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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하의 기온이다. 추워서 외투를 여미다 보니 뜨거웠던 지난해 여름이 그립다. 가을, 겨울을 지나며 여름에 관련된 책을 읽으니 조금은 따뜻해지는 것 같다. 여름은 사랑의 계절, 뜨거운 마음을 지닌 것만큼 사랑과 이별이란 것도 마치 한여름의 뜨거운 열기처럼 갑자기 뜨거워졌다가 식는 게 아닐까. 마치 10대 시절처럼 말이다.
다소 생소한 이탈리아 작가 체사레 파베세의 『아름다운 여름』은 열여섯 살 지니아의 사랑과 사랑이 끝난 후의 그 쓸쓸함에 대하여 말한 작품이다. 이 작품으로 스트레가 상을 수상한 체사레 파베세는 그해 여름에 스스로 목숨을 저버렸다는 사실이 조금은 안타깝다. 마치 소설 속 ‘지니아’ 같지 않은가. 이별한 지니아의 외로움과 고독이 짙게 드리우는 것 같다.
열여섯 살의 지니아는 밤에 일하는 오빠를 위해 음식을 준비하고 부티크에 일하러 다닌다. 모든 일에 호기심이 많고 어떤 일이든 경험할 준비가 되어 있다. 윗집에 사는 로사와 트램을 타고 외출하고, 아멜리아와 어울리며 카페에 다닌다. 키가 큰 아멜리아는 모델이다. 화가를 위해 포즈를 취하고 그것으로 돈을 번다. 지니아가 보기에 아멜리아는 이미 어른인 것 같았다. 그에 비해 자신은 얼마나 미숙한가. 일이 없어 카페에 앉아 포즈를 취하며 화가들을 기다리는 아멜리아를 동경하는 것 같다. 나와 다른 세계에 있는 사람을 동경하듯 말이다.
“그 시절의 삶은, 마치 끝도 없는 축제 같았다.” 소설의 첫 문장이다. 첫 문장에서 의미하는 바와 같이 지니아의 여름은 뜨겁고, 뜨거운 여름을 피해 집을 나서 거리를 헤맸다. 지니아가 아멜리아와 어울리고 싶었던 건 어른의 삶을 경험하기 위해서였다. 마치 금단의 문을 여는 것처럼 떨렸고 설렜다. 아멜리아를 그리는 화가의 작업실을 방문하고 싶었던 것도 그런 이유에서였다. 어떻게 물감을 만지고 그림을 그리는지 그 공간에서 지켜보고 싶었다. 포즈를 취하는 아멜리아. 옷을 벗은 아멜리아. 아멜리아를 바라보고, 그림을 그리는 화가를 지켜보며 자기 또한 움직이지 않고 가만히 앉아있는 모델이 되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아멜리아를 찾으러 카페를 방문하곤 했다. 아멜리아 곁에서 술을 마시는 로드리게스를 알게 됐다. 산책 중에 아멜리아는 귀도의 집에 가자고 했다. 그곳에서 흙투성이 금발 군인 귀도를 알게 됐다. 로드리게스처럼 귀도도 그림을 그렸다. 벽에 걸린 풍경화와 인물화를 보며 아멜리아가 귀도의 모델을 섰는지 궁금했다. 지니아가 귀도에 대하여 생각하고 고민하는 부분은 사춘기 소녀의 그것과 닮아 있었다. 산책 중에 불이 켜졌다면 들어가서 그가 그림을 그리는 장면을 바라보고 싶고, 자기가 좋아하는 것처럼 귀도도 자기를 좋아하는지 그의 마음을 알고 싶어 했다. 아멜리아처럼 어른이 되고 싶은 그 마음이 느껴졌다.
첫 새벽빛이 스며들자 지니아는 이제 겨울이 된 것을 안타까워했으며, 그 아름다운 햇빛을 더 이상 만날 수 없는 것을 슬퍼했다. 귀도는, 색이 전부라고 말했었지. (93페이지)
부티크를 나설 때마다 늘 어떤 새로운 일이 문 앞에서 기다리고 있기를 바랐고, 무엇도 자신을 기다리고 있지 않은 것을 알게 되면 하루가 통째로 사라진 듯한 허탈감을 맛보았다. 그녀는 내일이 오기를, 모레가 오기를, 아니 결코 오지 않을 어떤 것을 기다렸다. (100페이지)
사랑이란 건 하룻밤 꿈과도 같은 것. 지니아가 귀도의 모델을 해준 순간 이미 끝이 보였는지도 모르겠다. 이미 여름은 지나고 겨울로 접어들고 있었으므로 지니아의 아름다웠던 여름이 다 지나갔다고 해도 되겠다. 쓸쓸하고도 고독한 겨울의 시간이 왔다. 짧은 소녀의 시절을 넘긴 어엿한 열일곱 살의 지니아가 되었다. 훌쩍 어른이 된 것 같았다.
