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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지가 가라앉은 뒤-루시 이스트호프] 260407_대여_그럼에도 불구하고
"[먼지가 가라앉은 뒤-루시 이스트호프] 260407_대여_그럼에도 불구하고" 내용보기
우리는 재난을 맞이하고서야 안전한 일상이 얼마나 무력한지 깨닫는다. 재난은 언제든 우리 곁에 함께하지만 잊고 지낸다. 기대하지 않고 행복한 순간을 맞이하듯, 평범하게 재난이 찾아온다. 상처 입고 통곡하고 다시 살아간다. 무안공항(제주항공), 세월호, 이태원 참사 나아가 성대교와 삼풍백화점 붕괴 등등. 크고 작은 재난은 늘 우리 곁에 있다. 우리가 잊고 살아갈 뿐. 우리가 재
"[먼지가 가라앉은 뒤-루시 이스트호프] 260407_대여_그럼에도 불구하고" 내용보기

우리는 재난을 맞이하고서야 안전한 일상이 얼마나 무력한지 깨닫는다. 재난은 언제든 우리 곁에 함께하지만 잊고 지낸다. 기대하지 않고 행복한 순간을 맞이하듯, 평범하게 재난이 찾아온다. 상처 입고 통곡하고 다시 살아간다. 무안공항(제주항공), 세월호, 이태원 참사 나아가 성대교와 삼풍백화점 붕괴 등등. 크고 작은 재난은 늘 우리 곁에 있다. 우리가 잊고 살아갈 뿐.


우리가 재난을 대비하고, 재난에도 다시 일어설 수 있는 이유는 ‘계단 밑을 청소하는 신데렐라(p.14)’와 같은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다. 저자와 같이 재난을 대비하고, 재난에 대응하는 사람들이 보이지 않는 곳에서 준비하고 있기 때문이다. 저자는 자신의 삶이 재난과 함께 시작했다고 말한다. 축구팬들에게는 유명한 힐스버리 참사의 기억, “누구든 해결을 해야지”라는 아버지의 한마디가 그의 삶을 이끌었다.


삶은 재난과 함께한다. 종이 한 장 차이로 비껴서 있을 뿐이다. 언제고 재난에 관련될 수 있다. 두 다리만 건너도 아는 사람이라는 대한민국에서 누가 재난에서 자유롭겠는가. 그럼에도 우리는 안전에 대해 심히 무감각하다. 나라 차원의 문제가 아니라 인류 자체의 태생적 결함이기도 하다. 우리의 대응은 항상 사후 약방문일 수밖에 없다. 직접 겪어보지 않고서는 알 수 없다. 상상력에는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 대중의 무관심과 예산의 한계, 정무적 판단이 겹치면 사전 대비는 구조적으로 축소된다.


정권을 막론하고 안전에 대해서는 과도한 게 없다고 말하지만, 수사에 그칠 뿐이다. 안전을 대비하고자 하지만 막상 불편함을 입으면 사람들의 표정이 달라진다. 당장 민방위 훈련을 생각해 보라. 안전을 챙기다 보면 답답한 놈, 융통성 없는 놈이 된다. 안전에 대한 규제가 경제계를 압박하고, 산업에 손실이 발생한다고 말한다. 틀린 말은 아니다. 안전만큼 규제로 이어지기 가장 좋은 경로는 없다. 그렇기에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 하지만 그것은 소득 없는 논란만 될 뿐이고, 그 누구에게도 관심을 받지 못한다. 재난이 발생하고서야 ‘피로 쓰인 명령(p.34)’에 따라 극단을 오고 갈 뿐이다. 그사이 진실은 숨겨지고, 고통받는 이만 늘어난다.


투명성에 대해서도 다시 생각해 본다. 선의의 거짓말이 오히려 위안이 아닌 상호 간의 불신을 준다는 것. DNA 감식을 무한히 해서 유해를 반드시 찾아주겠다는 약속이 오히려 상처를 계속해서 후벼파는 행위가 될 수 있다고 저자는 지적한다. 피해자를 위한다는, 섣부른 위로의 시도가 오히려 큰 상처가 될 수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


결국 재난 피해자들 다음으로 가장 크게 고통받는 사람들은 유가족이다. 그들은 재난의 결과로 고통받고, 스스로가 만든 감옥으로도 고통받는다. 슬프고 힘든 순간에도 배는 고프고, 잠도 자야 하고, 화장실도 가야 한다. 하지만 피해자를 생각할 때 그 모든 일상이 쉽지 않다. 죄책감이 만든 감옥을 벗어나 생활하는 것 자체가 어려워진다. 여기에 사회와 권위에 대한 불신, 모든 것을 믿을 수 없는 혼란의 상황 속에서 길을 잃을 수밖에 없다.


우리는 그들에 대해서 잘 알지 못한다. 그렇기에 겸손해야 하며, 그들이 하는 말을 최우선으로 들어야 한다. 그들의 상처는 우리 사회의 상처고, 그들이 회복하지 못한다면 우리 역시 마찬가지다. 그러나 우리는 그들의 마음을 섣불리 짐작하고, 규정하고, 압박한다. 침묵을 강요하고, 아무렇지 않게 살아갈 것을 강요한다. 이제 그만할 때가 되지 않았냐고. 결국 그것은 돌고 돌아 나에게로 돌아온다. 침묵 속에 숨겨진 외침들은 들리지 않는다.


책을 읽으면서 문득 재난 상황에 악플을 달던 이들이 떠오른다. 공감을 잃어버린 괴물들에게 악플을 달아본다. 악플러, 당신도 이루 형용할 수 없는 큰 고통을 맛보기를 바란다. 자기가 가장 아끼는 존재가 가장 비참한 형식으로 가장 고통받는 방식으로 죽기를 기도한다. 그럼으로써 단 한 순간도 위로받지 못하기를, 이해받지 못하기에 숨 한 번 쉬는 것조차 온몸이 찢어지는 고통이 되기를 기원한다. 그리고 종국에 그 모든 것이 꿈이었기를, 그렇게 다시 현실로 돌아온 그들이 최소한의 염치와 공감을 가질 수 있기를 바란다.

