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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투르 사상을 통해 새롭게 보는 근대 세계
"라투르 사상을 통해 새롭게 보는 근대 세계" 내용보기
책 <가까스로 있음>은 인류가 처한 곤경의 상황을 애써 포장하거나 낙관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 깊은 심연을 정면으로 응시할 힘을 길러준다. 저자는 세상을 바라보는 새로운 관점인 ‘파국주의’를 소개해 지구의 역사를 재구성한다. 해당 이론의 기반이 되는 주장은 벤야민의 역사철학에서 시작됐다. 벤야민은 역사를 ‘항구적 파국’, 다시 말해 시간의 연속이 아닌 계속되는 파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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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 <가까스로 있음>은 인류가 처한 곤경의 상황을 애써 포장하거나 낙관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 깊은 심연을 정면으로 응시할 힘을 길러준다. 저자는 세상을 바라보는 새로운 관점인 ‘파국주의’를 소개해 지구의 역사를 재구성한다. 해당 이론의 기반이 되는 주장은 벤야민의 역사철학에서 시작됐다. 벤야민은 역사를 ‘항구적 파국’, 다시 말해 시간의 연속이 아닌 계속되는 파국의 상태로 이해했다. 그에 따르면 모든 사건은 목적을 향한 운동이 아닌 순간순간 ‘발생하는’ 존재다.
 
 이는 우리에게 역사를 ‘패배자의 시선’으로 볼 수 있는 또 다른 눈을 뜨게 한다. 명백한 방향을 가진 채 질주했던 때는 보이지 않는 것들이, 패배자의 시선에서는 차차 들어오기 시작한다. 예컨대 파국은 어느 순간 발생할 사건이 아니라, 지금 이미 진행 중인 하나의 과정이라는 것. 파국은 파괴와 생산이 공존하는 상태라는 것. 이처럼 파국주의를 통해 우리 시대의 현실을 성찰할 힘은 지구가 처한 위기를 버틸 원동력이 된다. 결국 파국을 상상할 수 있다는 것은, 그 자체로 이미 새로운 사유의 문턱에 들어섰다는 뜻인 셈이다.
 
P.41 인류세는 역사의 천사가 무력화되어 날아가지 못하는 멈추어진 시간이다. 그 자리에서 인간은 갑작스러운 회심, 일종의 메타노이아를 통해서 근대적 발전이 얼마나 많은 파국들을 만들어 냈는지를 깨닫게 된다. (Latour)
 
(라투르 사상이란?)
 생각해보면 우리의 행동 중 완벽히 독립적인 결과물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은 거의 없다. 현대 사회에서 개인의 행위 그 이면에는 수많은 타자가 연관돼 있기 때문이다. 책의 저자는 이에 대한 예시로 드라마 <굿 플레이스>의 한 에피소드를 제시한다. 해당 에피소드에서는 500년간 천국에 간 인간이 단 한 명도 없으며, 그 이유를 복잡하게 얽힌 시스템에서 찾는다. 아무리 개인이 선한 의도를 가진 행동이라 해도, 악덕 기업이나 범죄자가 얽힌 시스템 속에서는 그 결과가 악한 행동으로 변질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수많은 사건과 사람이 세밀하게 얽힌 근대 세계를 이해하는 데 기존의 사회학 이론은 한계를 지닌다. 이런 상황에서 등장한 것이 라투르 사상이다. 라투르 이론은 20세기 프랑스 정통 사회학을 비판하고, 새롭게 사회를 정의한다. 해당 이론에 따르면 사회적 구조란 존재하지 않는다. 구조란 허상에 불과하며, 오히려 틀을 벗어나 사회를 자세히 살펴볼 때 그 실체를 정확히 파악할 수 있다. 또한 라투르는 사회를 설명 대상으로 인식해, 한 사건을 바라볼 다양한 길을 열어두기도 한다. 예컨대 예술을 바라볼 때 그저 ‘사회적 시선’에서만 인식하지 않고, 그 가치가 자연스레 발현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행위자를 바라보는 시선이다. 저자에 따르면 라투르는 행위자를 ‘사회학자보다 열등하지 않은 존재’로 인식한다. 사회학에서 행위자란 네트워크를 형성하는 주체로서 매우 높은 중요성을 가진 존재다. 라투르가 제시하는 대표적 대안인 ‘행위자-네트워크’ 개념은 개별 구성원에게 자율성을 부여해 근대 세계를 책임질 힘을 불어넣는다.
 
