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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을 잡아라>를 읽고 연이어 읽게 된 솔 벨로의 <허조그>였다. 끝없이 편지를 써대는 허조그에게 처음엔 이게 무슨 일이야싶었다. 허조그는 두 번 이혼을 했고, 실직상태다. 각각의 아내에게서 아들 하나, 딸 하나를 얻었다. 두번 째 매력적인 아내 매들린은 이웃이었던 남자와 바람이 나서 그 배신감도 어마어마했다. 그들을 법정에 세우기 위해 변호사를 만나 논의하기도 하고, 한없이 그들에 대한 분노를 표출한다. 그런 중에 허조그는 끊임없이 편지를 썼다. 대상은 정치가, 철학자, 과학자, 변호사 너무나도 다양하다. 꼭 보내기 위한 편지가 아니라 자신의 생각을 쏟아내는 통로였던 셈이다. 그러한 편지들을 통해 허조그의 사고 방식이나 그가 살아온 삶을 엿볼 수가 있었다. 편지들을 읽어가는 동안 그런 생각을 했다. 작가는 얼마나 많은 공부를 해야하는 사람인가? 일반적인 사실 하나를 소설의 흐름에 맡게 각색하고 적재적소에 배치하고. 감탄하며 읽어내려갔다. 나는 화가 나면 일기를 쓴다. 먹는 것으로, 쇼핑으로 스트레스를 푸는 사람도 있겠지만 그런 방법은 몸 상하고 돈이 든다. 내 스트레스 해소법은 몸에도 좋고, 경제적이다. 말로 누군가에게 쏟아부을 용기(?)는 없으니 글로 화를 풀어내는 것이다. 생각나는대로 마구 쓰다보면 어느 순간 마음 정리도 되고 화도 풀린다. 조금 객관적으로 바뀐다고 해야하나? 허조그는 왜 끊임없이 편지를 썼던걸까? 후반에 그 이유를 설명하는 문장이 나왔다. 예컨대 내 경우만 봐도 그래. 그동안 사방팔방 정신없이 편지를 썼어.말을 마구 쏟아냈지. 나는 언어를 통해 현실을 파악하려 하니까. 어쩌면 현실을 모조리 언어로 바꿔놓고 싶었는지도 몰라. (중략) 그들이 도망치지 못하게 하려고 온 세상을 편지로 가득 채웠어. 나는 그들이 인간의 모습으로 남아 있길 바라고, 그래서 말의 힘으로 환경을 통째로 만들어 그 속에 가둬놓고 싶었지. 그런 허구의 세계를 창조하려고 혼신의 힘을 기울였어. 그래도 결국 허구의 세계일 뿐이더라,-p 473 결국 허구의 세계일 뿐이라고 했지만 그런 통로가 없었다면 일찌감치 망가지지 않았을까? 예기치 않은 사고를 겪은 후 시골집으로 돌아갔다. 매들린과의 행복을 꿈꾸며 마련했던 집이지만 그들의 모습민큼이나 망가져있는 집, 하지만, 사람의 손길이 더해지면 언제든 매력을 발산할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는 집이었다. 구석 구석을 살피고, 창문을 열어 젖혀 햇빛과 시골 공기를 들이는 순간 그는 느꼈다. 뜻하지 않은 만족감이 놀랍기만 한데....아니, 겨우 만족감? 도대체 누구를 속이려고,이건 기쁨이쟎아! 아마도 처음으로 그는 매들린에게서 해방된 기분이 어떤지 실감했다. 기쁨이다! 비로소 노예 생활이 끝나고 무시무시한 중압감과 속박에서 풀려났다. (중략) 인간은 고통이 가라앉기만 해도 적잖이 행복해지는 모양이오. 아주 원시적이고 보잘것없는 수준에서 행복을 막아놨던 밸브가 간혹 이렇게 열리기도 하는지......-p541~542 편지가 그를 지탱하는 힘이었다면 이제부턴 자연의 힘으로 자신의 문제와 고통을 치유하게 되는걸까? 무엇이 되었든간에 허조그가 자신을 한없이 허우적거리게 했던 문제에서 벗어나 제 정신으로 살아가게 되는 결말을 만나서 나는 안도하고 있었다. 이 소설을 읽기 시작했을 때 윌리엄 포크너의 <고함과 분노>를 떠올렸다. <고함과 분노>는 시간의 흐름을 따라가는 소설이 아니라 초반에는 따라가기가 힘들었다. <허조그>도 중구난방 튀어나오는 편지 때문에 그런 느낌이 들었다. 이런 책들을 읽다보면 독서 근육이 점차 강해지지 않을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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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 벨로의 작품세계를 설명하는 데 가장 핵심적인 키워드가 '유대인 정체성'일 것이다. 벨로의 많은 작품처럼 이 소설의 주인공 모지스 허조그 역시 유대인이다. 온갖 사람에게 보내는 편지의 형식을 통해 허조그 내면의 번민이 낱낱이 드러나면서 “이집트보다도 까마득한 옛일”처럼 느껴지는 그의 과거 또한 밝혀진다. 그의 아버지 조나 허조그는 러시아에 살던 부유한 유대인이었는데 불법주거죄로 감옥살이를 할 신세가 되자 어린 허조그를 비롯한 가족을 데리고 러시아를 탈출하여 캐나다로 이주했다. 그곳에서 농사, 장사, 중개상 등 다양한 일을 하지만 모두 실패했다. 결국 증류기를 설치하여 화이트호스나 조니워커 등의 가짜 상표를 붙여서 파는 밀주업에 종사하다가 동포 유대인에게 배신당하고 미국으로 향하지만 어려운 생활은 여전했다. 그럼에도 허조그의 부모님은 아이들에게 고등교육을 시켜주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그 결과 그는 기반을 갖춘 미국의 학자가 되었지만, 새로운 애인인 라모나마저 유대인이라는 이유로 그를 미국인으로 여기지 않는다는 사실에 허조그는 가슴이 아리다. 군복무 시절에는 “영어는 어디서 배우셨나요?”라는 질문을 받거나, 간첩으로 여기는 따가운 시선을 받기도 했다. 미국 사회의 주류가 아니며 될 수도 없다는 소외감이 허조그의 가슴속을 가득 채우고 있다. 영혼이 울부짖던 소리를 아직도 기억한다. 그 소리는 가슴속에도 있고 목구멍에도 있다. 마음껏 입을 벌려 토해내고 싶다. 그러나 다 옛날이야기다. 그렇다, 성경에서 비롯한, 개인적 경험과 운명이 얽힌 성경적 의미에서 비롯한 유대인의 옛날이야기일 뿐이다. 전시에 벌어졌던 참사 때문에 아버지는 결코 남다른 괴로움을 겪었다고 주장할 수 없었다. 이제 우리는 더욱더 잔인한 기준쪽, 치명적인 새 기준을 세웠으므로 개개인에 대해서는 무관심하다. (263쪽) 나는 유대인이므로 타고난 현자였지만, 현자들의 전성기는 이미 지나가버렸고 영원히 돌아오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다. 아무리 노력해도 나는 기독교와 파우스트의 세계관을 이해하지 못해 영원히 이질감을 느낄 터였다. (408쪽)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