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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의 폐허 속에서 찾아낸 청춘의 한 마디
"기억의 폐허 속에서 찾아낸 청춘의 한 마디" 내용보기
배경에 대한 상세한 설명이 없어서 한동안은 좀 희미하고 답답한 채로 인물의 생각만을 따라 읽어야 한다는 점이 소설을 느리게 읽게 만들고,  그 인물의 생각을 통해 내 생각의 일부를 투영해볼 수 있다는 점에서 가끔 와락 동질감과 공감을 느끼는 류의 소설이다.  결말을 향해 뚜벅뚜벅 걸어가는 것이 아니라, 뜨문 뜨문 정차하는 야간 열차를 타고 컴컴한 어둠속을 여행하는 듯한 전
"기억의 폐허 속에서 찾아낸 청춘의 한 마디" 내용보기
배경에 대한 상세한 설명이 없어서 한동안은 좀 희미하고 답답한 채로 인물의 생각만을 따라 읽어야 한다는 점이 소설을 느리게 읽게 만들고,  그 인물의 생각을 통해 내 생각의 일부를 투영해볼 수 있다는 점에서 가끔 와락 동질감과 공감을 느끼는 류의 소설이다.  결말을 향해 뚜벅뚜벅 걸어가는 것이 아니라, 뜨문 뜨문 정차하는 야간 열차를 타고 컴컴한 어둠속을 여행하는 듯한 전개에서 뚜렷한 결말을 기대할 것도 없었는데, 뜻밖에도 거기에 정차역이 있었고, 새벽이 밝아왔으며, 불확실하지만 어쨌든 미래인 것, 어둠이 아닌 새벽이 보였다. 

주인공 보스망스는 40년의 시간을 거슬러 기억을 환기한다. 우리들은 살다 보면 어떤 시간의 마디 속에 있는 기억을 통으로 잊는 경우가 있다. 자의이던 타의이던 그것은 아픔과 상처와 상실과 결핍 같은 부정적인 것들과 관계있을 터이다. 스스로를 방어하기 위해서 기억이 지워버린 공간과 시간에는 그 무엇보다도 바꿀 수 없었던 청춘의 그림자가 있었다. 깊고 어두운 절망만이 인생의 앞쪽 도로를 향해 나 있는 줄 알고 있었던 그 시절, 그 누구도 의지할 곳 없었던 연인이 아련한 아픔을 공유하며 서로를 의지하면서 살아가던 곳에서 사람들은, 도시는, 체제는, 거리는 그들을 배반한다. 희미한 한 줄기 소망이었던 두 사람의 관계가 지워버린 청춘의 한 페이지였던 그 짧은 시간동안 나눈 두려움, 외로움은 결국 그들의 편이 되어 주지 않았던 운명을 상대로 저항 한 번 못해보고 컴컴한 무 속에 40년을 잠겼다. 

그 시절 이후 오랜 세월을 그는 삶의 일상사에 실려왔다. 주변 대부분의 사람들과 우리 사이의 차이를 없애는, 그리고 사람들이 세월이라 부르는 일종의 안개, 그 단조로운 흐름 속으로 서서히 섞여 드는 그런 일상사들에. 그는 그 무감각 상태에서 퍼뜩 깨어난 느낌이었다. 안으로 들어가 저 복도를 따라 프런트까지 가서 마르가레트의 객실 호수를 묻기만 하면 된다. 이 호텔과 주변 거리들에 그녀와 내가 남긴 파장이, 그 메아리가 분명 남아 있을 것이다.


그녀는 그와는 딴 판으로 어디로 튈지 모르는 비약과 단절로 이어지는 삶을 살아 왔으며 그때마다 제로에서부터 다시 시작했다 103

나이가 든 이후로는 책을 덮고 난 후에는 책에서 빠져 나와 주인공들과 빠이빠이 하고 바로 빠져나오는 편인데, 그들을 그렇게 아쉽게 보낼 수 없었다. 오랜만의 일이다. 단아하게 늙은 마르가레트가 40년만에 늙은 보스망스를 맞는 장면을 상상해 보았다. 보스망스는 왜 라고 묻지 않을 것이다. 마르가레트 역시 아무말 못할 것이다. 40년 동안 이루어온 시간도 부정하지는 않을 것 같다. 함께 손을 잡을까. 눈물이 날까. 잊혀진 기억의 마디들 사이에서 빠져나간 것들 때문에?



g******1 2015.03.11. 신고 공감 6 댓글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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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의 끝을 잡고 그곳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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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밤 문자 한 통을 받았다. 잘 지내냐며 갑자기 생각났다는 간단한 안부의 내용이었다. 문자를 보낸 번호는 내 전화번호부에 등록되지 않은 번호였다. 그럼에도 끝 번호 네 개가 익숙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전화번호부를 검색하니 같은 끝자리의 다른 번호가 나왔다. 어쩌면 내가 기억하는 사람이 보낸 문자일지도 모른다. 답장은 보내지 않았고 더 이상의 문자도 오지 않았다. 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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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며칠 전 밤 문자 한 통을 받았다. 잘 지내냐며 갑자기 생각났다는 간단한 안부의 내용이었다. 문자를 보낸 번호는 내 전화번호부에 등록되지 않은 번호였다. 그럼에도 끝 번호 네 개가 익숙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전화번호부를 검색하니 같은 끝자리의 다른 번호가 나왔다. 어쩌면 내가 기억하는 사람이 보낸 문자일지도 모른다. 답장은 보내지 않았고 더 이상의 문자도 오지 않았다. 기억한다는 건 소중하게 간직한다는 것과 다른 것이다. 어떤 관계의 경우 아이러니하게도 차단하기 위해 기억한다.

 

 소설 속 마르가레트는 자신을 지키기 위해 한 남자를 기억해야만 했다. 보스망스는 기억하지 못할까 두려워 오랜 시간 마르가레트를 기억했다. 기억과 기억이 마주하는 순간 진짜 기억과 조우할 수 있을까? 소설가 보스망스는 진짜 기억을 찾기 위해 안간힘을 다해 기억 속으로 돌진한다. 청춘의 민낯을 마주하는 이십 대의 시절로 말이다.

