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무들 비탈에 서다』는 6·25 전쟁의 극한 상황에서 젊은이들이 받은 상처와 그것의 극복과정을 다룬 작품이다. 이 작품은 실제 전쟁상황과 휴전 직후의 군대 풍경을 다룬 제1부와 젊은이들이 제대 후에 겪게 되는 전후의 상황과 그 좌절을 제2부의 이야기로 이루어져 있다. 제1부의 주인공으로 볼 수 있는 동호는 사랑하는 여인, 숙이의 꿈―육체적인 사랑보다 정신적인 사랑을 만들어 나가고 싶어하는―을 지켜주지 못해 자살하고 만다. 제2부에서는 제1부의 주인공이었던 동호의 죽음고 함께 던져진, 대체 우리는 피해자일까 가해자일까, 라는 물음이 현태의 죄의식 속에서 심도 있게 추적된다. 특히 현태는 전쟁으로 인한 인간성의 파탄을 보여준다. 현태가 제대 후에 서울에서 겪게되는 실존적 위기는 수색대 활동 중 저지를 민간인 살상에 그 원인이 있다. 한때 아버지의 회사에서 의욕적으로 일을 돕다가 문득 전쟁 중에 한 아낙을 강간하고 그 모자를 살해했던 기억이 되살아나면서 현태는 모든 의욕을 잃는다. 그리고 술로 세월을 낭비하며 윤구의 약혼녀인 미란과 육체관계를 맺어 그녀를 죽음으로 몰고가고, 동호가 자살한 이유를 알기 위해 찾아온 숙이를 범하기도 하며, 작부인 계향이를 자살하게 만드는 현태는 결국 전쟁의 피해자로 남는다. 그러나 이 작품에 등장하는 현태 이외의 모든 인물들도 피해자의 입장인 것은 마차가지다. 동호를 자살로 몰고 간 창녀 옥주는 남편의 전사 통지서를 받고 실신하면서 뱃속의 아기를 지운 상처를 안고 있으며, 현태를 파탄으로 이끈 계향이도 전쟁 중에 월남하여 평양 댁의 강요로 몸을 팔아야 하는 여인이었다. 가장 현실적이고 그래서 전쟁과 포로의 위기를 벗어나며 제대 후에도 양계장을 잘 꾸려나가는, 결코 절망을, 따라서 구원을 느낄 수 없는 윤구 까지도 스스로를 피해자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으며, 목사였던 부모의 피살 장면을 지우지 못해 폭음을 계속하다가 결국 정신병원에 수감되는 선우 상사도 그 전쟁으로 인한 피해자이다. 그러나 완벽한 피해자는 없다. 이 작품에 있어서 작중인물 상호간의 관계를 가해, 피해의 관계로써 전개된다. 말하자면 모든 타자는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나'의 자의식에 대한 가해자일 수밖에는 없다. 따라서 각자는 타자와의 관계에 있어서 주체적으로는 피해자이지만, 객체적으로는 가해자일 수밖에 없다. 이리하여 모든 관계는 가해, 피해의 상승관계로 펼쳐진다. 작중의 모든 액션의 일차적인 계기는 그 전쟁에서 연유된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전쟁이란, 외적 계기에 지나지 않으며, 근원적 계기는 그 전쟁을 감당해야 했던 작중인물 개개인의 자의식의 갈등관계에서 연유되는 것이다. 모든 개인들의 상호간의 부딪침의 과정에서 빚어지는, 자의식의 상처의 양상이야말로 이 작품의 비극의 결정적 계기가 되는 것이다. 이 사실이 『나무들 비탈에 서다』에 더욱 깊은 좌절을 심어준다. 하지만 작품 안의 인간관계의 양상에서 인간의 근원적인 존재 양식에 대해 성찰할 기회를 얻을 수 있다. 또 그것을 통해 인간의 고독의 문제로 성찰의 폭을 넓힐 수 있다. 황순원은 순수하고 서정적인 작품으로 널이 알려져 있는 역량있는 작가이다. 흔히 황순원을 교과서에서 읽었던 「소나기」로 기억하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황순원은 「소나기」처럼 소년, 소녀가 등장하는 동화적이고 아름다운 여러 편의 단편소설을 썼다. 그러나 그러한 서정적인 짧은 글에서 느낄 수 있는 공감만이 그의 작품세계가 담고 있는 전부가 아니다. 황순원은 오랜 세원동안 소설 쓰는 작업에 열중하면서 나날이 주제의 깊이와 무게를 더해가는 발전을 거듭했다. 그는 생의 모순에 얽힌 인간들이 자신들의 숙명에 대처해 나가는 모습을 다루면서, 인간에 대한 진지한 탐구를 지속해왔다. 그러면서 동시에 인간(생명) 자체를 신뢰하는 애정 어린 시선으로 인간과 인간관계, 그리고 세상을 바라보는 작품세계를 펼쳐왔다. 황순원의 문학세계를 더욱 깊이 이해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장편 소설을 읽어보도록 권하고 싶다. (*) |
