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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노동계급의 상황]26년만에 돌아온 전설의 그 책!
"[영국 노동계급의 상황]26년만에 돌아온 전설의 그 책!" 내용보기
아아, 마이크 테스트, 하나, 둘, 셋! 양촌리 주민 아니 예스 블로그 글벗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기쁜 소식이 있습니다. 1988년에 세계 출판사에서 나오고 26년간 절판되었던 전설의 그 책! 24세의 피 끓는 엥겔스 선생이 불끈거리는 성질 달래가며 엄청난 수치를 들어 19세기 중반 영국 노동자 계급의 비참한 현실을 고발한 그 책! <영국 노동자 계급의 상태>의 국내 번역본이 다시 나
"[영국 노동계급의 상황]26년만에 돌아온 전설의 그 책!" 내용보기

아아, 마이크 테스트, 하나, 둘, 셋! 양촌리 주민 아니 예스 블로그 글벗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기쁜 소식이 있습니다. 1988년에 세계 출판사에서 나오고 26년간 절판되었던 전설의 그 책! 24세의 피 끓는 엥겔스 선생이 불끈거리는 성질 달래가며 엄청난 수치를 들어 19세기 중반 영국 노동자 계급의 비참한 현실을 고발한 그 책! <영국 노동자 계급의 상태>의 국내 번역본이 다시 나왔습니다! 당장 읽지 않더라도 고전 책 욕심 있으신 분은 무조건 사서 쟁여 놓으십시오. 이번에 절판되면 또 26년간 기다려야할 지도 모릅니다. 특히, 근대 산업혁명 시기 역사에 관심이 많으신 분, 관련 글쓰기를 하며 인용자료가 필요하신 분은 필독, 사재기에 나서십시오. 물론 카트에 담으실 때에는 제 애드온 클릭, 잊지 마시고요.

 

이 책은 1845년, 24세의 엥겔스 선생이 영국 북부를 중심으로 현지 답사한 후 세세한 수치를 들어 영국 노동자 계급의 상태를 보고한 책입니다. 군데군데 욱!하는 젊은 엥겔스 선생의 분노가 느껴지는 문장이 많아, 읽기에 그리 구닥다리 같지 않습니다. 아니, 그보다 당시 영국 현실이나 우리가 겨우 20, 30년전에 겪은 현실이나 마찬가지여서 시간의 거리감이 느껴지지 않기에 더욱 생생하게 읽히는 것 같습니다. 예를 들어, 아래와 같은 서술, 현재 한국에 대입해도 마찬가지 아닙니까.

 

이 모든 사실을 감안할 때, 영국 노동계급이 점차 영국 부르주아지와 완전히 다른 인종이 되어갔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 영국 부르주아지는 그들을 둘러싼 노동자들보다 지구상의 다른 모든 민족들과 공통점이 더 많다. 영국 노동자들은 부르주아지와는 다른 방언을 말하고, 다른 생각과 이상, 다른 관습과 도덕 원칙, 다른 종교와 정치를 갖고 있다. 그러므로 프롤레타리아트와 부르주아지는 상이한 두 인종인 것만큼이나 서로 근본적으로 다른 두 민족이다.

- 본문 174쪽에서 인용

 

엥겔스 선생은 전체적인 산업 혁명 시기 노동자들의 상황을 서술한 후 도시 문제, 빈곤, 이주 노동자 문제, 여성과 어린이 노동 문제를 고발합니다. 세세한 수치 인용이 많아 이 시기에 대한 글을 쓰는 분께는 거의 사전처럼 옆에 끼고 들춰 볼만한 책입니다.  특히 이 시기 여성 노동자들에게 관심 있으나 관련 사료 구하기 어려워하는 저에게는 보물같은 책이죠. 공장주의 여성 노동자에 대한 초야권(200쪽)이나 여성 노동자들은 당시 사람들, 같은 노동자 계급 남성들에게도 성적으로 문란하다며 멸시를 받았다는 것 등등을 읽어보면 성적 억압과 계급적 억압을 동시에 받던 당시 여성 노동자들의 상황을 잘 알 수 있습니다. 뭐 지금도 여성의 권리 주장에 대해서는 그 내용보다 성적 도덕적 꼬투리부터 잡고 공격하고 있으니, 역시 당시 영국이나 현재 한국이나 마찬가지죠. 이런 젠장젠장젠장젠장!(아니, 마이크가 고장났나? )

 

그동안 절판 되어서 노구를 이끌고 도서관 왕래하며 읽었는데(귀한 책이라 대출도 안 됨), 이제야 내 품에 간직하고 내 맘대로 박박 줄 치며 읽게 되어서 행복합니다. 출판사에 그저 고마운 마음이죠. 자, 마지막으로 한번 외쳐보고 마이크 끌게요. 라티오 출판사 포에버!

 

m******n 2015.04.28. 신고 공감 1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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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영국 노동계급의 상황 - 프리드리히 엥겔스
"[책]영국 노동계급의 상황 - 프리드리히 엥겔스" 내용보기
산업혁명의 중심지인 맨체스터와 영국 북부의 노동자들의 처절한 실태를 보고한다.<프롤레타리아>마르크스에 의하면 생산 수단을 갖고있지 않아서 자신의 노동력을 팔아 생계유지를 하는 즉, 노동자 계급이다.산업혁명에 의해 도구가 기계로 바뀌고 제조업이 확장되어 감에 따라 과거 장인과 견습공은 대규모 설비와 경쟁할수 없게 되었고농업인은 도시로 이동하여 이들이 모두가 프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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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업혁명의 중심지인 맨체스터와 영국 북부의 노동자들의 처절한 실태를 보고한다.


