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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이라는 공간을 떠오를 때마다 어렴풋이 생각나는 단어가 하나 있으니 바로 ‘유토피아’이다. 세계의 패권을 좌지우지하고 있는 이 나라는 많은 사람들이 닮고자 하는 이상적인 무언가로만 가득한 듯해 보인다. 직접 방문하여 경험해보지 아니한 입장에서 상상을 자유로울 수밖에 없다. 아무나 범접할 수 없을 정도로 높이 치솟은 빌딩들은 뉴욕, 아니 더 나아가 미국 전역에 널려 있는 부를 상징한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경제적인 부분이 모든 분야를 결정짓는다는 말이 통용될 정도로 오늘날은 자본의 힘이 막강하다. 고로 이것만으로도 뉴욕은 모든 경쟁에서 다른 여느 도시보다 우위를 차지할 충분한 자격을 갖추었다고 볼 수 있다. 그렇지만 뉴욕에는 부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많은 이들이 언급하고는 하는 ‘소호’는 예술가들의 천국이다. 그 곳에서는 어떠한 억압도 허락되지 않을 듯, 이보다 더 자유로울 순 없다 싶은 상상의 나래를 만나볼 수 있을 것만 같다. 첼시나 미드타운, 그리니치빌리지 등도 저만의 독특한 색채를 가진 공간이다. 아, 남의 떡이 커 보이는 게 세상의 법칙이라 했던가! 내 삶의 공간이 아닌지라 한없이 이상적으로만 느껴진다. 당장 그 곳으로 떠나야만 할 것 같은 강렬한 기운에 휩싸일 듯하다. 헌데 뉴욕 역시 별천지는 아니다. 사람 사는 곳은 어디나 똑같다는 말은 뉴욕에서도 통용된다. 게다가 우린 뉴욕에 대해 논할 때 한 가지를 더 고려해야만 한다. 바로 미국이라는 나라의 역사가 그것이다. 단군왕검이 어쩌고저쩌고, 호랑이 담배 피우던 시절 등까지 언급하지 않더라도, 우리의 역사가 결코 짧지 않은 흐름의 연속이라는 사실을 우린 잘 안다. 중국은 우리보다 더 오래 전까지 거슬러 올라갈 수 있다 들었다.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대부분의 국가는 현재의 정체성을 확립하기까지 짧지 않은 시간의 ‘역사’를 꾸려왔다. 그런데 미국은 그렇지가 못하다. 이 신생국은 철저한 단절 위에 세워졌다. 그들은 신대륙을 발견했노라 선언함으로써 무에서 유를 창조했다는 평을 듣길 꿈꾼다. 하지만 그들이 발견한 대륙은 결코 신대륙이 아니다. 그들이 수립한 국가 역시 마찬가지. 백인 남성의 입장에서는 새로이 탄생한 국가일 수도 있겠지만, 그 외의 사람들에게 이 국가는 이미 존재하던 모든 것과의 단절을 선언한 폭력적인 실체에 지나지 않는다. 미국의 한 도시인 뉴욕 역시 이러한 특징을 고스란히 물려받았다. 뉴욕은 현대 도시개발계획의 산물이다. 자연스레 시간이 형성한 무언가가 아니라 인간의 추상성이 극도로 영향을 주어 만들어낸 공간이다. 르 코르뷔지에가 맨하튼을 보고 남겼다는 ‘아름다운 파국’이라는 평은 뉴욕의 특징을 단번에 드러낼 수 있는 표현이 아닐까 한다. 책은 크게 세 부분을 나뉜다. 1부에는 지금의 뉴욕을 가능케 한 도시계획적인 요소가 가득 담겼다. 뉴욕을 가로지르는 허드슨강이 생명력을 지닌 고유한 자연에서 운송을 위한, 관광객들을 위한 공간으로 전락(?)해 가는 과정을 엿볼 수 있었다. 영국식 정원인 센트럴파크의 경우 유럽에서 곧잘 만들어볼 수 있는 대광장과는 다른 차원이다. 