| 민족상잔의 비극인 6·25를 다룬 최초의 본격 장편소설 나무들 비탈에 서다... `수난을 통해 구원`으로 이르는 사도 바울적 진실을 우리에게 보여 준 <나무들 비탈에 서다>는 황순원 문학의 창조적 정력이 절정으로 표출되던 40대 중반기의 대표작으로 정말 꼭 읽어봐야하는 장편소설이라고 생각한다. 비탈에 선 나무처럼 6·25라는 민족 최대의 비극에 상처받고 몸부림치면서도 끝까지 구원의 삶을 갈망했던 젊은이들의 희생과 수난의 기록이다...이런 희생과 수난을 극복하기 위해 노력했던 그 때의 심정을 지금의 세상과 접목 시켜 현 시대의 젋은이들의 희생과 수난을 극복하는 힘을 길렀으면 좋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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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국보훈의 달 6월을 맞아 한국전쟁과 이로 인한 민족의 상처들을 떠올려보기 위해 황순원의 ‘나무들 비탈에 서다’를 읽었다. 황순원의 대표적인 작품을 떠올려보라고 하면 대개 순수하고 동화적인 ‘소나기’를 많이 생각들 한다. 실제로, 황순원은 꾸준히 동심을 바탕으로 하여 작품을 썼다고 한다. 동심이라는 것은 어린아이들에게만 있을 것 같지만 인간이라면 누구든지 마음 속에 있다. 내가 읽은 책 ‘나무들 비탈에 서다’는 이를 바탕으로 우리나라의 시대적, 역사적으로 큰 사건인 6·25 한국전쟁을 다루었다.
책에서 등장하는 인물들은 이야기 속에서 각자의 동심을 갖고 있는 것 같았다. 그 중에서 동호와 현태를 살펴보면, 다른 술집여자와 서로의 과거이야기를 나누었음에도 불구하고 숙이를 오랜시간 잊지 못하고 자살 후 밝혀지는 내용 없는 편지의 수신자 마저 숙이임을 통해 동호는 사랑에 있어서 굉장히 순수한 동심을 가졌다고 볼 수 있었다. 현태의 경우에는 이야기의 마지막에 다다랐을 때 자유의 과잉상태에 대해서, 다시 전쟁이 일어나서 죽음과 맞선 순간이 온다면 잃어버린 자신을 꼭 되찾고 싶다는 그의 말에서 평소 강인한 모습 속에 숨겨져 있던 동심을 나타내는 것 같았다.
이 책은 전쟁의 비극성을 잘 보여주는 작품임에 틀림없다. 동호의 자살이나 선우상사의 정신이상, 몸을 팔아야 하는 계향이의 극단적인 상황을 보면 알 수 있다. 그리고 등장인물들은 거의 술과 떨어져 있지를 않는다. 술을 마시는 장면으로 그들의 정신적 고통을 간접적으로 볼 수 있었다. 또한 동호와 현태가 최전방에서 보초를 서면서 자신들이 전쟁의 피해자일까 가해자일까 의문을 갖는다. 내 생각에는 동호, 숙이, 자살방조죄로 무기징역을 선고받은 현태, 포로로 잡혀갔던 윤구와 김하사, 전쟁 중 눈을 다쳐 복싱을 포기한 석기, 몸을 팔던 옥주와 계향, 목사였던 부모를 잃은 충격과 부역자를 죽인 죄책감에 정신병원에 갇힌 선우상사 모두 전쟁으로 인한 피해자이다.
‘나무들 비탈에 서다’에서 ‘나무’들은 위에 말한 피해자, 즉 아직 자라날 수 있는 젊은 사람들을 가리키며 ‘비탈에 서다’는 포괄적으로 생각하면 전쟁 이것 하나 때문에 상처받은 나무들이 각자 처한 상황에 절망하여 금방이라도 미끄러져 떨어질 것 같음을 비탈에 서있는 것처럼 표현한 것 같다. 각자의 인물들이 처한 상황은 조금씩 다르지만 전쟁으로 인해서 절망적이고 정신적으로 아픈 순간을 겪었고, 또한 각자 중요한 것 하나씩은 잃어버렸기 때문이다.
