아가 사회에 새로운 공기를 불어넣고 변화를 꿈꾸는 주역이 되는 것이다.

 

 

 

e****0 2015.01.04. 신고 공감 5 댓글 10
리뷰 총점 종이책
문화와 예술을 통해 보편성을 향유하는 세계인-「경성 에리뜨의 만국 유람기」
"문화와 예술을 통해 보편성을 향유하는 세계인-「경성 에리뜨의 만국 유람기」" 내용보기
'비서구, 식민지 조선'이라는 '네이션'의 구속을 벗어던지고 문화, 예술 그 자체의 보편성으로 세계를 사유하는 것, 여기에는 서구 중심주의가 만든 억압과 위계질서를 벗어나 문화와 예술을 통해 세계를 향유하는 개인만이 있을 뿐이다. 이 책의 3장에 실은 나혜석의 경우, 각국을 여행 하는 그녀의 시각은 세계 속의 다양한 문화를 그들 간의 차이와 다름으로 인식하고 있었다. 예
"문화와 예술을 통해 보편성을 향유하는 세계인-「경성 에리뜨의 만국 유람기」" 내용보기

'비서구, 식민지 조선'이라는 '네이션'의 구속을 벗어던지고 문화, 예술 그 자체의 보편성으로

세계를 사유하는 것, 여기에는 서구 중심주의가 만든 억압과 위계질서를 벗어나 문화와 예술을

통해 세계를 향유하는 개인만이 있을 뿐이다. 이 책의 3장에 실은 나혜석의 경우, 각국을 여행

하는 그녀의 시각은 세계 속의 다양한 문화를 그들 간의 차이와 다름으로 인식하고 있었다.

예컨대 "스위스의 경색이 예쁘고 작다 하면, 미국 자연 경색은 크고 잘생겼다"는 것처럼 세계와

문화는 어느 것이 더 좋다고 경계 지을 수 있는 대상이 아니라 다양한 것을 비교한 산물인 것이다.

                                                                                                                                         p. 402

 

경성 에리뜨의 만국 유람기는 1930년대의 대중잡지인 <삼천리>에 실린 여행기나 기행문들을

저자가 추려 실은 책 모음집이다.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비운의 서양 화가 나혜석부터 한국인이

가장 사랑하는 마라토너 손기정,  정치인의 표본인 안창호, 일반인에게 잘 알려져 있지 않은

의학도 정석태나 인권 변호사였던 허헌의 글까지 다양한 이들의 글을 추리고 다듬어 실은 책이다.

특이할 점은 마지막 9장에는 조선사람의 만국 유람기도 간추려 실려 있다는 점일 것이다.

 

1930년대에 세계여행을 한다는 것은 엄청난 특권과 혜택을 입은 이들이었으리라 짐작할 수 있다.

당시의 월급 기준으로 기차로 파리를 여행할 경우 1천원이었다고 하니 당시 여점원 월급이

25원임을 감안하면 누구나 갈 수 있는 여행은 절대 아니었기에 삼천리에 실린 여행기나 기행

문은 단순히 한 사람의 여행에서 그치지 않고 다른 세계로의 탐험과 그 시대의 흐름을 알 수

있는 유일한 통로였을 것이다. 책은 참으로 재미있고 유쾌하다.  "대중의 일상과 유행, 새로운

문물과 풍속에 대한 기사"가 문화, 교양의 영역으로 자리잡은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결과이다.

 

모스크바에서 볼가로 내려갈 때에는 도시 중앙을 관류하는 모스크바  강에서 배를 저어 볼가

강의 본류로 나올 수도 있지만 대부분 기차를 타고 고리키 시로 나옵니다. 고리키 시는 문호

막심고리키의 문단 생활 40년 기념제가 행해진 지난해, 그의 공적을 후세에 알리기 위해

이 거리를 고리키 시라고 개칭한 것입니다. 고리키 시는 모스크바에서 육로 440킬로미터,

급행을 타고 밤 7시에 모스크바를 떠나면 이튿날 아침 9시에 여기에 도착합니다. 이 도시

인구는 35만 명, 지금은 자동차 공장이 빽빽하게 늘어서 연간 10만 대를 생산한다고 합니다.

사실상 이 도시는 막심 고리키의 고향입니다. 도시 동쪽의 언덕진 곳이 그의 집이고, 소년

시절 놀던 터전이며, 그의 작품 밑바닥에서를 체험한 주막집, 심부름꾼이 되어 일하던 구둣

방들이 흩어져 있습니다. 레닌의 아버지가 교편을 잡고 있었다던 중학교는 지금 대학으로

승격되어 있습니다. 어쨌든 깊은 흥미를 끄는 곳이기에 우리 일행은 이곳에 내려 하루를

묵고 다시 떠났습니다.

360~361Page

*고리키 시(볼가강과 오카 강의 합류점 부근의 저지대로 현재 지명은 니주니노브고로드)이다.

 

이 구절만 봐도 단순한 여행기가 아닌 역사적, 문화적, 예술적, 문학적 글의 산물임을 독자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지금 읽어도 전혀 촌스럽지 않고 유려하고 세련된 문체를 자랑한다.

이 책의 출간 의도가 궁금했다. 다 읽고 나니 저자의 서문이 뜻하는 바를 알 것 같았다.

