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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구의 사용, 사회적 집단 형성, 언어의 사용, 글자의 발명, 높은 지각과 기억력 등등 인간이 동물과 구별되는 특징은 헤아릴 수 없이 많지만, 그 중에서도 자신의 배설물을 수치스럽게 여기는 점은 인간이 동물과 다른 점 중에서도 매우 도드라지는 특징일 것이다. 나치가 유태인들을 수용소로 운반하기 위해 빛도 들어오지 않는 좁은 기차에 남녀 구분없이 몰아 채웠을 때, 그들은 따로 용변을 볼 만한 공간을 주지 않았다고 들었는데, 나치의 의도는 갇혀 남녀 구분없이 그자리에서 용변을 보고 똥오줌과 함께 섞이면서 스스로의 존엄성을 일찌감치 포기시키는 데 있었다고 한다. 우리는 어린 시절 기저귀를 차며 지내다가 유아에서 영아로 가는 과정에서 스스로의 용변을 스스로 해결하는 법을 배우고 사회화된 이후로는 쭈욱 죽을 때까지 자신의 배설물을 처리하는 공간은 매우 개인적이고도 은밀한, 최소한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을 보호받는 것처럼 보호받는 곳이 된다. 남 앞에서 오줌이나 똥을 누어야 하는 것만큼 치욕스러운 것이 없기 때문에.. 죽음은 생을 걷어가는 의미 이상으로 인간의 마지막 단계에서 인간이 인간으로 살아왔던 모든 인간으로서의 자아와 정체성, 그리고 마땅히 받아야할 최소한의 존엄성을 조금씩 앗아간다. 병실에 계신 내 아버지는 모든 것이 갓 태어난 아기와 같은 상태이다. 노화와 죽음에 대해 말할 때, 아버지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어서, 나는 이 책을 읽는 것, 이 글을 쓰는 것이 조심스러웠다. 피하고 싶은 주제이고, 잊고 싶은 상념들이지만 한시도 떠나지 않는 내 내면에서 내 생각속에서 나 스스로 대화하고 나 스스로 간직해야 할 무수히도 많은 아버지와의 추억들과 바람들이 새어나올 것이 염려되었기 때문이다. 나이를 먹는다는 것의 이면에는 나 자신의 나이 뿐 아니라 부모님의 나이가 함께 들어간다는 치명적인 음모가 도사리고 있다. 그것은 극복할 수 없는 현실이다. 나 스스로 나이를 먹는 것에는 내가 살아온 시간과 기억이 스스로를 채우고 있기 때문에 누구나 그런대로 받아들일 수 있다. 내 아이가 나이를 먹는 것은 아이의 성장이 자신의 성장과 맞닿아 있기 때문에 아기 때의 귀여운 모습을 잃고 고집스런 사춘기를 지나 방황하는 청춘이나 이 험한 시대에 맞서야 할 청년으로 성장했다 하더라도 그것은 언제나 흐뭇한 경험이다. 그러나, 부모는 볼 때마다 눈에 띄게 늙어간다. 부모의 노화는 죽음에 가까이 가는 길이라 가슴아프다. 초라하게 변해가는 모습이 장차 나의 모습이기도 하기에 두렵다. 나이를 먹으면 어릴 때의 기억이 점점 또렷해지는 현상을 겪는다. 이것이 나이를 먹기 때문인지, 부모님의 노화와 병세가 받아들이기 힘든 만큼 돌이킬 수 없는 시간을 거슬러 올라 가서 기억을 헤집는 정서적 현상인지 알 수 없다. 나는 아이들을 너무 좋아해서, 그래서 아이들에게 특히 못되먹은 큰딸에게 존중도 받지 못했던 내 아빠의 과거의 모습들을 순간순간 떠올린다. 가끔 아빠가 듣기 싫어하는 말들을 길게 하면 마구 싱경질을 부렸던 적이 있었는데 그런 것들은 후회한다는 게 아니다. 어릴 때는 자기한테 잘해주는 사람들에게 막대하는 아이들이 있고, 나는 그런 부류였고, 그런 인간인 것이다. 후회한다고 과거로 갈 수 있는 것도 아니고, 후회한다고 다시 아빠가 병석에서 벌떡 일어나 앉게 되는 것도 아니니 말이다. 그저 잠시라도 눈을 뜨고 왔니? 라고 한 마디만이라도 해준다면 이라고 얼마나 바라고 또 바라는지.. 다시 용변 문제로 돌아와서. 내가 가야 하는 시대가 되었을 때는 모든 의학이 포기하는 마지막 순간에 스스로 안락사를 선택할 수 있도록 제도화되었으면 하는 바램이다. 그 누구도 남의 손에 의해 기저귀가 채워지고 소변줄이 달리고 하는 걸 참을 수 있는 사람은 없다. 간병인이라는 서비스 직종이 있어서 좋은 것만 기억속에 남겨주고 떠나고 싶은 가족에게 그런 모습을 보이지 않아도 되지만, 그것 역시 경제적인 뒷받침이 필요하다. 김용원님은 암에 걸린 자신의 어머님의 마지막을 기억하는 방법으로, 어머니의 생을 기념하기 위해 책을 내신 듯하다. 내용은 어머니가 폐암 말기 판정을 받으신 후, 자신의 집으로 모셔와 항암제를 맞으며 투병을 하다가 마지막 병원으로 옮긴 후 호스피스 병동으로 이동 후 돌아가시기 까지의 시간들을 짦막한 기록과 사진들로 채우고 있다. 