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다산 탄생 250주년을 맞아 1992년 초판이 발행된 이래 640만부 판매 신화를 기록한 황인경 작가의 <소설 목민심서>가 재 출간되었다. 워낙에 유명한 작품이고 황인경 작가의 10년간의 자료 수집과 철저한 고증을 통해 다산 선생의 일생을 생생하게 재현하고 있기에 대하역사 소설을 읽으면서 그 당시 시대상이 눈앞에 펼쳐진다. 조선 역사에서 손꼽히는 천재인 다산의 삶은 목민(牧民)을 위한 삶이었다. 그의 일대기를 황인경 작가와 함께 다라가다보면 다산이 200여 년 전, 세상을 개혁하지 안흐면 나라는 반드시 망하고 말 것이라는 엄중한 경고가 들려온다. 이 시대의 다산의 정신이 절실하게 필요한 이유이기도 하다.
약용이 문간방에 세들어사는 목수 천만호를 불쌍히 여겨 솜트는 기계를 발명하는는 내용으로 <목민심서>의 상권이 시작된다. 약용의 천재성은 솜트는 기계뿐 아니라 화성증축시에 사용된 거중기를 통해서도 보여지지만, 여러권으로 분책되어 찾기 힘든 내용들을 한장의 도표로 그려내 임금께 드리는 장면에서는 지금까지 왜 아무도 이런 생각을 하지 않았을까하는 생각이 들게 만든다. 상권은 정조가 사도세자를 잃은 해인 임오년에 태어난 약용에게 무한한 신뢰를 주고 있는 모습과 함께 정약용을 시기하고 질투하는 사람들의 모습이 보여지고 있다. 어느 시대에나 천재는 살아나기가 힘이든가 보다. 임금으로부터 무한의 사랑을 받고 있음에도 시기와 질투를 하는 인물들에게서 약용을 구해내기가 어찌 이리 힘든지 모르겠다. 하지만, 약용의 천재성과 주신관계보다 상권에서 핵심적으로 이야기하고 있는 부분은 조선 천주교의 태동이다.
천주실의, 서학을 이야기하면서 정약용을 제외하고 이야기하기는 힘들것이다. 그러기에 <목민심서>를 통한 정약용의 일대기의 전반부는 천주교 태동에 대한 이야기가 역사적 고증을 통해 생생하게 기록되어 있다. 기독교인의 입장에서 이렇게 천주교 태동을 만나게 되는 기회는 적지 않고, 객관적으로 그들의 이야기를 들려주면서도 배교의 의미를 확실히 알고 있는 작가의 글 덕분에 그 시대상을 더욱 세세하게 알수가 있게 그려지고 있다. 천주실의, 서학을 통해 들어온 천주, 하늘의 아버지는 억압박고 힘없는 자들에게는 새로운 세상으로 다가온다. 영.정조 시대가 조선 후기시대 중 그래도 잘 사는 시기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을 했었는데, 힘있는 권력자의 주먹이 바로 앞에 있는 백성들에게는 태평을 피부로 느낄수가 없었던 것 같다.
이승훈, 이벽을 필두로 불기 시작하는 천주교의 바람은 새로운 학문에 눈을 돌리던 똑똑한 남인 청년들을 사로잡았고, 그 속에는 약용의 형제들도 포함이 된다. 후기 조선 사회는 봉건적인 씨족 사였였기에 초기 천주교도들의 관계 역시 인척간이 많고 정치적으로는 남인 세력이 주를 이를 수 밖에 없었던것 같다. 이승훈은 이가환의 생질이며 정약용의 자형이었고, 이벽은 정약현의 처남이며 황사영과 홍재영은 약현의 사위였다. 홍재영은 홍낙민의 아들이며 홍봉주는 손자였고, 정철상과 정하상, 정정혜 등은 정약종의 자녀이고, 이수광의 손자 이윤하는 권일신의 매부이며 안종복은 권일신의 장인이 된다. 이렇듯 약용의 가깝고 먼 인척 관계로 얽힌 사람들이 초기 천주교사를 주도해 갔다. 초기 천주교는 중국을 통해 넘어오면서 처음엔 본래 자리하고 있는 신앙관과 융합되는 모습으로 보여지기때문에 제사제도를 문제로 삼지 않는다. 하지만, 새로운 분파가 중국을 통해서 조선으로 넘어오는 과정에서 문제가 생기기 시작한다.
조선 초기 천주교사에서 이승훈이 세번이나 배교를 하고, 이벽이 배교 후 쓸쓸한 죽음을 맞은 이유는 그들의 신앙이 신앙보다는 학문에 가까웠기 때문이었고, 그러기에 정약용 역시 학문으로 천주교를 받아들인다. 하지만, 정약용을 시기하는 인물들에게는 천주학쟁이 정약용만큼 타격 대상이 되는 것은 없었다. 게다가 같은 남인인 홍낙안, 목만중, 이기경은 벽파들의 앞잡이가 되어 남인의 우두머리들을 없애고 자신들의 권세를 위해서 모든 방편을 동원하는 것으로 보여지고 있다. 그들의 세가 그리 크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자신들의 모든 시간을 약용을 잡기위해 사용하는 것을 보면 시기, 질투의 나쁜 예를 보여주고 있는 것이지만, 이런 일들이 어제 200년전 조선땅에만 일어나는 일이겠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조는 상소가 올라올때마다 약용을 약식으로 유배 보냈다가, 다시 올려오기를 수없이 하면서 자신의 사랑을 유감없이 드러내고 있다.