“우리가 그 자리에 없어야 할 이유는 없(p.235)” 당신도 나 역시도 마찬가지다. 그저 운이 달랐을 따름이고, 그것이 당신이 누군가를 비난하고 조롱할 수 있는 이유가 될 수 없다. 저자가 절망에서 희망을 읽었듯, 이 저주가 회복의 기원이 되기를 바란다.


이 책은 결국 한마디로 요약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남은 사람도, 그 유가족도. 우리의 삶은 재난에도 불구하고 계속된다. 감히 그 고통을 상상조차 하지 못하겠다. 그저 겪어온 개인적인 고통으로 짐작해 볼 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순간을 함께 살아가는 모두가 평안하기를, 저자의 말에서 희망을 얻는다. “인생은 대단히 귀중하고, 언젠가는 끝나며, 무척 연약하다. 이를 잊지 않고 살아야 한다.(p.188)”


일독일자 260407 작성일자 260411 / ㅁㅁㅁㅁ 정보자료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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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난 현장과 그 밖의 세상은 말 그대로 종이 한 장 차이로 갈린다. p.10

재난 전문가란, 말하자면 계단 밑을 청소하는 신데렐라 같은 존재다. 프리랜서로 일하는 사람도 있고 민간 재난 관리회사에서 일하는 사람도 있다. 혹여 최악의 상황이 발생하면 우리는 한데 모여 초대형 붕대 같은 역할을 수행한다. p.14

재난 복구는 장기간에 걸친 게임이다. 누군가의 말을 빌리자면, “단거리 경주가 아니고 마라톤도 아니며, 상상할 수 있는 최악의 지구력 경기에 가까운” 것이다. p.15

재난 후의 혼란 속에서 우리는 시간에 쫓긴 나머지 성급하게 결정을 내린다. 그러다보면 나쁜 습관들이 튀어나온다. 기록에서 항목이 누락되고, 심지어 나중에 변경되기도 한다. 가정은 실수를 낳는다. 근처에서 ‘사고’라는 단어가 들리면 나는 움찔한다. ‘사고’는 중립적인 단어가 아니다. 어떤 일이 단순 사고였을지 모른다는 생각을 하는 것만으로도 다른 가능성이 닫히기 때문이다. 갖가지 고통스러운 경험을 통해 나는 운전석에 앉아 있는 사람이 반드시 운전자는 아니며, 항공기 추락 사건이 항상 조종사의 실수 때문에 벌어지는 것도 아님을 알게 되었다. 혼란스러운 처음 몇시간 동안은 일을 ‘더 단순하게’ 처리하고자, 사망자 한 사람 한 사람이 처했던 개별 상황을 들여다보는 대신 전체적인 사망 시간을 추정해서 기록하려는 유혹에 빠지기 쉽다. 하지만 재난 상황에서 죽음은 오랜 시간에 걸쳐 다양한 방식으로 찾아오며, 유가족들에겐 자기 가족의 이야기를 알아낼 권리가 있다. 작은 디테일이 얄궂게도 얼마나 큰 위로를 주는지, 직접 그러한 상실을 겪어보기 전에는 알 수 없으리라. p.20

재난 업계 종사자에게 가장 힘든 일은 집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p.24

아슬아슬하게 비극을 모면하는 것과 실제로 비극이 일어나는 것은 종이 한 장 차이다. p.27

살면서 나는 이런 재난이 더 큰 변화를 일으킨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이런 변화를 ‘피로 쓰인 명령’이라고 부른다. 다수의 사망자가 나온 안전사고가 발생하면, 즉 많은 사람이 피를 흘리면 어떤 형태로든 행동이 불가피해지며, 국가 차원에서 일련의 법적 변화가 일어난다는 것이다. 그러한 작업이 완료된 뒤에야 재난대응요원들과 정치인들이 비극을 기록물로, 그리고 역사적 서사로 옮기는 작업을 시작할 수 있다. p.34

여느 아침과 마찬가지로 한움큼 희망과 기대를 안고 잠에서 깨어난다. 하지만 그날 일과 중에 어떤 끔찍한 일이 일어나고, 그 순간 모든 게 영영 달라진다. 재난 생존자는 설령 신체 부상을 당하지 않더라도 안전하다는 감각과 권위에 대한 신뢰를 상실하며, 정신건강이 망가진 나머지 재난 전과는 다른 사람이 되고 만다. 1989년 4월 14일, 2001년 9월 10일, 2017년 6월 13일(각각 힐스버러 참사, 911테러, 그렌펠타워 화재가 일어나기 바로 전날이다-옮긴이) 온 가족이 사랑했던 그 남자는 껍데기만 남고 사라져버린다. 가족을 잃어버린 그의 일부를 애도한다. 내가 경험하기로 우리 세대에서 특히 심각한 영향을 받는 건 아빠들이다. 자신의 무리를 안전하게 지켜야 한다는 기대를 이행하지 못했다는 생각에 그들은 뼈저린 충격을 받는다. p.35

우리 대부분이 예상하거나 기대하지 않았던, 실제로 일어난 뉴스에 보도되기 전까진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던 것. 그게 재난이다. p.45

디재스터 액션이라는 단체의 구성원들은 우리에게 재난 희생자들이 단순히 시신이나 유류품의 집합이 아님을 기억하게 해주는 강력한 촉매다. 희생자들은 세상을 떠난 뒤에도 생전과 다름없이 소중하고 의미 있는 존재다. p.50

실제 상황은 거의 매주 벌어졌다. 여객기, 허리케인 피해, 페리 전복 ... 잘못될 수 있는 일은 수없이 많다. 보통 사람들은 이에 대해 굳이 생각할 의향이 없을 뿐이다. p.54

과학이 발전하고 변화함에 따라 신원 확인을 다시 시도할 것이라고 서약하기도 했다. 무엇 하나 허투루 지나치지 않고 꼼꼼히 신원을 확인하겠다는 약속은 가상하고, 이해할 수 있으며, 인간적인 것이었다. 하지만 재난 대응 공동체에 속한 우리들 사이에선 약간의 동요가 일었다. 한계를 두지 않고 과학적 발전에 따라 신원 확인을 계속하겠다는 약속에 스스로를 옭아맨다는 건, 재난 초기에 유가족의 상처를 무기한으로 열어두는 결정을 내리는 것이었다. p.57

