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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 때 인터넷 동호인으로부터 밴드 '미선이'에 대해 들었다. 당시 그 동호인의 추천이 나의 뇌리에 박혔고 나는 바로 '미선이' 음반을 구입했다. 한낮의 눈부신 햇살에 실눈을 뜨며 손을 이마에 대고 차양을 만드는 그런 류의 음악이었다. 한동안 이 음반만 들었다. 기숙사에서 강의동으로 이동하던 걸음마다, 도서관에서 휴식을 취할 때마다. 대학 3, 4학년 때쯤이었다. 조금씩 진로와 취업에 대해 부담을 느끼던 시기였다. 그런 상태의 내게 '미선이' 음반은 지친 몸의 곳곳에 뚫린 구멍 사이로 선율이 샥샥 들어 앉았다. 뭉근하게 여운이 퍼지는 음악이었다. 어느 날 미선이 밴드는 해체 되고 멤버 중 조윤석만이 남아 루시드폴이라는 이름으로 활동했다. 루시드폴은 미선이의 색채와 비슷했다. 대학을 졸업하고 사회인이 된 이후에도 조윤석의 음악을 계속 좋아했다. 루시드폴의 음악은 싱그러운 나무들 사이를 달리는 차 안에서 듣기 딱이었다.
루시드폴의 이름이 새겨진 책 광고를 보았다. 공중파에서 활동을 별로 하지 않는 루시드폴이라 내겐 아직도 그는 그의 음악만큼 안갯속 같은 인물이었다. 그를 알 수 있겠다는 기대로 책을 구입했다. 이 책을 읽기 전까지 루시드폴이 마종기 시인의 시를 좋아했다는 사실도 몰랐다. 내가 루시드폴의 조윤석을 좋아한 것이 아니라 루시드폴이 만든 음악 듣는 것을 좋아했을 뿐이라는 것이, 여기서 드러났다.
판형의 비율이나 하드커버인 점, 속지에 박힌 글자 크기가 너무 작다는 점 등, 물리적인 면에서 책을 쥐고 읽기 불편했다. 남편도 지나가며 하는 말이 "이 책 글자가 너무 작아." 다행인 것은 내가 구입한 책이 2013년 15쇄판이었는데 새로운 디자인으로 2014년 재출간된 것을 이 리뷰를 쓰며 알게 됐다. 내가 이 책을 산지 최소 4년 전이라는 얘기다.
의사이자 시인, 마종기. 고국을 떠난지 40년이 지난 70대 문인이자 은퇴한 의사이다. 공학박사이자 가수인 루시드폴. 스웨덴을 거쳐 스위스에서 6년 동안 학위 공부를 했다. 한 사람은 미국 플로리다에서 한 사람은 스위스 로잔에서 서로의 안부를 묻고 질문에 답하며 또다른 질문을 던진다. 그렇게 둘은 메일을 통해 나이와 전공을 초월한 옛날식으로 표현하자면 펜팔 친구로 2년 넘게 소통한다. 그 편지들은 인간 마종기와 조윤석에 대해 더 알게 되고, 예술에 대한 애정, 고국에 대한 사랑, 친구와 사람에 대한 우정까지 듣게 됐다. 둘 사이의 이야기를 독자가 몰래 엿듣는 것 같은데 죄책감이 일거나 찝찝하지 않다.
아무래도 책을 고른 이유가 루시드폴이라서 루시드폴의 이야기에 집중할 줄 알았다. 마종기 선생님 편지 속에 담긴 그의 역사를 보게 되니 흥미를 느끼는 것이 왠지 죄송하긴 하지만 이 60년대 이후의 대한민국 처지를 조금 구체적으로 상상해볼 수 있었다. 옳지 못한 권위주의에 항거하다 중앙정보부에 잡힌 이후 대한민국을 떠나지 않으면 징역살이 할 것이라는 말에 그는 1966년 미국으로 건너가 자리를 잡는다. 그에겐 고국의 민주화에 대한 부채의식이 있어 보였다. 고국을 향한 그리움과 부채의식을 달래는 방법은 시를 쓰는 것이었다. 고국에서 그는 문학적으로 잊히지 않고 인정을 받는다. 마종기 시인의 이름은 낯익은데 그의 시를 접해보질 못하는 것이 왠지 부끄러웠다.
둘의 편지 속에선 그들 서로를 걱정하고 칭찬하며 격려한다. 아무래도 연장자인 마종기 시인이 루시드폴을 격려하는 경우가 많다. 먼저 살아본 사람으로서 충분히 할 수 있는 충고들이 꼰대같이 느껴지지 않는다. 그건 진심에서 우러나온 말들이었기 때문일것이다. 루시드폴이 계속 외국에서 학업을 이어가며 귀국을 미룰 것인가를 고민할 때 마종기 시인은 물끄러미 바라보는 듯한 말투로 알아서 결정을 잘 할 것이라 말하였는데 막상 루시드폴이 연구소에 남지 않고 귀국을 하겠단 의사를 밝히자 자기일처럼 기뻐한다. 고국에서 살아갈 수 있는 것, 익숙한 그곳에서 살아갈 수 있는 것 '내 고국에 살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행복이라고 말한다. 루시드폴은 솔직하게 공부보다 음악이 더 하고 싶다고 말한다. 음악을 할 때 더 행복하다고 말한다. 음악을 하기 위해서 귀국을 택했다고 한다.
이 책을 읽으면서 그간 음악으로만 만난 루시드폴의 분위기를 구체화시켜나갔다. 그가 만든 가사와 선율에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을 것 같았다. 당장 아직 구매하지 않은 음반이나 책을 검색했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에 대해 더 알게 된다는 것은 그 사람을 향해 최선을 다하는 기분이 들어 충만감을 느꼈다. 두 사람은 만났을까? 물리적으로 먼 거리와 서로가 바쁜 일정을 소화하는 사람들이니 장소와 시간이 교차하는 지점이 생기기 힘들다. 하지만 루시드폴이 귀국을 선택하자, 그들은 대한민국에서 만날 수 있게 되었다. 그들이 얼굴 맞대고 나누는 대화는 마치 편지글을 나레이션하는 느낌이다. 이들의 우정은 지금도 이어지고 있지 않을까. 이 책 이후 또 한 권의 편지 묶음이 나온 걸 보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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컴퓨터 키보드를 두드려 편지를 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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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종기 시인과 루시드폴은 2007년 처음 편지로 만났다. 평생을 타국에서 살아야 했던 고독과 그리움을, 시로 녹여냈던 의사 시인 마종기와 수년째 스위스 로잔 연구실에서 머물며 틈이 날 때마다 '외로움'의 선율을 기타줄에 옮겼던 화학자 뮤지션 루시드폴. 두 사람은 2009년 봄 서울에서 처음 대면하기까지 2007년부터 2년간 편지를 주고받으며 서로를 알아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