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릴적에 계몽사 전집의 <일본동화집>에서 읽었던 단편 동화 '요구가 많은 음식점(지금 나온 단편집에는 '주문이 많은 요리점'으로 되어 있음)'이 잊혀지지 않았다. 어릴 적 내가 읽던 70년대말에 나왔던 전집에는 <일본동화집>구성이 있었는데, 어른이 되어 2000년대 판으로 계몽사 전집을 다시 구해 읽어보니 <일본동화집>이 빠진 구성이었다. (뿐만 아니라 엘리너 파전의 <보리와 임금님> 도, 북유럽 동화집의 <산딸기의 임금님>도,,, 등등 내가 좋아했던 구성이 많이 빠져 있어 아쉽다.)
어린 나이에 읽기에도 '요구가 많은 음식점'은 단순 괴기담이 아닌 것 같았다. 먹으려다가 먹힐 뻔 하는 자의 이야기라니,,,, 커서 일본 근현대사를 읽고 다시 생각해 보니, 이는 일본 군국주의에 대한 고발인 것 같다. (그런데 아직 그런쪽으로 깊이 쓴 글을 읽어보지 못했다. 대개 생명 경시 자연 파괴 서구식 문명화 비판,,, 이런 언급이 많았다. ) 저자가 1933년에 요절하지 않고 더 오래 살아 일본의 군국주의 침략사를 끝까지 목격했더라면 더 대단한 작품, 본격적으로 일본을 비판하는 작품이 나왔을 텐데, 아쉽다. 하지만 이 작품집만 보아도 개항과 메이지 유신, 청일전쟁 러일전쟁을 거치면서 문명개화 부국강병을 외치던 당시 일본 사회에서 생명의 존엄성과 자연 보호, 문명화와 전쟁 반대를 외롭게 외친 그의 단명은 어쩜 필연적이었던 것도 같다. 이분은 이해받지 못하며 시대를 너무 앞서나간 거장이다. 반세기나 지나서야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애니메이션 덕분에 알려지기 시작했으니 말이다.
이 책은 미야자와 겐지의 단편 동화 모음집이다. 생명의 소중함과 불교식 인연을 다룬 '기러기 동자', (내가 보기에는) 파시즘을 고발한듯한 '주문이 많은 요리점', 하찮은 존재가 별이 되는 '쏙독새의 별(강아지똥과 비슷한 느낌)', 전쟁을 고발한듯한 '북수장군과 의사 삼형제'와 '까마귀의 북두칠성', 음악가의 자기 성장과 이웃 생명체, 자연의 치유를 같이 그린 '첼리스트 고오슈', 생명과 숲, 자연과 인간을 깊이 생각하게 만드는 '켄쥬 공원의 숲'이 실려 있다. 어느 편을 보든 미야자와 겐지의 사상의 깊이가 느껴진다. 쉬운 애들 동화, 절대 아니다. 강추. 번역과 삽화가 조금 아쉽다.
*** 더보기에 미야자와 겐지의 시 <비에 지지 않고>가 있습니다.
비에 지지 않고 - 미야자와 겐지
비에 지지 않고 바람에도 지지 않고 눈보라와 여름의 더위에도 지지 않는 튼튼한 몸을 가지고 욕심도 없이 절대 화내지 말고 언제나 조용히 웃는 얼굴로 하루 현미 네 홉과 된장과 나물을 조금 먹고 모든 것을 자기 계산에 넣지 않고 잘 듣고 보고 알아서 그리고 잊어버리지 말고 들판 소나무 숲속 그늘에 조그만 초가지붕 오두막에 살며 동쪽에 병든 어린이가 있으면 가서 간호해 주고 서쪽에 고달픈 어머니가 있으면 가서 그의 볏단을 져다 드리고 남쪽에 죽어가는 사람 있으면 가서 무서워 말라고 위로하고 북쪽에 싸움과 소송이 있으면 쓸데없는 짓이니 그만두라 하고 가뭄이 들면 눈물을 흘리고 추운 여름엔 허둥허둥 걸으며 모두한테서 멍텅구리라 들으며 칭찬도 듣지 말고 괴로움도 끼치지 않는 그런 사람이 나는 되고 싶다.