P.154 행위자란 이중적인 물질 간의 상호 작용으로 이루어진 규칙적 네트워크다. 즉, 사고하는 것, 행동하는 것, 글을 쓰는 것, 사랑하는 것, 소득을 벌어들이는 것 등 우리가 주로 인간에게 부여하는 특성들은 인간 신체를 넘어 네트워크를 통해 생성되는 것들이다.
 
가까스로-있음이란 그저 두려움 속에서 근근이 버텨내는 상태에서 끝나지 않는다. 이는 곧 존속을 위한 사투를 벌이는 모든 존재와의 연결이자, 이를 통해 이뤄지는 초월이다. 해당 도서는 라투르의 초월을 ‘존재 사이의 간극을 건너고 그 불연속성을 넘어 도약하는 것’이라 설명한다. 어찌 보면 나약하게 흔들리며 간신히 버티는 존재이지만, 그와 동시에 연결되어 초월할 수 있는 존재. 그것이 라투르가 이야기하는 ‘가까스로-있음’의 상태다. 
YES마니아 : 골드 h*********6 2025.11.02.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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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에 라투르를 소환하는 이유
"21세기에 라투르를 소환하는 이유" 내용보기
* 본 서평은 이음출판사 서포터즈 활동으로 작성되었습니다. 본래 서평에서 개인적인 이야기를 삼가야 하지만, 이번만큼은 개인적인 이야기로 시작하고자 한다. 필자인 내가 이음출판사 서포터즈 활동을 하게 된 이유는 정말로 이 책을 누구보다 더 빨리 받고 싶어서였다. 2025 서울 국제 도서전 붐비는 이음 출판사 부스에서 라투르 책 한 권을 사면서, 이 책의 출간 예정 소식을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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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서평은 이음출판사 서포터즈 활동으로 작성되었습니다.

 본래 서평에서 개인적인 이야기를 삼가야 하지만, 이번만큼은 개인적인 이야기로 시작하고자 한다. 필자인 내가 이음출판사 서포터즈 활동을 하게 된 이유는 정말로 이 책을 누구보다 더 빨리 받고 싶어서였다. 2025 서울 국제 도서전 붐비는 이음 출판사 부스에서 라투르 책 한 권을 사면서, 이 책의 출간 예정 소식을 들었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이 책을 기다렸고, 다 읽은 결과 기대대로 정말 훌륭했다.

 아직 브뤼노 라투르를 필두로 한 여러 철학에 대해 많이 무지하지만, 그럼에도 나는 이 책이 무척이나 빛나는 "브뤼노 라투르 입문서"라고 감히 말하고 싶다.



 이 입문서의 독특한 특징이라고 하면, 라투르를 잘 모를 경우 1.5 회독 혹은 2 회독하기를 추천하는 책이다. 이는 책의 언어가 어려워서가 아니다. 그것은 이 책의 구성에서 기인한다.

 저자 김홍중 교수는 이 책을 두 부분으로 분류한다. 첫 번째 부분은 "시대 진단"(1 ~ 3장)이고, 두 번째 부분은 "대안 이론"(4 ~ 9장)이다. 이것은 이 책이 그저 라투르 입문서에만 그치지 않기 때문이다. 저자는 21세기에 왜 라투르를 읽어야 하는지부터, 시대를 분석하고 이에 맞춰 라투르의 철학 및 라투르에게 영향을 준 학자들을 조명한다. 

(라투르에 가장 영향을 준 들뢰즈와 과타리는 아쉽게도 차후 저서를 기약한다고 책에서 서술한다. 12p 참고. 따라서 들뢰즈와 과타리에 대한 서술은 단편적인 부분에 그친다.)

 이러한 구성 때문에, 앞부분은 라투르의 용어 및 철학이 등장하지만, 자세한 설명은 뒷부분에서 보론의 형식으로 보충된다. 따라서 라투르가 가진 특이한 용어 때문에 앞부분이 이해되지 않았다면 완독 후 다시 앞부분의 독서를 추천한다. 왜 오늘날이 가까스로-있음의 시대인지, 그리고 왜 라투르를 저자는 소환하는지를 알 수 있다.

 시대가 특정 철학자를 호명하는 이유는, 기존의 생각 혹은 철학이 현재를 설명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삶이 힘들 때 니체와 쇼펜하우어 책이 베스트셀러가 된 것도 이러한 해석의 연장선상에 있다고 봐도 된다.