 

 자신과 닮은 존재를 한눈에 알아보듯 보스망스의 눈에 비친 마르가레트의 불안은 익숙했다. 자신이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 나타나는 과거의 남자를 떠나 다른 삶을 찾는 마르가레트와 존재 자체가 고통이었던 어머니와 신부로부터 영원히 분리되고자 원했던 보스망스는 새로운 미래라는 같은 목표를 지녔다. 서로에 대해 잘 알지도 못하면서 둘은 서로에게 절대적 존재가 될 수 있었다. 온통 낯선 사람들 속에서 겨우겨우 하루를 살아가는 청춘의 몸짓은 보스망스의 기억 속에 흐릿하면서도 선명하게 남았다. 얼마나 간절하게 새로운 삶을 원했는지 말이다. 

 

 ‘미래. 그리고 또 하나의 단어, 지평. 그 시절의 저녁, 그 구역의 조용하고 텅 빈 거리들은 모두 미래와 지평으로 통하는 탈주로였다.’ (91쪽)

 

 관계를 맺고 확장하는 일이 두려웠 마르가레트에게 보스망스는 유일하고 지속적인 관계였다. 하지만 끝내 온전한 자신을 보여주지 않고 연락을 하겠다는 말을 남기고 떠나 버린다. 사십여 년 전의 마르가레트를 찾는 보스망스의 여정은 사랑을 찾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것은 그때 잃어버린 미래이자 지평인지도 모른다. 곁에 있어도 사라질 것 같았던 존재를 이제는 절대 놓칠 수 없다는 열망 같은 것. 파리의 거리에서 그녀를 닮은 여자를 통해 과거를 추억하는 게 전부라 할지라도.

 

 ‘보스망스는 걸음을 멈추고 여자가 센 강 방향으로 멀어지는 것을 지켜보았다. 내가 저 여자를 쫓아간들 무슨 소용인가. 그녀는 나를 알아보지도 못할 것이다. 하지만 어느 날 기적이 일어난다면 우리는 같은 시간의 통로를 지날 것이다. 그러면 이 신시가지에서 우리 둘은 모든 걸 새롭게 시작할 것이다.’ (137쪽)

 

 현재를 사는 우리는 삶이 과거가 되었을 때 정확히 그것을 볼 수 있다. 그제야 대면할 용기를 지닌다. 그 시절을 통해 미래를 꿈꿀 수 있다는 걸 알면서도 여전히 나가지 못한다. 기억이라는 상처를 견디고 벗어났을 때 가능하다. 그리하여 새로운 지평을 향해 발을 디딜 것이다. 파트릭 모디아노의 소설이 기억이라는 안개를 헤치고 나오는 것처럼 말이다. 언젠가 만나게 될 그곳에서의 당신을 향해.

 

 ‘미래…… 지금의 보스망스에게는 날카롭고도 신비로운 울림을 주는 말. 하지만 그때의 우리는 한 번도 미래에 대한 생각은 하지 않았다. 우리는 여전히, 우리가 가진 가능성을 인식하지 못한 채 영원한 현재 속에 있었다.’ (170쪽)

 

r*********s 2015.04.17. 신고 공감 5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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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미래와 지평으로 통하는 활주로에서 기억의 파편들을 바라보다
"『지평』미래와 지평으로 통하는 활주로에서 기억의 파편들을 바라보다" 내용보기
나이가 들수록 과거의 기억들이 또렷이 떠오르는 걸 발견한다. 나는 제법 기억력이 좋다고 생각해왔다. 그래서 내가 기억하는 네 살 적에 있었던 일까지도 또렷하게 기억하는 편이다. 시골에서 초등학교 시절을 보냈던 기억들. 명절이면 친구들과 한복을 입으며 강강술래를 하던 일. 보름날이면 친구들과 모여 나물과 밥을 비벼 먹던 일. 그리고 고민 있을때마다 꾸던 꿈에서 나오던 내
"『지평』미래와 지평으로 통하는 활주로에서 기억의 파편들을 바라보다" 내용보기

  나이가 들수록 과거의 기억들이 또렷이 떠오르는 걸 발견한다. 나는 제법 기억력이 좋다고 생각해왔다. 그래서 내가 기억하는 네 살 적에 있었던 일까지도 또렷하게 기억하는 편이다. 시골에서 초등학교 시절을 보냈던 기억들. 명절이면 친구들과 한복을 입으며 강강술래를 하던 일. 보름날이면 친구들과 모여 나물과 밥을 비벼 먹던 일. 그리고 고민 있을때마다 꾸던 꿈에서 나오던 내가 살았던 시골길. 그 길을 걷던 나. 잊혀질 만도 한데 마치 그림을 펼쳐놓은 것처럼 그대로의 기억을 간직하고 있다. 그때의 이야기를 하지 않는데도 이상하게 기억속에 남아있다.

 

  사십이 넘은 지금. 이십대, 삼십대에서는 정신없이 삶을 사느라 현재의 시간을 중요시하고 미래의 시간만을 위해 살았던 것도 같다. 과거를 돌아볼 여유가 없었던 탓이기도 하다. 지금의 나. 사십대의 나이에 적응을 하다보니 이제 삶의 여유가 생겼다. 다른 이를 위해 살기 보다는 나를 위해 살수 있는, 내 삶의 여유가 생겼다. 여기서 삶의 여유라는 건 경제적인 것보다는 마음의 여유라고 해야 더 옳다. 삶의 중반을 넘어선 지금의 나를 생각할 수 있는 여유가 생겨 사십대가 싫지만은 않다. 받아들이기 힘들기만 했던 사십대에도 나는 친구처럼 함께 하는 여유가 생겼다. 나이들어 좋은 점, 이런 것도 있구나 싶다.

