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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장을 읽고 나면 멈춰서 많은 생각을 해야 했습니다. 나와 같은 경험에 반가움을 느낀 것이 무색하게 내가 겪지 않은 힘들었을 경험에 먹먹해지다가도 꿋꿋하게 나아가는 한결같은 모습이 나의 꿋꿋함을 위한 응원이라고 생각하니 든든해졌습니다.
꿋꿋하게 '나'로서 살아가려는 작가의 모습은 우리들의 모습과 닮아있지만 이불킥을 하고 싶은 순간이 있기나 했을까 하는 의문이 들기도 합니다. 천진난만한 어린 시절마저도 작가는 너무 일찍 철이 든 모습이었습니다. 어른스럽고 진지하게 살아간다는 것은 이런 모습이리라 생각하며 책을 읽다가 작가의 묵직한 생각에서 피어나는 삶의 고민 한 조각에서 결국 나의 고민을 마주하게 되었습니다.
완벽한 인간이란 없습니다. 완벽해질 필요도 없습니다. 그저 실수하면서도 실수하지 않으려는 애쓰고 다시 시도하는 모습에서 '나다운' 완성이 있을 뿐입니다.
작가의 서툰 위로는 '부디, 꿋꿋하게 살아가기'를 바라는 응원의 다른 말입니다.
우리는 아이들의 심장이 얼마나 작은지 자주 잊습니다. 크기와 상관없이 사랑하고 있다는 마음과 그 표현으로 아이의 심장은 가득 찹니다.
어른의 심장이라고 다를까요? 주먹을 쥐어보세요. 그 주먹의 크기가 바로 당신의 심장의 크기입니다.
우리의 심장을 채우는 것은 오늘 나를 위해 한 일에 대한 기억입니다. 자신이 진정 사랑받고 있다고 기억할 수 있을 만큼 스스로에게 사랑을 주세요. 나에게 주고 싶은 그냥 사랑이 아니라 내가 소중한 사람임을 잊지 않을 사랑을요. 나를 진정 사랑하는 주위 사람에 대한 감사와 사랑도 잊지 않길 바랍니다.
그렇게 꿋꿋하고 충만하게 살아가면 되는 것 아닐까요?
내 몸에 남아야 할 것
1) 따뜻한 밥 먹기 -나를 존중하는 첫걸음, 제대로 된 밥 먹기 -가족과의 식사를 끼니를 때우는 시간으로 보내지 않기(밥을 먹는 시간)
2) 물건의 이름, 자리 찾아주기 -매일 10분 향수병에 걸린 물건들 자기 집으로 돌려보내기
3) 내 이름으로 살아가기 -더 이상 이름 뒤에 숨지 않기
4) 잘 쓰려고 하지 말고 잘 살아보기 위해 애쓰기 -365일 365장 매일 글 쓰며 마음 돌보기 -좋은 삶이 좋은 글이 될 거라는 믿음 가지기
추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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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훈 작가 산문집을 읽고 사랑할수록 살아갈수록 감춰야 할 말이 생기고 마는 그런 날이 있다. 쉽게 꺼내지 못해 마음속에만 쌓아두던 이야기들, 혹은 말로 표현하기에는 서툴고 부족한 마음들이 누구에게나 있다. 나는 이 책을 읽고 마지막 장을 덮는 순간, 글로부터 위로를 받는 특별한 경험을 했다. 누군가의 삶을 진솔하게 담아낸 글이 때로는 가장 따뜻한 위로가 된다. 화려하지도 않고 꾸미지 않은, 그저 평범하지만 한 사람의 사색과 내면의 흔적이 고스란히 담긴 수필 형식의 글이기에 더욱 그렇다. 저자의 10년 인생 속에서 흩어져 있던 기억의 조각들이 모여 지금의 한 권으로 태어났다. 책장을 넘기며 나 역시 언젠가 비슷한 고민을 했던 순간들을 떠올렸다. 마치 식은 찬밥이 따뜻한 라면 국물에 말아져 새로운 맛을 내듯, 과거의 차갑던 기억들이 현재의 감정과 만나 조금 더 따뜻하게 재해석되는 느낌이었다. 그 안에는 다소 서툴지만 진심이라는 양념이 깊게 버무려져 있어, 읽는 내내 그 맛을 곱씹게 되었다. 10년 전, 나는 저자의 첫 책을 읽고 글의 깊이와 파도를 정면으로 마주하는 강렬한 모습에 마음이 끌려 책과강연의 문을 두드렸다. 