하지만 내게 가장 괴로운 건, 유독한 정보들을 머릿속에 넣은 채 미래의 상처를 안고 사는 것이다. 테리의 죽음을 둘러싼 진실과 같은 사실들은 법정에서 적법하게 다뤄지기 전까지는 은폐되며, 심지어 유가족조차 알 수 없다. 나는 머리와 어깨로 이 진실의 무게를 짊어지고 36개월을 살았다. 그만큼 시간이 흐른 뒤에야 조사를 통해, 테리가 부상을 치료하려고 전선을 떠나려 하는 도중에 미군 해병대에서 민간인들이 탑승한 미니버스에 총격을 가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법정에서는 과실치사라는 판결을 내렸다. p.90

갑작스러운 죽음은 언제나 다수의 경험을 동반한다. 동일한 하나의 시간 프레임에 대한 100가지 서사가 존재한다. p.91

나이 지긋한 군 출신 비상계획관들은 “웬만한 계획은 적과 마주치는 순간 폐기된다”라고 즐겨 말한다. 이 말에는 일말의 진실이 깃들어 있지만, 패배를 시인할 때 나는 좌절감을 느낀다. 우리가 세운 비상 계획이 재난이라는 현실을 맞닥뜨렸을 때 완벽히 순탄하게 실행될 거라고 기대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럼에도 계획에는 여러 중요한 기능이 있다. 충격으로 떨리는 손을 진정시켜 주는 것도 그중 하나다. 재난 계획은 사건의 지휘관이 미처 인지하지 못한 문제가 터지기 전에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지 경고하는 역할을 한다. 아무리 노련한 대응요원도 대형 사건의 초기 단계에서는 마구 분출되는 코르티솔과 아드레날린 때문에 판단력이 흐려질 수 있다. 이런 순간에 클립보드에 끼워져 있거나 전자 태블릿 기기에 띄워진 비상 계획은 우리가 의지할 곳이 되어준다. 생각을 정리하고 초점을 명료하게 해줄 심리적 장치로서 기능하는 것이다. 비상 계획은 재난에서 우리가 취해야 할 중요한 행동들을 나열한 단순 체크리스트일 수도 있지만, 여기엔 우리의 두 눈을 당장 해야 하는 일들에, 그리고 그 일들을 처리해야 할 순서에 집중시켜주는 효과가 있다. 사람들을 이동시키는 것. 필요한 자원을 가져오는 것. 뉴스 헬리콥터와 최근 빈번해진 뉴스 드론을 막기 위해 비행 금지 구역을 신청하는 것. / 이보다 더 처치 곤란한 문제는, 비상 계획의 단계별 절차를 실행에 옮기겠다며 현장을 찾아오는 사람이 대개 지역에서 가장 직위가 높은 사령관이라는 것이다. 우리는 그가 도착하는 순간을 “스크램블 에그 도착”이라고 부른다. 사령관의 어깨띠에 부착된 구불거리는 트윌 직물이 아침 식사 접시에 자주 오르는 계란 요리를 닮은 것에 착안한 농담이다. 재난에 대해 지원 요청이 오면 사령관들은 직접 행동에 나서려 하지만, 평소에 최신 훈련이나 연습에 참여하는 법이 없으므로 자주 일을 그르치고 만다. p.116~117

나는 경찰들이 “포르노 같다”는 이유로 유류품에서 제외시키려고 한 잡지 <로디드>와 <FHM>을 지키기 위해 분투했다. 결국 내가 이겨서 이 잡지들은 가족의 손으로 돌아갔다. 나중에 나는 지옥 같은 전장이나 석유 시추장치에서 일하는 아들에게 조금이나마 위안이 될까 싶어 어머니가 이런 잡지를 구독시켜주는 집도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그들은 아들이 죽기 전 최신호를 받았다는 걸 알고 위안을 받았다. 우리는 비탄에 빠진 어머니, 아버지, 자녀, 연인, 배우자에게 무엇이 소중하게 느껴질지 알지 못한다. 그것을 멋대로 결정하고 우선순위를 매기는 건 우리의 일이 아니다. p.130

특정 지역에서 발생한 재난, 즉 장소가 정해진 재난에서는 대응요원과 주민을 구분하기 어려운 경우가 잦다. 재난 현장이 본디 삶의 터전이었던 대응요원들은 지역을 보호하려는 열의가 강하며, 단순한 대응보다 더 장기적인 ‘회복’에 더 큰 관심을 보인다. p.139

우리가 소유하는 것은 사회학자 카이 에릭슨이 “자아의 가구”라고 부르는 것을 구성한다. 우리가 소유하는 물건은 우리를 우리로 만들며, 우리의 소유물을 상실한다는 것은 사람이나 장소를 잃는 것만큼이나 마음을 후벼 파는 일일 수 있다. p.148

이런 선의의 거짓말은 대응요원들과 유가족 사이의 신뢰를 없애고 회복 과정을 후퇴시킨다. “그게 거짓말이었다면 다른 것도 거짓말이 아닐까?” 한번 의심이 들기 시작하면, 유가족은 날것의 고통 속에서 애타게 소식을 기다리던 처음의 심연으로 다시 내동댕이쳐진다. p.155

내가 여러 재난의 여파에서 찾아낸 가장 고통스러운 공통점은, 지역사회와 대응요원을 포함한 거의 모든 사람이 아픔이 오래가리라는 사실을 부정한다는 것이다. 그들은 재난 후의 삶이 일시적으로 지나가는 것이라고 믿길 원한다. 상실의 5단계 중 부정과 타협 사이에 머무르며, 자신의 고통을 덜어주지 못하는 기관들에게 비난을 퍼붓는다. p.156