어떻게 보면 어머니를 위한 텍스트가 곁들여진 가족 사진첩이라고 볼 수도 있다. 지극히 개인적이고 가족적인 기록이다. 이렇게 짧은 글로도 아직 살아 계신 아버지를 언급하기가 이렇게 힘든데, 그 아픔의 시간들을 회상하며 사진을 뒤지고 책을 엮는 과정이 얼마나 고통스러웠을 지 상상이 되지 않는다. 누구나 기억하는 방법은 다르다. 마음 속에 꽁꽁 묶어두고 아무도 없을 때 혼자 되었을 때 눈물흘리는 사람도 있지만, 이렇게 사진과 글의 기록으로 한 권의 책을 엮는 사람도 있다. 그 어떤 방법으로도 죽음을 되돌릴 수는 없고 막을 수도 없고, 부모님은 언젠가 우리 곁을 떠나가시고, 우리는 남은 인생을 그리움과 회환으로 가득한 채로 그 죽음에 이르는 길을 걸어야 한다. 그러나 내게.. 죽음을 생각하는 일은 언제나 어둡고 무겁고, 우울하다. (파블01_0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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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엄마가 다쳤다. 손몬 골절로 큰병원에서 수술 받기 위해 내가 살고 있는 도시의 한 병원으로 입원하셨다. 입원 전에 우리집에서 머무실 때의 첫 날 모습을 잊지 못한다. 아파서 고통스러워 하시던 모습. 다친 첫 날 까지만 해도 당신이 해야할 일들과 당분간 혼자 계셔야할 아빠 걱정을 하시더니 응급으로 처방받은 진통제의 약효가 떨어지자 고통에 신음하며 어떤 자세가 고통을 덜어줄까, 계속 몸을 이리저리 트셨다. 결국 소파에 기대어 힘들어 하시며 "집안일이고 뭐고 안아프기만 하면 좋겠다." 라고 말씀하셨다.
김용원 시인의 어머니도 비슷한 말씀을 하신 게 생각났다. '이렇게 사는 것은 사는 것이 아니야. 이렇게 살아서는 안돼. 이건 산다고 볼 수가 없어.'(85p) 시인의 어머니는 폐암 말기 환자였다. '통증은 인간의 존엄을 무너뜨렸다.'(86p)란 말의 의미를 조금은 알 것 같았다. 폐암의 고통은 칼로 헤집는 정도의 통증이라 한다. 산고보다 몇 배나 큰 고통이라고 한다. 그러한 고통 앞에서 어떤 인간이 자신의 존엄을 지키며 버틸 수 있겠는가.
김용원 시인이 부산에 사시던 어머니를 모시고 몇 달간 간병하며 느끼고 생각한 것들을 정리한 글이다. 중년의 사내가 서글프게 울부짖는 글이다. 사진도 함께 게재된 책이다보니 더 절절히 다가온다. 자꾸만 늙어가는 부모님 생각에, 언젠가는 나의 일이 될 수도 있다는 상상이 나를 힘들게 한다. 그저 아프지만 마시기를, 이란 생각밖에 들지 않는다. 물론 자식인 내가 힘들 것이란 것도 이유 중 하나이다. 부모님이 아픈 것을 곁에서 지켜보는 것이 얼마나 괴로운 것인지, 마음뿐만 아니라 몸도 힘든 것인지. 긴병 앞에 효자 효부 없다는 말이 생각난다.
시인은 어머니의 삶을 기록하고 싶었던 것 같다. 자신이 간병한 기록이 아닌, 어머니를 고이 간직하고 싶어서 어머니의 성격부터 사시는 곳, 사람 관계까지 서술한 것 같다. 보통의 어머니이기도 한, 그런 우리 어머니다. 영화 국제시장을 보고나서인지 이 어머니의 삶이 어땠을지 더 감정이입이 잘되는 것 같다.
부모님께 드릴 말, 드려야 할 말은 정해져 있다. 사랑합니다. 고맙습니다. 건강하세요. 자식이 부모님께 할 수 있는 수많은 말들 중 이만한 말을 넘어설만한 것은 없다. 입에서 참 안떨어지는 말이기도 하다. 지금 낯선 병실에 누워계실 엄마 생각에 마음이 짠해진다. 내일 아침 일찍 가보리라. 나의 어머니, 내 어머니, 손을 꼭 잡아드려야지. 수술할 때 겁먹지 말라고 위로해야지. 힘내라고 속삭여야지...
오타 : 81p 페 -->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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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자아자님으로부터 받은 첫 선물이다. 그동안 너무 바빠 밤새느라 책을 못 읽다가 아자아자님에게 미안해서 라일락님에게 책을 먼저 빌려드렸다. 그랬더니, 라일락님이 먼저 리뷰를 쓰셨네..다행이다.
작년부터 우리 엄마가 많이 편찮으시다. 작년에는 온 가족 가슴이 조마조마했다. 그러다가 연말쯤 나아지셨다가 요즘 아직도 별로 좋지 않으시다.
그래서 '엄마'라는 그 이름만으로도 나는 눈물이 핑돈다.