그리고 1년이 다 되어가는 지금, 나는 이 공간 속에서 서서히, 그러나 자연스럽게 스며들고 있다. 글이 이끄는 인연은 이렇게 긴 시간의 결을 따라 나를 한 자리로 데려다 놓는다. 그리고 지금, 저자가 10년 뒤에 다시 써낸 이 책을 읽으며 문득 이런 생각이 스쳤다. 그때의 글은 파도를 향해 정면으로 뛰어드는 청년의 용기와 패기가 담겨 있었다면, 지금의 글은 산전수전을 겪고 바다를 오래 건너온 노련한 항해자의 고요한 시선이 담겨 있다. 젊음의 치열함에서 시작된 문장이, 이제는 한층 더 깊고 단단해진 문장으로 다가오는 것이다. 이런 글을 읽을 수 있다는 것 자체가 행운이다. 단순히 한 권의 책을 읽는 것을 넘어, 저자의 지난 시간을 함께 걸어가는 듯한 기분을 느낄 수 있어서다. 그리고 지금도 여전히 그 길 위에서 나 역시 글을 쓰고, 삶을 살아가며, 다시 위로를 배우고 있다. 그와 같은 시간을 공유하며 걸어갈 수 있다는 사실에 감사함을 느끼는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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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하루가 무겁게 느껴질 때가 있죠. 누군가가 다가와서 "괜찮아" 한마디만 해줘도 눈물이 날 것 같은 순간. 우리는 그런 시간을 누구나 겪습니다. 하지만 그런 순간, 말 한마디를 꺼내는 게 참 어렵기도 합니다. 위로하고 싶지만, 뭐라고 말해야 할지 몰라 머뭇거릴 때가 더 많죠. 혹은, 누군가의 아픔 앞에서 너무 조심스러워 말조차 꺼내지 못한 적도 있었을 겁니다. 저 역시 그런 순간들이 많았어요. 위로를 건네고 싶었지만, 말이 어색하게만 흘러나오고 오히려 더 어색해진 적도 있었고요. 반대로 누군가의 서툰 위로가 마음 깊이 남았던 기억도 있습니다. 그 위로는 완벽하지 않았지만, 진심이었기에 더 오래 기억에 남았죠. "위로는 서툴러도 괜찮다." 우리는 종종, “뭐라고 말해줘야 위로가 될까?” 하고 고민하죠. 어떤 말이 도움이 될까, 상처를 주지 않을까 걱정합니다. 하지만 이정훈 작가는 말합니다. 서툰 위로에도 힘이 있고, 그 마음만으로도 충분히 따뜻해질 수 있다고요. 오히려 완벽한 말보다 진심이 담긴 어설픈 한마디가 더 큰 울림을 줄 수 있다는 것.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에서 가장 중요한 건 **‘기술’이 아니라 ‘마음’**이라는 걸 책을 통해 다시금 깨닫게 됩니다. 사실 저도 누군가를 위로해야 했던 순간이 있었습니다. 친한 친구가 가족 문제로 많이 힘들어했던 시기였어요. 뭔가 말을 해줘야 할 것 같았지만 어떤 말도 위로가 되지 않을 것 같아 조용히 곁에만 있었죠. 그때는 ‘내가 아무 도움이 안 되는 것 아닐까?’ 싶었는데, 나중에 그 친구가 이렇게 말하더군요. “그때 너 아무 말도 안 했잖아. 근데 그게 제일 고마웠어.” 이 책을 읽고 나서 그 기억이 다시 떠올랐습니다. ‘내가 잘못한 게 아니었구나’ ‘말보다 마음이 더 중요했구나’ 『위로는 서툴수록 좋다』는 그 경험을 다시 해석하게 해줬고, 제 자신에게도 따뜻한 위로가 되어주었습니다. "서툴러도 괜찮아요, 당신의 위로는 이미 충분합니다." 『위로는 서툴수록 좋다』를 읽고 난 뒤, 제일 먼저 들었던 생각은 “나도 누군가에게 괜찮은 사람이었을지도 모른다”는 것이었습니다. 우리는 살아가며 수많은 사람들과 관계를 맺고, 그 안에서 상처도 받고, 또 때로는 상처를 주기도 하며 살아갑니다. 그 속에서 “위로”라는 감정은 참 애매하고, 어렵고, 어쩌면 부담스러운 말일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이정훈 작가는 그 ‘어려움’마저 안아줍니다. "잘하려고 애쓰지 않아도 괜찮다", "말이 서툴러도, 진심이면 충분하다", 그 따뜻한 메시지는 책을 읽는 내내 제 마음을 감쌌습니다. 