 저자는 자신이 21세기라는 새로운 질서 속으로 들어섰음을 직감했을 때, 그것이 곧 세계가 존재하는 방식을 규정하는 부사의 변화, 즉 ‘그냥’의 세계에서 ‘가까스로’의 세계로의 전환이라고 말한다. ‘가까스로’의 세계는 결여와 위급성에 묶여 있으며, ‘그냥’이 보장하던 평온한 무관심이 사라진 불안과 미달의 상태 속에 존재한다. 이곳에서 인간을 비롯한 모든 생명체는 충만이나 풍요 없이 간신히 생존하고 있으며, 무너지지 않기 위해 겨우 버티는 "희소하고 불확실한 현존의 양태"(10p)로 살아가고 있다.

 이러한 시대에 저자 역시도 라투르를 소환한다. 라투르를 이 시대의 진단 부분에서 소환하는 이유는, 오늘날 '가까스로 있는' 시대의 파국적 양상(인류세의 도래 및 이로 야기된 위기)은 20세기(근대적) 사회학이 더 이상 설명할 수 없다. 책의 표현을 빌리자면, " 21세기 사회학은 이제 ‘파국에의 무관심’을 더 이상 정당화하거나 유지할 수 없는 상황에 처해 있다."(60p) 이에 따라 현재 파국을 가장 잘 설명한 대표적인 학자인 라투르를 소환한다.

사회학의 역사에서 ‘파국’은 중요한 사고 대상으로 취급되지 못했다. (맑스를 제외하면) 걸출한 사회 이론가들은 파국에 주목하지 않았다. 이는 우리 시대의 사회학도 마찬가지다. 이런 점에서 [울리히] 벡과 라투르가 말년에 시도한 ‘파국주의적 전환’의 의미는 자못 심대하다. 벡과 라투르는 파국을 사회학이 고민해 야 하는 최상급의 문제로 이해했으며, 이런 상황을 넘어설 수 있는 가능성을 사고하는 데 열정을 기울였다.
- 92p
울리히 벡과 브뤼노 라투르는 파국에 관심을 가지며, 20세기(근대적) 사회학과 달리 인간 외의 요인으로부터 사회를 해석했다. (울리히 벡에 대해 더 자세한 설명은 책 참고) 벡의 낙관성과 달리, "라투르는 기후 파국을 종말적 상황으로 보았"(92p)다. 그 외에 라투르와 달리 벡에게는 "인간 행위자를 넘어서는 비인간 행위자에 대한 이론적 관심이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74p) 그 외의 다양한 이유로 라투르를 선택하 소환한다.



두 번째 "대안 이론" 부분은 가브리엘 타르드부터 들뢰즈와 과타리를 거쳐 라투르에 도달하는 라투르 이론을 종합적으로 설명한다. 사실 이 부분은 워낙 텍스트 밀도가 높고, 직접 읽는 것이 더 좋아 감상평은 갈음하겠다

그렇기에 이 책의 좋았던 부분만 기술하자면, 바로 어휘 사용이 굉장히 엄격하다는 점이다.

 모든 철학자가 응당 새로운 용어를 사용해서 독자를 당황시키듯이, 라투르도 다양하고 낯선 단어 혹은 단어의 새로운 의미를 만들어서 사용한다. 그렇기에 이 책에서는 단어 하나하나를 놓치지 않는 태도를 보여준다.

행위가 그 자체로 독자적으로 수행되는 것이 아니라, 반드시 다른 행위로 인계되거나, 후행하는 행위에 의해 변형되거나 굴절된다는 것은 행위를 타자성에 노출되어 있는 공동-생산적인 무언가로 보는 관점이라 할 수 있다(행위는 타자-인수/탈취된다). 그런데, 이런 관점이 좀 더 선명하게 드러나는 것은, 영어 단어 overtake와 take over가 라투르에 의해 불어 단어 dépasser나 déborder로 번역되었을 때다. 이들 동사는 모두 ‘초과’라는 의미와 더불어 ‘범람’이라는 의미, 흘러넘친다는 의미를 갖고 있다.
- 177p
ANT적 관점에서 보면, 모든 구성된 사실들, 사물들, 존재자들은 동시에 사실인 ‘팩티시’(Latour, 2010)이다. 불어로는 faitiche로 쓰고 영어로는 factish로 번역되는 팩티시는 사실(fact)과 페티시(fetish)를 합성한 조어다. 한편, 사실(fait)이라는 불어 단어는 본래 만든다(faire)라는 동사의 과거 분사 형태다. 라투르가 자주 환기시키듯이 “사실들은 만들어진다”[라투르, 2009: 61], 즉 구성된다.
-195p
 
하지만 이런 철두철미함 속에서도 약간의 아쉬움이 남는 부분이 있었다. 첫째, ‘모더니티’와 ‘근대성’이라는 용어가 혼용되는 대목이다. 사전적으로는 유사하지만, 문맥에 따라 의미의 결이 다를 수 있기에, 혹시 의도된 차이라면 간단한 주석으로 구분을 밝혀주면 좋았을 것이다.