얼마 전 보았던 <동경가족>이나 <이별까지 7일>이라는 일본의 가족시리즈 영화를 볼 때 눈물이 났다. 두 영화 모두 엄마가 갑자기 아파서 죽음에 맞닥뜨리게 될 때의 가족을 그린 영화이다. 영화 속 상황에 자신을 대입하게 된다. 그러면 감정과 가슴이 요동친다.
예전에 엄마가 건강하시고 기운차실 때는 이런 기분을 몰랐다. 그런데 이 책을 읽으면서 나는 마치 저자와 같이 병실에 가고 항암치료를 받고 아픈 엄마 침상 옆을 지키는 것 같았다. 너무나 생생하게 엄마와 가족사진을 올린 작가의 글 덕이다.
요즘은 대부분 통증을 못 견디는 지경으로 병이 악화되고, 마약성 진통제를 투여하면서 마약성 치매를 겪게 되고 인간으로서 더 이상 겪지 못할 고통을 다 겪은 후에 세상을 마감하게 되는 것이 병원에서 죽음을 맞이하는 단계인 듯하다.
그래도 작가의 엄마는 조금은 운이 좋았다. 사랑하는 자식들의 병수발을 직접 받았으며, 병원에서 죽음을 맞이할 수 있었으니..요즘 병원들은 노인 환자를 잘 받지 않는다. 게다가 사형선고를 받은 환자라면 더더욱 입원시키는데 인색하다. 사망율 높아진다면서..특히 대형병원들은..
그래서 많은 노인환자들이 진통제 투여조차 변변히 받지 못하고 마약성 패치를 몸 어딘가에 갈아붙이면서 참을 수 없는 고통으로 집에서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
이런 글을 읽으면 가슴이 저려온다. 마치 멀지 않은 날 언젠가 우리가 겪어야 할 고통이어서..죽음이나 통증으로부터 엄마를 지켜주지 못하는 죄책감을 껴안고..그래도 우리는 자신의 일상을 지켜야하고 돈벌이를 해야하고..그 많은 이유로 엄마의 침상 옆을 온전히 지키지 못하게 된다.
엄마..그 이름만으로도
엄마가 아프시다. 많이 아프시다. 그래서 내 마음도 내 정신도 아프다. 그저 조금 더 자주 찾아뵙고, 맛있는 음식을 사서 나르고..백화점에 가서 따뜻한 옷과 제일 편안하다는 이불을 사들고 간다..그러나 부족하다.
멀리 학교를 다니던 나를 위해 단 하루를 거르지 않고 새벽밥을 챙겨주던 우리 엄마. 내가 아프다니까 내 전화를 받던 아버지와의 통화가 끝나기 전에 엄마는 병원 내 침상 옆에 와 계셨었다.
그런 엄마에게 난 무얼 할 수 있을까. 작가가 끊임없이 좌절하였던 것처럼..엄마의 고통과 정해진 죽음 앞에서 자신의 무력함이 참담했을 것이다.
작가의 엄마가 고향인 부산집을 그리워했듯이, 울 엄마는 무엇을 기억하고 싶으실까. 엄마는 아프신 중에도 힘없는 미소를 지으며 지금도 우리 밥 걱정을 하신다.
아아..그래서 이런 책이 싫다. 자기 고백을 하게 만드니까. 읽다보면 자신을 그 상황에 대입하며 나도 모르게 파주병원에 내 걸음이 가 있으니까..작가와 같이 아프고 같이 신음하고 같이 좌절하게 되닌까..
그래도 나는 운이 좋은 자식이었다. 엄마가 건강하실 때 꽤 많은 시간을 함께 할 수 있었다. 여행도 모시고 다닐 수 있었고. 맛있는 음식을 먹으러 같이 많이 다닐 수 있었다.
엄마 사진을 열심히 찍어놓아야겠다. 더 자주 찾아뵈어야겠다. 맛있는 것도 더 많이 사들고,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침대도 침구도..더 편하게 해드릴 수 있는 것을 찾아내야겠다.
그리고..무엇보다..마음을 살펴드려야겠다. 우리가 잘 사는 모습도 보여드리고 즐겁고 행복한 이야기도 많이 해드리면서.. 난 영원히 준비가 되지 않을것 같다. 엄마가 편찮으시더라도 지금 상태 그대로라도 오래오래 우리 곁에 계셔주기를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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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와 제목에 대한 느낌> 오렌지색은 포인트색으로 쓰인지가 얼마 안된다. 절기상 겨울인지라 따듯한 느낌이다. 오렌지 부분을 보면 사람 실루엣이 있다. 늙어지신 부모님네 모습이다. 왼편의 잘 익은 감나무 가지와 이해인 수녀의 시. 세움과비움 이라는 출판사 이름이 맘에 든다. 첫 대면이다.
<이책은> 김용원 저자께서 보내주심.
<저자는>
<책내용 맛보기>
<책읽은 소감> 모임 회장의 문자를 받았다. 친구 어머님 별세...지난 달에도 친구 어머니가, 친구 남편이 세상을 떠났었다. 누구나 한번 이 세상에 왔으니 누구나 한번 저 세상으로 가는 건 불변의 진리. 태어나서 한 발 한 발씩 죽음으로 같은 시한부 여정임을 누구나 알지만 누구나 인식하면서 살지는 않는다. 알지만 모른체하고 싶은 아니 자각하면서 살기에는 이 세상은 바쁘고 유쾌한 일은 아니니까. 영원한 부재중이라는 건 다시는 볼 수 없다는 다시는 말할 수 없는 영원한 차단임에랴. 그럼에도 인간이기에 지금 상황이 소중하고 소중한만큼 소중한 사람에게 잘해야 되는데...늘 시간은 기다려주는게 아닌데...
