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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목민심서 중편에서는 '죽란시사(竹欄時社)' 즉 때가 되면 대나무아래 모인다는 말이 생각나게 하는 정약용에게 은혜를 입어 거상의 꿈까지 꾸게 되는 천만호의 정약용에 대한 보답으로 정약용의 집 뒤뜰에 만들어진 대나무정자에서의 벗들과의 이야기로 시작한다.
정조가 아무리 약용을 이뻐하고 그 재능을 어여삐여겨 곁에 두고자하나, 번번히 장원만을 차지하는 약용을 많은 이들이 달가워할리도 그렇다고 정조가 대놓고 약용을 사랑하는 모습이 보이니 그 어느라도 질투를 느끼지 않을 수 있겠는가. 귀한 재목일수록 더 홀대하고 더 단단하게 키워야 함을 알면서도 정조의 마음에 쏙 드는 약용을 정조는 어쩌지 못하고 그저 마음을 드러내보였다. 약용에겐 앞으로의 많은 걸림돌의 시작이기도 했지만 게의치는 않았다. 정치라는 것이 구부러질줄 모르고 타협할 줄 모르는 정약용에게는 도리어 더 많은 적을 만들게 되었음이 못내 안타깝다.
초야에 묻혀있는 약용을 안타까이 여기는 정조가 약용을 부르려 할 때마다 목만중, 홍낙한, 이기경 들이 날뛰었다. 상편에 나오는 암행어사편에서 약용은 경기연천현감으로 있던 서용보를 제대로 벌주었다. 약용의 성품으로 보아 절대로 불의를 그냥 지나치지 못하는 성격과 그를 특별히 사랑해주시는 정조에 대한 신하의 당연한 도리라고 생각을 하였다. 하지만 그로 인하여 서용보는 약용이 늙어 죽을 때까지 18년의 강진 귀양살이에서도 결코 약용을 놓아주지 않았다. 철저하게 전 생애를 걸고 약용에게 복수를 함으로 암행어서의 잘못된 판례가 생기고 말았음은, 더 이상 정약용처럼 대쪽같이 암행어사를 행하지 말아야 한다는, 결코 적을 만들지 말아야 한다는 교훈을 남겼다.
약용에게 행복한 시절을 돌이켜보라하면, 아마도 죽란시사와 더불어 한가로이 세월을 즐기고 벗들과 학문에 심취해 있었던 때일거라고 미루어 짐작해본다.
죽란시사의 벗들중에 한치웅은 약용을 꽤 배려해서 충고를 해주었다. 전하께서 약용에게 의사를 타진해왔었지만 사양했다는 말에. "잘하였네. 자네는 학문을 할 사람이지 정치를 할 사람은 못 되네." 그리고 벗 이주신의 답변을 들어보건데, "자네는 절대로 정치에 발을 들여 놓아선 안 되네. 만일 정치를 하였다가는 생명을 단축시키는 결과를 가져올 걸세." "정치란 아무나 하는 것이 아니라네. 싸움에 지면서 이길 줄 알아야 하고 남의 가려운 곳을 긁어줄 줄도 알아야 하는 것이지. 그런데 자네는 남의 비위엔 아랑곳없이 자네 할 일만 하는 성격이니 어찌 정치를 제대로 할 수 있겠는가. 임금이 설사 골백번을 부른다 하여도 거절하는 게 마땅하네." <소설 목민심서 완결판 (중) 18페이지 일부>
인생이 마음먹은데로 아니면 이주신이나 한치웅의 충고와 걱정대로 약용의 인생이 움직여주었더라도 얼마나 좋았을까마는. 그 죽란시사의 행복하고 소중했던 때는 두고두고 약용이 어려운 처지에 있을 때마다 그저 행복했던 기억으로 회상하고 그 추억으로 인해 다시금 힘을 얻는 그런 인생의 소중한 자산이 되었다.