이 곳은 수많은 시민이 모여 역동적인 움직임을 만들어낼 수 있는 공간이기 보다는 수동적인 관광객들의 산책로 정도의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공간 자체는 여럿이 공유하므로 공공성이 짙다. 그러나 그 곳에서는 어떠한 담론도 생성되지 못한다. 진정한 의미의 ‘공공성’ 창출에는 공간이 기여치 못하고 있는 것이다. 뉴욕은 예술적인 측면이 강한 도시이다. 이어지는 2부에서는 뉴욕의 곳곳에서 만나볼 수 있는 예술의 의미에 대해 알아보았다. 세상에 존재하는 어떠한 것도 이데올로기로부터 자유롭진 못하다. 뉴욕을 대표하는 많은 예술은 사회참여적인 측면을 제외한다면 그 생명력을 잃는다. 그렇다 보니 예술임에도 불구하고 예술로 인정받지 못하는 예술이 참으로 많았다. 그라피티는 아마도 가장 대표적인, 예술 아닌 예술일 것이다. 뉴욕에서 발생하여 세계 전역으로 퍼져나갔지만, 정작 뉴욕은 그 가치를 인정하지 않았다. 무의미한 낙서를 대하듯 당국은 그라피티를 지우기에 바빴다. 그라피티에 정통한 많은 이들 역시 사회가 인정하는 예술의 영역에 쉽게 발을 담그지 못한 채 야인으로 남길 고집했다. 마지막 3부에서는 뉴욕의 현재를 엿볼 수 있었다. 미국에서는 다양한 인종을 만나볼 수 있다. 적지 않은 수의 한인들 역시 뉴욕을 제 삶의 터전으로 여기며 살아가고 있으며, 최근에는 중남미, 특히 멕시코 이민 노동자들이 급격히 증가하고 있다 한다. 모두가 조화롭게 어울려 살아가는 공간. 이는 국경을 넘나드는 일이 자유로운 요즘 모두가 지향해야 하는 바일 게다. 그러나 뉴욕의 조화는 완벽치 못하다. 한데 몰려 있기는 하나 마치 물과 기름을 한 장소에 쏟아 부은 양 각 집단은 이질적인 움직임을 자아낸다. 이는 타지에서 옮겨온 이들이 제 정체성을 지키려 노력하는 차원에서 생성된 것으로 볼 수도 있겠지만, 그보다도 뉴욕 전역에 퍼져 있는 차별 기제의 힘이 막대하기 때문으로 보는 게 옳을 듯하다. 여느 도시가 그러하듯 뉴욕 역시 일정 정도의 외부 노동력은 도시의 생존을 위해 필수적이다. 다만, 도시의 현재 상황에 따라 목소리는 돌변한다. 이민은 장려되었다가도 배제되기를 수시로 번복한다. 시선의 그리고 정책의 비일관성은 결국 자기들끼리의 똘똘 뭉침이 필요하다는 결론을 낳을 수밖에 없다. 너희는 우리와 다르다며 그러한 움직임을 배척하려는 시도들이 곳곳에서 행해진다. 그러나 외면하려 드는 자들의 존재와는 별개로 그러한 움직임이야말로 도시를 살아있게 만드는 핵심이다. 이상적인 도시가 있다면 그건 바로 ‘유체도시’여야만 한다. 인디언의 역사가 순식간에 무(無)로 돌변한 뉴욕이 그러하듯 정부에 의해, 거대 자본에 의해 도시의 모습은 단기간에 변화할 수가 있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사람이 배제된다면 그와 같은 변화는 껍데기에 지나지 않는다. 도시 안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은 껍데기를 기꺼이 짊어지기 보다는 차라리 잡음을 내는 편을 택할 것이다. 그럼으로써 제 정체성을 잃지 않으려 안간힘을 쓸 것이다. 세계 최강의 미국, 그 중에서도 순위권을 다투는 뉴욕이다. 최근의 경기침체로 많은 목소리가 그 곳에서 울려 퍼지고 있다. 질서를 해치는 폭도 마냥 그들을 매도하려는 시도가 수시로 행해지지만, 그들이야말로 뉴욕의 진정한 주인이다. 그들로 인해 뉴욕은 살아 움직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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