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에 KBS 클래식 FM "당신의 밤과 음악- 예술가의 여행법"에서 서양화가 나혜석이 이탈리아를 여행하면서 보고 듣고 느낀 점, 특히 그림에 대한 감상을 글로 남긴 이야기를 읽어주었어요. 나혜석이 살았던 근대와 지금의 베네치아 여행 풍경이 그리 다르지 않다는 사실이 신기하면서도, 지금보다 세계에 대한 정보를 훨씬 제한적으로 접했을 그 시절에 남들보다 빨리 외국 여행을 하면서 그가 얼마나 갈급한 마음으로 서양 문물을 보고 들었을지 상상이 되었어요. '화가'인 나혜석이 자신의 전문 분야인 명화들을 보고 느낀 점을 공유할 수 있어서 재미있었고요.
대학교 교양 강의에서 조한욱 교수님께 "고양이 대학살" 류의 미시사를 처음 접한 후로 거시사가 아닌 미시사 열풍이 불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어요. 2000년대 중반부터 후반까지 (2005년 당시 저는 대학교 4학년, 임고 준비하고 있었음) 종종 교육학책 혹은 수업연구해야할 교과서를 던져두고 "매혹의 질주, 근대의 횡단: 철도로 돌아본 근대의 풍경": http://blog.yes24.com/document/287957" , "연애의 시대: 1920년대 초반의 문화와 유행 ": http://blog.yes24.com/document/5816 , "모던뽀이, 경성을 거닐다: 만문만화로 보는 근대의 얼굴(요거 현문서가 책이네요)": http://blog.yes24.com/document/3917 , "
꼿 가치 피어 매혹케 하라 : 신문광고로 본 근대의 풍경
":http://blog.yes24.com/document/79145 , "고종, 스타벅스에 가다: 커피와 다방의 사회사": http://blog.yes24.com/document/89348 , "모던 걸, 여우목도리를 버려라: 근대적 패션의 풍경": http://blog.yes24.com/document/719694 등 미시사 방법으로 쓴 책을 여러 권 읽었어요. 여기 다 옮기지 못해 아쉬울 정도로 남들이 별로 읽지 않는 미시사 서적들을 재미있게 읽고 리뷰를 달아놓았어요. 오랜만에 한국 근대 역사, 게다가 여행이라는 프리즘을 통과한 미시사를 당대 엘리트들의 기행문을 통해 읽으면 저는 10년 전 기억이 새록새록 떠오르면서 너무 행복할 듯하네요. 지금의 여행을 좀 더 소중히 여길 수 있게 될 듯도 하고요."
위와 같은 서평단 신청글을 올리고 서평단에 뽑혔다. 임고생 때부터 발령 초기까지 한국 근대 미시사 서적들이 유행해서 열심히 찾아 읽으며 즐거워했는데, 오랜만에 그런 기억을 떠올리게 해 준 재미있는 책이었다.

'여행'과 '근대(미시사)'가 만났다는 지점 자체가 매력적이다. 마치 "80일간의 세계 일주"처럼 나라가 시켜서가 아니라 개인이 원해서 가고 싶은 장소에서 보고 싶은 부분을 보며 느끼고 싶은 대로 느끼고 있다. 내면을 가진 주체인 개인이 자유여행을 시작했다는 점이 재미있다. 그들은 내가 모르는 바깥을 접하며 자신의 내면을 성찰한다. 물론 저자가 해제에서 내내 이야기하듯 그 서술에는 일제의 식민지 조선이라는 시대적 상황에서 가질 수 밖에 없는 한계가 있다.
이러한 시대적 한계 때문에 여행자들은 여행을 정치적으로 할 것인가, 그 외 분야에 집중할 것인가를 선택한다. 여기 실린 기행문 작가들이 대부분 대중과 언론이 주시하는 엘리트(어떤 분야에서의 전문가)라는 사실은 그가 어떤 분야에 중점을 두고 여행을 할지를 결정한다. 재미있는 지점은 일반적으로 여성과 남성의 관심사가 구별되고 있다는 점이다.
