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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경의 불완전한 말들을 형성한 사람들의 이야기 신경의 불완전한 말들이 형성한 사람들의 이야기 이 책의 부제가 내 눈을 사로잡았다. 그래서 이 책을 다 읽게 만들었다. ‘신경’을 뜻하는 헬라어 ‘심볼론’은 본래 고대 그리스인들이 상거래를 마치면서 판매자와 구매자 사이에 거래에 대한 증표로써 나눠 갖는 물건을 의미한다고 한다.(220쪽 인용) 하나에서 여럿으로, 여럿에서 다시 하나로 합쳐지는 일치성과 다양성이 신경의 핵심이다. 대부분의 그리스도인들이 ‘사도 신경’에는 익숙하다(물론 교단마다 다를 수 있다). 그러나 신경이 어떻게 형성되었는지, 어떤 의미가 있는지에 대해서는 관심을 갖지 않은 채 타성적으로 외우고만 있는 경우가 많다. 대중적인 사도 신경이 그러할진대 ‘니케아 신경’은 존재 자체를 모르는 경우도 다반사다. 나도 역사를 전공하기에 로마의 기독교 공인 과정과 연계되었다는 것만 알고 있었지 자세한 내막은 알지 못했다. 이 책은 니케아 신경이 형성되는 과정에 대하여 자세히 파헤치는데, 그것이 마치 한 편의 드라마와 같다. 약간은 서사시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니케아에서 시르미움을 거쳐 콘스탄티노플까지 이어지는 60여 년의 여정은 마치 가나안을 코앞에 두고 광야를 빙글빙글 도는 이스라엘 백성의 여정을 보는 듯 하다. 예수님께서 승천하신 이후, 성령의 역사로 초대 교회가 세워지고, 숱한 박해를 이겨내고 기독교가 콘스탄티누스 황제에 의해 공인되는 과정에서 내부적으로는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관계를 인간의 언어로 설명해내기 위한 뼈를 깎는 노력과 갈등이 있었다. 삼위일체라는 표현은 성경에 단 한번도 등장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많은 그리스도인은 성경을 읽으며 하나가 셋이 되고, 셋이 하나가 되는 신비에 대한 깨달음을 얻었다. 그러나 그것을 모두가 이해할 수 있는 방향으로 설명이 완성된 적은 이제까지의 역사에서 단 한 번도 없다. 니케아 신경의 형성기는 바로 이 ‘하나님’을 설명하려는 시도이며, 그러한 시도들이 만들어 내는 새로운 세계에 대한 이야기이다. 그리스도인은 말 그대로 그리스도를 따르는 사람들이다. 그렇다면 ‘그리스도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이 나올 수밖에 없고, 이는 실제로 주님께서 제자들에게 물어본 질문이기도 하다. pp.215-216 「니케아 신경」은 성부-성자-성령을 계시한 성경에 대한 해석과 거기서 파생되는 신앙의 요약이었으며, 이를 바탕으로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라는 성자 예수의 질문에 답한 고백이었으며, 동시에 다른 해석과 고백에 대한 교정이었다. 오리게네스, 아리오스, 아타나시우스, 에우세비오스 등 수많은 인물들의 이야기와 주장들을 나와 같은 일반인들이 분별해내기는 쉽지 않다. 또한 신경의 형성 과정은 단순히 신학적이지만은 않으며, 당대 로마 정치와도 긴밀히 연결되어 있어 복합적이다. 그러나 그런 점이 어쩌면 세상 권세를 주관하시는 하나님의 섭리를 더욱 명확하게 보여주는 반증이 아닌가 생각한다. 하나님은 모든 상황과 환경을 이용하셔서 하나님의 하나님 되심을 드러내실 수 있는 분이기 때문이다. 니케아-콘스탄티노플 이후에도 수많은 공의회와 선언들이 등장하였지만,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관계에 대한 기본적인 정의는 더 이상 새롭게 논의되지 않는다는 점은 이 신경의 역사적이고 신학적인 의미가 어떠함을 드러낸다. 니제이 굽타도 「기독교, 로마를 뒤흔든 낯선 종교」(IVP 역간)에서 ‘초기 그리스도인들은 믿을 수 없는 것을 믿었다’고 했다. 