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리는 시대적 조류나 유행과는 가까운 사람이 아니었다. 그는 한국적인 것과 휴머니즘, 인간구원을 가장 집요하게 깊이 탐구한 작가이다. 종교나 향토성은 그 수단중에 하나가 아니었나 싶다. 그가 정신위주의 민족정신 중심의 문학관을 택한것은 좌파의 물질 위주의 문학관과 국제주의의 문학관에 대립하여 생성되었다고 한다. 그렇게된 원인을 알려면 그의 성장과정을 알아보는것이 필연적이다. 내가 ‘을화''를 택한것도 몇 번의 개작을 통해 66세에 완성한 ''을화''를 읽어보면, 40년에 걸친 그의 문학관과 그의 변화등을 알 수 있지 않을까 해서다. 보통 작가들은 알단 자신의 손을 떠난 작품은 독자의 몫이라며 손을 데지 않는 걸로 알고 있다. 물론 최인훈이나 레이먼드 카버같은 대가들의 개작한 작품도 읽어 보기는 했지만, 김동리처럼 몇 번씩이나 개작한 이들은 흔치 않을 것이다. 무엇이 그리 성에 차지 않아서 개작을 했을까? 이게 무녀도를 읽고 나서 든 의문이었다. 하지만 ''을화''를 다 읽고 나서는, ''을화''와 무녀도는 전혀 다른 작품이라 말해도 좋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무녀도’는 향토적 비장미를 느끼게 하는 서양 기독교와 토속신앙, 종교간의 충돌 그 이상으로 읽히기 어렵다. 그래서 김동리는 거기에 아쉬움을 남기고 자신의 문학관을 ‘을화’란 그릇에 다시 담은 것이 아닐까. 그 안에는 내가 알지 못하는 향토적 풍경, 무속신앙이 배경이 되어 있었고, 토속신앙과 서구 종교와의 대립이 있었고, 마지막엔 모화의 죽음을 통해서 비극적 아름다움마저 느꼈다.‘무녀도’와 ‘을화''의 눈에 띄는 변화는 주인공의 설정이나 결말 처리부분등 여러 가지가 있다. 하지만 가장 큰 것은 토속신앙과 기독교와의 대립이라는 단순구조에서 더 복잡하고 거대해 졌다는게 아닐까. ''을화’에서는 단순히 종교간의 대립 보다는, 우리가 현재 살고 있는 이 세상과 새로 들어오는 문명, 혹은 무언가와의 충돌, 그 융화 과정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는게 아닐까. 그리고 ‘무녀도’에선 샤머니즘의 비극적 결말을 통해서 낭만적인 예술미학, 생의 비극성를 보였다면, ‘을화''에서는 샤머니즘의 구원의 긍정가치, 삶을 위한 화해와 융합의 길이 아닌가 싶다. ''을화''는 돌아온 아들 영술이를 보고 미친듯이 반가워 하지만, 그가 기독교인이 된걸 알고는 충격을 받는다. 서양사람이 만든 잡귀가 영술의 정신을 혼란스럽게 만들고 파괴한다고 믿어버린다. 영술이도 어머니가 받드는 신을 우상숭배와 사탄, 마귀로 생각하고 그것 때문에 이렇게 힘들게 살고 있고, 월희가 장애를 가지게 되었다고 생각한다. ''을화''의 무속 신앙이나 영술이의 기독교나 표현 방식이나 차이는 있지만 근본적인 존재 이유는 사람들을 위해서, 삶을 위해서 존재한다는 점에선 같다. ''을화''의 굿이나 영술이의 기도나 바라는건 똑같은게 아닌가. 아픈 사람들을 치료해 주고, 고민을 들어주고, 복을 기원해주는 역할을 한다는 점에선 별반 차이가 없다. 서로가 믿는 신의 존재를 부정할 때에는 ''을화''와 영술은 아무런 갈등이 없는 사이좋은 모자지간이다.하지만 서로가 서로의 믿음을 부정하고, 상대방을 자기편으로 끌어들이려 함으로써 비극이 발생하고 만다. 만일 을화와 영술이 서로의 종교를 그토록 부정하고 강요하지 않았더라면 그런 일이 발생했을까? 이 사건은 개인적 문제때문이 아니라 새것에 대한 토박이의 철저한거부의 반응이 극대화 된 것이다. 영술은 자신의 어머니에 의해 죽임을 당하지만, 죽는 순간까지도 그녀를 원망하지 않고, 그녀를 위해 기도한다. 을화도 마찬가지다. 그녀는 비록 자신이 아들을 죽게 만들었지만, 끝까지 영술을 돌보고, 사랑한다.