책을 덮고 난 지금, 문득 지나온 수많은 관계들이 떠올랐어요. 나에게 아무 말 없이 커피 한 잔을 건네준 사람, 어색하지만 괜찮냐고 물어봤던 동료, 별말 없이 “밥 먹자”고 했던 친구. 그때는 몰랐지만, 그 모든 순간이 위로였다는 걸 이 책을 통해 다시 깨달았습니다. 혹시 지금 이 글을 읽고 계신 분 중에도 누군가를 위로하고 싶지만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망설이고 있는 분이 계신가요? 혹은, 누군가의 서툰 말 한마디가 왜 더 마음에 와닿았는지 고민하고 계신가요? 그렇다면 꼭 이 책을 한번 읽어보시길 바랍니다. 『위로는 서툴수록 좋다』는 당신의 마음을 조용히 어루만져주는 책입니다. 또한, 이 책은 단순히 위로를 주는 데 그치지 않고, 우리가 서로를 더 따뜻하게 대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해 생각하게 만듭니다. 우리는 모두 완벽하지 않기 때문에, 완벽하지 않은 위로가 오히려 더 진심일 수 있다는 것. 그 사실을 받아들이는 순간, 자신을 탓하지 않아도 되고, 위로를 두려워하지 않아도 됩니다. 이 글을 마무리하면서 저는 이렇게 말해보고 싶어요. 지금, 누군가의 옆에 있어주고 싶은 마음이 있다면 그 마음 하나면 충분하다고요. 그 마음은 반드시 전해집니다. 말이 부족해도, 행동이 어색해도 괜찮습니다. 진심은, 결국 통하니까요. 혹시 지금 이 글을 읽고 계신 분 중에도 혹은, 그렇다면 꼭 이 책을 한번 읽어보시길 바랍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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챕터별로 공감가는 여유롭게 읽으면서 작가가 전하는 메시지가 무엇인지 작가의 친절함이 글자 하나하나 새겨져 있다. 10권이 넘게 선물을 하면서 책표지에서 부터 전해지는 묘한 기운은 나를 편안함으로 힐링하게 해준다. 서툴다라는 나에게 괜찮아! 잘했어! 그래~그랬구나! 그렇지? 스스로를 다독여주는 진한 감동이 전달된다. 이정훈 작가님 처럼 편안하게 빨려들어가는 공감가는 들쓰기는 어떤 훈련을 해야 가능해질까? 매번 질문하 보지만 답이 안보였지만 10년의 세월을 기록하고 기록하면서 나를 소중하게 믿어주고 꿋꿋하게 계단을 밟고 오르다보면 축적의 힘울 경험한다고 한다. 사랑은 자신의 진심을 온전히 표현하는 용기 그자체인 것이라고 한다. 삶을 향한 미완의 실패를 부끄러워할 필요는 없다고 작가는 이야기한다. 챕터별로 작가의 생각을 이해하기 쉽게 풀어주는 내용이 너무 좋다! 선물하기 최고로 좋은 이 가을에 딱어울리는 글 «위로는 서툴수록 좋다»»추천합니다 #책과강연 #위로는서툴수록좋다 #백일백장글쓰기 #도서서포터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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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로는 내가 받으면 좋고, 필요한 이에게 해줘야만 하는 것이라고 배워왔다. 그래서 완벽하려고 노력해야만 하지 않았을까. 하지만 실제 내가 해 줄 수 있는 위로의 실체는 명확하지 않았다. 이 책을 만난 순간, 부제가 이미 마음을 울려버렸다. "사랑할수록 살아갈수록 감춰야 할 말이 생기고 마는 그런 날이 있다." 바로 내 마음이 속삭이는 말이였으니까. 내가 너라서, 네가 나라서 생기는 오해들. 누구가 가슴 한켠에 켜켜히 쌓아놓은 비밀스런 검정색 말들이 있다. 나이 오십이 넘어 생기는 무게감에 휘청거릴 때 이정훈 작가의 글이 두고두고 챙겨볼 수 있는 식거리가 된다. 