재난은 총체적인 상실을 일으킨다. 사람, 집, 장소처럼 형태가 있는 것의 상실. 안전감, 권위에 대한 신뢰처럼 형태가 없는 것의 상실. 그리고 재난 이전의 삶에 대한 참담한 애도. 이를 묘사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웨일스어 단어 ‘히라이스 hiraeth’일 것이다. 나는 끔찍한 재난으로 144명이 사망한 웨일스의 에버판 마을에 대해 강연하고 글을 쓰는 사람들에게서 이 단어를 처음 들었다. 1966년 10월, 탄광의 폐석 더미가 무너지면서 아래쪽 학교와 주택을 덮졌다. 사망자 가운데 116명이 어린이였다. 히라이스는 돌아갈 수 없는 장소에 대한 그리움, 결코 찾지 못할 것의 메아리,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것과 다시는 돌아갈 수 없는 시간에 대한 향수를 뜻한다. p.156~157

내가 알게 된 바, 유해를 찾은 유가족은 애도하는 법을 배우지만, 찾지 못한 유가족은 가까스로 존재를 이어나간다. p.178

오염 사건을 들여다보면 대응과 회복이 어떻게 다른지 확실히 알 수 있다. 대응은 시급히 이뤄져야 하며, 재빠른 움직임과 큰 목소리와 많은 장비가 필요하다. 반면 회복의 모든 과정은 어두운 불안과 악성 두려움에 지배받는다. p.182~183

재난 주변에서 시간을 보내다보면, 우리가 어떤 상황이든 완벽히 질서정연하게 다스릴 수 있다고 믿고자 하는 인간적 욕구는 결국 깨어진다. 우리는 재난 과학자들이 ‘고신뢰성/고위험 세계’라고 부르는 곳에 살고 있으며, 새로운 기술이 등장할 때마다 우리를 파괴할 새로운 방법도 함께 등장한다. 닉이 공포에 질린 건 당연했다. 어떤 재난은, 그저 압도적이다. 하지만 삶은 계속되어야 한다. 가장 가까운 원자력 발전소가 얼마나 잘 관리되고 있는지를 매일 궁금해하면서 사는 것은 가능하지 않고 건전하지도 않다. 인간의 마음이 위험으로부터 멀어지고 위험에 대한 생각을 지우려 하는 것은 지극히 자연스럽고 심리적으로도 건강하다. 우리가 감내하기로 선택한 위험에 대해 끊임없이 생각한다면, 일상생활을 할 수 있을까? 아기를 키우고, 아이들을 교육하고, 자동차를 운전하고, 비행기를 탈 수 있을까? / 우리는 스스로를 안전하게 지키기 위해 합리적인 조치를 취할 수 있다. 하지만 나는 일을 하면서 인류에게 종말이 닥치지 않은 매일이 좋은 날이라는 것 또한 절감한다. ... 내가 일을 처음 시작했을 때 업계 선배들에게 배운 교훈 하나는, 죽음과 재난을 줄곧 마주하는 사람들은 정말로 그렇게 산다는 것이었다. 인생은 대단히 귀중하고, 언젠가는 끝나며, 무척 연약하다. 이를 잊지 않고 살아야 한다. p.187~188

이전과 이후. 다른 어떤 말보다 재난의 영향을 가장 잘 요약하는 두 단어다. p.193

재난이 일어났을 때 모든 사회와 문명에서 가장 먼저 요구되는 행동 하나는 지체 없이 사망자를 돌보는 것이다. p.194

재난 후 처음 몇 달 동안은 단지 하루하루를 살아서 버텨내는데만도 엄청난 노력이 들어간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는 동안 서서히 외부의 압력이 쌓이기 시작한다. 중앙 정부 및 지자체, 대중, 마을의 원로들은 슬슬 재난을 마무리짓고 싶어한다. 이 지점에서 필연적으로 갈등이 촉발된다. 유가족, 생존자, 그리고 최전선에서 일하는 대응요원들에게 이 시점은 언제나 너무 성급하게 다가오며, 재난을 잊으려 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한 유가족은 정부 계약에 따라 제작된 추모 정원의 건축 설계도를 전달받고, 그들이 고인의 무덤이라고 여기고 있던 공간이 남들 멋대로 결정된 것에 대해 분노를 터뜨리기도 했다. “여기는 우리의 공간이지, 그 사람들 공간이 아니에요.” 전환은 또 다른 이유로 어려움을 동반한다. 대응 단계를 완료하는 시점 이후로, 재난 현장은 더 이상 생존할 가능성이 없지만 유해가 발견되지 않아 안식을 취하지 못한 사망자들의 집이 되기 때문이다. p.195

대단히 빠른 상황 평가 능력, 한마디로 ‘본능’은 현대 사회에서 자주 과소평가된다. 본능은 말로 표현되기 어려우며 언어보다는 감정의 영역에서 작용한다. 이 능력은 뇌에서 일어나는 번개처럼 빠른 반응과 아드레날린, 코르티솔 같은 화학물질의 생산과 관련된다. 머릿속에서 경고음이 울리고, 손바닥에 땀이 나고, 호흡이 빨라지고, 배를 중심으로 온갖 감정이 휘몰아친다. 더 구체적으로, 이 현상은 장을 중심으로 발생한다. 고대 그리스인들은 장이 감정 반응의 중심이라고 생각했으며, 정신과 장의 연결은 의학 역사에서 꾸준히 탐구되어 왔다. / 본능적 반응을 활용하는 것은 사실 성급하지 않으며 비합리적이지도 않다. 본능은 우리가 가지고 있는 기존 지식과 삶의 경험과 깊이 관련되기 때문이다. 이런 경험들은 우리가 빵 부스러기처럼 어지럽게 흩어진 미세한 환경적 단서들을 섬세하게 해석하도록 돕는다. 본능은 이렇듯 사용과 경험을 통해 갈고닦을 수 있는 것이며, 인생을 살다보면 어느 시점부터는 본능이 제법 잘 들어맞는다. p.227~228

