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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하고 싶은 화두이고, 일상에서 술안주로도 그다지 삼고 싶지 않은 주제가 ‘죽음’이다. 생각 않는다고 다가오지 않을 리 없어서, 평소엔 잊고 살다가도 이따금 실체 모를 두려움에 떨고는 한다. 그럴 때마다 내겐 이상할 만치 떠오르는 이름이 하나 있다. Kierkergaard. 영어도 아닌 이 말을 어찌 읽어야 좋을지 몰라 인터넷을 뒤적여보니 키에르케고르, 키르케고르 등 제멋대로 불리고 있었다. 서로의 발음은 다르지만 “죽음에 이르는 병”이라는 책 제목만큼 항상 함께 언급되고는 한다. 왠지 제대로 읽어본 사람은 몇 안 될 거 같다. 그렇지만 제목만큼은 여느 베스트셀러보다도 더 유명하다. 그만큼 많은 사람들이 죽음을 인식하며 살고 있다는 방증일 수도 있다. 살아 있는 모든 존재는 죽을 수밖에 없다. 세상 모든 분야에 불평등이 만연했다 하여도 죽음 앞에서 만큼은 만인이 평등하다. 많은 이들은 그를 염세주의자로 지칭했다. 매순간 최선을 다해 살아도 부족할 텐데, 당장 죽을 것도 아니면서 끊임없이 죽음을 언급해야 할 이유는 없다는 게 그 이유다. 그의 신앙을 의심한 이들도 꽤 있다. 그가 살다간 19세기 초반은 중세만큼은 아닐지 몰라도 신의 존재를 부정하는 일은 힘들었다. 굳이 그 시절까지 거슬러 갈 필요는 없을지도 모른다. 오늘날 미국만 보아도 기독교 아닌 다른 종교를 믿는 것보다 ‘무신론’, 즉 신의 존재를 부정하는 일이 더 위험하다고 여기는 이들이 제법 된다. 그렇기에 그가 한때 목회자를 꿈꾸었다는 소리가 조금은 의아하게 들리기도 한다. 세간의 평은 대체 무어란 말인가. 스스로도 제 믿음을 확신할 수 없어 다른 길을 걸었다고 해석해도 될까. 이와 같은 해석은 그의 뜻에 반하는 것일 수도 있다. 그의 삶은 결코 단순하지가 않았다. 재력가였고, 외모 또한 출중했는데 어느 순간부터 뒤틀리기 시작한 그의 인생은 결국 그의 사상으로 이어졌다. 오늘날 사람들은 객관적인 조건은 괜찮아도 스스로를 불행하다 여긴다. 바로 ‘비교’ 때문이다. 기준이 우리 내면에 존재하지 않다 보니 그런 일이 발생한다. 내 삶을 타인의 삶과 견주어 보고 조금이라도 채워지지 않은 부분을 발견하면 그 때부터 조바심이 인다. 그 부분의 흠결이 치명적인 듯 느껴지고, 그 부분만 채우면 완벽할 거 같다. 설마 키에르케고르도 그랬을 거 같진 않다. 처음에는 그의 불행의 원인을 파악할 길이 없었다. 당대 저명한 가문의 아름다운 여인과 약혼을 했다가 파혼을 한 이야기는 아무리 보아도 귀책사유라 부를 만한 게 없어보였다. 갑작스레 그의 마음이 그와 같은 결정을 내려버린 게 가장 큰 이유 같았다. 파혼이 잘못 끼운 첫 단추는 아니었다고 믿는다. 오히려 그의 고뇌는 그보다 훨씬 전에 시작됐다. 그가 접한 사회가 풍요로울수록 그의 기질은 삶의 본질을 탐구할 것을 그에게 명했다. 그 결과 그가 발견한 것은 다름 아닌 괴리감이었던 것 같다. 겉은 화려하고도 번지르르한 삶, 내면을 들여다보면 속이 텅 비어 있다. 존재하되 존재하지 않는 이들이 세상에 넘쳤다. 실존하는 그는 권태를 느꼈으나 다른 이들은 자신이 존재한다는 사실조차도 몰랐으며 권태가 권태인 줄 인식조차 하지 못했다. 권태 탓에 신이 인간을 창조했다고 한다면 신을 모독하는 것처럼 느껴질지도 모르나 유한한 존재인 ‘나’를 넘어서기 위해선 현실의 권태에 눈을 떠야만 했다. 이 문제의 해결을 위해 그는 다시 신에게로 향했다. 너무도 나약해 타락조차 쉬운 우리 인간이 수행하기에는 과한 과업들. 그로 인해 무너지지 않기 위해서는 필히 그래야만 했다. 남들이 이야기하듯 그의 신앙은 의심 덩어리가 아닌 신실 그 자체였다. 깊이 측면에서는 물론, 신앙의 순수함만을 놓고 보았을 때도 다른 이들과는 비교 대상이 결코 아니었다. 오늘날 많은 이들이 느끼는 소위 물질문명으로 인한 것이다. 물질 자체가 본질적인 무언가가 아니다. 우리 인간이 만든 것이자 허구에 불과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우리의 존재 가치를 물질로부터 찾으려 안간힘을 쓰고 있다. 좋은 성적을 거두고 좋은 대학에 입학하고, 좋은 직장에 취업하고 좋은 배우자를 만나 결혼하고. 이 모든 게 결국에는 추구하는 바(물질)를 보다 쉽게 획득할 수 있다는 확신 때문이다. 과거에도 인류는 불안을 느꼈고, 불안의 성질은 오늘날과는 사뭇 달랐다. 키에르케고르는 불안이야말로 인간의 존재 이유라고 생각했다. 살아 있는 모든 존재는 불안을 느낀다. 불안으로부터 자유롭기 위해서는 신에게로의 회귀와 함께 ‘사랑’이 필요하다고 그는 보았다. 그것들이야말로 절대적인 가치를 지닌 것이기 때문이었다. 인간이 만든 건 언제든 변화할 수 있다. 하지만 신과 사랑은 다르다. 모든 가치 위에 존재하는 보편적인 무언가를 지향할 때 비로소 인간은 불안으로부터 탈피할 수 있다. 안타깝게도 많은 이들이 그가 주장한 바를 오해했다. 무엇보다도 사람들 중 진지하게 삶을 대하는 이들이 거의 없었다. 절박한 상황에서 그는 제 삶을 불태워가며 진리를 향해 걸었다. 불과 42세의 나이에 그가 세상을 떠날 수밖에 없었던 건 그의 삶이 보편적이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삶의 운명에 대해 이러한 그리스도교적 이해 이러한 삶의 운명이란 그것이 삶의 권태의 극단까지 밀려가야 한다는 것이다. 그 지점까지 밀려갔을 때, 자신을 그 지점까지 이끌고 온 분이 하느님이라고 주장할 수 있는 사람, 그런 사람은 그리스도교적 관점에서 보건대, 삶의 시험을 통과한 것이며 영원의 세계에 들어갈 수 있을 만큼 충분히 성숙한 셈이다. -코펜하겐의 고독한 영혼, 270쪽 키에르케고르라는 인물이 이 땅에 머문 건 100년도 더 전의 일이다. 시간은 흘렀지만 변한 건 별로 없는 거 같다. 여전히 진리를 추구하는 일은 힘겹다. 왠지 이 시대에도 키에르케고르 적인 인물은 받아들여지기가 쉽지 않아 보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