"이들에게 여행은 각기 다른 의미로 삶의 중요한 결정점이 되었던 것이다. 그 경험은 조선의

정치적 기획을 모색하는 계기가 되기도 했고, 개인의 정체성을 발견하기도" 했으며 놀랍게도

목숨을 잃게 되더라도 " 자신의 삶과 운명에 굴복하지 않았던 그들의 열정"을 오롯이 만날

수 있다는 점이다. 조선의 지식인들이 걸었던 근대의 길을 한 번쯤은 탐색해 볼 필요가 있다.

 

k******r 2015.01.24. 신고 공감 4 댓글 4
리뷰 총점 종이책
경성에리뜨의 만국 유람기
"경성에리뜨의 만국 유람기" 내용보기
기행문이라는게 즐겁게 읽을 수 있는 글인데 [경성 에리뜨]는 읽는 동안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든다. 시대가 그렇기 때문이다. 백여년 전 식민지 조선의 젊은이들이 미국으로, 서양으로 여행을 떠나고 유학을 갔다. 지금처럼 일주일정도 혹은 몇 달 정도 베낭여행하는 것이 아니다. 미국가려면 부산을 통해서 일본까지 건너간 다음, 요코하마에서 출발하는 태평양횡단 여객선을 타고 하와이
"경성에리뜨의 만국 유람기" 내용보기

기행문이라는게 즐겁게 읽을 수 있는 글인데 [경성 에리뜨]는 읽는 동안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든다. 시대가 그렇기 때문이다. 


백여년 전 식민지 조선의 젊은이들이 미국으로, 서양으로 여행을 떠나고 유학을 갔다. 지금처럼 일주일정도 혹은 몇 달 정도 베낭여행하는 것이 아니다. 미국가려면 부산을 통해서 일본까지 건너간 다음, 요코하마에서 출발하는 태평양횡단 여객선을 타고 하와이까지 가서 샌프란시스코로 들어가는 이동에만 거의 이십일 넘게 걸리는 여행이다. 그러자니 한번 나가면 몇 달은 기본이고 몇 년을 이국에서 보내야했다. 어떻게 생각하면 진정한 여행이고 견문을 넓히는 계기가 되었다. 그들은 식민지 조선의 젊은이들이라는 현실때문에 배일이라는 소문에 해명을 해야했고 친일이라는 소문에 조심해야했다. 해외에서 항상 조선을 생각하고 그들과 자신들의 격차를 느끼고 부러워했다. 조선에서 그들에게 가지는 기대에 부응하고자 노력도 했다. 하지만 조선의 현실과 외국에서 마주친 꿈같은 현실이 달라 방황하기도 했다. 식민지 조선의 미래를 위해 해외로 나간사람, 자신의 미래만을 위해 나간 사람, 해외에서 가졌던 꿈에서 깨어 나지 못해 방황한 사람 누구 하나 부럽지 않고 안타깝지 않은 사람이 없다. 그 중에서 두 사람 나혜석과 최영숙은 조만간 소설이나 영화로 나올것 같다. 실제 인생이 소설이나 영화보다 극적이다.


백년 전 기행문에서 경성에리뜨의 삶을 보았다.


세계여행을 계기로 나혜석은 여성으로서 정채성과 인생관을 발견했으며 스스로를 어머니, 연인, 아내,예술가, 지식인으로  모든 역할에 위치시키고자 했으나, 어디에도 구속되지 않으려는 코스모폴리탄적 감수성은 조선땅에 뿌리 내릴수 없었다. 나혜석이 경험한 해방감과 정체성의 발견은 아직 조선사회에서는 때 이른 것이었다.



조선최초의 여성 경제학사 최영숙은 조선에 그를 받아줄 일자리가 없어 콩나물가게를 하다 임신중에 영양실조로 죽었다. 








YES마니아 : 골드 l****0 2015.01.03. 신고 공감 2 댓글 4
리뷰 총점 종이책
경성 엘리트의 만국유람기
"경성 엘리트의 만국유람기" 내용보기
예전에 글항아리에서 나온 <조선사람의 세계여행>이라는 책을 재미있게 읽었는데, 그 책이랑 비교, 대조했을 때 그 책엔 없고 이 책만 가진 장점은 두 가지다. 1) 시기를 한정했다. 2) 한 사람이 쓴(엮은) 글이다. 알마에서 나온 책도 좋긴 한데 조선 초기부터 방대한 시기를 다루고, 각 글의 저자가 다르다보니 통일성이나 일관성 부분이 결여되어 아쉬웠는데, 그에 비해 이 책은
"경성 엘리트의 만국유람기" 내용보기

예전에 글항아리에서 나온 <조선사람의 세계여행>이라는 책을 재미있게 읽었는데, 그 책이랑 비교, 대조했을 때 그 책엔 없고 이 책만 가진 장점은 두 가지다.

1) 시기를 한정했다.

2) 한 사람이 쓴(엮은) 글이다.


알마에서 나온 책도 좋긴 한데 조선 초기부터 방대한 시기를 다루고, 각 글의 저자가 다르다보니 통일성이나 일관성 부분이 결여되어 아쉬웠는데, 그에 비해 이 책은 식민지 시대 조선인들에게 가장 인기 있었던 대중잡지 ≪삼천리≫에 실린 세계여행 기행문을 엮었고, 시기도 1930년대로 한정했다.