 

  2014년 스웨덴 한림원이 발표한 노벨문학상의 작가 파트릭 모디아노의 책을 오랜만에 다시 읽었다. 처음에 읽은 『어두운 상점들의 거리』를 읽고 난뒤 꽤 오랜만에 그의 작품을 다시 만난 것이다. 『지평』이란 제목이다. '지평'하면 떠오르는 것은 평야의 끝, 지평선이 먼저 떠오른다. 파트릭 모디아노는 이러한 지평을 과거의 삶과 현재의 삶에서 미래를 이끌어주는 지평이라는 제목을 택했다. 짧다면 짧지만 수많은 이야기를 담고 있는 우리의 삶에서 과거의 기억은 우리가 살아온 발자취이다. 과거가 있었기에 현재의 자신도 있는 것. 희미해진 과거의 기억속의 사람이 문득 생각나는 것. 그 기억을 붙잡을 단어 하나, 사람의 이름 하나에도 반가움이 들것이다.  

 

  그렇다. 이 책은 현재 60대를 살아가는 한 남자가 영원히 불가사의로 남을지도 모를 기억의 파편들을 바라보는 이야기이다. 젊었을 적의 일화들을 생각해본다. 머릿속에 떠올려보지만 이어지지 못하고 끊겨버리고 만다. 검정 몰스킨 수첩을 옷 안주머니에 담고 다니며 메모를 하기 시작한다. 갑자기 깜박거리며 떠올랐던 기억을 수첩을 찾아 메모하는 한 남자의 모습이 보인다. 아직 육십이 되어보지 못한 나는 상상이 안가지만, 지금의 나도 가끔씩 확연했던 누군가의 이름들이 머릿속에서 맴돌기만 하고 나오지 않을때의 느낌과도 비슷하지 않을까 싶다.

 

 

그는 생의 한 교차로에, 보다 정확하게는 미래를 향해 도약할 수 있는 한 경계에 도달한 느낌이었다. 처음으로 그의 머릿속에 그 단어가 떠올랐다. 미래. 그리고 또하나의 단어, 지평. 그 시절의 저녁, 그 구역의 조용하고 텅 빈 거리들은 모두 미래와 지평으로 통하는 탈주로였다. (91페이지) 

 

  기억을 잊는다는 것. 슬프다. 내가 누군가의 기억속에서 잊혀진다는 것보다 더 슬픈 일이 나의 기억을 잊는 일일 것이다. 보스망스가 수첩속에서 발견한 이름, 메로베. 이 사람이 누구일까, 아무리 기억속을 더듬어봐도 누군가의 성인지 이름인지 헷갈리기만 했다. 하지만 거리를 걷다가 우연히 그가 누구인지 떠올랐다. 보스망스와 함께 프랑스 파리에서 젊음의 짧은 시간을 함께 했던 마르가레트 르 코즈와 함께 사무실을 썼던 남자였다. 이제 마르가레트와 함께 했던 시간들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파리의 기차역에서 우연히 만났던 여자였다. 마르가레트는 어떤 사연인지 몰라도 한 남자를 만나게 될까봐 두려워했고, 보스망스 또한 폭력적인 어머니를 피해 도망치는 중이었다. 열등감과 두려움을 공존한 이들은 파리의 짧은 시간을 함께 했다. 그래서 그녀에 대한 기억이 반가웠는지도 모른다. 그가 기억하던 마르가레트와의 파리의 거리는 지금의 베를린의 거리와는 또다른 거리였다. 파리의 거리는 두려워하던 것들로부터의 피하고자 하는 거리, 미래를 꿈꾸었던 거리였다면, 미래가 현실이 된 지금은 과거의 기억, 기억속의 파편들을 생각하는 거리였다.

 

그래, 우리는, 마르가레트와 나는 끊임없이 밤기차를 탔던 것 같다. 그래서 우리의 그 시절은 가다 서다를 반복했고, 혼란스러웠고, 서로 아무런 연관 없는 무수한 짧은 장면드로 뚝뚝 끊겼다. (163페이지)

 

  이 부분을 읽는데 문득 스무살 시절에 밤기차를 탔던 일들이 생각난다. 누군가를 만나러 가기 위해 탔던 밤기차. 창밖을 내다보면 보이는 것이라곤 까만 어둠만 가득했던 그때. 누군가를 만난다는 설렘으로 밤시간을 견뎠던 그때. 아마 지금 그렇게 하라고 하면 혼자서 밤기차를 타지 못할지도 모른다. 그 시간들이 너무 길게 느껴질 것이므로. 그때는 그 시간도 금방 흘러갔다. 마치 젊음의 시간이 빠르게 흐르듯, 그때 밤기차를 탔던 그 시간들은 아주 짧았다. 보스망스가 마르가레트와 보냈던 파리에서의 짧은 시간을 사십 년이 지나서야 기억을 했듯. 아주 찰나의 시간이었다. 이제 다시 마르가레트를 만날지도 모른다. 먼 훗날 오랜 시간이 흘러서야 잃어버렸던 옛사랑을 만날 수도 있는 것이다. 그가 꿈꾸었던 미래는 결국 오늘이 되어 돌아왔다. 비슷한 거리에서, 비슷한 모습으로 찾아왔다.  

 

  파트릭 모디아노의 소설은 잔잔한 파문을 일게 한다. 이런 그의 소설이 좋은 건 비단 나뿐일까.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YES마니아 : 플래티넘 h*****9 2015.02.16. 신고 공감 4 댓글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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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기억속에서 길을 잃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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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그날그날 겪는 모든 일에는 현재의 불확실성이 그 흔적을 남긴다. 그 시절 마르가레트는 길 모퉁이 하나를 돌 때마다 혹여나 부아야발과 마주치는 건 아닐까 걱정했다. 보스망스는 정작 자신은 이유를 알 수 없는 적의와 경멸에 가득 차 그를 쫓아다니며 그가 혹 거리에서 가슴에 총탄을 맞고 죽는대도 서슴없이 그의 주머니를 뒤질 그 심란한 커플을 만나게 될까 봐 걱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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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그날그날 겪는 모든 일에는 현재의 불확실성이 그 흔적을 남긴다. 그 시절 마르가레트는 길 모퉁이 하나를 돌 때마다 혹여나 부아야발과 마주치는 건 아닐까 걱정했다. 보스망스는 정작 자신은 이유를 알 수 없는 적의와 경멸에 가득 차 그를 쫓아다니며 그가 혹 거리에서 가슴에 총탄을 맞고 죽는대도 서슴없이 그의 주머니를 뒤질 그 심란한 커플을 만나게 될까 봐 걱정했다. 하지만 멀찍이 떨어져 세월이라는 거리를 두고 보면 우리가 현재 느끼는 불확실과 근심은 사라진다. 마치 라디오에서 나오는 깨끗한 음악을 못 듣게 방해하던 전파 잡음이 사라지듯. 그렇다, 지금에 와서 그때를 생각하면 꿈속과 꼭 같았다.