암행을 하는 정약용의 모습은 영화의 모티브로도 많이 사용되고 있는데, 어디서나 그의 천재성을 발휘하고 있다. 정치에서 손을 떼겠다며 목사 천만호가 지어준 죽란사(竹欄舍)에서 약용과 비슷한 이들이 모였으니 이들이 죽란시사(竹欄時社)이다. 과거를 통과하지 못한 사람은 한 사람도 없으되 아부를 경멸하고, 고관대작 알기를 정치 모리배꾼 정도로 치부하고 장안에서 내로라하는 수재들이었고, 재능과 주견이 뛰어나 가히 치열한 설전과 학문적 비판력을 견줄 수 있는 죽란시사는 이주신, 이치훈, 윤지눌, 한치웅, 홍약여, 이성욱, 이양신, 유진옥, 심화오, 신경보, 한원례, 이휘조, 채이숙, 정약전과 정약용이었다. 이런 수재들이 나라 살릴길을 도모해야함에도 세상은 그들을 초야에 뭍히게 하고 있으니 얼마나 답답한 노릇인가? 사실과 픽션을 오고가면서 <목민심서>상권은 정약용의 젊은 시절을 그와 함께 동거동락하던 인물들과 절대 신뢰를 보여주는 정조의 사랑과 함께 조선 천주교의 태동을 눈으로 보고 느낄 수 있게 해주고 있기에, 목민이 되고자 하는 약용의 젊은 시절의 모습을 여과없이 보여주고 있다.
|
|
![]()
큰 날개를 펼치지도 못하고 쓸쓸하게 생을 마감한 우리의 위대한 조상 다산 정약용... 정약용의 평생의 역작 '목민심서'... 다산 정약용의 파란만장한 드라마보다 더 드라마 같은 장엄한 일대기를 담은 황인경 작가의 목민심서 (상,중,하 세트) 저자는 10년간의 자료 수집과 철저한 고증을 통해 완벽하게 다산 정약용의 인생을 우리에게 알려준다. 상권에서는 정약용을 아끼는 정조임금과의 관계, 신분의 차이를 떠나 백성들을 돕고자 하는 행동, 천주교를 접하게 되는 정약용을 둘러싼 이야기들이 담겨 있다. 정약용이란 인물의 크기와 됨됨이를 알기에 그를 더 자신의 곁에 두고 큰 재목으로 쓰려던 정조임금의 생각은 정약용을 시기하고 질투하는 사람들로 인해 번번이 어려움을 겪는다. 누구보다 정약용을 시기하고 그를 정조임금의 곁에서 멀리 떨어뜨리려는 인물은 정약용과 노론에 맞서 뜻을 함께했던 세 명이 주축이 된 남인들이다. 여기에 암행어사로 나갔다가 광주의 주막에서 우연히 듣게 된 엄청난 비리를 저지른 당시 관찰사로 있던 벽파의 거두 서용보의 끊이지 않는 복수도 크게 작용한다. 중국에서 전파된 천주교가 남인들을 중심으로 퍼져가고 약용은 형 약전을 통해 서양 학문에서 깨우침을 얻는다. 무엇보다 마지막에서 정약전을 중심으로 한 죽란시사의 한 인물의 아내가 보인 지혜로움이 돋보이는 이야기로 상권이 끝이 난다. 중권에서는 약용 형제를 천주교 교리를 읽었다는 것을 알고 있는 세 명의 남인을 주축으로한 인물들뿐만 아니라 약용과 어울렀던 인물들 역시 계속해서 정약용을 향한 악의적인 상소를 계속해서 올린다. 그럼에도 정조임금은 정약용에 대한 신임을 버리지 못하고 그를 곡산부사로 임명된다. 전국적으로 지방사령들의 부패는 극에 달해있고 그 중에서 곡산의 부패는 그 도를 넘어서 있다. 약용의 선정과 백성들의 신임을 깊어지자 그를 모함하려는 벽파의 움직임은 더욱 심해진다. 마지막까지 정약용과 그의 삼형제를 걱정한 정조임금이 49세의 이른 나이로 세상을 떠나는 장면에서는 너무나 마음이 아프고 정조임금이 좀 더 오래 사셨다면 어떠했을까 자꾸 생각해 보게 된다. 국상 중에도 정약용을 극도로 싫어한 이기경, 홍낙안, 목만중은 정약용을 목표로 모함을 계획한다. 주문모 신부의 밀입국과 천주교와 관련된 물품들, 서신 등이 담긴 책롱 사건으로 약용 형제는 귀향을 떠나고 주문모 신부의 희생정신이 또 다른 비극을 초래하고 만다. 다시 한양으로 발을 들여놓는 것도 잠시 또 다시 세 인물로 인해 강진으로 귀향을 떠나게 되는 정약용... 강진에서의 18년의 유배생활을 통해 48권에 이르는 방대한 양의 목민심서를 집필한다. 하권에서는 강진에서 아픈 사람들을 도와주며 백성들의 생활 속에 깊게 자리한 정약용의 모습으로 시작한다. 약용은 다산초당에서 제자들에게 학문을 가르친다. 그의 애제자이며 불교에 입문한 초의와 인연이 닿은 추사가 정약용을 방문하고 심혈을 기울인 목민심서의 초고를 보여준다. 