 

전문이 다 실린 것은 아니지만 엮은이가 주의깊게 고른 1차 자료(저작물)들을 통해 연구자의 개입을 최소화하면서 1930년대를 살았던 지식인들 개개인과 일제 강점기라는 시대 상황을 가까이 접할 수 있다. 

대중잡지로서 ≪삼천리≫가 가지고 있던 고유한 특성과, 글들에서 직간접적으로 드러나는 지식인들의 생각과 고민, 시대의 분위기를 현장감 있게 읽을 수 있다는 게 1차 자료를 엮은 이런 책만이 가지는 매력이다.

그 자체로 소위 지식인이라고 할 수 있었던 경성 엘리트들의 역사관이나 세계관, 가치관들을 알 수 있는 귀한 자료인 셈이다.

 

각 챕터마다 마지막으로 엮은이의 '해제'가 들어가 있어(글쓴이에 대한 짧은 소개와 이 책에 실린 글에 대한 간략한 설명한 평가, 당시 시대 분위기를 서술하고 있다) 일제강점기와 그 시대를 살았던 사람들을 읽을 수 있는 일관된 시각을 제시하는 것도 알차다.

 

 

c*****g 2015.03.21. 신고 공감 2 댓글 1
리뷰 총점 종이책
경성 에리뜨의 만국 유람기
"경성 에리뜨의 만국 유람기" 내용보기
오늘날 해외여행은 (조금 준비가 까다롭지만)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갈 수 있는' 선택의 범주 에 들어간다.     그러나 과거시대 즉 개국 후의 조선사람들에게 있어서, 해외를 떠난다는 것은 어지간한 각오가 아니면 할 수 없는 난이도 높은 것이였으며, 그 증거로 이 책의 내용을 보면, 당시 시대에 기록된 '기행문'은 그 시대의 대중잡지나, 언론에 개시 될 정도로 큰 인기를 끈
"경성 에리뜨의 만국 유람기" 내용보기

오늘날 해외여행은 (조금 준비가 까다롭지만)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갈 수 있는' 선택의 범주

에 들어간다.     그러나 과거시대 즉 개국 후의 조선사람들에게 있어서, 해외를 떠난다는 것은

어지간한 각오가 아니면 할 수 없는 난이도 높은 것이였으며, 그 증거로 이 책의 내용을 보면,

당시 시대에 기록된 '기행문'은 그 시대의 대중잡지나, 언론에 개시 될 정도로 큰 인기를 끈

'새로운 소식'으로서 대우 받았다는 것을 알 수가 있다.   

 

과거 '조선'은 미국과 일본 같은 외국의 간섭으로, 겨우 쇄국을 버리고, 세상에 대해서 알아가

던 중이였다.   그러나 그 도중 조선은 일본에게 강제로 병합되고, 그 현실은 결국 외국을 방문

하려는 많은 사람들의 목적과, 소감에 많은 영향을 미친다.    실제로 이 책에 소개된 많은 사람

들은 영국, 미국, 스위스, 러시아 등과 같은 유럽(서방국)의 모습과 그 번영을 보면서, 나라를

잃어버린 현실에 대한 설움을 드러내거나, "우리들도 이들처럼 근대화를 이루어야 한다" 라는

나름대로의 정치, 경제, 국력에 대한 동경과 목표를 자주 표현하고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

내가 신기하게 생각하였던 것은 그 나라사랑이 개인적으로 외국을 방문한 사람이나, 국비나 나

라를 대표하는 신분으로 외국을 방문한 사람이나, 그 모두에게 강력한 영향을 미쳤다는 점이다.

 

그 누군가가 말했던가? "조국을 떠나면 그 누구나 애국자가 된다" 라고 말이다.   역시 그 말을

증명하듯이, 이 수 많은 기행문의 기록자들은, 모두 잃어버린 나라와 민족을 생각한다.   앞서

말한 스스로 여행(관광)을 떠난 사람부터, 베를린 올림픽에 참가한 손기정 선수 같은 공인에 이

르기까지... 그들은 모두 당시 조선인으로서의, 뜨거운 가슴과 애국심에 젖었다.   게다가 그들

모두 고등교육을 받은 사람으로서, 현실을 직시하고, 문제점을 찾아내는 나름대로의 지적인 시

선도 함께 지니고 있었다.

 

최초의 서양화 화가, 국제무용수, 문화학자, 경제학자, 학생 등등... 과연 그 에리뜨(엘리트) 들

의 눈으로 본 당시의 세상은 과연 어떠한 것이였을까?    분명 이는 오늘날의 맘 편한 여행

자들에게는 없었던 '절박함'이 묻어 있었을 것이다.    '꿈과 이상' 이처럼 책의 띠지에 적

혀 있는 그 가치까지 보고, 느끼고, 추구해야 했을 것이 분명하기 때문에...