물론 우리의 본능은 후견지명의 편견으로 물들어 있다. p.229

하지만 나는 생각이 좀 다르다. 우리는 누구나 ‘만일’이 아닌 ‘언제’를 살아간다. 사람들은 비행기 추락과 자동차 사고를 동시에 겪은 것이 이례적으로 불운한 일이라고 여기지만, 사실 통계는 이것이 충분히 가능할뿐더러 일어날 가능성이 높은 일이라는 사실을 냉혹히 보여준다. 우리는 ‘1,000명 중 한명’이나 ‘100년에 한번’이라는 위험 데이터가 운명이 인생의 확률을 공평하게 분배한다는 뜻이라고 오해한다. 하지만 실제로는 같은 사람이 반복해서 위험에 처할 수 있다. 그리 머지않은 옛날 우리의 조상들은 화재와 홍수, 광산 재난과 질병, 영아 사망과 부상을 끊임없이 경험했다. 삶의 취약성을 부인하는 우리의 모습이 그들 눈에는 얼마나 이상하게 보일까? / 또한 우리는 나쁜 우연에 주의를 기울이는 반면, 매일 그와 비슷한 규모로 일어나는 무수한 행운들은 간과하는 경향이 있다. 버스 정류장에서 사랑에 빠지거나, 공항 라운지에서 유치원 시절의 가장 친한 친구와 재회하는 것처럼, 별들이 올바로 정렬되는 순간들. 생물학적인 우연으로 아기가 만들어지는 기적. 비행기나 자동차가 사고 없이 운행하는 모든 순간들. / 그래서 나는 우리가 재난에, 혹은 재난의 변두리에 휘말리는 경험이 특별하다고 느끼지 않는다. / 우리가 그 자리에 없어야 할 이유는 없었으므로. p.235~236

긴축 재정을 추진하는 연립 정부 입장에서, 눈에 잘 띄지 않는 비상 계획 분야는 공공 부문 예산을 삭감하기 쉬운 표적으로 여겨졌다. 대중은 비상 상황이 발생하기 전까지는 보통 비상 계획 시스템이 존재하는지조차 모른다. 그러니 비상 계획이 조금씩 사라지는 것 역시 알아채지 못한다. 적어도 무언가 잘못되기 전까지는 그렇다. p.249

나는 재난의 결과가 도미노와 비슷하다고 생각한다. 재난은 사회적 진공 상태에서 발생하지 않는다. 예를 들어, 새로운 보편 복지수당 시스템을 시험 중인 지역이 파괴적인 홍수에 휘말린다면 문제가 상당히 격화될 수 있다. 팬데믹이 브렉시트 협상과 악천후와 동시에 발생하는 상황에서도 마찬가지로 심각성이 더해질 것이다. 하지만 정부에서는 계획을 깔끔하게 세우고 한번에 하나의 위험만 다루는 편을 선호했다. 그래서는 도미너처럼 연결되는 여러 상황을 다룰 여유가 없어진다. p.252

정부의 새로운 계획에서는 대중이 언제나 정부와 정부의 대응을 지지할 것이라고 상정되어 있었다. 정부에서 올바로 ‘유도’하기만 하면 사람들이 정확히 지시받은 대로 행동할 것이라는 믿음이 바탕에 깔려 있었다. 하지만 나는 그런 일치를 기대하지 않고 원하지도 않는다. 내가 여러해에 걸쳐 배운 바에 의하면, 계획은 자주 빗나가며 사람들이 계획에서 벗어나 행동하는 게 오히려 좋을 때가 많다. 그래서 나는 사람들이 지시에 따르지 않고 저항하는 기미를 느낄 때마다 미소가 지어진다. 내게는 그런 모습이야말로 희망의 씨앗으로 보인다. p.253

나는 수많은 대응요원을 위해서 체크리스트를 만들고 계획을 세우는 사람이다. 하지만 정작 나 자신에게 닥친 위기 앞에서는 적당한 말이나 도구를 찾기가 그토록 어려웠다. p.319~320

재난은 어느 날 갑자기 끝나지 않는다. p.333

우리가 최선의 길을 찾을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란다. 지금 나는 내가 여태껏 쌓아온 폭넓은 경험을 끌어모아 희망을 모색하고 있다. 나는 재난의 덩굴을 헤쳐 나와서 치유하는 일이 가능하다고 믿는다. 나의 본성이 본디 희망차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내가 평생 해온 일이 그렇게 가르쳐주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러나 내가 재난 업계에서 일하면서 얻은 경험에 비추어볼 때, 우리 앞에 많은 난관이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 또한 분명하다. 고통스럽더라도 그 난관들을 솔직하게 마주해야 할 것이다. 지금 비상계획관들이 할 수 있는 일은 손전등을 들고 앞서 나아가며 우리가 걸어가야 할 길 위의 함정을 찾아내고, 가능한 한 많은 사람이 그 길을 잘 헤쳐나가도록 돕는 일뿐이다. p.342

동일본대지진이 일어난 직후, 영화감독 기타노 다케시는 한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이 지진을 2만명이 죽은 하나의 사건으로 생각하면 피해자의 마음을 전혀 이해하지 못한다. 그게 아니라, 한 사람이 죽은 사건이 2만건 있었던 것이다. 2만가지 죽음에 각각 몸이 찢어지는 듯한 고통을 느끼는 사람들이 있다.” p.354

이 책에서 다뤄진 재난, 그리고 다뤄지지 않은 재난의 희생자들이 부디 평안하기를. “인생은 대단히 귀중하고, 언젠가는 끝나며, 무척 연약하다”는 저자의 깨달음을 우리가 기억할 수 있기를. 그 연약한 삶을 함께 살아가는 동료들에게, 우리가 매일 조금 더 따뜻할 수 있기를 바라며 글을 마친다. p.357

YES마니아 : 플래티넘 s*******1 2026.04.10.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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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쁜 별들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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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난의 이야기는 그 희생자들의 피해와 고통, 남은 사람들의 아픔에 집중되는 듯하다. 한 번도 그 재해를 복구하는 사람들의 이야기에 귀기울여본 적이 없다. 누구보다 날카롭지만 인간적으로 재난의 잔해를 돌보는 저자의 이야기가 비현실적으로 느껴지기도 했다.그렇지만"우리가 재난에, 혹은 재난의 변두리에 휘말리는 경험이 특별하다고 느끼지 않는다. 우리가 그 자리에 어뵤어야 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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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난의 이야기는 그 희생자들의 피해와 고통, 남은 사람들의 아픔에 집중되는 듯하다. 한 번도 그 재해를 복구하는 사람들의 이야기에 귀기울여본 적이 없다. 