그래서 충분한 위로가 될 것 같아 다행이다. 불안과 동거하는 것이 걱정될 떄 당연한 것이라고 알려주고 감정의 위계를 인정하는 게 지혜라는 걸 일깨워 준다. 작가는 10년의 시간을 절대 흩어버리지 않았다. 40대의 잔상을 모아 커다란 퍼즐을 완성했고 그 그림은 잔잔하면서도 옅은 푸르름이 있다. 난 이 푸르름이 잔잔한 파고로 다가왔고 내 안의 불안을 꺼내 위로 없는 위로를 전해줬다. 깊은 내공이 아니라면 절대 쓸 수 없는 인생조각의 글들이 비슷한 세대를 살아온 나의 10년을 회상시켜 준다. 작가가 일러준대로 나이 듦이란, 덜어내고, 내려놓으면서도 오히려 충만해지는 법. 그렇게 또 10년을 살아내면 되겠다 싶어진다. "미시적 우연은 거시적 필연이다." 이정훈 작가와 독자들은 이미 이런 관계이지 않을까. 글을 사랑하는 사람이고, 뭔가 더 탐구하고 싶다면 꼭 만나야 할 인연, "위로는 서툴수록 좋다" 내 삶에 은은하지만 따스하게 비추는 작은 빛이 스며들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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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나’라는 존재를 깨닫게 하고 결국 나를 사랑하도록 실행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것이라고 보여주는 책이다. 삶을 계획하고 탄탄하게 이루어 가고 있다가도 예측 불가능한 현실의 벽에 부딪치고, 넘어지고 좌절하게 될 수도 있다. 바로 그때 누군가의 따뜻한 시선으로 눈을 맞추고 부드러운 말 한마디 그리고 곁에서 온기만 전달해 주어도 다시 살아날 수 있다. 이 책이 바로 그런 위로가 되는 책이다. 책을 읽으면서 나도 모르게 눈물이 주르륵 흐르고 가슴속에 응어리가 풀리면서 위로가 느껴지게 되는 책이다. 책은 40개 목차로 이루어져 있고 어떤 페이지를 펼치더라도 이야기가 공감되고 가슴을 따뜻하게 하는 글의 내용들이 정말 좋다. 특히 목차가 끝날 때마다 갈색으로 만들어진 1~2페이지에 쓰인 작가의 생각과 시선을 표현한 글은 책을 읽는 독자들에게 깊은 여운을 남긴다. 목차 중에서 “ 내가 형이니까요”라는 글이 가장 느낌이 왔다. 아이들의 복싱 스파링을 다루는 글이었는데 복싱 시합을 위해 링에 올라서면 다른 선택지가 없다. 게임에서 지고 있더라도 할지 말지를 스스로 결정하게 하는 것이다. 게임이 시작되면 도망가지 않고 끝까지 몰두할 수 있는 것은 혼자가 아니고 상대가 있기 때문이다. 게임에서 흥분하면 힘이 들어가고 상대를 배려하는 여유를 잃게 되어 결국 감정을 다스리지 못하게 되는데 전반전에 나이 어린 상대편을 이긴 형아는 후반전 마지막에 맞아 주기만 했다고 한다. 이유를 살짝 묻자 대답이 ‘ 제가 형이잖아요’라는 답변에서 ‘어린아이에서 배운다’라는 명언이 떠올랐다. 아이들의 작은 몸에 단단한 무언가가 있음을 표현한 글을 읽고 그동안 큰 언니로서 살아왔던 세월이 생각나서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이 책은 손이 닿는 가장 가까운 곳에 놓아두고 언제고 펼쳐서 읽을 수 있는 책이다. 누구나 타인의 고통 앞에서 멈추거나 할 말을 잃고 지나치기도 한다. 살아간다는 것 자체가 완벽할 수는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겨내고 살아내는 것은 어떤 누군가의 선한 영향을 받고 힘을 얻기 때문이다. 일상을 바라보는 시선을 달리하는 훌륭한 작가의 글은 바로 선한 영향력이다. < 위로는 서툴수록 좋다> 책은 오랜 세월 동안 작가가 삶의 경로와 경험을 담아서 어렵지 않게 읽히도록 쓰인 글들이 담겨있다. 