삼위일체야말로 사람이 믿을 수 없는 것, 그러나 은혜 안에서 받아들일 수 있는 것임에 분명하다. 그리고 그 안에서 우리는 역동적이고도 완전하신 하나님의 ‘사랑’의 진수를 누릴 수 있다. 성경은 ‘새 노래로 여호와께 노래하라’(시96:1)고 명령한다. 신경이야말로 하나님에 대한 사랑의 노래라고 저자는 강조한다. 기독교의 정체성이 위협받는 이 시대에 ‘우리는 어떠한 하나님을 믿는가?’에 대해 명확하게 선포할 수 있는 신경은 그 의미에 맞게 고백되어야 할 그리스도인의 신조가 되어야 하지 않을까. 주기도문에 기도가 빠지면 주문이 되듯, 신경에도 믿음이 빠지면 한낱 경전의 문장이 되어버릴 뿐이다. 기독교 역사에 관심이 있는 그리스도인들, 교리와 교리 교육 등에 관심이 있는 교회 교사들은 한번쯤은 읽어보기를 추천한다. 내용이 다소 어렵긴 하지만 장마다 저자의 친절한 요약과 함께 이해를 돕는 질문이 있어서 함께 독서모임을 하기에도 적절하다 생각된다. 물론 교회사에 어느 정도 지식이 있는 분이 모임을 인도한다면 더욱 좋을 것이다. #니케아신경형성기 #도서출판다함 #곽계일 #니케아신경 #서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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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케아 신경은 불완전한 인간들이 완전하신 성부, 성자, 성령 삼위일체 하나님을 묘사할 때 필연적으로 이야기들을 책 곳곳에서 만나게 되며, 그것을 해결해 나가는 이야기로 우리를 이끌고 있다. 니케아 신경이 주후 325년 작성된 이후 그것이 정통 교회에 받아들이기까지의 과정도 드라마의 한 장면을 보는 것 같다. 그래서 도서출판 다함의 <니케아 신경 형성기>는 이러한 니케아 신경을 더 가까이 만날 수 있게 한다.
이 책은 독자들에게 니케아 신경 작성 전의 배경이나 381년까지의 일어났던 수많은 논쟁, 그리고 이후의 여러 가지로 대두되었던 해석까지도 언급함으로, 우리가 지금 만나고 있는 니케아 신경에 대한 궁금증들을 해소해 준다. 또한 이러한 지난한 과정은 저자의 노력이나 공부한 흔적이 얼마나 방대하고 깊은지도 보여준다. 이런 책을 만난 것이 행운이라는 말은 과분할까? 시대가 변하고 믿음이 흔들리고, 바른 신학적 판단이 어려움을 겪는 시대에 올바른 믿음의 길을 갈 수 있게 하는 책을 만난다는 것은 여러 유익 중 하나이다.
총 7장에 걸쳐 니케아 신경이 걸어온 길을 다루고 있다. 내용 면에서 니케아 신경이 어떻게 형성되고 확정되었는지를 역사적으로, 신학적으로, 다루고 있다. 거기에 드라마를 보는 것 같은 매력도 있다. 이 책에서 저자가 독자들에게 들려주는 이야기는 하나다.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이시다.” 거기에 맞추어 극적인 요소를 통해 논쟁을 부각하고, 그 논쟁을 해결해 가는 긴장의 상태를 생생하게 들려준다. 이러한 작업을 통해 신학이 단지 상상이나 뜬구름 잡는 이야기가 아니라, 실제 교회 안에서 들려지고 삶 속에서 갈등과 마주하며 처절하게 세워졌다는 것을 이야기하고 있다.
니케아 신경에 대해서 누군가는 “그것이 지금의 나와 무슨 상관이 있느냐?” 예수님이 참 신이시며, 참사람이라는 그 신비를 균형있게 이해하지 못하기에 더욱 필요하며 상관이 있다는 것이다. 사실 예수 그리스도를 어떻게 설명할 수 있는가? 인간의 짧은 지식의 한계로 다 설명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러나 이러한 <니케아 신경 형성기>와 같은 책을 통해 조금이나마 우리의 이성과 영성을 확장 시키는 도움이 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온전한 이해보다는 믿음이 너저다. 믿음이 흔들리거나 신앙고백서에 관심이 있다면 적극 추천한다.