한양에서 430리 거리인 곡산은 오지 중에서도 오지인 첩첩산중에 있었으며, 동국여지승람에 의하면 고구려 때는 십곡성이라고도 하였다. 곡산은 이성계의 계비인 현비 강씨의 고향으로도 유명한 곳이다. 그 곳에서 약용은 목민의 길을 비로소 실천해보인다. 곡산부사로 임명되어 이계심의 난을 처리하는 과정에서 이계심은 약용의 백성의 입장에서 바라다보는 백성을 위하는 마음이 어떤 것인지를 몸소 은혜입었으며 그로말미암아 곡산은 물론 그 주위의 모든 고을에도 정약용의 위민위국정신은 빛을 발하였다. 명사또의 과정과 목민의 길을 걷기까지 약용은 곡산에서 오롯이 백성과 함께 웃고 울며 그들과 함께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를 배워가고 있었지만, 짧은 2년의 기간으로 목민을 향한 행정가의 모습으로 있었을 적이 그나마 약용의 인생에서 가장 황금기가 아니었을까 싶다. 강진에서의 그의 집필과정은 당연 으뜸으로 정약용을 다시 바라보게 될 시간이었음은 두말할 필요가 없겠지만...
여지없이 신유사옥을 거쳐 천주학쟁이들을 말살하는 것은 남인을 말살하는 것이라고 생각하여 더 기를 쓰고 달려드는 공서파 그리고 세월은 유배지 강진으로 정약용을 재촉한다.
2015.1.12. 소지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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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세는 가나안 땅을 밟지 못하였다.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그 땅을 바라보게는 하였지만 그를 가나안 땅에 들이지는 않으셨다. 그렇다고하여 모세를 사랑하지 않은것이 아니었다. 정말 그 누구도 감당치 못할만큼 사랑을 하셨다. 일방적인 일방통행의 외사랑처럼 보이는 그 사랑을 우리는 이제야 안다. 정조와 정약용의 모습을 보면서 나는 하나님과 모세의 사랑을 생각했다. 옆에 두고 싶었지만, 절실하게 간절했지만 그 누구도 감당못할 시기와 질투에 한나라의 임금인, 권력의 중심에 있던 정조마저도 도저히 드러내놓고 사랑할 수도 없었던, 그런 마음. 그 마음을 또한 누구보다 잘 알기에 더욱 몸을 숙이고 거리를 둘 수 밖에 없었던 약용, 두 사람의 군신의 사랑이 지금 우리시대에서 발견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해본다. 죽음 앞에서 조차 자신의 죽음 이후에 그에게 혹시나 닥칠지도 모르는 시련 때문에 얼굴도 보지 못한채 눈을 감은 정조가 오늘따라 가슴 먹먹하게 불쌍하고 고맙고 잔잔한 위로가 된다.
현감의 일을 맡게되고 암행어사의 일을 맡게된 약용은 무슨일을 해도 정조의 총애에서 벗어날 수 없었고 또한 아무리 몸을 숙여도 자신을 향한 질투에서 비롯된 적(?)들의 시기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그럼에도 백성들은 조금씩 조금씩 약용의 사람됨의 현감으로서의 백성을 향한 사랑을 알게되고 그에게 존경을 표하고 약용바라기를 하는 모습에 난 또 스르르 감동한다. 그렇다니깐 우리 선조들은 선민이라니깐 마음이 이렇게 선하다니깐 하는 알량한 자부심이 부추겨졌다.(나도 어쩔 수 없는 내 식구 감싸기인가?)
유배지의 생활은 일반생활과는 다르다. 나라에서 먹을 것을 준다고 하지만 그 지역의 사정마다 다를것이고 무엇보다 고을 현감의 사람됨에 따라서 유배생활은 천차만별이다. 약전도 그렇고 약용도 그렇고 처음엔 모든 이들에게서 사람취급을 받지 못했다. 하물며 주막의 주모한테조차도 사람취급을 못 받던 그였지만 그러나 그들의 인품이 어디로 달아나겠는가? 백성을 생각하는 목민의 마음은 백성들 스스로가 깨달아가며 그냥 알게 마련인 것을 말이다. 그래서 사람됨이 중요한게 아닐까 싶다.