정약용의 글에 매료된 추사는 제자가 되기를 청하고 정약용은 추사에게 현판을 부탁한다. 추사는 정약용과의 만남이 있을 후 4년 후에 34세란 나이에 과거에 합격하지만 그 역시도 세 번의 유배생활을 겪으며 다산 정약용의 인생과 매우 흡사한 인생을 산다. 강진에 약용의 곁에서 도움을 주는 한 여인이 있었으니 그녀의 이름은 가실... 가실은 손바느질 솜씨가 뛰어난 여인은 정약용에게 남다른 감정을 느끼고 그녀를 탐하는 탐관오리들의 손에서 벗어나 약용과 함께 생활하기에 이른다. 정약용의 유배 생활이 끝나고 본가에 들어가 함께 생활하지만 정갈한 본처의 살림살이에 마음을 내려놓고 딸을 데리고 둘 만의 생활을 꾸러간다. 한편 정약용은 강진으로 정약전은 흑산도로 유배를 떠났지만 형제는 남다른 우애를 품고서 살다가 약전이 유배생활 16년에 그만 세상을 떠난다. 약전 역시도 자신이 관심이 가진 물고기의 생태, 습성 등을 담은 과학적인 연구를 글로 남긴다. 허나 이 책이 그만 엉뚱한 곳에 쓰이며 정약용을 노하게 만든다. 유배생활이 끝난 지 10년이나 흐른 후 목민심서의 뛰어남을 인정한 사람들은 그를 다시 조정에 불러들이고 싶었지만 벽파 대신들의 반대에 부딪혀 이루어지지 않는다. 정약용이 회혼식날 숨을 거두며 장대한 글은 끝이 난다. 위대한 실학자 다산 정약용.. 누구보다 청렴결백하며 백성과 임금만을 섬기며 올 곧게 살려는 그는 천주교란 이름으로, 이기적인 목적을 가진 사람들의 모함으로 인해 그 누구보다 굴곡진 인생을 살다간 인물이다. 한 인간의 인생이 이토록 장염하고 위대할 수 있는가 새삼 느낀다. 갈수록 이기적으로 변해가는 세상에서 부모님을 향한 효심, 형제간의 우애, 친구들과의 우정, 정조임금에 대한 무한 신뢰와 존경심을 가진 정약용.. 그가 당파 싸움으로 물든 조정에서 자신의 목소리를 낼 정도의 세력을 가지고 있었다면 조선후기 정치사가 상당히 변화지 않았을까 생각해 보게 된다. 영웅도 시대를 잘 만나야 더 큰 뜻을 펼칠 수 있다. 누구보다 커다란 버팀목인 정조임금의 애정을 듬뿍 받고 있지만 이권다툼 속에 자신의 역량을 제대로 발휘할 기회가 적었던 정약용을 파란만장한 생을 보면서 지금 우리나라의 모습이 오버랩 된다. 대다수의 국민들이 간절히 원하는 바른 정치를 펼칠 리더십을 가진 정조임금이나 정약용 같은 인물은 현재 나타나지 않는 것이 무엇보다 안타깝다. 방대한 분량의 총 3권으로 이루어진 소설 목민심서... 소설이라 드라마틱한 요소들이 가미되어 있음을 알고 읽었지만 온전히 정약용의 생이 다 전해져 오는 것은 그만큼 오랜 시간 고증을 통해 완벽하게 정약용을 재현해낸 저자 황인경님의 노력이 엿보이기 때문이라 여겨진다. 정약용의 감동적인 사상과 삶이 감동으로 다가온다. |
|
어려서 읽었던 목민심서의 감동을 되살리고 싶어 구매한 목민심서 양장본. 양장본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지만소장할 만한 좋은 책이니까...하는 마음이었습니다. 헌데 40페이지 네째줄 술병욜(을)부터 41페이지,53페이지등 줄줄이 이어지는 오타들.. 심지어 주인공 이름 약용을 악용(158페이지 열네째줄)으로 개명까지 하여주니 ..아니 아무리 좋은 책이라도 이렇게 거슬릴 수가 없어요. 리뷰를 보니 다른 분도 오타에 대해' 옥의 티'라고 하셨는데 저는 그 땐 1쇄라고 하지만 저는 2쇄째고 이것은 티의 수준이 아닙니다. 안타깝고 속상한 마음에 적어봅니다.
|
|
시대를 앞서간 다산 정약용의 감동적인 일대기가 드라마처럼 펼쳐지는 황인경 대하역사 소설 목민심서를 20년 전쯤 결혼 하기전에 읽은 경험이 있다. 5권으로 된 목민심서를 손에 땀을 쥐어가며 열정적으로 읽었기에 그 후로 존경하는 위인 중 한 분으로 다산 정약용을 가슴 깊이 존경했다. 그동안 다산 정약용에 대한 여러 책을 읽으며 200여 년 전에 100년을 내다보면서 세상을 개혁하려고 했던 우리 민족의 스승이자 영웅으로 존경하고 우리는 다산 정약용이 남긴 업적을 보존하고 참다운 삶의 가치를 배워야 할 것이다.