q*******a 2014.12.28. 신고 공감 2 댓글 1
리뷰 총점 종이책
[서평] 경성 엘리트의 만국 유람기
"[서평] 경성 엘리트의 만국 유람기" 내용보기
1930년대에 본격적인 여행의 시대에 접어들만큼 관광문화의 발달과 여행객의 급증으로 해외에 나가 문물을 익히는 층이 늘어났다고 한다. 서문에서 한 예로 기차를 타고 파리로 갈 경우 1등석이 1천원, 2등석이 730원, 3등석이 320원이였다고 하며, 배를 타고 샌프란시스코로 갈 경우에는 1등석이 330원, 2등석이 210원, 3등석이 110원이였다고 한다. 그 당시 받은 월급은 보면 대강 감이
"[서평] 경성 엘리트의 만국 유람기" 내용보기



1930년대에 본격적인 여행의 시대에 접어들만큼 관광문화의 발달과 여행객의 급증으로 해외에 나가 문물을 익히는 층이 늘어났다고 한다. 서문에서 한 예로 기차를 타고 파리로 갈 경우 1등석이 1천원, 2등석이 730원, 3등석이 320원이였다고 하며, 배를 타고 샌프란시스코로 갈 경우에는 1등석이 330원, 2등석이 210원, 3등석이 110원이였다고 한다. 그 당시 받은 월급은 보면 대강 감이 잡힐텐데 신문기자 월급이 70원이었고, 여점원 월급 25원, 문인논객의 원고료가 120~350원일만큼 격차가 컸다. <삼천리>라는 대중잡지에서는 당시 엘리트들의 기행문을 담은 글을 연재하고 있었는데 이 책은 연재된 기행문에서 글을 발췌하여 현대적인 어법과 문장으로 변환시킨 것이다. 그래서 간혹 옛스러운 표현을 만날 수도 있지만 그때 외국으로 나가 새로운 문화를 보고 느꼈을 엘리트들의 생각을 느껴볼 수 있는 책이다.


일제에 식민지배를 받고 있었던 상황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이 책에 소개된 인물들은 조국의 현실을 안타까워하면서 자신이 가진 재능을 통해 그 아픔을 함께 나눠가지려고 했다. 지금이야 마음만 먹으면 여권발급을 통해 해외로 나가는 것은 그리 복잡한 절차가 필요하거나 어려운 일은 아니다. 하다못해 가까운 일본도 배를 통해 당일치기로 갔다올 수 있는 세상이다. 1930년대는 지금과도 모든 것이 달랐을 것이다. 기본적으로 이동거리에 있어서 소요되는 시간이 길었고, 그들이 갖고 있는 지식도 어느 정도 한계를 갖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에게는 조국을 해방시켜야겠다는 절박함이 있었고 만국 유람기가 단순히 해외여행의 행운을 누리는 호사가 아니라 일종의 사명감을 갖고 누구보다 치열하고 적극적으로 설사 목숨을 잃는다해도 가야할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허헌, 최승희, 나혜석, 박인덕, 정석태, 최영숙, 손기정, 오영섭, 안창호 외 그들이 남긴 기행문은 이제 후대에 와서 책으로 만나볼 수 있음은 행운인 듯 싶다. 그때를 살아보지 않으면 실감하기 어려운데 근현대사의 소중한 기록이 <삼천리>라는 대중잡지에 실린 기행문을 통해 남겨졌기 때문에 소위 엘리트라고 지칭하는 이들의 생각을 들여다볼 수 있는 것이다. 지금보다 더 모든 것이 생소했을 듯 싶다. 어디서든 쉽게 해외사진을 볼 수 있었던 것도 아니고 단지 얘기로만 드는 것이 전부였을텐데 그들이 평정심을 유지하고 현실을 직시하여 동등하게 바라봤다는 점은 실로 대단하지 않을 수 없다. 강대국의 남긴 문화에 기죽지도 않았고, 그들의 문화를 존중했으며 해외로 떠난 여행 이후에는 이들의 삶에 큰 영향을 주었다는 점이다. 근현대사의 소중한 기록을 담은 이 책은 <미주의 인상>에 이은 현실문학 - 동아시아 근대와 역사 총서 두번째 책으로 앞으로 발간될 3, 4권도 기대가 되는 시리즈다. 

c******d 2015.01.10. 신고 공감 1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008) 경성 엘리트의 만국 유람기, 식민지 지식인의 눈으로 바라본 세계
"008) 경성 엘리트의 만국 유람기, 식민지 지식인의 눈으로 바라본 세계" 내용보기
일제강점기, 14년 동안 발간되며 대중의 앎과 흥미를 확장시키고 충족시키기 위해 노력했던 대중잡지가 있었다고 한다. 바로 <삼천리>이다. 제목도 독특한, 물론 지금의 표기로는 사용할 수 없기는 하지만, <경성 엘리트의 만국 유람기>는 그 잡지에 실렸던 기행문들을 모아 만든 책이다. ‘동아시아 근대와 여행 총서’의 두 번째 책이기도 하다. 첫번째 <미주의 인상>도 너무
"008) 경성 엘리트의 만국 유람기, 식민지 지식인의 눈으로 바라본 세계" 내용보기

제강점기, 14년 동안 발간되며 대중의 앎과 흥미를 확장시키고 충족시키기 위해 노력했던 대중잡지가 있었다고 한다. 바로삼천리이다. 제목도 독특한, 물론 지금의 표기로는 사용할 수 없기는 하지만, <경성 엘리트의 만국 유람기는 그 잡지에 실렸던 기행문들을 모아 만든 책이다. ‘동아시아 근대와 여행 총서의 두 번째 책이기도 하다. 첫번째미주의 인상도 너무 마음에 들었는데, 앞으로 2권의 책이 더 나온다니 기대가 크다.