현시대의 정치인들이 이들의 반의 반만큼만이라도 백성을 향한 사랑이 존재한다면 얼마나 얼마나 사랑 받을 수 있을까 약용바라기의 대를 이을자 누구 없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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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城에 싸인 한양 땅에서 기 못 펴고 지내기가 병든 새 조롱 속에 갇힌 것 같더니만 말채찍 울리며 성 밖으로 나아가니 아득한 산과 들에 야색夜色이 깔려 있네 이 어찌 통쾌한 일 아니겠는가 청운의 꿈을 안고 성실하게 학문을 갈고 닦았으나 결국 그 꿈을 제대로 펼쳐보지도 못한 약용과 그의 지인들, ‘죽란시사’라고 했던가? 그들과 뭐처럼 여유롭게 시간을 보내면서도 그는 나라 걱정을 내려놓지를 못했던 거 같다. 백성이 자신의 삶을 제대로 영위하지 못하고, 결국 민란을 일으키고, 또 그 화가 그들의 가족을 다 몰살시키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그런 악순환이 끊이지 않는 조선 후기 사회에서 그는 오로지 그 악순환을 끊는 유일한 방법이 백성에게 있음을 잘 이해하고 있었다. 백성들이 잘 살아야 비로서 나라가 태평성대를 누릴 수 있는 것이다. 그런 고민을 끝내 내려놓지 못하는 모습을 보며, 정치를 하겠다고 마음을 먹었다면 이 정도는 되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기사, 뜻하지 않게 유배를 가게 된 상황에서도, 그 가난한 유배지에서도 잘만 다스린다면 낙원을 만들 수 있으리라며 자신도 모르게 펼쳐지는 꿈을 보며 헛웃음을 삼켰던 분이 아닌가? 그 어떤 상황에서도 목민관으로서의 삶을 내려놓지 못하던 분이 아닌가 싶어, 새삼 책의 제목을 다시 한번 보게 된다. 그런 정약용이 자신의 꿈을 펼치던 곳이 있었다. 중편에서는 그 곳의 이야기가 흥미로웠다. 바로 황해도 곡산인데, 그는 곡산부사로 부임하면서 자신이 꿈꾸던 세상을 잠시 맛보기도 한다. 신분을 숨기고 사람들을 만나고, 그들의 이야기를 직접 듣는 모습을 보면 ‘팩션 역사소설’ ‘조선 명탐정 정약용’에서 보이는 유들유들함과 말재주가 잘 느껴지기도 한다. 사실 그는 지인들에게 지나치게 외곬으로 일한다는 평을 듣곤 했는데, 죽란시사들과 함께한 시간들이 그를 좀 더 다채로운 인물로 만들어준 것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인상적이었던 것, 바로 세금을 공평하게 부과하는 것이었다. 그가 펼친 정책들은 백성을 살기 좋게 해주었고, 결국 곡성을 부유하게 만들었다. 정말이지 위민위국(爲民爲國)이 무엇인지 잘 보여주는 일이다. 그렇게 오롯이 백성을 위하는 마음만을 안고 살아가던 정약용이지만, 그를 겨냥한 벽파들의 시선은 여전히 곱지 않았다. 결국 벼슬에서 물러나 낙향을 하게 되어 형제들의 곁으로 돌아오게 된다. '선인들 남긴 글 차례로 읽어가며 남은 생애 이 속에서 의탁하리라' 라는 시처럼 그가 살 수 있었다면 참 좋았겠지만, 군신지간이지만 마음이 통하는 사이였던 정조의 죽음은 더 이상 그를 비호해줄 인물이 없어지는 것을 의미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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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민심서》가 북스타에서 처음 출간된 것이 아니라 예전 랜덤하우스에서 출간되었다 이번에 개정되어 출간되었나보다. 