이번에 목민심서 완결판 소설 목민심서 책을 읽으면서 부끄럽게도 그동안 소설 목민심서 작가의 이름도 기억조차 못했다. 650만 독자의 가슴을 울린 대하 국민 소설 목민심서의 작가가 황인경 작가임을 마음 깊이 새기게 되었다. 소설 목민심서 상권의 첫 시작은 정약용이 21세때 공부를 하면서 문간방에 세 들어 사는 목수 천만호를 위해 새로운 발명품 솜타는 기계를 개발해주었다. 이로 인해 천만호는 크게 성공하여 거상으로 성장하면서 훗날 정약용을 돕는데 영향을 미치게 된다.
우연히 맺어진 인연은 조선 사회에 열병처럼 번지는 실학을 바탕으로 하여 나라의 앞날을 염려하는 마음과 함께 위의를 다지는 계기가 되었던 것이다. (p42)
정조는 25세에 즉위하여 홍국영의 보필을 받아 역신들을 축출하는데 주력했다. 홍국영은 29세에 병권까지 거어쥐었지만 정조 3년에 죽고 만다. 홍국영의 세도가 막을 내리자 조정은 노론 출신의 벽파가 남인을 누르고 정권을 잡고 영화를 누렸다. 이 시기에 22세의 나이로 초시에 합격한 정약용이 남인에 속했다. 정약용이 24세가 된던 해 이벽과 만남과 함께 천주교를 접하게 된다. 이벽을 통해 약용과 약전 두 형제는 천주교리에 완전히 매료 되었다. 천주교가 전파되면서 천주교 신자들은 천민을 비롯하여 이벽,이승훈,권철신, 정약전, 정약용,정약종 형제 등 남인 계열의 학자들이었다. 그당시 유교 사회였기에 불교 조차도 박해를 받았기에 천주교는 더욱더 인정할 수가 없이 부정하였기에 결국 천주교는 탄압과 박해를 받았다. 결국 정약용과 정약전도 천주교리를 신봉하고 관심이 많다는 이유로 귀향을 가게 된다.
정조는 끔찍하게 정약용을 총해하였기에 늘 곁에 두고 인재를 키우려고 했지만 노론파의 공격을 받게 된다. 정약용은 18년 동안 관직하면서 정조의 명을 받아 수원화성의 설계를 받아 거중기를 발명하여 화성을 짓는데 크게 기여한다. 그리고 암행어사를 맡아 백성을 살피고 탐관오리의 부패를 막고 곡산부사로 있으면서 지방수령으로서 2년만에 민정,재정 등에 크게 성과를 올리면서 백성들에게 존경을 받는다. 정조가 죽고 본격적으로 천주교의 박해가 시작되면서 노론파의 모함으로 정약용과 정약전 형제는 유배를 떠나게 되어 결국 18년간의 유배생활을 하게 된다.
목민심서 마지막 권 하권에서는 흑산도에서 유배생활을 하면서 자산어보를 집필하는 정약전과 다산초당에서 정약용이 다산초당에서 인재들을 양성하고 저서에 몰두하고 집필하는 과정이 펼쳐진다. 18년간의 유배생활을 마치고 풀려나서 고향으로 돌아와 학문적 성과를 바탕으로 목민심서, 흠흠신서, 경세유표 등 생애를 다하는 순간까지 많은 저서를 집필한다. 정약용이 대표작이라고 할 수 있는 목민심서는 목민관, 즉 수령이 지켜야 할 지침(指針)을 밝히면서 관리들의 폭정을 비판한 저서로서 오늘날까지도 일반인들을 비롯하여 정치인, 경찰간부에게도 많은 가르침과 교훈을 심어준다. 베트남 통일의 영웅이자 지도자인 호치민이 필독서로 꼽고 목민심서를 실천했다고 한다.
목민심서는 국가론에 부수되는 지침서와 같았다. 지금 같으면 공무원 수칙 같은 것이다. 이,호,예,병,형,공의 여섯 가지 전에 부임,율기,애민,봉공,진황,해관의 여섯 가지 편을 보태어 하나의 편마다 6조를 포함케 하였다. 고금의 이름을 찾아내어 목민관의 지침으로 삼아 모든 백성이 골고루 그 혜택을 입을 수 있도록 저술한 것이다. (p535)
3년 전 2012년은 다산 탄생 250주년을 맞이했다. 18세기 실학사상을 집대성한 조선 최고의 실학자로서 다산 정약용을 재조명하며 다산 탄생 250주년을 맞이하는 2012년에 한국인 최초로 유네스코 세계문화인물로 선정되었다. 그동안 다산 정약용에 대한 여러 책을 읽으면서 다산의 위대함을 더욱더 생생하게 절실히 느꼈다. 다산은 철학.문학.역학.정치.경제 과학기술.의학.음악.법학. 역사지리. 언어 등 실로 다양한 분야에 큰 업적을 남길 만큼 만물박사로 칭할 정도다. 시대를 앞서가는 충신을 간신들은 그만 놔두지 않고 모함으로 인하여 18년간의 흑독한 유배생활을 겪어야 했다. 다산은 유배 기간 중에도 나라를 생각하며 좌절하지 않고 국가와 민족을 위하여 500여 권 이상의 저서를 후세에 남겼다. 2015년 을미년 새해를 맞아 새롭게 상,중,하로 나온 완결판을 읽게 됨에 다산 정약용의 감동적인 일대기를 다시 한번 만끽할 수 있는 계기이자 뜻깊고 행복한 시간이었다. |
|
미국에 계시는 작은 어머님이 목민심서를 꼭 읽고 싶다고 하셔서 세트를 사서 보내드렸습니다. 저도 덩달아서 상권을 구해 읽었는데요, 중/하권은 아직 안읽어서 잘 모르겠고 상권은 절반은 초기 천주교 역사, 나머지 절반은 젊은 정약용의 번뜩이는 기지와 일관된 목민관으로서의 자세를 알 수 있었습니다. 중/하권을 읽으면 정리가 되겠지요.
