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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사렛 사람 예수, 그의 죽음에 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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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종교가 없지만 예수에 관해서는 관심이 없지 않다. 로마제국 변방 속주에서 아마 큰 관심도 받지 못하고 죽어간 한 사내가 전 세계를 지배하는 종교를 만든 인물이 되었다. 죽을 때까지 유대 사회에서도 전혀 주류가 되지 못했던 한 사내의 죽음이 인류의 전 역사를 통틀어서도 가장 중요한 사건이 되었는데 관심을 갖지 않을 이유가 없다.   그는 어떤 인물이었을까? 종교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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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종교가 없지만 예수에 관해서는 관심이 없지 않다. 로마제국 변방 속주에서 아마 큰 관심도 받지 못하고 죽어간 한 사내가 전 세계를 지배하는 종교를 만든 인물이 되었다. 죽을 때까지 유대 사회에서도 전혀 주류가 되지 못했던 한 사내의 죽음이 인류의 전 역사를 통틀어서도 가장 중요한 사건이 되었는데 관심을 갖지 않을 이유가 없다.

 

그는 어떤 인물이었을까? 종교에서 말하는 예수가 아니라 역사가 말하는 예수는 어떤 이일까 

 

빌 오라일리와 마틴 두가드는 예수가 역사 속에서 어떤 삶을 살다 갔는지 객관적으로 이야기해주기에 적합할 수도, 적합하지 않을 수도 있다. 우선 그들은, 한 명은 언론인이고, 또 한 명은 역사저술가인데, 킬링 링컨, 킬링 케네디드으이 작업을 함께 한 콤비다(이 책의 원제도 Killing Jesus). 하지만 그들은 천주교 신자다. 말하자면 종교인과 역사가로서의 아이덴티티가 섞여 있는 셈이다. 책에서도 그런 면이 엿보인다. 역사 속의 인물로서 예수를 이야기하지만, 종교에서 얘기하는 예수를 완전히 배제하지도 못한다. 가장 중요한 예로, 예수가 행했다고 하는 여러 기적에 대해 언급은 하지만 심각하게 서술하거나 감탄하지는 않는 것이다. 그리고 부활에 대해서도 그렇다. 예수의 죽음으로 본문을 마쳐 버리고, 부활을 전해지는 얘기처럼 슬쩍 처리한다. 실체적으로 파악할 수 없는 사안이지만, 종교도 무시하지는 않아야 한다는 일종의 타협이지만, 그래도 역사저술가로서의 정체성이 우성이었던 걸로 보인다.

 

예수의 행적은 신약 중에서도 마태복음>, <누가복음>, <마가복음>, <요한복음에 전한다. 그러나 네 복음서는 역사 기록이 아니고, 예수 사후 바로 기록된 것도 아니며, 또 원래 저작 형태로 전해지는 것도 아니다. 또한 복음서 사이에 내용이 일치하지 않는 부분도 많다(고 한다). 그래도 빌 오라일리와 마틴 두가드는 이 네 복음서를 기초로 예수의 삶과, 특히 죽음을 재구성했다. 물론 당대의 생활상과 정치 상황은 다른 자료를 참고했을 것이다. 이를 통해 예수의 죽음이 일치적으로는 당시 유대 사회의 종교적 상황, 즉 질시와 증오에 의한 것이며, 여기에 로마의 폭력(적 성향)이 더해진 결과라고 해석하고 있다. 물론 자신에게 가해진 폭력과 죽음을 의연하게 받아들인 나사렛 사람 예수 역시 초점에서 벗어나지 않지만.

 

이 책을 읽으며 예수의 죽음에 얽힌 세부적인 내용을 알게 되는 것은 소득이지만, 그의 삶과 죽음 즈음의 그 사회에 대해 이해를 높일 수 있는 것이 더 크게 얻은 점이라고 생각한다.

 