 둘째, 책에서는 “라투르는 ‘행위자(actor)’라는 말을 꺼리고 대신 ‘행위소/행역자(actant)’라는 표현을 사용한다”(161p)고 명시하지만, 정작 그의 핵심 이론인 ‘행위자 네트워크(Actor-Network Theory, ANT)’에서는 여전히 actor라는 용어를 사용한다. 이 모순처럼 보이는 부분은 사실 영미권 번역에서 비롯된 문제로 알려져 있다. 책이 라투르 입문서로서의 성격도 갖는 만큼, 이런 번역적 맥락을 간단히 덧붙였더라면 독자의 이해를 더욱 좋았을 것이다.



기업가, 작가, 예술가라는 상(像), 더 나아가 인간이라는 상이 깨지고 파열될 때, 비로소 파국 앞의 ‘생명’이라는 공통 기반이 드러난다. 그 생명의 존재론적 실상인 가까스로-있음에 눈을 뜨는 것이다. 가까스로 있는 것들을 바라보면서 자기 자신의 가까스로-있음을 자각하게 되었을 때, 가까스로 있는 것들 사이에는 모종의 연결, 모종의 연대가 형성된다.
- 326p
 결국 저자가 라투르를 소환하는 이유는 명확하다. 라투르의 존재론과 행위자-네트워크 이론을 통해, 파국이 진행 중인 현실을 더 명료하게 인식하고자 함이다. 우리는 이 불안정한 시대 속에서 다른 존재자들—비인간적 행위자들까지 포함한—과의 행성적 연대감을 자각해야 한다.

 따라서 오늘날 라투르의 사유에 관심이 있거나, 기존의 세계관이 설명하지 못하는 실존적 위기 속에 있는 사람이라면, 이 책은 훌륭한 안내서가 되어줄 것이다. 그것은 단순한 독서가 아니라, 자신과 세계를 다시 성찰하고(혹은 재귀하는) 하나의 경험이 될 것이다.
j*******o 2025.11.05.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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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학이 바라보는 인류세가 궁금할 때 읽기 좋은 책
"사회학이 바라보는 인류세가 궁금할 때 읽기 좋은 책" 내용보기
라투르의 ANT 이론을 소개하면서 인류세에 관해 설명하는 책이다. 필자는 사회학과 철학 문외한이지만 어차저차 읽었다. 저자가 나름대로 대중을 위해 배려했음을 느낄 수 있었다. 기존의 사상들은 온전히 승리자의 역사만을 인정했다. 능동성과 주체성을 찬양했던 자들은 수동의 세계, 즉 승리자들에 의해 패배당하고, 주류로부터 배제된 자들을 무시했다.그러나 감수자들은 결국 행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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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라투르의 ANT 이론을 소개하면서 인류세에 관해 설명하는 책이다. 필자는 사회학과 철학 문외한이지만 어차저차 읽었다. 저자가 나름대로 대중을 위해 배려했음을 느낄 수 있었다.

 기존의 사상들은 온전히 승리자의 역사만을 인정했다. 능동성과 주체성을 찬양했던 자들은 수동의 세계, 즉 승리자들에 의해 패배당하고, 주류로부터 배제된 자들을 무시했다.

그러나 감수자들은 결국 행위자로 변모해 기존의 행위자들에게 복수한다. 이것이 인류세이다. 인간이라는 역동적 존재들에게 이용만 당했던 자연은 더이상 참지 않는다. 그동안 인간으로부터 받았던 고통을 다시 인간에게 똑같이, 아니 어쩌면 그 이상으로 갚아준다.

 이제 자연은 인간이라는 승리자에게 패배를 안겨주었다. 이것이 우리가 지금 겪고 있는 생태 위기, 파국이다. 파국은 인간에게 있어 일상이 되었다. 기후변화로 인한 피해는 계급, 성별, 국가를 막론하고 누구나 겪는, 무차별적인 재앙이 되었다. 이런 점에서 기존의 사회학, 즉 어떤 현상을 바라볼 때 계급, 성별, 국가 등등의 기준으로 바라보는 이론들은 지금의 인류세를 설명하기에 역부족이다. 

이런 상황에서 라투르의 ANT는 인류세를 설명하는 최적의 이론이다. 그는 인간 뿐만 아니라 비인간 행위자, 즉 자연에게도 이론적 시민권을 준다. 그들 역시 어떠한 행위의 주체가 될 수 있으며, 우리가 행위하는 데에 있어 그들의 행위가 선행하기도 한다. 인간과 비인간은 위계 질서로 이뤄지지 않고, 연결된 요소들이 모두 평등한 권리를 갖는 네트워크로 이뤄진 것이다.