윤구가 수용소에 잡혀갔을 때 만난 과수원을 하는 한 친구가 ‘과수나무를 전정(剪定, 가지를 잘라주는 일)해주는 것은 종족 본능을 자극시키기 위한 것이다. 과수나무는 전정해주어야 자신의 몸이 위태롭다고 생각하여 빨리 열매를 맺는다. 인간도 마찬가지로 전정을 해주어야 하는 사람이 있고, 그냥 두어도 되는 사람이 있다.’라고 말한 부분이 인상 깊었다. 여기서 전정을 해주어야 하는 사람은 전쟁동안의 아픔과 상처를 잘라내고 극복해나가야 하는 사람을 뜻하는 것 같았다. 왜냐하면 통금시간이 지난 시간에 술에 취한 현태가 길을 가다가 순경에게 잡히는데 ‘당신은 전정을 받지 않아도 될 사람이다.’라고 했기 때문이다. 이러한 대목을 통해 인물들이 전쟁이 완전히 휴전되었을 때에 그동안 겪었던 절망의 순간, 슬픔, 아픔을 이겨내고 다시 일어설 것을 상상하도록 해주었다.
이야기 중간중간에 전쟁 장면을 자세하게 서술함으로써 나 자신이 당시 전쟁터의 상황을 관찰하는 것처럼 느끼게 했으며 읽으면서 같은 민족끼리의 전쟁이라는 것을 되뇌어볼수록 더 잔인하게 와닿았다. 남북의 사상을 다루기보다는 전쟁자체를 비판적으로 보고 각자의 상황이 다른 인물들을 등장시킴으로써 읽기에도 수월하였고 총 2부를 17장으로 나누어 장편소설처럼 느껴지지 않았다. 이러한 각각의 인물들을 등장시켜서인지 이 책 하나로도 무려 60년이 넘는 과거로 돌아가서 전쟁 중 사람들의 고통스러운 삶을 들여다보는 것만 같았다, 마지막으로 우리는 과거사람들의 고통스러웠던 삶들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며 남북한의 대립이 하루 빨리 진정되길 바라야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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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려 20여년 전, 중학교 다닐적에 글짓기 대회 상으로 받은 이 책은 청소년을 위한 추천 필독서에 늘 드는 생각처럼 도무지 왜 이런 책들을 청소년들에게 읽게 하려는 것인지 이해를 못하겠다.. 슬프고 고단한 한국 근.현대사를 모르고 물질적으로 풍요롭게 지낸 80년대 이후 청소년들에게 슬픈 역사를 잊지 말도록 각인시켜 주기 위함이겠거니 하기엔 그들이 받아 들이기에 너무 벅차지 않은가 싶다..
그에 대한 깊은 상처로, 아주 많이 동안 근현대사를 다룬 책들을 읽지 않고 있다가 큰 맘 먹고 꺼내 들어 읽어 보니 역시나.. 중학생이 읽을 책은 아니였다..
이러한 청년들이 이끌고 있는 이 책을, 쥐면 꺼질까 불면 날아갈까 고이 고이 부모님의 울타리 안에서 비바람 부는 바깥 세상으로 부터 차단되어 성장하고 있는 중고생들은 죽었다 깨나도 이해 할 수 없을거다.. 그래서 이 책을 읽으며, 분명 그 때 읽었던 흔적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한두가지 에피소드들 외에는 전혀 기억에 없었던거다..
우리 할아버지 세대에 해당할 이 분들이 접하고 있는 여러가지 상황은, 정도의 차이는 있겠으나 현대를 살아 가는 사람들과 전혀 다를 바가 없다..
전쟁의 참상을 기억하고 계신 많은 어른들이, 요새 젊은이들은 벌써 전쟁을 잊었다고 큰일이라고 한탄을 하시지만.. 정말 죄송하지만, 그 분들께는 아직도 몸소 체험한 현실인 그 전쟁은 이미 우리에겐 가슴 아픈 역사일 뿐이다.. 그렇기에 내가 감히 하루 하루 맞닥드려야 하는 전쟁을 모르는 우리들의 삭막한 현실이 전쟁과도 같다 생각을 하고 있는것이다..