 

초등학교에 들어가기 전의 기억은 그다지 많이 남아 있지 않은데, 그 중에서도 이상하게 마음 한 켠에 걸려 있는 기억이 있다. 유치원이 끝날 시간쯤 당시에 내가 사는 아파트 입구에 항상 서 있는 남자 아이가 있었는데, 나는 그 아이가 무섭고 싫어 집에 바로 가지 못하고 동네를 빙빙 둘러서 다니곤 했었다. 나를 기다리는 그 아이가 그때 뭔가 해코지를 하거나, 괴롭히거나 했던 것 같지도 않은데, 매일같이 입구에서 나를 기다리는 그 남자아이의 존재 자체가 부담스럽고, 공포스럽기만 했었다. 물론 어린 시절의 일이라 그래서 결국 그 아이와 어떻게 되었는지, 내가 그걸 극복하고 초등학교에 입학했었는지는 잘 생각나질 않는다. 당시의 그 일은 그저 이미지로 남아 어린 시절을 떠올리면 항상 제일 먼저 기억나는 사건 같은 게 되어 버렸다. 지금에 와서 떠올려보면 그게 대단히 괴로운 일도 아니었을 텐데, 어린 마음에 친구나 가족들 중 누구에게도 털어놓지 못해 혼자 끙끙댔었다. 누군가에게 말해버리면 이야기를 듣게 된 누군가에게 그 아이가 해코지를 할지도 모른다고 어렴풋이 생각했던 것 같다. 그때 그 아이는 지금 어떤 어른이 되어있을까. 하고 추억처럼 이야기 할 때가 올지도 모르고 말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문득 어린 시절의 그 기억이 떠올랐다.

"잘못된 만남은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어요."

모디아노는 말한다. 우리가 현재 느끼는 불확실과 근심은 세월이라는 거리를 두고 보면 사라지는 것들에 불과하다고 말이다. 보스망스의 어머니는 턱을 공격적으로 쳐들고 그를 향해 뚜벅뚜벅 걸어와 돈을 요구했다. 마치 어린아이를 을러대는 듯한 위압이 담긴 목소리로. 함께 온 갈색 머리 남자는 멀찍이 떨어져 가만히 서서, 마치 이 세상에 살고 있다는 사실에 수치심을 느끼게 해주려는 양 보스망스를 매섭게 노려보았다. 그는 그 두 사람이 자신에게 왜 그런 경멸감을 표출하는지 알 수 없었지만 그럴 때마다 주머니를 뒤져 돈을 내민다. 빨간 머리에 매정한 눈빛을 한 호적상의 어머니는 언제나 그에게, 마치 집주인이 오랫동안 집세가 밀린 세입자를 상대하듯 단호한 목소리로 돈을 달라고 요구했다. 그는 마르가레트에게 말한다. "다행히 집을 옮겼으니까, 그 둘은 이제 내게서 돈을 뜯어내지 못해요."

마르가레트는 회사 앞에서 그녀를 기다리고 있지나 않을까 노심초사 두려워하는 남자가 있다. 몇 달 전부터 자신을 찾아 다니는 남자, 부아야발을 피해 다니는 중이다. 그래서 종종 보스망스에게 회사 앞으로 데리러 와달라고 말하고, 길을 걷다가도 누군가 자신을 쫓아오는 것 같다며 불안해한다. 경찰에 신고를 한 적도 있지만, 그들은 남자가 그녀를 괴롭히려고 하는 게 아니라 그저 구애를 하는 것뿐이지 않냐며, 이제 뭐 죽고 사는 문제도 아니라고 그녀에게 말한다. 그녀는 직장에서도 한참 먼 곳에 있는 오퇴유에 집을 구한다. 눈이 내린 어느 날 밤 보스망스는 그녀에게 이렇게 말한다. "그냥 이렇게 생각하기로 해요. 우리는 지금 파리에서 아주 멀리 떨어진 곳에, 산속에, 앙가딘 어디쯤에 들어와 있다고. " 그제야 두 사람의 마음은 편안히 누그러지고, 그들은 그 모든 잘못된 만남을 잊는다.

“나는 나를 사랑하는 사람을 사랑한다

이십 대 초반의 장 보스망스와 마르가레트 르 코즈는 시위대가 운집해 있고, 경찰 기동대가 대로를 따라 인간 사슬을 형성하고 있던 어수선한 거리에서 우연히 만나게 된다. 여자는 기동대와 몰려든 군중 사이에서 사람들에게 벽으로 떼밀리다 상처를 입고, 남자는 그런 여자를 약국으로 데려간다. 그들 두 사람은 이 세상에 기댈 곳이라고는 하나도 없었고, 가족은커녕 도움을 청할 곳도 전혀 없었다. 보스망스는 마르가레트에게 영문도 모르게 적개심에 가득 차 자신을 쫓아다니며 돈을 요구하는 남녀도, 그녀를 두렵게 하는 부아야발도 다 별것 아니라고. 조만간 그들은 새로운 지평을 찾아 파리를 떠날 수 있으며 그렇게 우리는 자유롭다고 말하곤 했다.

그녀의 집을 나서면 그는 다시 카페로 들어가 이번에는 타자 원고를 수정했다. 긴 밤이 온전하게 그의 것이었다. 그는 그 구역에 더 머물고 싶었다. 그는 생의 한 교차로에, 보다 정확하게는 미래를 향해 도약할 수 있는 한 경계에 도달한 느낌이었다. 처음으로 그의 머릿속에 그 단어가 떠올랐다. 미래. 그리고 또 하나의 단어, 지평. 그 시절의 저녁, 그 구역의 조용하고 텅 빈 거리들은 모두 미래와 지평으로 통하는 탈주로였다.

