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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려하지 않은 책표지에서 은은한 분청의 멋이 느껴지는 듯하다. 우연의 일치인지 이 책을 읽기 시작할 무렵 도공의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다 기억하기도 힘든 그 많은 과정을 통해 세상 빛을 보는 한 점의 자기를 위해 도공들은 몇 날을 가마 옆을 지키며 밤을 새우기도 한단다. 그들의 땀방울과 수고로 뜨거운 가마 안에서 구워지는 한 점의 자기는 그저 그런 그릇에 지나는 것이 아니요, 희노애락을 반죽해 빚고, 그려 넣고, 새겨 넣어 마침내 완성되어지는 우리의 인생사를 이야기 하는것도 같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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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문화유산을 떠올리다 보면 고려청자와 조선백자를 먼저 생각하게 됩니다. 청자 시대에서 백자 시대로 넘어가는 과도기를 이어준 분청사기에 대한 기억을 떠올리는 이들은 그다지 많지 않습니다. 고려에서 조선으로 세대교체가 되는 시절, 우리나라 자기의 역사 역시 서서히 바뀌게 된 역사적 배경이 숨어 있습니다. '만백성의 그릇'으로 인식되는 분청사기, 역사속 하나의 증인으로 남은 분청사기와 그릇을 만드는 사기장의 책임을 소재로 우리나라 역사와 유물을 되돌아볼 수 있는 소설이 『분청 꿈을 빚다』입니다.
『분청 꿈을 빚다』는 옛 전라도 땅, 장흥부 탐진현에 있던 대구소에서 이야기가 시작됩니다. 지금의 전남 마량항을 포함으로 전남 강진군 일대가 고려청자를 빚던 자기소가 많습니다. 지금도 강진에는 도자기 축제를 열고 있습니다. 오랜 세월이 흘러도 옛 조상의 기억이 이어지는 좋은 예인듯합니다. 대구소를 이끄는 고려 최고의 사기장이 아버지인 강뫼는 아버지의 일을 도우면 훗날 아버지처럼 훌륭한 사기장이 되기를 꿈꾸면서 열심히 일합니다. 하지만, 지역의 특성상 왜구가 늘 침입해서 온 마을을 초토화하는 일이 빈번합니다. 어느 날 아버지의 심부름으로 친구 효문과 함께 지산스님을 따라나섰지만, 그 길은 그토록 존경하던 아버지를 잃는 아픔으로 남아버립니다. 아버지가 남긴 아름다운 청자를 가슴에 품고 강뫼는 어머니와 누나를 데리고 치손, 효문과 함께 길을 떠납니다.
강뫼는 뼛속까지 사기장으로 자리 잡을 운명입니다. 최고의 솜씨를 가진 아버지의 사기 빚는 솜씨를 재현하려고 노력을 합니다. 하지만, 다시 자리 잡은 충청도 계룡산 기슭에서는 그 찬란한 청자의 빛이 나오지를 않습니다. 더구나 어린 강뫼에게는 뼈아픈 시련도 다가옵니다. 탐진을 등지고 함께 새로운 삶을 찾아 함께 떠나온 치손은 강뫼의 식구를 배신하기도 하고, 형제처럼 여겼던 효문은 강뫼에게 큰 허전함을 안겨주고 떠나버리기도 하지만 강뫼의 그릇을 빚는 일을 꾸준히 묵묵히 하게 됩니다. 보안 유천에서 최고의 사기장이었던 어른을 스승으로 모시게 되고 북쇠라는 듬직한 이를 만나기도 하고, 솜씨를 인정받아 절에서 사용하는 그릇을 만들기도 합니다.
강뫼의 아버지는 '고려청자'를 빚던 사기장입니다. 왕실의 그릇, 또는 대갓집 그릇으로만 사용되었기에 청자는 여러 사람이 함부로 만질 수 있는 그런 그릇이 아니었습니다. 고려가 멸망하고 조선으로 옮겨가는 시기에 청자는 점점 쇠퇴합니다. 새로운 왕조의 등장으로 그동안 가지고 있던 모든 것이 변화하는 시기라 그릇에도 변화가 생깁니다. 이때 생겨난 그릇이 '분청사기'입니다. '분청사기'는 청자에 흰색으로 분칠을 한 자기입니다만 그의 탄생 배경에 대해 역사에는 기록이 남아 있지 않습니다.