안타까웠던 것은, 그들은 식민지라는 한계에 부딪칠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세계적으로 명성을 날렸다는 무용가 이승희만 해도 그러하다. 그녀는 국제무용의 무대에 서면서, 자신의 춤을 다른 시각으로 바라볼 수 있는 기회를 얻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배일과 친일이라는 굴레에서 끊임없이 고민했던 흔적이 느껴졌다. 그것은 손기정의 기행문에서도 느낄 수 있었다. 그 시대 가장 사랑 받았다던 두 사람이건만, 그들은 자신의 재능을 펼침에 있어서 자유로울 수는 없었던 거 같다.

인상적이었던 것은 여성지식인의 한계에 대한 것이다. 세계대전 이후 경제적으로 파산했던 독일의 재건을 보며, 그들의 삶을 관찰하고 무엇을 배워야 할지 치열하게 고민하고 우리 농촌을 일으켜 민족 전체가 여유 있게 살아가길 바랬던 박인덕이지만, 그녀는 막상 자신의 뜻을 펼치지는 못했다. 도리어 언론에 그녀의 사생활만 부각되었고, 결국 순회강연을 위해 미국으로 떠나던 그녀는 이제 이 땅을 떠나는 하나의 실향자라는 표현으로 자신의 심경을 대신하기도 했다. 조선 최초의 유학파 경제학사이자 5개 국어에 능통했던 최영숙 역시 조선으로 돌아와 콩나물 장사를 하다 궁핍한 생활에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나고 말았으니, 그 시대 여성 지식인으로서의 삶이라는 것이 참 만만치 않았음을 느낄 수 있었다.  

여러 사람이 여러 나라를 다니며 쓴 기행문을 모아놓았고, 또 그들이 타고 간 배나 도착한 항구의 풍경 같은 것을 같이 실어놔서 그 시대 속으로 나 역시 여행을 떠나는 기분이었다. 필리핀 유학생인 오영섭은 살을 드러내고 화려하게 꾸미는 여성의 옷차림에 불편한 심경을 표하는 걸 보면 역시 조선남자다 싶기도 했다. 반면 안창호 역시 필리핀을 다녀와 글을 남겼었는데, 그의 글에서는 온통 자체제도가 확립된 필리핀의 제도와 필리핀 원주민의 삶에 대한 관찰만 있는 걸 보면 나라의 주인은 나라를 지키는 자라던 그의 신념을 짧은 여행기에서도 느낄 수 있었다.

일본사를 공부하면서, 1860년에 태평양을 횡단한 간린마루를 타고 외교교섭과 시찰을 떠난 사실을 보며, 놀라움을 금치 못했었다. 그런데 우리도 시기적으로는 조금 늦었지만, 세계와 조선을 바라볼 수 있는 지식인들이 등장했다는 것이 놀라웠다. 안에서만 보면 자신이 잘 보이지 않는다. 다른 세상을 만났을 때, 즉 타자를 만났을 때 자신을 좀 더 명확하게 볼 수 있기에 식민지 지식인의 눈으로 바라본 기행문은 그 당시 사회에도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으리라고 짐작할 수 있다.

 

 

a******e 2015.01.08. 신고 공감 1 댓글 1
리뷰 총점 종이책
[역사] 경성 에리뜨의 만국 유람기: 동아시아 근대와 여행 총서02
"[역사] 경성 에리뜨의 만국 유람기: 동아시아 근대와 여행 총서02" 내용보기
"최근에 KBS 클래식 FM "당신의 밤과 음악- 예술가의 여행법"에서 서양화가 나혜석이 이탈리아를 여행하면서 보고 듣고 느낀 점, 특히 그림에 대한 감상을 글로 남긴 이야기를 읽어주었어요. 나혜석이 살았던 근대와 지금의 베네치아 여행 풍경이 그리 다르지 않다는 사실이 신기하면서도, 지금보다 세계에 대한 정보를 훨씬 제한적으로 접했을 그 시절에 남들보다 빨리 외국 여
"[역사] 경성 에리뜨의 만국 유람기: 동아시아 근대와 여행 총서02" 내용보기

 