월희한테 후처 제의가 들어왔을 때,''을화는 월희를 위해 정말 좋은 일이라고 기뻐하지만, 영술은 어떻게 그럴 수 있냐며 분노한다. 영술이 생각하기에 후처는 인간 개개인의 존엄성을 무시하는 구시대적인, 타파해야하는 악습인 것이다. 을화의 인습적 삶의 인식과 영술의 근대적 의식간의 차이로 인해 충돌한 것이다. 둘은 월희를 끔찍이도 아끼고 사랑하지만, 이렇듯 방식은 각자의 믿음 때문에 극단적일 정도로 차이가 생긴다.
영술이 이 지역의 교회에서 만난 박장로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일 중 하나가 구시대의 악습타파 인 것이다. 그들이 생각하는 그 악습으로 무당, 즉 샤머니즘을 꼽고 있다.
박장로의 아버지는 나라거 어렵지만 양반의 위세와 전통을 지키며 조상을 위하는 마음은 한결같다. 박장로의 도와달라는 간절한 부탁에도 조상들에게 죄를 질 수는 없다며 거절한다. 명분위주의 전통을 지키는 박장로의 아버지와 현실을 바꾸기위해 실용적인 것을 취하려는 박장로 사이에도 끊임없는 갈등이 생긴다.
김동리가 토속신앙과 기독교를 소재로 택한 것은, 그의 어머니가 기독교 신자였다는 사실과, 그가 기독학교를 다닌 점과도 관련이 있어 보인다. 그리고 ''을화''에서도 여전히 무당인 ‘을화’가 중심인물이다. 우리가 평소에 무당이나 무속인 하면 버스 앞자리에 붙어있는 사주팔자, 무슨 도사, 그런 광고나 떠올리게 마련이지만 샤머니즘의 역사는 인류와 함께 시작되었다. 무당은 하늘과 인간세계를 연결해주는 영매자이다. 사람인 이상 누구나 피할 수 없는 운명인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갖고 있다. 무당은 혹독한 통과과정을 통해서 죽음과 삶의 고통을 이겨내고, 구천을 떠도는 영혼들이나 원귀들 때문에 고통받는 사람들을 구원해주고 치료해주는 존재이다. 중개자이자 상징적인 인물이란 점때문이 아닐까. 하지만 무녀도와 을화에서 보여진 무당의 모습은 분명 차이가 있다. 무녀도에선 토속신앙 관련 인물이 모화 뿐이었고, 모화의 구체적인 생활이나 경력 같은 것은 알 수가 없었다. 이해하기엔 약간 막연했다고 할 수 있다. 허나 ‘을화’에서는 무당이 된 내력을 비롯해 무당이라는 특수계층에 대한 삶을 자세히 보여주었고, 을화뿐만 아니라 빡지무당, 태주할미등이 등장했다. 또 오구굿의 장면을 다 보여주거나 을화의 삶을 자세히 보여준다. 이는 신내림이란 특수한 경험을 가지고 초월적 세계와 교접하는 을화이지만 또한 옥선이라는 일상적 세계에 대한 면모도 있다는 점을 보여둔다. 이것은 ‘무녀도’에서 ‘을화’로 옮겨오면서 일상적 세계의 비중이 증가하였고, 일상과 초일상적 세계의 결합을 시도했다고 볼 수도 있지 않을까. 일상적 세계의 비중이 증가하였다는 것은 ‘을화’에서 혈연에 대한 집착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인상깊은구절] 구절보단 장면이 기억에 남는 작품이다.
전체를 다 읽고난 후 여러 장면이 파노라마처럼 머리속을 스쳐지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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