『분청 꿈을 빚다』에서는 충청도 땅에서 청자 고유의 색을 내지 못해 고민하는 강뫼가 넓게 펼쳐진 목화밭을 보면서 새로운 그릇을 떠올리는 모습으로 '분청사기'의 탄생 배경을 소설로 이어내고 있습니다. 또한, 효문 역시 그릇 때문에 아버지를 여읜 아픔으로 다시는 그릇을 빚지 않겠다고 떠났지만, 그 역시 그릇을 떠나 살 수는 없었나 봅니다. 강뫼의 아픔으로 남았지만 효문이 남긴 유산은 강뫼에게 새로운 그릇을 만드는 계기와 또 다른 사랑이었습니다.
'분청사기'는 이름조차 없이 그저 '사기'로만 불렸습니다. 1930년대 고미술학자였던 故 고유섭 선생이 '백토로 분장한 청자'라는 뜻에서 '분장회청사기'라 명명하면서 이를 줄여 '분청사기', 혹은 '분청자'라고 부르게 되었습니다. '분청사기'는 분명히 우리 역사 속에 우리 조상과 함께 한 유물입니다. '분청사기'는 자유분방하고 활력이 넘치는 실용적인 형태를 보이고 있음이 특징입니다. 청자에서 이어졌지만, 때론 과감하게 생략하고 변형시켜 재구성한 무늬와 형태가 있습니다. 다시 말해 모양과 선에서 소박한 일반 서민의 문화가 배어 있습니다.
『분청 꿈을 빚다』는 진실하고 소박한, 또한 자유롭고 생동감 넘치는 아름다움에 이끌린 작가가 독자들에게 들려주고자 태어난 소설입니다. 우리 역사를 제대로 알아야 한다는 인식이 새롭게 인식하는 요즘 우리의 문화유산인 '분청사기'에 대한 새로운 관심을 떠올리게 하는 재미있는 소설입니다. 청소년들이 역사를 배워야 하는 것은 당연합니다. 하지만, 무조건 외우라는 강조의 역사보다는 『분청 꿈을 빚다』처럼 생활과 밀접한 하나의 유물 속에 이어지는 역사를 익히기란 더욱 흥미로우면서도 깊이 있게 새겨질 것 같습니다. 강뫼가 아버지의 꿈을 이어받아 새로운 역사를 이어가는 주체가 되는 모습을 보면서 이 책을 읽는 청소년들 역시 같은 심정으로 미래적인 역사관을 가질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해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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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강뫼라는 소년이 어려서 아버지를 잃고 아버지의 꿈을 이어받아 인생역경을 견디어 더 멋진 도자기를 탄생시키는 이야기랍니다. 책의 시대적배경이 고려왕조가 이씨 조선 왕조로 넘어가는 시기와 맞물려 오래묵은 시대가 새로운 시대로 바뀌어 변화하는 시대상황에 더이상 청자빛을 내지 못하던 도공이 새로운 생각으로 흰색백토를 발라 임금과 양반과 온백성들이 좋아할 분청사기를 만들어내는 이야기가 버무려집니다.
분청사기라는 것이 정확하게 언제 누구에 의해서 시작된것인지 모르기에 작가의 뛰어난 상상력으로 아버지의 꿈을 이은 한 소년이 사랑과 우정과 꿈에 대한 정신적 육체적 그리고 시대적 온갖 역경을 견뎌내며 사기장이 되기까지의 한 도공의 인생사가 무척이나 아름답습니다.
역시 이루지 못할 꿈이라도 꿈을 가지고 열심을 기울이다보면 그 이상의 것을 이루어 낼 수 있다는 희망을 주는 책이랄까요? 자신의 꿈을 이룰 스승을 잃거나 서로의 뜻이 달라 친구가 멀리 떠나가고 사랑 또한 자신이 아닌 친구에게 뺏기는등의 이야기는 보통의 우리들이 겪어 내는 인생 그 자체가 아닐까 싶습니다 . 하지만 그럴때마다 주인공은 절망하기보다 오히려 더욱 힘을 냅니다 .
분청사기를 찾아보니 책속의 이야기와 참 어울린다는 생각이 듭니다. 아마 이 책의 작가도 이 분청사기의 모습을 보며 그런 상상을 하고 이런 이야기를 만들어낸거겠죠!