*** 이 시는 일본 패전이후 1946년 ‘소년 구락부’ 1월호의 권두에 전후의 참상을 극복하기를 독려하는 의미에서 실린 시이다. 결국 패전 이후에야 일본은 미야자와 겐지의 사상에 눈을 돌린 셈. 국내에는 권정생 선생님께서 번역, 소개해 주셨음.
|
| 예전에 '주문이 많은 요리점'이라는 애니메이션을 본 적이 있다. 갈색 톤의 그림이 인상적이기도 했지만 내용이 참 기발하다는 생각을 했더랬다. 메뉴가 많은 것이 아니라 들어오는 손님에게 주문이 많다. 신발을 털어라, 크림을 발라라, 온몸에 소금을 뿌려라... 결국 그 손님들이 요리의 주재료가 되는 뭐 그런 내용. 그리고 또 시간이 지나 '첼로 켜는 고슈'라는 애니메이션을 보게 되었다. 첼로가 능숙하지 못한 고슈에게 어느 날 밤 고양이가, 뻐꾸기가, 너구리가 그리고 생쥐가 찾아오고 고슈의 음악은 그런 자연의 호흡 속에 생명을 생명답게 하는 음악으로 발전하게 된다. 참 훈훈한 만화다, 하고 생각했더랬다. 그런데 이 두 편이 모두 미야자와 겐지의 동화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는 사실은 최근에야 알았다. 반가운 마음에 부랴부랴 이 책 '주문이 많은 요리점'을 사 읽었다. 서로 잘났다고 우기는 도토리들의 재판을 맡은 살쾡이와 그를 도와주는 이치로의 이야기 <도토리와 살쾡이=""> 인간의 살생에 겸허한 마음으로 살아가며 모든 목숨이 있는 것들을 슬퍼할 줄 아는 <기러기 동자=""> 반자연적인 두 사냥꾼이 주문이 많은 요리점에서 요리될 뻔한 이야기 <주문이 많은="" 요리점=""> 못생겼지만 순수한 마음의 쏙독새가 현실의 괴로움을 별이 되어 이겨내는 이야기 <쏙독새의 별=""> 삼 십 년 전쟁 끝에 말에 붙어 못 내려오고 풀이 얼굴에 무성한 장군을 치유하는 의사 삼형제 <북수 장군과="" 의사="" 삼형제=""> 전쟁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상대인 갈가마귀를 죽이지만 전쟁이 사라져서 서로 죽이는 일이 없기를 간절히 바라는 <까마귀의 북두칠성=""> 첼로를 켜면서 모든 자연과 호흡하는 <첼리스트 고오슈="">밤나무 잎이 반짝이는 게 너무 좋아서 실실 웃어대는, 그래서 바보 취급 당하는 켄쥬가 삼나무 숲을 가꿔 시간이 지나 도시화가 된 다음에도 여전히 아름다운 삼나무 숲이 남아 있는 <켄쥬 공원의="" 숲=""> 이 8편의 이야기. 단순히 '재미있군, 역시 아이들 세계는 순수해.'라고 읽고 말기에는 너무 진하게 남는 뭔가가 있다. 미야자와의 철학이 또는 생각이 그대로 동화 하나하나에 별처럼 박혀 빛나고 있다. 무릇 사람이란 자연의 일부분이며 자연과 호흡하고 그 본성은 자연적일 수밖에 없다. 이 책의 말대로 모든 목숨이 있는 것들은 슬프다. 모든 목숨이 있는 것들을 슬퍼할 줄 아는 사람은 그래서 아름답다. 가만히 호흡하게 하는 그런 동화책이었다.켄쥬>첼리스트>까마귀의>북수>쏙독새의>주문이>기러기>도토리와> |
| 미야자와 겐지는 근대 일본의 환상적인 동화작가요 시인으로 일본뿐만 아니라 다른 나라에서도 널리 읽히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는 생전에 주변 사람들로부터 이해를 받지 못했고 이름 있는 작가들의 관심을 끌지 못했습니다. 건강도 좋지 않아 불교 단체에서 일을 하다 고향으로 돌아가 농업학교 교사가 됩니다. 나중에는 농업학교 교사마저도 그만두고 농촌 운동을 벌였으나 흉작과 과로로 말미암은 병 때문에 요절하고 맙니다. 