"타인보다 민감한 사람" 의 전형적인 예인 임동호.. 전쟁통에서도 정신적인 사랑과 순결의 사이에서 고뇌할 만큼, 예민하기가 전체 인구의 10~15%에 해당하는 그 집단의 인물로 전쟁의 참상을 겪고는 어쩌면 당연한 귀결일지도 모른다 싶게 세상을 져 버리는 쪽을 택했다..
천부적인 사업성으로 전쟁통에서도 크게 사업을 일으키신 아버지를 두어, 전쟁이 끝나도 생존을 위해 아둥대지 않아아도 배불리 먹고자고 할 수 있었던 덕에 ".. 자기에게 주어진 자유를 처리 하지 못해 생기는 과잉 상태 말야.. 이런 상태에 한번 빠지는 날엔 어떻게 되는지 알어? 수렁에 빠진짝야..." 라고 자신의 상태를 너무나도 잘 설명하고 있는 신현태..
자신만의 동굴에서 겨울잠을 자거나 술을 먹는 것 외엔 그의 허탈한 마음을 달랠 수가 없어 차라리 군대를 그리고, 자발적으로 죄를 뒤집어 써 구속이 되어버린 그..
그의 온 심정을 대변하듯, 호주에서 파견온 늘 웃으며 이국땅에 적응하려 애쓰고 있지만 파아란 눈동자의 쓸쓸한 빛을 속일 수 없는 엑스트라를 등장 시키셨다, 작가선생님 께서는.. 흐름상 외국인이라 지칭 하였으나, 웃고 있어도 어딘가 모르게 쓸쓸한 그 모습은 현재를 살고 있는 모든 사람의 모습이 아닐까 싶다.. 군중속의 고독이라 했던가..
그 밖에도, 전쟁이 끝나고 차라리 정신줄을 놓아 버린 선우 이등상사나, 신앙인의 길을 택한 안 이등상사, 연인 임동호의 자살로 인해 새 삶을 살 수도 과거속에 잠겨 있을 수도 없어 표류하고 있는 여인 장숙 등 상처 받은 청춘들이 등장한다..
전쟁이 일어 나면 가장 많은 피해를 입는것이 여성과 아이들이라는 통상적인 생각에 이 인물들이 새로운 해석을 주었다.. 어찌 보면 그러한 참상을 겪고도 제정신 가지고 살아 갈 수 있을까 싶어 차라리 죽여 달라는 기도를 하기도 했음에도 이들은 "불행히도" 죽지 않고 살아 남았다.. 어쩌면 살아 남은것 자채가 재앙이라는 생각이 들 법도 한데, 그렇기 때문에 확률적으로 남자보다 여자가 더 많이 살아남아야만 했기 때문에 여자가 더 큰 피해자라 불리는건 아닐지..
그러나 모든 사람들이 상처에 연연하지 않듯 씩씩하게 살아가고 있는 사람도 있으니 그는 남윤구.. 어찌 보면 약아 빠지고 타산적으로만 보이긴 하지만 이 인물이 가장 현실적이고 보편적인 인물이 아닐까 싶다.. 전쟁을 겪고서도, 가정교사로 채용해 뒤를 봐 준 주인집 딸 미란과 결혼해 신분 상승을 꾀하던중 불법 낙태로 인해 그녀가 죽어 버렸음에도 외관상 그는 정말 얄미우리만치 상처 받지 않고 저 혼자만 삶을 잘 꾸려나가고 있다..
참으로 다행히 인간은 망각의 동물이라고들 한다.. 그러한 망각이 있어야만 제정신줄 붙들고 살수 있는 경우가 참 잦다..
그의 타산적인 이기심과 현태에 대한 부질없는 질투에 대해 장숙은
"... 큰 의미에서 이번 동란에 젊은 사람치고 어느 모로나 상처를 받지 않은 사람이 있을까요. 현태씨도 그 중의 한 사람이라고 봅니다.." 라며, 자신을 강간하여 임신케 한 현태를 두둔하며 끝을 맺지만 어쩌면 이는 윤구를 향한 말 일지도 모르겠다..