이해인 수녀님의 암투병 소식을 들은지가 언제던가 싶었는데 얼마전 기사에서 완치된 상태란 걸 알았다. 종교를 떠나서 비종교인도 좋아하는 애송시인이기도 한 분. '민들레의 영토'로 맑은 시심을 길어올리시는 분을 대했던 때가 언제이던가. 새삼 이해인 추천사를 대하니 감회가 새롭다. 어느새 세월은 이리도 흐른 것인가. 나도 어느새 엄마라는 입장이 되어 갓 국방의무를 다하고 있는 아들이 있다. 나도 내 엄마에게는 자식이거늘 내가 엄마가 되고 보니 매사 내 엄마의 알 수 없었던 시절을 떠올려 보게 된다.
대개의 부모는 자식에게 그럴 수 없이 다 주고도 늘 모자란 마음이다. 그러나 자식의 입장은 어찌 또 그렇게 다를 수 있나. 받고도, 받았어도 받았다는 생각을 덜하는 것 같더라는. 오죽하면 부모자식 관계는 채무자 사이라는 말이 다 나왔을까. 부모나 자식이나 저마다의 품성따라 됨됨이가 있다고 본다. 그건 교육이 되어서 발전한 후천적인 것들도 있겠지만 배우지 못했어도 타고난 품성이 어질다든지, 넉넉하다던지, 인자하다던지...이와는 반대의 성향을 가진 이들도 있어서 비교가 된다.
잘되면 내탓이고 못되면 조상탓을 하는 자식들은 대체로 부모네의 영향을 받지 않았을까...그 집안에 면면히 흐르는 눈에는 보이지 않으나 정신적인 유산이 있기에 그 정신은 3대를 간다는 사실. 그 사실을 교육으로 알게 되던 날 모골이 송연했었다. 조부모의 정신이 부모에게 고스란히 무의식으로 답습되고 각인되어 습관화되고, 그렇게 부모의 무의식적인 사고나 행동방식이 자식에게 판박이처럼 박힌다는 생각을 해보라. 눈에 보이지 않고 무의식적으로 습관화가 되노니 자신도 모르게 어느새 하고 있는 부모의 닮은꼴 ...
저자와의 인연은 이 공간 안에서 연재글을 통해 답글과 댓글로 이어졌다. 처음부터 연재글을 좋아했던 건 아닌데, 어느 순간부터 하루 한 페이지씩 책을 읽는다는 느낌으로 만나볼까...연재글에서 저자와 답글로 소통을 하노라면 작품도 더 잘 이해하고 또 소통을 통해 저자 자신도 미처 생각지 못했던 다른 관점을 보기도 하는 잇점이자 장점이 분명코 있었드랬다. 소통의 장이 대단했던 건 '조드' , 김인숙, 김언수, 안보윤... 그런 인연이 잠시 있었을뿐이고, 붓다와 십자가 세트를 책나눔으로 드렸고 영화표 2매를 보내주신 걸로 끝. 지난주에 신간을 보내주셨고 처음으로 음성 통화를 해보고.
'언젠가는 엄마에게'는 저자 어머니의 암투병부터 돌아가시는 여정까지의 시간들, 7개월을 적었다. 다행하게도 사는 동안 아직까지는 눈으로 직접 암투병 하시는 분들을 본 적은 없다. 다만 모임 엄마의 남편이 폐암 진단을 받고 예후수명보다도 더 일찍 생을 마감했다는 몇 년 전의 일과 ...그 고통을 짐작도 못하는데 이 책을 보니 환자는 물론 가족도 초주검이 되는 상태. 감옥 안에 갇힌 상태라고 저자는 표현을 한다. 모든 일정이 환자를 중심으로 닥터의 한 마디에 따라서 움직여야 하는 시간들. 환자는 환자대로 통증때문에 또 생각마저 없는 상태가 아닐때는 자신때문에 라는 미안함 등이 총 망라된 감정을 제어하지 못하고...
폐암 환자는 통증이 심해지면 눕지를 못한다고 한다. 침대에 이동하는 식탁을 펼친 채 널부러지듯 엎어지신 저자의 어머니. 산소호흡량을 2리터로 시작해 최고 15리터로 올려지면 이젠 멀지 않은 날을 예상해야 한다고. 통증에 장사 없다고 심해질때는 완화병동에서 지내고, 병원마다 다른지는 몰라도 임종실이 있다는 사실도 처음 알았다. 대부분 막바지에 다다른 환자의 증상이 있는데 그럴때 임종실로 옮기면 3시간~72시간에 운명하신다고 한다. 병실이나 휴게실에서 텔레비전을 볼 수 있는 환자는 어떻게 보면 환자도 아니라고 한다. 그만큼 통증이 몰아치면 진통제를 주입해야고 정신이 몽롱하니 자는듯 정신이 없는 상태가 되는데 그걸 지켜보는 보호자의 마음이 그저 답답하고 답답할 뿐...