우리 아이들도 주인공 강뫼처럼 비록 힘들고 어려운 일이 많더라도 좌절하지 않고 더욱 힘을 낼 수 있는 자신이 꼭 이루고 싶은 꿈을 가지고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래야 공부도 더욱 신이나고 새로운 꿈을 꿀수 있을테니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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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청자 - 분청사기 - 조선백자로 이어지는 우리나라의 도자기사엔 변화해간 역사가 있었습니다. 코레아라는 이름으로 우리나라가 세상에 알려졌는가 하면 왜구의 빈번한 침입에 이어 도자기 전쟁이라 불리우는 임진왜란까지... 그러한 도자기는 번영과 아픔이 공존하는 우리나라의 대표 문화로서 지금도 여전한 모습으로 우리곁에 남아서는 민족적 자부심을 일깨우고 긍지를 가지게 합니다. ![]() |
이런 류의 역사와 맞물린 책들이 참 좋다. 아이들에게 공부하라는 소리는 참 하기 힘들고 역사책을 보라는 말도 참 하기 힘들다. 딱딱하니 일단 아이들에게 읽으라고 하면 짜증을 버럭내게 된다. 그래서 왠만하면 편안하게 읽을수 있는 판타지나 창작류등을 권하게 된다. 싸우지 않으려구. 그래서 이런 책이 더 반갑다. 창작소설형식이라 쉽게 읽을수 있으면서 소중한 역사를 맛볼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글에서 보면 옛날 우리의 멋을 잘 살려내려는 노력들이 여기저기 보인다. 단어에서도 그렇고 풍경을 그려내는 모습에서도 그렇다. 나비가 훨훨 날거나 너울이 인다는 대목에서는 작가가 소녀적인 화사한 그런 분위기를 좋아하는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림이나 장식에서만 느껴지는 그런 시각적인 것을 글로서도 화려하게 표현할수 있구나라는 생각을 깨달음을 얻었다.
공부할때 분청하기, 청자 이렇것들을 열심히 외웠던 기억이 난다. 그런데 공부라고 생각하니 좀 헷갈리기도 하고 잘 기억이 나지 않는데 이런 식으로 소설형식으로 하나하나 보여주니 자연스럽게 머릿속에 그려진다. 이야기가 재미있으면서 갈등하는 모습, 절정에 이르는 모습등이 술술 읽혀진다.
처음부터 왜적의 빈번한 침략으로 강뫼의 아버지가 돌아가시는 모습, 그로 인해 길을 떠나는 안타까운 가족의 모습이 잘 그려져 있다. 그리고 꼭 나타나는 악역이 끝까지 이야기 사이 사이에 끼어들어서 긴장감을 느끼며 한다. 또 나타나서 무슨 행패를 부리지 않을까하는 걱정스러움으로 조마조마하며 보게된다. 인간이기에 어쩔수없이 흔들리는 강뫼의 모습, 이사람 저사람과 얽히는 모습들에서는 속상하기도 했다. 그렇지만 그런 모습이 청소년기를 보내는 아이들에게 더 가깝게 다가왔을 것이다. 인생이란 내 마음대로 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별 오만가지 일들이 생길수도 있고 그러한 와중에도 어떻게 꿋꿋하게 이겨나가야 하는지에 대해서 잘 보여주고 있다.
그리고 분청사기에 대한 설명에서는 나역시 궁금증이 일어서 인터넷으로 분청사기를 찾아보았다. 그런데 정말 아름다운 분청사기를 보면서 아~~ 나도 저런 아름다운 그릇들을 갖고 생각이 절로 들었다. 예전에는 그냥 우리 조상대대로 내려오던 그릇이구나..라고만 생각했는데 이 책으로 보니 아주 가깝게 느껴지고 더 아름답다는 생각이 들었다. 작가가 이 작품을 만들어내기 위한 과정들도 이야기 뒷부분에 작가의 말에서 설명해주고 있다. 국보와 문화유산에 대해 깊이 공부하게 되면서 분청사기의 매력에 빠져들었다는 이야기. 그리고 박물관에도 가서 직접 보기도 하고 도자기를 직접 만들어보기도 하는것을 보고 분청사기가 귀하듯 이 책도 참 귀하게 만들어졌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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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로 빚는 그릇을 시라고 하면 흙으로 빚어낸 시는 도자기라는 글이 생각난다. 그릇을 빚는 과정을 일일이 알지는 못 하더라도 그 과정이 얼마나 까다로우며 엄청난 인내와 노력을 필요로 한다는 것쯤은 도자기에 문외한인 나로서도 충분히 짐작할 만하다. 그나마 죽자고 목숨걸고 덤벼들다보면 못 할 것도 없이 이름난 장인이 된다면 또 몰라 이건 숫제 열정만으로는 안되는 것이라 여겨지는 건 왤까?