누구보다 날카롭지만 인간적으로 재난의 잔해를 돌보는 저자의 이야기가 비현실적으로 느껴지기도 했다.

그렇지만
"우리가 재난에, 혹은 재난의 변두리에 휘말리는 경험이 특별하다고 느끼지 않는다. 우리가 그 자리에 어뵤어야 할 이유가 없었으므로"에서 느낄 수 있듯이, 언제나 찾아올 수 있고 찾아온다면 복구하는 것도 누군가의 역할이라는 것을 다시금 알게 해준다.

#재난 #복구#먼지가가라앉은뒤 #루시이스트호프
k******2 2025.10.19.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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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지가 가라앉은 뒤 : 우리는 다시 사람을 세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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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시 이스트호프의 <먼지가 가라앉은 뒤>는 재난의 끝 이후의 삶, 그 잔해 위에서 다시 살아야 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저자는 20여년간 재난 복구 전문가로 일하며 9·11 테러, 런던 7·7 폭탄 테러, 인도양 쓰나미, 그렌펠 타워 화재, 그리고 코로나19 팬데믹까지 수많은 참사를 직접 마주했다. 그런 저자의 이 책은 냉철한 보고서이자 동시에 인간의 존엄을 되찾으려는 따뜻한 기록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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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시 이스트호프의 <먼지가 가라앉은 뒤>는 재난의 끝 이후의 삶, 그 잔해 위에서 다시 살아야 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저자는 20여년간 재난 복구 전문가로 일하며 9·11 테러, 런던 7·7 폭탄 테러, 인도양 쓰나미, 그렌펠 타워 화재, 그리고 코로나19 팬데믹까지 수많은 참사를 직접 마주했다. 그런 저자의 이 책은 냉철한 보고서이자 동시에 인간의 존엄을 되찾으려는 따뜻한 기록이다. 이 책은 재난이 끝난 뒤의 복구를 '사람이 다시 사람답게 살 수 있도록 만드는 일'으로 정의하며, 그 속에 있는 눈에 보이지 않는 상처, 관계의 단절, 기억의 회복에 대한 이야기를 전해준다.

책의 제목처럼, 먼지가 가라앉은 뒤에는 늘 조용한 정적이 찾아온다. 사람들은 그 고요 속에서 잃어버린 이름을 부르고, 남은 것들을 바라본다. 재난 현장에서 저자가 마주한 것은 종이 한 장, 신발 한 짝, 혹은 아직 찾지 못한 유해의 조각 같은 사소한 것들이었다. 바로 그런 사소한 조각들이 인간의 삶을, 존재를, 그리고 사랑을 증명한다. 복구란 단지 시스템을 다시 가동시키는 일이 아니라, 고통받은 사람들에게 그들의 이야기를 되돌려주는 과정이다.

<먼지가 가라앉은 뒤>는 읽는 내내 감정과 분석 사이를 오간다. 재난을 목격한 사람의 시선은 냉정해야 하지만, 저자의 문장은 그 속에서 오히려 더 인간적이다. 재난 이후의 삶을 다룬 대부분의 책이 비극의 원인 규명에 집중한다면 이 책은 그 일이 일어난 뒤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 묻는다. 이 질문은 독자의 마음을 직접 건드린다. 특히 한국의 독자에게는 세월호 참사, 이태원 참사 등 우리가 겪은 비극의 기억이 자연스레 떠오르도록 만든다. 이스트호프가 이야기하는 복구의 의미가, 우리 사회가 잊으려 했던 '기억의 복구'와 겹치기 때문이다. 우리는 종종 재난을 숫자-

사망자 수, 피해 규모, 보상 액수로서 기억하지만 책에선 그 숫자 뒤에 남은 이름 하나하나를 호명하며 복구는 결국 인간의 존엄을 회복하는 일이라고 말한다. 그 문장은 수많은 무너진 현장에서 나온 인간적 증언처럼 다가왔다. 책은 또한 재난이 한 사회의 민낯을 드러내는 거울이라고 말한다. 평소에는 보이지 않던 구조의 균열, 책임 회피, 제도의 무능이 재난 속에서 선명히 드러난다. 저자는 그 잔해 속에서 다시 공동체를 세우기 위한 가능성을 찾으며 재난을 겪은 사람들 뿐만 아니라 그 사회에 속한 모든 이들의 책임과 선택을 묻기도 한다. 저자는 희생자와 유족, 구조대원, 공무원, 그리고 언론인까지 각자의 입장을 고르게 조명하며 복구가 단일한 행동이 아니라, 수많은 감정과 판단, 기억이 교차하는 과정임을 보여준다. 그리고 그 복구의 끝에는 언제나 기억이 남는다고 말한다.

이 책을 읽으며 느끼는 울림은 단지 비극의 여운 때문만은 아니다. 그것은 우리가 여전히 인간으로 남아 있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재난은 단절을 낳지만, 복구는 연결을 향한 의지다. <먼지가 가라앉은 뒤>는 그 의지를, 그리고 잔해 속에서도 피어나는 인간의 존엄을 기록한 책이다. 먼지가 가라앉은 자리에서 우리가 다시 세워야 할 것은 결국, 사람이다.


#재난 #복구 #먼지가가라앉은뒤 #루시이스트호프 

창비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이달의 사락 h******1 2025.10.19.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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압도적인 슬픔을 복구하는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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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상상을 해보자. 어느 날 가족들에게 평소와 다름없이 “잘 다녀올게”라고 간단히 메시지만 남기고 비행기를 탔다. 그런데 내가 탄 비행기가 추락했다. 한때 내 어깨 위에 달려있던 머리는 잘려 나갔고 팔다리도 다 떨어져 나갔다. 내 캐리어는 지상에 떨어지면서 가방이 열렸고 짐들이 다 흩어졌다. 다행히 비행기에서 멀리 떨어진 곳으로 떨어져서 불에 타지는 않았지만 다른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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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상상을 해보자. 어느 날 가족들에게 평소와 다름없이 “잘 다녀올게”라고 간단히 메시지만 남기고 비행기를 탔다. 그런데 내가 탄 비행기가 추락했다. 한때 내 어깨 위에 달려있던 머리는 잘려 나갔고 팔다리도 다 떨어져 나갔다. 내 캐리어는 지상에 떨어지면서 가방이 열렸고 짐들이 다 흩어졌다. 다행히 비행기에서 멀리 떨어진 곳으로 떨어져서 불에 타지는 않았지만 다른 사람들의 것들과 뒤섞여 어떤 것이 내 것인지 알기 어렵다. 나의 짐들은 분해된 내 신체들과 비슷한 처지가 되었다. 한때 사람이었던 나는 이제 나는 같은 비행기에 탄 다른 300여 명과 함께 ‘재난 사망자’로 불리게 되었다.