YES마니아 : 로얄 n*****m 2020.10.18. 신고 공감 3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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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는 왜 죽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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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가 살았던 역사적인 배경에 대한 지식과 예수의 설교와 삶에 대한 여정을 함께 서술한 재미있는 책이다. 단순한 역사서도 아니고 단순한 예수의 생의 일대기도 아니다. 양자가 적절하게 배합되어 있다. 역사에 중점을 두는 경우는 예수의 인생의 빛이 사라지는 경우가 있고 예수의 인생의 빛에만 중점을 두는 경우는 역사성이 사라지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이 저서는 양자를 같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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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가 살았던 역사적인 배경에 대한 지식과 예수의 설교와 삶에 대한 여정을 함께 서술한 재미있는 책이다. 단순한 역사서도 아니고 단순한 예수의 생의 일대기도 아니다. 양자가 적절하게 배합되어 있다. 역사에 중점을 두는 경우는 예수의 인생의 빛이 사라지는 경우가 있고 예수의 인생의 빛에만 중점을 두는 경우는 역사성이 사라지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이 저서는 양자를 같이 공유하고 있다. 비기독교도 뿐만이 아니라 기독교도가 읽어도 좋은 책이며 저자는 기본적을 예수에 대한 믿음을 가지고 이 책을 쓴 것으로 보인다. 우리가 알다시피 원래의 예수와 교회에서 말하고 있는 예수는 많이 다르다. 교회에서는 다양한 이론과 관점에서 재해석한 신으로서의 예수를 강조한다. 그러나, 저자는 마치 원시기독교의 입장에서 보듯이 인간으로서의 예수 - 자신이 신의 아들이라는 확신을 가진 - 를 서술하고 있다. 믿고 안 믿고는 독자의 몫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특히 유익했던 점은 예수가 살았던 시대 전후의 로마역사 등 역사적 배경의 서술이 흥미있고 자세하게 서술되어 있다는 것이다. 역사서로서도 재미있었다. 또한 예수의 행적을 따라서 그가 한 말을 순서에 따라서 적어 놓아서 신약을 다시 읽는 듯한 느낌도 들었다. 여러가지 기적의 이야기도 나오고... 역사를 배경으로 기적과 신화를 객관적으로 서술하고 있다. 또한, 왜 빌라도가 유대인들에게 예수를 죽일 것인지 물었는지 그 역사적인 배경에 대해서 상세하게 서술을 해 놓았다. 당시 로마황제의 명에 따라 유대인 종교의 자율성을 존중하여 유대인의 율법을 어긴자는 유대인이 형을 결정해야 하도록 되어 있기 때문이다. 예수는 자기확신을 가진 영민하고 뛰어난 지도자로 그려지고 있고 예수의 모든 예언은 - 사실 이점은 이론의 여지가 많은 부분이지만 - 실현되었다고 보고 있다. 여하튼 일반사람이 예수와 기독교를 거부감이 없이 합리적으로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는 책이다.

h******g 2015.01.25. 신고 공감 2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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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적 관점에서 바라본 신의 아들 예수
"역사적 관점에서 바라본 신의 아들 예수" 내용보기
책은 예수의 삶을 종교적 관점이 아닌 역사적 관점에서 살피고 있다. 예수가 행한 기적이나 성경에 쓰인 예수의 교리보다 그의 이동과정과 당시 히브리 지역을 두고 벌어진 역사적 사건에 관심을 가졌다. 하지만 역사적 관점으로 바라본 예수의 삶 역시 그의 신으로서의 모습, 가난한 자들을 위하고 평화와 사랑을 실천했던 신성한 모습을 드러낸다.예수는 담담히 자신을 죽음으로 이끄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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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은 예수의 삶을 종교적 관점이 아닌 역사적 관점에서 살피고 있다. 예수가 행한 기적이나 성경에 쓰인 예수의 교리보다 그의 이동과정과 당시 히브리 지역을 두고 벌어진 역사적 사건에 관심을 가졌다. 하지만 역사적 관점으로 바라본 예수의 삶 역시 그의 신으로서의 모습, 가난한 자들을 위하고 평화와 사랑을 실천했던 신성한 모습을 드러낸다.


예수는 담담히 자신을 죽음으로 이끄는 삶, 십자가의 형벌을 향해 한걸음 한걸음 나아갔다. 도망칠수도 있고 자신을 추종하는 세력을 모아 혁명을 꿈꾸는 것도 가능했지만, 그는 죽어야 하는 자신의 운명을 받아들였다. 예수는 로마에서 보낸 이스라엘의 총독 빌라도 앞에서도, 유대의 왕인 헤롯 앞에서도 살려고 아둥거리지 않았다. 그저 자신이 하나님의 아들임을 말했을 뿐이다. 그것이 비록 그를 죽음으로 모는 일인줄 알면서도 그는 자신의 의지로 그 죽음을 향해 나아간 것이다.


예수는 당시 제사장들, 바리새인과 새두개인들과 같은 기득권들에게 핵폭탄과도 같은 존재였다. 당시 대제사장인 가야바와 그의 장인 안나스에게 예수는 사회의 암, 종양 덩어리나 마찬가지였다. 예수는 율법과 형식만 강조할뿐, 삶이 부패하고 기독교의 본질을 외면한 바리새인들과 새두개인들을 강하게 비판했다. 부자가 천국에 가는 것은 낙타가 바늘 귀를 빠져나오는 것 보다 어렵다며 부와 권력을 내려놓고 없는 자들과 나눌 것을 강조했다. 항상 쉬운 말, 친숙한 비유를 통해 사람들을 권면했다. 예수는 율법보다 율법안에 담긴 본질을 이야기했다. 인간의 권리, 존엄성, 본성의 회복을 외쳤다. 서로 사랑하고 연대하라고 설교했다. 서로 나누고 아끼면 복을 받고 천국이 저희 것이라 말했다.