 라투르는 우리에게 무엇을 알리려 하는가? 바로 연결이다. 인간과 자연은 수많은 네트워크를 이룬다. 우리는 그들과 동맹을 맺음으로써, 우리가 그들의 존재 덕에 가까스로 지구에 존재함을 인정함으로써, 인류세를 극복할 수 있는 사고를 갖게 될 것이다.

i******8 2025.11.02.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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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의 세계에서 ‘가까스로’의 세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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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린 눈을 떠서 출근하고, 내일 갈 식당을 예약하고, 몇개월 뒤에 있을 여행 계획을 세우면서 다가올 미래를 기다린다. 그 미래는 시간을 흘려 보내다보면 자연스럽게 찾아올, ‘그냥’의 세계다. 하지만 인류세 파국은 한치 앞도 내보이지 않는 세계를 선언한다. 재난, 마비, 혼돈에 떠밀려가는 지금, 우리는 ‘가까스로’ 이곳에 있다. “파국주의는 비관주의나 허무주의가 아니다.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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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린 눈을 떠서 출근하고, 내일 갈 식당을 예약하고, 몇개월 뒤에 있을 여행 계획을 세우면서 다가올 미래를 기다린다. 그 미래는 시간을 흘려 보내다보면 자연스럽게 찾아올, ‘그냥’의 세계다. 하지만 인류세 파국은 한치 앞도 내보이지 않는 세계를 선언한다. 재난, 마비, 혼돈에 떠밀려가는 지금, 우리는 ‘가까스로’ 이곳에 있다. 

“파국주의는 비관주의나 허무주의가 아니다. 그것은 인류세가 우리에게 가장 큰 문제로 제기하는 ‘생태-존재론적 긴급성’에 대한 사상적 대응이다. 이 긴급성은 ‘우리 시대의 근원적 실재가 파국이다’라는 상황 정의 자체에서 온다.” 

“누군가에게 후쿠시마나 체르노빌이나 심지어 코로나19와 같은 재난도 그저 스쳐 지나가는 ‘사고들’이겠지만, 다른 누군가에게는 그간 습관적으로 영위해왔던 삶의 방식을 바꾸라는 벼락같은 명령으로 들려왔을 것이다. 구제역으로 땅에 묻히는 돼지들의 비명을 들은 자의 인생은 그 소리를 듣기 이전과 결코 동일할 수가 없다. 뭔가가 마음속으로 들어와서, 우리를 정지시키고, 우리를 꾸짓고, 자아의 안일함과 타성을 아프게 찢어놓는 것이다. 우리가 결코 계획한 적 없고, 바란 적 없는 저런 마주침들을 통해서 우리는 성찰적 존재가 된다.”

가까스로-있음의 초입에서 저자는 “피하고 싶고, 도망치고 싶은 이 특이한 삶의 순간을 만나는 자가 성찰자”라고 말하며 파국의 한가운데서 성찰을 겪는 이들을 불러낸다. “바로 그런 순간의 감수자적 성찰성, 수동적 성찰성, 불가피한 성찰성만이 ‘나’를 결정적으로 바꾸는 순간이다.”

이 책은 ANT 이론과 브루노 라투르의 존재론을 분석하며 지금 시대 인간 존재가 어느 위치에 서 있어야 하는지를 묻는다. 7장 ‘가까스로-있음의 존재론’에서는 라투르 존재론의 세 가지 테제로 ‘존재는 네트워크다’, ‘존재는 반복이다’, ‘존재는 타자다’를 제시한다.  

저자는 라투르 이후, 존재의 불안정함과 타자 의존성을 긍정하는 '아래로의 방향 전환'에서 구원을 찾는 '케노시스' 존재론으로 논의를 전개한다. ‘그냥’의 삶을 성찰하고 싶다면, 브뤼노 라투르의 존재론을 통해 서로의 연결 위에 ‘가까스로’ 서 있는 나의 존재를 떠올려보는 건 어떨까? 
3*****h 2025.11.02.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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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국의 무대 위에서 '가까스로' 이어지는 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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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언제 가장 절실하게 '우리'가 될까? 김홍중 교수의 『가까스로이음』은 그 순간이 빛나는 승리의 역사를 공유할 때가 아니라, 아이러니하게도 "공유된 파국의 감각" (p.31) 속에서라고 말한다. 지금 우리 시대는 "거의 모든 매듭들에서 실존적 부정과 물리적 살해" (p.84)가 일어나는 위기의 순간이다. 하지만 이 책은 이 '파국'을 절망의 끝이 아니라, 새로운 연결을 위한 거대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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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언제 가장 절실하게 '우리'가 될까? 김홍중 교수의 『가까스로이음』은 그 순간이 빛나는 승리의 역사를 공유할 때가 아니라, 아이러니하게도 "공유된 파국의 감각" (p.31) 속에서라고 말한다. 지금 우리 시대는 "거의 모든 매듭들에서 실존적 부정과 물리적 살해" (p.84)가 일어나는 위기의 순간이다. 하지만 이 책은 이 '파국'을 절망의 끝이 아니라, 새로운 연결을 위한 거대한 '무대' (p.82)로 재조명한다.