사고 발생 직후 경찰, 소방, 구급 인력 등 블루라이트 대응요원들이 가장 먼저 출동한다. 그 후에 조사관, 형사, 시신 수습 담당자들이 등장한다. 그리고 저자와 같은 재난 전문가들이 현장에 도착한다.


“ 여기는 숨 막히는 폭력이 일어난 현장이다. 뼈와 살로 이뤄진 인간에게, 항공기의 운동력은 난폭한 힘을 휘두른다. 이족보행자의 뼈대에 얹힌 무거운 머리는 무참히 잘려나간다. 나는 재난 현장에서 무얼 보든 절대 고개를 돌리지 않는다. 오히려 눈앞에 보이는 것을 집요하게 파헤치는 것으로써 대응한다. 현장과 안치소에서 나는 한때 사람이었던 대상을 골똘히 들여다보면서 무엇이 어디로 갔는지 알아내려 애쓴다. ” __13쪽

재난 전문가란 무슨 일을 하는 사람일까. 저자의 비유에 따르면 재난 전문가란 말하자면 ‘계단 밑을 청소하는 신데렐라 같은 존재’다. 재난 전문가는 최악의 상황이 발생했을 때 사람들이 따를 수 있는 비상 계획을 만들고, 재난이 발생했을 때는 대응과 복구 경로를 설정한다. 재난 조사를 돕고, 시신 안치소를 짓고, 신원 확인과 매장, 유류품 및 시신 송환을 감독한다.


『먼지가 가라앉은 뒤』의 저자 루시 이스트호프는 영국에서 손꼽히는 재난 복구 전문가로 20여 년 이상 세계 곳곳의 재난 현장에서 활동했다. 저자는 인도양 지진해일, 9.11 테러, 발리 폭탄 테러 등 2001년 이래로 일어난 사건에는 어떤 식으로든 대응에 참여했다고 한다.


저자는 재난 복구의 경험을 통해 얻은 교훈을 활용하여 다음 재난을 더 잘 대비할 수 있도록 ‘비상 계획’을 만든다. 저자는 정부를 비롯하여 다양한 종류의 기관을 위해 비상 계획을 작성한다. 즉 저자는 재난의 앞과 뒤에 모두 등장하는 사람이다.


“  끔찍한 일이 벌어진 직후의 초기 대응 단계에서, 이미 수많은 재난을 겪어본 비상계획관은 진정용 연구와 같은 역할을 한다. 우왕좌왕하는 사람들에게 괜찮을 거라고, ‘내가 어떻게 할지 안다’고 안심시켜주는 것이다. 사망자가 발생하는 재난을 계획할 때 첫 번째 단계는, 어떻게 사망자의 시신을 수습하고 보관하고 보호하여 다음 단계 작업을 가능하게 할지 계획하는 것이다. ” __99쪽

이 책에는 저자의 유년기에서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재난 전문가로서 살아온 삶이 담겨있다. 저자는 어렸을 때부터 아슬아슬하게 비극을 모면하는 것과 실제로 비극이 일어나는 것은 종이 한 장 차이임을 배웠다. 저자는 여덟 살 때 페리를 타고 가면서 처음으로 재난 현장을 지나쳤고, 잉글랜드 셰필드에 위치한 힐스버러 스타디움에서 발생한 참사 재난은 유년 시절 저자에게 가장 깊은 영향을 미쳤다. 어렸을 때부터 재난과 더 넓은 사회적 대의에 관심이 많았던 저자가 재난 전문가가 되기 위한 삶을 걸어왔다. 이 책에 소개된 재난 현장은 일반인이라면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참혹하며 혼란스럽고, 슬픔과 고통이 가득하다. 단 하나의 사건을 글로만 읽는 것도 벅차다. 그러나 이 현장을 찾아다니며 수습하고 복구하는 사람들이 존재한다. 무수히 많은 죽음과 재난의 한가운데 있는 사람들이 서로를 격려하는 말로 ‘지금 이 순간을 살라’, ‘빗속에서 춤을 추라’라는 말을 주고받을 때, 이 말들에 실린 무게는 다르다. 

이 책은 영국의 재난 전문가가 겪은 일들을 썼기에 영국의 사건 중심으로 쓰였다. 그러나 영국의 재난 사건 속에서 우리 사회에 발생했던 참사의 모습을 떠올리는 것은 어렵지 않다.



재난 업계 종사자에게 가장 힘든 일은 ‘동원 해제’라고 한다. 재난 수습과 복구를 마무리하고 다시 집으로 돌아가는 일이 가장 힘들다고 한다. 처참한 현장에서 임무를 마치고 다시 누군가의 가족의 일원으로 돌아가는 것. 저자는 가장 사랑하는 남자에게 무엇을 보았는지 말하지 않는다고 한다. 저자의 혀는 이미 굳어버린 지 오래라고 한다. 이 두 세계를 지난 20여 년간 오갔던 재난 복구 전문가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인생은 대단히 귀중하며, 언젠가는 끝나며, 무척 연약하다”라는 저자의 깨달음을 다시금 떠올린다.


* 출판사 제공 도서를 읽고 쓴 리뷰입니다

#먼지가가라앉은뒤 #루시이스트호프
#재난 #복구 #재난복구전문가
#참사 #재난복구 






이달의 사락 h**u 2025.10.19.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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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시 이스트호프, <먼지가 가라앉은 뒤>, 무너진 자리에서 우리가 해야 할 일
"루시 이스트호프, <먼지가 가라앉은 뒤>, 무너진 자리에서 우리가 해야 할 일" 내용보기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직접 읽고 쓴 후기 입니다.루시 이스트호프의 『먼지가 가라앉은 뒤』를 읽다 보면, 재난은 끝나지 않는 일이라는 사실을 새삼 깨닫게 된다. 구조 작업이 끝나고 뉴스의 헤드라인이 바뀐 뒤에도, 누군가는 여전히 그날에 머물러 있다. 유가족의 방 안, 버려진 학교 체육관, 기록을 정리하는 관공서 책상 위에서. 저자는 그 자리에 가장 오래 머무는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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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직접 읽고 쓴 후기 입니다.