정성을 담아 차곡차곡 눌러쓴 작가의 글이 누군가의 가슴에는 진심으로 닿아서 위로가 되기를 간절히 바라면서 서평을 마무리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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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지금 제 인생의 아주 특별한 여정을 걷고 있습니다. 바로 첫 책 《엄마는 온라인고등학교를 선택했다(가제)의 출간 준비 과정이지요. 사실 저는 책을 쓰겠다고, 작가가 되겠다고 마음먹은 적은 단 한 번도 없었습니다. 문학소녀도 아니었고, 소설 읽는 것을 즐기는 편도 아닙니다. 마지막으로 읽은 소설도 화제가 되었던 <파친코>였고, 사회적 이슈가 되어야 비로소 관심을 가지는 정도였습니다. 읽으면 재미있게 읽지만 다른 소설로 눈길을 돌리지는 않았습니다. 흔히 말하길 소설을 읽어야 공감 능력이 생긴다고 하지요. 그 말에는 저도 동의합니다. 다만 제 공감 능력은 긴 조직 생활을 통해 훈련으로 터득한 것이었습니다. 사회생활에서의 태도, 상대방의 입장을 헤아리는 데에는 자신이 있었지만, 감성적인 글을 쓰는 능력은 부족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 제가 책과 강연의 이정훈 대표님께 코칭을 받을 기회를 얻게 되었을 때, 대표님은 제 글을 보시고 물으셨습니다. “정보성 글을 쓰실 건가요, 아니면 에세이를 쓰실 건가요?” 저는 바로 대답했습니다. “저는 에세이는 못 써요. 감성이 있는 사람이 아닙니다. 제가 책을 쓰려는 이유는 미국 온라인 고등학교라는 새로운 길을 가면서 누군가 먼저 경험담을 남겨주었다면, 제 불안이 조금은 줄고 희망을 품으며 집중할 수 있었을 텐데, 그런 책이 없어서 아쉬웠거든요. 그래서 제가 정보를 나누고 싶습니다.”
그런데 몇 차례 원고 코칭이 이어지던 중, 대표님께서 무심히 A4 용지 몇 장을 제게 주셨습니다. “작가님, 이런 느낌으로 쓰신다면 좋은 글이 될 것 같습니다.” 그 글은 대표님이 어린 아들의 복싱 경험을 아버지의 시선으로 담아낸 글이었습니다. 읽는 순간 무슨 뜻인지 알 수 있었습니다. 정보 전달을 넘어, 독자에게는 희망과 공감을 주는 글이 필요하다는 것이었지요. 엄마로서 저 역시 깨달았습니다. 나의 기록도 단순한 정보가 아니라, 누군가에게는 위로와 용기를 줄 수 있어야 한다는 사실을요.
그 글은 훗날 <위로는 서툴수록 좋다>의 한 꼭지가 되었습니다. 링 위에 선 작은 아이, 언젠가는 홀로 큰 상대와 맞서야 하는 날이 오리라는 걸 알면서도 결국 아이를 올려보낼 수밖에 없는 부모의 마음이 담겨 있었습니다. “부모라는 자리에 서면 언제나 양 갈래 길에 서 있는 기분입니다. 한쪽은 아이 곁에 바짝 붙어서 걷는 길이고, 다른 한쪽은 조금씩 거리를 두고 뒤따라 가는 길입니다. 마음은 늘 첫 번째 길을 택하고 싶지만, 머리는 두 번째 길이 옳다고 속삭입니다. 아이가 넘어질 때마다 달려가 일으켜 세우고 싶은 마음과, 스스로 일어날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는 마음. 이 두 마음 사이에서 흔들리지 않는 부모는 아마 없을 것입니다.” (p.53)
대표님의 코칭은 차분하고도 가치 있었기에 한마디도 놓치고 싶지 않을 만큼 귀했습니다. 그래서 책 출간 소식을 들었을 때, 놀람과 동시에 기다림이 찾아왔습니다. 그가 전했던 소중한 말들이 겹겹이 쌓여 책으로 나온 것이니까요.
책 제목처럼, 그는 위로를 ‘서툴다’고 표현합니다. 하지만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서투름은 그의 겸손’입니다. 40번이나 퇴고를 반복했다는 사실만으로도, 그 겹겹의 흔적이 이미 독자에게 깊은 위로가 됩니다.