파국이 가져온 충격은 우리가 당연하게 여겼던 낡은 생각들을 뒤흔든다. 그리고 그 틈새로 세상을 새롭게 볼 수 있는 "인식 가능성의 지금" (p.36)을 열어젖힌다. 이 무대 위로 그동안 목소리를 잃었던 두 명의 새로운 주인공이 등장한다.
첫 번째 주인공은 '지구', 즉 '가이아(Gaia)'이다. 오랫동안 인간은 지구의 행위능력을 박탈하고(p.80) "무상의 자원을 제공하는 자연" (p.81)으로만 여겼다. 하지만 이 책은 '땅으로의 귀환'을 선언하며, 지구가 더 이상 "자애롭게 품어주는 어머니 대지"가 아니라고 말한다. 오히려 "광폭하고 예민하고 변덕스러운 행위자" (p.81)가 되어, 자신의 목소리를 내며 우리 삶에 거칠게 난입하고 있다.
두 번째 주인공은 고통을 겪어내는 '감수자'이다. 이들은 외부의 고통을 그저 수동적으로 당하는 존재가 아니다. 이 책은 이들이 "시간 속에서 숙성되어 행위의 힘으로 전환되는 과정" (p.39)에 주목한다. 감수자들은 고통을 겪어내는 특수한 방식을 통해, 스스로 행동하는 힘을 축적해나가는 또 다른 행위자이다.
결국 『가까스로이음』은 이 새로운 행위자들이 만들어내는 관계의 그물망에 대한 이야기이다. 행위능력을 되찾은 지구와 고통 속에서 힘을 키운 인간의 "행위의 물결들은 서로 간섭하며" (p.79) 새로운 '공생의 네트워크'를 만든다.
이 네트워크 안에서는 '내가 환경 속에 존재한다'는 낡은 구분이 무너진다. 대신 "개체 자체가 이미 환경" (p.79)이 되는 새로운 관계가 펼쳐진다. 이 책의 제목처럼, 모든 것이 위태로운 이 파국의 시대에 우리가 어떻게 서로 '가까스로' 이어지며 공생의 길을 찾을 수 있는지, 그 절박하고도 희망적인 사유를 만나보시길 권한다.
y********2 2025.11.02.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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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의 파국주의와 생태 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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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인들의 삶이 정말 가까스로 살아가는 간절함으로 이루어져있으며 파국에도 결국엔 살아가야만 하는 일상을 담아냈다. 코로나19, 생태 위기 등 파국 속에서 서로 영향을 주고 받는 네트워크 행위자들, 상실과 환멸을 통한 파국주의에 대한 사회학적 물음을 독자에게 넘긴다. 파국주의는 역설적으로 소용돌이 속 성장을 가능케한다. 김홍중 작가의 현시대에 대한 생각을 볼 수 있는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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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인들의 삶이 정말 가까스로 살아가는 간절함으로 이루어져있으며 파국에도 결국엔 살아가야만 하는 일상을 담아냈다. 코로나19, 생태 위기 등 파국 속에서 서로 영향을 주고 받는 네트워크 행위자들, 상실과 환멸을 통한 파국주의에 대한 사회학적 물음을 독자에게 넘긴다. 파국주의는 역설적으로 소용돌이 속 성장을 가능케한다. 김홍중 작가의 현시대에 대한 생각을 볼 수 있는 책이다.


h*******1 2025.11.02.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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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국의 시대를 건너는 철학적 의미의 생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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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홍중 교수의 글은 언제나 ‘지금’을 진단하면서도 ‘존재’라는 근본을 놓치지 않는다.《가까스로-있음》은 그런 그의 사유가 라투르의 존재론과 만나는 지점에서 만들어진,어쩌면 현대 한국 사회의 철학적 생존기에 가깝다.'‘가까스로 있다’는 말은 단순히 버티는 게 아니다.저자는 우리가 이미 파국 속에 살고 있음을 인정하면서도,그 속에서도 관계를 만들고 감응하는 존재로 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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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홍중 교수의 글은 언제나 ‘지금’을 진단하면서도 ‘존재’라는 근본을 놓치지 않는다.
《가까스로-있음》은 그런 그의 사유가 라투르의 존재론과 만나는 지점에서 만들어진,
어쩌면 현대 한국 사회의 철학적 생존기에 가깝다.'