좋은 흙을 구별해내고 적정한 온도를 맞추어야 하는 식견에서부터 흙을 이기고 장작을 패는 부지런함과 체력까지 갖춰야 할 뿐 아니라 하늘이 내려준 재주까지 갖추지 않고서는 어디 감히 흙이라도 만져 볼까! 처음 흙을 만졌을 때의 그 느낌이 좋아서 나도 한때(?!) 감히 도예가를 꿈꾸었던 적이 있다. 그저 흙의 그 보드라움이 좋아서 말이다. ㅎㅎ 여유가 된다면(?!) 내 손으로 빚은 다기와 그릇을 가져 보는 게 소원아닌 소원이 되었다. 그래서일까! 제목에 마음이 끌렸던 이유가?
강뫼는 고려 최고의 사기장인 아버지를 이어 멋진 청자를 만드는 게 꿈이다. 하지만 왜구의 침입으로 아버지가 죽게 되면서 고려 최고의 청자를 만들던 관요가 있던 고향 탐진현을 떠나 계룡산 기슭으로 찾아든다. 하지만 흙도 다르고 불을 때는 장작도 달라 예전의 아버지가 빚던 청자를 만들기엔 역부족이다. 그나마 보안에서 온 사기장 아저씨의 밑에서 상감법과 유약을 만드는 법을 배우지만 예전 아버지가 만들어낸 그 청자가 아니다. 아버지가 빚은 매병은 청자 특유의 비색에 상감을 해 넣은 그림은 살아있는 듯 정교했다
고려 청자 매병의 사진들^^ 사진으로 보는 청자 매병인데도 정말 마음까지 혹하게 되는 건 어쩔 수가 없다. 어떻게 저런 색이 나오지? 문양을 만들기 위해 공들인 시간과 노력이 참으로 놀랍고 경이로울 뿐이다. 그래서 강뫼도 청자를 포기 할 수 없었겠지만^^
아버지의 뒤를 이어 고려 최고의 사기장이 되고 싶은 강뫼의 꿈은 좀처럼 이루어질 기미는 보이지 않고 함께 고향을 떠나온 친구 효문 조차도 강뫼를 도와주기는 커녕 남처럼 느껴진다. 게다가 스승처럼 모시던 아저씨도 죽게 되고 마음을 설레게 했던 첫사랑 아란도 효문과 함께 떠난 버린다. 아버지의 청자를 빼앗아 도망간 치손이를 생각하면 이가 갈려서 도무지 마음을 잡을 수가 없는데....
장식을 위한 것도 있지만 대체로 그릇은 무언가를 담기 위한 용도로 사용된다. 좋은 그릇을 빚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마음을 비우고 몸을 비우고 머리 속을 비우지 않으면 안 된다. 비우고서야만 비로소 뭔가를 채울 수 있는 그릇을 만들 수 있다는 사실이 아이러니 하며서도 참으로 놀랍다. 허나 그 비우기가 채우기보다 어렵다는 걸 경험을 통해 알고 있지 않은가...
이 글은 고려말에서 조선 개국의 혼란한 시기에 청자를 빚기 위해 혼신을 다하던 강뫼라는 소년이 백자와 함께 조선의 대표적인 그릇이라고 할 수 있는 분청사기를 빚게 되는 과정을 다루고 있다. 이야기의 얼개가 단단하지 못한 게 조금 아쉽지만 불교를 넘어 성리학이 새 시대에 필요했던 사상이었던 것처럼 왕실과 귀족을 위한 그릇이었던 화려하고 정교한 청자를 떠나 소박하고 담담한 신진 사대부들의 새로운 사상을 담을 수 있는 분청사기의 출현이 필연적이었음을 알게 된다. 돈 있는 사람들만을 위한 그릇이 아니라 왕실에서부터 백성들까지 두루 쓸 수 있는 그릇이 분청 사기였던 셈이다.
책을 읽으며 내 머릿 속의 이미지가(?!) 과연 분청사기가 맞는 지 궁금했다. 편리한 인터넷 덕에(?!) 국보로 지정된 분청사기의 사진과 고려 청자까지 다시 한번 보게 되었으니 역시 아는 만큼 보이고(?!) 한 권의 책은 곧 다른 책들을 끌어들이는 미끼가(?!) 된다.