저자는 어머니와 함께 한 그 간병 기간이 그래도 살아계셔서 행복했다고 기술한다. 장남인 형님이 30년을 모셨는데 어느날 통증을 호소하셨고 폐암4기 진단을 받고 그렇게도 가고 싶어한 집과 작별, 이 세상과 이별을 하셨다. 7개월간의 간병 기간을 자신이 그나마 모시면서 죄인된 심정으로 속죄하고 할 수 있는껏 보살펴드린 게 그나마 도리여서 다행이라고. 어머니와의 모든 추억과 기억을 상념인 듯 실제 상황을 담담히 초월한 듯 적는다. 글은 길지 않아 일기로도, 메모로도 보여지는데 그게 간결해서 또 여러 감정을 불러 일으킨다. 살아실제 죄만 지었다고 자책을 하며 어머니께서 자신에게 하셨듯이 자신은 자식에게 그렇게 할 수 없음을 잘 안다고 했다.
내 아이가 장성하니 나는 늙어가는 중이다. 내가 늙어가는 중임은 내 부모님은 연로하시기가 말로 할 수 없다는 얘기. 가실 날이 점점 가깝다는 것. 담주에 친정아버지 생신이다. 부모님이 연로하시니 어버이날이나 생신이면 돌아오는 해엔 볼 수 있으려나 이런 생각이 몇 년 전부터 든다. 일상에서 점점 문상가는 일이 잦아짐도 한 원인이다. 부모님께 잘해야함은 내가 내 자식이 소중한 것과 마찬가지다. 내 아이가 소중하듯, 내 부모님도 나를 그렇게 키웠다는 걸 잊으면 안된다. 같이 살지 않아서 할 수 없는 것들도 많지만 전화라도 자주함이 도리고 그게 관심이다. 인생의 대열에서 비껴난 듯한 외로움을 부모님네는 내색하지 않으신다. 돌아가시기 전에 못 드셔본 음식이라도 잡숫게 택배를 이용함도 좋다. 물론 당뇨라든지 지병이 없으시기에 가능한 일이다. 이 책을 통해 내 부모님 살아계심이 다시 한번 감사하게만 여겨지는 날들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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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슷한 연배의 작가가 쓴 글이기에 더 공감이 가는 글이었다. 어머니라는 말보다는 엄마라는 말이 더 정감이 가고 기억하고 싶다. 7개월간의 투병생활동안 관찰한 엄마와의 기록물. 아니 마지막으로 나눈 공감의 산물이다. 나 역시 대학시절 간암으로 보내 드린 엄마 생각에 예사롭게 볼수가 없었다. 대전에서 전주 예수병원까지 모시고 다니다가 더 이상은 의미가 없다는 의사의 말에 집에 모셨고 얼마후에 돌아가셨다.
환자의 고통은 당해보지 않은분들은 알수 없을만큼의 고통이 존재한다. 옆에 있는 사람도 도와줄수 없는 그 고통을 안스럽게 쳐다볼수 밖에 없는게 더 마음이 아프다.목까지 차올랐다는 말씀에 다시 한번 마음이 쓰라려집니다. 의사도 어쩔수 없다는 말이 나머지 남겨진 자들에게는 어떤 의미로 전달이 될까요.
"세상의 모든 어머니는 예수다", "가슴에 멍이 들어도 보고 싶다", "봄은 아무나 맞을수가 없다"라는 말들이 너무 공감이 됩니다. 신을 대신해서 보내주신분이 어머님이라는 말씀.네 맞아요. 가장 가깝고도 감사한 신, 그분이 어머니 맞습니다. 늘 남편과 자식 밖에 모르고 헌신해오신 그러고도 자신의 고통은 감내하기 힘들어도 자식에 대한 걱정은 늘 똑같다. 매년 맞는 봄이것만 과연 또 다시 맞을수 있을지...
걸어서 다닐수 있을때는 그 소중함을 모르죠. 내 자신의 몸을 자신이 추수리지 못할때의 그 고통. 역시 당해 보지 못한 사람들은 모르죠. 점점 수평이 되어야 하기에 연습이 필요하다는 말 처음에는 이해 하기가 힘들었어요. 아기가 태어나면 어떻게 해서든지 수직이 되기 위해 안간힘을 씁니다. 처음에는 엎어지고 굴러다니고 곧추 앉고 붙들고 일어서고 그러다가 결국은 일어서죠. 나이가 들면 허리가 굽고 점점 누워있는 시간이 길어집니다. 결국 수평으로 돌아가는거죠.
저는 어머님을 떠나 보낸지 30년만에 다시 만나뵈었습니다. 지난달 초 윤달에 산소에 모셨던 어머님의 묘를 파묘하여 화장을 해드렸거든요. 산소 주변이 늘 물이 흐르는것 같고 해도 잘 들지 않아 차라리 화장을 해드리는게 좋을것 같다는 생각에 하게 되었어요. 관은 거의 썪질 않았지만 관 안에 시신도 광목이 다 녹아내리고 살은 없어졌지만 뼈는 황금색으로 손가락뼈 마디까지 그대로 남아계시더라구요. 인부들 말에 의하면 아주 보존이 잘된 상태라고 좋은 일이라네요. 잘 화장을 해서 저희 집가까운 산밑 개울가에 뿌려 드렸습니다.아마도 우리 가족을 자주 볼수 있어서 좋아 하실것 같아요.