"최근에 KBS 클래식 FM "당신의 밤과 음악- 예술가의 여행법"에서 서양화가 나혜석이 이탈리아를 여행하면서 보고 듣고 느낀 점, 특히 그림에 대한 감상을 글로 남긴 이야기를 읽어주었어요. 나혜석이 살았던 근대와 지금의 베네치아 여행 풍경이 그리 다르지 않다는 사실이 신기하면서도, 지금보다 세계에 대한 정보를 훨씬 제한적으로 접했을 그 시절에 남들보다 빨리 외국 여행을 하면서 그가 얼마나 갈급한 마음으로 서양 문물을 보고 들었을지 상상이 되었어요. '화가'인 나혜석이 자신의 전문 분야인 명화들을 보고 느낀 점을 공유할 수 있어서 재미있었고요.
대학교 교양 강의에서 조한욱 교수님께 "고양이 대학살" 류의 미시사를 처음 접한 후로 거시사가 아닌 미시사 열풍이 불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어요. 2000년대 중반부터 후반까지 (2005년 당시 저는 대학교 4학년, 임고 준비하고 있었음) 종종 교육학책 혹은 수업연구해야할 교과서를 던져두고 "매혹의 질주, 근대의 횡단: 철도로 돌아본 근대의 풍경": http://blog.yes24.com/document/287957" , "연애의 시대: 1920년대 초반의 문화와 유행 ": http://blog.yes24.com/document/5816 , "모던뽀이, 경성을 거닐다: 만문만화로 보는 근대의 얼굴(요거 현문서가 책이네요)": http://blog.yes24.com/document/3917 , "
꼿 가치 피어 매혹케 하라 : 신문광고로 본 근대의 풍경
":http://blog.yes24.com/document/79145 , "고종, 스타벅스에 가다: 커피와 다방의 사회사": http://blog.yes24.com/document/89348 , "모던 걸, 여우목도리를 버려라: 근대적 패션의 풍경": http://blog.yes24.com/document/719694 등 미시사 방법으로 쓴 책을 여러 권 읽었어요. 여기 다 옮기지 못해 아쉬울 정도로 남들이 별로 읽지 않는 미시사 서적들을 재미있게 읽고 리뷰를 달아놓았어요. 오랜만에 한국 근대 역사, 게다가 여행이라는 프리즘을 통과한 미시사를 당대 엘리트들의 기행문을 통해 읽으면 저는 10년 전 기억이 새록새록 떠오르면서 너무 행복할 듯하네요. 지금의 여행을 좀 더 소중히 여길 수 있게 될 듯도 하고요."


위와 같은 서평단 신청글을 올리고 서평단에 뽑혔다. 임고생 때부터 발령 초기까지 한국 근대 미시사 서적들이 유행해서 열심히 찾아 읽으며 즐거워했는데, 오랜만에 그런 기억을 떠올리게 해 준 재미있는 책이었다.


 


'여행'과 '근대(미시사)'가 만났다는 지점 자체가 매력적이다. 마치 "80일간의 세계 일주"처럼 나라가 시켜서가 아니라 개인이 원해서 가고 싶은 장소에서 보고 싶은 부분을 보며 느끼고 싶은 대로 느끼고 있다. 내면을 가진 주체인 개인이 자유여행을 시작했다는 점이 재미있다. 그들은 내가 모르는 바깥을 접하며 자신의 내면을 성찰한다. 물론 저자가 해제에서 내내 이야기하듯 그 서술에는 일제의 식민지 조선이라는 시대적 상황에서 가질 수 밖에 없는 한계가 있다.


이러한 시대적 한계 때문에 여행자들은 여행을 정치적으로 할 것인가, 그 외 분야에 집중할 것인가를 선택한다. 여기 실린 기행문 작가들이 대부분 대중과 언론이 주시하는 엘리트(어떤 분야에서의 전문가)라는 사실은 그가 어떤 분야에 중점을 두고 여행을 할지를 결정한다. 재미있는 지점은 일반적으로 여성과 남성의 관심사가 구별되고 있다는 점이다.


대표적으로 나혜석은 페미니스트 화가였다. 그는 유럽과 세계 각지를 돌아다니면서 서양화도 보았지만 서양 여성들이 얼마나 자립적으로 살고 있는지, 왜 그렇게 살 수 있는지를 부러워하며 보고 배웠다. 결국 한국에 돌아왔을 때 그는 염문을 뿌리며 이혼 당해야 했고 어려운 친정의 가계를 책임지다가 쓸쓸한 죽음을 맞는다. 그가 그린 그림이 책에 실려 있는데 약간은 어둡고 차분한 색조에 부드러운 필치로 잘 그린 그림들을 보고 있으려니 그렇게 죽은 천재 나혜석이 아깝고도 아깝다. '여성이 자립하기 위해서는 경제적 자립이 중요하다'던 그의 이야기를 되새겨본다.


그에 비해 안창호를 비롯한 남성들은 정치에 대한 이야기를 하지 않겠다고 못 박으면서도 여행지의 정세를 살피고 사람들이 그 정세에 대해 어떤 태도를 취하는지 유심히 살피고 있다. 1930년대 잡지 "삼천리"에 실릴 기행문임을 염두에 두고 자기 검열을 하며 매우 조심스럽게 서술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행지 사람들의 정치적 태도에 대해 부러워하기도 하고 아쉬워하기도 하면서 우리의 상황을 돌아본다.


2015년인 지금에 와서 1930년대 일제 식민지였던 조선 '안에서' 살았던 사람들이 일본에 대해 어떤 태도를 취했느냐에 대해 평가하는 일은 좀 조심스러워야하는지도 모른다. 동시대 사람이 자신의 정치적 말과 행동에 책임을 지며 그들을 평가하는 상황과는 많이 다르기 때문이다. 우리는 종종 멀리 떨어져서 안전한 상황 속에서 구경꾼처럼 그 시대 사람이 반일이었는지 친일이었는지 평가하는데 이런 태도가 다소 비겁한 일일지도 모르겠다고 이 책을 읽으며 생각했다. 예를 들어 무용을 일본에서 배운 최승희는 '최승희가 배일을 하고 있나, 친일을 하고 있나' 논쟁과 소문 사이에 끼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에 처한다. 해방 되기 전까지는 그 시대와 장소 안에 살고 있는 사람은 항상 그러한 상황 속에 처할 위험에 노출되어 있었다. 손기정처럼 좀 더 용감하게 '적절한 태도'를 취할 수도 있었다고 평가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아무튼 내가 최승희였다면 외국에서 신변의 안전과 경제적인 위협을 받아가면서 매번 신념에 따라 말과 행동을 할 수 있었을까 궁금하다.    