루시 이스트호프의 『먼지가 가라앉은 뒤』를 읽다 보면, 재난은 끝나지 않는 일이라는 사실을 새삼 깨닫게 된다. 구조 작업이 끝나고 뉴스의 헤드라인이 바뀐 뒤에도, 누군가는 여전히 그날에 머물러 있다. 유가족의 방 안, 버려진 학교 체육관, 기록을 정리하는 관공서 책상 위에서. 저자는 그 자리에 가장 오래 머무는 사람이다. 그는 잔해를 치우는 대신 남겨진 사람들의 존엄을 복원하는 일을 한다. 유류품 하나를 어떤 상자에 담을지, 그 상자를 어떤 말과 함께 건넬지 결정하는 일. 그런 작고 구체적인 선택들이 슬픔의 방향을 조금씩 바꾼다고 그는 믿는다.


책을 읽는 동안 한국의 여러 참사가 겹쳐 보였다. 우리는 매번 큰 충격을 받고 추모의 자리를 만들었지만, 시간이 지나면 다짐은 희미해지고 남은 사람들의 삶은 제자리로 돌아오지 못했다. 애도와 위로조차 정치의 언어로 여겨지고, 유가족이 존중받기보다 의심과 혐오의 대상이 되는 현실을 떠올리면 마음이 무겁다. 이스트호프는 그런 사회의 그림자를 정면으로 마주한다. 재난 복구란 잔해를 치우는 일이 아니라, 사람과 제도를 다시 세우는 일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그 출발점은 거창한 정책이 아니라, 단 한 사람의 고통을 끝까지 책임지는 태도라고 말없이 보여준다.


그의 글은 과잉된 감정을 내세우지도, 냉정함을 가장하지도 않는다. 오랫동안 현장을 견뎌온 사람만이 쓸 수 있는 절제된 언어가 있다. 그는 슬픔을 관찰하지 않고 함께 견디며, 제도와 절차를 인간의 얼굴로 복원한다. 재난의 본질은 인간의 실수와 무관심에 있고, 복구의 본질은 그 인간다움을 되찾는 데 있다는 걸 보여준다.


『먼지가 가라앉은 뒤』는 결국 이런 질문을 남긴다. 우리는 진정으로 재난을 복구한 적이 있었는가. 희생자를 기억한다고 말하면서, 그 기억을 지탱할 구조를 만들었는가. 한국에서 일어난 지난 참사들을 떠올리면 복구는 여전히 끝나지 않은 것 같다. 이스트호프는 답을 내리지 않는다. 대신 기록하고, 경청하고, 묻는다. 그게 복구의 시작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책을 덮고 나면 재난은 우리가 어떤 사회에서 살아가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거울처럼 느껴진다. 누군가의 삶이 무너졌을 때, 그 빈자리를 어떻게 다루느냐가 한 사회의 품격을 결정한다. 한 사람의 슬픔을 존중할 줄 아는 사회만이 다음 재난을 준비할 수 있다는 것이다. 먼지가 가라앉은 뒤에야 비로소 드러나는 건 잔해가 아니라, 우리가 지켜야 할 인간의 형태다.

m*****9 2025.10.19.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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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지가 가라앉은 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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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시 이스트호프의 <먼지가 가라앉은 뒤>는 재난복구전문가라는 잘 알려지지 않은 직업의 세계를 조명한다. 재난 직후 충격과 슬픔이 가라앉은 뒤, 시신 및 소지품 수습부터 지역 복원까지 누군가는 반드시 해야 하는 숭고하지만 힘든 과정을 다룬다.책은 재난이 남긴 현실적 문제들을 직시하게 한다. 타국에서 일어난 사고에 대해 시신을 자국으로 가져와야하는 문제와 정치적 문제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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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시 이스트호프의 <먼지가 가라앉은 뒤>는 재난복구전문가라는 잘 알려지지 않은 직업의 세계를 조명한다. 재난 직후 충격과 슬픔이 가라앉은 뒤, 시신 및 소지품 수습부터 지역 복원까지 누군가는 반드시 해야 하는 숭고하지만 힘든 과정을 다룬다.

책은 재난이 남긴 현실적 문제들을 직시하게 한다. 타국에서 일어난 사고에 대해 시신을 자국으로 가져와야하는 문제와 정치적 문제까지, 재난의 충격 이면의 꼭 해야만 하는 일들에 대해 보여준다. 
재난복구전문가가 내미는 도움, 고인의 작은 소지품 하나라도  유가족에게는 하나라도 큰 의미를 되며, 살아갈 희망이 되기도 한다. 
자연재해 역시 이들이 해결을 주도한다. 수해 복구에 1~2년의 긴 시간이 걸리고 이로 인해 피해자들이 겪는 사생활 상실과 절망적인 상황을 보여주지만, 전으로 돌아갈 희망을 다루기도 하여 재난 복구 전문가의 존재는 삶을 지속하려는 꿋꿋한 의지를 만들어주기도 한다. 

결국 재난 복구는 단순한 물리적 복원을 넘어 인간의 존엄을 회복하고, 무너진 공동체를 다시 세우는 과정이다. 사람에 의해 발생한 재난 역시 많이 인류애를 잃기도 하지만, 희망을 만드는 것도 사람이라는 사실을 잘 보여주고, 그게 꽤 희망적으로 다가온다. 

"어릴 적의 나에게 계속 나아가라고 이를 것이다. 순간순간을 버티라고 말해줄 것이다. 재난은 어김없이 일어날 것이고, 그때마다 언제나 도우려 하는 사람들이 나타날 테니까. 고통도 계속되겠지만 회복도 계속될 테니까." -p,346
t*******5 2025.10.15.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