세상에서 가장 높고 깊고 넓다는 어머님 마음. 그의 십분의 일조차 헤아릴수 없는 자식으로써 이 책을 통해 다시 한번 어머님을 기억해 볼수 있어서 너무 좋았습니다. 본래 시를 쓰신다는 작가의 깔끔한 글과 사진 그리고 그림들... 가끔은 그리워질 어머님이 생각나면 열어볼수 있는 책이 될것 같습니다. 작가님께 감사하고 이 책을 주선 해주신 아자아자님께 다시 한번 감사를 드립니다.여러분도 한번 어머님과의 여행을 떠나보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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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 언젠가는 엄마에게
저자 김용원 은 1962년 서울에서 출생, 아버지의 직장을 따라 부산에서 성장했다. 동아대 법대 졸업, 숭실대 대학원에 서 가족법을 전공, 이혼시 부부재산권분할제도의 개선에 관한 연구로 법학박사 학위 취득.문학 활동으 로는 조병화 시인의 추천으로 월간 열린히 20호에 <웅촌 화장장>외4편의 시를 발표하면서 작품활동을 시작. 작품집에는 <목마른 날의 초상> <시가전> <어머니의 전쟁> <당신의 말이 들리기 시작했다>가 있으며, YES24에 소설 <열정>을, 교보문고 북뉴스에 <사랑과전쟁>을 연재했다. 시나리오에 노무현 대통령의 탄핵을 다룬 <노란국화>와 베토벤의 피아노 소나타23번 <열정>을 모티브 로 해서 한 남자와 두 여자의 사랑과 이별을 그린 <열정>(Apassionate)이 있다. 그는 현재 파주 금촌에서 직장인 서울 신촌을 오가며 사랑하는 아내와 소희, 소명 두 딸과 살고 있다.
추천의 글 세상에서 가장 높고 깊고 넓고 포근한 이름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어머니라는 이름일 것 입니다. 왜 자식들은 어머니를 그리워하면서도 막상 효도할 기회가 오면 그렇지 못한지 모르겠습니다. 꽃잎과 꽃씨를 넣어 부쳐 주시던 내 어머니의 다정한 편지가 새삼 그리워지는 때 입니다. 항해가 결코 쉽지 않은 세상이라는 바다에서 어머니의 사랑만큼 위로와 용기가 되는 빛과 등대는 없는 것 같습니다. 폐암으로 힘겹게 투병하는 어머니와 함께 했던 7개월의 시간들, 아들로서 슬프고 안타깝게 지켜볼 수 밖에 없었던 어머니의 마지막 순간들을 김용원님은 사진으로 남기고 하나의 간절한 기도이며 시와 같은 글을 곁들여 책을 냈습니다. 이 책 속의 어머니는 곧 우리 모두의 어머니라는 마음으로 어머니를 향한 그리움과 고통 속에 피어나는 사랑의 힘을 느껴 보시기 바랍니다. -이해인 수녀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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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는 엄마에게/김용원/세움과비움]7개월간 병상을 지킨 사모곡……. 아자아자님의 이벤트로 받은 책, 이제야 읽었다. 지난 가을, 내 어머니도 정밀검사 차 2주간이나 병원에 입원한 적이 있기에 공감하면 읽은 책이다.
숨이 끊어질 때 어머니의 모습이다. 얼마나 힘이 들었던지 그리고 얼마나 자식들이 눈에 선연했던지 눈가에 눈물이 적셔져 있다. 저 모습을 보니 안쓰러워 눈물이 난다. 나는 어머니 옆으로 가서 어머나 귀에 대고 말했다. 사랑합니다, 사랑했습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했습니다.(22쪽) 모든 삶은 죽음과 연속선상에 있다지만, 그래도 솔직히 죽음은 두렵다. 아직 가보지 못한 북망산이지만 부모님들의 죽음을 상상하기도 싫다. 해서 요즘엔 건강 서적에 절로 손이 간다. 치매를 막는 방법, 뇌질환을 예방하는 운동, 암을 예방하는 법, 건강한 요리법 등에 대한 책을 자주 읽게 된다. 우리의 인생이 무한의 삶은 아니기에 언젠가는 이별을 맞이할 것이다. 하지만 최선의 노력으로 건강한 노후를 오랫동안 즐기도록 돕고 싶다는 마음이 점점 강해지게 된다. 어서 부산 내려가고 싶구나, 먹고 아무 것도 안 하는 이것은 사람 사는 것이 아니다. (139쪽) 치료를 위해 아들 집에서 빈 아파트를 지키며 하신 말씀이라고 한다. 잠시 쉬는 것이 불편한 까닭이리라. 아픈 중에도 몸을 움직여 뭔가를 해야 하는 삶을 살아온 세대, 험난한 시대를 살아온 세대이기에 휴식은 익숙하지 않았을 것이다. 고단했던 삶, 휴식이 게으름을 의미했던, 쉼이 죄스럽게 여겼던 세대의 몸에 밴 습관들을 보니 내 어머니와 다르지 않다. 내 어머니도 자식을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주는 어머니이기에 그 자체가 희생과 사랑이기에.