그의 작품을 읽다 보면 그가 왜 생전에 주목받지 못하고 불행한 삶을 살았는지 이해가 될 듯합니다. 그의 환상적인 동화는 낯설고 신선한 이미지를 보여줄 뿐더러 새로운 사상까지 드러내고 있으니 말입니다. 하여 미야자와 겐지의 동화는 일본의 국어교육 선생님들조차 학생들에게 가르치기가 힘들다고 하는 것이 이해가 됩니다. 그렇더라도 우리는 미야자와 겐지의 동화를 읽으며 환상적인 아름다움을 느끼고 새로운 사상의 근원도 엿볼 수 있습니다. “이 곳이 도시가 되고 나서 모두들 팔라고 말했으나, 그 집 노인이 이 곳은 켄쥬의 유일한 유산이니 아무리 어렵더라도 팔 수 없다고, 없애면 안 된다고 했다는 거예요.” “아아, 그랬었군요. 그 켄쥬란 사람은 조금 모자란다고 우리는 생각하고 있었지요. 언제나 싱겁게 웃는 사람이었습니다. 매일 이 근처에 서서 우리가 놀고 있는 것을 바라보았지요. 이 삼나무도 모두 그가 심었다고 합니다. 아, 과연 누가 지혜롭고 누가 현명하지 않은지 알 수가 없군요. 단 어디까지나 완벽한 작용은 불가사의합니다. 이 곳은 이제 아이들의 영원한 놀이터가 되었습니다. 어떻습니까. 이 곳을 ‘켄쥬 공원의 숲’이라 이름짓고 영원히 이대로 보존하는 것이?” “그것 참 좋은 생각이군요. 그렇게 되면 아이들이 얼마나 행복해할지 모르겠습니다.” (「켄쥬 공원의 숲」) 티프스에 걸려 일찍 죽은 켄쥬가 바보 취급을 당하면서 심은 삼나무가 ‘켄쥬 공원의 숲’으로 되었음을 알 수 있는 장면입니다. 사람들은 켄쥬 덕분에 삼나무의 멋진 푸르름과 상쾌한 향기, 여름날의 서늘한 그늘, 달빛 같은 잔디의 빛깔을 즐기게 되었습니다. 사람들은 켄쥬 숲을 통하여 진짜 행복이 무엇인지 느끼게 된 것입니다. 미야자와 겐지의 동화를 읽다 보면 켄쥬 같은 주인공을 쉽게 확인할 수 있습니다. 「첼리스트 고오슈」의 고오슈는 영화관에서 첼로를 켜는 첼리스트입니다. 솜씨는 좋지 않은 정도가 아니라 동료 악사들 중에서 제일 서툴러서 언제나 악장한테 구박을 받습니다. 그러나 고오슈는 퇴근할 때마다 집으로 무거운 첼로를 짊어지고 와 연주를 합니다. 얼굴이 벌겋게 상기되고 눈에 핏발이 설 때까지 첼로를 켜는데 그 때는 자신이 첼로를 켜는지 의식조차 하지 못합니다. 그런 고오슈의 첼로 연주는 근처에 사는 동물들 혈액 순환이 잘돼서 기분이 좋아지게 하고 병도 낫게 합니다. 「북수장군과 의사 삼형제」의 주인공은 신선이 된 손바유 장군입니다. 사람들이 사당을 세우고 떠받드는 사람이지요. 그런 손바유 장군은 국경의 사막에서 삼십 년 동안이나 말 위에서 내릴 틈이 없어, 마침내 몸이 안장에 달라붙고 그 안장이 또 말 등에 달라붙어서 말에서 내릴 수 없던 늙은 장수입니다. 그런가 하면 「도토리와 살쾡이」의 주인공 이치로는 ‘제일 어리석고, 엉망진창이고, 전혀 돼먹지 않은 자가 가장 훌륭하다고 말’합니다. 이들 맞은편에 선 사람으로 「주문이 많은 요리점」에 나오는 젊은 신사 두 명을 들 수 있습니다. 영국 병정 같은 옷차림에 번쩍거리는 총을 메고 뭐든지 쏘고 싶어하는 사람들. 그들은 ‘주문이 많은 요리점’에서 얼굴이 휴지처럼 구겨져 목욕을 해도 원래대로 돌아오지 않게 됩니다. 우리는 켄쥬, 고오슈, 손바유 장군, 이치로 같은 인물들과 맞은편의 젊은 신사들을 통해 미야자와 겐지 사상의 근원을 추측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미야자와 겐지 동화의 진정한 근원은 자연 현상에 대한 새로운 이미지와 환상의 세계로 자연스레 넘나드는 유쾌한 아름다움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