조심스럽게 다가갔던 지난 모든 청춘의 시간이 있었기에 지금의 우리가 있지 않을까. 조심스럽게 다가갔다가 끝내 사랑의 끝을 보았던 우리의 젊은 날과 비슷했기에 공감 가는 부분이 있었다. 그 사랑을 자양분 삼아 이제 새로운 삶을 향해 나아갈 것이다. 우리들의 찬란했던 여름이 끝나고 이제 겨울을 지나며 또 다른 여름을 기대해본다. 그것이 삶이다. 우리가 가고 싶은 곳. 그곳이 어디든 갈 준비가 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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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이라는 단어는 생각만 해도 기분이 좋아진다. 하지만, 영화나 드라마의 사랑이야기에 공감하지 못할 때도 있다. 세상의 모든 경험 중 유독 사랑만큼은 내가 직접 겪고 스스로 알아가는 일이지 타인의 서사로는 완전히 닿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때때로, 나의 일이 아닌데도, 감정의 촉매가 되는 이야기가 있다. 체사레 파베세의 <아름다운 여름>이 그렇다. 그 시절의 감정과 설렘으로 나를 끌고 간다. 열일곱의 지니아가 화가 귀도를 만나 사랑과 혼란, 기대와 상처를 배워가는 이야기. 지니아는 정말 십대의 ‘누구나’처럼 귀엽다. 사랑이 시작되는 순간의 당황스러움, 혼자 판단하고 혼자 불안해하고, 상대의 눈빛 하나에도 온 하루가 흔들린다. 밤마다 이불킥을 하고 “나는 정말 바보야”를 속으로 되뇌던, 그 시절의 우리다. 사랑은 나이마다, 그 시절마다 각각 다른 형태로 경험할 수 있는 것 같다. 십대의 사랑, 이십대의 사랑, 삼십대, 사십대.. 그런데 십대야말로, 썸이라면 썸, 짝사랑이라면 짝사랑, 진짜 사랑이라면 진짜일 수 있는 그 모든 단어를 붙여놔도 아름답고 소중한 느낌이다. 이 책에서 내가 또 재밌었던 건, 소심한 지니아 곁에 조금은 멋부리고, 늘 세상물정 다 아는 듯한 친구 아멜리아가 있다는 점이다. 조심스럽게 사랑을 배우는 지니아와 달리, 아멜리아는 거침없다. "자유롭게 지내는 건 나를 열받게 만들어", "넌 아무것도 몰라. 제일 유능한 모델은 바로 화가들을 미치게 만드는 애들이야" 같은 말을 스스럼없이 내뱉는다. 같은 나이인데도 세상을 대하는 태도가 이렇게 다를 수 있다는 게, 또래의 다채로움을 보여주는 것 같아 좋았다.(내 스타일이다) <아름다운 여름>이라는 제목에 아이러니하게 슬픔이 묻어 있다. 하지만 그 슬픔은 나를 무너뜨리는 종류가 아니다. 좋은 시절이 있었음을, 그 감정이 내 안에 잠시 머물렀음을 상기시켜주는 조용하고 단단한 그리움이다. 그래서 슬픔 끝에 행복의 잔여감조차 남는다. 지니아의 여름은 끝나야만 아름다워졌고, 나의 시절 또한 그렇게 지나감으로 따뜻했다. 모두 각자의 방식으로 사랑을 배운다. 그래서 사랑은, 어떤 이유로든 아름다운 일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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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은 우리가 상상했던 방식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무엇을 기대했건 삶은 늘 다른 것을 들고 나타나 우리의 이해를 시험한다. 미래를 향해 어떤 장면들을 그려 보지만 현실은 종종 그 장면들을 비껴 가며 전혀 다른 풍경 속으로 이끈다. 아이러니하게도 그 어긋남 속에서 비로소 삶을 이해하게 된다. 젊음과 사랑에서 우리가 기대하는 것은 여름처럼 뜨겁고 강렬한 무엇이다. 그러한 기대를 갖게 되는 이유는 아마도 젊음과 사랑이 의미 자체로 너무 빛나기 때문일 것이다. 아직 경험하지 않은 감정들이 그 안에 담겨 있고, 모든 것이 가능할 것만 같은 시간이 그곳에 있다. 그래서 우리는 그 계절 속에 오래 머물기를 바라고, 순간들이 영원처럼 지속되기를 희망한다. 아름다운 여름은 파베세 특유의 절제된 문장으로 인물의 내면을 섬세하게 따라가며, 젊은 시절의 감정이 어떻게 변화하고 흔들리는지 사실적으로 그려 낸다. 이 소설의 중심에는 사랑을 처음 경험하며 어른의 세계로 발을 들여놓는 한 젊은 여성이 있다. 그러나 그 세계는 그녀가 상상했던 것처럼 따뜻하거나 낭만적이지 않다. 제목과는 달리 작품의 전반적인 정서는 차갑고 고요하다. 소설 속 풍경은 어딘가 시리고 쓸쓸해 외로운 정서를 머금고 있다. 인물들이 오가는 공간과 대화, 그리고 그 사이의 침묵에는 설명하기 어려운 고독이 내내 흐른다. 파베세는 이러한 분위기를 사소한 장면들과 미묘한 감정의 흔들림 속에 담아내며, 젊음의 기대가 서서히 현실과 마주하는 과정을 보여 준다. 단연 인상적인 것은 여성의 미묘한 감정 변화를 포착하는 파베세의 탁월함이다. 남성 작가라는 사실을 잊는다면 여성이 직접 써 내려간 이야기라 해도 믿을 만큼, 소녀와 어른의 경계에 선 한 여성의 기대와 불안을 섬세하고 사실적으로 그려 낸다. 