 

보스망스는 다른 사람들 모르게 소설을 쓰고 있지만, 남들 앞에서 소설가라고 말하기에는 머뭇거림이 있다. 그의 얼굴, 말하는 방식, 걷는 방식, 앉는 방식에서도 불안이 묻어났다. 그는 언제나 의자나 소파 가장자리에 한쪽 엉덩이만 걸치고 앉았다. 마치 거기는 자기 자리가 아니라고 생각하는 사람처럼, 그리고 곧 달아날 준비를 하는 사람처럼. 키도 크고 몸무게도 백 킬로그램에 달하는 거구의 사내가 보이는 이런 태도는 그가 삶을 대하는 태도와 오버랩된다. 그는 언제나 미안해하는 사람의 느낌을 풍겼다. 정확히 무엇에 대해 미안해해야 하는지 스스로도 의문인 채로. 그는 가끔 홀로 길을 걷다가 자신에게 질문을 던진다. 무엇이 미안해? ? 살아 있다는 것이?

마르가레트는 언제나 남들과 함께 있을 때 그들과 격이 맞지 않을 까봐 두려워한다. 그래서 항상 다른 사람들의 격에 맞추기 위해 노력한다. 한 번도 본 적 없는 아버지가 가끔 그립고, 어머니가 결혼한 자동차 정비사가 싫어 그녀는 기숙학교에 들어가면서 어머니와의 관계를 끊어버린다. 그리고 그녀는 보석과 시계를 만드는 회사에서 일하고, 체육관 구내 식당에서 일하고, 찻집과 서점에서의 일을 거쳐 두 아이를 돌보는 보모 자리를 얻는다. 겨우 이십 대 초반의 나이에 그녀의 삶은 한 곳에 자리잡지 못하고 여기저기 부유하며 떠돌아 다닌다.  

"한 젊은 여자가 유모차를 밀며 보스망스 앞을 걸어가는데 뒷모습이 마르가레트와 똑같다."

보스망스는 사십여 년이 지난 뒤, 거리에서 그녀와 닮은 여자가 지나가는 것을 본다. 불꽃처럼 짧고 강렬했던 사랑이 예고 없이 끝나버린 후 꽤 많은 시간이 흘러, 보스망스는 파리 곳곳에서 그녀에 대한 기억의 자취를 찾아 다닌다. 이 작품은 그렇게 기억의 편린들을 끌어 모아 과거를 돌아보는 여정을 그리고 있다. "짧은 만남들, 어긋난 약속들, 잃어버린 편지들, 오래 전 수첩 속에 적혀 있었지만 이제는 잊힌 이름과 전화번호들, 그리고 의식도 못한 채 마주쳤던 여자들과 남자들." 우리의 삶에서도 자주 잃어버리곤 하는 수많은 것들에 대한 아름다운 이야기는 마치 꿈결처럼 읽힌다. 보스망스는 어디에선가 사람과 사람의 첫 만남은 마치 가벼운 상처처럼 두 사람에게 남아 그들을 고독과 무감각으로부터 깨워 일으킨다는 말을 읽었다고 기억한다. 그렇다. 타인과의 모든 첫만남은 그렇게 누군가에게 상처로 남기도 한다. 그는 마르가레트와의 첫 만남을 회상하면서, 그것이 바로 그곳, 그 지하철 입구에서, 서로 맞부딪치면서 일어날 수밖에 없었던 필연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작은 파리 지도를 보며 그녀와의 기억을 추억하고 떠올려본다. 마치 꿈결처럼 몽환적이게도, 다소 모호하게도 읽히는 이 작품의 매력은 바로 그것에서도 빛난다. 파리의 곳곳을 마치 여행하듯이 누비는 기분으로 거리들을 만날 수 있으니 말이다. 보스망스는 어떤 거리의 한쪽에서는 그가 젊었을 적 만난 사람들을 과거의 나이와 모습 그대로 다시 만날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늘 상상한다. 그곳에서 시간의 테두리를 벗어나 지금도 예전 모습 그대로 살고 있을 거라고.

어쩌면 보스망스와 마르가레트의 끊임없는 희망이 지평을 넘어 그들에게 도달할지 말지는 그다지 중요한 것이 아닌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도 든다. 시간의 통로들을 서로 겹치고, 얽히면서 누군가와 관계를 맺어 나가고, 먼 훗날 기억의 파편들을 그러모아 추억에 잠길 수 있는 그것 자체가 너무도 소중하게 느껴졌으니 말이다. 가끔은 나도 그처럼 기억 속에서 길을 잃어보고 싶다고 생각이 될 만큼, 이 작품은 매혹적이다. 지금도 파리에 가면 어딘가에서 보스망스가 몰스킨 수첩 맨 뒤에 실린 작은 파리 지도를 들여다보며 지도에 표시되지 않는 길들을 찾아 헤매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r*******n 2015.03.05. 신고 공감 2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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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을 꿈꿀 희망은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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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노벨문학상 수상자 파트릭 모디아노는 평생 ‘기억’에 천착한 작가다. 역사 속에서 상처 입은 개인이 자신의 운명을 되짚으며 기억의 불완전함과 싸우는 과정이 그의 작품 대부분의 주제다. 기억이란 속성상 과거를 향하기 마련이다. 그래서 파트릭 모디아노의 작품도 별 수 없이 과거 지향적일 수밖에 없다. 그리고 그가 좇는 과거는 아름답거나 유쾌한 것이 아니다. 그의 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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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노벨문학상 수상자 파트릭 모디아노는 평생 ‘기억’에 천착한 작가다. 역사 속에서 상처 입은 개인이 자신의 운명을 되짚으며 기억의 불완전함과 싸우는 과정이 그의 작품 대부분의 주제다.