다시 한번 말합니다. 서투르다는 것은 이정훈 작가의 ‘겸손’이자, 그의 진정성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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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었다기보다는 느낀다는 감각에 가까웠다. 작가의 하루를, 그가 남긴 발자국을 조용히 따라 걷는 기분이었다. 애써 채운 노력이라던가, 더 단정한 글을 위해 꾸민 흔적은 보지 못했다. 그가 버릇처럼 쓰던 말들이 형태를 입었을 뿐이었고, 그가 실제로 살아가는 하루가 꼭지 꼭지에 담겨있을 뿐이었다. 글은 고스란히 그였다. 마흔 중반의 한 사람으로서, 아들로서, 남편이자 아버지로서, 그리고 두 기업의 대표로서 무수히 중첩된 역할을 감내해야 했을 것이다. 그라고 제 삶을 의심하지 않았을까? 그라고 불안하지 않았을까? 현실 속 끊임없이 힘을 내고 또 내는 그의 모습을 보며 언제나 궁금했던 부분이기도 했다. 작가는 말한다. 강물이 바위를 끼고 돌아가듯, 불안도 삶과 더불어 흘러가는 것이라고. 불안을 인정할 때라야 비로소 우리는 평온에 이를 수 있다고. 분주하게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 작가는 끈질기리만큼 수시로 온기를 찾는다. 서늘한 오늘을 오래된 추억으로 다시 데우고, 생면부지의 팍팍한 타인에게서조차 기어이 모두의 삶을 읽어낸다. 이해할 수 없는 삶에서도 그럴만한 시간들이 있었을 것이라고 덮어두고 믿는다. 흘러갈 뻔한 순간에서 의미를 발견하고, 스스로 잘 가고 있다는 확신을 꿋꿋이 지키고, 그렇게 해서 그와 그의 사람들을 지킨다. 독자는 그가 삶을 살아내는 방식을 따라가며 절로 용기를 얻는다. 우리가 끝까지 의미를 찾으며 살아야 하는 이유를 재차 확인하게 한다. 담담히 써 내려간 작가의 고요한 사유가 우리에게 공감과 감동 그 이상의 의미로 다가오는 이유다. 그가 건네는 서툰 위로는 평범하지만 가볍지 않다. 그의 이야기지만 우리 모두의 이야기다. 한 문장도 겉돌지 않고 깊숙이 들어와 마음을 흔들어 놓는다. 나를 넘어 우리를 말하고 싶게 한다. 툭툭 자꾸만 마음을 건드리는 문장들 탓에 수시로 책이 젖었다. 좋은 사람이 쓴 좋은 책을 가까이에 둘 수 있어 감사하다. 판매를 시작한 지 5일 만에 <국내 종합 베스트셀러 4위>에 올랐다. 전 세계 언어권으로 수출되는 성과까지 만들어내고 있는 중이다. 기적이라고 하고 싶지 않다. 그의 시간들이 만든 당연한 결과다. 이 책이 만들어가고 있는 하루하루에서 나는 많은 걸 본다. 8년이라는 시간 동안 그가 끌어올려준 무수히 많은 삶들이 보인다. 그 보이지 않는 손들이 이 책의 아래를 든든히 떠 받치고 있다. 진정성 있는 삶이란 바로 이런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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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부러 만년필을 구매했습니다. 책의 구절들을 꾹꾹 눌러가며 필사하는 즐거움도 줍니다. 손으로 읽고 있습니다. 사실 욕심의 무게로 삶이 많이 버겁습니다. 자동화와 기계화로 효율은 높아졌음에도 불구하고 업무와 일상의 삶을 살아내기도 버겁습니다. 이것이야말로 역설이 아닐까요? 처음에는 업무가 자동화되면 시간의 여유가 생길 줄 알았습니다. 오히려 실시간으로 확인하고 처리해야할 일들이 늘어갑니다. 전자화된 창구로 감시 아닌 감시 속에 통제아닌 통제 속에 살고 있습니다. 내가 숨쉬는 소리마저 모든 것이 기록되고 있습니다. 실수는 용납되지 않습니다. 