그녀가 품고 있던 환상은 실체에 가까워질수록 현실의 윤곽을 선명히 드러내며 어떤 설명으로도 완전히 채워지지 않는 공허로 변한다. 그러나 공허가 모든 것을 지워 버리는 것은 아니다. 한때 자신을 강렬하게 통과해 간 사랑의 감정은 그녀 안에서 영원이 된다. 시간이 흐른 뒤에도 그때의 설렘과 혼란, 처음 세상을 마주하던 떨림은 빛처럼 기억 속에 남아 오롯이 그녀만의 삶이 된다. 찰나였기에 더욱 선명하게 남아 있는 그 여름 속에서. #아름다운여름 #체사레파베세 #소설추천 #북스타그램 #서평 *이 서평은 구매한 도서를 읽고 작성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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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표지에 이끌려서 구매했고 마침 계절도 여름이라서 그냥 읽었는데 되게 좋았습니다!! 대충 설명하자면 한 소녀가 여름을 지나며 성장하는 이야기입니다?! 제목이 역설적인 표현 같기도 합니다 ㅎㅎ 좋아하는 계절이 여름이라 더 재밌게 읽었습니다 ㅋㅋ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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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베세에 대한 책을 읽고 꼭 파베세의 소설을 읽고 싶었습니다 그의 일생과 그의 생각이 너무 흥미롭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소설은 약간 간결하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여름날의 끈적함이 느껴지는 소설이었어요 파베세의 다른 책들이 더 많이 번역이 되었음 좋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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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수록 극심한 지구 온난화로 인해 매 해마다 최고 온도 기록을 갈아치우고 있는 여름이라는 계절... 앞으로 대략 20년 뒤엔 겨울조차 사라지고 오직 여름만이 존재한다는 얘기가 있는데 다들 그딴 세상에선 살고 싶지 않다고들 말한다. 더위를 끔찍하게 싫어하는 나도 그렇고. 여름은 이제 더이상 낭만과 향수의 계절이 아니다. 태양의 빛은 찬란하기보단 살인적인 수준이다. 청춘의 싱그러움을 상징하던 여름이라는 계절이 대체 어쩌다, 이 모양이 됐을까. 그렇지만 적어도 체사레 파베세의 작품 <아름다운 여름> 속의 여름은 제목 그대로 아름답다. 소설 속 소녀들과 청춘들에게 있어 여름은 살아있는 계절, 약동하는 계절, 그리고 사랑할 수 있는 계절이다. 특별할 것 없는 일상의 고루함 속에서도 그 시절의 여름 안에서는 모든 것이 얼마나 특별했던지... '그 시절의 삶은, 마치 끝도 없는 축제 같았다. 집을 나서 길을 건너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곧잘 제정신을 잃었다. 모든 것이 경이로웠다.' 시작부터 이 세 개의 문장은 나의 이십대 초반 시절을 떠올리게 만들었다. 벌써 20년이라는 세월이 흘렀지만 여전히 그 시절의 내 모습은 생생하다. 때로는 지니아처럼 소심하고 조심스러웠지만, 지독히도 사랑을 갈망했고 때로는 아멜리아처럼 다 큰 어른이 된 양 여유를 부리고 세상을 향해 조소를 날리기도 했다. 내 삶은 이제 모든 것을 뜨겁게 녹여버릴 것만 같았던 여름을 지나 가을의 문턱 쯤에 다다랐지만 그래도 한번 쯤은 뒤돌아 봐줘야지. 그 시절 나의 사랑과 나의 아픔, 나의 청춘을. 지나가버린 그때 그 여름 속 태양 아래 활짝 웃고 있던, 혹은 울고 있었던 나 자신을 보듬어준다는 생각으로 읽어보면 좋을 책이다. 그 시절은 짧았기에 더욱 아쉬웠고 분명 아름다웠을 테지만 나는 그렇다 해서 그때로 다시 돌아가고 쉽진 않다. 그 때의 나는 모든 것에도 지나치게 예민하게 반응했고 그랬기에 너무도 쉽게 부서져내렸다. 하지만 그런 시기를 거쳤기에 지금의 보다 단단한 나로 성장했음을 알고 있다. 한여름의 뜨거운 태양은 결코 헛되지 않았나 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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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잔하면서도 여운이 남는 작품이었습니다. 여름이라는 계절이 주는 특유의 청량함과 그 속에 담긴 감정선이 섬세하게 묘사되어 있어서 읽는 내내 몰입할 수 있었습니다. 문장이 예쁘고 가독성도 좋아서 주말 동안 편안하게 읽기 딱 좋았네요. 계절의 분위기를 느끼며 가볍게 독서하고 싶은 분들께 추천하고 싶습니다. |