어머니의 삶이 마지막임을 알면서 보내는 순간순간들은 얼마나 소중할까? 폐암 말기인 시한부 인생의 어머니를 병간호 하며 쓴 글들이 공감가기에 더욱 절절하다. 부모님의 마지막 순간을 대하는 감정이 어떨지 감히 짐작은 못 하지만 안타깝고 먹먹해진다. 7개월 동안의 어머니의 병상 기록인 사진과 일지가 절절한 눈물의 사모곡이기에 더욱 그러하다. 그래도 마지막 순간까지 효도를 받은 어머니는 행복하지 않았을까. 탄생도 죽음도 개인의 의지대로 되는 일이 아니기에 모든 죽음과 질병 앞에서 겸손을 배운다. 다시 오지 못할 하루인 것처럼 부모님께 마음을 전해야겠다는 생각이 들게 하는 책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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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자아자님의 이벤트에 신청해서 당첨이 되어 선물처럼 내게 온 엄마.
'엄마'라는 단어는 태어나면서 가장 많이 쓰는 단어가 아닐지.. 고등학생이 되면서 아빠를 어른스럽게 부른다고 아버지라고 부르고 엄마는 아직도..아니, 계속 엄마라는 이름으로 부를 것 같다.
김용원님의 7개월간의 암투병하신 엄마를 응원하면서 기록한 책. 환자도 힘들고, 간병하는 가족들도 힘든..
이해인님의 <엄마>라는 시가 책의 표지에도 적혀있다.
그냥 책을 읽는 내내 엄마가 생각이 났다.
나에게는 20년가까이 류마티스로 고생하고 계시는 엄마가 있다. 그냥 가볍게 여겼던 병이 지금은 발가락이 구부러지고 손가락관절도 불편해지고 무릎수술과 허리수술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바닥에 앉지 못한 지는 오래되었고 약처방이 힘들어 주사치료를 하고 계시는 엄마. 늘 힘든 모습을 지켜보면서도 약해지는 말씀을 하시거나 우울해하시면 더 모질게 내뱉어서 독한 마음을 품게만들었던 딸. 내가 생각해도 엄마에게는 못된 딸이었던 때가 많았다.
첫째를 낳고, 1년가까이 키워주시고 둘째를 낳고, 한달 가까이 산후조리까지 해주시고.. 당신 몸이 아프실텐데도 당신의 딸을 챙기느라..
참으로 참으로 고맙고 고마운 엄마이다. 난치병이라는데..다시 예전의 건강한 모습으로 돌아오기는 시간이 걸릴 것 같고 가끔 조금은 괜찮아지시면 가까운 곳에 산책을 하곤 하신다.
그래서 함께 여행도 편하게 못가보고.. 그래도 함께한 추억을 만들어드리기 위해 꼭 내년에는 가족여행을 추진해야겠다. 마음이 즐거우면 몸도 조금은 즐거워지지 않을까.. 늦지 않게되기를 바라면서..
봄은 아무나 맞을 수가 없다는 말이..마음 아프게 남는다.
마지막 장에 있는 엄마에게 쓰는 편지.
많이 고맙습니다.. 늘 고맙습니다..
그리고..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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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어머니를 만나다. 하나님이 바쁘셔서 대신 우리에게 주신 분이 “어머니”라고 한다. 부연 설명하자면 하나님이 바쁘셔서 하지 못하는 것을 어머니를 통하여 하신다는 것이다. 그래서 어머니는 하나님 대신으로 자녀를 낳고 기르시는 것이다. 그런 어머니, 이 땅에 하나님의 역할을 하시는 어머니, 이 책을 읽으면서 어머니를 만났다. 나의 어머니를 만난 것이다. 저자가 만난 어머니이지만, 그 어머니는 또 나의 어머니이기도 하다. 저자는 어머니가 투병하는 과정에서 어머니를 다시 만난다. 그 어려운 과정에서 어머니가 어떤 존재인지를 깨닫게 된 것이다. 나도 어머니를 그렇게 잃었지만, 저자처럼, 어머니와 함께하지 못했기에, 이 책을 읽으면서 저자 대신에, 그 자리에 나를 대치하여 가면서 읽었다. 그래서 저자가 만난 그 어머니가 바로 나의 어머니가 되는 셈이다. 1. 어머니는 예수 이 책을 읽으면서 자꾸만 예수의 모습이 떠오른다. 저자는 어머니의 모습에서 예수의 모습을 떠올리곤 한다. <자식들을 위해 모든 것을 다 내어 주고 정작 당신은 한 데서 떨다가 가신 어머니는 십자가의 절정이었다. 어머니는 우리 곁에 사시다가 가신 성자(聖者)였고, 예수였다. 신은 어머니를 당신의 대리인으로 이 땅에 보내셨다.> (60쪽) <예수가 짐승의 밥통인 구유에서 태어나 사람들의 떡으로 사셨다면 어머니 역시 우리들에게 생명을 주고 자신들의 피와 살을 내어 주고 살아오신 이 땅의 예수였다.> (74쪽) <숨이 끊어지는 순간까지 어머니는 자식들을 위해 모든 것을 다 바쳤다. 예수의 사랑이란 이런 것이었을 것이다.