대표적으로 나혜석은 페미니스트 화가였다. 그는 유럽과 세계 각지를 돌아다니면서 서양화도 보았지만 서양 여성들이 얼마나 자립적으로 살고 있는지, 왜 그렇게 살 수 있는지를 부러워하며 보고 배웠다. 결국 한국에 돌아왔을 때 그는 염문을 뿌리며 이혼 당해야 했고 어려운 친정의 가계를 책임지다가 쓸쓸한 죽음을 맞는다. 그가 그린 그림이 책에 실려 있는데 약간은 어둡고 차분한 색조에 부드러운 필치로 잘 그린 그림들을 보고 있으려니 그렇게 죽은 천재 나혜석이 아깝고도 아깝다. '여성이 자립하기 위해서는 경제적 자립이 중요하다'던 그의 이야기를 되새겨본다.
그에 비해 안창호를 비롯한 남성들은 정치에 대한 이야기를 하지 않겠다고 못 박으면서도 여행지의 정세를 살피고 사람들이 그 정세에 대해 어떤 태도를 취하는지 유심히 살피고 있다. 1930년대 잡지 "삼천리"에 실릴 기행문임을 염두에 두고 자기 검열을 하며 매우 조심스럽게 서술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행지 사람들의 정치적 태도에 대해 부러워하기도 하고 아쉬워하기도 하면서 우리의 상황을 돌아본다.
2015년인 지금에 와서 1930년대 일제 식민지였던 조선 '안에서' 살았던 사람들이 일본에 대해 어떤 태도를 취했느냐에 대해 평가하는 일은 좀 조심스러워야하는지도 모른다. 동시대 사람이 자신의 정치적 말과 행동에 책임을 지며 그들을 평가하는 상황과는 많이 다르기 때문이다. 우리는 종종 멀리 떨어져서 안전한 상황 속에서 구경꾼처럼 그 시대 사람이 반일이었는지 친일이었는지 평가하는데 이런 태도가 다소 비겁한 일일지도 모르겠다고 이 책을 읽으며 생각했다. 예를 들어 무용을 일본에서 배운 최승희는 '최승희가 배일을 하고 있나, 친일을 하고 있나' 논쟁과 소문 사이에 끼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에 처한다. 해방 되기 전까지는 그 시대와 장소 안에 살고 있는 사람은 항상 그러한 상황 속에 처할 위험에 노출되어 있었다. 손기정처럼 좀 더 용감하게 '적절한 태도'를 취할 수도 있었다고 평가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아무튼 내가 최승희였다면 외국에서 신변의 안전과 경제적인 위협을 받아가면서 매번 신념에 따라 말과 행동을 할 수 있었을까 궁금하다.
여러 사람의 기행문이 각기 다른 문체와 방법(그 시대 잡지에는 편지 형식이 참 많았나보다. 마치 사도바울이 외국에 있는 교회에 편지하듯 말이다)으로 실려 있기 때문에 지루해하지 않고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다. 1930년대에 잘 나갔던(?) 엘리트들의 삶과 생각을 엿볼 수 있었던 점도 흥미로웠다. 무엇보다 처음 서평단 신청글에도 적었지만, 1930년대에 나혜석이 런던에서 본 풍경과 지금 런던에서 보는 풍경이 그리 다르지 않다는 사실이 놀랍다. 21세기를 사는 우리는 1930년대보다 우리 자신이 훨씬 '개화'했다고 생각하지만 과연 그런가? 신기한 기술 문명을 가진 후로 마음만 먹으면 해외 여행을 할 수 있지만 그 시절보다 훨씬 대단한 것들을 보고 있는가? 오히려 여기에 기행문을 실은 사람들은 배 위에서 몇 달씩 걸려 여행지에 도착하고, 그곳 문화도 잘 모르고 말도 잘 통하지 않는 가운데 자신의 발로 걷고 고생 고생하며 여행을 한다. 그러한 여행이 훨씬 자유여행에 가까운 모습이 아닌가, 그러한 여행에서 훨씬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많은 것들을 배우지 않았을까 생각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