 

기억이란 속성상 과거를 향하기 마련이다. 그래서 파트릭 모디아노의 작품도 별 수 없이 과거 지향적일 수밖에 없다. 그리고 그가 좇는 과거는 아름답거나 유쾌한 것이 아니다. 그의 과거는 전쟁의 폐허와 상실과 관련되어 있다. 그러므로 잊고자 했던 과거이고, 잊혀야만 했던 과거다. 그런 과거를 기억하고자 하는 의지는 번번이 좌절할 수밖에 없다. 그런 과거가 다시 살아나는 것은, 과거를 기억하고자 하는 이에게도 두려운 일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2010년에 발표한 《지평》은 좀 다르다. 물론 시선은 과거를 향해 있다. 육십 대의 소설가가 40년 전의 한 여인을 회상하는 줄거리다. 2000년대 초반에 썼다면 60년대 초반의 파리가 배경이다. 그때의 파리는 어땠나? 알제리 전쟁이 끝난 파리는 가라앉아 있었다. 제국주의의 마지막 저항이 드디어 목숨줄을 내놓았다. 프랑스의 제국주의를 옹호하든, 그렇지 않든 조국이 힘을 잃어가는 모습을 반길 국민은 많지 않았다. 젊은이들은 그런 파리에서 취직 자리를 구하려 다녔다. 사랑했지만, 미래를 계획하지는 않았다. 그래서 그들은 헤어졌다. 

 

장 보스망스나 마르가레트 르 코즈에게는 부모가 없었다. 파트릭 모디아노에게 부모가 어떤 존재였는지는 모르지만, 이 소설만 보면 그에게도 부모에 대한 커다란 상실감이 있었던 것이 아닌가 생각할 정도다. “대체로 어떤 계기가 있어야 우리는 이 세상을 살면서, 잘 태어나 잘 자란 사람들, 자신 있는 입술과 눈빛으로 부모에게 사랑받았다고 말하는 사람들에게서 보이는 그 한결같은 자신감과 적자(嫡子)다운 당당함을 가질 수 있는 걸까?”라는 토로는 보스망스의 것이자 그와 같은 해에 태어난 작가의 것이 아니라고 할 수 있을까? 그의 연보를 보면 그런 느낌은 들지 않지만, 그의 부모 부재는 적어도 시대적인 것만큼은 분명해 보인다. 

 

그런데도 온통 부정적인 다른 소설들과는 《지평》은 좀 다르다. 소설 속에서 ‘지평’이라는 문구가 여러 차례 나오는데, 그것들을 적어보면(전부는 아니다) 다음과 같다. 

 

“매일 구인 광고를 읽으며 자신에게 또다른 지평을 열어줄 문구가 눈에 띄기를 고대한다면서,”

“미래. 그리고 또 하나의 단어, 지평. 그 시절의 저녁. 그 구역의 조용하고 텅 빈 거리들은 모두 미래와 지평으로 통하는 탈주로였다.”

“그녀는 저 시커먼 몸이 평생에 걸쳐 그녀의 시야에서 먼 지평을 가려버리는 건 아닐까 하고 생각했다.”

“적어도 의혹이 있는 한 아직 일종의 희망이, 먼 지평을 향한 탈주로가 남은 것이다.”

“그에게 연거푸 손을 흔들던 그날 밤 그녀의 모습처럼 멀어져 지평 너머로 사라졌다.”

 

‘지평’은 ‘L’horizon’의 번역어다. 흔히 우리는 ‘지평선’이라고 한다. ‘지평선’이라고 하면, 어떤 구체적인 것, 지점을 가리키는 느낌을 주기에, 조금은 추상적인 느낌의 ‘지평’이라고만 번역한 것이라 생각한다. 실제로 그런 의미로 쓴 부분도 있고, ‘지평선’이라고 읽으면 더 이해되는 대목도 있다. 

 

그게 어찌 되었든, ‘지평’은 분명 ‘미래’와 관련이 있다(인용문에서도 보이듯이). 지평, 지평선은 ‘저 건너’를 염두에 두지 않는 한 존재하지 않는 개념이다. ‘저 건너’에서는 무엇이 있는지,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아직 모른다. 모른다는 것은 (역시 인용하고 있듯이) “아직 일종의 희망”이 남아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60세가 넘은 소설가는 자신의 나이와 같은 도시, 베를린으로 마르가레타를 찾아간다. 마지막 장면은 보스망스와 마르가르타가 만나기 직전에 끝이 난다. 그것 역시 무슨 일이 있을지 모르는, ‘일종의 희망’이다. 무엇이 이뤄지고 나면 그것은 오로지 기억해야만 하는 일이 된다. 

 

막막했던 청춘의 시절이 있었다. 그러나 그로부터 멀리 떠나와 그 시절의 고뇌와 열정이 드문드문 떠오르는 노년에도 지평을 꿈꿀 만한 희망은 남아 있다. 




YES마니아 : 로얄 n*****m 2026.02.15.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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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파트릭 모디아노]
"[지평-파트릭 모디아노]" 내용보기
파트릭 모디아노의 특징은 기억을 더듬어 과거를 찾아가는 이야기가 아닐까 싶다.그만큼 많은 이야기들이 하나의 주제를 두고 갖가지 variation을 보여주는데, 이 번 역시 그 중의 하나.식상할때도 되었는데, 그 기억으로의 탐색이 나는 싫지가 않다.책 속에서처럼 과거의 기억을 더듬어보고, 어떻게 어떻게 그 시절의 사람들을 찾아 뭐하고 살고있는지, 혹은 직접 만나보기도 해봤더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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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트릭 모디아노의 특징은 기억을 더듬어 과거를 찾아가는 이야기가 아닐까 싶다.

그만큼 많은 이야기들이 하나의 주제를 두고 갖가지 variation을 보여주는데, 이 번 역시 그 중의 하나.

식상할때도 되었는데, 그 기억으로의 탐색이 나는 싫지가 않다.

책 속에서처럼 과거의 기억을 더듬어보고, 어떻게 어떻게 그 시절의 사람들을 찾아 뭐하고 살고있는지, 혹은 직접 만나보기도 해봤더니...그냥...내 삶은 소설과는 달라...참 별로였다. 
그래서 결론을내렸지. 주접 떨지 말고 살자고.