‘가까스로 있다’는 말은 단순히 버티는 게 아니다.
저자는 우리가 이미 파국 속에 살고 있음을 인정하면서도,
그 속에서도 관계를 만들고 감응하는 존재로 남는 것의 의미를 되묻는다.


이 책은 존재의 사회학이라고 부를 수 있을 법하다. 읽는 내내 세상이 조금 다른 결로 느껴질 수도 모른다. 다만 이 책은 절망이 아닌 깊은 체념과 응시 속의 희망이 이 책을 지탱한다. 그러한 이유에서 읽는 경험 자체가 하나의 사유이자 감정이 되는 도서이기에 추천한다.
c********0 2025.11.02.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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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의 소멸, 가까스로 존재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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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세'와 '신유물론', 사회학이든 문학이든 이제는 빼놓고 논의할 수 없는 이론이나 마찬가지다. 우리 인간은 인류세의 시대에 다다른 것을 모두가 인식해가고 있으며, 여러 자연 재해와 코로나19 등 예상치 못한 재난 상황을 마주했다. 여기서 자연스레 연결되는 '파국'의 감각이란 무엇인가. 책에서는 라투르의 이론을 바탕으로 우리가 감각해오던 '인류세'와 파국을 여러 사회학 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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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세'와 '신유물론', 사회학이든 문학이든 이제는 빼놓고 논의할 수 없는 이론이나 마찬가지다. 우리 인간은 인류세의 시대에 다다른 것을 모두가 인식해가고 있으며, 여러 자연 재해와 코로나19 등 예상치 못한 재난 상황을 마주했다. 여기서 자연스레 연결되는 '파국'의 감각이란 무엇인가. 책에서는 라투르의 이론을 바탕으로 우리가 감각해오던 '인류세'와 파국을 여러 사회학 논의를 바탕으로 깊게 파고든다. 인류세와 신유물론 자체가 상당히 활발한 이론임에도 개인적으로는 매끄럽게 진행되는 설명이나, 의문이 생겨도 해소할 방법이 많이 없다고 느꼈는데 <가까스로-있음>에서는 장이 지날수록 점점 그 흐름을 이해하며 따라갈 수 있었다. 

'우리의 실존적 위치가 바로 저 자리, 천사가 머무는 파국의 한복판이다. 그 자리에서 세계는 가까스로 있다. 우리도 가까스로 있다. 인류세는 가까스로-있음의 시대다. '그냥'의 소멸이다. 어떤 존재자도 파국 속에서 그냥, 굳건히, 영속적으로 있을 수 없음을 뒤늦게 깨달은 우리는 사라짐의 속도와 강도에 경악한 채 벤야민의 천사처럼 어디론가 밀려가는 것이다.' (42쪽)
특히 파국을 천사와 함께 설명한 것이 인상 깊었는데, '파국'이라는 언어 자체가 주는 비관성뿐만 아니라 현재의 우리를 인식하게 하고, '가까스로 존재하는' 현재를 감각하게 해준다.
YES마니아 : 골드 d********0 2025.10.31.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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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까스로"라는 새로운 시대의 감수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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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홍중 교수의 『가까스로- 있음』은 현재 시대를 새롭게 진단하고 바라보고자 하는 움직임이다. 현재를 살아가는 일상적 감각을 통해 후쿠시마 원전 사고, 기후 위기 등 인간에 의해 만들어진 위기와 직면한다. 이때의 위기는 인간의 파국과도 맞닿아 있다. 김홍중 교수는 이러한 위기 앞에 이 시대를 “가까스로”의 세계로 진단한다. 이 순간, 안정적이고 잘 될 거라는 믿음으로 가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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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홍중 교수의 『가까스로- 있음』은 현재 시대를 새롭게 진단하고 바라보고자 하는 움직임이다. 현재를 살아가는 일상적 감각을 통해 후쿠시마 원전 사고, 기후 위기 등 인간에 의해 만들어진 위기와 직면한다. 이때의 위기는 인간의 파국과도 맞닿아 있다. 김홍중 교수는 이러한 위기 앞에 이 시대를 “가까스로”의 세계로 진단한다. 이 순간, 안정적이고 잘 될 거라는 믿음으로 가득했던 “그냥”의 세계에는 금이 가기 시작한다.