여러분들이 좋은 평을 많이 쓰시니 저는 좀 별나지만 오타를 정리해 보겠습니다. 1쇄라서 그런지 오타가 너무 많았습니다.
53쪽 중간: 좌우된 정귄 -> 정변 97쪽 아래: 윤지층 -> 충 172쪽 아래서 2번째: 人)기 -> 빼버려야 할 듯 183쪽 위에서 4번째: 일임은분명하니 -> 띄어쓰기 오류 254쪽 아래서 2번째: 이렇게 시는 것 -> 사는 것 307쪽 아래쪽: 천상의 평회 -> 평화 310쪽 위쪽: 픗고추 -> 풋고추 314쪽 아래에서 2번째: 시실 -> 사실 337쪽 아래: 조시 -> 초시 346쪽 중간: 수렁을 빠져 나온 후. -> 점이 필요 없는 듯 356쪽 위에서 3번째: 지밀한 -> 치밀한 365쪽 아래: 성호시설 -> 사설 383쪽 위: 대히는 -> 대하는 410쪽 중간: 과인의 결 -> 곁 431쪽 중간: 비가 외주지 -> 와주지 432쪽 맨 아럐: 밀리 세금 -> 밀린 443쪽 아래: 사탐들 -> 사람들
|
|
1992년 4월 25일에 초판되어 5판을 지나 완결판이 되어서야 국민소설로 자리매김한 다산정약용의 감동적인 일대기인 황인경 작가의 소설을 읽었다. 년초 귀하디 귀한 휴일을 옴팡지게 소설 목민심서에 쏟아붇고서야 겨우 목민심서 상.중.하를 읽어내었으니, 조금씩 감질맛나게 읽었을 때는 다음 내용이 어떠할까 궁금함도 컸었지만, 바쁜 삶이 다소나마 이 책을 붙잡는 것에 여유를 주었는가싶다. 하지만 토요일 일요일은 온전히 다산 정약용의 일대기에 빠져들었으니 식사도 거르고 책 속으로 빠져들기에 이 책의 마력이 숨어 있다는 것에 의심지 않는다.
조선 후기 개력군주 정조대왕과 함께 정치현실에서 해법을 찾고자 부단히도 노력했던 다산 선생의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효한 목민(牧民)의 정신을 20대의 소설가 황인경 작가의 손을 통해 철저한 고증과 자료수집으로 인해 세상에 나왔으며 이제 30여 년이 흐른 지금 다산 어른의 사상이나 철학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던 아쉬움이 남았다는데 그분의 강진 18년의 유배 시절과 동연배가 되고 보니 그분의 학문적 심오함을 조금을 이해할 수 있게 되어 그분의 시대상을 애통해하던 그 분과 교과감혀 그의 학문적 가치를 더욱 깊이 있게 재해석해 보았다는 저자의 머리말을 시작으로 운명같이 펼쳐진 다산 정약용의 일대기는 그의 가족사와 함께 조선의 사회상, 그리고 사도세자의 아들 정조의 나라를 위하는 마음과 씀씀이를 만나게 되지만, 여전히 현실세계에도 존재하고 있는 그 지긋지긋한 당파싸움의 폐혜는 정약용의 일가는 물론 남인들의 씨가 말살되기까지 평생을 거쳐서 대를 이어 내려오는 그들의 피비린내를 천주학쟁이들을 처단하느라 조선이 합심단결하였던 신유사옥의 처참한 단상까지 그러한 모든 일들이 빠지고서는 목민을 생각했던 오로지 백성의 입장에서 살아가고자 아버지 정재원처럼 청렴했던 그들의 형제들에게 삼미자 정약용의 일대기를 나타낼 수 없었음이 서글프다. 수원화성을 신도시로 만들고 정조의 효심을 완성시켰던 것도 다산 정약용의 실학정신에 기초하였다. 백성을 위한 백성의 입장에서 기초한 실학사상은 조선시대의 사대부들 서론과 노론 남인의 멸족과도 같은 일들이 대를 이어 행해지고 있던 그 때에는 획기적인 진보의 모습이었다. 끊임없이 노력하고 집필하였던 정약용의 기중기 발명과 수원화성 축조 그리고 과하게 정조에게 사랑을 받았기에 더욱 질투를 한몸으로 견뎌야했던 그가 남인이 아니었더라면 그래서 그의 주위에 적들만이 있을것이 아니라 튼튼한 울타리가 있었더락면 암행어사에서 속이 뻥 뚫리는 활약상을 보다가 평생의 원한으로 이어질 서용보와의 악연 공서파와의 끈질긴 악연의 시작등등이 왜 정약용을 따라 다녀야했는지 그것들만 아니었어도 조선사회는 보다 획기적으로 발전하게 되었을것이 눈에 보이는 훤한데 말이다. 인재를 인재로 등용하지 못하고 나라를 위해 일할 수 없는 상황. 예나 지금이나 학문에 주가 있다고 해서 성공하는 것은 결코 아니라 임기웅변 시대를 주무를줄 아는 이들이 성공하고 권세를 누리고 그들에 의해 나라의 인재는 여지없이 봄바람의 꽃잎처럼 흐뜨려지는 이치만이 대를 물리고, 시대를 용케도 비켜가는가보다.