-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쓴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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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사에 관해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325년 니케아 공의회의 중요성을 익히 알고 있을 것이다. 이른바 “보편” 공의회라고 불리는 일곱 번의 회의는, 이후 분열을 겪은 후에도 동서 교회(가톨릭과 정교회) 모두가 인정하는 내용을 결정한 회의인데, 니케아 공의회는 그 중 첫 번째이자 가장 중요한 내용을 다루었던 회의였다. 기독론의 가장 기초인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과 인성이 그것. 하지만 이 즈음 교회의 회의는 그것뿐이 아니었다. 이미 니케아 이전에도 곳곳에서 다양한 규모의 회의들이 있었고, 다양한 의견들이 터져 나왔다. 예수 그리스도의 인성과 신성이라는 조화시키기 쉽지 않은 사안을 두고 혹자는 인성을 희생시키거나, 또 다른 이들은 신성을 누그러뜨리는 시도를 하기도 했다. 성부와 성자의 관계에서도 비슷한 혼란이 일어났었다. 성부, 성자, 성령의 구분을 허물어 한 분을 강조하는 이들도 있었고, 반대로 삼위의 독자성을 지나치게 강조해 세 하나님으로 치닫는 이들도 있었다. 이 책은 니케아 공의회를 두고 전후로 벌어졌던 그 다양하고 복잡한 움직임을 시간 순서를 따라 잘 정리해 냈다. 재미있는 부분은 저자가 이 과정을 일종의 “전투”에 비유해 내용을 전개하고 있다는 점. 본격적인 전투가 시작되기 전 소규모 충돌과 대규모 충돌, 그리고 접전 이후에도 끊이지 않고 이어지는 소규모 전투들, 이 상황을 더욱 복잡하게 만드는 건 전선이 생각만큼 선명하게 둘로만 나뉘어 있었던 게 아니라는 점이었다.
개인적으로는 굉장히 흥미진진하게 읽어나갔다. 처음에는 이걸 왜 자꾸 전쟁 이미지를 덧씌우는 걸까 하는 생각을 했었는데, 또 읽어나가다 보면 이해가 되는 면이 있다. 생각보다 전투는 훨씬 더 치열했고, 그 뿌리는 오래 전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저자의 전작의 주인공이었던 오리게네스까지 올라가니... 다만 이런 부분 때문에 어느 정도 초기 교회사에 관심이 있거나, 선지식이 있지 않는 독자에게는 좀 어렵게 다가올 수도 있겠다 싶다. 등장하는 이름만 해도 수십 명인데다가, 관련 내용을 영상으로 정리하면서 나름 꽤 읽었다고 생각하는 나 역시도 생소한 이름들이 툭툭 튀어나오니 말이다.(그만큼 저자가 깊이 연구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건 역사를 공부하다보면 어쩔 수 없이 만나게 되는 어려움이다. 역사란 딱 잘라서 볼 수 없고, 필연적으로 이전 시대의 사건들과의 연계를 찾아볼 수밖에 없고, 그 시대 속 다양한 사람들은 소설을 쓰는 것 마냥 평면적인 경우가 거의 없다. 시간이 지나면서 생각이 바뀌기도 하고, 처음부터 애매한 입장에 서는 사람들도 많다. (그래서 이걸 한 권의 책으로 정리한다는 게 참 어려운 일인 거고.) 하지만 종합적인 이해를 위해서라면 그런 어려움은 어느 정도 감수하고 읽어나가야 하는 법.
셋이면서 하나이신, 또 하나이시면서 셋이신 분에 관한 인간들의 치열한 논쟁과 정리 과정이 생생하게 묘사되어 있다. 요샌 애초에 교리 따위에 관심이 없이도 얼마든지 신앙생활이 가능하다는 나이브한 생각들도 많지만, 오래 전 우리의 불완전한 표현으로 어떻게든 하나님에 관해 서술하려고 애썼던 그들의 노력이 없었다면, 오늘 우리는 어쩌면 진작 어디선가 길을 잘못 들어 낭떠러지에 떨어졌을 지도 모르는 일이다. 말랑말랑한 책은 아니지만, 읽기에 아주 쉽지도 않지만, 그래도 우리가 믿는 것의 근원에 관해서 진지한 관심이 있다면 한 번 일독하기를 추천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