꼬박흙질, 봉통, 창불, 시편... 책을 읽으며 새로 알게 된, 그릇을 빚고 구울 때 쓰는 예쁜 말들이다. 코렐 그릇이 가볍고 깨지지 않아서 편하다지만 나는 무식하게도 여전히 무거운 우리 그릇을 쓴다. 두껍고 무겁지만 음식 좀 한다는 사람들은 안다.(?!) 밫깔이 어두우면 어두운데로 밝으면 밝은데로 고상하고 단아하고 소박하고 청아하고 맑고 깨끗한 우리 그릇들이 음식들을 얼마나 기막히게 살려주는 지... 들러리로 서서, 든든한 배경으로 서서 주인공을 무한정 빛나게 해 주는 그릇이 바로 우리 그릇의 질박한 매력이라는 걸^^ 문득 지금 내가 쓰고 있는 이 그릇들은 누구의 손길을 거쳐 여기까지 왔는 지 궁금하다.
강뫼가 그토록 담고 싶어하던 갯벌의 냄새와 싱싱하게 푸른 바닷물위로 솓구쳐 오르던 물고기들... 시간이 빚어낸 분청사기의 사연을 알게 된 하루가 그 모습처럼 푸근하고 넉넉해서 좋다.^^
분청 사기 사진 몇 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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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주인공 강뫼의 아버지는 고향 탐진(강진)에서 청자를 굽는 사기장으로 유명한 사람이었다. 아버지 밑에서 기술을 배우고 언젠가는 자기만의 청자를 만들겠다는 옹골진 꿈을 가진 소년의 을 가지고 있다. 작품은 여말과 조선 건국이라는 시대적 상황 아래 주인공 강뫼가 고향을 떠나 새로운 곳에서 자기의 꿈을 향해 가는 모습을 그리고 있다. 강뫼의 아버지는왜구의 노략질로 인해 아버지가 죽었다. 잦은 왜구의 침입으로 더는 어쩔 수 없어 고향을 떠나게 된다. 매형이 될 줄 알았던 치손의 배신을 당하지만 계룡산 계곡에서 새로운 터전을 잡는다. 아란과의 알콩달콩한 사랑은 한 순간의 오해로 어긋나고 아란은 친구 효문의 아내가 된다. 자기 굽는 일에 열정을 쏟는 강뫼와 달리 언제까지나 함께 할 줄 알았던 효문은 자가 굽는 일에 지쳐 가고 급기야 알나과 계룡산 계곡을 떠난다. 각고의 노력 끝에 가마 일이 안정을 찾아 갈무렵 악연이라고 할 수 밖에 없는 치손과의 재회 속에 주인공 강뫼가 어른이 되어 가는 모습과 이후 분청 사기가 만들어 지기까지의 과정을 담고 있다.
작품을 읽으면서 물흐르듯 잘 읽힌다는 생각이 들었다. 스토리 전개에는 문제가 없다는 건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뭔가 개운치 않다는 생각이들었다. 그래서 읽은 것에 대한 생각들을 정리하지 않고 묵혀놔 봤다. 여전히 전체 이야기는 머릿 속에 남아 있다. 시대적 상황을 밑에 깔고 소년이 고향을 떠나 이후에 맞닥드릴 상황들에서 소년을 상장 시킨다는 기본 설정.사랑과 배신을 소재로 한다는 이야기로 작품을 분석 해 본다. 고향을 떠날 수 밖에 없는 상황은 충분히 이해가 되었다. 믿었던 치손의 배신으로 가족이 겪어야 할 어려움도 충분히 예상이 된다.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계룡산 계곡에서의 생활.... 많은 이야기가 있고 많은 사람들이 등장하지만 딱히 그들의 생활이 눈에 그려지지 않는다. 치손의 재 등장에 어떤 변화를 기대해 보지만 치손의 어이없는 죽음, 노역에서 풀려나 집으로 돌아 온 강뫼가 분청자기를 만들기까지를 꼼꼼히 생각 해 본다. 치손의 등장으로 만들어 진 긴장감이 끝까지 유지 되지 못했고 이전에 만들던 자기 이야기에서 새로운 틀이 담긴 분청자기의 탄생까지 이야기가 너무 뛰었기 때문에 밋밋한 느낌이 들었다. 또 강뫼를 비롯한 대부분의 인물도 평면적이다. 좋은 설정에도 불구하고 많이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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