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장장 123장으로 이루어진 이광수의 첫 장편소설인 이 작품은 《매일신보》에 연재되어 당시 많은 사람의 심금을 울렸다. 어떤 작가는 어렸을 때 ‘무정’을 보려고 매일 먼 곳까지 신문을 읽으러 갔다는 글을 읽은 기억이 있다. 이제는 친일파 작가로 기억되는 이광수의 작품 『무정』이 지금도 읽히는 것은 비단 그 시대 사람들의 공감만 이끌어낸 것이 아니라 현대에도 어떤 시사점을 던져주기 때문일 것이다. 소설의 제목 ‘무정(無情)’은 정이 없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고, 이 단어는 영채에 대한 형식의 태도를 포괄하며 중요한 순간에 등장하곤 한다. 그러나 정작 이 작품의 키워드는 ‘깬 사람’이다. 이제는 고전으로 기억되는 작품답게 이 소설에는 이분법적 사고방식이 엿보인다. 문명, 개화된 사람들과 아직 비문명, 미개한 사람들이다. 그러한 사고방식은 이광수 개인만의 생각이 아니었다. 근대화되어야하는 시점, 특히 일제 강점기였던 그 시대에 힘으로 일본을 이길 수 없다면 실력을 쌓아서 이겨야 한다는 생각이 여러 가지 형태로 지식인으로부터 민중에게까지 퍼져가고 있었다. 문명화는 시대적 요구였고 나름의 논리적 근거를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단지 그 목적을 어디에 두느냐가 관건이었다. 주인공 형식은 '먼저 깬 사람’의 전형을 보여준다. 그리고 아직 깨지 못한 사람들을 보며 안타까워한다. 어린 상태를 벗어나고 싶어 하며 아직 어린 상태에 있는 사람을 어른으로 만들어주고 싶어 한다. 등장인물들이 마지막을 장식하는 다짐은 한 사회의 지식인으로서 아직 미개한 민중이 깨는 것을 돕겠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 소설의 약점이 있다면 형식은 ‘모든 사람이 형제이며 평등하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아직 ‘깨지 못한 사람’을 자신의 아래에 두고 가르치고자 했다는 점이다. 등장인물들 간의 관계를 보면 작가가 어떤 생각으로 이 소설을 썼는지 알 수 있다. 소설 전반에 걸쳐 가르치고 배우는 일의 중요성이 드러난다. 형식 자신의 직업이 교사이며, 선형과 순애의 가정교사를 하고 있다. 또 자신도 어렸을 때 박선생에게 배우며 도움을 받은 기억이 있다. 영채는 계월화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그리고 뒷부분을 보면 영채는 병욱에게 배우게 된다. 이 소설의 가장 중요한 메시지는 가르치고 배워야 한다는 것이다. 작가가 시대적 구분으로 볼 때 근대를 살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작품에는 아직 고전소설의 형태가 드러난다. 곳곳에 등장하는 ‘편집자적 논평’이나, 독자에게 직접 가르치듯 도덕적으로 이야기하는 문체는 판소리계 소설이 주축을 이루었던 고전소설의 모습을 유지하고 있다. 『무정』이 중세에서 근대로 넘어오는 과도기에 발표된 소설이라는 이유도 있겠지만, 역시 작품 전체를 통해 이야기하고자하는 한 가지, 문명과 개화의 중요성을 작가가 작품을 통해 직접 실천하고 있다고 볼 수도 있다. 여기서 작가와 독자는 또 하나의 ‘가르치고 배우는 관계'를 성립하게 된다. 표면적인 주인공은 형식인 듯 보이지만 또 하나의 등장인물 영채에게 집중하지 않을 수 없다. 오히려 소설 전반을 통해 가장 큰 의식적 성장을 보인 사람이 영채이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아버지를 구하려고 기생이 된 자신 때문에 죽은 아버지의 뜻을 이어받아 형식을 지아비로 섬기리라고 맹목적으로 다짐한다. 그러나 영채가 순결을 잃게 되는 사건이 발생하고 그로 인해 자살을 하러 가게 되는 기차 안에서 병욱을 만나게 된다. 병욱의 이야기를 들으며 영채는 지금까지 가지고 있던 형식에 대한 자신의 마음에는 사랑이 없는 것이었음을 알게 된다. 아버지의 뜻이라는 명목은 있었지만 결국 형식에게 기대 사는 삶을 꿈꾸었던 것이다. 병욱은 여성도 남성에게 순종만 하는 것이 아니라 사랑을 포함한 자신의 생각을 주장할 권리가 있음을 알려준다. 영채는 병욱을 만나 여성이 아닌 한명의 사람으로서 ‘깨게’ 되는 것이다. 이광수는 친일파 작가로 알려져 있다. 물론 그 시대의 상황을 이해하지 못한 채 단순히 결과만 두고 친일파이냐 아니냐로 규정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못할 수도 있다. 처음부터 끝까지 친일파였던 것이 아니라 한때 이광수는 동학혁명에 가담하기도 하고 민족주의자로 인정받기도 했다. 김춘수의 회고록을 보면 이광수가 수양동우회 사건 이후 굉장한 심리적 압박에 시달리다가 일제에 굴복하여 변절한 것으로 그려지고 있다. 어쨌든 이광수가 친일파인 것은 사실이지만, 한 인물을 친일파로 규정할 때는 그 사람이 어떤 면에서 왜 친일파인지를 알고 친일파로 규정할 수 있어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작가는 자신의 모습을 남자주인공인 형식에게 투영시켰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오히려 영채에게서 작가의 모습이 나타난다. 『무정』의 원제가 『영채』였던 것만 봐도 작가가 이 작품을 구상할 때 누구에게 초점을 맞추었는지 알 수 있다. 김윤식의 『한국문학사』중 「『무정』의 문학사적 의의」를 보면 이광수의 외면은 형식에게 투영되어 있지만 내면, 즉 한의 정서는 영채에게 투영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이광수가 의도한 것이든 그렇지 않든, 정조를 빼앗기는 영채의 모습은 나라 잃은 이광수 개인을 비롯하여 그로 인해 정신적 정조를 빼앗긴 우리나라 사람들의 한의 정서를 표상하기 때문에 읽는 이의 심금을 울릴 수 있지 않았을까 생각해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