2015.1.12. 소지개. |
|
다산 정약용의 일대기를 그린 소설 <목민심서> 500페이지정도의 분량으로 상중하로 이루어져 있어 처음에는 약간 부담스럽게 여겼는데, 책장을 덮고 나니 아쉬운 마음까지 든다. 그만큼 정약용의 일생과 그를 둘러싼 인물들 그리고 후기 조선시대의 사회상을 잘 그려낸 소설이다. 이야기의 시작은 약전, 약용 형제가 공부하던 집에 세 들어 살던 소목장이 천만호와의 이야기로 시작된다. 그때 정약용과 그의 형 약전은 과거를 준비하고 있었는데, 정약용은 천만호가 일거리가 없으면 굶기를 예사로 한다는 사실을 전해 듣고, 그가 자신의 재주를 살려 안정된 생활을 할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하기 시작한다. 그런 그에게 공부에 열중하지 않고 한눈을 파느냐 충고를 하던 정약전은 지식을 쌓기 위한 학문이 아는 백성을 위한 학문을 펼쳐야 하지 않겠냐는 동생의 말에 감탄하며, 한 수 돕기도 한다. 정약용이 고안한 기계로 쌓인 큰 부에 어쩔 줄 몰라 하는 천만호에게 거상이 되어 부국강병에 힘써달라던 약용은 정말이지 앉으나 서나 백성을 배불리 살게 하고, 나라를 강하게 할 궁리만 하는 인물이 아니었나 싶다. 그와 더불어 천주학에 대한 이야기가 상당히 길게 나온다. 처음에는 약간 지루하다는 생각도 얼핏 했다. 하지만, 책을 쭉 읽어나가다 보니 초기 천주교사를 주도해나간 약용의 친인척들뿐 아니라, 천주학은 정약용을 폄하하려는 인물들에게는 가장 중요한 키워드였기에 어쩔 수 없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약용을 아낀 정조의 이야기도 흥미로웠다. 특히 ‘뒤주대왕의 능’에 얽힌 일화를 통해 정조의 효심을 잘 느낄 수 있었다. 정조는 관료집단을 양성하고자 하는 목표로, 왕실 도서관 규장각에서 신진관료를 직접 지도하는 초계문신제도를 만들었다고 한다. 그리고 정약용은 대과에 급제하자마자 초계문신으로 뽑힐 정도로 정조의 사랑을 독차지하기도 했다. 암행어사를 하기도 했는데, 그때 백성들의 삶을 가까이서 돌아본 정약용은 ‘구중궁궐 깊고 멀어 어찌 다 살펴보랴’라는 시를 남기기도 했는데, 정조가 꿈꾸던 관료라는 체계가 왜 필요한지 잘 들어나는 부분이기도 했다. 하지만, 무부무군이라 하여 서학을 금하게 되면서, 약용의 벼슬길은 요동을 치기 시작한다. ‘태행산 올라가는 수레 신세 되었다니’라는 시의 한 구절의 마음에 콕 박힐 정도로, 그의 삶은 험준한 태행산을 올라가는 형세가 되어버린다. 그래도 상권에서는 관직을 내려놓고 자유인이 된 그의 유유자적함으로 마무리 되어 그래도 다행스러웠다.
|
|
다산 정약용! 시대를 앞서갔다는 그를 아니 그분을 만나는 나의 눈은 감동 그 자체일 수 밖에 없었다. 솔직히 시대를 바라보거나 걱정하거나 하는 그런 성격도 되지 못하는 그저 내 입에 풀칠하기에 급급한 마음을 가지고 하루하루 최선을 다한다는 명목하에 살고 있는 평범한 나에게 다산 정약용은 그저 대학입시를 준비하기 위하여 빨간 밑줄 그었던 추억의 그 이상일 수가 없었다. 약간은 학술적이고 딱딱해서 "책 속에는 단잠이 있다"는 우스게소리가 들리지나 않을까 걱정했는데 소설 목민심서는 참 재미나고 이야기 전개도 빠르다면 빠를 수 있고 역사적인 관점에서도 전혀 삐딱하지도 않았고 왠지 내 성격과 조금은 맞는 구석도 있어서 읽는 내내 "맞아맞아 그랬었지"하는 끄덕임으로 일관될 수 밖에 없도록 잘 짜여진 각본 아니 드라마를 보는듯한 느낌으로 다가왔다. 행복했다. 기대이상이었다는 말도 꼭 덧 붙이고 싶다.