증거가 남기 때문이지요. 그저 아무런 의도 없이 남긴 일상의 글과 사진이 위협이 되어 날아오기도 합니다. 아무것도 아닌 그 사진과 글을 가지고 캡쳐하며 증거로 제시하면서 무례하게 행동하는 사람들도 있으니까요 우리는 왜 이렇게 서로에게 힘든 존재가 되고 있는 걸까요? 무엇을 위해서? 역설은 이에 그치지 않습니다. 카카오톡, 메신저, SNS 등 여러 소통 창구로 우리는 사람들과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왜 외로운 걸까요? 왜 소외감을 느낄까요? 이 책을 읽으며 그간 미뤄놓은 인생과 삶, 고통과 불안 등에 대한 많은 생각, 질문과 의문의 시간을 보냈습니다. 때로는 이정훈 작가님과 함께 울었습니다. 오늘의 삶에 치여 있다면, 과거와 어설프게 화해해서 정리해야할 마음이 남아있다면 한 번 작가님과 함께 '쉼'을 통해 스스로를 위로해 보는 시간을 가지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어느 글 하나 진실되지 않은 글이 없습니다. 작가님의 마음 결을 따라가다 보면 '다 똑같구나, 당신처럼 나도 그랬구나. 나도 당신처럼 그랬답니다'를 연발하게 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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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대, 매주 설레는 마음으로 여행을 다니던 시절이 있었다. 그때 강릉 여행길에 친구의 강력 추천으로 찾았던 동화가든 짬뽕 순두부. 사실 나는 짬뽕을 즐기지 않았고, 일부러 찾아 먹을 생각조차 없던 메뉴였다. 그런데 ‘강릉에 왔으니 한 번쯤은 먹어봐야지’ 하는 마음으로 2시간 줄을 서서 맛본 그 한 그릇은, 다 먹어가는 순간이 너무 아쉬워 마지막 한 수저까지 천천히 음미하게 만들었다. 결국 다음 날 점심에도 나는 동화가든을 다시 찾아갔고, 몇 달 뒤에는 그 맛 하나만을 위해 강릉으로 또 향하기도 했다. 이정훈 작가의 산문집 <위로는 서툴수록 좋다>를 읽으며 나는 문득 그때의 기억이 떠올랐다. 책장을 아껴 넘기며 끝이 다가올까 더욱 천천히 읽게 되고, 마지막 장에 다다랐을 땐 아쉬움에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고 싶어졌다. 짬뽕 순두부가 나를 다시 강릉으로 이끌었던 것처럼, 이 책은 읽고 난 뒤에도 곁에 두고 다시 펼쳐보고 싶게 만드는 여운을 남겼다. 책은 총 40편의 에피소드로 이루어져 있다. 정해진 순서 없이 어느 이야기부터 읽어도 상관없다. 각 편은 제각각의 다른 풍경과 이야기를 담고 있지만, 결국 하나로 어우러져 삶의 깊은 울림과 지혜를 전해 준다. 이 점 또한 나는 이 책이 짬뽕 순두부를 쏙 빼닮았다는 생각이 들게 했다. 짬뽕이 여러 재료가 어우러져 깊은맛을 내듯, 이 책의 글들도 서로 다른 대상과의 경험들이 뒤죽박죽 한데 모여 깊은 통찰을 만들어내기 때문이다. 그 안에는 짭조름한 순간도, 씁쓸한 순간도, 따스한 순간도, 진한 순간도 삶의 다양한 순간들이 함께 섞여 있다. 그리고 여기에 순두부가 더해져 더욱 부드럽고 포근한 맛을 자아내듯, 책 속 문장과 메시지는 나의 마음을 더욱 다정하게 감싸안아 주었다. 짬뽕이 삶의 다채로움과 깊이를 말한다면, 순두부는 그 모든 것을 감싸안아 주는 다정한 위로인 것이다. 그래서 나는 이 책을 짬뽕 순두부 같은 책이라고 표현하고 싶다. 삶의 여러 결이 뒤섞여 깊이를 더하면서도, 결국은 따뜻함으로 남아 오래도록 마음을 위로해 줄 것 같기 때문이다. 10년에 걸쳐 일상에서 차곡차곡 쌓아온 이 글들을 읽다 보면 작가의 이야기 속에서 나의 이야기를 발견하며 마음 깊이 스며들고, 그러다 나도 모르게 흐르는 눈물에 책장을 덮고야 마는 순간들과 자주 마주했다. 