여러 사람의 기행문이 각기 다른 문체와 방법(그 시대 잡지에는 편지 형식이 참 많았나보다. 마치 사도바울이 외국에 있는 교회에 편지하듯 말이다)으로 실려 있기 때문에 지루해하지 않고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다. 1930년대에 잘 나갔던(?) 엘리트들의 삶과 생각을 엿볼 수 있었던 점도 흥미로웠다. 무엇보다 처음 서평단 신청글에도 적었지만, 1930년대에 나혜석이 런던에서 본 풍경과 지금 런던에서 보는 풍경이 그리 다르지 않다는 사실이 놀랍다. 21세기를 사는 우리는 1930년대보다 우리 자신이 훨씬 '개화'했다고 생각하지만 과연 그런가? 신기한 기술 문명을 가진 후로 마음만 먹으면 해외 여행을 할 수 있지만 그 시절보다 훨씬 대단한 것들을 보고 있는가? 오히려 여기에 기행문을 실은 사람들은 배 위에서 몇 달씩 걸려 여행지에 도착하고, 그곳 문화도 잘 모르고 말도 잘 통하지 않는 가운데 자신의 발로 걷고 고생 고생하며 여행을 한다. 그러한 여행이 훨씬 자유여행에 가까운 모습이 아닌가, 그러한 여행에서 훨씬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많은 것들을 배우지 않았을까 생각했다.  

 

YES마니아 : 플래티넘 o****2 2015.01.03. 신고 공감 1 댓글 2
리뷰 총점 종이책
경성 에리뜨의 만국유람기 - 허헌, 최승희, 나혜석 외 지음
"경성 에리뜨의 만국유람기 - 허헌, 최승희, 나혜석 외 지음" 내용보기
< 이 책은 출판사 현실문화연구의 서평 지원 이벤트로 읽은 책입니다. >    개인적으로 우리 역사의 아쉬운 장면 중 하나가 뒤늦게 문호를 개방하였다는 점이다. 중국과 일본도 우리나라처럼 초기에는 쇄국정책을 고수하였다는 공통점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불행인지 다행인지 우리는 가장 늦게 서양에게 문호를 개방하는 운명을 맞이하게 된다. 문호 개방 이전에는 우리와 일본의 국
"경성 에리뜨의 만국유람기 - 허헌, 최승희, 나혜석 외 지음" 내용보기

< 이 책은 출판사 현실문화연구의 서평 지원 이벤트로 읽은 책입니다. >

 

 개인적으로 우리 역사의 아쉬운 장면 중 하나가 뒤늦게 문호를 개방하였다는 점이다. 중국과 일본도 우리나라처럼 초기에는 쇄국정책을 고수하였다는 공통점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불행인지 다행인지 우리는 가장 늦게 서양에게 문호를 개방하는 운명을 맞이하게 된다. 문호 개방 이전에는 우리와 일본의 국력이 대동소이하였다는 점을 생각하면 미국에 의하여 강제로 외교를 맺게 되는 일본이 그것을 자신들의 발전으로 이끌어냈다는 점은 사실 부럽지 않을 수 없다. 특히 이들은 유럽과 미국으로 대규모 사절단을 파견하여 군사와 정치 조직을 서구의 그것으로 탈바꿈하는데 성공을 하여 순식간에 동북아시아의 강자로 떠오르게 된다. 우리도 뒤늦게 신사유람단을 파견하거나, 미국과 중국으로 사절단을 보내어 서양 문물을 받아들이려고 노력을 하였지만, 너무 늦은 시도가 아니었나 생각이 든다. 이러한 무거운 주제를 뒤로하고 당시 우리나라 사람들의 눈에 비춰진 외국의 모습은 어떠했을까라는 생각을 해보게 된다. 정부 차원에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개인적인 차원에서 당시 외국을 방문한 사례가 무척이나 궁금해졌다. <경성 에리뜨의 만국유람기>는 바로 이러한 나의 의문점을 해소시켜줄 책이 아닐까 생각된다.

 

 사실 정부 차원에서의 외국을 방문한 사례는 앞서 살펴본 바와 같이 심심찮게 언급이 된다. 그러나, 이러한 방문은 서양문물의 수용이라는 정치적인 목적을 가지고 있는 것이어서 진정한 유람기라고 보기는 어려워보인다. 이 책은 바로 당시 개인들의 외국 방문기를 담아낸 <삼천리>라는 잡지에 실린 내용을 바탕으로 쓰여져 있기에 개인적인 시선으로 바라본 당시 외국의 모습을 생생하게 보여주고 있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최승희와 나혜석, 손기정과 같은 인물 이외에도 다양한 계층의 외국 방문기를 소개하고 있기 때문에 여러가지 시각으로 당시 세계의 모습을 담아내고 있다. 당시 해외 여행은 오늘날처럼 누구나 쉽게 갈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이 책에서 기행문을 남긴 사람들은 당시 엘리트(물론 모두 경제적으로 부유했던 것은 아니지만, 대부분 식자층 내지는 부유한 사람이었다.)라고 꼽을 수 있는 인물들이기에 제목도 이들의 유람기라고 이름을 지은 것으로 보여진다.