기독교 신앙의 핵심은 바로 예수 그 자체다. 예수는 우리의 죄를 대속해 죽은 하나님의 아들로 그의 죽음 덕분에 우리는 죄씻음을 얻을 수 있었다. 우리의 노력이 아닌 하나님의 선물처럼 우리는 예수를 통해 원죄의 수렁에서 건져진 것이다. 예수는 죽은 지 사흘만에 부활해 다시 하늘로 올라갔다. 죽음이란 권세에서 자유로워진 예수의 신성회복이다. 이제 예수가 우리 죄를 위해 피흘려 죽으시고 다시 부활하심을 믿는 누구나 구원을 얻을 수 있다. 유대인들은 예수를 믿기만 하면 지금까지 자신의 죄를 회개하고 용서 받기 위해 양이나 비둘기 같은 산 제물을 바치지 않아도 됐다. (다른 민족들도 마찬가지다.) 이 것이 바로 기독교의 가장 핵심이 되는 신앙이자 기독교인들의 신앙고백이다.


기독교의 중요한 교리 중 중요한 또 다른 한 가지는 예수를 닮아가는 삶이다. 예수를 내 구원자로 믿고 구원 받았음을 확신하면 내 삶은 예수를 닮아가는 삶으로 변화한다. 인간은 어쩔 수 없이 죄에 넘어지고 유혹에 빠지는 존재다. 그렇게 만들어졌다. 이 때문에 예수를 영접해도 매일 자신이 저지른 죄를 회개하고 최선을 다해 예수를 닮아가는 삶을 살기 위해 노력하고 또 노력해야 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회개가 아니다. 회개를 하고 최선을 다해 예수를 닮은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이다. 마치 천국으로 가는 하이패스마냥 회개가 모든 죄를 씻어주는 퍼스트 클래스 티켓이 아니라는 말이다.


이제 한국 교회를 살펴보자. 헌금을 강요하고 전도를 종용한다. 한국 교계를 이끌어 나간다는 대표적인 대형 교회들의 모습이다. 교회를 키우지 않으면 한국 기독교가 죽는다고 협박같은 설교가 매주 등장한다. 교회 공동체만을 강조할 뿐, 교회 밖의 핍박받고 소외당하는 사람들은 외면한지 오래다. 목사들의 설교에 예수가 항상 등장하지만, 그의 신성만 전할 뿐이다. 예수의 삶, 가난하고 소외받고 핍박받은 자들을 위해 자신을 내던진 예수의 삶은 설교에서 사라졌다.


교회의 세가 불어나고 외형이 커지자 교인들은 서로 똘똘 뭉쳐 큰 세력을 형성했다. 학연, 지연처럼 같은 교회, 같은 소속의 식구를 감싸고 일종의 카르텔을 사회 속에서 형성한다. MB 정권 당시 유행하던 '고소영'에 소는 소망교회를 뜻한다. 소망교회 교인은 MB 정권에서 권력으로 가는 고속열차와 다름 없었다.  이런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지금의 한국 기독교는 그렇다면 과연 예수의 죽음과 부활을 진심으로 믿고 있는 것일까?


당시 예수를 따르는 군중들은 그를 그리스도라고 불렀다. 성경과 예언에 나온 하나님의 아들이자 자신들을 구원할 메시아로 믿은 것이다. 하지만 권력과 부를 가진 자들은 자신의 위치를 위협한다고 느끼고 예수를 죽여버렸다. 그냥 죽인 것도 아닌, 가장 처참하고 가장 극악무도하며 비천하고 악질적인 죄인에게만 행하는 십자가 형벌로 죽였다. 또 다른 누군가가 자신들의 위치를 절대 넘보지 못하도록 그 싹을 미연에 잘라버리려는 것이다. 십자가에서 숨을 거둔 예수는 사흘 만에 부활해 하늘로 올라갔다. 성경에선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다가 다시 세상을 심판하러 내려온다고 했다. 만약 예수가 세상을 심판하러 이 땅에 내려왔을때, 한국 기독교는 예수를 과연 알아볼 수 있을까? 부와 권력을 손안에 쥐고 절대 빼앗기지 않으려 했던 가야바와 안나스처럼 자신들의 이권을 위해 발악하는 한국 기독교는 이땅에 다시 오신 예수를 다시 한번 십자가에 못박으려 하지 않을까? 

YES마니아 : 로얄 k********4 2015.05.05. 신고 공감 1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