> (132쪽) <자식 중에서 제대로 된 직장 하나 없이 교회에서 얻어먹는 자식이라고 늘 염려가 태산이었다. 나는 이런 저런 이유로 살아생전 어머니에게 죄를 가장 많이 지은 죄인이었다. 어머니는 나를 위해 자신의 살과 피를 다 쏟으신 골고다의 예수였다.> (141쪽) 나의 어머니 또한 마찬가지였다. 자식들을 건사하느라, 당신을 위해서는 뭐 하나 변변히 챙긴 것 없는, 모든 것을 다 내어준 예수, 바로 그분이 나의 어머니이다. 2. 어머니는 뿌리 흙이 패이고 나무의 뿌리가 다 드러난 나무 한그루 사진이 보인다. 30쪽이다. 그 나무뿌리를 보면서, 저자는 이렇게 설명한다. <흉물스러운 생각이 들기 보다는 오히려 정감이 들기 때문이다.> 왜 그런 생각이 들었을까? 저자는 거기에서 어머니를 떠올렸기 때문이다. <어찌 생각해보면 평생 움직여 사시느라 온전한 발톱이 하나도 남아있지 않는 어머니의 문드러지고 일그러진 발이 생각난다.> 그런 어머니의 모습을 떠올리면서, 그 앙상한 뿌리를 드러낸 나무를 보면서 ‘정감이 간다’고 느낀 것이다. 그렇게 나무의 뿌리와 어머니를 일치시킨 것도 마음에 와 닿았다. 어머니의 장례를 치르면서 보았던 모습, 바로 그 모습이었다. 다른 것이 있다면 나의 어머니는 저자의 어머니보다는 젊어서 돌아가셨으니, 나에게는 젊은 모습으로 남아있는 것이 다를 뿐! 3. 어머니는 기름 탱크 <겨울이 오면 어머니가 사시는 고향집에서 추위에 혼자 떠실 어머니를 생각해서 가끔 보일러에 기름을 넣어드리고는 했다. 어머니는 기름이 아까워서 하루에 몇 시간 때지 않으셨고 냉방에 홀로 떠셨다.> 이렇게 기름을 어머니와 연결시켜 생각하던 저자는 문득, 그 기름 탱크와 어머니를 동일시하기에 이르른다. <하지만, 어머니는 나의 생애에 평생 불을 지피신 기름 탱크 같은 존재였다.> (65쪽) 자기는 어머니의 난방을 위해 기름을 그것도 ‘가끔씩’ 넣어주었건만, 어머니는 나에게 사랑, 희생, 눈물, 의지 인정 추억등 사람이 살면서 소중하게 여겨야 할 것들을 잔뜩 담아 놓으셨다가 내가 필요할 때에 공급해 주셨다는 것이다. 그렇듯 어머니는 자식을 채워주기 위해 무엇이든 공급하여 주시는 존재다. 4. 어머니는 눈꽃 하지만 저자는 어머니가 오래 살지 못할 것을 알고 어머니의 존재를 이렇게 비유하기도 한다. <어머니는 눈꽃이었다. 눈꽃은 아름다웠다. 하지만 그것은 언젠가는 녹아져 내릴 운명을 가진 것이었다. 영원한 것은 없다. 모든 것은 눈꽃이다, 이땅에서는 ....>(127쪽) 5. 인간 - 직립에서 수평으로 돌아가는 존재 저자가 찍은 어머니의 사진 밑에 이런 해설을 붙였다. <마침내 수평(水平)으로 수렴되다>(23쪽) 어머니의 임종 모습이다. 살아 생전에는 두발로 걸어다니다가, 병으로 인해 고통받는 동안에는 제대로 눕지도 못하시고, 서성이던 그 모습이 못내 안타까웠던 저자다. 그리고 어머니가 임종하시고 이제 누워계시는 모습을 보면서, 인간은 직립으로 살다가 수평으로 돌아가는 존재라고 정의를 내린다. 6. 후회가 되는 사건 - 고향집 전화를 해지한 것 <전화기는 어머니의 외부와의 연락을 위한 소통수단이었다. .... .그 전화 한 대로 어머니는 자식들을 통치하였다. 우리들에게는 전화기를 통해 들리는 어머니의 목소리는 지엄한 것이었다. 수화기를 통해 들리는 어머니의 목소리를 통해 어머니의 건강이나 심기를 알아차릴 수 있었다. ..... 나는 37년동안 사용하였던 어머니의 전화기를 아무 생각없이 해지해 버린 것에 대해 지금에 와서 무척이나 후회한다. 내가 그 전화번호를 이전해 계속해서 사용했더라면 형제들에게 어머니에 대한 추억을 선사할 수도 있었을 것인데.. 37년을 사용하던 전화번호를 없앤 것은 어머니에게는 사회적으로 사망을 선고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산다는 것은 늘 이렇게 후회스럽다.> (186쪽) 이 사건이 가지는 의미가 저자에게 얼마나 크게 다가오는지는 마지막 말에서 찾아볼 수 있다. <산다는 것은 늘 이렇게 후회스럽다.> 얼마나 그것이 가슴에 아픔으로, 후회로 남아있는지! 그래서 산다는 것 자체가 후회스럽다고 까지 평할 정도로 그는 이 사건을 크게 여기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그런 사건이 없는 사람에게는 후회가 없을까? 아니다. 어머니가 안계시는 지금, 나 바쁘다면서 말 한마디 따뜻하게 해드리지 못한 것, 고생하시는 그 손 한번 잡아드리지 못한 것, 그런 모든 것들이 후회로 남는다. 그러니 저자가 한 말, ‘산다는 것이 늘 이렇게 후회스럽다’가 바로 내가 할 말인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