희소성의 법칙이라는 말을 알 것이다. 시장 경제를 예로 든다면 그만큼의 량이 없기 때문에 귀하다는 것이다, 바로 약용이 손재주 있는 천만호의 가족에게 풀칠을 하기 위한 대안으로 만들게한 솜타는 기계가 그것이 아니겠는가? 그것을 밑천으로 천만호는 완벽히 시장경제를(돈줄)을 잡게 되었다. 정약용이 정조에게는 솜타는 기계와 같지 않았을까 생각해본다. 물론 서영보(장원급제를 했다.)가 있긴 했지만 말이다. 정약용은 정조의 총애(편애)에 자신도 어쩌지 못하는 적을 만들게 되었고 그 적은 다름아닌 자신이 돌봐준 친구였다. 권력의 최정상에 있는 자에게 총애를 받는다는것은 수많은 적들을 거느리고 다닌다는 의미가 되었다. 약용은 그런 부분에 대하여 아니라고 수신제국을 몸소 실천하지만 어찌 혼자만 사는 세상이 있겠는가 거기에다가 형 약종의 천주교와의 만남은 더욱 치밀하게 옥죄이게되고 그로인해 결국은 유배길에 오르게된다.
그의 유배생활이 되돌아볼 때 후대들에게는 큰 유산을 남긴 좋은 예가 되었지만 본인은 얼마나 힘들었을까 남은 가족의 고통은 얼마일지 상상할 수도 위로의 말도 내 비치지를 못할 것이다. 유배지에서조차 정조의 총애는 사그라 들지 않았고 더불어 약용의 적들 또한 누그러지지 않았다. 당파싸움에 정도가 무엇인지를 나라의 안위를 생각지 못하고 그저 권력만을 탐하는 그 시대의 그들과 지금의 여의도가 오버랩되면서 슬프고 착찹한 마음으로 중을 만난다.
|
|
좀 엉뚱하기는 하지만 책을 읽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만약 나에 대한 이야기를 책으로 쓴다면 과연 몇 페이지나 나올까? 당연히 다산 정약용과 나를 비교한다는 말은 아니다. 그저 3권을 합쳐 1500페이지가 넘는 이야기를 읽다보니 문든 내 삶을 돌아보며 과연 어떤 이야기를 남길 수 있을지 궁금해졌을 뿐이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10페이지도 안 나올 것 같았다. 왜 그럴까? 나도 열심히 산다고 살아왔는데.
정약용의 일생을 돌아보면 그 이유가 분명해진다. 나는 정약용처럼 백성을 사랑하는 마음을 가져본 적이 없다. 나를 위한 삶만을 살다보니 그저 내 얘기만 있을 뿐 남에게 들려줄 만한 이야기가 없다. 그렇다고 내가 엄청난 능력을 가진 슈퍼 히어로도 아니니 신화 같은 이야기 거리도 당연히 가지고 있지 않다.
이제 내 이야기가 아닌 1500페이지에 달하는 이야기 속으로 들어가 보자. 소설은 시작부터 정약용의 백성을 사랑하는 마음을 보여준다. 끼니조차 제대로 해결할 수 없는 천만호를 위해 솜 트는 기계를 만들어 그가 자립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정약용은 책상에 앉아 말로만, 손짓으로만, 머리로만 백성을 돕고자 하지 않았다. 실제로 자신의 품을 팔아 고민하고 연구하여 백성들의 실생활에 도움이 되고자 한다. 정약용은 이런 실학사상을 후에 제자들에게 놋쇠를 예로 들면서 같은 재료로 서양에서는 자명종을 만들고 우리나라에서는 놋그릇 밖에 만들지 못하는 현실을 개탄하며 실학을 하려는 마음이 얼마나 중요한지, 우리에게 부족했던 것이 무엇인지를 설파한다.
“이는 바로 실학을 하려는 마음이 없기 때문이다. 백성을 위하는 학문, 실생활에 필요한 학문을 하지 않는 까닭이니라.”(하권 p.299)
실학이 제대로 싹트지 못했던 이유 중의 하나는 권력을 잡은 자들이 진정으로 고민하고 온 힘을 다해야 할 일, 즉 백성을 위하는 일보다 다른 일에 정신이 팔려 있었기 때문이다. 정조의 총애를 받는 정약용을 시기, 질투하여 어떻게든지 정약용을 끌어내리려고 하는 일에 몰두하던 이들에게 백성을 돌아볼 여유가 있었을까? 어디 이뿐이랴? 이전에 당했던 일에 대한 원한을 갚고 후환을 없애고자 권력을 잡았을 때 반대당을 완전히 쓰러뜨리고자 누명을 뒤집어 씌어서라도 눈앞의 적을 갈기갈기 찢고자 하는 복수 심리는 또 얼마나 많은 인재들을 사라지게 하면서 조선 후기 사회를 뒤흔들어 놓았는지. 이들에게는 백성이 중요하지 않았다. 자신들의 안위만이 중요했을 뿐이다.