 

 가장 먼저 이 책을 읽으면서 당시 여행 방법에 대하여 생각을 해보게 된다. 요즈음은 비행기를 통하여 전세계를 여행할 수 있지만, 당시에는 비행기가 운송 수단으로 등장한 시기가 아니기 때문에 배와 기차를 이용하여 여행을 할 수 있었다. 우선 배는 태평양을 통하여 미국으로 이동하고, 미국에서 다시 대서양을 가로질러 유럽으로 가는 경로, 또한 유럽에서 수에즈 운하를 통과하여 인도양을 통하여 인도를 돌아서 다시 우리나라로 돌아오는 항로를 들 수 있다. 기차는 바로 시베리아를 경유하여 유럽으로 가는 경우에 주로 이용이 되었다. 그러다보니 이들의 여행은 이동 시간이 무척이나 길기 때문에 일정이 길어질 수 밖에 없게 된다. 그래서, 당시 외국을 방문하는 것이 결코 쉽지 않음을 알게 된다.

 

 그렇다면 이 책에 소개된 인물들은 왜 만국을 유람한 것일까? 많은 시간과 경제적인 비용이 필요한 만큼 단순히 유희를 위하여 해외를 유람한 것은 결코 아닐 것이다. 앞서 언급한대로 다양한 계층의 사람들이 만국을 유람하다보니 여러 가지 관점에서의 여행이 소개가 되고 있다. 변호사인 허헌은 미국과 유럽의 각국의 유람 목적을 그들의 정치적인 제도와 신생 독립국(아일랜드의 경우)의 상황을 바라보는 것에 초점을 두고 있다. 최승희는 무용수로서 예술적인 관점에서 미국과 유럽의 각국에서 느낀 점을 서술하고 있다. 박인덕은 여성으로서 정체되어 있는 조선의 여권을 개선하기 위하여 서양의 여권 개선 운동에 중점을 두고 해외를 방문하고 있다. 다른 사람도 마찬가지로 자신이 속한 계층의 관점에 따라 나름의 목적에 따라 유람이 이루어져 있음을 보여준다.

 

 이들의 유람은 겉으로만 보이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꿈과 이상을 실현시킬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하는 차원에서 동시에 이루어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또한 그들이 처한 암울한 상황도 여지없이 보여주고 있다. 최영숙의 예를 보자. 당시로서는 더욱더 생소할 수 밖에 없는 스웨덴에서 경제학을 전공하였던 이력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인도를 거쳐 고국으로 복귀하였던 그녀가 할 수 있었던 일은 콩나물 장사밖에 없었다. 이 얼마나 비참한 상황인가? 세계적인 무용가로 이름을 날리던 최승희는 화려한 외국 생활을 즐기면서도 동시에 친일과 반일의 경계에서 줄타기를 해야 하는 상황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베를린 올림픽에서 마라톤 금메달을 획득한 손기정 역시 고국으로 복귀하면서 방문한 외국의 모습을 무심하게 담아내고 있어서 조국이 아닌 일본의 선수로 메달을 획득할 수 밖에 없는 비극적인 현실을 보여주고 있는 듯하다.

 

 잘 알려지지 않은 당시 엘리뜨들의 외국 유람기는 위와 같이 많은 것을 담아내고 있다. 생전 처음 보는 외국 문물에 대한 놀라움과 감탄을 자아내면서도 망국의 설움을 극복하기 위하여 선진 문물 속에서 배워야 할 점을 모색을 한다든지 나혜석과 박인덕과 같이 기존의 보수적인 남존여비 사상을 탈피하기 위하여 그들이 방문한 외국의 사례에서 대안을 찾기 위하여 골몰하는 모습을 보게 된다면 그들이 단순히 유람의 목적으로만 해외를 여행한 것은 아님을 알 수 있다.

 

 너무나 쉽게 이제 해외 여행을 즐기는 우리에게 있어서 경성 엘리트들의 당시의 해외 여행은 다소 시시하다는 느낌을 받을 수 있다. 완전히 새로운 문물을 접하는 그들의 모습이 왠지 어색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우리는 해외 여행을 가더라도 이미 그들의 문화에 익숙하기 때문에 문화적인 충격을 거의 받지 못한다. 그러나, 당시 문호를 개방하기 시작하면서 접해보지 못하였던 외국 문화를 바라보는 이들의 심정은 어떠했을까? 외국 문물의 우수성에 감탄을 하면서도 그들이 처한 현실을 되돌아보는 계기가 되지는 않았을까? 이러한 점들은 요즈음의 우리로서는 결코 느낄 수 있는 부분은 아닐 것이다. 단순히 관광명소로 이름난 곳을 방문하여 실컷 눈요기로 재미를 만끽하는 우리에게 <경성 에리뜨의 만국유람기>는 암흑기에 들어선 우리 민족의 회환을 해외 여행으로 드러내는 모순적인 상황을 보여주고 있다. 그들에게 있어서 해외 유람이 과연 단순히 즐기기만을 위한 것이었을까?

g*******7 2015.01.03. 신고 공감 1 댓글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