책은 이러한 김홍중 교수의 시대 진단을 통해 시대를 다시 본다. 인류로 영향으로 새로운 지질시대를 규정하는 개념인 인류세를 가져와 적극적으로 탐구한다. 그런 인류세와 함께 이야기하는 것은 파국주의이다. 파국이라는 상황을 시대의 실재로 규정하고 파국주의에 대한 사회학적 탐구를 이어간다. 파국주의는 단순히 비관주의로 통하는 것이 아닌 하나의 사상적 대응으로서 새로운 세계에 대한 재구성, 가능성을 이어간다.

『가까스로- 있음』은 새로운 감수성이 자리잡게 한다. 기존의 안정적인 것처럼 보이던 매순간 발전을 이루는 것처럼 보이던 세계에서 벗어나 인간이 벌여 놓은 파국의 세계를 직시하게 만든다. 그 세계는 불편해 보이지만 우리에게 필요한 진실의 풍경이다.  

s*****7 2025.10.18.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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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까스로-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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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 위기의 영향은 점점 더 구체적이고 일상적인 형태로 다가오고 있다. 이제 그것은 먼 미래의 경고나 과학적 수치가 아니라 이미 우리의 눈앞에서 벌어지고 있는 현실이다. 김홍중의 <가까스로-있음>은 라투르의 행위자-네트워크 이론(ANT), 가이아 이론, 그리고 생태 계급의 개념을 통해 인간중심주의를 해체하고 우리가 속한 세계를 공존의 장으로 다시 읽어낸다. "우리는 숨을 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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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 위기의 영향은 점점 더 구체적이고 일상적인 형태로 다가오고 있다. 이제 그것은 먼 미래의 경고나 과학적 수치가 아니라 이미 우리의 눈앞에서 벌어지고 있는 현실이다. 김홍중의 <가까스로-있음>은 라투르의 행위자-네트워크 이론(ANT), 가이아 이론, 그리고 생태 계급의 개념을 통해 인간중심주의를 해체하고 우리가 속한 세계를 공존의 장으로 다시 읽어낸다. 


"우리는 숨을 쉬어야 하는데, 우리의 폐 속에 끌어넣는 공기는 다른 생명체(식물들)가 생산한 것이다. 우리는 호흡 속에서 타자들을 흡수한다. 또한 우리는 먹고 마셔야 하는데, 우리의 음식과 음료는 많은 경우 다른 생명체의 살과 조직이다. 먹고 마신다는 것은 타자들을 내 신체로 끌어들여 영양을 획득하여 자신을 이어가는 것이다." 302p 

모든 존재자는 타자에 기대어 살아가고 있다. 김홍중은 라투르의 사유를 통해 인간이 자연과 분리된 독립적 존재가 아니라 수많은 비인간 존재들과 얽혀 가까스로 살아가는 존재임을 보여준다.  그리고 인간이 언제나 타자 속에서, 타자를 통해, 타자와 함께 존재한다는 인식에서 기후, 생태 위기에 대한 새로운 사유가 가능하다고 말한다.  


"라투르가 생각하는 구원은 외계 행성을 식민화하기 위해 행위 능력을 더욱 신장시키는 상승이 아니라 땅으로의 귀환에서 온다. 구원은 인간이 획득한 힘과 능력에 ‘한계들’을 부여하는 것에서 온다. 인간 스스로 자신의 본성이라 생각하는 인간성들을 비워 내고, 비인간 생명체의 자리로 내려가야 한다는 것이다. 만물중생의 지배자라는 위치를 버리고, 그들과 동등한 가이아의 시민으로 스스로를 재규정하는 문명적 자기-비움이 요청된다는 것이다." 307p

다시 말해서 인간이 비인간의 자리로 내려올 때,  우리는 비로소 파국을 직시하고 그 속에서 새로운 가능성을 모색할 수 있다. 이때 파국은 더 이상 절망의 상징이 아니라 다른 인식과 주체가 태어나는 생성의 장이다. 

우리가 숨 쉬고 먹고 마시는 모든 행위가 이미 타자의 삶과 얽혀 있다는 자각은 인간의 윤리를 개인의 영역에서 행성적 차원으로 확장시킨다. 기후 위기의 시대에 ‘함께 존재한다’는 것은 단순한 공존의 슬로건이 아니라 세계의 구조를 다시 쓰는 실천적 과제가 된다.
f*********6 2025.10.16.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