나뿐 아니라 책의 독자라면, 책을 덮은 뒤 오랫동안 남는 여운에 쉽게 잊을 수 없을 것이다. 놀라운 점은 이 책의 문장들은 억지로 감정을 자극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과한 표현 하나 없이 담담하고 일상적인 표현으로도 마음 깊이 파고드는 힘이 있다. 읽다 보면 마음속에서 잊고 지낸 감정들이 조용히 깨어나고, 무심히 지나온 순간들이 다시 다가온다. 삶의 평범한 장면들이 이정훈 작가의 글을 통해 새로운 의미를 얻고, 그 속에서 큰 위로를 얻게 된다. 앞모습이 아닌 뒷모습에 관한 이야기, 다소 불편하고 성가신 이야기기에 굳이 보려 하지 않았던 이야기들을 매우 진솔하고 깊이 있는 시선으로 담아내어, 자연스레 내 경험을 견주어 보게 됐다. 책장을 넘기며 밑줄을 긋다 보면 깨닫는다. 간직하고 싶은 문장들이 너무 많다는 것. 문장들을 소개하려다 보면 책 한 권을 다 옮겨 적어야 할 만큼 삶에 새기고 싶은 문장과 따뜻한 통찰이 곳곳에 담겨 있다. 때론 잘 다듬어진 말보다 서툴지만 진심 어린 행동이 더 큰 위로가 된다는 사실을 잘 말해준다. 살면서 서운했던 순간도 시간이 흐른 뒤 다시 떠올려보면, 그 안에 담긴 마음을 뒤늦게야 읽게 되는 경우가 많다. 이제는 그 서툼 속에서 따뜻한 진심을 발견할 수 있는 시선이 조금은 생긴 것 같다. <위로는 서툴수록 좋다>는 조용하지만 묵직한 위로를 건네는 내게 참 소중한 책이 되었다. 일상 속에서 나를 다독이고 삶의 의미를 다시 바라보게 만든다. 완벽한 위로가 아니라 그저 조용히 곁을 지켜주는 다정한 온기가 필요한 삶의 순간마다 이 책은 내게 잊히지 않는 한 그릇의 짬뽕 순두부처럼, 그렇게 오래도록 마음에 머물 것이다. 마음을 울린 여러 에피소드가 있었지만, 책장을 덮으며 40대의 앞날을 다짐하게 된, 38번 에피소드 일부를 공유하고 싶다. 파도는 알고 있을까? 중의 일부이다. [정해진 길이 있었던 것도 아닌데, 그저 먹고살기 위한 선택들이 모여 어느덧 지금의 내가 되었다. 매일의 작은 타협과 불가피한 결정들이 차곡차곡 쌓여 지금 내가 걷고 있는 이 길을 만들었다. 해변을 달리며 생각했다. 삶과 타협하고 순응하며 살아온 지난날들을 부정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그 안에 온전한 나의 의지가 담겨 있었던 것도 아니다. 하루하루가 무심히 지나가는 동안, 나는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 조금씩 닳아가고 있었다. 그 닳아감 속에서도 마음 현편에는 늘 다른 나의 모습을 갈망하는 마음이 자라고 있었다. 한번도 되어보지 못한 내가 되고 싶다는 열망. 그 갈증이 커질수록 먼바다를 향한 그리움도 함께 깊어갔다. (중략) 해변에 남긴 내 발자국은 벌써 지워져 버렸겠지만, 그건 중요하지 않다. 내가 그곳을 걸었다는 사실만이 중요한 것이다. 누가 알아주지 않아도, 내가 걸었고, 내가 보았고, 그 바다 앞에 내가 서 있었다는 것. 그곳에는 나의 선택이 있었다는 것. (중략) 바다는 불확실함에 대한 위안이 되어 주었다. 모든 것은 변한다는 것, 그리고 그 변화 속에서도 바다는 바다로, 파도는 파도로, 나는 나로 존재할 수 있다는 것을 알려주었다.] 변화 속에서도 나 자신을 어떻게 지켜낼 것인가를 생각하게 되는 글이다. 그리고 나 또한 다짐해 본다. 변화를 받아들이되, 본질을 잃지 않으려는 마음으로 살아가겠다고. 내가 걸어온 길이 나를 증명하듯, 흔들림 속에서도 나답게 살아가겠다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