정조와 정약용의 관계를 보며 문득 고 노무현 대통령이 떠올랐다. 뭐라고 꼭 집어서 설명하긴 힘들지만 정조 또한 정약용과 노무현 대통령은 여러 면에서 닮았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었다. 아마 백성을 사랑하고, 이 나라를 새롭게 바꾸고자 했던 그 마음과 애씀이 너무나 비슷해 보였기 때문일 것이다.
이 시대가 나아가야 할 길을 고민하는 이들이라면 다산 정약용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기를 바란다. 다산의 이야기는 지금도 살아있기 때문이다. 우리 모두의 가슴 속에서 그의 이야기는 살아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
|
지금으로부터 약 200여 년 전 조선 후기에는 누구보다 학문을 좋아했으면 나라와 백성을 사랑했던 시대를 앞서갔던 인물이 있었다. 조선 후기 권세를 누리던 당파가 아닌 남인 출신이나 임금 정조로부터 무한한 신임을 얻고 있었으며 실학을 중시하여 백성들의 삶을 이롭게 하고자 끊임없이 노력하고 연구했던 인물이다. 바로 다산 정약용이다. 저자 황인경 작가는 이 작품을 위해 다산 정약용의 삶을 철저하게 조사하고 추적하여 고증하는 한편 그의 정신을 본받기 위해 10여 년 동안 칩거하다시피 하여 이 작품을 탈고했다고 한다. 가히 대단한 집념이 아닐 수 없다. 그렇기에 <소설 목민심서>가 어느 작품보다 다산 정약용의 일대기를 장엄하고도 세심하게 그려내지 않았을까 싶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작가 본인이 젊은 날 썼던 이 작품이 다산 정약용의 철학이나 사상을 잘 이해하지 못했다고 판단, 그분의 삶을 재조명하는 시간을 가지며 이렇게 완결판으로 출간하게 되었다고 하니 이 작품에 더욱 관심이 쏠리는 것은 당연지사가 아닐까. 다산 정약용의 <목민심서>는 우리가 학창시절부터 교과서에서 배웠던 것이기에 아마도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으로 여겨진다. 그렇지만, 그때는 깊이 있게 그분의 철학과 사상을 이해하기보다 교과서에 실린 우리가 해야 할 역사 공부에 지나지 않았을 것이다. 사실 난 작가의 <소설 목민심서>를 전에도 읽어보진 못 했다. 이렇게 완결판이 나오고서야 처음 접하게 되어 읽게 되었다. 조금은 부끄럽고 왜 이제야 읽게 된 것일까 하는 자괴감마저 살짝 들기도 했다. <소설 목민심서>를 읽으면서 든 생각은 이렇게 나라와 백성을 사랑하는 사람이 과거 200년 전에도 앞을 내다보지 못하고 자신의 이익만을 취하기에 급급한 이들에 의해 그분의 참뜻을 널리 펼치지 못했구나 하는 아쉬움이었다. 그것은 비단 그 당시만의 문제가 아니었음을 알고 있기에 더더욱 그러하지 않았나 싶다. 일찍이 다산 정약용은 시대를 앞서가 나라의 미래를 볼 줄 아는 천재 중의 천재였다. 天下腐已久 腐爛(천하부이구 개탄). 세상이 썩은 지 오래며, 부패하다 못해 썩어 문드러졌다는 뜻의 이 말은 21세기 현 사회를 살고 있는 후손인 우리들에게 남긴 말이 아닌가 싶을 정도다. 누구보다 세상을 개혁하고자 했던 그다. 나라가 망하는 것은 결과적으로 외세의 침략 때문이 아니다. 안으로부터의 침략이 결국은 한 국가의 운명을 결정짓기 때문이다. 화려하고 찬란했던 고대 로마의 멸망은 게르만족의 침략에 의해서가 아닌 로마 안의 곪아 터진 사회적, 정치적 문제로 인한 것이었다. 끊일 줄 모르는 썩어빠진 사회적 부정부패의 뿌리를 개혁하고자 했던 그분의 사상이 지금 우리에게도 필요하다는 생각을 해본다. <소설 목민심서>를 통해 정약용의 일대기를 다시 한번 알게 되고 그의 삶 속에서 지금의 우리가 배워야 할 점은 무엇인지 깨닫게 되는 시간이 되었던 것 같다. 똑같은 작품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어떻게 이해하고 어떻게 해석하느냐는 작품을 읽는 독자 개개인의 몫임에 분명하다. 그런 의미에서 이 작품은 내게 두 가지 의미를 갖는다. 하나는 소설로서 그동안 잘 몰랐던 다산 정약용의 삶을 재미있게 읽을 수 있게 해주었다는 점이고 또 하나는 民의 한 사람으로서 國과 民을 위했던 그분의 사상을 통해 지금 현시점을 되돌아볼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는 점이다. 다사다난 했던 한 해가 지고 새로운 한 해가 다가오는 이 시점에 얼마 남지 않은 이 시간은 그동안의 과오를 돌아보고 앞으로의 미래를 생각해보는 올바른 시간이 되었으면 한다. 아직 <소설 목민심서>를 접해보지 못했다면 일독하기를 권하고 싶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