서평을 올리려 찾아보니 랜덤하우스의 책도 함께 떴다. "천륜을 저버리기로야 천주학쟁이들이지요. 국가에 이롭지 못하고 부모를 몰라보는 사교를 배척하자는 게 당당하지 않습니까?" 상권(p.171) 조상의 제사를 모시지 않는다는 것, 성리학을 숭상하는 조선에서 그것은 충분히 불효이며 불충이 된다. 조상의 제사를 모시지 않는다는 무리수를 둔 것과 장례식 절차를 무시했다는 것 그리고 조상의 신주를 불태웠다는 것은 충분히 죽을만한 죄가 된다는 말이다. 조선 최초의 순교자가 등장하고 조선 최초로 세례를 받은 천주교 신자였으나 여러가지 이유로 배교를 하게 되는 이승훈, 단순히 양반이기에 의지력이 약한 것이 배교의 이유라고는 생각치 않는다. 다만 그렇게 생각하게 된 이유가 중인이나 천민 신분의 사람들은 믿음을 위해 자신의 목숨을 내던진 반면 양반들은 그렇지 못했다는 것일게다. 아~ 이것도 초기에만 그랬지 중반이나 후에 들어 많은 사람들이 목숨보다 순교를 택했다는 것도 말하고 싶다. 참~ 편파적으로 유별난 사랑은 교만을 낳게 된다. 정조의 전폭적인 지지와 사랑을 받은 홍국영이 좋은 예다. 그렇다면 그와 비교될만한 아니 그보다 더한 사랑을 받는 정약용의 경우는 어떠할까? 사람이기에 교만에 빠지게 되지 않을까 싶은데, 권력의 중심인 왕의 사랑이 특정한 일인을 향해 있다면 그것이 다른 사람을의 심리를 건드리고 질투를 불러일으키는 것은 당연지사. 특히 정약용이 지배세력인 노론이 아니라 약한 남인에 기반을 두었다는 것이 그의 앞길을 가로막게 된다. 난 왜 책의 중요한 내용이 아닌 그냥 지나가도 되는 부분에 딴지를 걸고 싶어지지? 정약용의 부친 정재원은 첫 결혼에서 큰 아들 약현을 낳았으며 재혼하여 약전, 약종, 약용을 낳았다. 정재원은 4남 2녀의 자식을 두었다고, 여자는 일부종사를 해야 한다하여 재가를 금하는 조선에서 왜 남자는 이렇게 많은 재혼이 가능하지? 그것도 매번 처녀장가를 들었다는 것이 불만이라면 불만이다. 가장인 남편을 잃고 자식들과 살아가야 했던 당시 과부들의 삶이 가엾게 느껴진다고 할까. 물론 역사는 당시의 시선이 아닌 현대의 눈으로 본다는 것이 옳지않다는 것은 잘 알지만 그래도 슬픈 것은 슬픈 것이야. 내가 더 관심을 가지는 이는《목민심서》정약용이 아니라 조선 최고의 물고기 백과사전인《자산어보》를 쓴 정약전이다. 얼마전 한창훈 작가의《내 술상 위의 자산어보》와《내 밥상 위의 자산어보》를 읽으면서 더욱 정약전 생각이 났다. 한창훈작가의 책을 읽으면서 <거문도>에 놀러가고 싶은 유혹을 엄청 느꼈고 <예스24 올해의 책>행사장에서 만난 블로거 '왕눈이'님의 이야기를 통해 더욱 거문도를 그리게 되버렸다. 겨울철에 만나는 여수 오동도의 풍경도 무척이 좋았어. 조선은 백성들을 위한 나라라기 보다 양반 등 특권계층을 위해 존재하는 나라 같이 보였다. 특히 지배세력이 왕권보다 더 위에 존재하는 특이한 나라지. 나라의 안위보다 당파의 안위를 먼저 생각했고 외면했기에 전란이 일어나게 된 일도 있잖아. 임진왜란이 그 대표적인 예가 아닐가 싶어. 진정으로 백성들의 삶을 걱정해준 관리(벼슬아치)가 얼마나 될까? 세계 기록문화 유산으로 지정 된《조선왕조실록》은 조선 태조로부터 철종에 이르기까지 25대 472년간의 역사를 기록한 소중한 문화유산이다. 25명의 왕 중 백성들에게 꼭 필요한 왕은 얼마나 될가 궁금해 지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