더이상 예전처럼 애틋하지 못했던 것은...
이제 과거의 미처 짚어보지 못했던 아쉬움이 없기때문일것이다.
'그땐 그랬구나...'하고 넘길 줄 알게된 내 스스로가 대견하기도하고.

여하튼, 문학작품을 통해서라도 이렇게 같은 삶을 경험해 보는 것은 좋은 일이겠지. 




YES마니아 : 로얄 c******m 2015.05.16. 신고 공감 1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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끊어지지 않을 다리, 인터스텔라의 시간을 호출하다.
"끊어지지 않을 다리, 인터스텔라의 시간을 호출하다." 내용보기
파트릭 모디아노 소설을 연이어 읽다보니 불어교재를 구입해서 단어들을 송두리째 암기하고픈 충동이 인다. 알제리 전쟁, 점령기 파리, 마른 강가, 므제브... 낯선 단어들. 또 파리 거리를 무작정 다리 아프게 배회하다 발길 닿는 대로 카페에 들어서고 싶다. 혼자서 얇은 코트에 작은 가방 하나 어깨에 두른 채 걷고 싶다. 여행할 때는 백팩을 착용하는데 파리에선 그러고 싶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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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파트릭 모디아노 소설을 연이어 읽다보니 불어교재를 구입해서 단어들을 송두리째 암기하고픈 충동이 인다. 알제리 전쟁, 점령기 파리, 마른 강가, 므제브... 낯선 단어들. 또 파리 거리를 무작정 다리 아프게 배회하다 발길 닿는 대로 카페에 들어서고 싶다. 혼자서 얇은 코트에 작은 가방 하나 어깨에 두른 채 걷고 싶다. 여행할 때는 백팩을 착용하는데 파리에선 그러고 싶지 않다.

 

 걷기는 회상과 기억 더듬기, 유령과의 재회이며 동시에 기록이 된다. 필멸의 운명을 넘어선 불멸의 지평으로 나가는 길목인 셈이다. 영단어 중에 가장 좋아하는 게 horizon이고 expand your horizon을 처음 만났을 때의 전율을 지금도 간직하고 있다. 매일매일 성장하며 넓어지고 깊어질 수 있다는 청춘의 열망이 고스란히 전해진다.

 

처음으로 그의 머릿속에 그 단어가 떠올랐다. 미래. 그리고 또하나의 단어, 지평. 그 시절의 저녁, 그 구역의 조용하고 텅 빈 거리들은 모두 미래와 지평으로 통하는 탈주로였다. (91)

 

 이번 지평도 작가가 된 보스망스가 예순이 넘은 나이에 40여년 전 기억을 회상하며 미로를 암시적으로 빠져나온다. 앞서 살펴본 소설들과 다른 점이라면 주인공들이 사십년을 돌아 다시 만날 것으로 예상된다. 국경을 함께 넘으려다가 실종된 여자친구의 행방을 다른 곳에서는 알 수 없었다. 그런데 이 소설에서는 그것도 서점에서, 해가 꺼지고 서서히 등불이 밝혀지는 시간에 재회할 예정이다. 그것도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별 상관 없는 이의 안부를 전할 계획이다. 마치 운명처럼 말이다.

 

그들은 자주 나란히 길을 가지만 각자 다른 시간의 통로를 걷는다. 서로 말을 하고 싶어도 마치 수족관 유리로 가로막힌 것처럼 상대의 말이 들리지 않는다. (137)

 

어느 날엔가, 보이지 않는 시간의 경계를 넘을 수만 있다면 그도 그녀를 만날 기회를 얻을 것이다. (144)

 

너무 많이 걸었더니 피로했다. 하지만 이번에야말로 평온한 느낌과 함께, 그가 어느 날 떠나온 장소 그 지점으로 같은 시간의 같은 계절에 돌아왔다는 확신이 들었다. 마치 시계의 두 바늘이 정오가 되면 하나 되어 만나는 것처럼. (184)

 

 재회의 암시 속에 그들이 돌아온 시간이 인터스텔라의 시간 개념을 연상시켜 신기했다. 암흑물질로 가득한 이 세상에서 잃었던/놓쳤던 시간(지난날)의 벽을 허물고 다시 안녕을 묻고 일상적인 관계를 맺는 설정이라 까마득하면서도 설렌다. 그리고 여타 소설들과 달리 실종된 여성의 목소리와 입장이 희미하게나마 들어가 있어 남성 중심의 회고에서 벗어나 더 열린 느낌이다.

 

 도무지 파악할 수 없는 출생의 배후, 그것 아니면 영 기반 없는 파렴치한 부모로 인해 인생에 먹구름이 잔뜩 낀 청춘들이 고독과 방황을 이겨내고 자기 갈 길을 찾고 꿈을 완성해나가는 구도가 덜 퍽퍽하고 윤기 있게 느껴진다. 생명의 위협을 느끼고 안전하지 못한데도 지금보다 낭만적으로 느껴지는 이유는 뭘까. 문득 프론티어 정신으로 기성세대의 뚜렷한 방향등 없이도 60-70년대 청춘 문화의 토대를 다지고 창작 열의를 불태우며 자유와 사랑을 향한 집념을 포기하지 않은 그들이 있어, 그들이 그 시간을 견뎌서 지금이 있는 것 같아 새삼 감사하다.