<프롤레타리아>

마르크스에 의하면 생산 수단을 갖고있지 않아서 자신의 노동력을 팔아 생계유지를 하는 즉, 노동자 계급이다.


산업혁명에 의해 도구가 기계로 바뀌고 제조업이 확장되어 감에 따라 

과거 장인과 견습공은 대규모 설비와 경쟁할수 없게 되었고

농업인은 도시로 이동하여 이들이 모두가 프롤레타리아가 된다.


봉건사회에서의 지주와 소작인은 이제 자본가와 임금노동자가 된것이다.


이들의 노동은 기계화와 분업화된 사회구조로 인해 기계를 대신하는 위치에 있다보니 

'유적 존재로서의 자기 실현 -헤겔-' 이라기 보다는 부속품의 역할일 뿐으로

생산수단을 가진 부르주아에게 예속될 수 밖에 없다.


프롤레타리아트는 국가권력에 의해 그런 독점을 보호받는 부르주아지에게서만 필요한것을 얻을수있다

그러므로 프롤레타리아는 법적으로나 실제 적으로나 프롤레타리아의 생사를 결정할 수 있는 부르주아지의 노예다.

...........

노동자의 임금은 노동자의 기술습득 수준과 규칙적인 작업을 고분고분 수행할 수 있는 수준으로 결정된다.

달리말해 노동자는 법적으로나 실제적으로나 자산계급의 노예, 낱개 제품처럼 팔리고 상품처럼 가치가 오르내릴 정도로 확실한 노예다.


<계급 분리>

노동자와 자본가가 혼재하게 된 도시는 기묘하게도 노동자 지구와 자본가 지구가 분리되어 있다.

부자귀족들은 몇년간 매일 이 도시를 드나들면서도 노동자 구역을 접하지 않는것이 가능하므로

이들의 음울한 참상을 보지 않고도 그 구역의 한복판을 통과하는 가장 짧은 도로를 이용해 상업구역으로 갈수 있다.


(이미지: 맨체스터)


정작 친환경 생태하천의 복원은 제대로 이루어지 못하고 청계천 변의 노점상들만 밀어내게 된 청계천 복원사업도 이와 같은 효과를 내었다.


<임금>

노동자들의 임금은 자본가들에 의해 결정되고

노동자들은 차고 넘치며 (특별한 기술을 요하지 않는 ) 부품화 되었으므로, 

자본가의 입맛에 맞지 않는 노동자는 누군가로 손쉽게 대치될수 있다.

그러므로 노동자들은 그들끼리 경쟁한다.

그리고 이들은 굶어 죽는것 보다는, 삶을 포기하기 보다는

아예 없는것보다 조금 나은 이 푼돈을 택한다.


이것이 최저임금이다.


다시말해 최저임금은 노동자들의 생활수준에 따라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노동자를 구하지 못해 이윤을 잃기 보다 임금을 조금 더 주더라도 노동자를 구해 이윤을 얻기위한

자본가들의 경쟁에 따라 결정된다.


만일 모든 프롤레타리아가 부르주아지를 위해 일하는 대신 굶주리기로 작심한다면 부르주아지는 독점을 포기할수 밖에 없을 것이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않으므로 -그런 일은 사실 불가능하다-부르주아지는 계속 번영한다.



<결과>

노동자들은 가난하고, 생존이 시급하므로 앞날을 내다보지 못하고, 

부당한 체제에 대응할 지식과 힘이 없으므로 그 안에서 견디는 수 밖에 없다.

(어차피 법이란 것이 자본가들이 국왕과 귀족의 권한을 제한하기 위해 생겨난 것인 만큼 자본가들의 입장을 대변하기 쉬운것이다)

그리고 늘 해고의 불안을 안고 살아간다.


그럼에도 사회가 존속하는 한 현재 질서에서 벗어날 수 없으며, 그 질서에 저항하면 극심한 상해를 입고만다.


노동자들이 힘든것은 당장의 먹고 사는 어려움도 있지만,

좀 더 나은 삶으로의 기대라는 것이 무너지기 때문이다.


 아무도 그들의 교육에 신경쓰지 않고, 온갖 우연에 휘둘리며, 인생에서의 안정을 전혀 알지 못하는 계급, 

이런 계급에게 앞날을 내다보고, '체통을 지키고', 훗날의즐거움-끊임없이 변화하고 요동치는 상황속에서 살아가는 프롤레타리아트에게는 그야말로 가장 불확실한 즐거움-을 위해 순간의 쾌락을 포기할 동기가 있겠는가?

노동계급은 사회질서의 이점을 누리지 못하면서도 그 질서의 불이익을 전부 감수해야한다.

노동계급에게는 사회체제의 적대적인 측면만이 보인다. 

이런계급에게 누가 사회질서를 존중하라고 요구할 수 있겠는가?

정말로 무리한 요구가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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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아이러니하게도

노동자들은 이제 그들의 신분을 망각한 채 그들끼리도 계급을 나눈다.



m******5 2015.10.14.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