약삭빠르게 내 실속만을 차려 잘 먹고 잘 살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윤구 같은 사람에게도 전쟁 이라는 현실 앞에 상처는 반드시 있다는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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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순원의 소설은 고작해야 소년과 소녀의 아릅답고도 슬픈 사랑에 관한 이야기 <소나기>를 읽은 게 전부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갈한 문체와 잘 짜여진 이야기에서 인물과 세상을 바라보는 작가의 따스함이 느껴져서 그의 팬이 되어버렸다. 황순원 문학의 창조적 정력이 절정으로 표출되던 40대 중반기의 대표작으로 평가받는 장편 소설 <나무들 비탈에 서다>를 읽은 후 역시 명불허전(名不虛傳)임을 느끼게 되었다. 6∙25 전후의 전쟁의 비극와 희생의 역사에 관한 이 소설은 내게 어떤 경우에도 전쟁은 결코 용인될 수 없다는 생각을 심어 주었다. 감동이나 위로를 주는 것이 문학의 주된 기능이지만 생각의 전환과 설득 그로인한 행동의 변화를 이끌어내는 경우는 그리 많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전쟁의 비극과 아픔, 1950년대 전쟁 이후의 굴곡진 우리 역사에 대해 가슴으로 느끼고 싶은 사람들에게 강력하게 권한다. 이 책은 크게 1부와 2부로 구분되어 있다. 1부는 6∙25 전쟁 종료 며칠 전부터 동호의 죽음까지이고, 2부는 전쟁 종료 후 무기력한 삶을 살던 현태가 자살방조혐의로 무기수가 되기까지다. 동호는 전쟁 중 창녀 옥주와 관계를 맺게 되고, 여자친구 숙이와의 순수한 사랑을 지켜내지 못한 죄책감으로 인해 끝내 자살하게 된다. 전쟁 상황에서의 혼란과 갈등, 양심의 가책, 불가피한 선택은 어느 정도 짐작이 되는 부분이었다. 하지만 전쟁 후 남겨진 사람들의 일상 모습과 아픔에 대한 생각은 이제껏 진지하게 해보지 않았던 터라 한 구절, 한 구절이 가슴에 아로 새겨졌다. 각자가 본인의 위치에서 살아가고는 있지만 결코 그들은 전쟁의 상흔을 지워낼 수도, 벗어날 수도 없었다. 도전적이고 남성적이었지만 전쟁 후 무기력감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계향이의 자살을 방조하고, 자신의 목숨을 끊는 것조차 무의미하다며 포기하고마는 현태, 목사였던 부모의 피살 장면을 잊기 위해서 폭음을 일삼다가 결국 정신병원에 수감된 선우상사, 전쟁 중 월남하여 평양댁의 강요로 몸을 팔아야하는, 백치 같은 차디찬 무표정이 될 수 밖에 없었던 계향이, 고결한 상황에서 동우와의 사랑을 떠나보내려했으나 현태의 아이를 임신하게 된 숙이까지 이들은 결코 다른 세상을 사는 사람들이 아니었다. 지금 내가 살아가고 있는 이 사회에서 나와 함께 살아가는 이들이었다. 소설 전체를 관통하는 ‘대체 우린 피해잘까, 가해잘까’하는 질문은 마지막 숙이과 윤구의 대화까지 이어진다. 그리고 이 말은 6∙25의 아픔과 상처를 안고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하는 말임과 동시에 세계 2차대전, 베트남전, 걸프전의 희생자에게, 지금 이 시간에도 이라크, 아프가니스탄, 체첸, 리비아 등지에서 전쟁으로 고통받는 이들에게 건네는 말일 것이다. ‘이번 동란에 젊은 사람치구 어느 모로나 상처를 받지 않은 사람이 있을까요. 현태씨두 그 중의 한 사람이라구 봅니다. 그라구 저두 또 그 중의 한 사람인지 모르구요.’ ‘모르겠어요…… 어쟀든 제가 이 일을 마지막까지 감당해야 한다는 것 외에는…… 그럼 실례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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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순원'하면 '소나기'라는 소설이 가장 먼저 떠오른다. 