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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베의 가족'은 대학에 들어와서 거의 처음으로 읽다시피 한 책이다. '한국현대문학의 이해' 과목의 첫 시간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첫 시간부터 선생님은 숙제를 내셨다. 영화「쉬리」를 보고, 소설「광장」과「아베의 가족」을 읽어오라는 것이었다. 그때 난「아베의 가족」이라는 소설이 존재한다는 걸 처음 알았다. 전상국이라는 소설가 이름도 나에게는 생경스러운데,「아베의 가족」이라는 소설 제목은 더욱 그러했다. 아마 이 소설 제목만 들으면 우리나라 소설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하였을 것이다. '아베', 그 이국적인 이름이 불러일으키는 호기심과 그게 또 한국 소설이라는 약간의 뒤틀린 느낌을 갖고 도서관에서 책을 찾아보았다. 하지만 이미 강의에서 언급된 소설이라서 그런지「아베의 가족」은 모두 대출중이었다. 다음 강의가 있기 하루 전 날 밤, 그때까지 이 소설을 읽지 못했던 나는 당장 서점에 가서 책 사고, 밤새 끙끙대며 이 소설을 읽어 내렸다.
소설의 제목은「아베의 가족」이지만, 정작 아베는 소설의 줄거리에서 주인공도 아닌 주변 인물로서 그의 가족들에게 혹은 독자들에게 한 마디 말조차 하지 못한다. 그의 가족들에게 그는 그저 배냇병신이고 말도 못하는 귀찮고 성가신 존재였을 뿐이다. 그런데 왜 그런 아베가 소설의 막바지에 가서, "황량한 들판에 던져진 그 시든 나무들의 꿋꿋한 뿌리가 돼 줄는지도 모"를 인물이 되는 것일까.아베는 단순한 병신이 아니라 다분히 상징적인 존재이다. 아베는 아베 가족의 치부요 상처이지만, 방치하거나 은폐해야 할 것이 아니라 드러내고 끌어안아야 할 존재이다. 그리고 그런 존재의 의미는 아베의 가족이라는 울타리를 넘어 우리 민족의 문제로 확대되고 있다. 그것은 아베가 단지 그의 가족이라는 특정한 집단이 그들만의 고난을 겪으며 생겨난 것이 아니라, 전쟁이라는 전민족적인 시련의 산물이기 때문이다. 이「아베의 가족」이 초점을 둔 것은 바로 전쟁의 비참함이다. 그런데 이 작품은 전쟁의 상황 속에서 전쟁의 참혹함을 말하지 않고 전쟁 이후의 상황을 제시하고 그 곳에서 전쟁의 상황을 조망함으로써 그 비극성을 날카롭게 제시한다. 그러니까 전쟁 이후에, 전쟁을 겪은 사람들이 전쟁의 비참함에 대해 함구무언하고 외면하고 회피했을 때, 얼마나 그들의 삶이 온전치 못하고 메말라 가는지를, '뿌리'가 없는 삶이 되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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