 

대체 어떤 계기가 있어야 우리는 이 세상을 살면서, 잘 태어나 잘 자란 사람들, 자신 있는 입술과 눈빛으로 부모에게 사랑받았다고 말하는 사람들에게서 보이는 그 한계같은 자신감과 적자다운 당당함을 가질 수 있는 것일까? (169)

 

, 한때 우리를 고통에 빠뜨렸던 것들이 세월이 흐른 뒤에는 얼마나 하찮아 보이는지. 그리고 우연 혹은 불운으로 인해 우리의 유년기와 청소년기에, 그리고 우리의 호적에 무겁게 자리잡았던 그 사람들 또한 얼마나 하찮아지는지. (46)

s********d 2015.04.01.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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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첫 만남은 상처라네 [외국소설-지평]
"모든 첫 만남은 상처라네 [외국소설-지평]" 내용보기
그렇게 두껍지 않은 소설이고, 특별한 사건들은 등장하지 않지만 전체적으로 지루하다는 느낌을 주지는 않는데 금방 읽어 내지 못했다. 후다닥 읽어 넘길 글은 분명히 아니었고, 천천히 읽어 나가기에는 집중력을 발휘할 수 없는, 그래서 잡았다가 미뤘다가 잡았다가 미뤘다가를 거듭한 소설이다. 포기하도록 내버려 두지 않았던 이 소설의 매력은 무엇이었던 것일까.   지나간 기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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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두껍지 않은 소설이고, 특별한 사건들은 등장하지 않지만 전체적으로 지루하다는 느낌을 주지는 않는데 금방 읽어 내지 못했다. 후다닥 읽어 넘길 글은 분명히 아니었고, 천천히 읽어 나가기에는 집중력을 발휘할 수 없는, 그래서 잡았다가 미뤘다가 잡았다가 미뤘다가를 거듭한 소설이다. 포기하도록 내버려 두지 않았던 이 소설의 매력은 무엇이었던 것일까.

 

지나간 기억, 나는 별로 집착하지 않는 쪽이다. 아니, 별로인 정도가 아니라 아주 아니다. 한때 그러했을 경험들, 한때 만났던 짧은 인연, 그때 그러지 않았더라면 좋았을 걸 하는 게 없는 탓인지도 모르겠다. 물론 어느어느 한때는 그렇게 후회하고 애타고 속상했을지도 모른다. 갖지 못한 기회에, 얻지 못한 인연에, 이룰 수 없는 꿈들에 대해 간절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시간을 보내면서 그럴 필요가 없다는 것을 절실하게 깨달아 왔다는 뜻이다. 그건 분명히 아니어서 아니었던 것이리라. 끝내 내 것이 될 수 없었던 것.

 

나이 60쯤 되어 작가처럼 옛길을 헤매다 보면 좋았던 시절의 기억으로 흐뭇해질 수 있을까? 흐뭇하면 흐뭇한 대로 좋겠고, 쓸쓸하면 또 쓸쓸한 대로 좋을 것 같다. 이것인가, 내가 이 책을 끝까지 놓을 수 없었던 이유가. 완전히 버릴 필요는 없다고 보는 지난 날들에 대한 여유로운 시각. 나는 나의 지난 날을 굳이 되새기고 싶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기억에서 지우려는 의욕을 갖고 있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알기 때문일까. 그러했던 나 또한 내가 아껴야 할 나의 일부일 것이니.

 

아직은 아니다. 나의 옛길을 더듬어 돌아다니고 싶은 생각은 아직 없다. 혹시라도 기억 속 누군가가 살아 있어서 우연히 마주치게 된다면 나는 도무지 침착하게 대처할 수 없을 것 같다. 게다가 내 속 가득 오글거리는 인상을 품고 그때 그 거리를, 그때 그 가게를 탐색하지도 못할 것 같다. 부끄러움 같은 게 스멀스멀 피어오르는 느낌이 들어서.

 

조금 더 시간이 흐르면 의연해질 날이 와 줄까. 안타까움 같은 마음 말고 후회되는 마음 말고, 쓸쓸해도 좋으니 아늑한 기분으로 내 젊은 날의 추억 속에 머물러 볼 수 있을 기회, 나라는 사람은 그 기회 자체를 얻으려 하지 않을 것 같다. 지금 내가 아는 나라면. 작가가 용기 있는 사람으로 보인다.

YES마니아 : 로얄 j***6 2015.12.22. 신고 공감 0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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맞닿는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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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개어지는 부분이다. 지평선은 그러나 그 지평선에 도달하면 또 다른 지평선을 보게 된다. 그런 의미에서 지평은 긍정적이고 미래지향적이라고 할 수 있다. 우울함으로 가득한 모디아노의 소설 속에 그래도 미래에 대한 여운을 맛 볼 수 있는 이색적인 소설이라고 해야 할까? 주인공은 늘 똑같다. 힘들게 살았다. 우울하고 미래도 없을 것 같은 현실을 산다. 적어도 과거에 그랬다. '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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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포개어지는 부분이다. 지평선은 그러나 그 지평선에 도달하면 또 다른 지평선을 보게 된다. 그런 의미에서 지평은 긍정적이고 미래지향적이라고 할 수 있다. 우울함으로 가득한 모디아노의 소설 속에 그래도 미래에 대한 여운을 맛 볼 수 있는 이색적인 소설이라고 해야 할까? 주인공은 늘 똑같다. 힘들게 살았다. 우울하고 미래도 없을 것 같은 현실을 산다. 적어도 과거에 그랬다. '지평'은 현실에서 그럭저럭 살만한 사람의 추억의 회귀다. 60대의 노인이 되어서 이제 다시 만나는 순간을 생각하면서 소설은 막을 내린다. 한 명은 소설가이고, 한 명은 서점 주인이다. 수십 년을 떨어져 살았지만, 그들은 '지평'가운데 연결 되어 있었던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명랑함만을 가질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들의 석연치 않은 헤어짐, 그리고 추억이 되기까지의 과정은 드러나기는 하지만 긴 시간이 공백으로 남아 있다. 곱게 접어서 간직한 것이 아니라, 작가의 의도였는지 그 시간은 찾을 수 없다. 그래서 소설은 아쉽고, 허전하다. 물론, 기억을 불러내는 작업은 모든 시간을 묘사하기 위한 것이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모디아노는 소설가인 것이다. 그리고 왜? 라는 질문에 픽션이라고 대답할 수 있다. 재미로 읽어서는 모디아노를 이해하기 힘들다. 그러나 그의 추억의 한계를 생각해 보고 그 한계에 답을 픽션이라고 하는 작가에게 더 이상의 요구는 불필요하다. 그저 그의 기억력의 한계를 인정하고 주어진 지면에서 독자들이 무한정 상상할 뿐 이다. 물론, 독자는 프랑스인이 아니라는 측면에서 역시 픽션위에 또 다른 픽션을 지어내고 있지만 말이다.

YES마니아 : 로얄 b*****c 2016.01.11.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