내가 사춘기였던 때에 읽은 책이라 그랬는지는 몰라도 짧지만 순수하고 슬펐던 첫사랑을 그린 그 소설이 내 머리 속에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어떤 책을 읽어볼까 훑어보던 중에 '황순원'이라는 세 글자에 망설이지 않고 이 책을 선택했다. 동호, 현태, 윤구는 같은 부대에서 친구가 되었다. 동호는 현태에게 '시인'이라는 별명으로 불릴 정도로 자신만의 이상적인 세상에 빠져있다. 현태는 당당하지만 현실을 도피하려는 면이 강하다. 그에 반면 윤구는 현실에 대한 인정이 빠르고 적응도 잘 하는 편이다. 휴전협정 후 셋은 술집을 자주 드나들고 현태와 윤구는 술집색시들과 시간을 보내지만 동호는 군대에 있는 자신에게 편지를 보내주는 그리운 애인 숙이를 위해서 친구들처럼 색시들과 함께 하지 않는다. 그러다 어느 외출하는 날에 셋은 평소처럼 술집에 찾아간다. 동호가 여자를 꺼려하는 것을 볼썽사나워 하던 현태는 그 술집에서 옥주라는 서울색시에게 동호를 끌 수만 있다면 대가를 지불하겠다고 제안하고 동호는 얼떨결에 그녀에게 이끌리고 만다. 옥주와의 일 이후 동호는 자신이 더러워졌다고 생각하며 괴로워한다. 그러나 예상외로 다음번에 외출을 할 때 동호는 친구들에게 다시 그 술집에 가자고 한다. 그 이후로도 동호는 괴로운 마음을 없애고자 계속해서 옥주를 찾아갔고 자신에게 온 숙이의 편지마저 불태운다. 또 다시 옥주를 찾아간 동호는 옥주가 청년단 단장과 함께 방에 있다는 사실을 알고 분노하며 방문을 열고 두 번 방아쇠를 당긴다. 그런 일이 있은 뒤 부대로 돌아와 보초를 서기 위해 나갔던 동호는 얼마 뒤 흰 눈 위에서 시체로 발견된다. 술병을 깨고 그 파편으로 동맥을 끊고 자살을 한 것이다. 시간이 흘러 윤구와 현태는 제대를 하게 된다. 윤구는 가정교사를 하다가 그 집의 딸 미란과의 사건이후 양계장을 꾸려나간다. 현태는 아버지가 경영하고 있는 회사 일을 하다가 돌연 그만두고 그냥 시간이 흘러가는 대로 살아간다. 어느 날 죽은 동호의 애인 숙이는 약혼하기 전에 동호의 자살 원인을 알아야 하겠다며 현태와 윤구를 찾아온다. 현태는 모른다고 하며 피하고 피하다 동호가 숙이에게 남겼던 편지를 전해주고 그 날 밤 현태는 숙이를 범한다. 숙은 현태의 아이를 갖게 되고 윤구를 만나 모두가 이번 동란의 피해자라고 말하며 아이를 혼자 낳아 기르겠다고 하며 돌아간다. 어려웠다. 전쟁이란 소재로 쓰여진 소설은 언제나 가슴을 울리고 깊이 공감하게 되면서도 '잘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곤 한다. 내가 원해서 경험하는 것이 아니라 겪을 수 밖에 없는 극한 상황에 처한다는 것, 얼마나 불행한 일일까? 6·25전쟁을 겪지만 않았다면 동호도 자살하진 않았을 것이고 현태도 그토록 방황하지는 않았을 것이라는 생각을 해본다. 동호의 자살은 숙이를 위해 지키던 자신의 순수를 잃게 된 것에 대해 상처를 입고 그 상처를 덮지 못한 괴로움에서 비롯된 행동이었을 것이다. 전쟁에서 비롯된 상황들로 인해 자신이 생각했던 이상들이 하나씩 깨뜨려져 가는 것 또한 감당하지 못했던 것 같다. 전쟁 속에서 용기있고 결단력있게 행동했었지만 전쟁 이후에 자신을 찾아가지 못하고 스스로 포기해가는 현태의 모습에서 전쟁이 사람의 모든 것을 잃게 만들어 가는구나 싶었다. 죽은 애인을 잊기 위해 그의 자살원인을 알고자 현태를 찾아갔다가 의도치 않게 얻은 생명에 의해 이 일을 마지막까지 감당하겠다고 결의하는 숙이도 이 전쟁의 파편으로 인한 피해자였다. 결국에는 이 소설의 끝을 마무리했던 숙이의 말대로 6·25전쟁을 겪은 젊은 사람 중에 상처를 받지 않은 사람은 아무도 없는 것이다. 그나마 자신에게 처해진 상황을 순순히 받아들이고 앞으로 살아갈 것에 대한 생각을 하며 현실에 적응하는 윤구만이 덤덤하게 세상을 살아나갈 것이다. 작가는 이 소설을 통해 전쟁으로 인해 상처받은 사람들을 여과없이 이야기하고 싶었던 것 같다. '나무들 비탈에 서다'... 전쟁이라는 참혹한 상황을 겪음으로 인해서 정신적으로 안정되지 못하고 휘청휘청 거리는, 그럴 수 밖에 없는 인물들의 모습을 적나라하게 표현한 제목이라 생각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